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단원. 신론
신론 목차
제1과 하나님의 본질 제2과 하나님의 이름 제3과 하나님의 속성 제4과 삼위일체(trinity) 제5과 하나님의 계획 제6과 하나님의 창조 제7과 하나님의 섭리
신학이 성립되려면 우선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에 대한 규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관계가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이 설명되어야 하며, 이어서 하나님의 성품이 인간에게 혹은 역사에 어떻게 투영되는지 깨닫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획과 창조 사역 및 주권적 통치의 방법인 섭리를 고찰하여야 한다. 그 후에야 비로소 구원의 대상이 되는 인간에 대하여 규명할 수 있는 것이다.
제1과 하나님의 본질
모든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한 계시만이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제공한다.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인간의 사고에 맞춘 논리로써 전개할 때 종교 철학이, 원시인 및 미개인의 신 관념을 수립할 때 종교 인류학이, 그리고 인간 개인의 심성 속에 있는 신 관념을 심리학적 측면에서 고찰할 때 종교 심리학이 태동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본질을 규명하지는 못한다.
1. 하나님을 아는 지식
유한한 인간은 무한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완전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성경이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계시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구원에 필요한 만큼은 밝히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불가이해성은 주장할 수 있지만 불가지론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즉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범위 내에서 부분적인 지식은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지식은 부분적이지만 참되고 진실하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구원을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1) 선천적 지식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므로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무릇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떤 ‘절대자’에 대한 흠모에서 오는 종교심이 있는 것이다(행 17:22-23).
2) 후천적 지식 선천적 지식을 가진 인간은 일반계시와 특별계시와 접촉할 때 한정적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본질적 존재에 대하여 선천적 지식을 넘어선 참 지식의 구체적 내용을 소유할 수 있다.
2.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여러 증명
하나님의 계심은 인간이 갖는 가장 큰 의문이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인간의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증명해야 한다면 여러 합리적 유신 논증이 대두될 수 있다.
1) 우주론적 증명 인과논증(因果論證)에 의하여 우주 만물의 존재는 그 원인자(原因者)인 자존재(自存在)가 존재하지 않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시 19:1).
2) 목적론적 증명 자연 속에 불변하는 법칙과 일정한 질서가 있는 것은 그 배후에 이성적인 존재가 한 목적에 따라 질서를 주었기 때문이라는 정서론(定序論), 그리고 자연 특히 생물들의 뛰어난 적응성과 계획성은 그것을 창조한 지혜와 능력의 존재를 전제한다는 의장론(意匠論)이 있다(롬 1:18-20).
3) 도덕론적 증명 양심은 선을 행하고 악을 물리치는 의무감을 느끼게 하는데, 그 배후에는 인간을 도덕적으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주장이다(롬 2:14-15)
4) 존재론적 증명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간은 누구나 부정확하게나마 무한하고 완전한 신의 관념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러한 신 관념의 존재는 결국 그 관념의 실체인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5) 종교론적 증명 모든 시대 모든 인간에게는 종교가 있다. 그 종교들이 형태는 비록 다르지만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고 보며, 이러한 측면에서 하나님의 실재를 추론한다.
6) 심미적 증명 우주 가운데 존재하는 미적인 요소의 원천적 근거로서 하나님의 실재를 증명하는 논증이다.
7) 성경적 유신논증 위의 논리들을 통해서 얻는 신 개념은 “철학의 하나님”으로서 이 개념은 “성경의 하나님”과는 다르다. 인간의 지식과 이성이 죄로 인해 파괴되었으므로 이성의 합리성으로는 진리에 이르지 못 하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한계성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로 인해 보충되었다.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은 창세기 1장 1절과 출애굽기 3장 14절에 언급된 바와 같은 사실을 우리에게 설명하려고 애쓰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당당히 선포한다. 하나님의 존재하심은 우리에게 있어서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인 것이다(히 11:6).
3. 특별 계시에 나타난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께서는 이성의 유추의 대상이 아니라, 계시를 통하여서만 그 모습을 드러내는 분이시다.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정의하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성경이 보여주는 일반적인 면을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서는 순수한 영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본질적으로 영이시므로 어떤 종류의 육체를 가졌거나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요 4:24, 고후 3:17).
2) 하나님께서는 생명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근원이시다. 우리의 생명에 필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 있다(요 1:4, 6:33).
3) 하나님께서는 인격체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지적이시고 도덕적이시므로 자기 결정을 하실 뿐만 아니라, 인간과 더불어 인격적 교통도 하신다(창 6:6, 출 34:14, 습 3:17). 하나님의 최고의 계시는 인격적 계시이다(요 14:9).
4) 하나님께서는 영원 자존자이시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유한하며, 발전적이며, 투쟁하고, 고난 당하며, 인간과 같이 실패와 승리를 경험하는 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한히 완전하시므로 유한한 피조물의 속성과는 구별되신다(출 15:11, 시 90:2, 왕상 8:27).
5) 하나님께서는 단순성을 지닌 분이시다. 단순성은 하나님의 근본적 특성 중 하나로서 그 존재하심과 속성이 동일함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진리이시며, 생명이시며, 사랑이시며, 의로우신 그 속성을 이질적 요소의 침범을 받지 않으신 채로 보존하신다.
제 2과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께서 이름을 소유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인격적 존재이심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이름은 인간의 고안에 의해서 불려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계시에 의해서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며, 무엇을 하시는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하나님 계시의 한 방편이다(출 3:13-15).
1. 일차적인 구약의 이름
1) 여호와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의미를 지닌 이 이름은 인간과의 언약관계를 맺으시는 언약의 주체로서의 하나님의 존재성을 강조하는 이름이다(출 3:14). 특히 이 이름이 사용될 때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원불변하심이 강조된다.
2) 엘 혹은 엘로힘 이방신과 대조되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표현하는 명칭이다. 특히 엘로힘은 엘의 복수형으로서 위엄 있는 하나님을 나타내며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암시적 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
3) 아도나이 ‘주(主)’라는 의미를 지닌 이 명칭은 경우에 따라 인간에게 사용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 대하여는 소유자이시며 통치자 되신 그분의 무한 광대한 주권을 보여준다.
2. 복합적인 구약의 이름
1) 엘의 복합어 ‘강력’이란 의미를 지닌 ‘울’에서 파생된 ‘엘’은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여러 종류의 복합어를 가진다. (1) 엘 로이: 감찰하시는 하나님(창 16:13) (2)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창 17:1) (3) 엘 올람: 영원하신 하나님(사 40:28)
2) 여호와의 복합어 하나님의 언약의 불변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호와’와 합성형태를 취한 하나님의 이름들은 다음과 같다. (1) 여호와 이레: 여호와께서 준비하심(창 22:14) (2) 여호와 닛시: 여호와는 나의 깃발(출 17:15) (3) 여호와 샬롬: 여호와는 나의 평강(삿 6:24) (4) 여호와 체바오트: 만군(많은 천사)의 여호와(삼상 1:3) (5) 여호와 메타디쉬켐: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출 31:13) (6) 여호와 로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 23:1) (7) 여호와 치드케누: 여호와는 우리의 의(렘 23:6) (8) 여호와 엘 게물로트: 여호와는 보복의 하나님(렘 51:56) (9) 여호와 나케: 멸망시키는 여호와(겔 7:9) (10) 여호와 삼마: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겔 48:35)
3. 신약의 이름
구약의 히브리어 명칭을 같은 뜻의 헬라어로 옮겨 놓은 것으로 세 가지 형태가 있다.
1) 데오스 구약의 ‘엘’, ‘엘로힘’의 번역어이다. 신약에서는 이 낱말을 사용하여 ‘나의 하나님’, ‘너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 ‘너희의 하나님’ 등의 표현을 언급하는데, 이는 구약 이스라엘의 신정국가적인 하나님 관념에서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 개인과 직접적 교제를 나누시는 하나님 관념으로 발전한 것을 보여준다.
2) 퀴리오스 구약의 ‘아도나이’, ‘여호와’에 대응하는 명칭으로서 ‘주’로 번역된다. 하나님과 더불어 그리스도에 대하여서도 사용되었다.
3) 파테르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신 32:6, 사 63:16)에 대응되는 명칭으로서 ‘아버지’로 번역된다. 신약에서 이 명칭은 만물의 창조주이시며(고전 8:6, 엡 3:14-15, 히 12:9, 약 1:17), 성도의 아버지 되시는(롬 8:15, 갈 4:5) 하나님을 지칭한다.
제 3과 하나님의 속성
성경에서 언급하는 신적 존재의 완전성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성품 혹은 속성에는 절대적 속성과 보편적 속성이 있다.
1. 절대적 속성(비공유적 속성)
하나님의 속성 중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지니시고 인간은 지니지 못한 본체적, 혹은 비공유적(非共有的) 속성이 있다. 여기에는 아래의 여러 가지 속성이 포함된다.
1) 독립성(자존성)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존재 근거를 자신 안에 가지고 계시며(출 3:14, 계 1:8), 그 속성에 있어서 우연적 존재가 아니라 필연적 존재이시다. 그리고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으시고 아래와 같이 독립 적으로 존재하신다. (1) 사상적으로 독립하신다(요 11:25-26). (2) 의지적으로 독립하신다(단 4:25, 롬 9:18). (3) 독립적인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시 115:3). (4) 독립적인 계획이 있으시다(시 33:11).
2) 불변성 (1) 하나님께서는 그 존재와 속성에 있어서 변하지 않으신다(약 1:17). (2) 하나님께서는 작정, 사상, 의지, 목적, 언약에 있어서 변하지 않으신다(말 3:6). (3) 하나님의 불변성은 활동하지 않으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불변하신다는 뜻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인간에게 적용하신다. (4)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후회하시며(삼상 15:11, 35) 한탄하시는(창 6:6) 분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심정을 인간적인 말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민 23:19).
3) 무한성 하나님께서는 모든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우신데, 여기에는 세 가지 요소가 포함된다. (1) 본질적 무한성(절대적 완전성):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존재나 속성에 있어서 무한하시다. 이 무한성은 질적인 개념이다. 즉 인간의 지식과 사랑은 유한하지만 하나님의 지식과 사랑은 질적인 측면에서 무한하시다(욥 11:7-9, 시 145:3). (2) 시간적 무한성(영원성): 모든 피조물이 시작을 가지며 시간 속에 존재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간적 제한과 순간의 연속을 초월하셔서 모든 것을 현재로 파악하시며 행동하신다(시 90:2). (3) 공간적 무한성(무변성, 편재성): 하나님께서는 공간을 초월하셔서(왕상 8:27, 무변성), 모든 공간에 계신다(렘 23:23-24, 시 139:7-10. 편재성). 하나님께서는 모든 창조물에 내주(內住)하시지만(행17:27) 조금도 구속받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만물 속에 신이 존재한다는 범신론(汎神論)과는 구별된다.
4) 유일성 하나님께서는 절대자존(絶對自存)하시며, 불변하시며, 무한하신 하나의 영이시다(엡 4:5, 6, 단수성). 그러므로 신적 본질은 나뉘어 있지 않으며, 나뉠 수도 없다(단순성). 이 주장은 삼위일체 교리와 모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자는 본질과 관련된 문제이고 후자는 존재 양식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2. 보편적 속성
보편적 속성은 절대적 속성과는 달리 하나님과 인간이 공동으로 가질 수 있는 속성을 의미한다. 이 경우 인간이 소유한 것은 유한하고 불완전한 것이지만 하나님께 있는 속성은 무한하고 완전하시다.
1) 영적 속성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볼 수 있는(창 2:7)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순수한 영이시다. 하나님께서 영이시므로 여기서 파생되는 세 가지 속성이 있다. (1) 불가견성: 하나님께서는 육체를 소유하지 않으신 순수한 영이시므로 인간의 오관으로 식별되지 않는다(딤전 6:16).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신 것은(창 18장, 창 32:24-30) 그 본체를 보이신 것이 아니라 단지 유형적 계시를 위해 인간의 형체를 취하신 것에 불과하다. (2) 생명성: 천사와 마귀 그리고 인간이 영적 존재이며 생명을 소유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살아 계신 분이시다(요 5:26). (3) 인격성: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도덕적 속성을 지니시며, 결정을 스스로 하시는 인격적 존재이시다. 성경에는 오고 가며 말씀하시는 인격적 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여러 차례 언급된다.
2) 지성적 속성 인간은 한정된 지적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무한히 의식적이시며 지적인 존재로서 모든 것을 참으로 아신다(시 104:24, 잠 15:3, 11, 롬 11:33). (1)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구별되게 하나님 자신과 모든 사물과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을 아시되 원형적, 직각적, 독립적 그리고 동시적, 개별적, 불변적으로 명확하고 완전하게 아신다(요 21:17, 히 4:13). (2)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께서는 창조세계의 구속과 완성을 위하여 자기 지식을 응용하신다.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 자신을 가장 영화롭게 하는 방식대로 하신다(롬 11:33, 시 147:5). (3) 하나님의 진정성(眞正性): 하나님께서는 그 존재 자체가 진실하시므로(출34:6, 시96:5)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진실 되게 아시며, 또한 인간에 대한 그의 계시도 진실하시다(시 117:2, 롬 3:4). 민수기 23장 19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주신 언약을 진실 되게 지키신다(신 7:9, 히 6:17-18, 10:23).
3) 도덕적 속성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인 거룩하심, 의로우심, 선하심은 하나님의 다른 속성들보다 돋보인다. (1)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로부터 구별되어 무한한 위엄을 소유하시며(출 15:11), 죄로부터 완전히 떠나 계신다(사 5:16) (2) 하나님의 의로우심: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피조물과의 관계에서는 ‘의(義)’로서 표출된다(시 99:4). 의로우심의 속성은 피조물을 다스리는 통치 원리가 의(사 32:1)라는 점과(정치적 의) 의로써 통치할 때 순종자에게는 상을(신 7:9), 그리고 불손종자에게는 벌(롬 2:9)을 내리신다는 점에서(분배적 의) 잘 드러난다. (3)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께서는 존재 자체가 선이시며(막 10:18), 피조물에게도 선으로 대하신다.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선에는 아래의 요소들이 포함된다. ① 자선: 일반 생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선이다(시 145:9, 15, 16). ② 사랑: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을 받는 이성적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선 이다(마 10:30, 12:12, 요 3:16, 롬 5:8). ③ 은혜: 죄인에게 공로 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이다. 인간은 아무런 자격이 없으나 은혜로 인하여 구원에 참여할 수 있다(롬 3:24, 고후 8:9, 딛 2:11). ④ 긍휼: 죄로 인해 고통 당하는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이다(삼하 24:14, 시 79:8, 119:77, 애 3:22). ⑤ 오래 참으심: 죄인들이 회개하기까지 심판을 연기하시는 하나님의 선이다(출 34:6, 렘 15:15, 롬 9:22, 벧전 3:20).
4) 주권적 속성 하나님께서는 주권의 하나님이시다(롬 11:36, 시 135:6, 계 4:11, 잠 21:1, 단 4:35, 약 4:15, 마 10:29).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만유 위에 계시므로 모든 피조물을 기쁘신 뜻에 따라 다스리시고 처우하실 수 있으시며, 뜻을 세우시고 실행하시고 성취하심에 있어서 자유하신 분이시다(시 115:3, 사 10:15, 19:16, 마 20:15, 롬 9:15-18). 특별히 하나님의 절대 주권은 구속사에 동원된다(엡 1:4-6, 요 10:11). (1) 주권적 의지: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행동방향을 결정하는 자아결정 기능이 있으시다. 창조와 보존(계 4:11), 통치(잠 21:1, 단 4:35, 엡 1:11), 선택과 유기(롬 9:15-16), 그리스도의 고난(눅 22:42), 중생(약 1:18), 성화(빌 2:13), 성도의 고난(벧전 3:17), 인간의 생명과 운명(행 18:21, 롬 15:32), 그리고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마 10:29) 하나님의 의지는 만물의 궁극적 원인으로 나타났다. (2) 주권적 능력(전능):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으시나(창 18:14, 렘 32:27, 마19:26, 눅1:37), 스스로 모순되는 일, 즉 거짓말(민 23:19, 삼상 15:29, 히 6:18), 뜻을 변경하는 일(삼상 15:29, 히 6:17), 자신을 부인하는 일은(딤후 2:13) 못하신다. 5) 유복적 속성(有福的 屬性)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시며, 신적 지식을 소유하셨고, 스스로 사랑하시며, 자신 안에서 신적 기쁨을 누리실 수 있을 만큼 충족하시며, 이 유복성이 외면적으로 나타날 때 영광으로 투사된다(시 96:6).
제 4과 삼위일체(trinity)
“삼위일체” 교리는 신비로운 진리에 속한다. 그러므로 이 교리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장 3항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본체는 하나이시나 삼위로 계신다. 본질과 권능과 영원성이 동일하신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부께서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시고, 낳으신바 되지도, 나오시지 않으시며, 성자께서는 성부로부터 영원히 낳으신바 되셨으며,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 벌콥은 그의 조직신학에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순서는 시간이나 본체적 엄위에서의 어떠한 선후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단지 기원의 논리적 순서에서만 그러하다…… 삼위의 활동은 하나님의 전체 사역에서 드러난다.” 라고 언급하였다.
1. 삼위일체 교리의 성경적 증거
이 진리는 자연에 계시되지 않았으며, 인간의 이성으로도 발견할 수 없는 특별계시의 교리이다.
1) 구약의 증거 어떤 이들은 ‘삼위일체’라는 용어가 구약에서 발견되지 않음은 물론이고 성경은 이 교리를 주장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구약에는 삼위를 암시하는 내용이 아래와 같이 등장한다. (1) 일체성의 강조 - 창 18:1-21, 19:1-22, 신 6:4, 사 44:6. (2) 개체성의 강조 - 창 1:26, 3:22, 사 1:18, 6:8, 48:16, 시 110:1.
2) 신약의 증거 신약에는 구약보다 더 명확하게 삼위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특히 성자의 성육신과(요 1;14) 성령의 강림을(요 15:26) 그 절정으로 하여 잘 드러난다. (1) 일체성의 강조 - 요 10:30, 약 2:19, 고전 8:4, 엡 4:5-6. (2) 개체성의 강조 - 고전 8:6, 갈 1:1, 요 1:1, 요 15:26, 마 3:16, 28:19, 고후 13:13.
2. 삼위의 개별적 고찰
본체적으로 일체인 하나님 안에는 삼위가 있다. 삼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성부, 성자, 성령의 순서로 기술된다. 그러나 이것은 삼위 사이의 질서와 논리적 순서를 밝힌 것이지 어느 한 위가 다른 위에 지위와 능력과 기원이 종속됨을 의미하지 않는다. 삼위는 상호간에 인격적 교제를 나누신다. 다음으로 삼위의 각 위에 대하여 고찰해 보겠다.
1) 성부 하나님 만물의 창조자이시며(고전 8:6, 히 12:9, 약 1:17), 이스라엘 선민의 아버지시요(신 32:6, 사 63:16), 성도들의 아버지 되시는(마 5:45, 6:6, 9, 14, 롬 8:15) 성부 하나님의 사역은 다음과 같다. (1) 창조와 섭리의 창시자이시다. (2) 성부께서는 성자에게 속죄언약, 즉 인간의 죄값을 담당할 사명을 주셨다(시 2:7-9, 요 6:37, 눅 22:29) (3) 구속을 위한 계획을 세우셨다(엡 1:3-5, 벧전 1:2) (4) 구원으로 부르시고, ‘의롭다’ 선언하시는 분이시다(고전 1:9, 갈 1:15-16).
2) 성자 하나님 성령으로 잉태되시고(눅 1:31-32) 메시야적인 지위를 부여받은 분이시다(마 26:63-64, 요 1:49). 성자 하나님에 대해서는 기독론에서 상술된다. 제2위라는 고유한 위치로 인해(요 1:14, 마 28:19-20, 계 1:17-18)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우는 성자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성자께서는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나신바 되셨다(시 2:7, 롬 9:5, 히 1:5). (2) 성자께서는 신적인 속성을 지니셨으므로(요 1:1, 빌 2:6, 딛 2:13, 요일 5:20), 영광을 받으실만하다(요 5:22-23, 고후 13:13). 따라서 인간은 마땅히 성자께 예배드려야 한다(요 14:14, 눅 24:52, 히 1:6). (3) 성자의 주된 사역은 속죄 사역이다. 성육신하셔서 고난당하셨으며,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받을 수 있다.
3) 성령 하나님 성령에 관한 교리는 구원론과 교회론에서 부분적으로 언급되지만 이 항목에서 상세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 (1) 성령의 인격성: 성령께서는 지(고전 2:10-11), 정(엡 4:30), 의(고전 12:11)를 소유한 인격체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가르치시고(요 14:26), 인도하시고(롬 8:14), 말씀하시고(요 15:26, 벧후 1:21), 명령하시며(행 8:29), 위임하시고(행 13:2), 제어하시고(창 6:3), 중보하신다(롬 8:26).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을 단순한 능력이나 감화력으로 이해하여서는 안 된다. (2) 성령의 신성: 성령께서는 삼위 중 다른 인격과 동등하게 관련되며(고전 6:11),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행하신다(롬 8:15, 요 14:16), 즉 신성을 지닌 성령께서는 신적인 전지성(고전 2:10-11), 편재성(시 139:7), 전능성(창 1:2), 거룩함(눅 11: 13) 그리고 진리(요일 5:7), 생명(롬8 :2), 지혜(사 40:13)를 소유하시며, 하나님만이 하시는 창조(창 1:2), 영감(벧후 1:21), 그리스도의 탄생(눅 1:35), 중보(롬 8:26), 성결(살후2:13) 그리고 인간을 중생케 하시고(요 3:5-6), 확신시키시고(요 16:8), 위로하시는(요 14:16) 사역을 감당하신다. (3) 다른 위(位)와의 관계: 성령께서는 성부(요 15:26)와 성자(요 15:26, 16:7)로부터 나오셨다(영원한 발출). 이 사실은 성령 하나님을 가리켜 ‘나의 신’(창 6:3), ‘하나님의 영’(고전 2:11), ‘주의 영’(고후 3:17), ‘그리스도의 영’(롬 8:9)이라고 칭하는 데서 알 수 있다.
4) 성령의 사역 성령 사역의 특징은 항상 삼위일체 사역의 종결과 완성이라는 것에 있다. 즉 성자의 사역은 성부의 사역을 따르며, 성령의 사역은 언제나 성자의 사역을 따른다. 성령의 주된 임무는 모든 구속 및 일반 사역을 피조물에게 직접 적용하시는 것이다. (1) 자연계에 있어서의 사역 ① 성령께서는 창조사역의 최후 완성을 달성하셨다(욥 26:13, 시 104:30). ② 인간에게 일반은총적 영감과 능력을 부여하신다(출 28:3, 31:3, 35:35, 삼상 11:6, 16:13, 시 51:11-12). (2) 구속에 있어서의 사역 ①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종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진실한 예언을 행하였다(요 16:13, 벧후 1:21, 행 11:28). ② 성령께서는 성경 기록자들에게 영감을 주심으로 무오한 구원 진리를 전달하셨다(고전 2:13, 벧후 1:21). ③ 예수님의 성육신을 예비하시고 능력으로 충만케 하셨다(눅 1:35, 3:22, 요 3:34). ④ 성자께서 성취하신 구속사역을 최종적으로 인간에게 적용하여 최종적 영생을 얻기까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구원의 여정을 걷게 하신다(요 3:5, 엡 4:30, 고전 12:3). 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으로 교회는 비로소 실체화되었다. 성령의 지속적 사역으로 교회는 보존되며, 교회사의 전개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르게 될 것이다(요 14:26, 16:13-14, 행5:32, 엡 2:22, 고전 3:16, 12:4).
3.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잘못된 견해들
1) 삼신론: 하나님은 세 분이시다.
2) 양자론: 예수님은 흠 없이 산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다.
3) 양태론: 하나님께서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4) 아리안주의: 성부께서 성자와 성령을 창조하셨다.
5) 모나키아니즘: 그리스도나 성령은 하나님의 능력일 뿐 하나님이 아니다.
제 5과 하나님의 계획
돌트신경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 부터 자신의 가장 지혜로우시고 거룩하신 뜻에 따라 되어갈 모든 일을 자유롭게 그리고 변경할 수 없게 정하셨다. 그러나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죄의 조성자가 되지 않으시고 인간의 의지를 억제하심도 없으시며, 제2 원인들의 자유나 우발성이 제거되지도 않고 도리어 확립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사역하실 때 어떤 방법을 취할 것인가에 대해 다루는 하나님의 계획에는 일반계획(작정)과 특별계획(예정)이 있다. 작정(作定)은 우주 만물에 대한 보편 계획이고, 예정(豫定)은 인간 구원에 관련된 특수 계획이다.
1. 하나님의 작정
하나님의 작정에 대하여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7문은 “하나님의 작정은 그 뜻대로 하신 영원한 경륜인데,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자기 영광을 위하여 모든 되어가는 일을 미리 정하셨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작정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 대한 전반적인 계획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다스리시는 것, 특히 인간을 향한 구원계획 까지도 그의 작정 속에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완전하고 전 포괄적인 계획을 세우신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계 4:11, 롬 11:36).
1) 작정의 특징 하나님의 사역의 중요한 일면인 작정에 대한 교리는 이미 언급한바 있는 하나님의 속성과 아래와 같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1) 작정은 하나님의 치밀한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 즉 작정은 신적 지혜에 기초하고 있다(롬 11:33-34). (2) 하나님의 작정은 시간이 시작되기 이전에 세워져서 역사의 과정 속에서 변함없이 지속되는 영원한 것이다(시 33:11, 엡 1:4, 3:11). (3) 작정은 효과적이므로 아무도 이 작정을 방해하지 못하며, 반드시 성취된다(사 46:10). (4)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고 참되시므로 작정은 변경되지 않는다(욥 23:13-14, 눅 22:22). (5) 작정은 외부의 의존을 필요로 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것이다(엡 2:8-10). (6) 작정은 전 포괄적이다(롬 11:36). 여기에는 인간의 선한 행위(엡 2:10)와 악한 행위(잠 16:4), 모든 사건(창 50:20), 인간의 생명(시 39:4) 그리고 거처(행 7:6)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2) 죄에 대한 작정 죄에 대한 작정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의도적으로 실현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라 피조물의 결정에 의한 범죄를 억제하지 않으시고 허용하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시 78:29, 행 14:16, 17:30).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영예를 헛된 이론을 통해 입증하려는 시도로서, 적절하지 못한 주장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문제의 일들을 행하신다고 명백하게 말씀하심으로써 이런 입장을 일축하시기 때문이다(대하 18:21, 행 4:27-28, 롬 1:26, 11:8). 사탄과 그 수하들이 욥을 괴롭히고 강탈했을 때, 욥은 하나님의 손이 그렇게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또한 시편 기자가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시 115:3) 라고 말할 때, 이것은 인간들의 모든 행위를 포함하는 것이 분명하다.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반역한 천사들과 모든 사악한 자들은 자기들에 관한 한, 하나님의 뜻에 대립했던 것을 행하였지만, 하나님의 전능성에 관한 한,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서 어떤 일을 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행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그들에 의해 행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사악한 자의 악한 목적에 따라서 자신의 의로운 목적을 수행하시는 것이다.
3) 작정에 대한 반론 역사적으로 펠라기우스파와 소시니안파 그리고 알미니안파는 작정의 교리를 거부하거나 변질시켰다. 반론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동을 작정하셨으므로 인간이 그대로만 행동해야 한다면 인간은 그 행동에 대하여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인간의 도덕적 자유 역시 이 작정 가운데 포함되어 있으므로 행위에 대한 책임은 마땅히 당사자가 져야 하는 것이다(눅 22:22, 행 2:23). (2) 인간의 구원 여부가 작정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면 이는 구원에 대한 인간의 노력을 게을리하게 만든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작정은 인간에게 가려져 있으며, 이 작정 중에는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 까지도 포함되므로 이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엡 2:10, 빌 2:13). (3) 죄에 대한 작정은 하나님을 죄의 조작자로 만든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를 직접적으로 산출하지 않으시며 단순히 허용하셨을 뿐이므로 이 주장 역시 신빙성이 없다(시 92:15, 약 1:13, 요일 1:5).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만일 악으로부터 선을 일으킬 수 없다면, 악이 행해지도록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2. 하나님의 예정
예정의 중심 내용은 구원이다. 예정 교리란 하나님의 모든 이성적인 피조물들에 하나님의 목적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좁게는 타락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의미한다. 예정에는 주권적인 선택(택함 받음)과 유기(버림받음)가 있다. 좀 더 확대해서 보면 인간 이외에 천사와 마귀 그리고 특별한 의미에서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도 예정의 대상이 된다. 예정의 성경적인 근거로는 마 22:14, 행 4:28, 13:48, 롬 8:29, 9:11, 고전 1:27-28, 엡 1:4, 살전 1:4, 딤후 1:9, 벧전 1:2, 벧후 1:10 등을 들 수 있다. 예정 교리를 부인하는 알미니안주의에 대해 돌트신조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선택과 유기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이다. 이러한 예정은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이다. 그것은 예견된 인간의 믿음이나 거룩한 생활을 근거로 하거나 그것들을 필요불가결한 조건으로 하지 않는다. 반대로 선택이 인간의 믿음과 거룩함과 영생의 기초가 된다.”
1) 선택 선택에 대하여 성경은 선민 이스라엘의 민족적 선택(신 4:37), 그리고 특별한 직무와 봉사에 합당한 인물의 선택(신 18:5, 삼상 10:24, 시 78:70)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예정교리에서 주로 다루는 선택은 구원받을 자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시는 것이다(엡 1:4, 11, 행 13:48, 벧전 1:2, 롬 11:5).
2) 유기(버리심) 구원을 위한 선택에서 제외된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할뿐 아니라 지은 죄에 대한 형벌을 받게 된다(마 11:25-26, 22:13, 롬 9:18, 21, 벧전 2:8, 벧후 2:9).
3) 예정의 순서 예정의 순서에 대하여는 타락 전 선택설과 타락 후 선택설 등의 두 가지 주장이 있는데, 이 중에서 후자가 더욱 타당한 듯하다. 돌트 회의에서도 후자를 채택하였다. (1) 전택설(前擇說): ① 하나님께서 구원할 자를 선택한 후, ② 그 목적의 성취를 위하여 선택할 자와 유기할 자를 창조하셨으며, ③ 그 계획의 완성을 위하여 인간의 타락을 허용했고, ④ 선택받은 자를 위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다. (2) 후택설(後擇說): ① 하나님께서 인간 창조를 작정하신 후, ② 타락의 허용을 작정하셨고, ③ 타락자 중 일부를 선택하여서, ④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다.
제 6과 하나님의 창조
스파이크먼의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인간의 죄로 인해 처해진 곤경, 회개와 성화로의 부르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우리의 소망에 대한 성경의 풍부한 의미는 오직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에 굳은 기반을 두고서야 이해할 수 있다.” 창조는 하나님의 작정의 첫 시행이며, 하나님 계시의 시작이며, 모든 종교생활의 기원이 된다. 창조는 시간과 공간의 시작이다(시 90:2, 히 1:10). 창조는 존재로의 부르심이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1차적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롬 4:17, 히 11:3), 2차적으로 불완전한 것에서 완전한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존재를 창조하시되, 창조 사역 6일 만에 완료하셨다. 창조의 내용으로는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골 1:16), 즉 물질세계의 창조와 영적세계의 창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창조의 주체
창조는 성부 하나님의 사역인 한편(고전 8:6), 다른 두 위, 즉 성자와(요 1:2-3, 고전 8:6, 골 1:15-16) 성령께서도(창 1:2, 욥 26:13, 시 104:30) 이 일에 동참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만이 창조의 주체가 되신다.
2. 창조의 시기와 방법
시간의 시작인 태초에(창 1:1) 하나님께서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셨다(시 33:6, 롬 4:17, 히 11:3).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 직후에 이미 있던 재료인 흙이나 갈빗대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것(창 2:7, 22) 역시 창조의 방법으로서 창조의 영역에 포함된다.
3. 창조의 목적
어떤 이들은 창조의 목적을 인간의 행복에서 찾으려 하지만, 창조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기 위함이다(시 19:1-4, 사 43:7). 그러나 인간으로 하여금 행복과 안전을 맛보게 하시며,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사랑의 표현을 이끌어내시려는 것에서도 종속적인 목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눅 2:14, 롬 9:17, 엡 1:5-6, 12, 14).
4. 창조 교리에 대한 반론
하나님에 의한 세계의 창조를 거부하는 주장들로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주로 아래의 세 가지 범주에 포함된다.
1) 이원론 하나님과 물질은 다같이 영원하다. 하나님께서는 조잡한 상태에 있던 물질로써 우주를 만들었다. 이 주장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창조주가 아니라 단순한 구성자에 머물고 만다. 이 이론은 성경의 묘사와 어긋남은 물론이고 두 가지 영원한 무한자가 병존한다는 주장으로 귀착되기 때문에 받아들여질 수 없다.
2) 유출론 우주는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필연적으로 유출되었으므로 우주는 하나님의 일부분이며, 이 둘은 본질적으로는 하나이다. 이 이론은 불완전하고 변하는 물질을 완전하시고 불변하신 하나님과 동일시한 점, 우주 안에 있는 죄악을 하나님의 책임으로 돌리는 점, 그리고 하나님의 자기 결정 능력의 여지를 박탈한 점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 3) 진화론 어떤 기존체로부터 진화되어 우주가 형성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기존물이 창조에 의한 것인지, 영원 전부터 있었다고 가정하는 물질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이론은 증거의 불충분은 물론이고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하므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5. 천사의 창조
영적 세계의 창조는 그 대상이 천사이다. 천사는 세상이 있기 전에(욥 38:6-7), 하나님에 의해 지위를 가진 신분으로(유 1:6) 창조되었다. 천사라는 단어가 약 275회 등장함은 물론이고 그리스도께서도 천사의 존재를 아시고 가르치셨다는 점에서(마 18:10, 26:53) 천사는 확실히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1) 천사의 속성 (1) 천사는 인간과 같이 지, 정, 의를 지닌 인격적 존재이다. (2) 천사는 육체를 지니지 않은 무형적 존재이다. 그리고 천사는 영적인 존재이므로 죽지 않는다(눅 20:36). (3) 천사는 결혼하지 않으며(마 22:30) 따라서 종족 번식을 하지 못한다(막 12:25). (4) 천사는 하나님과 같이 무한한 지식과 능력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인간보다는 월등한 지식과 능력을 지닌 존재이다(마 24:36, 벧후 2:11). (5) 천사는 개별적으로 창조되었으나 독립 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조직을 가지고 있다(히 12:22).
2) 천사의 사역 천사는 하나님의 일을 시중들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역할을 감당한다. 천사는 또한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로 예수님을 섬겼다(눅 1:26-33, 2:11, 마 2:13, 4:11, 26:53, 눅 22:43, 마28:2, 6, 행 1:10-11). 성도에 대한 천사의 사역은 아래와 같다. (1) 일반적인 돕는 사역이다(히 1:14). (2) 기도응답에 관여한다(행 12:15). (3) 성도를 지켜본다(고전 4:9, 딤전 5:21). (4) 위험시 용기를 준다(행 27:23-24). (5) 사망 시 의인을 돌본다(눅 16:22, 유 1:9).
3) 타락한 천사들 (1) 사단 세상이 있기 전에 피조된 천사 중의 (욥 38:6-7) 일부가 타락하였는데(벧후 2:4, 유 1:6, 사 14:12-20) 사단은 그 무리의 우두머리이다(마 25:41, 9:34). 사단의 존재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그리고 특히 그리스도의 가르침 가운데서 등장한다(마 13:39, 눅 10:18, 11:18). ① 사단을 지칭하는 용어들 직접적인 명칭으로는 사단(계 12:9, 욥 1:6), 마귀(벧전 5:8, 계 12:9), 바알세불(마 12:24), 벨리알(고후 6:15), 등이 사용되었고, 간접적인 명칭으로는 악한 자(요일 5:19), 시험하는 자(살전 3:5), 이 세상의 임금(요 12:31), 이 세상의 신(고후 4:4), 공중 권세 잡은 자(엡 2:2),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계 12:10), 미혹하는 자(계 20:10), 대적(벧전 5:8) 등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사단을 상징하는 말로는 뱀(계 12:9) 용(계 12:3) 광명의 천사(고후 11:14) 등이 있다. ② 사단의 속성 사단은 지(고후 11:3), 정(계 12:17), 의(벧전 5:8) 및 도덕적인 책임성을 가진 인격체로서(마 25:41) 인칭대명사로 그를 지칭한다(욥 1장). 사단은 유한성을 가진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지배를 받으며(욥 1:12), 예수님에 의해 패배당하여(요일 3:8, 요 12:31) 결박되고 늑탈 당하였다(마 12:29). 그러므로 성도를 만지지도 못하며(요일 5:18), 성도가 대적하면 피할 수밖에 없다(약 4:7, 요일 2:13). ③ 사단의 타락 교만한 천사가(겔 28:12-15, 사 14:13)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고 했다가(겔 28:17, 사 14:14) 오히려 벌을 받게 되었다(겔 28:17-19). 사단은 하늘에서의 본래 지위에서 쫓겨난 후(겔 28:16) 에덴에서 심판이 선고되었고(창 3:14-15), 십자가에서 그 심판이 성취되었다(요 12:31). 쫓겨나서(계 12:9) 무저갱에 감금된(계 20:2) 사단은 장차 불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계 20:10). ④ 사단의 사역 a.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리스도께 대항하여 구속사역을 방해하리라는 예언대로(창 3:15) 직접 그리스도를 시험했을 뿐 아니라(마 4:3-11) 간접적으로 그의 사역을 훼방했고(마 2:16, 16:23, 요 8:40) 유다를 충동하여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도모하였다(요 13:27). b. 열방들에 대하여 사단은 열왕들을 충동하여(계 20:8) 아마겟돈 전쟁을 일으켜 자기 권세를 드러내려 할 것이다(계 16:14-16). c. 성도에 대하여 성도들을 고소하고 참소하며(계 12:10), 사역을 방해하고(살전 2:18) 박해를 야기시키며, 귀신을 고용해 성도들을 패배시키려고 시도한다(엡 6:11-12). 또한 성도들로 하여금 거짓말하도록 유혹하고(행 5:3), 부도덕에 빠지도록 유혹하며(고전 7:5), 그들 가운데 가라지를 뿌린다(마 13:38-39). d. 불신자에 대하여 불신자를 지배하여(요일 5:19, 요 12:31) 마음을 어둡게 하며(고후 4:4), 그들 가운데 역사하여(엡 2:2) 말씀을 제거하며(눅 8:12), 하나님을 대항하게(계 2:13) 미혹한다(계 13:14, 18:23). ⑤ 사단에 대한 성도들의 태도 사단을 경계해야 하며(벧전 5:8),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엡 6:11-17) 말씀으로 사단을 대적해야 한다(엡 6:17, 마 4:3-11, 약 4:7).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유익을 위하여 사단을 이용하실 수 있음을 인식하고(고후 12:7)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으로 인하여 사단을 이길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2) 귀신 헬라인들은 귀신을 죽은 악인의 영으로 보았고, 혹자는 아담 이전 종족의 육을 떠난 영으로 이해하였으며, 세대주의자들은 노아 홍수 이전에 천사와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종족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사단이 천사로서 귀신들의 왕으로 불리운 점을 염두에 둔다면(마 12:24, 엡 6:12) 귀신 역시 천사였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① 귀신의 속성: 어떤 귀신은 감금 당했으나(벧후 2:4, 유 1:6), 어떤 귀신은 매이지 않고 사단의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양자는 그 속성에 있어서 마찬가지이다. 귀신은 더러운 영으로 불리우며(마 12:34, 막 9:25, 계 18:2), 부도덕한 행위를 초래한다(딤전 4:1-2). 또한 귀신은 지적 존재로서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막 1:24, 약 2:19), 그리고 자신의 운명에 대해(마 8:29) 잘 알고 있다. ② 귀신의 활동: 일반적으로 귀신은 하나님의 목적을 방해하려 하며(단 10:13, 계 16:14), 사단의 명령을 수행함으로써 사단의 권위를 확장하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귀신의 활동은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 수행에 역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고후 12:7). 최악의 경우 귀신은 인간과(마 4:24) 동물을(막 5:13) 사로잡아 병들게 하며(마 9:33, 눅 13:11), 하나님의 자녀의 영적인 성장을 저해하고(엡 6:12) 그릇된 교리를 유포하기도 한다(딤전 4:1). ③ 귀신의 운명: 귀신은 성령을 힘입음으로(마 12:28) 성도들에 의해(막 16:17) 쫓겨난다. 무저갱에 던져진(눅 8:31) 어떤 귀신들은 환난 때에 놓임을 받기도 하지만(계 9:1-11), 궁극적으로 모든 귀신은 사단과 함께 불 못에 던져지게 된다.
6. 물질 세계의 창조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는 천사와 같은 영적 존재뿐만 아니라 물질적 존재도 포함된다. 이러한 물질세계의 창조는 하나님의 완전함에 대한 좋은 증거가 된다.
1) 구속적 입장에서 본 창조의 기록 성경은 하나님의 물질 세계 창조에 대한 가장 확실한 기록이다. 이는 과학적 지질학적 입장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우주와 인간과의 관계를 밝히려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즉 창세기 1장은 타락한 인간이 아닌 원래의 인간이(창 2장) 거주했던 처소 및 환경에 대한 기록으로서 구속사의 서장이므로 마땅히 신학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2) 창조의 연대 문제 지질학이 말하는 우주 조성 연대와 성경의 기록을 조화시키려는 시도와 더불어 어느 일방을 무시하는 주장이 병행되어 왔다. (1) 서론설(序論說): 창세기 1장 1-2절을 그 뒤에 이어지는 3절 이하 기록의 서론으로 보려는 입장이다. 즉 실제적인 창조를 3절의 빛의 창조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본다. 이 입장에 따르면 창조 역사의 연대가 주전 사천년경인 것으로 되는데, 이는 지질학적 연대와 큰 차이를 보인다. (2) 중건설(重建說): 태초에 하늘과 땅이 창조되었으나(창 1:1) 타락한 천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땅이 공허하고 혼돈되었으며(창 1:2),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세계는 그 후 다시 창조된 것으로 본다(창 1:3). 즉 창세기 1장 1-2절과 3절 사이에는 큰 시간적인 간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성경의 증명을 얻지 못한다. (3) 시대설(時代說):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날은 정확한 24시간의 하루가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신 하나님께서 정하신 미지의 시간이라고 한다. 그러나 구약 성경의 날(욤)의 용법은 이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4) 육일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라는 창세기의 문맥이나 안식일의 규례를(출 20:9-11) 볼 때 천지창조는 6일 만에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아담을 어린아이가 아닌 어른으로 창조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완숙한 형태의 우주를 창조했다면 육일창조설은 과학과 모순되지 않는다.
제 7과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유지시키신다. 하나님의 섭리란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한 세상이 자신의 선한 목적대로 유지되도록 보존하고 협력하고 통치하시는 일을 말한다.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피조물을 보존하시고, 사건 속에서 활동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작정한 목적에 맞게 만물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이다. 개혁신학은 창조와 섭리를 하나의 통합된 개념으로 이해하였다. 창조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만든 활동이라면, 섭리는 창조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활동이다. 즉 섭리는 “창조의 유지, 보존, 성취” 라고 하며, 때로는 “지속적인 창조” 라고도 한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Q&A 29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문: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또한 섭리하신다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한 점은 무엇인가? 답: 우리가 역경에서 참고 축복 가운데서 감사하며, 모든 피조물이 완전히 하나님의 수중에 있기 때문에 그의 뜻이 없이는 그들이 움직일 수 없으므로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장래의 일에 관해서는 우리들의 미쁘신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1. 섭리의 대상
자연신론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대해 일반적인 관심만 나타내신다고 본다. 즉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법칙을 세우신 후 그것을 가동시키시고 물러나셨다는 것이다. 한편 범신론은 하나님과 세계를 구분하지 않고 양자를 동일시하며 자연을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 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연신론의 입장과 같이 방관만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범죄 행위에 대한 책임이 신에게로 돌아가는 범신론의 입장 역시 잘못된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세상 모든 사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적 통치와 지배를 가르치치고 있다. 성경에 묘사된 섭리의 대상으로는 우주 전체와(시 103:19, 엡 1:10) 이 세상 창조물(시 104:14, 마 5:45), 들짐승들(시 104:21, 28, 마 6:26) 그리고 국가의 크고 작은 사건들과(욥 12:23, 행 7:6) 인간의 출생과 운명(시 139:16, 갈 1:15-16), 심지어 우발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까지(잠 16:33, 마 10:29) 포함되며, 의인의 보호와 악인의 처벌(롬 8:28, 시 4:8, 7:12), 성도의 필요에 대한 공급(빌 4:19), 기도의 응답(시 65:2, 마 7:7) 등도 포함된다.
2. 섭리의 요소
1) 보존 하나님만이 주권적이시고 절대적으로 독립적인 분이시며, 모든 피조물은 항상 하나님께 의존한다. 보존의 대상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세계이며(시 104편, 시 36:6), 보존은 그것을 계속적으로 유지하고 지켜나가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그러므로 만물은 신적 권능의 계속적인 행동으로 인해 그 존재가 유지되는 것이다(시 63:8, 느 9:6, 행 17:28, 골 1:17, 히 1:3).
2) 협력 협력이란 하나님께서 만물에 세우신 법칙, 인간의 의지 등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가도록 역사하심을 말한다(롬 8:28, 빌 2:13). 만물의 행동과 변화는 제1원인이신 하나님과 제2원인인 자연과 인간과의 협력의 소산이다. 그러나 여기서 어떤 사건의 동인(動因)자체가 양적으로 반반씩 하나님과 피조세계에 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는 피조세계의 일반법칙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훼손함이 없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의미한다. 즉 궁극적 능력과 원인이신 하나님께서 종속적 능력과 원인인 피조세계의 질서와 인간의 자유의지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시고 직접 자신의 뜻과 목적에 따라 그 방향과 모든 움직임을 주도하심을 가리킨다. (1) 신적 협력의 특징 ① 시간적이 아니라 논리적 관점에서 선재적이며, 선결적이다(고전 12:6, 엡 1:11, 신 8:18, 빌 2:13). ② 피조물은 그 어떤 경우에도 독립적으로 역사 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이나 자연의 모든 움직임은 그 어느 한 순간이나 동시적으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신적 협력에 힘입어 기동하는 것이다(행17:28). ③ 신적 협력은 피조물에게 직접적으로 작용한다(빌 2:12-13) (2) 신적 협력과 죄의 원인 관계 신적 협력이 없다면 피조세계는 그 어느 것도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은 진리이다. 그렇다면 범죄행위도 결국 하나님의 관할 아래 있는 것이므로 그 궁극적 책임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자연히 제기된다. 일단 문제를 정리해 보면 죄 역시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경우 하나님께서 기계적으로 죄에 동력을 주신 것이 아니라 다만 제2원인으로서의 인간에게 죄에 대한 자유의지의 실행을 허용하셨을 뿐이라는 것이다(창 45:5, 50:20, 출 14:8, 롬 9:22, 살후 2:11). 분명히 신적 협력과 인간의 자유의지 사이에는 논리적 갈등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신적 협력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그 존재론적 특성상 죄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두 사실 모두가 성경의 진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3) 통치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그 존재 목적에 맞도록 다스려 나가신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만물을 그의 선하신 사용 용도에 따라 아름답게 지배해 나가신다(잠 16:4).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것은 아무도 없다(시 103:19). 이 모든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다(롬 11:36). 하나님의 통치는 인간의 선악은(빌 2:13, 잠 16:4) 물론 무의미하게 보이는 것으로부터(마 10:29-30) 우주적인 것과(시 103:19, 단 4:34, 35) 영적인 세계 그리고 과거로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을 포함한다.
3. 비상 섭리(이적)
물질 세계에서는 자연 법칙에 따라, 그리고 정신세계에서는 그 나름대로의 법칙에 따라 ‘통상 섭리’가 있다. 또한 이러한 통상 섭리를 능가하는 ‘비상섭리’가 있으니 이 비상섭리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로서 주로 하나님의 임재와 권위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 경우에 비상섭리는 자연법칙의 위배가 아니라, 그 자연법칙까지도 제정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권능의 표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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