신학

[스크랩] 칼빈주의 5대 교리

하나님아들 2014. 7. 19. 16:04

 

 

 

 

 

 

                    칼빈주의 5대 교리

 

 

칼 빈주의 5대 교리(Five Points of Calvinism)는 아르미니우스주의 논쟁을 거치면서 확정된 칼빈주의 신학의 기본적 신조인데, 우선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전적 부패 (Total Depravity)

② 무조건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③ 제한된 속죄 (Limied Atonement)

④ 불가항력적 은혜 (Irresistable Grace)

⑤ 성도의 견인 (Preseverance of the Saints)

이상 영어의 첫 자를 따서 TULIP 꽃으로 암기하면 편리하다. 사실 칼빈주의 5대 교리는 성경의 츄립(Tulip)과 같은 것이다.

 

 

 

▲ 칼빈의 생애

 

① 칼빈(Calvin, John, 1509. 7.10 - 1564. 5.27)은 프랑스의 종교개혁자, 또 신학자이다. 피카르디 지방 노용에서 출생하였다. 12세 때 이미 성직록을 받았르며 빠리대학에서 수학한 (1523-28)후 오를레앙대학과 부르쥐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는데, 이 무렵 볼마르(M. Wolmar)와 다른 종교개혁자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1532년 라틴어로 세네카의 <De Clementia> 주석을 썼으며, 이듬해 교회를 본래의 순수한 모습으로 회복시키라는 신의 명령을 듣는 체험을 한 후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였다. 34년 노용으로 돌아가 성직록을 포기한 후 한때 투옥당했으며 프랑소와 1세의 프로테스탄트 추방령이 내리기 직전인 35년 스위스 바젤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불후의 명작인 <Christianae Religionos Intitutio> (기독교 강요)를 집필하여 36년에 출판했다.

② 그해 제네바를 여행하던 중 파렌(G. Farel)의 요청으로 제네바종교개혁에 참여하였다. 설교자겸 신학 교수로 프로테스탄트 신학을 가르쳤고 자신의 <Articuli de Regimne Ecclesiae> (36)를 근거로 한 철저한 신정정치를 시도했다. 즉 모든 주민들에게 의회 앞에서 신앙고백을 하도록 했으며 거부한 자들은 유배형에 처했다. 이같은 개혁정책이 제네바 의회외 인근 도시국가인 베른의 반감을 사 칼빈은 부득이 독일의 쉬트라스부르크로 가서 프랑스인 교회를 맡아보면서 루터파의 멜란하톤(P. Melanchton), 부처(M. Bucer)와 교류했다. 독일에 가 있던 3년 동안 로마서 주석을 썼으며 프랑트푸르트. 하게나우. 보름스. 레겐스부르크 등지에서 모인 종교 회합에 참여했다.

③ 41년 시민들의 요청으로 제네바에 귀환한 칼빈은 의회와 교회를 장악하고 이후 14년 동안 강력한 신정정치를 폈다. 교회 조직을 목사. 박사. 장로. 집사의 4계급으로 분류하였고, 정치. 종교적 권한이 집중된 목사회를 통해 주민들의 종교. 윤리적 생활을 엄격하게 감독하였다. 교회법을 어긴 자들에게는 가혹한 형벌이 가해졌고 춤이나 오락같은 유흥행위고 엄금했다. 그루에(ㅓ. Gruet), 모네(R. Monnet), 세르베투스(M. Servetus)등이 그의 신정정치를 반대하여 투옥되었다가 처형당하는 등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55년에는 제네바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였다.

④ 이후 칼빈은 다른 유럽국가에 같은 유형의 종교개혁을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영국 프로테스탄트 피난민에게 숙소를 제공한 것이라든지 프랑스 피난민을 훈련시켜 다시 프랑스로 파송해 비밀로 개혁교회를 설립하게 한 것 등이 그러한 노력의 결과였다. 또한 59년 제네바 아카데미(현 제네바대학)를 설립하여 예정론을 비롯한 개혁교회 신학을 정립했으며 신약 전체와 구약 대부분의 주석을 집필했다. 그의 신학과 종교개혁 활동은 스위스뿐 아니라 유럽과 북미에서도 크게 진척되어 오늘의 장로교회 근원이 되었다.

 

▲ 신학

 

그의 신학에 대하여는 이미「개혁주의 신학」에서 서술한 바 있다.

그 러므로 여기에서는 그의 신학의 집대성인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1) 저자

① 목회자 칼빈.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독교 교육과 도덕적 훈련과 신앙고백에 착수하였다.

② 설교자 칼빈. 데니스 라게니에(Denis, Raguenier)가 솔기한 칼빈의 설교 2,025편이 제네바 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다.

③ 신학자 칼빈. 성경의 진리가 칼빈신학의 처음과 나중인 것에 대하여는 그의 “기독교강요”가 설명해 준다. 물론 그 중요한 줄거리는 “5대 교리”이다.

 

(2) 내용

① 칼빈의 신학적 주저인 “기독교 강요”는 칼빈주의 신학의 교본이다.

② 초판은 1536년 3월에 바젤 출판사에서 출판되었고, 결정판은 1559년에 라틴어로 출판되었다. 이는 전4권 80장 50만자에 이르는 신학총서이다.

③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의 순서를 따라 편찬한 것으로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의 지식, 구속자 그리스도와 성령의 역사, 그리고 교회, 은혜의 방편, 국가. 정부 등을 다룬 개혁주의 신학적 대전(Theologica Summa)이다.

 

(3) 자료

① 칼빈은 종교개혁자 누구보다도 신학의 기초를 성경에 두고 성경연구에 몰두했다. 곧 성경은 “기독교 강요”의 순수한 자료이다.

② 칼빈은 교부들의 많은 저서들에도 주밀한 관심을 가졌다. 가령 “클레멘트의 주석”(Commentary on De Clementia), 어거스틴의 “신의도성”(쏟 챌쇼 of God)등이다.

③ 칼빈의 신학은 로마법의 영향을 받았고, 또 인문주의자들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더 많이는 루터(M. Luther)의 영향이다.

④ 멜랑히톤(Melanchthon)의 “신정통론”(Loci Communes)은 “기독교 강요”의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4) 목적

① 1536년에 출판한 “기독교 강요”의 서문은 프랑스왕에게 보내는 편지로, 프랑스 국민이 “기독고강요”를 신학교본으로 쓰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그 목적을 밝혔다.

② 그러나 1539년에 출판한 “기독교강요”의 서문은 그 목적을 수정하여 일반 대중보다 신학도들이 성경을 읽는데 적절한 교육적 서론을 주고자 하는 것이라고 했다.

③ 칼빈은 1541년의 프랑스어 번역판 서문에서 “나는 이 책이 너무 자랑이 될까 염려하면서 이 책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경을 참되게 이해하는데 열쇠와 입문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 5대 교리

 

스펄죤(Charles Haddon Spurgeon)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흔히 칼빈주의로 알려진 5대 교리를 믿는다. 그것을 십자가를 빛나게 해주는 5대 등불로 여긴다. 아니 그보다는 우리 삼위 하나님의 영광스런 언약에서 솟구쳐 올라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의 위대한 교리를 설명해 주는 다섯가지의 빛나는 발산물로 간주한다.”고 말이다. 그들의 5대 교리는 다음과 같다.

 

1) 전적 부패(Total Depravity)

 

(1) 칼빈주의 5대 교리 중 맨 처음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가 깊이 새겨 두어야 할 것은 이 체계가 구원 문제에 있어서 근본적인 것임에 틀림이 없는 어떤 것, 즉 구원 받을 자의 상태에 대한 정확한 평가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죄에 대해 불충분하고 관대한 견해를 갖게 되면 죄인 구원에 필요한 방법에 관해서도 불완전한 견해를 갖게되기 쉽다. 만일 에덴 동산에서 인간의 타락이 단지 부분적인 것에 그친다고 믿게 되면 우리는 구원을 일부는 사람에게 돌리고 일부는 하나님께로 돌리고 그것으로 만족할 가능성이 있다.

 

(2) 성경은 우리가「날 때부터 죄인」이라고 말한다.

① 출생으로 :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② 실상으로 :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느니라”(창 6:5).

 

(3) 이상이 인간의 자연적 상태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져 보아야 한다.「죽은」자가 스스로 살아날 수 있는가?「속박된」자가 스스로 놓여 날 수 있는가?「눈먼」자가 스스로 보거나「귀 먹은」자가 스스로 들을 수 있는가?「종이」이 스스로 속전을 낼 수 있는가?「가르침 받을 수 없는」자가 스스로 가르칠 수 있는가?「날 때부터 죄인」된 자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가? 도저히 그럴 수 없다.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하고 욥은 물은 다음 “하나도 없나이다!”라고 대답한다(욥 14:4).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라고 에레미야는 묻는다.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렘 13:23).

 

2)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1) 무조건적 선택은 1689년의 침례교 신앙고백서에 잘 설명되어 있는데 그것을 여기서 편리하게 요약하여 인용해 보겠다. 그것은 또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영국 국교회의 39개조 및 주요 고백서들에서 거의 동일한 용어로 진술되어 있다.

“생명에로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부터 그의 영원 불변하신 목적 몇 그 마음의 원과 기쁘신 뜻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도록 선택해 놓으셨도다. 이는 단지 하나님의 거져주시는 은총과 사랑에서 나온 것이지, 하나님으로 그렇게 하시게 할만한 어떤 조건이나 이유가 되는 다른 어떤 것이 피조물에게 있어서가 아니니라”(3장 5조). 이렇게 침례교 고백서는 말하고 있다.

 

(2) 무조건적 선택이라는 교리는 당연히 전적 부패 교리에 뒤따라 나오기 마련다. 정말로 인간이 죽어 있고, 속박되어 있고, 볼 수 없고, 한다면 이 모든 상태에 대한 치료책은 인간 자신 밖에(즉 하나님에게)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앞에서 ‘죽은 자가 스스로 살아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였는데 그 대답은 어쩔 수 없이 ‘불론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주권적으로 선택하신다는 것을 다 기술하려면 지면이 허락지 않지만 그 사실만큼은 명확하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였느니라’(막 15:16)‘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겠느냐?‘(롬 9:21)’ ‘나는 긍휼히 여길자를 긍휼히 여기리라’(롬 9:15).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사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하셨느니라’(엡 1:4-5)등등이다/

 

(3) 하나님의 절대 주권(The Absolute Sovereignty of God)은 칼빈주의 신학의 핵심이다(롬 11:36). 그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그것들을 섭리하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신다. 따라서

① 선택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만 있다(신 7:6-7, 마 20:15, 롬 11:33-36, 엡 1:5).

② 물론 사람 편에서의 조건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롬 1:16-17).

③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고,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4) 만일 아담의 타락이 전적 타락이기 때문에 인간이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면, 그리고 하나님만이 구원하실 수 있다면, 그래서 모든 인간은 구원 받지 못한다면 그때의 결론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선택하지 않으셨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는 맹목적인 철학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도출된, 성경에 입각한, 성경이 입증해 주는, 그리고 성경에 계시된 것이다.

 

3) 제한된 속죄(Limited Atonoment)

 

(1) 이 세 번째 교리는 5대 교리의 중심이 될 뿐만 아니라 복음의 중심적 사실, 곧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목적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다. 아르미니우스파 공격에 대해 프로테스탄트 개혁주의의 진리를 변호했던 신학자들은 교리를 체계화할 때 성경적이고 논리적인 노선을 따르고 있었는데 이제 바로 구원의 핵심에 당도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은 ‘누가 구원 받을 자인가?’라는 질문을 하였었다. 그 대답은 ‘인간’이었다. 그러나 인간에 관하여 성경이 가르치는 바는 인간은 자연 상태로서는 도저히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간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전적 부패 또는 전적 무능력이라는 전반에 걸치는 표제 밑에 두게 된 것이다.

 

(2) 왜 속죄가 필요하는가?

① 첫째 아담의 죄로 인하여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했다.(롬 5:12). 하나님께서 그 중의 자기 백성들까지 그대로 무관하실 것인가?

② 둘째 아담 그리스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오셔서 형벌받을 자기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그의 피를 값으로 지불하셨다(고후 5:21).

③ 인간의 빚은 금이나 은이 아니다. 그것은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기에 죽음으로 값을 치를 방도 밖에 없지 않는가?

 

(3) 그러면 이러한 의문이 생긴다. 즉 스리스도는 누구의 형벌을 대신지셨으며, 또 주구의 구원을 이루어 주셨는가? 하는 점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세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① 그리스도가 죽으신 것은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② 그리스도가 죽으신 것은 어느 특정한 사람을 구원하려는 것이 아니다.

③ 그리스도가 죽으신 것은 어떤 일정한 수의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첫번째 견해는 ‘보편주의자들’의 주장인데, 그리스도는「모든」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셨으므로「모든」인간은 구원 받을 것이라는, 그들로서는 아주 논리적인 억측인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가「모든」사람을 위해 죄의 대가를 지불하셨고 자기 생명을 내어 주셨다고 하면야「모든」인간은 구원 받을 것이다.

두 번째 견해는 ‘알미니안’의 주장인데,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해 잠재적 구원을 이루어 놓으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이 견해에서는 말한다. 그러나 그가 우리 죄의 대가를 지불하시긴 했어도 그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은 인간이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심하여’ 그로 인해 구원 받을 때까지는 효력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의 속죄관은 ‘칼빈주의’ 주장인데, 그리스도는 마땅히 지옥에 가야 할 자들이었는데 아버지께서는 이미 자기의 아낌없는 선택적 사람을 베풀어 놓으셨던 죄인들 중 어떤 일정한 수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적극적이고 유효하게 죽으셨다는 말이다. 성자 예수는 이들 택하신자들의 빚을 갚아 주시고, 아버지의 공의에 맞도록 그들을 속량해 주시고, 자신의 의를 그들에게 전가시킴으로써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해진 것이다.

그리스도는 특정한 수의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셨다. 즉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들(엡 1:4), 아버지께서 ‘세상 주에서 그에게 주셨던’ 자들(요 17:6),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고 그리스도께서 다기 피를 흘려 주었다고 친히 말씀하셨던 자들을 위해 죽으신 것이다.

 

4) 불가항적 은혜(Irresistable Grace)

 

(1) 칼빈주의 신앙 체제 중 이 네 번째 교리 역시 앞서 살핀 세가지 항목의 논리적 결과이다. 만일 인간이 타락한 본성 때문에 자신을 구원 할 수 없다면,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려 하셨고 그리스도가 그들의 구원을 이루어 주셨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위해 성취해 놓으신 그 구원의 은총에로 그들을 부르실 수단을 강구해 놓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칼빈주의 신학 체계는 논리적으로 완전하긴 하나 단순한 논리체계 그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확고히 선 순전히 성경적인 신앙 체계이다. 그런고로 불가항적 은혜라는 교리는 도르트 회의에서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작성한 사람들이 궁리해 낸 것이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속에 나타난 계시인 것이다. 예컨대 로마서 8장 30절을 들 수 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남녀 사람들을 구원받도록 택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기쁘게 선택한 그들을 부르셨던 것이다.

 

(2) 불가항적 은혜란 무슨 뜻인가? 교회에서, 옥외에서,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가 복음의 부르심을 받을 때 모든 사람이 다 그 부르심에 유의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깨물고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부르심에 두 가지가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즉 외적인 부르심이 있고 내적인 부르심이 있다는 말이다. 외적인 부르심은 ‘전도자의 말씀’으로 기술해 볼 수 있을 것인데 이 부르심은 여러 가지로 다른 심령에게서 여러 모양으로 역사하여 여러 가지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한가지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즉 그것인 죄인의 영혼 속에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위적인 부르심에 하나님의 성령의 내적인 부르심이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와 의와 심판을 깨닫게 하시는’이가 바로 그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남자나 여자나 젊은이를 그의 은혜로 부르실 때 그 부르심을 불가항적인 것이다. 그것은 꺾일 수가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의 표시인 것이다.

 

(3) 이것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속에서 거듭거듭 입증되고 있는 예를 다음의 구절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①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그에게 ‘온’자는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자를 <선택한 자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에게 올 때는 ‘내어 쫓김’을 당하지 아니할 것이다.

②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요 6:44). 여기서 우리 주님은 사람이 저들 스스로는 그리스도께 올 수 없다고 간단히 말씀하고 계신다.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셔야만 한다.

③ 아버지께 듣고 배운다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요 6:45). 인간은 외적인 부르심을 들을 수 있다. 그리스도께 응답하여 올 자는 ’아버지께 배운‘ 사람들이다. 시몬 베드로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바요나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④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⑤ ‘그러나 내 아어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 (갈 1:15).

⑥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⑦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 (벧전 5:10).

 

(4) 이 불가항력적 은혜 또는 효과적인 부르심의 교리를 설명해주는 뛰어난 예가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사건이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의 한 강변에서 모인 여자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이 때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다.’ 전도자 바울이 루디아의 귀에 전한 것은 외적인 부르심이었다. 그러나 주께서 루디아의 마음에 하신 말씀은 불가항력적 은혜의 내적인 부르심이었던 것이다.

 

5)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1) 이제 마지막 항목인 성도의 견인 고리를 살펴본다. 그러면 “성도의 견인”(聖徒(堅忍)이란 무엇인가?

① 선택의 교리는 성도의 견인 교리를 뒷받침해 준다(렘 31:3, 롬 8:39). 그것은 구원의 수단만이 아니고 궁극적인 구원을 위한 선택이기 때문이다(롬 11:29, 살후 3:3).

② 견인(Preseverance)이란 성도의 지속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다. 성도의 전인이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③ 성도가 한번 믿으면 멸망할 수도 없고 지옥에 떨어질 수도 없다는 의미에서 성도의 견인을 <궁극적 구원> (The Security of Believers)이라고도 부른다.

④ 성도의 견인 혹은 궁극적 구원의 고리는 초대 교회의 정통신학적 예정론의 중요한 부분이다(Angutine). Eh 칼빈주의 신학체계의 필수 부분 중의 하나이다(L. Boettner).

 

(2) 물론 내용은 같지만, 그렇다면 “궁극적 구원”이란 무엇인가?

① 선택함을 입은 자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는다(고전 1:30, 히 9:12).

② 또한 영원하고 불변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그를 끊을 자가 없다(요 17:11, 15, 롬 8:34, 벧전 2:24).

③ 물론 참 성도도 일시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수가 있다(마 26:70). 또 시험에 빠질 수가 있다(렘 32:30, 마 24:24).

④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고, 그 생명과 연합된 자가 다시 분리할 수가 있겠는가?(롬 8:1, 갈 2:20).

⑤ 성도의 심령 속에서 역사하시는 은혜스러운 성령의 역사는 지속하여 결국 완전에 이르게 하신다는 교회이다(요 10:28-29, 롬 11:29, 빌 1:16, 딤후 1:12).

 

(3) 만일 인간이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해야 한다. 만일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지 못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면 하나님게서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신 것은 아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죄를 속량하셨다면 그것은 구원받은 자들의 죄를 위한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 구원을 그가 구원하기로 선택하신 자들의 심령에 계시해 나타내시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효과적으로 그렇게 길이 없을 사람들을 구원하기로 작정을 하시고, 죽으시고, 구원을 얻도록 부르셨다고 하면 주께서는 또한 자기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구원받은 사람들을 견인하여 영원한 생명에로 인도할 것이다.

 

(4) 따라서 전적 부패, 무조건적 선택, 제한된 속죄, 효과적인 부르심 뒤에 성도의 견인이 오게 된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 축복된 진리에 관한 구절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9).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 5:10).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롬 8:1).

 

(5) 이제 설교가 중의 설교가 스펄죤의 한마디 말을 빌어 우리들에게 주는 권면으로 마감하고자 한다.

「칼빈이 전하였고, 어거스틴이 전하였고, 바울이 전하였던 그 오랜 진리는 오늘날 내가 전해야 할 진리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양심과 내 하나님 앞에 거짓이 될 것이다. 나는 진리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나는 한 교리의 울퉁불퉁한 가장자리를 깎아내는 것과 같은 그런 일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죤 녹스(jOHN KNOX)의 복음은 나의 복음이다. 스코트란드를 진동시켰던 것이 다시금 영국을 진동시켜야 한다」아멘,

 

 

 

 

 

 

 

 

 

 

 

출처 : 개혁하는 교회
글쓴이 : 청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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