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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

하나님아들 2012. 8. 31. 17:53

☞예수가좋다오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

글/ 김홍도 목사

요한복음 12장 24-25절

 

  한 개가 수십 개, 수백 배가 되는 비결을 알고 싶지 않습니까? 그것은 곧 죽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수십 배, 수백 배로 열매를 맺으려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입니다.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떨어져야 하고 또 캄캄하고, 차고, 냄새 나는 땅속으로 들어가서 죽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어둡고, 차갑고, 거름냄새 나는 곳으로 들어가기 싫다고 높고 깨끗한 곳에 가만히 있으면 결국 죽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 맺느니라”고 하셨고 이어 25절에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는 것이 사는 길이요, 많이 죽는 만큼 많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만민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수십억 인구의 영혼이 영생을 얻고 구원받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높고 높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내려오시되 말구유까지 내려오셨고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 인간의 몸을 입으시되종의 형체를 입고 오셔서 그 고통과 수치의 십자가를 지시고 피를 흘려 죽으시기까지 하셔서 수억만의 사람들이 구원받아 천국에 가게 하신 것입니다. 죽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고 고난이 없이 영광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낮아지고 죽으시고 묻히고 죽은 후 부활하셨습니다. 그 결과로 멸망 받은 수십억만의 사람들이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7절에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즉, 목숨을 다시 얻기 위해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고 그것 때문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죽는 것이 사는 길이며 죽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길임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1. 내가 죽어야 많은 영혼이 삽니다.

  “아사즉교회생, 아생즉교회사”(我死卽敎會生,我生卽敎會死)란 말이 있습니다. 목회자가 죽어야 교회가 삽니다. 목회자가 살려고만 하면 교회는 죽습니다. 목회자가 물욕(物慾)도 죽고 명예욕도 죽고 육성이 죽을 때 그만큼 많은 영혼이 살아나서 진정한 교회 성장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개척 교회 할 때, 또 교회가 어려울 때는 희생하고 헌신하고 목숨 걸고 기도하다가도 교회가 부흥되고 등이 따뜻하고 배가 부르면 육신의 안일주의에 빠지고, 성경 읽고 기도하는 시간보다 골프 치는 시간이 많아지고 육신의 사치와 땅 위에 보화를 쌓는 일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목사의 영력(靈力)이 떨어지고 교회가 생명력을 잃게 되어 교회가 쇠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고 요단강을 건너려 할 때,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요단강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물이 갈라지기 시작했고 요단강물이 갈라질 때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건너가기 시작했습니다.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 한가운데 굳게 버티고 서 있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요단강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목회자들이 죽음의 한가운데 서 있는 동안 많은 백성이 살아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11절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결론적으로 12절에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목회자가 많이 죽어질수록 많은 사람이 새 생명을 얻고 구원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어서 수십억만의 영혼이 구원받듯이 우리 목회자들도 또 구원받은 성도들이 죽음에 넘기워 질수록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2. 육성(肉性)이 죽어야 하나님을 봅니다.

  출애굽기 33장에 보면 육신을 가진 인간이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죄악된 육신을 가진 인간이 지극히 거룩한 하나님을 보면 큰 충돌이 생겨서 태양빛을 가까이서 보면 견디지 못해 눈이 멀거나 죽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출애굽기 33장 20절에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가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성(肉性)과 죄성(罪性)이 가득한 육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보면 큰 충돌이 생겨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은 후에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을 가까이보고 하나님을 더 잘 알려면 우리 육성과 죄성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육성과 죄성이 죽으면 죽는 만큼 심령이 밝아져서 하나님을 더 잘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영적인 깊은 경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물욕과 명예욕과 인기욕 등 모든 육성과 죄성이 죽어질 때 하나님을 더 밝히 알게 되고, 더 깊이 하나님과 교제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죽은 것처럼 살고 또 죽어서 천국에 갔다 온 것처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12장 4절에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그 많은 학식, 명예, 세상 영광을 분토와 같이 버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6장 6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6장 11절에는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물욕도 죽고, 명예욕도 죽고, 악한 정욕도 죽어야 합니다. 한번 죽어서 다 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죽은  자 같이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그 긴장이 풀어지면 안 됩니다. 육신의 욕망과 성질이 죽어진 만큼 영성이 맑아지고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물질도 죽음을 통과해야 많이 거둡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헌금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 나서 고린도후서 9장 6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라고 했습니다. 헌금이나 구제를 종자(種子) 심는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심는다는 것은 땅속에 들어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질도 죽음을 통과해야 많은 축복의 열매를 거둘 수가 있습니다. 교회에 오래 다녀도 아까움 없이 하나님께 드려서 축복의 열매를 거두는 체험이 없는 사람은 물질에 자유함을 얻지 못하고 물질의 노예로 살게 됩니다. 주일 헌금도 십일조도 감사헌금도 다 축복의 종자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천국 백성이 된 우리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과 사는 방법도 달라야 하고 사는 목적도 달라야 합니다. 물질을 사용하는 방법도 달라야 하고 복 받는 방법도 달라야 합니다.

 

  어린 아기가 어미 뱃속에 있을 때에는 탯줄을 통하여 영양공급을 받지만 출생한 다음에는 탯줄, 즉 배꼽줄을 잘라버리고 입으로 엄마의 젖을 먹음으로 영양공급을 받는 것인데 출생한 다음에도 탯줄을 자르지 않고 뱃속에서처럼 산다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 16장 4절에 “네가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과 사는 방법도 달라야 하는데 거듭난 후에도 거듭나기 전과 같이 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땅에다 보화를 쌓아 두려고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에 보화를 쌓아야사무엘상 2장 6~8절에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히브리대학교 교수님 말씀에 “복(福)이란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 받는 길이 있는데 우리가 그 방법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참된 복을 받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며 물질의 10분의 1 즉, 십일조를 정확히 드리는 것입니다.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주나 안 주나 시험해 보라”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물질도 죽음을 거쳐야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습니다.


 ① 내가 죽어야 많은 영혼이 구원받습니다. ② 육성이 죽어야 하나님을 밝히 봅니다. ③ 물질도 죽음을 거쳐야 많이 거두게 됩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현재 육신에 속해 있습니다. 얼마 후에 영이 주님께 갈 때까지 육의 복도 받아서 나누어야 합니다. 죽어야 부활이 있습니다. 내가 살았다면 열매는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성질도 죽이고 나의 육신적인 것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길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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