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ensational Truth
IV
The Second Coming of Christ
4. 그리스도의 재림
역사상 그리스도의 초림보다 더 분명하게 입증된 사실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오심"과 관련된 모든 예언들이 그 분의 "초림"에서 성취되지 않았으므로, 모든 예언들이 완전히 성취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다른 "오심"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그리스도를 거절한 이유는 그 분의 "초림"에 관한 예언들과 "재림"에 관한 예언들을 구별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1:10-11에서 선지자들 자신들도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 사이의 차이점을 분명히 인식하지 못했다고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즉, 그들은 "십자가"와 "면류관" 사이에 "시간적 공백"이 있었다는 것과 "십자가"가 "면류관"보다 앞서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와 같은 변명을 할 수 없다. 우리는 십자가 이후의 시대에 살고 있고,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성취되어진 모든 예언들을 쉽게 찾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머지 예언들을 그의 "재림"에 적용할 수 있다. 즉, 그리스도의 "초림"이 중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초림이 모든 성경교리를 포괄하는 하나의 원의 중심이 아니므로 전 성경의 교리적 중심은 될 수 없다. 오히려 "재림"이라는 또 하나의 촛점을 가지고 있는 큰 타원형 속에 있는 두 개의 촛점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도표 I 참조)
이 도표는 "두 번 오신다"는 것과 그리스도를 선지자로서, 제사장으로서, 그리고 왕으로서 전체 사역을 보여 준다. 이는 하나의 큰 타원 안에 포함되어 있는데, 그 타원의 두 촛점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이다. "십자가"는 그 분의 초림을 나타내며, "왕관"은 재림을 나타낸다. "인간의 타락"과 "초림" 사이에는 "제단"이 있는데, 그 제단은 "인간의 타락"을 뒤돌아 보게 하며, "십자가"를 바라보게 한다. "두 개의 오심" 사이에는 "식탁"이 놓여 있는데, 이는 뒤로는 "십자가"를, 앞으로는 "재림"을 바라 보게 한다. 그리고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 사이에는 "보좌"가 놓여 있는데, 이는 뒤로는 "재림"을, 앞으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 보게 한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들 속에서 분명히 "두번의 오심" 사이의 "교리적 의미"들을 구별하고 있다. 히브리서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나타나셨느니라"(히9:26), "지금 나타나 계시기 때문이라"(히9:24), "나타나시리라"(히9:28)로 구분하고 있다. 디도서 2:11-12에서도 바울은 이들 "나타나심"의 교리적인 중요성을 보여 주는데, "선지자"로서 그 분은 우리의 "의롭게 됨"을 위해 죽으셨고, "제사장"으로서 우리의 "변호인"일 뿐만 아니라 "거룩하게 하시는 분"으로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며, 그리고 "왕"으로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은 현 세대(교회시대)에 의해 나누어져 있지만, 그것들은 독립적으로는 완전할 수 없다. 재림은 초림을 필요로 하고 초림은 재림을 요구한다. 이것들 모두가 구원의 계획을 완성시키는데 있어서는 필수적이다. 초림은 우리의 "혼"의 구원을 위한 것이며, 재림은 우리의 "몸"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전까지는 몸의 부활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THE SECOND COMING
재림의 증거
1. 예수님 자신의 증거
마태복음16:27, {이제 인자가 자기 아버지의 영광으로 자기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그가 각자에게 그들의 행한 대로 상 주실 것이라}.
마태복음25:31-32, {인자가 그의 영광 중에 오고, 또 모든 거룩한 천사들이 그와 함께 오면 그 때에 그가 그의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그 앞에 모든 민족들을 모아 놓고 마치 목자가 양들을 염소들에서 갈라 놓듯이 그들을 따로 갈라 놓으리라}.
요한복음14:2-3, {내 아버지 집에는 많은 저택들이 있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리라. 나는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러 가노라.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내가 있는 그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복음21:2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라오라."고 하시니라}.
2. 천상의 존재들의 증거
사도행전1:10-11, {주께서 올라가실 때에 그들이 하늘을 주시하고 있는데, 보라,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말하기를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너희는 하늘을 쳐다보고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올라 가신 이 예수는 너희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더라.}
이 구절은 "예수님 그 분"이 승천하실 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다시 오실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즉, 그 분의 다시 오심은 [눈에 보이고, 실제적]인 오심이다. 곁에 서 있던 "두 사람"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그들은 변형산상에 예수님과 함께 나타났으며, 또한 틀림없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던 무덤에서 여인들에게 증거한 그 "두 사람"일 것이다(눅24:4-5). 후에 그들은 대환란 기간 중 증거하게 될 "두 증인"이 될 것이다(계11:3-12).
3. 사도들의 증거
바울 -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므로 우리가 그 곳으로부터 오실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가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키는 그 능력의 역사로 인하여 우리의 천한 몸을 그 분의 영광스러운 몸같이 변모시키리라.}(빌3:20-21).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며 우리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2:13).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려지셨고, 두 번째는 자기를 바라는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죄 없이 나타나시리라.}(히9:28).
야고보 -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오실 때까지 인내하라. 보라, 농부들이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오래 참으며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약5:7).
베드로 - {이는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오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은 교묘하게 꾸며낸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라 그의 위엄의 목격자들이었기 때문이라.}(벧후1:16).
베드로가 여기서 언급한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모형이었던 변형산에서의 그리스도의 변형에 대한 것이다(마17:1-5). 모세는 "부활한 성도"의 모형이며, 엘리야는 죽지 않고 변모되어질 성도들의 모형이다.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은 그 분이 오실때 그분을 보게 될 유대인의 남은 자의 모형이다. 그리고 산기슭에 남아 있던 제자들은 마귀를 소년에게서 쫓아낼 수 없었는데 휴거 때에 뒤에 남게 될 자칭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의 모형이다.
유다 - {아담의 칠 대 손 에녹도 이들에 대하여 예언하여 말하기를 "보라, 주께서 무수한 성도들과 함께 오시나니 이는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고 그들 가운데 있는 경건치 않은 모든 자가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아니한 행위와 경건치 아니한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말한 모든 거친 말에 대하여 정죄하시려는 것이라."고 하였느니라.}(유14-15).
요한 - {어린 자녀들아, 이제 그 분 안에 거하라. 이는 그가 나타나실 때 우리가 담대함을 가지며, 그가 오실 때 그의 앞에서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2:28).
{보라, 그가 구름들과 함께 오시리니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이며,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또한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인하여 애곡하리라. 그대로 되리로다. 아멘.}(계1:7).
4. 주님의 만찬의 증거
{너희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 분이 오실 때까지 선포하라.}(고전11:26).
주님의 만찬식은 영원한 의식은 아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오신 후에는 끝날 것이다. 이것은 기념하는 의식이다. 이것은 "십자가"를 뒤돌아 보고, 앞으로는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다. 약혼반지는 약혼이 영속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상호 간의 사랑과 충성의 서약이다. 그후 결혼반지에 자리를 내어 주게 된다. 그러므로 만찬은 교회의 약혼자가 없는 동안에 교회에게 남겨놓은 약혼서약으로 간주 될 수 있다.
바울은 그의 모든 서신들 속에서 침례에 대해 단지 13번 언급하였지만, 반면에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는 50번이나 언급하고 있다. [신약에서는 매 30구절 중 한 구절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구약에서는 초림에 대해서보다 재림에 대해 20배나 많이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THE FIVE THEORIES
재림의 다섯가지 주장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의 대다수가 그리스도의 재림의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들은 그 "방법"과 "시기"에 대해서는 일치하지 않는다. 재림에 대해서는 5가지 이론이 있다.
1. 주님의 재림은 "영적"이며, 오순절에 성취되어졌다는 주장
오순절에 오셨던 분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성령이셨다. 그리고 성령의 오심은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을 동안이라는 조건이었다. 이는 예수님께서 "그러나 내가 진실을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유익하니라. 만일 내가 가지 아니하면 위로자가 너희에게 오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내가 떠나가면 내가 그 분을 너희에게 보낼 것이라."(요16:7). 성령이 단지 그리스도의 또 다른 나타나심이라면, 예수님과 동일시 되는데 그것은 '삼위'를 무시하는 것이다. 사실, 신약 전체는 오순절 이후에 기록되어졌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은 여전히 미래에 속한다고 150번 이상이나 언급하고 있다. 더군다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수반될 것이라고 예언되어진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의 부활", "살아 있는 성도의 변화", 그리고 "사탄의 묶임" 등과 같은 것들은 오순절에 일어나지 않았다.
2. "죄인의 회개"가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주장
이 주장은 죄인들이 그리스도께 나오는 것이지,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에게 오시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죄인의 회개는 성령의 사역이지 그리스도의 사역이 아니므로 이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믿는 자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내주하심은 사실이나 그 분의 재림은 초림과 마찬가지로 외관적이고 눈에 보이도록 실제적인 몸을 가지고 오신다.
3. [죽음]이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주장
장례식 설교에서 자주 사용되는 본문은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너희는 인자가 오실 그 날짜와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라"(마25:13)는 구절이다. 그 문맥은 이 구절이 그리스도께서 미래에 오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이 죽을 때마다 지상에 오실 수 없다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1) 사람의 혼은 죽는 매 순간마다 영원으로 들어가므로, 이 주장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필수적으로 지상에 계속해서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2) 지금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대제사장의 임무를 수행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죽는 사람들을 위해서 대제사장의 임무를 버리시고 지상에 오실 수는 없다. 사실 성도가 죽으면 그리스도께로 가지,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오시지는 않는다. 죽음은 항상 떠남으로써 표현된다. "정녕 몸에서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것이라."(고후5:6-8).
"죽음"이 예수님의 재림을 뜻한다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가면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고 내가 "죽음"을 보내어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의 마지막장에서 이 문제를 풀수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질문하기를 "주여, 이 사람(요한)은 어떻게 되겠나이까?"라는 질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라오라."(요21:21-23) 우리는 여기서 제자들이 "주님의 오심"이 죽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죽음"과 "주님이 오심"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죽음은 원수이며(고전15:26,55), 우리를 무덤에 묶어둘 수 없으며, 역사하는 곳은 우리의 몸이며, "죄의 삯"(롬6:23)이며,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이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분의 사랑의 표현이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주관자"이시다. 그분이 계시는 곳에는 사망이 있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사망이 아니라 부활이다. 예수님은 "부활"이시며, "생명"이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시면 우리의 천한 몸을 그 분의 "영광스러운 몸" 같이 변모시킬 것이다(빌3:20-21).
4. A.D 70년에 로마인들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이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주장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에 계시지 않았다. 그것은 로마 군인들에 의해서 파괴되었으며, 그리고 그 분의 "재림" 때에 일어날 일들, 예를 들면 죽은 자의 부활, 살아있는 성도의 변모,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땅에서 일어나게 될 물리적인 변화와 같은 어떤 것도 그 당시에 일어나지 않았다(슥;14:4-11; 겔47:1-12). 예수님의 재림의 목적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곳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다. 그 곳은 [이방인의 때]가 찰 때까지 이방인에 의해 짓밟힐 것이며 "그때 사람들은 인자가 권세와 큰 영광으로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눅21:24-28)고 하셨다. 계시록은 예루살렘 멸망 후, 26년 뒤에 기록되었는데, 그리스도의 재림을 여전히 미래로 말하고 있다.
5. "기독교 신앙의 확산"이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주장
"기독교 신앙의 확산"은 점진적이지만, 반면에 성경은 "주님의 재림"을 "밤에 도적같이" 갑작스럽고 예기치 않게 일어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이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마24:27,36,42,44; 살전5:2; 계3:3). 단지 기독교 신앙의 확산은 하나의 과정이고 반면에 성경은 주님의 재림을 하나의 사건으로서 말한다. 또한 기독교 신앙의 확산은 악한 자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지만 주님의 재림은 구원이 아니라 [갑작스런 멸망]을 안겨다 줄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살전5:2-3; 살후1:7-10).
III. AS TO THE MANNER
3. 재림의 방법
부활은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분이 승천하실 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재림하실 것이다(행1:11). 그 분은 몸을 지니시고, 눈에 보이도록 올라 가셨는데, 마찬가지로 그 분은 같은 방법으로 오실 것이다. 그 분은 구름속으로 올라 가셨고 구름 속에서 돌아오실 것이다. "보라, 그가 구름들과 함께 오시리니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이며,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또한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인하여 애곡하리라. 그대로 되리로다. 아멘."(계1:7). 유일한 차이점은 예수님께서는 홀로 올라가셨으나, 왕으로서 재림하실 때에는(눅19:12) 수행된 천사의 무리가 뒤따를 것이다. "이제 인자가 자기 아버지의 영광으로 자기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그가 각자에게 그들의 행한 대로 상 주실 것이라."(마16:27).
두 단계(Two Stages)
그렇지만 그 분의 다시 오심은 "두 단계"로 될 것이다. 그 분은 먼저 우리의 대기권의 영역안으로 오실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과 "살아있는 성도들"은 "공중에서" 그분을 만나기 위하여 "끌려 올라갈" 것이다. 부활한 자들과 변형된 성도들이 그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과 상을 받고 나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로서 그 분과 혼인한 후에 그 분은 그들과 함께 지상에 재림하셔서 그 분이 승천하셨던 곳인 올리브산에 서실 것이다. "그 분의 발이 그 날에 동편 예루살렘 앞 동편에 있는 올리브산 위에 서시리니, 올리브 산은 그 중간이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생길 것이며, 산의 절반은 북쪽으로, 산의 절반은 남쪽으로 옮겨지리라"(슥;14:4)
주님의 재림의 첫 단계는 "휴거(The Rapture)", 두번째 단계는 "재림(The Revelation)"이라고 불리워진다. 그 두 단계 사이의 시간은 "7년" 이상이다. 그 기간 동안 하늘에서는 "성도들의 행위에 대한 심판", 지상에서는 "대환란"으로 채워질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도표 No 3를 참조하라.
첫 번째 단계 - 휴거(THE RAPTURE)
휴거는 데살로니가전서 4:15-17에 묘사되어 있다. 이 구절들을 통해 볼 때 휴거는 두개의 요소로 되어 있다.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잠들어 있는 자들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미카엘)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서 살아 남아 있는(성도들만)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올라 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
여기서 보는 것과 같이 "휴거"에는 두가지 면이 있다.
1.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
2. "살아있는 성도들"의 변형
휴거에 관한 이 두 요소의 성격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마르다의 오빠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때 그녀에게 알려 주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첫번째 성도들의 부활)이며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이것을 믿느냐?"(요11:25-26). 휴거에 관한 두 요소의 성격은 바울이 그의 위대한 부활에 관한 장에서 강조하고 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모두 변화될 것이니 마지막 나팔에 눈깜짝하는 순간에 그러하리라.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며, 우리도 변화되리라. 그리하여 이 썩을 몸(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반드시 죽지 아니할 몸(살아있는 성도들)을 입게 되면 "사망이 승리 속에 삼킨 바 되었느니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음부야!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고전15:51-57)
위에 언급된 구절들은 단지 죽음을 보지 않고 변화되어질 성도들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 고린도후서 5:1-4에서도 바울은 그의 소망과 성도들의 소망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곳에는 사망에 의하여 벗어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보지않고 불멸에 의하여 옷입혀지고자 하는 자들 가운데 있게 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몸)이 무너지면(dissolved)(죽음) 하나님께서 지으신 큰 집, 즉 손으로 짓지 아니한 하늘들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다는 것이라. 정녕 우리가 여기에서(몸) 신음하며 하늘에서 오는 우리의 집으로 옷입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나 만일 우리가 옷입고 있다면 벗은 채로 발견되지 아니하리라. 이 장막 집(몸)에 있는 우리가 짐을 지고 신음하는 것은 '벗으려는 것(죽으려는 것)'이 아니라 옷입혀 지고자 함이니, 이는 '죽을 것'이 '생명'에 의해서 삼켜지는 것이라.}
또한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그의 서신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소망 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들의(첫 번째 성도들이의) 부활에 이르려는 것이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고귀한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그 표적을 향해 좇아갈 뿐이라}(빌3:11-14)
즉 바울은 첫번째 부활 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변화된 성도들과 함께 휴거되는 것을 위대한 일로 여겼지만,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죽음을 보지 않고 휴거될 수 있다면 그것을 상으로서 받고 싶어하였다.
휴거는 "갑자기" 일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떤 시간에 너희 주께서 오실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그러나 이것을 알라. 만일 그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간에 올 것인지 알았더라면 그가 깨어 있어 자기 집을 뚫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가 생각하지 않은 시간에 인자가 올 것이기 때문이라}(마24:42-44). {보라, 내가 도둑같이 오리니 깨어 있어 자기 옷을 지켜서 벗은 채로 다니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 자기 수치를 보이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계16:15) {그러나 형제들아, 그 때와 시기에 관해서는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으니 이는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오리라는 것을 너희 자신이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니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말할 때에 아이 밴 여인에게 진통이 오듯 갑작스런 멸망이 그들에게 임하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5:1-2) 이 언급들은 그리스도가 오시는 "두번째 상황", 즉 "재림"을 언급하는데 이때 그의 원수들에게 복수하실 것이다(살후1:7-10). 그리나 바울은 말하기를 {그러나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니 그 날이 너희를 도둑같이 덮치지 못하리라.}(살전5:1-4)고 덧붙여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우리가 그 분을 전혀 예기치 않고 있을 때 그 분은 다시 오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분은 도둑같이 오실 것이다. 도둑은 그가 오는 것을 알리지 않는다. 도둑은 어떤 목적 때문에 온다. 그는 집에 있는 모든 것을 가져가지 않고, 그가 필요한 귀중한 것들(금, 은, 보석, 좋은 옷 등)만 가지고 간다. 그는 머무르려고 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목적한 바만 이루면 떠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휴거 때에 오셔서 그 분의 성도들만 데리고 가신다. 주께서도 휴거 때에 사악한 자들과 수많은 무리의 이교도(이단)들을 남겨두고 떠나실 것이다.
휴거는 "선별적"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휴거는 성도들과 믿지 않는 자들을 분리하는 것은 물론이요, 남편과 아내, 육신의 형제들과 자매들, 친구와 친구를 분리시킬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거니와, 그 밤에는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 두 여인이 함께 맷돌을 갈고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 또 두 사람이 들에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고 하시니라}(눅17:34-36) 이 구절들 가운데 "두 사람"은 "두 남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침대에 있던 두 사람", 즉 남편과 아내 혹은 형제들이나 자매들, 혹은 친구들이 있을 것이라고 읽어야 한다. 잠자리에 있는 두 사람은 "아침이나 저녁", 그리고 밭에 있는 두 사람은 "한낮"임을 가르킨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순식간에" 혹은 "눈깜짝하는 순간에"(고전15:52) 이 땅 위의 모든 곳에서 동시에 일어날 것이라고 묘사한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번개가 동편에서 치면 서편에서까지 비치는 것같이 인자의 오심도 그러하리라}(마24:27)고 그 방법을 말씀하셨다.
"휴거"는 이 시대와 세대에 있어서 가장 놀라운 "사건"이 될 것이다. "주님의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 그리고 "하나님의 나팔소리"에 대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과 "살아 있는 성도들"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듣거나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던 날 그리스도께서는 알아들으셨으나 곁에 있던 사람들은 "천둥"소리로 잘못 알았다(요12:28-29). 주께서 다메섹으로 가던 다소 사람 사울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말씀하셨을 때 그와 동행하던 사람들은 말도 못하고 음성은 들었으나 아무도 보지 못하였고, 말한 것을 전혀 알아 듣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행9:3-7). 그렇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그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깊은 무덤도 바위로 덮힌 지하묘지도, 피라밋이나 아주 두터운 묘지도 강렬하게 뚫고 들어가 "잠자는 너희 성도들아, 깨어나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아침이 되었으니 첫번째 부활의 아침이로다."라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에게 외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영광스러운 날의 아침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혼들이 이 땅으로 돌아와 그들의 육신을 입고 부활하여 영광을 얻은 후 공중에 가득할 것이다. 묘지들과 시골 교회 마당이 쟁기로 파례치진 것처럼 보일 것인지, 그 묘비와 묘석이 뒤집히고, 마지막 안식처였던 지하 묘소가 산산히 부서져 버림으로 죽은자들의 부활을 증거하게 될는지, 죽은 성도들이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덤을 봉한 돌을 깨뜨리지 않으신 채로 부활하신 것처럼 무덤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고 빠져 올라갈런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무덤이 비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천사가 돌을 옮겨 놓았다는 것과 부활한 상태는 휴거가 발생하면 그 때 잘 알 수 있다는 것 뿐이다.
만일 죽은 자들이 묘지를 부수지 흐트리지 않고 빠져 나온다면, 첫번째"살아 있는 성도들"에게는 비밀이 될 수 없다. 휴거가 있을 때 우리가 사는 곳이 지구의 밤이라면 아침이 되고나서야 그 지역 사람들은 밤 사이에 참 그리스도인들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침이 되고 난 후 비로서, 밤 사이에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한밤중의 외침"...
"보라 신랑이 왔다."
라는 음성을 들을 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단지 천둥소리로 생각하고 잠을 더 자기 위해 몸을 뒤척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침실에서 같이 잠자던 사랑하는 사람의 옷가지는 그대로 있지만 그리스도인인 사랑하는 사람은 사라지고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형제 자매들이 행방불명되고 귀여운 어린이들도 있지 않을 것이며, 유아는 단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 피고용인이나 고용주들이 출근하지 않게 될 것이며, 세상은 성경이 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또한 주님께서 그의 성도들을 데리러 천년왕국 이전에 오신다는 전천년 교리를 멸시했던 많은 자들은 전천년설 성경해석이 허황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만일 낮이라면, 그 "사건"은 놀라운 것이 될 것이다. 노아의 때와 같이(마24:36-39)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시집가고 장가가며, 사고 팔며, 씨를 뿌리고 집을 짓고 있을 것이다.
이때가 연중 행락철에 일어나면, 배나 차들 그리고 공원같은 곳에는 즐겁게 보내려는 사람들로 붐빌 것이다. 그때가 주중의 바쁜 시간이라면 상점들은 물건 사는 사람들로, 공장에는 일하는 사람들로, 도시의 거리에는 괘락을 좇는 사람들과 각자의 일에 몰두하고 있는 남녀노소로 붐빌 것이다. 실내에 있던 사람들은 출입문과 창문으로 하늘을 쳐다 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놀랍고 무서운 소리로만 들릴 것이나 많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주님의 음성"으로 들릴 것이다.
엄청난 놀라움과 겁에 질린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행방불명되었고, 바로 없어진 그들이 그 지역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큰 백화점과 은행, 그리고 공장과 기타 상업 지역에서 일하던 성실한 근무자들이 갑자기 없어져 일해야 할 부서에 사람이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거리를 걷고 있던 사람들은 함께 걷던 동료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거리에 버스들은 운전수가 없어져 교통이 막힐 것이다. 철도와 배도 마비 될 것이며 어디나 혼란이 생길 것이다. 많은 가정에서는 가족들이 사라져 버리고 가족들이 집에 돌아와 보면 사랑하는 이들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신비"가 될 것이다. 그 후에 "성도의 휴거"에 관하여 책을 읽었거나 들었던 몇몇 사람들은 일어난 것을 깨닫고 그 상황을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그 날에 일어날 놀라운 일들 중 하나는 많은 사역자들과 그리스도인 일꾼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많은 자들은 남아있게 되고 반면에 그리스도인이라고 알려져 있지 않았던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행방불명 될 것이다. 세상의 소금인 성도들이 "휴거"되어 가버렸으므로 급속한 타락과 "도덕적 부패"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죄와 불법과 온갖 종류의 범죄와 비속함이 증가되어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위한 길이 예비될 것이고, 그의 통치 아래서 세상은 심판을 향해 급속도록 부패해질 것이다.
누가 휴거될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대환란 전에 휴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깨어 기다리는 성도들만이 대환란 전에 휴거되고 나머지는 환란을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후자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주장을 히브리서 9:28에 근거하고 있다. "두번째는 자기를 바라는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죄없이 나타나시리라."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살아 있는 자들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 주님께서 천년왕국 이전에 오실 것에 대해 결코 들어보지 못했거나, 혹은 적어도 그 의미조차도 알지 못하고 주 안에서 잠든 자들도 수천만 명이 넘는다. 그러므로 이들은 주님의 재림을 깨어 기다린 적이 전혀 없었던 자들이 대부분이다. '주 안에서' 잠들어 있는 그들은 확실이 '주 안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로서 휴거 때에 부활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6-17에서 휴거될 사람들은 '깨어 기다리고 고대하던' 죽은 자들이라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과 살아남아 있는 우리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사실은 교회의 연합이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한 몸에 지체는 많아도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시니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한 성령에 의하여 우리 모두가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또 모두가 한 성령 안으로 마시게 되었느니라}(고전12:12-13).
그러므로 "거듭난 성도들"은(요3:3-7)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이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나누어 진다고 생각할 수 없다. 즉, 몸의 일부는 무덤 속에서 여전히 잠자고 있고 일부는 영광 가운데서 부활하며, 일부는 대환란을 통과하기 위하여 남아 있고, 또 일부는 공중에서 그분을 만나기 위하여 "변화되어" 휴거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만일 모든 교회가 환란을 통과해야 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바라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환란을 기다리며 고대하는 결과가 되므로 주님 자신의 가르침에 상반된다(마24:42-44).
대환란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교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대환란은 "야곱의 환란"의 때(렘30:7),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때로서 교회를 환란으로부터 지키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렘30:7).
계시록 4장 후에는 교회가 더 이상 지상에 보이지 않으며 19장에서야 비로서 "하늘로부터" 신랑과 함께 재림함으로써 나타난다. 4장과 19장 사이의 모든 기간은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무서운 심판들로 가득차 있으나 교회는 지상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하늘의 처소(엡2:6)에 함께 있을 것이므로 교회는 대환란 동안에 지상에 있는 자들 가운데 있지 않는다. 이러한 혼돈은 예언의 진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그의 성도들을 "위하여" 오심과 성도들과 "함께" 오심을 구별하지 못하는데 대부분 기인한다. 전자는 "휴거"이며 후자는 "재림"이다.
성경에서 수 많은 구절들이 그리스도께서 그 분의 성도들과 "함께" 오심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슥;14:4; 골3:4; 살전3:13, 4:14; 유14). 그러므로 성도들이 먼저 그리스도에게로 휴거되지 못한다면 분명히 그 분과 함께 다시 올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구절들은 모두 같은 것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는 "재림"에 대해 후자는 "휴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다.
성경의 모형적인 가르침은 교회가 환란 전에 휴거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요셉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그는 형들에게 버림을 받은 후 이방인인 "그의 신부" 아스낫과 결혼하였다. 그 때는 기근이 있기 전으로서 기근은 형제들이 심판 받을 때를 가르키므로 대환란 기간을 의미한다. 즉 그 기간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형제들인 유대인에 의해 배척을 받으신 때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모세도 그의 형제들에게 배척을 받은 후 이방인 신부를 맞아들였다. 이때는 파라오왕에게 환란을 겪기 전이었다(출2:23-25).
"휴거될 성도"들의 모형인 에녹은 대홍수 이전에 휴거되었다. 대홍수는 환란을 뜻하며 노아와 그의 가족은 환란을 통하여 살아남게 계시록7:4절의 인을 받은 144,000명이 될 유대인을 상징한다.
우리들의 중의 일부가 무서운 죽음의 손길에 의해 육신의 장막을 벗지 않은 상태로 눈깜짝할 순간에 변화되어, 영원히 살 수 있는 영광스러운 몸을 덧입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리가 고동치는 영원한 생명의 감격을 갑자기 맛보고, 살아있는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예수 안에서 잠든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중으로 휴거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얼마나 황홀한 기쁨이 넘치겠는가? 우리가 그들과 함께 하늘에 있는 신부의 처소로 올라가면 얼마나 성대한 영접을 받겠는가! 그곳에서 우리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축하하는 새 노래를 같이 부를 것이다(계5:9-10).
2). 두번째 단계 - 재림
그리스도의 두번째 오심의 단계, 즉 재림 때에 우리는 그 분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처음 오셨을 때에 그 분은 육신 안에 자신을 감추셨다. "성육신"은 그 분의 능력을 숨기고, 그 분의 신성을 가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분의 영광의 광채들은 변화산에서처럼 때때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분이 재림하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있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광으로 옷 입으신 그 분을 보게 될 것이다. "재림"은 휴거처럼 갑작스럽고 예기치 못하게 일어날 것이다. 그날에 태양이 강렬하고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다. 사람들은 사고 팔며, 집을 짓고, 먹고 마시며, 시집가고 장가갈 것이다. 정치가들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새로운 계획을 곰곰히 구상하고 있을 것이고, 박애주의자들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강구하고 있을 것이며, 또한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은 새로운 쾌락의 원천을 찾고 있을 것이고, 사악한 자들은 어둠의 행동을 계획할 것이다. 무신론자들은 하나님도, 천국도, 지옥도, 다가올 심판도 없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만족감을 충족시키고 있을 것이다. 그때 갑자기 한 변화가 생길 것이다. 먼 하늘에 태양을 능가하는 "한 점의 빛"이 나타나 지상을 향해 내려오는 것이 보일 것이다. 그 빛이 내려올 때 맑은 구름의 형체로 느껴지고 그 맑은 구름으로부터 눈부실 정도의 광선과 번개가 흘러 나올 것이다. 그 빛은 마치 돌풍의 날개를 가지고 내려오는 것같을 것이고, 그 목적지인 올리브산에 도착하게 될 때에 그것은 두려움에 떨며 오금을 펴지 못하고 있는 목격자들에게 멈추어 서서 본래의 모습을 펼쳐 보일 것이며, "흰 말" 위에 앉아 계신 예수님(계19:11-16)께서는 그분의 성도들과 하늘의 군대와 함께 나타나실 것이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올리브산 설교에서 예언하셨던 것을 성취시키실 것이다. 그후에 하늘에 계신 인자의 표적이 나타날 것이며, 세상 모든 족속들이 통곡할 것이다. {그 후에 하늘에 있는 인자의 표적이 나타나리니 땅의 모든 지파들이 통곡할 것이며 또 그들은 인자가 권세와 큰 영광으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마24:30).
재림의 임박성
후천년주의자들(Post-millennialist)은 주장하기를 "신약의 기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그 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으므로 그것은 그 저자들이 오인한 것이었고, 바울도 그의 후기의 서신들 속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의 임박성에 대한 진술을 수정하였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떤 시간에 너희 주께서 오실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 .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가 생각하지 않은 시간에 인자가 올 것이기 때문이라}(마24:42-44)고 말씀하셨지만 이 구절들 속에서 그 분은 자기에 대하여 기록한 기자들이 살아 있을 동안에 다시 돌아오실 것이라고 가르치시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달란트 비유와 같은 많은 비유들 속에서 그 분의 재림이 지체될 것임을 암시하셨다. 달란트 비유에서 말씀하시기를 "오랜 시간이 지나(long time) 그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계산을 하였는데"(마25:19)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가르치시고자 하셨던 것은 급작스러움과 예기치 못함으로 대변되는 재림의 특성이었다. 사도들도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밤이 거의 지났고, 낮이 가까움이라", "주님의 오심이 가까이 이르렀다."고 하면서 "준비하고 있으라"고 권면했지만, 그 말은 단순히 "급작스럽게 오실 것"을 의미할 뿐이지 반드시 "즉각적으로 오실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고린도전서 15:51에서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해서 주께서 바울 시대에 다시 오실 것이며, '몇몇 사람은 죽지 않고 변화될 것이다.'라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사도는 "우리"라는 말을 휴거에 관하여 말하는 것으로 바울 시대이든 혹은 나중에든 그 사건이 일어날 때 살아있게 될 성도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재림 이전에 어떤 사건들이 일어나야 하지만 그 사실을 밝혔다면 "깨어 있으라"는 명령은 무용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분은 마태복음 13장의 7가지 비유들에서처럼 그 분의 재림을 "신비적 형태"로 감추어 두셨다. 씨를 뿌리고, 밀과 독보리가 자라고, 겨자나무가 자라고, 누룩이 반죽을 부풀게 하는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1세기에는 복음전파가 아주 빨랐기 때문에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주님이 빠른 시일내 재림하기를 기다리면서 그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매 세기마다 우리는 "수확물"의 한도가 얼마나 되며 그것이 다 무르익어 주님이 추수하러 오시기까지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마13:30). 사실 주님의 재림의 시기가 불확실한 것은 우리로 방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초대 교회가 주님의 재림이 20세기 동안 지체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진지하게 살고자 하는 동기가 결핍되었을 것이다.
"임박하다"는 말은 "어느 때에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기차를 타기 위해서 철도역으로 서둘러 갔으나 시간이 지났음에도 기차가 도착하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 때 그 시간은 지났지만 기차가 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기차가 언제라도 올 것이므로 그 때 당신이 역을 떠나 버린다면 현명치 못한 일일 것이다. 만일 당신이 탈 기차가 30분 동안 지체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당신은 아마 기다리거나 지켜볼 필요도 없이 다른 방법으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갑자기 오신다"는 것은 반드시 "즉각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교회의 역사상 어떤 때도 현재처럼 주님의 재림에 필요한 조건들이 완전히 성취되어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임박한 주님의 재림이 아마 오래도록 지체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 준비하고 깨어 있도록 하자!
저자가 확신하는 것은 교회가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신성한 임무를 순종하지 못함으로써 주님이 재림할 때가 이미 지나갔어야 할 정도로 불필요하게 지체되어 있다는 것이다(마28:19-20).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미리아심으로 이방인의 충만함, 즉 곡식이 다 익어 추수할 때까지 악의 세력이 번성하지 못하게 끔 저지해 놓으셨다(계14:14-20).
그리스도의 교회가 역사상 어느 때도 지금처럼 주님의 재림에 필요한 조건들이 거의 완전히 성취되어 있던 적은 없었다. 그러므로 가까운 주님의 재림이 아마 더 이상 지체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 준비하고 깨어있자.
위에서 언급한대로 필자는 주님의 재림이 연착되고 있다(Past due)고 생각하며 또한 미래에 주님이 재림하실 시간을 미리 정하고 싶지 않다. 재림의 시간을 정할 수는 없지만,
주님의 재림의 임박함
을 조명해 볼 수 있는 한 가지 이론을 소개해 본다. 그것은
"인류 역사의 위대한 주간"
으로 불리우는 것으로서, "창조 주간"의 "7일"과 베드로후서 3:8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구약에서는 '천년왕국'이 쉬면서 안식일을 지키는 기간으로 묘사되어 있고, 신약에서는 천년왕국이 창조의 한 주간 중 7일째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히4:4-11). 이제 우리는 천년왕국이 천년 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계20:1-9). 그것이 창조의 한 주간 중 일곱 번째 날과 일치한다면 나머지 6일도 똑같은 기간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그 날들이 과거의 인류 역사와 일치한다면 창조의 한 주간으로부터 천년왕국의 시작까지 인류역사는 6천년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확신 속에서 족보와 구약의 역사를 주의깊게 연구해 본다면 아담에서 그리스도까지 약 4천년 혹은 하루가 천년씩 4일 간으로 창조 주간의 첫 4일에 해당한다는 것과 그리스도로부터 현재까지는 1900년 이상이 지났으므로 하루를 1000년씩 약 1일로 생각하면 인류 역사는 각각 1000년씩 6일이 지났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천년왕국 전에 재림할 예정이고 모든 징조가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창조 이후 7일 간은 곧 인류의 역사 기간이 7천년이라는 이론이 성경적으로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추론이 옳다면 주님의 재림은 지금 현재의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현세기가 끝나기 얼마전에 일어나겠느냐 하는 것은 알 수 없다. 천년왕국이 A.D 2000년에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휴거는 천년왕국에서 최소한 7년 전에 일어나야 한다. "인류 역사의 7천년"이라는 다음 도표를 보라.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확실하게 어떤 날짜를 정하기에는 성경의 연대기가 너무 복잡하다. 물론 하나님께서 주님의 재림의 정확한 날짜에 대하여 우리가 확정하지 못하게 해 놓으신 것이 틀림없다. 아담에서 그리스도까지 일반적으로는 4004년이라고 하지만 4075년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1918년 필자가 이 책을 기록한 당시를 기준으로 우리는 아담의 창조 이래 A.D 5993년 즉, 휴거되는 전해에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한 "예언의 연대기"에서 1년을 360일로 계산하시는 반면 우리는 1년을 365¼일로 계산하고 있으므로, 우리가 어떤 종류의 달력으로 계산했는지 확실히 알아내어 달력 계산법에 따라 년수를 더 줄여서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6000년의 마지막에 더 가까이 와 있으며 또한 주님의 재림도 그만큼 임박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론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음을 강하게 암시해 주는 것이지 결정적인 것은 아니므로, 우리는 여기에 기초하여 어떤 날짜도 정할 수 없다. 더구나 휴거는 환란이 시작되기 전, 곧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에 일어날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세기가 끝날 정확한 날짜를 정한 다음 거기에서 7년을 빼어 계산한다하더라도 바벨론 재건과 그 밖의 환란이 시작되기 전에 일어나게 되어 있는 다른 사건들에 소요되는 시간을 생각해보면, 휴거는 20세기 말에서 7년을 뺀 것보다 5년, 10년, 혹은 25년 이전에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휴거는 불시에 닥칠 놀랄만한 사건이 안 될 것이다.
때와 시기와 징조를 찾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할 일은 아니다. 그렇게 하면 그는 "내 주인이 오시는 것이 늦어지리라."(눅12:45)고 말하는 사람들의 부류에 속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그는 다른 일에 몰두하느라고 근신하여 깨어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어느 때에도 다시 오시리라"고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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