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을 들고 하나님앞에 나아가지 말라. 이것은 저주를 부르는 어리석은 행위이다.
다른 것을 가지고 간다면 우리의죄값을 감당할 것이 없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죽으라는 명령을 당하여 치심을 당할 것이다. 이런 자들이 가인(죽지는 않았으나 교제가 단절되었다.), 베레스웃사의 웃사, 나답과 아비후(레위기 10장), 아나니아와 삽비라 등이다.
죽고자 하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침해하는 우리의 의의 옷을 입고 나아가시라.
그러나 살고자 하면 오직 예수님의 찢기신 몸과 그 흘리신 보혈을 덮고 나아가시라.
이에 대하여 다른 말을 하는 자는 진리를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것인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시는 분의 소유됨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휴거때에 부활되는 자는 다름아닌 이러한 자들 곧 그리스도의 소유물된 사람들이다.
고린도전서 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에게 붙은 자'는 소유격으로 Christ's로 되어 있다.
당신은 예수님의 것인가?
예수님이 당신의 모든 죄를 몸으로 덮어주시고 흘리신 피로 씻어주셔서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주시는가? 스스로 물어보시기를 바란다.
본인은 그런 자가 부활하고 몸이 변화되어서 휴거되리라 믿는다. )
[엡1:7]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구속이란 성령으로 잡아주심인데 이는 예수님의 피로 정결하게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후에(혹은 직후에) 이러한 일을 체험한다. 그리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엡4:30]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성령의 인치심이다.)
[골 1:14]그 아들 안에서 (그의 피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개역판 성경에는 없지만 KJV 에는 엡 1:7과 마찬가지로 그의 보혈이 있다. )
[히2:17]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무엇으로 구속하시는가? 바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셔서 구속하시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은 같이 공존할 수 없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손으로 죄인을 잡아주시면 죄인은 멸망한다. 하나님의 능력은 거룩을 위하여 존재하시지 인간을 위하여 존재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이 치시지 않을, 곧 죄가 없는 자가 되어야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 이외에 이러한 정결함을 이룰 것이 없다.
짐승의 피는 죄를 가리우기만 한 것이다.
예수님은 그저 구속하시지 않으신다. 예수님의 피로 씻어주시고 성령을 부으셔서 구속하신다. 이것이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은혜의 베푸심이다. )
베드로전서 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우리의 죽을 죄악의 행동을 벗어난 것은 오직 예수님의 피로 된 것이다. 이 말씀은 죄를 예수님의 피로 온전히 씻어주셨으니 이제 성령이 임하실 수 있고 그 결과 성령이 인간의 타락한 본성조차 다스려주시기 때문에
그가 말씀을 따라 순종할 수 있으므로 (에스겔 36: 27) 죄악에서 구속된 자가 되는 것이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9:22)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피를 흘리셨으며,
하나님의 대제사장으로서 백성들을 대신하여 피를 뿌리셨다.
그는 유월절, "여호와께서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고 하신 것을 기리는 명절날에 십자가에 달리셨다(출애굽기12:23).
유대인들이 최초의 출애굽을 경축하는 순간에 예수는 두 번째 출애굽을 위한 대속을 행하고 계셨다. 이 제물과 그의 보배로운 피의 효능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죄와 그로 말미암는 형벌(질병 포함)으로부터의 출애굽이 있다.
예수는 자신의 피를 뿌려 다음과 같은 전형(典型)들을 성취하셨다.
제단(십자가)위에서: 출애굽기 24장 6-8절
십자가의 주위에서: 출애굽기 29: 12-16절
대제사장의 옷에서: 출애굽기 29:20-21절
일곱 번 뿌림을 당했으며: 레위기 4:6-7절
십자가 밑에서: 레위기 4장 6-7절
십자가 옆에서: 레위기 5:9
십자가 주위에서, 즉 십자가 밑의 땅에서: 레위기 7:2
성소 앞에서 일곱 번 뿌림을 당했다: 민수기 19:4
마지막 것은 십자가와 갈보리 언덕은 예루살렘 성전이 보이는 곳에 있었다는 점에서 성취되었다.
이 모든 구약의 전형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일 속에서 성취되었는데, 예수는 자신을 우리의 유월절, 우리의 대리인, 우리의 구세주, 우리의 피 제물로 만드셨다. 예수의 피만이 우리의 죄를 덮을 수 있다.
(주: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 되시는 이유인 것이다.믿음으로만 된다고 하는 자는 이러한 깊은 것을 모른다. 사실 깊은 것이 아니라 기본인데 이 기본마저 사단이 가려버리우므로 진리와 동떨어진 교회가 되고 결국은 무능한 교회, 세상을 이기지 못하는 교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의 승리는 예수님이 이렇게 능력있게 우리를 구하실 수 있음을 알고 의지하고 나아가서 그의 피로 씻김받음으로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내 힘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죄씻음받고 내게 임한 성령의 능력으로 따라서 일하는 것이다.
요한일서
5: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5: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5:7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예수님은 말씀뿐 아니라 피로도 우리에게 임하신다. 즉 피로 우리에게 오셔서 피를 적용해주신다. 그 결과 우리는 정결해지고 성령안에 거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다른 구원의 방법을 말하면 기독교와는 다른 이단이다. 즉 우리의 간절함이나 우리의 믿음이나--이것도 우리의 것이다. 성령이 주셨어도 우리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는 예수님의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피가 강조되지 않음으로서 성령의 능력이 없이 그저 긍정적인 사고방식만을 주장하는 이단이 또 생겼다. 죠엘 오스틴이다. 다음 구절은 어떤 것인가? 이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살아갈 수 있다.
요한일서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영생을 누리는 삶, 구원받았음에 대하여 전혀 의심할 바 없이 이 땅에서 영생을 누리고 더욱 풍성히 누리는 삶을 살게 된다.(요 10:10)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5: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5: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 죄가 없으므로 담대하게 하나니의 자녀로서 기업을 요구하는 응답받는 기도생활을 하게 된다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결한 삶이다. 그런 자의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신다.
5: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5: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올바른 중보기도의 생활, 우리는 중보함으로 형제를 사랑하고 살릴 수 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하신다.
요한일서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5: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는 보호하심. 예수님이 성령으로 (성령은 곧 예수님이시다. 헷갈리지 마시기를 바란다. 성령은 곧 예수님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를 감싸고 계심으로 창조주 하나님이신 성령, 거룩하신 성령이 우리를 둘러감싸심으로서 악한 자, 사단은 우리에게 손대기 이전에 성령과 접촉해야 하는데 그것은 그 사단의 멸망이므로 감히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안에서 보호된다.
요한일서 1:7에서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죄를 사함받는다는 말씀을 하는데 이로 말미암아 요한일서의 참다운 하나님과의 교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사도 요한을 본받고자할 때에 그의 믿음과 하나님과의 교제를 요한일서에서 보고 따라갈 수 있다.)
예수께서 갈보리에서 지신 무거운 죄짐을 생각해본다면,
예수께서(육체의 고통이 아니라) 영혼의 고통 속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외치신 것을 어찌 조금이라도 기이하게 여길 수 있겠는가(시편22:1, 마태복음27:46)?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자기 아들을 버리셨는가?
기록된 바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죄를 "참아 보지 못하시기" 때문이다.(하박국1:13)
예수께서는 세상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자기 아들이었지만 참아 보실 수가 없었다.
예수는 우리를 대신하여 죄가 되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우리 죄의 악을 담당하시고 계셨기 때문에,
자기의 몸을 자기의 피로 덮기 전까지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를 참아 보실 수가 없었다.
예수께서 자기의 몸을 자기의 피로 덮은 후에야
아버지께서는 자기의 독생자에게 얼굴을 돌리시고 그를 바라보셨다.
그는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그는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이제 우리의 죄는 사함을 받고 그의 보배로운 피로 덮혔다.
그는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으니,
그것이 아버지께서 요구하신 일이었다.
이 일이 이루어진 후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죄를 바라보신 것이 아니라 자기 아들의 피를 바라보셨다. 그것이면 넉넉하였다. 하나님의 아들이 온 인류를 대신하여 자기의 피 속에 있는 생명을 바치셨던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그 제물을 존중하셨으며, 우리의 대속은 완전히 이루어졌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중히 여긴다면, 아버지께서 미소를 지으시며 우리를 용서하시고 정결케 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따분하게 신학적으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결정적으로 그의 피를 포옹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의 피를 바쳐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덮고 용서하고 탄원하기 위해 바쳐진 자기 아들의 피를 보실 때에는 결코 우리의 죄를 보시지 않는다. 그는 단지 우리의 죄를 덮어주는 것, 즉 예수의 피를 보실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한다" 는 것을 깨닫는다(레위기 17:12).
(맥스웰 화이트의 보혈의 능력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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