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복음과 언약!!

[스크랩] 언 약

하나님아들 2014. 5. 14. 15:53

언 약

서 론

성경은 언약의 책이다. 성경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때 구약과 신약을 말한다. 이 구분을 언약적 관점에서 말하면, 구약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고 신약은 예언대로 오신 메시야에 대한 성취의 말씀이다. 그리고 다시 신약은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으며, 초대교회 이래로 인류의 역사를 포함하는 교회사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언약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져 가고 있는 성취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언약과 성취의 역사로 해석할 수 없다면, 성경해석에 있어서 많은 난관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초대교회 이래로 종교개혁시대를 거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경해석의 관심은 언약이 항상 그 중심을 이루어왔다. 교부시대에 터툴리안(Turtulian)이 신약(Novum Testamentum)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래로 성경이 언약의 말씀이라는 사실은 확증되었고, 오늘에도 성경의 이름을 구약과 신약이라고 사용하고 있으니 그 증거는 더욱 확실하다.

그런데 성경의 틀을 이루는 언약 중에서도 창세기를 배경으로 한 세 가지의 언약인 행위언약과 구속언약 그리고 은혜언약은 이후의 모든 언약의 원형이며 근거라는 데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언약은 장차 오실 완전하고 영원한 성취자이신 메시야 즉, 예수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언약의 완전하고 영원한 성취자로서, 오늘의 우리뿐만 아니라 과거의 열조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기 위한 영적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 하였으니”(11:13)

이러한 지식은 단순히 상상으로 얻어진 추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관계를 맺으심으로 알려진 지식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뜻은 언약관계로서의 신()-() 관계 안에서 유기적이고 점진적으로 인간 역사 속에서 드러내어지고 선명해진다.

이러한 점에서 그리스도와 언약의 관계는 구원과 구원의 역사 즉, 구속사를 이해함에 있어서 불가분의 관계 속에 놓여지게 된다. 그러므로 언약은 창조- 타락- 구속으로 이어지는 구속사에 있어서 중심에 놓여지는 것이다. 이에 본 소고(小考)는 언약을 구약신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본 론

1. 언약 사상의 배경

구약에는 여러 종류의 계약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계약들 가운데 다수는 두 당사자 사이의 위치가 대등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좀 더 강한 쪽과 또 다른 쪽 사이의 계약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계약에 있어서 고대 근동 지방의 공통된 관습은 희생 동물의 시체를 칼로 조각내는 것이었다. 히브리어에서는 계약을 맺는다는 말을 계약을 자른다라고 표현하는데 이러한 풍습에서 유래된 듯하다. 구약신자들의 전통 가운데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사이에 맺으신 계약이다.

구약에서 언약은 하나님의 약속에 그 근거를 두고 있으며, 성경적 역사관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언약이라 하면 특별히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언약의 모든 범위는 창조로부터 선지자들의 시대에까지 빠짐없이 계속되는 것이다. 언약은 히브리인들이 자신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적인 요소이다.

 

2. 언약의 개념

1) 언약의 원형으로서 아담과의 언약

언약의 개념은 계시를 통해서 이 개념이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전에 이미 역사에서 발전 되었다. 하나님께서 노아 및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기 전에 이미 인간들 사이에서 언약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태초의 에덴에서 맺은 아담 언약(1:28)의 발전이었다. 그 후로 인간들은 이 같은 준비 과정을 거쳐서 죄로 분열된 세상에서 언약을 맺는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고, 하나님이 계시를 통하여 인간과의 관계를 언약 관계로 제시할 때 그것을 곧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언약의 개념이 인간에게서 시작되었다거나 하나님이 자신과 인간의 상호관계를 서술하기 위하여 이 개념을 빌려다 쓰셨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언약 생활의 원형은 하나님의 삼위일체적인 존재 안에서 발견된다. 인간에게서 발견되어지는 것은 원형의 희미한 모형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인간의 삶을 이와 같은 언약 관계의 삶으로 제정하셨기 때문에 언약 개념은 사회생활의 여러 가지 기둥들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이며 이렇게 해서 언약 관계가 이미 발전된 이상 하나님은 공식적으로 이 관계를 자신과 인간과의 실존하는 관계의 표현으로 소개하셨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언약 관계는 아브라함과의 공식적인 계약 이전 곧 태초의 아담부터 존재 했었다.

 

2) 구약에서

언약은 히브리어로는 "베리트"인데 이 말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다. 통상적으로는 자르다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 "바라"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추측에 의거하면 창 15:17에 기록된 의식이 언약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경에서 언약은 어느 한 편이 다른 편에 부과하는 약정의 성격을 띤다. 따라서 하나님이 인간과 언약을 세우실 때에는 일방적 성격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인간은 동등한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법령을 인간에게 부과하시는 주권자이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계약(testament)이라고 번역하기 보다는 언약(covenant)이라고 함이 좋을 것이다. 즉 언약이란 신학적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세우신 약속인데, 이를 세상 사람들이 상거래에 많이 쓰는 계약이란 말로 쓰면 신학적 사상이 사실상 약해지기 때문이다.

3) 신약에서

70인역(LXX)에서 베리트는 신 9:15(μαρτυριον)과 왕상 11:11(εντολη)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디아데케(διαθκη)로 번역되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일반적인 헬라어 용법에서 언약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지 않고 단지 하나의 약정 양도 계약서를 가리키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유언(遺言) 또는 유언장을 가리킬 뿐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볼 때 이와 같은 용법은 좀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전 헬라어에서는 두 집단 가운데 한 집단이 압도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어 그 다른 집단에게 자신의 요구 조건을 명령할 수 있는 그러한 두 집단 사이의 협정에 이 말이 쓰인 예가 가끔 있었다. 그러므로 신약에 쓰인 디아데케(διαθκη)”는 구약에 쓰인 베리트보다 훨씬 더 특수한 뜻을 가지며, 이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한 집단에 의해 일방적으로 제기되고, 다른 한 집단은 그저 순응할 뿐 거절할 수 없는 협약 또는 협정(agreement)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하여 디아데케(διαθκη)라는 단어는 많은 다른 단어들과 같이 하나님의 생각을 담는 그릇이 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았다. 많은 학자들 간에 논란이 있어 왔지만 이 단어는 유언보다는 언약으로 번역되었다.

 

4) 언약의 범위와 효력

하나님께서는 계시의 일부분을 당시에 통용하는 개념을 빌어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적용하셨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그 개념이 엄청나게 확대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마찬가지로 언약 관계도 역사 속에서 발전을 거듭함에 따라 처음의 용도와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모습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속의 행위의 특색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현재 있는 그 위치에서 우리와 만나시며 거기서부터 우리를 위로 끌어올리시는 것이다. 언약을 그 시계(視界) 안의 모든 땅을 포함하며, 그 언약의 효력은 영원하다.

 

3. 언약의 종류

1) 행위언약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맺은 언약 즉 선악과를 금지한 것에 관련된 언약을 16세기 말에 이르러 행위계약 또는 생명의 언약 혹은 법적 언약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16세기 말에 보다 체계적으로 나타난 행위 계약 교리의 역사적 연대기(年代記)를 발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행위 계약 교리가 언약신학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부인(否認)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언약 관계에서 하나님은 일정 기간 동안의 순종을 조건으로 미래를 완전하고 복되게 만드셨다.

 

(1) 행위언약의 성경적 근거

행위 언약이라는 용어는 성경에 없기에, 일부 학자들은 행위 언약을 부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행위 언약의 개념은 성경 전반(全般)에 걸쳐서 표현되어 있다.

창세기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의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먼저 계약을 체결하는 양측, 즉 하나님과 인간이 있다. 그리고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과하신 순종의 조건이다. 그리고 약속, 즉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이 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후 하나님께서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신 것”(3:24)은 언약을 범한 자가 영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교시하는 것이다.

로마서 5:12-21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비하여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이 많은 사람을 죄인 되게 한 것 같이 그리스도 한 사람의 순종이 많은 사람을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하였다고 가르치고 있다. 아담의 범죄는 자신만이 아니고 모든 사람을 죽게 했지만,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생명 안에서 왕 노릇(5:17)하게 되었다. 그것은 아담이 인간을 대표하여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만일 아담 한 사람이 순종했다면 영생이 모든 사람에게 왕 노릇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죄의 전가(轉嫁)와 다른 한편으로는 의()의 전가를 관련지어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한 내용은 아담이 그리스도처럼 언약의 머리였다고 생각해야만 설명할 수 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표자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의 의를 공유(共有)하고 있다면, 우리가 같은 이유에서 아담의 죄책(罪責)을 공유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호세아 6:7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는 사실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행위언약이 맺어졌고, 아담이 이를 지키지 못함으로써 인류의 죽음이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행위언약과 그리스도

아담 이후로 이스라엘이 비록 계약적 책임을 성취하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나라를 이룩하는 그의 목적에 실패하지 않으실 것이다. 타락한 인간 가운데에서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은 방해받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약속들(행위, 구속, 은혜)의 성취자로서 그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31:33)라는 계약 원칙의 핵심을 친히 이루신다. 그러므로 그는 언약을 완성하는 그리스도로 나타나실 수 있다.

 

2) 구속(救贖) 언약

인간이 범죄 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영적 교류는 사실상 단절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언약을 맺음에 있어서 종전처럼 인간과의 직접적인 언약을 맺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은혜 언약을 맺기에 앞서서 구속의 언약을 맺을 필요가 생긴 것이다. 구속 언약은 은혜 언약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상 하나로 볼 수 있다. 다만 은혜 언약은 구속 언약의 토대 위에 세워진 언약이다.

(1) 구속언약의 성경적 근거

성자께서는 자발적으로 범죄 한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고, 성부께서는 그것을 조건으로 구속의 축복을 성자를 통하여 택한 자에게 주며 더불어 성자에게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시겠다는 성경적 근거이다.

구속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영원 전부터 있었다.(1:4, 3:11, 살후 2:13)

그 계획은 언약의 성격을 지녔다.(5:30, 17:4-6)

메시야 예언 가운데는 언약의 요소들인 당사자(2:7-8)와 조건(40:7-8)과 약속(17:5, 24)이 들어 있다.(삼하 7:12-13, 89:3-4)

언약 개념을 메시야와 직접 연결하는 구절로서 여호와의 종에 관해서 말하는 시편 89:3과 이사야 42:6이 있는데, 이 연결은 여호와의 종이 단순히 이스라엘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더욱이 메시야가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말하는 절들이 있는데, 이것은 언약적 용어이다.(22:1-2, 40:8)

 

(2) 구속언약과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구속 언약에 있어서 선택함을 받은 자를 대표하여 성부와 언약을 맺었을 뿐만 아니라, 이 언약의 보증인이 되신다.(7:22)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범죄 한 인간의 신분으로 낮아지심으로써 마지막 아담이 되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구속의 언약은 속죄함을 받은 죄인들에게 있어서는 은혜 언약의 근원이 되지만,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는 행위 언약이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구속 언약으로 말미암아 성자를 희생의 제물로 받으시는 것은 공의의 속성 때문이다. 죄가 있음에도 아무 근거가 없이 죄 없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 될 수 없다. 참으로 구속의 언약은 은혜 언약을 성취시키기 위한 법적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성부 하나님과 구원 받을 자의 대표인 성자 사이에 설정(設定)된 인간 구원을 위한 언약이 구속 언약이다.

 

3) 은혜 언약

은혜 언약의 사상은 종교 개혁 당시부터 거듭 강조되어졌다. 아담의 범죄 직후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셨고, 그 후 아브라함과 족장들을 통해 재천명(再闡明)되어 왔고, 마침내 새 언약 주께서 가라사대 볼찌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31:31이하)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8:13)

에서 완전한 실현에 이른 것으로 간주하였다. “블링거는 이를 유일하고 영원한 계약또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중의 언약이라 불렀다. 또한 칼빈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하나님께서 인간과 더불어 맺은 언약 관계의 대표적인 것으로 보고, 그리스도는 이 언약의 약속을 성취하셨고, 그리스도의 성취가 새 언약을 이룬다고 하였다.

(1) 은혜 언약의 특징

은혜 언약은 구원에 관하여 인간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은혜로운 언약이며, 구원의 계획과 성취와 적용에 있어서 삼위 하나님이 모두 동원된 언약이다.(1:3-5, 19:30, 16:7-8) 또한 시간이 흘러도 효력이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언약이며(17:9, 삼하 23:5), 세상사람 모두가 아니라 택함을 받은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 언약이다. 그리고 신앙과 순종을 조건으로 하지만, 인간의 공로가 필수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무조건적이며(2:8), 계약 당사자 가운데서 하나님의 일방적인 호의(好意)로 성립된 편무(片務)계약이다(6:17).

또한 은혜 언약은 시대에 따라 여러 형태로 주어졌으나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요, 너희는 내 백성이라는 약속의 내용(17:7, 19:5-6, 31:33)과 약속의 조건이 믿음이라는 사실(15:6, 4:9-11) 그리고 중보자가 언제나 동일하다는(딤전2:5,3:19-20,13:8) 일치점을 갖는다.

 

(2) 은혜 언약과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언약의 중보자이다. 그리스도는 특별한 중보자이신데, 그 이유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개재(介在)하셔서 중재(仲裁)만 함이 아니라 실제적인 능력을 가지고 보증인과 율법의 완성자로서 그가 대표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정상(正常) 관계를 갖도록 회복시키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말로써 우리의 죄를 변호하시는 것이 아니고, 죄인이 지불해야 할 죄책을 대신 지불함으로써 율법의 의를 완성시키신 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리신다.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속한 자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며 진리에 따라서 생활함으로써 구원을 완전하게 하도록 인도하며 촉구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는 그를 대신하여 사신(使臣)을 세워서 봉사하게 하심으로 이 일을 계속하신다.(고후 5:20) “바울의 직책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화해의 메시지를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환이요, 증인으로서의 직책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4. 언약의 역사

1) 아담과의 원시(原始) 언약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을 꺾을 것이라는 약속이 원()복음(3:15)이다. 그러나 더 근원적으로는 타락 이전에 하나님은 아담과 언약을 하셨다.(1:28) 이 언약의 주로서 하나님은 전능자의 자리에서 아담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주(the Lord)가 되시고 여호와가 되셨다. 바로 이 사람의 하나님 되시고 언약의 주가 되심을 표시시하기 위하여 창세기 2장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기명(記名)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 첫 언약 체결 후에도 사람과 관계를 맺으실 때 이 여호와 이름으로 일하셨고, 그 언약에 근거해서 그 언약의 약속들을 이행하실 때에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타나시고 일하셨다. 또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하실 때에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타나시고 일을 시작하시고 결말하셨다.(3장 이하)

 

2) 노아와 맺은 언약

홍수 이전에 택한 자의 구원에 대한 암시가 깃들인 언약을 맺으셨고(6:18), 홍수 후에 다시 땅을 침몰시키는 홍수가 없으며(9:8-10) 일반 은총적인 언약을 주셨다. 이는 첫 언약이 하나님의 백성 됨이 그 목표였음이, 이 목표 달성을 위한 갱신된 언약 체결에서 분명히 계시되었다. 이 진리는 노아에게 주신 말씀과 언약에서 분명히 나타났다.(9:1) 노아와의 언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다 회복되는 역사의 끝에까지 지속되고 유효할 것이다.

언약사상은 창세기 3:15의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약속 안에 이미 함축되어 있었으며, 가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약속(4:15) 속에는 아무도 가인을 죽이지 못할 것이라는 약속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자면 언약 사상은 하나님께서 노아와 약속을 맺으시기 전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 약속의 범위는 노아와 그 자손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요 전 인류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어떤 조건들도 주어지지 않았으며 그 효력은 모든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의 표시로서 무지개는 하나님과 땅 사이의 언약의 상징이 되었다(9:13)

 

2)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대한 현세적 축복과 메시야에 대한 영적 축복을 받았으며(15:4-5), 믿음으로 의롭다 여겨졌다(15:6). 이는 신약의 성도들도 창대하여지며 영적 가나안, 즉 천국을 기업으로 받게 될 것을 보여준다(4:12). 아브라함과의 언약체결은 낙원에서의 첫 언약체결의 목적이,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언약의 주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임이 분명하고 확실함을 나타낸다.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은 언약을 지켜야만 했다. 지킨다는 것은 이 은혜 안에 계속 거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열매를 맺게 하는 조건이다. 지킨다는 것은 그것 없이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질 수 없는 상호응답을 가리킨다. 이것의 표시로서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아야 했고 할례받지 않은 자는 누구든지 백성으로부터 끊쳐질 것이었다. 할례는 언약의 표징이요 여호와의 맹세가 유효함을 시간 속에서 증명하는 보증이다.

이것은 후에 하나님의 약속들의 표적이 된 세례와 주의 만찬이라는 성례에서의 모형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백성과 교제를 나누시기를 원하는 욕망의 표현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약속들을 결코 잊지 않으실 것이며 스스로 그것을 증거하실 것이라는 의미에서 무조건적인 반면에 이 약속들에 대해 믿음으로 응답해야 할 각자들이 이 약속들의 축복을 계속해서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것은 그들이 신앙으로 응답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다.

 

3) 모세의 언약

모세 언약의 준수는 이스라엘 국가의 근본적인 기초가 되었다. 이 언약에는 명백한 약정이 들어있다. 여기에서 언약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도권에 대한 이스라엘의 복종적 응답을 의미할 정도로 넓어졌던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부과하신 약정들 위에 이 약속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세우신 시내산 언약은 행위를 조건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노아나 아브라함에게 세우신 언약은 아무런 조건이 없다. 즉 이들 두 개의 언약은 하나는 조건이 있고 하나는 조건이 없다는 점에서 대조를 이룬다. 시내산 언약의 내용은 계명과 율례와 규례 및 법도 등과 같은 율법이다. 그 대부분이 명령과 금령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언약의 내용은 행위를 조건으로 한 언약이다. 이 언약은 행하면 살고 행치 않으면 죽는다는 언약이다.

결국 이스라엘이 약속의 축복 속에 계속 거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오직 그들의 복종의 결과에 달려있다. 이스라엘을 향한 이런 언약적인 도전은 열왕기서를 통해서 자주 반복되는 주제이다. 마지막 환난이 닥칠 때까지 열왕기서 기자는 마치 후렴처럼 각 왕들에 대한 심판을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언약의 저주들이 이스라엘 위에 성취되었다. 이스라엘의 운명은 정해지고 말았다.

 

4) 다윗과 맺은 언약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들을 기억하실 뿐만 아니라 그 약속들을 언급하실 때마다 상당한 정도의 부가적인 축복을 더하신다. 다윗 안에서 족장들에게 주신 약속이 실현되었고 다시 새롭게 되었다”(멘덴할 Mendenhall))는 것이다. 다윗 언약에는 새로운 요소로서 왕국이 첨가된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증거를 지키는 한 그들은 영원히 다윗의 위에 앉을 것이다.

한 영원한 통치자를 그리고 있는 다윗에게 주신 약속은 시 2:7에 다시 언급되고 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이는 신약에서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언급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영원한 언약의 중보자가 될 것이라는 사상은 이사야서의 종의 노래 가운데서 이미 분명해졌다.

 

5. 언약의 성질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는데 있어서 언약의 성질을 알아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 이유는 언약의 성질에 대한 이해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언약의 개념, 종류, 역사 등의 내용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외적인 형식이라고 한다면, 언약의 성질은 하나님의 언약의 내적인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언약의 성질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지식이 불가능하다.

(1) 주권성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세우신 언약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으로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의 동의나 생각을 전연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담에게 세우신 언약에 있어서도 아담의 생각이나 의견을 들어서 세우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독단적인 주권적 사역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세우신 언약 역시 그렇다. 모세에게 세우신 시내산 언약도 조건을 붙여서 세우시기는 했으나 그 조건 역시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의 의견이나 생각과는 전연 관계없이 하나님의 단독적인 뜻에 의해 명하신 언약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도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축으로 하고 있는 언약이다. 예수께서는 내 뜻을 행하러 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다고 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언약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명령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정하신 뜻(작정)을 기초로 해서 세워진 것으로 주권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2) 은혜성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세우신 언약의 은혜성은 복으로 주신 것이라는 뜻도 포함이 된다. 하나님께서 처음 아담에게 언약을 주실 때에 복으로 거저 주셨다. 즉 은혜로 주셨다는 말이다.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세우신 때도 아브라함의 의나 선행을 조건으로 하지 않았다. 아무런 조건이 없이 거저 세워주신 것이다. 완전한 은혜로 세워진 것이다.

모세를 통해 세우신 시내산 언약은 명령을 지켜야 하는 조건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 언약 역시 명령을 지켜 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알게 하시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다. 즉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깨닫게 하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그 언약도 은혜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은 언급할 필요가 없을 만큼 은혜성을 포함하고 있는 언약이다.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대속하셔서 은혜로 거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언약이다.

(3) 실효성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어떠한 종류의 언약도 반드시 이루어지는 실효성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첫 아담에게 세우신 삼대언약은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세우신 언약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과정에서 완전하게 이루신다. 모세를 통해 세우신 시내산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대신해서 몸소 완전하게 이루셨다. 그리스도의 새 언약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완전하게 이루시는 언약이다.

 

6. 언약이 신자의 삶에 주는 영향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한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에 기초를 둔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영원한 작정을 하시고, 그 작정하신 뜻을 인간에게 은혜로 언약하셔서 그 언약대로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특히 신자의 생활에 깊은 영향을 끼친다.

첫째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가능하게 한다. 신앙은 막연한 신념이 아니다. 맹목적인 의타심도 아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가져다주는 엄청난 선물이다. 언약의 주권성은 신앙의 대상을 지시하고, 언약의 은혜성은 신앙의 동기를 유발하며, 언약의 실효성은 신앙의 근거를 제시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 조건이다.

둘째로 하나님께 대한 기도를 가능하게 한다. 기도는 인간의 소원성취를 비는 막연한 염불이 아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가져다주는 엄청난 선물이다. 언약의 주권성은 기도의 대상을 지시하고, 언약의 은혜성은 기도의 동기를 유발하며, 언약의 실효성은 기도의 근거를 제시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하나님께 대한 기도를 가능하게 하는 필수 조건이다.

기독교가 구속의 종교라고 하기보다 언약의 종교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더 언급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구속 역시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를 두기 때문이다. 구속은 하나님의 언약의 선물이다. 구속을 위한 언약이 아니고 언약섭리를 위한 구속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약하시고 언약을 이루심으로 여호와이심을 계시하려는 데 최종 목적이 있다. 따라서 구속은 하나님께서 최종 목적을 달성하시려는 언약섭리의 한 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구속의 종교가 아니라 언약의 종교인 것이다.

 

결 론

아담으로부터 시작되어 노아를 거쳐서 다시 아브라함에게로 그리고 이삭과 야곱을 거쳐서 계승된 언약들은 모세에 이르러 시내산 언약으로 구체화 되었다. 이 언약들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신학자들에 의해)그 이름들을 달리 했지만, 결국 본질은 모두 은혜 언약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약속의 당사자는 인간이 아니라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의 모든 언약은 사실 인간이 행함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언약을 하신 당사자인 여호와 하나님이 스스로 이루어 내실 언약이었다. 그래서 은혜 언약인 것이다.

그리고 장차 오실 메시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가 성취하실 언약은,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는 율법으로(바울의 표현대로 몽학선생”) 그림자적인 역할을 수행해낸 것이다. 다윗과 솔로몬의 견고하고 화려한 왕국의 성취도 은혜 언약의 결과였지만,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는 모형에 불과했다. 이렇게 구약의 언약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이루어지고 통치가 이루어지는 외적 모습이었지만, 이제 그 언약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영(속사람 혹은 생각과 마음)안에 내적 모습으로 성취되었고 또 성취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은혜 언약 안에 행위 언약과 구속 언약이 있는 것이고, 이들 언약 모두는 장차 오실 메시야의 몫이었으며, 이제 우리는 다시 오실 재림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소망 중에,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영원천국의 맛들을 보고 있는 현세천국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 앞에서 인간들은 자신의 의와 능력을 손톱만큼이라도 내세울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언약을 통하여 당신만을 의지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전하게 그리고 영원히 성취되었다. 이 성취 아래서 성도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끝까지 영원천국을 향하여 가는 발걸음을 쉬지 않게 될 것이다.

- 이 상 -

 

 

 

 

출처 : 고촌참길교회
글쓴이 : 오직 성경으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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