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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벌콥(Louis Berkhof)의 구원론 /신원균목사

하나님아들 2014. 5. 30. 21:52

벌콥(Louis Berkhof)의 구원론

신원균 목사

서론

Ⅰ. 신적작정

1. 신학에 나타난 작정의 교리

2. 하나님의 작정의 성질

Ⅱ. 은혜언약

Ⅲ. 성령의 일반사역과 특별사역의 관계

Ⅳ. 특별은혜와 보통은혜의 관계

Ⅴ. 신비적 연합

1. 신비적 연합에 대한 오류

A. 합리주의적 오류

B. 신비적 오류

C. 소지니적․알미니우스적 오류

D. 성례주의적 오류

Ⅵ. 중생과 효과적 부르심

1. 외적 부르심에 관련된 효과적 부르심과 중생

2. 내적 부르심의 특징

Ⅶ. 회심

1. 회개의 요소

A. 지성적 요소

B. 정서적 요소

C. 의지적 요소

2. 인간은 회심에서 협력한다.

Ⅷ. 신앙

1. 신앙의 요소

A. 지 적 요소

B. 감정적 요소

C. 의지적 요소

Ⅸ. 칭의

1. 칭의의 적극적 요소

A. 양자됨

B. 영생의 권리

2. 칭의의 근거

Ⅹ. 성화

1. 성화의 특성

Ⅺ. 성도의 견인

1. 선택의 교리로부터의 증명

2.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보기도의 효력으로부터의 증명

3.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으로부터의 증명

 

서 론

 

조직신학의 각론(各論)들과 마찬가지로 구원론 역시 성경론을 기초로 하여 신론, 즉 신관(神觀)을 밝혀주는 중요한 성경적 진리체계 중의 하나이다. 뻘콥은 그의 조직신학 구원론에서, 삼위(三位) 하나님의 논의에 의한 구원의 계획, 그 계획의 시행자인 그리스도와 신자간의 끊을 수 없는 신비적인 결합, 그리고 예정된 신자들의 구원의 순서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의 구원론 기술에 있어서의 전체적인 관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경륜적 삼위일체)하심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구원의 작정과 섭리와 성취가 삼위(三位)하나님의 절대적이며 독립적인 사역이라는 것을 바르게 배워 갈 때 우리는 성경적인 참된 신앙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될 것이다.

 

 

Ⅰ. 신적작정

 

1. 신학에 나타난 작정의 교리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무엇이 일어날지를 주권적으로 결정하셨으며, 또한 그의 예정의 계획에 따라 자연계와 초자연계에 걸친 그의 전창조 사역에서 그의 주권적인 의지를 작용하셨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 그것은 바울이 말한 바 하나님은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엡 1:11)라는 말과 전적으로 일치한다. 그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논의에서 하나님의 사역에 관한 논의로 넘어감에 있어서 하나님의 작정에 관한 연구로부터 출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2. 하나님의 작정의 성질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작정을 복수로 언급하지만, 그 고유한 성질상 하나님의 작정은 하나님의 단일한 행동일 뿐이다. 이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작정을 프로데시스 즉 목적이나 계획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이미 암시되고 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본체에 의해서도 추정된다. 그의 지식은 우리들의 지식과 같이 연속적이라기보다는 즉각적이고 동시적이며, 지식에 대한 하나님의 이해는 언제나 완전하다. 또한 지식에 기초한 작정은 단일하고 전포괄적이며 동시적인 행동이다. 영원하고 불변하는 작정으로서 그것은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는 일련의 작정들이 있지 않으며, 단지 일어날 모든 일을 포괄하는 하나의 포괄적인 계획만이 있다. 작정은 주로 하나님 자신의 행동에만 관계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 자신의 행동에 제한되지는 않으며, 또한 하나님의 자유로운 피조물의 행동들도 포함한다. 또한 피조물의 행동들이 작정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 행동들이 비록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실현되지는 않을지라도 그 행동들을 절대적으로 확실하게 만든다. 어떤 일들의 경우에 하나님은 그 행동들이 일어나도록 결정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창조의 사역에서처럼 즉각적으로 혹은 그의 능력에 의하여 계속적으로 활동하게 하는 이차적인 원인들의 매개를 통하여 그 행동들이 일어나도록 결정하셨다.

 

Ⅱ. 은혜언약

선택이 되는 것은 아브라함의 수중에 놓였다. 그러나 그 후손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썩은 지체로 인정되어 제외되었다. 그러므로, 선택의 효과가 나타나며 참으로 영속하기 위해서 우리는 머리로 올라가야 한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 머리 안에서 그의 선민을 모두 모으시며 풀 수 없는 끈으로 그들을 자기에게 결합시키셨다. 다른 민족들을 배제하시고 아브라함의 후손을 선택하신 데에는 하나님의 너그러우신 은혜가 나타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지체들은 머리에 접붙임을 받아 결코 구원에서 제외되는 일이 없음으로, 그들에게서 은혜의 더욱 위대한 힘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께서 영생의 계약을 맺으시고 어떤 민족을 자신에게 부르실 때에는, 그 중의 일부를 위해서 특별한 선택의 방법을 사용하시지, 무차별적인 은혜로 모든 사람을 효과적으로 선택하시는 것이 아니라고(롬 9:13) 한다.

하나님께서 불경건한 민족들보다 아브라함의 자손 사이에서 계속적으로 교회를 모으셨다는 사실은 그의 언약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대부분이 언약을 어겼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언약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도록, 그것을 소수에 국한시켰다. 요약하면,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공통으로 택하신 것은 많은 사람들 중에서 일부에게 주신 더 큰 은혜를 나타내 보일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상징이었다. 바울이 아브라함의 혈통에 의한 자손들과 이삭과 같이 부르심을 받은 영적 후손들을 조심스럽게 구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갈 4:28). 단순히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는 것이 헛되고 무익한 일이라는 뜻이 아니다. 이런 말은 반드시 언약을 모독하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들을 자기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 변할 수 없는 계획은 본질적으로는 이 영적 후손들에게서만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Ⅲ. 성령의 일반 사역과 특별 사역의 관계

 

성령의 일반 사역과 특별 사역의 사이에는 유사성이 존재한다. 일반 사역을 통해 성령은 유기체적이며 지적이며 도덕적인 모든 삶을 시작하게 하고 유지시키고 강화하고 인도한다. 성령의 특별 사역에도 이와 유사하다고 보이는 점들이 있다. 성령은 구속의 영역에서도 신생을 일으키고, 이를 열매 맺게 하며, 발전하도록 인도하며, 하나님의 섭리에 도달하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창조의 영역에서의 성령의 사역과 구속 혹은 재창조의 영역에서의 성령의 사역간에는 본질적인 차이점이 있다.

창조의 영역에서, 성령은 자연적 창조의 생명을 시작하고 유지시키고 발전시키고 인도하며, 삶과 사회 생활에 있어서 타락시키고 파멸시키는 죄의 세력을 일시적으로 제한하고, 인간에게 공동 생활에 있어서 일정한 질서와 예의를 유지하고, 상호 관계에 있어서 외면적인 선과 의를 행하며 그들이 부여받은 천부적 재능을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반면, 구속 및 재창조의 영역에서, 성령은 위로부터 출생하고 위로부터 양육되며 위에서 완성될 새 생명, 즉 지상에서 살지만 원리상 천상적 생명을 시작시키고 유지시키고 발전시키며 인도한다. 창조 영역에서의 성령의 일반 사역은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지만 구속 사역에 예속적이다.

 

Ⅳ. 특별 은혜와 보통 은혜의 관계

 

개혁파 신학은 보통 은혜와 특별 은혜의 본질적인 차이를 주장한다. 특별 은혜는 초자연적이고 영적이다. 이는 죄책과 죄의 부패를 제거하고, 정죄 선언을 해제한다. 반면 보통 은혜는 자연적이다. 보통 은혜의 일부는 구원 은혜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죄를 제거하거나 인간을 해방시키지 못한다. 보통 은혜는 다만 죄의 외면적인 발현을 억제하고, 외면적인 도덕과 예의, 사회 안의 선한 질서 그리고 시민적인 의, 과학과 예술의 발전 등을 증진시킨다. 보통 은혜는 영적인 영역이 아니라 자연적인 영역에서만 역사한다. 따라서 보통 은혜와 특별 은혜는 현세에서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지만, 이들은 양적으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보통 은혜와 특별 은혜의 우선성에 대해서는, 보통 은혜가 이 세계 안에서 작용할 때 특별 은혜를 보조하기 때문에 논리적 우선성은 특별 은혜에 두어야 한다.

 

Ⅴ. 신 비 적 연 합

 

개혁파 신학은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을 “신론적(神論的)”으로 다루고 있으며, 따라서 이 중요한 주제를 보다 공정하게 취급한다. 개혁파 신학은 신비적 연합이라는 용어를 그리스도와 신자의 주관적인 연합뿐만 아니라, 그 연합 배후에 있으며 이의 기초가 되는 연합-신자들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이 연합의 궁국적인 표현에 불과하다-즉 구속의 경륜에서 그리스도와 그의 소유가 된 자들과의 언약적 연합 및 그 영원한 경륜에서 관념적으로 확립된 신비적 연합, 그리고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구속 사역에서 객관적으로 성취되는 연합에 대한 통칭으로 사용한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신비적 연합은 그 연합의 정수, 즉 성령의 사역에 의한 주관적 실현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와 신자들은 한 몸을 형성한다. 이 연합의 유기적 성격은 요 15:5; 고전 6:15-19; 엡 1:22,23; 4:15,16: 5:29,30과 같은 구절들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유기적 연합에서 그리스도는 신자들을 돌보며,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섬긴다. 몸의 각 지체는 다른 부분에 의해 섬김을 받고, 이를 섬기며, 모든 지체는 분리될 수 없는 연합으로 전체를 섬기고 있다. 이 연합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신자들의 몸 전체에 생명을 부여하고 지배하는 원리가 된다. 바로 그리스도의 생명이 신자 안에 내주하며 이들을 소생시킨다.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는 이제 신자들 안에 내주 하시며, 이들을 자신과 연합시키시고 이들을 거룩한 연합으로 결합시키신다(고전 6:17; 12:13: 고후 3:17,18; 갈 3:2,3). 가장 최초의 행동은, 신자들을 중생시키며 신앙을 일으킴으로써 자신과 연합시키는 그리스도의 행동이다. 반면 신자도 역시 신앙의 자각적 행위를 통해 자신을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며, 성령의 영향하에서 지속적인 신앙으로 이 연합을 계속 유지한다(요 14:23; 15:4,5: 갈 2:20; 엡 3:17). 이 연합에 의해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따라”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변화된다.

 

 

1. 신비적 연합에 대한 오류

 

A. 합리주의적 오류

우리는, 신비적 연합을 로고스이신 그리스도와 모든 피조물의 연합이나 혹은 모든 인간의 영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내재와 동일시하려는 합리주의자들의 오류를 범치 말아야 한다. 스트롱(A. H. Strong)은 캠벨(Campbell)의 저서 「내주하는 그리스도」(The Indwelling Christ)를 인용하는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그리스도의 자연에의 내주는 인간에서의 하나님의 내재에 대한 근거가 된다……인간은 그리스도 밖에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인간 밖에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배척하는 자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 견해에서는 신비적 연합이 구원론적 의미를 상실한다.

B. 신비적 오류.

또다른 위험스러운 오류는, 신비적 연합을 신자와 그리스도의 동일시로 이해하는 신비주의자들의 오류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이 연합에는 일종의 본질적 연합의 요소가 있어서 한편의 인격이 다른 편의 인격과 결합되어, 그리스도와 신자가 더 이상 구분된 인격들로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C. 소지니적․알미니우스적 오류

소지니주의자들과 알미니우스주의자들의 가르침에서 우리는 정반대의 극단을 발견 할 수 있다. 이들은 신비적 연합을 스승과 제자간, 친구들간에 존재하는 단순한 도덕적 연합, 사랑과 공감의 연합이라고 규정한다. 그러한 연합에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생명과 신자의 생명간에 어떠한 상호 침투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여기에는 단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의 추종, 그리스도에 대해 자유로이 드리는 선의의 봉사,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에 대한 즉각적 수용만이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이 연합은 우리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내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D. 성례주의적 오류

로마 카톨릭 교회나 일부 루터파, 그리고 성공회 고교회파에 의해 대표되는 성례주의적 오류는 회피되어야할 또 다른 오류이다. 스트롱은 이러한 오류가 “신비적 연합의 본질에 대한 가장 유해한 오류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 견해는 하나님의 은혜를 실체적으로 규정하고, 교회는 그 저장소이며, 성례들 안에서 이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들은, 성례는 이 연합을 이미 전제로 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연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한다.

 

Ⅵ. 중생과 효과적 부르심

 

중생이란 인간 안에 새로운 영적 생명의 원소(principle)를 주입하고 성령의 영향 아래 하나님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변화로, 영혼의 지배적 성향이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원리적으로 이 변화는 전인적으로 일어난다. 중생은 전인적으로 즉 지성적으로 정서적으로 도덕적으로 즉시 영향을 미치는, 인간본성의 즉각적인 변화이다. 중생은, 가장 제한된 의미로 이해한다면, 잠재 의식에서 나타나는 변화이다. 이는 인간에 의해 직접적으로는 인식될 수 없는 하나님의 은밀하고 불가사의한 사역이다.

 

1. 외적 부르심에 관련된 효과적 부르심과 중생

하나님의 부르심은 하나이며, 따라서 외적 부르심과 내적 혹은 효과적 부르심의 구분은 이러한 하나의 부르심이 두 가지 측면을 가진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에 불과하다. 동일한 말씀이 외적 부르심에서 들려지고, 내적 부르심에서 심령에 효과적이게 된다. 성령의 강력한 작용을 통해 외적 부르심은 즉시 내적 부르심으로 전이된다. 하지만 내적 부르심은 외적 부르심과 긴밀하게 연관되며 이와 한 단위를 이루고 있지만 차이점들이 존재한다. (1) 내적 부르심은 성령의 사역에 의해 구원적으로 적용된 말씀에 의한 부르심이다(고전 1:23, 24; 벧전 2:9). (2) 이는 강력한 부르심, 즉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효과적인 부르심이다(행 13:48; 고전 1:23, 24). (3) 이는 회개 없이 일어난다. 즉 변화될 수 없고, 결코 철회될 수 없는 부르심이다(롬 11:29).

 

2. 내적 부르심의 특징

하나님의 영은 설교 말씀을 통해 도덕적 설득의 방식으로만 역사하며, 그 설득을 효과적이 되게 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도록 한다. 이는 오성과 의지에게 말하는 말씀의 본질에서 유래한다. 이 점은 앞서 말한 것과 긴밀히 연관된다. 설교의 말씀이 창조적으로 역사하지 않고 오직 도덕적이며 설득적 방식으로만 역사한다면, 그것은 오직 인간의 의식 영역에서만 역사 할 수 있다. 이는 오성에게 말하며, 성령은 진리에 대한 영적 통찰력을 오성에게 부여하고 오성을 통해 의지에 효과적으로 영향을 주어, 죄인은 하나님께 돌아오게 된다. 내적 부르심은 목적론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내적 부르심은 일정한 목적, 즉 성령께서 선택된 자를 인도하고 있는 위대한 목표로, 그리고 이 최종적 목적지로 가는 도상에 있는 중간 단계들로 인간을 부른다.

 

 

Ⅶ. 회 심

 

진정한 회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서 나오며, 하나님에게로의 헌신의 삶을 일으킨다(고후 7:10). 이는 중생의 사역에 기초한 변화이며, 하나님의 영에 의해 죄인의 의식 생활에서 일어나는 변화요, 이전의 삶의 방향이 현명치 못하고 잘못되었다는 자책을 포함하며, 생의 전 과정을 수정하는 생각과 의견, 욕망과 의지의 변화이다. 회심에 대해서는 2중적 정의가 내려져야 한다. (1) 능동적 회심은 하나님께서 그의 의식 영역에서, 중생한 죄인으로 하여금 회개와 신앙으로 하나님에게 돌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2) 수동적 회심이란 그 결과로서,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회개와 신앙으로써 하나님께 나아가는 중생한 죄인의 행위이다. ]

 

1. 회개의 요소

A. 지성적 요소

회개에는 관점의 변화가 일어난다. 즉 개인의 죄책과 오욕, 무력감을 포함하는 것으로, 죄를 인정하게 된다.

B. 정서적 요소

회개에는 감정의 변화가 있다. 즉,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에게 지은 죄를 애통하게 된다.

C. 의지적 요소

회개에는 의지적 요소가 있다. 이는 목적의 변화, 죄로부터 내적으로 멀어짐, 용서와 정결을 구하려는 성향을 말한다(시 51:5, 7, 10; 렘 25:5). 이는 다른 두 요소를 포함하며, 따라서 회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2. 인간은 회심에서 협력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회심의 조성자이지만, 거짓된 수동성에 반대하기 위해 회심에 인간이 어느 정도 협력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의 행위는 인간 안에서 선행된 하나님의 사역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애 5:21; 빌 2:13). 인간이 회심에서 능동적이라는 사실은 사 55:7; 렘 18:23, 32; 33:11; 행 2:38; 17:30 등과 같은 구절들에 명백히 나타나 있다.

 

 

Ⅷ. 신 앙

 

진정한 구원적 신앙이란 심령 안에 자리잡고, 중생한 생명에 뿌리박은 신앙이다. 이 신앙은 우선 인간의 행위가 아니며, 죄인의 심령 속에 하나님에 의해 야기되는 잠재성이다. 일부 신학자들은 보다 정확하게 신앙의 씨앗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에 의해 심령 안에 신앙의 씨앗이 주입된 후에야 비로소 인간은 신앙을 행사할 수 있다. 신앙의 자각적 활동은 점차로 성향을 형성하며, 이는 지속적인 신앙의 활동에 있어서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성경은 신앙을, 성령에 의해 생성되긴 했지만 인간의 행위라고 언급한다. 구원적 신앙은, 성령에 의해 심령 안에서 일어나는 복음 진리의 확신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진실한 의존(신뢰)이라고 정의 될 수 있다.

1. 신앙의 요소

A. 지적 요소

신앙의 지식이란 인간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 특히 하나님께서 인간의 타락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에 대해 말씀하신 모든 것이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진리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의미한다. 신앙의 지식은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증인에 의해 우리에게 매개되고 분여되며, 하나님의 신실함을 근거로 우리는 이를 확실하고 신뢰할 만하다고 받아들인다. 이 지식의 확실성은 하나님 자신이 보증이 되며, 따라서 어떤 것도 이보다 더 확실할 수는 없다. 또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신앙은 영적이며 영원한 것들에 관련되므로 확실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B. 감정적 요소

인간이 그리스도를 신앙으로 영접할 때, 그는 진리와 신앙의 대상의 실제를 깊이 확신하고, 이것이 자신의 생활에서 주요한 욕구들을 충족시키는 것을 깨닫고, 신앙에 열렬한 관심을 자각한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이 진정한 신앙이란 “하나님께서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한 모든 것이 진리라고 인정하는 확실한 지식일 뿐만 아니라, 성령이 복음으로 내 안에서 일으키는 내면으로부터의 신뢰”라고 말할 때, 우리는 여기서 단지 두 가지 요소만 언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식과 동의를 신앙이라는 동일한 요소의 두 측면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C. 의지적 요소

이는 신앙의 요소 중 정수이다. 신앙은 지성의 문제 혹은 지성과 감정의 복합적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영혼의 방향을 결정하는 의지의 문제요, 대상으로 다가가서 이를 획득하는 인간의 행위이다. 이러한 행위 없이는, 죄인이 신앙의 대상이 진리이며 실재하며 자신의 현재적 요구에 전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 인정할지라도, 신앙의 대상은 그 사람 외부에 남게 된다. 그리고 구원적 신앙에 있어서 대상이 획득되느냐의 문제는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이 의지적 요소는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서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것을 의미하며, 허물 많고 타락된 영혼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고, 그리스도의 용서와 영적인 생활의 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포함한다.

 

Ⅸ. 칭 의

 

칭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기초로 율법의 모든 요구가 충족되었다고 죄인에 대해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법적인 행위이다. 칭의가 구속 사역의 적용에 있어서 특이한 점은 칭의는 하나님의 법적인 행동 즉 죄인에 대한 선언이지, 중생이나 회심과 같은 갱신 행위나 과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칭의는 죄인과 관련되지만 내면적 삶은 변화시키지 않는다. 칭의는 그의 조건보다는 신분에 영향을 주며, 그러한 점에서 구원의 순서의 다른 모든 부분들과 구별된다.

1. 칭의의 적극적 요소

롬 5:1, 2은 이신칭의는 하나님과의 화평함을 수반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게 한다”고 말한다. 또 갈 4:5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율법 아래 나신 것은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적극적 요소는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A. 양자 됨

양자 됨이란 하나님께서 죄인을 자녀의 지위로 택하는 것이다. 마치 부모가 양자 된 아이의 내면적 생활을 양자로 택하는 행위만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처럼 양자 됨이 죄인의 내면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변화는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에서 일어난다. 양자 됨을 통해 신자들은 하나님의 권속이 되고, 자녀의 순종의 법 아래 두어지며, 동시에 자녀의 모든 특권을 부여받는다. 요 1:21에서는 양자 됨의 개념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엑수시안 에도겐)”로 표현된다.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용법은 “법적 권리를 부여하다”는 의미이다.

B. 영생의 권리

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양자된다면 이들은 모든 법적인 자녀의 권리를 누리게 되며,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가 된다(롬 8:17). 이는 우선 이들이 이생에서 구원의 모든 복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중 가장 근본적인 복은 “성령의 약속” 즉 성령의 형태로 약속된 복(갈 3:14)과 “그의 아들의 영”(갈 4:6)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성령과 함께, 이들은 장래의 모든 영원한 복을 받게 된다. 바울이 롬 8:17에서 언급한 영광은 현세의 고난 이후에 온다. 롬 8:23에 의하면 ‘양자 됨’이라고 일컬어지는 몸의 구원은 장래의 기업에 속한다. 그리고 롬 8:29, 30의 구원의 순서에서는 영화가 칭의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이신칭의 받은 신자는 영생의 상속자가 된다.

2. 칭의의 근거

긍정적으로, 칭의의 근거는 오직 칭의시 죄인에게 전가되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에서만 발견된다.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신(갈 3:13)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에서 우리는 죄의 용서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영생을 포함하는 모든 은혜의 선물을 받게 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에서 죄인이 영생의 상속자가 되는 양자 됨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

 

 

Ⅸ. 성 화

성화는 근본적으로 그리고 우선적으로 중생시 출생한 거룩한 성향이 강화되고 그 거룩한 수행이 증대되게 하는 영혼 안에서의 신적 작용이다. 성경은 성화가 하나님의 사역(살전 5:23; 히 13:20,21), 예수 그리스도와의 생명의 연합의 열매(요 15:4; 갈 2:20; 4:19), 안으로부터 인간에게 역사되며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인해 인간의 사역으로 여겨질 수 없는 사역(엡 3:16; 골 1:11)이라고 서술한다.

1. 성화의 특성

성화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체이신 하나님의 사역이다. 소위 자유의지의 대변자만이 성화가 인간의 사역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하나님이 그의 통제하에 두신 수단들을 사용함으로써 성화를 증대시키도록 노력할 수 있고 또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서 성화는 중생과 구분된다.

성화는 부분적으로는 잠재 의식에서 일어나고 이러한 점에서 성령의 직접적 사역이다. 뿐만 아니라 성화는 부분적으로는 의식 영역에서 일어나고 신앙의 지속적 실천, 하나님의 말씀의 연구, 기도, 다른 신자들과의 연합 등과 같은 일정한 수단의 활용에 의존한다.

성화는 통상적으로 장구한 과정이며 이생에서는 결코 완성에 도달할 수 없다. 동시에 매우 짧은 순간 혹은 순간적으로 완성되는 사례들, 예를 들면 일시적인 죽음 이후 곧 중생과 회심이 일어나는 사례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신자의 성화가 사망 직후 완성된다는 가정을 발전시킨다면(성경은 영혼에 관련되는 한 이를 가르치고 있는 듯하다) 그러한 사례들에 있어서는 영혼의 성화가 거의 즉시 완성된다.

신자의 성화는 영혼에 있어서는 사망 바로 그 순간에 혹은 사망 직후에 완성되며, 몸에 있어서는 부활시에 완성된다. 이는 한편으로는 성경이 이생에서는 아무도 무죄를 주장할 수 없다고 가르치고(왕상 8:46; 잠 20:9; 롬 3:10, 12; 약 3:2; 요일 1:8), 또 한편으로는 오래 전에 죽은 자가 전적으로 성화되었다고 가르치는 사실에 기인한다.

성화의 수단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1)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동기와 이유를 제시함으로써 영적인 활동을 자극하고, 금지와 권면과 사례들을 통해 영적인 생활을 지도한다(벧전 1“22; 2”2; 벧후 1:4). (2) 성례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언어로 표현된 동일한 진리를 상징하며, 이를 우리에게 보증한다. 또 이는 진리를 생동적으로 제시하고 성령께서 거룩한 활동을 위한 기회를 만드시는 행동화된 말씀으로 이해될 수 있다. (3) 섭리적 인도가 있다. 말씀을 통한 성령의 사역과 연관되어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자연적 감정에서 역사하며, 따라서 종교적 진리에 대한 인상을 심화시키고 감화시킨다. 그의 섭리적 인도를 해석하는데 있어서는 하나님의 계시의 빛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시 119:71; 롬 2:4; 히 12:10).

 

 

Ⅹ. 성 도 의 견 인

 

성경의 직접적 진술 : 요 10:27-29에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는 말씀이 있다. 그리고 롬 11:29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은혜는 마치 하나님께서 이에 대해 후회하는 것처럼 결코 폐기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1. 선택의 교리로부터의 증명

선택은 어떤 사람들이 일정한 외적인 특권으로 호의를 입고 자신들의 의미를 다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선택된 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구원될 것이며 필히 완전한 구원에 이를 것이라는 의미이다. 선택은 궁극으로의 즉 구원으로의 선택이다. 이를 전개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은 신자들에게 성령의 감화력을 주셔서 이들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할뿐만 아니라 끝까지 견인하고 궁극적으로 구원되도록 인도한다.

2.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보기도의 효력으로부터의 증명

그리스도는 자신의 속죄 사역에서 죄인의 용서와 열납을 획득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셨다. 그의 의는 죄인의 칭의를 위한 완전한 근거를 구성하며, 그렇게 완전하고 효과적인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칭의 받은 자들이 다시 정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3.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으로부터의 증명

이들은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며, 그리스도가 살아 있듯이 그들도 살아 있다. 그들은 그 몸으로부터 다시 절단되어 신적 이상을 무효케 할 수는 없다. 연합은 항구적이며 불변하는 원인, 즉 하나님의 영원하고 값없는 사랑에서 발원하므로 항구적이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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