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자박(自繩自縛)하지 마라.
‘나는 병을 감당할 수 없다. 나는 병의 노예다. 결국에는 병으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 생각에 자기를 묶어 놓고 말기 때문에 병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마음에 나는 병의 노예가 되고 병에 정복당했다고 생각하면 그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불안과 초조, 근심이 뼈로 마르게 하는 것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고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즐거움이 생기고 그 즐거움이 약 공장을 가동해서 온몸에 치료가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생각이 여러분을 자유인으로 만들기도 하고 종으로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렇게 생각하고 난 다음 내 운명이 바로 되기를 고대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자유인으로 생각할 때 자유가 주어지고 종이라고 생각할 때 노예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는 무능력하고 실패자며, 가난하고 패배자라고 생각하면 그대로 자승자복하게 됩니다. 인간의 생각은 그 자체가 운명을 만들어 갑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생각 없이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의 삶속에 늘 ‘나는 패배자다. 나는 실패자다. 성공하지 못한다. 나는 가난하다. 나는 무능력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나를 완전히 얽어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승자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저가 나의 저주를 다 담당하시고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축복의 생각으로 마음을 가득히 채우면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첫째, 모든 책임을 남에게 전가한다. 이런 사람은 핀잔을 들으면 본능적으로 핑계를 댄다. 나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나라 때문에, 이웃 때문에, 사회 때문에, 부모 때문에 내가 이 모양이라고 자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고 스스로 자백하고 자기를 고치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둘째, 열등의식과 자기비하에 빠져 있습니다. 늘 자기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는 비극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셋째, 삶의 목표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부르신 거룩한 부르심을 모르고 목표를 가지지 않고 떠돌아 가는 떠내려가는 삶을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넷째, 모든 것을 너무 쉽게 포기합니다. 조금만 어려움이 다가오면 두 손 들고 뒤로 물러가는 것입니다. 다섯째, 과거에 지나치게 연연합니다. 현재에 살고 미래를 계획하지 않고 늘 과거에 묶여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섯째, 독창력 없이 남의 흉내를 내기에 전전긍긍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일곱째, 계획 없이 생활한다.
여덟째, 인생의 지름길을 찾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노력은 하지 않고 성공의 왕도만 찾아다닌다. 어떻게 하면 쉽게 돈벌이 할 수 있을까? 쉽게 성공할 수 있을까? 쉽게 잘 살 수 있을까? 자꾸 쉬운 길을 찾습니다. 땀 흘리고 고생하고 노력해서 승리를 가져오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홉째,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없습니다. 자기가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열째로 패배에 대한 원인 분석이 없이 실패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실패를 했으면 왜 실패했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돌이켜서 대책을 세우려고 하지 않고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포기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에 실패할 때는 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원인은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는 무능력하고 실패자며 가난하고 패배자라고 생각하면 그 생각대로 자승자박하게 되어 그러한 운명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모습은 거울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내적인 모습도 우리가 보아서 잘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모습이 부정적이면 결코 성공적인 삶을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내적인 모습이 자기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잘못 보면 패배적인 것으로 자승자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삼 1: 2에 있는 말씀대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주님이 그려주신 모습을 마음속에 늘 그려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은 우리에게 삼대재앙을 주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배반하고 에덴에서 쫓겨나올 때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었고 자기의 사는 환경은 가시와 엉겅퀴가 나 저주받아 이마에 땅을 흘려 고생 고생해야 살게 되고 육체는 병들고 늙고 죽게 되는 삼대재앙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자손들은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삼대재앙의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죄인이다. 저주받고 고통스럽고 낭패당하고 실패하며 산다. 나는 병들고 노약해지고 죽는다.’는 3대재앙의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구주로 믿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 새로운 자화상을 마음속에 그려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용서받은 의인이 된 자화상 그려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저주가 다 사라지고 아브라함의 복이 주어지는 것으로 자기를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시고 우리를 건강하게 하신 자화상을 마음속에 그려서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난 다음 마음에 자기를 보는 눈을 바꿔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거울을 통하여 새로운 자화상을 바라보고 자기의 새로운 모습을 마음속에 깊이 아로 새겨야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죄와 세속과 마귀의 종으로 보지 말아야 됩니다. 바라보는 것을 그대로 우리가 갖게 되기 때문에 바라봄의 법칙의 무서운 힘을 인식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나무 밑에 서서 늘 선악과를 바라보았습니다. 선악과를 바라보니까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를 얻기에 탐스럽게 된지라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바라보면 거기에 끌려 들어가고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죄와 세속과 마귀의 종으로 자꾸 바라보고 죄가 나를 이긴다. 세속이 나를 끌고 간다. 마귀가 나를 점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바라본 대로 마귀와 세속과 죄의 종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갈 5: 1의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으니 십자가를 통하여 종의 멍에에서 해방된 자신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죄의 멍에가 꺾인 자기를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병의 멍에에서 해방된 자기를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저주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은 자기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리고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병자라고 보지 말라. 병자라고 바라보고 늘 자기의 병약함을 생각하면 그는 병자인 것입니다. 자기의 모습이 병약하다고 늘 마음속에 상상하고 그렇게 보는 사람은 어떠한 의사도 어떠한 약도 어떠한 환경도 그를 건강하게 만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비록 병들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자기의 본모습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거울을 통하여 고침 받은 자기 모습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는 치료받고 건강하고 활달하게 되었다는 모습을 마음속에 상상하고 그를 바라볼 때 그대로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해 주는 것입니다.
자기를 상상할 때마다 자기는 비천하고 열등의식에 잡히고 능력 없는 사람으로 바라보면 그것이 자승자박하여 절대로 복을 받지 못합니다. 항상 실패하고 낭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바라보는 눈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거울을 통해서 자기를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저주를 친히 짊어지고 청산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저주는 다 청산되어 버린 옛날이야기인 것입니다. 옛사람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지나간 이전 나를 바라보지 마십시오.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형통한 사람이 된 자기 자신을 상상하고 늘 마음속에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새 모습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을 통하여 우리는 자승자박한다는 것을 늘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메뚜기 자화상을 가진 사람하고 자기들이 하나님과 함께 있는 대장부의 자화상을 가진 사람하고 천양지차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한가지입니다. 여러분 북한을 바라볼 때 북한이 원자탄을 가지고 미사일을 가지고 우리 대한민국을 협박하고 있으나 우리는 이제 절단 났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메뚜기 자화상인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원자탄이 없고 미사일을 장치해 놓지 않아도 우리에게는 없는 것이 있습니다. 야훼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5만 교회 1,200만 성도가 있어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 자화상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은 원자탄 보다 미사일보다도 어떠한 무력보다 강하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우리가 주님과 같이 있는 자화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메뚜기 자화상으로 보지 않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이 여러분과 같이 계신다는 자기의 모습을 상상하고 바라보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국의 시인 밀턴은 “마음은 천국도 만들고 지옥도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마음을 지켜 자기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인간은 그 자화상으로 자승자박하는데 자기를 죄와 세속과 마귀의 종으로 보면 죄와 마귀와 세속의 인간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용서와 의와 영광을 받은 사람이요, 거룩하고 성령충만한 사람이요, 치료받은 사람, 축복받은 사람, 천국 영생복락을 받은 사람으로 상상하고 바라보면 네 믿음대로 될 찌어다.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올바르게 믿어야 돼요. 우리는 우리 인간 혼자 살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사나 죽으나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처럼 오셨고 사람을 위해서 죽었고 사람을 위해서 부활 하셨은즉 이제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살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를 이기고 세속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질병을 이기고 죽음을 이기고 우리는 사는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병으로 고통당하거나 불구가 되거나 죽을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아무래도 이 병으로 죽겠지. 내가 불구가 되겠지. 나는 패배자가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믿으면 큰일 납니다. 부정적인 믿음은 아예 여러분 마음속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믿음을 갖다 주고 그를 따라서 마귀가 들어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병은 다 2천 년 전에 벗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등을 내밀어서 채찍으로 때리도록 허락한 것은 여러분과 나의 질병을 청산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성경은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이 말씀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은 이 말씀을 통해서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고 환경을 믿지 마십시오. 말씀을 믿고 감정을 믿지 마십시오. 말씀을 믿고 감각을 따라 행하지 마십시오.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기적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네 믿음대로 될 찌어다.” 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성공할 수 없다.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고 믿으면 그대로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해서 도저히 성공할 수 없다. 돈이 없고 밑천이 없고 자본이 없는데 무슨 일을 하느냐? 패배자다. 무능력하다고 그렇게 부정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산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에 들어왔을 때 그들은 스스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농사지을 논도 없고 밭농사할 밭도 없고 물도 없고 양식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이름 안에서 나는 성공할 수 있다. 나는 승리한다. 나는 축복받는다. 나는 은혜를 입는다고 믿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귀에 들리는 것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손으로 만져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는 거센 풍파 위를 걸어갔습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물보라가 쳐도 그는 물위로 걸어갔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눈을 돌이켜 환경을 바라보고 바람소리를 듣고 파도를 바라보고 물보라를 느끼고 두려워했을 때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믿음이란 환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느끼는 것도 아니고 감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이란 사나 죽으나 말씀에 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나는 저주에서 해방된 사람이다.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다. 나는 형통한 사람이라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대로 될 것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셋집에 무명의 화가가 한사람 살았습니다. 그 화가가 이 소녀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이 소녀를 살리기로 작정했습니다. 어느 날 초겨울에 큰 바람이 불고 장대같은 비가 내렸습니다. 그러니 모든 단풍든 잎사귀는 다 떨어지지요. 담장의 넝쿨에 마지막 잎새도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 소녀는 바람소리를 듣고 비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침이 되면 담장의 넝쿨이 하나도 없이 다 떨어질 것이다. 그러면 나도 죽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침이 되어서 창문을 열어 보니까 마지막 담장이 잎새 하나가 강인하게 붙어 있습니다. 그렇게 바람이 불고 비가 왔는데도 바람에 날리면서도 담장이 넝쿨에 마지막 잎사귀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소녀가 그것을 보고 ‘야! 저 마지막 잎사귀가 저렇게 강인하게 붙어서 바람과 비를 이긴 것 보니 나도 살겠구나. 저 잎사귀가 내 생명이니 저것이 안 떨어지는 것을 보니 내가 살겠구나.’ 그는 마음에 믿음을 돌이켜 먹고 산다는 믿음을 가지자 병을 이겼는데 그와 동시에 그 전셋집을 얻으러간 나이 많은 미술가는 폐렴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그 비바람이 치는 날에 그 미술가는 담장에 넝쿨을 하나 그려 가지고서 철사 줄로 그 벽을 사다리를 놓고 타고 올라가서 그렸습니다. 비를 종일 맞았습니다. 온몸에 빗물이 다 스며들어왔습니다. 그는 감기에 걸리고 폐렴에 걸리더라도 그 소녀를 살리겠다고 마지막 담장넝쿨을 그려가지고서 철사 줄로 묶어 놓았습니다. 그러니 그려서 놓은 담장이 넝쿨이 떨어질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담장이 넝쿨은 떨어지지 않아서 이 소녀가 믿음을 얻어서 살았지만 이 노인은 폐렴이 걸려서 죽고 말았다는 단편소설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보십시오. 이 소녀의 마음속에 부정적인 믿음을 가졌을 때는 죽음이 그를 붙잡고 있었으나 그가 담장이 넝쿨 하나 보고도 긍정적인 믿음을 가졌을 때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를 위해서 몸 찢고 피 흘려서 구속의 선물을 주신 예수님을 보고 믿지 못한다면 정말로 우리는 절망인 것입니다. 문제는 마음에 있습니다. 자신은 병자이고 병으로 인해 죽는다고 생각하면 그가 보는 그 병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히포크라테스는 마음은 위대한 의사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채찍에 맞았으므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고침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한 잎 잎사귀처럼 우리의 믿음이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나은 것입니다.
무명의 젊은 권투선수였던 클레이라는 청년은 큰 시합을 앞두고 기자에게 “난 세계 최고다” 그 말이 신문에 떠들썩하게 기록되었습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이 이번 시합에서 일방적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에 찬 말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습니다. 결국 그는 시합에서 이겼고, 이후의 경기에서도 대 부분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어떤 말을 만 번 이상 되풀이하면 반드시 미래에 그 일이 이루어진다.”고 말한 격언이 있습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늘 못한다고 말하면 그 말의 그물에 걸려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습관이란 계속해서 반복해서 말을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말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말하면 습관이 되어서 그 말을 하게 되고 부정적인 말로써 자승자박합니다. 사망으로 얽히고 패배로 얽히고 질병으로 잡히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을 조심해야 됩니다.
에모또 마사루 박사는 실험을 통해 ‘사랑’과 ‘감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물의 결정체가 가장 아름답고 안정적이며 치밀한 구조를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몸은 60%가 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몸속에 있는 물이 아름다워야 몸도 건강하고 아름다워 지는 것입니다. 물이 깨어지고 흐트러지면 온몸에 건강도 깨어지고 흐트러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에 있는 물이 당장 여러분이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름답습니다. 하고 그렇게 말하면 온몸이 육각수로 아름답게 되어서 심신이 건강해 집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밉다. 저주한다. 절망적이다. 나는 소망이 없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물이 악마처럼 어그러집니다. 속에 60%의 물이 악마가 되어서 여러분을 물고 찢는 것입니다. 당장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로 우리 몸에 있는 물이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고 천사가 되게도 하고 악마가 되게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입의 말은 다른 사람을 욕하기 위해서 저주하기 위해서 멸하기 위해서 하는 말 같지만 다른 사람에게 하기 전에 자기의 몸을 망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입의 말로 내가 묶였으며 내 입의 말로 내가 사로잡힌다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은 남을 해코지하기 전에 그것이 먼저 자기에게 해로움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흑칠을 하려면 내손에 흑을 먼저 묻여야 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언어 하나하나가 이처럼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죄와 세속의 말을 하면 죄와 세속에 우리가 묶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죄와 세속의 말을 하면 죄와 세속이 와서 우리를 칭칭 묶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엡 5: 4~ 5에 보면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말을 잘못하면 사탄의 권세에 잡히게 된다. 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조심 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건강에 관해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나는 나이 먹었어도 젊은 사람과 같습니다. 눈도 잘 보입니다. 귀도 잘 들립니다. 잘 먹고 잘 잡니다. 평안합니다. 건강합니다. 할렐루야! 남에게 동정은 받지 않을지라도 자기 말로 생명으로 넘치게 만들어 놓고 마는 것입니다. 늘 병약함에 대하여 말하면 병이 떠날 날이 없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못산다고 하면 그 말의 그물에 걸리게 됩니다. 못사는 것 자랑하지 마십시오. 못산다고 하면 사람들이 여러분을 동정도 안합니다. 못살고 패배한 사람은 다 떠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낭패와 실망을 당해 보십시오. 동창생이나 형제, 자매까지 여러분 집을 다 떠나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이 승리하고 축복하고 성공했을 때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못산다고 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를 다 떠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축복의 사자들이 떠나가 버리고 못산다고 하면 못살게 하는 귀신들이 여기 내 친구 있다고 다 모여드는 것입니다.
각 나라마다 인간의 언어생활에 대해 격언이나 속담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 모두 인간의 살고 죽을 권세가 혀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부터 여러분 말할 때 조심하십시오. 말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서 말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말이 결국 여러분의 환경과 운명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하여 여러분을 해방시켰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었은즉 그러므로 믿음으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이냐, 자유인이냐, 축복받은 사람이냐, 저주받은 사람이냐, 성공자냐, 실패자냐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자화상과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잘 사용하면 여러분과 나는 상상 이상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삶을 살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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