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종교심리학의 정의와 학문적 역사
1. 정의
서양의 학문적 역사를 볼 때 심리학은 그 학문의 역사에서 매우 짧다. 심리학이 철학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던 것을 분리시켜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서 위치를 자리매김한 것은 분트(Wilhelm Max Wunt, 1932-1920)가 라이프치히 대학에 실험심리학 연구실을 창설하여(1897년) 구조주의 심리학의 기틀을 마련하면서부터이다. 분트는 분석적 방법인 내성법을 사용하여 인간의 의식을 연구하려 했다. 내성법이란 인간의 감정, 심상, 감각, 의식의 흐름을 분석하는 방법으로서 실험자로 하여금 어떤 자극에 대한 지각 즉 의식한 내용을 자기 스스로 관찰하여 언어로 기록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인간의 의식내용과 행동사이의 연계성에 대하여 별 언급이 없었다. 따라서 학문적 객관성이 약하다는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James와 Dwey는 분트의 방법(의식의 구성요소를 분석하여 그 내용을 아는 것)만으로는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하면서 의식의 전체적 기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분트의 내성법에 인간의 행동을 관찰하는 방법들을 적용하기 시작하여 학습이론이나 행동주의 심리학에 영향을 주었다.
Watson과 Skiner는 학문의 과학주의를 주장하면서 객관적 결과를 볼 수 있는 그 관찰과 측정이 가능한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실험자에게 자극을 주었을 때 그 반응의 양상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집중 연구하였다. 그들은 누구나 자극의 훈련에 의해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이들의 학문연구의 문제점은 인간을 자극에 반응만하는 수동적 존재로 보는 기계론적 인간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최근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인지심리학의 발전은 심리학 분야뿐 아니라 주변 학문들의 변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정보와 영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세계는 인간의 심리구조를 연구하여 경영의 기법에 도입하고 상업화의 전략으로 활용하기 시작함에 따라 심리학은 그 전성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이렇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심리학을 간단히 정의하면 인간의 행동과 정신과정을 연구하는 과학이라 할 수 있다. 심리학은 과학이기 때문에 그 과제를 수행하고 성취하기 위하여 과학적인 연구 방법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러한 전통은 분트 이후부터 계속되어 왔다.
심리학의 다양한 분과 중의 하나인 종교심리학은 응용적인 연구에 속하는데 실제로 이 학문은 사회심리학 분과에 속한다고 하겠다. 종교심리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신학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련의 학자들과 사회심리학의 영역에 속한 학자들로 구성된다. 종교심리학을 매우 간단하게 정의한다면 “종교를 심리학적으로 고찰하고 종교의 심리적 측면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또는 “심리학의 이론을 사용하여 종교현상을 관찰하고 설명하는 학문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를 정리하면 종교심리학이란 종교현상(신앙 형성과 발달 및 종교적 행위를 포함하여)을 심리학이라는 과학의 틀에 의지하여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종교심리학의 학문적 성격에 비추어 볼 때, 학문적인 일의 대부분은 종교의 기능적(역할과 작용) 측면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2. 종교심리학의 연구 주제들
종교심리에 대한 초기 연구는 주로 종교의 경험적 측면에 집중되어 있었다. 특히 종교경험 중에서 가장 관심이 있는 주제는 회심이었다. 이러한 출발은 종교의 주관적이고 情意的 측면을 강조한 제임스(William. James)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편향적인 관심의 집중은 종교와 관련된 인지적 상태, 결단, 행동의 측면을 무시할 수 있으며, 이것은 결과적으로 종교교리, 하느님, 구원공동체 등에 대한 관심을 약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심리학자 올포트 (G.W. Allport)는 자신의 성숙이론 안에서 종교심리학을 연결시키려 했고, 더 나아가 그의 관심은 성숙한 종교성 혹은 성숙한 신앙에 집중을 두었다. 그는 종교를 외향적 종교와 내향적 종교로 분류함으로서 성숙한 종교와 미성숙한 종교에 대한 정감을 범주화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종교심리학의 연구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은 정신분석학이었다. 정신분석의 대표 심리학자 프로이트(S. Freud)는 종교의 기원을 오이디프스 콤플렉스의 영속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친콤플렉스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규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인간은 자신의 종교란 하느님을 자기 자신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이용하기 때문에 개인의 믿음과 종교 행위는 소원 성취라는 관심에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프로이트는 종교의 불필요성을 강조했다. 더 나아가 그는 인간은 단지 삶이 주는 불안이나 고통들로부터 위로받기 위하여 환상적 현실이나 실재를 만들어 그것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이나 칼 융(G.K. Jung)과 같은 심층심리분석학자들은 종교가 갖고 있는 인간 삶에 대한 긍정적인 부분과 그 역할을 찾아냈다. 에릭슨은 정체감 형성에서 종교의 역할을 강조했고, 융은 인간 성숙에 이르는 길을 안내해 주는 종교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정신분석 전통이 종교심리학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대상-관계 이론(Object-Relation Theory)이다. 대상관계이론은 유아의 오이디푸스 이전 단계의 경험의 중요성을 종교에 연결시키고, 연구의 주된 관심을 하느님 상(像)의 형성 과정의 중요성에 두는 것이다. 설명하자면 신앙인에게 있어서 하느님 상은 자신의 부모상과 유사하다는 연구이다.
파울러(J.W. Pauler)는 자신의 신앙 발달 이론을 신학적인 기초와 몇 개의 발달 이론을 결함하여 이론을 정립하였는데, 그의 이론은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계속하여 종교적 발달과 신앙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장 피아제(Jean Piaget)의 인지 발달 이론에 기초한 종교적 사고의 발달과정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로널드 골드만(Ronald Goldman)이나 올포트의 종교성의 발달도 꾸준히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비정상적이고 병리적인 종교적 태도나 관행에 대한 문제는 전통적으로 정신분석 분야의 연구 대상이 되어 왔다.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사이비 종파의 난립으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보고 있는 사례가 빈번해짐에 따라 이러한 현상에 대한 연구 또한 지속적으로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3. 역사적 고찰
가. 종교심리학의 탄생기
학문으로서의 종교심리학은 주로 미국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미국에서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현대 종교심리학은 미국의 그랜빌 S. 홀, 월리암 제임스, 제임스 류바, 에드윈 스타벅등의 연구물로 나타났다. 이의 시작은 1890년경으로 본다. 그랜빌 S. 홀(G. S. Hall 1844~1924)은 하버드 대학의 토요아침 강좌(1881년 2월 5일)에서 청소년기가 종교적인 영향과 회심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연령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은 그 이후 40년 동안 번성했던 전통적인 종교심리학의 원동력이었으며 핵심적이 주제가 되었다. 홀는 뒤이어 "종교심리학 잡지(The Journal of Religious Psychology)"를 창간하고 스타벅과 류바를 비롯한 수많은 종교심리학자를 배출하였다. 이들은 회심의 연령(보통의 사춘기), 회심에 영향을 미치는 유형과 변수, 아동의 종교적 지식, 종교의식과 기도의 구성요소 등 여러 가지 주제를 연구하였는데 주로 질문지법을 사용하였다.
스타벅이 1889년에 저술한 [종교심리학]은 광범위하게 배부한 질문지에 근거하여 종교적 발달에 관한 외적 사실을 확인한 중요한 시도였다. 그가 질문지에 의하여 얻은 결과는 지금까지 인용되고 있는데, 특히 회개와 청년기와의 관계, 소년과 소녀들과의 차이 등을 나타내는 자료들이다.
윌리암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는 주로 비경험적인 사실적 자료들과 기술에 의존하여 연구를 하였는데 예를 들면 한 개인의 자서전, 질문지, 일기 같은 경험자가 직접 자신의 손으로 기록한 일차적 자료인 사례 연구 자료를 주로 사용하였다. 그는 저서 [종교체험의 다양성](1902)에서 1) 종교현상은 다른 정신 현상과 함께 나타나며 그들과 공존한다. 2)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종교에도 장엄하고 숭고함과 어리석음의 두 극을 갖고 있다. 3) 다른 인간적인 노력에서와 같이 종교에서도 감정이 사고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4) 어떤 특정한 충동, 정감, 성향 중의 어느 것도 종교를 표현해 주는 단 하나의 정신적 기능은 없다. 5) 종교는 인간적 측면과 성스러운 측면이 있으며, 심리학은 다만 인간적 측면만 연구할 수 있다. 6) 인간은 단순히 그들의 하느님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을 이용한다. 7) 그리고 ‘종교는 행동에서 나타나는 열매들로 그 자체가 드러난다.’라는 기본 명제들을 기술하고 있다.
제임스 류바(James H. Leuba, 1868~1946)는 엄격한 칼빈주의적 신앙 교육을 받으면서도 진정한 신앙을 경험하지 못하고 회의 속에 살던 중, 마을에 찾아온 구세군의 부흥회에 참석하여 회심을 경험하였다. 그는 클라크 대학에서 종교적 회심을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삼고 수많은 회심자들을 만나 그들의 회심 경험을 수집하고 임상적 면담법(clinical interview method)1)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사용하여 그 성과를 얻게 되었다.
나. 종교심리학의 쇠퇴기
종교심리학 분야의 활발한 연구 활동은 약 20~30년간 계속되었으나 점차적으로 심리학 분야에서 종교에 대한 연구가 금기시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 쇠퇴의 원인은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행동주의 심리학의 발달과 정신분석학이 영향이었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내적 세계인 의식은 객관적인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들은 객관적으로 관찰이 가능한 인간의 외적인 행동에 맞추어 인간을 연구하였다. 이와 함께 프로 이드를 중심으로 한 정신분석학자들은 종교의 의식을 신경증적 강박행동으로 혹은 유치한 유아기적 의식이요 비합리적 관행으로 환원시켜놓았다.2) 이러한 분위기는 학자들로 하여금 종교에 대한 연구를 기피하게 만들어 놓았다. 또한 이에 반발하는 교회로부터의 압력은 종교심리학의 학문적인 존재여부를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이러한 압력은 결과적으로 사목심리학(Pastoral Psychology)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였고, 결국 종교심리학은 교회가 흡수한 상태로 바뀌게 되었다. 그 후 사목상담학 분야는 종교심리학 운동의 자연스런 후계자가 되었고, 초기의 종교심리학자들이 서술하던 회심 경험의 심리학적 기능을 떠맡게 되었다.
프로이드의 종교에 대한 심리학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프로이드와 결별한 분석심리학자 칼 융은 종교심리학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었다. 융은 인간이 추구하는 의미의 문제에 대한 해답의 틀을 제공해 온 것은 전통적으로 종교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이 전통적 진리들이 오늘날 우리 시대에 맞는 사고방식으로 번역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언어로 표현된 모든 위대한 신학자들이나 신비주의자들의 체험과 종교 전통들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체험과 전통들은 오늘 시대와 조화를 이루도록 설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다. 종교심리학의 부흥기
1920년부터 20~30년간 학문적 침체기를 보낸 종교심리학은 1950년대 중반부터 종교에 관한 과학적 연구가 다시 그 발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분야의 부흥에 공헌한 가장 중요한 인물 중에 하나는 고든 올포트이다. 사회심리학자요 성격이론의 대가인 그는 종교성이라든가 종교적 성숙, 또는 종교적 발달과 같은 매우 다양한 측면에서 종교의 과학적 연구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그의 저서 [개인과 종교](The Individual and His Religion, 1950)에서 종교적 현상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하였다. 그는 종교적 탐구의 기원, 아동기와 성년기의 종교, 양심과 도덕적 건강, 의심의 본성, 신앙의 본성을 계속적으로 연구하였다. 그는 종교적 감정의 발생이 인간의 다양한 요소, 즉 신체 기관적 욕구, 기질과 정신적 능력, 관심, 가치, 이성적 설명의 추구, 주위 환경적 문화에 대한 대응 등에 의해 나타난다고 보았다. 그의 이론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성숙한 종교심에 대한 서술이다. 그는 인간의 종교심을 본능적이고 유아적인 종교심으로부터 인격적으로 통합된 종교심으로 변해간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숙함에는 3가지 속성이 있다고 한다. 1) 직접적인 본능적 충동의 포기인 자기 자신의 확장 발전이다. 2) 자기 자신과 자기의 고유한 행동에 대하여 객관적인 입장을 취한다. 3) 개별적 궁극성에 자기 자신을 통합시킨다. 그는 이러한 개념을 추론함으로써 인간은 종교의 진리를 재발견하고 성숙한 인격 안에 종교의 통합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3)
또한 이 시기에 출현한 인본주의 심리학은 종교심리학을 새로운 차원으로 그 시각을 전환시켜주었다. 인본주의 심리학은 개인의 주관적인 내적 경험을 연구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따라서 이 심리학은 자연히 인간의 내적 삶에 관심을 기울이게 해주었고, 이러한 관심은 종교심리학 분야와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이와 함께 인본주의 심리학의 영향으로 나타난 학제 간 교류현상도 이 분야의 발달에 기여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학문 분야에서 학제간 교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환경에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점점 더 학자들로 하여금 어떤 학문 분야도 자신의 분야에 밀폐되어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학문 간의 상호교류는 필수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
1970년대를 거치면서 종교심리학계는 많은 저서들을 내놓게 되었다. 또한 미국 심리학회 안에 종교적 이슈에 관심을 가진 심리학자들이 연대를 하면서 종교심리학 분과를 조직하여 현재 1000명 이상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 있는 모든 신학대학원들이 사목상담학과 사목신학의 영역에서 종교심리학을 필수적인 교육과정에 포함하고 있다.
현재 종교심리학에 관계된 책들은 매우 다양하게 출판되어 있다. 그 중에서 폴 죤슨의 [종교심리학](Psychology of Religion, 1956), 웨인 오츠의 [현대종교심리학](The Psychology of Religion,1973)이 종교심리학의 다양한 분야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메리 조 메도우과 리챠드 D. 카호가 쓴 [종교심리학](Psychology of Religion, 1984)은 종교적 선입견 없이 종교와 심리학을 폭넓게 연결시켜며 종교의 기능과 현상들에 대해 선명하게 연구하여 놓았다.
Ⅱ. 중요 심리학자들의 인간의 이해와 종교
1.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1857~1939)
가. 프로이드의 생애와 연구
많은 사람들이 심리학 하면 ‘프로이드와 정신분석’을 떠올린다. 그리고 프로이드에 대하여 조금 아는 사람은 ‘아, 유물론적이고 인간의 모든 것을 성적인 표현으로 보려고 했던 사람’하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정신분석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 각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프로이드는 1856년 5월 6일 오스트리아 의 프라이베르크 모라비아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태인으로 이복형제 2명 외에 7남매의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 야곱 프로이드는 중년에 아내를 잃고 40세에 20세의 젊은 아말리아 나타존과 결혼했다.
프로이드의 가족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기에 좁은 아파트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의 어머니는 프로이드를 얻었을 때 어떤 노파가 “이 아이는 세계적인 인물이 되겠다”는 예언의 말을 듣고 너무 기뻐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그의 가족들까지 그 예언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프로이드는 그의 유명한 저서 [꿈의 해석]에서 “내가 어떤 위대한 사람이 되려고 열망한 것은 아마도 어머니와 가족들의 기대 때문일지도 모른다”라고 고백하였다. 그의 어머니 는 1930년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언제나 프로이트 곁에서 그의 힘이 되어 주었고, 늙어 백발이 된 자기 아들을 보고도 늘 ‘나의 보배 지키’라고 불렀다 한다. 그는 훗날 자신의 학문과 생활에 강한 힘이 되어준 것은 어머니의 깊은 사랑과 믿음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그 시대의 젊은이들처럼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공부했고, 다른 나라의 고전들을 많이 읽었다. 특히 독일어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고, 한때 문학에 재능을 나타내어 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어학에 많은 재능이 있었다. 영어, 불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었다. 어린시절 장군이나 고급관료가 되고 싶었으나 유태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의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하고 1873년 비엔나 대학 의학부에 입학했다. 1881년 의사 자격을 얻었으며, 가난 때문에 개인 병원의 신경과 의사로 취직했다. 1885년 그는 생리학 스승인 브뤼케의 추천으로 장학금을 얻어 프랑스에 있는 유명한 신경병리학자인 쟝 샤르꼬를 만나 그 밑에서 수개월 동안 공부했다. 샤르코는 최면법의 암시를 통해 히스테리성의 마비나 경련이 일어나는 과정을 발견하고 최면암시볍을 통해 히스테리 신경증을 치료하고 있었다. 프로이드는 이러한 기회를 통해 정신분석을 창시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프로이드는 당시 헬름홀츠의 에너지 보존의 법칙, 다윈의 진화론, 페흐너의 정신물리학, 브뤼케의 역학심리학 등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가 정신과 의사 브로이어 박사를 만난 것은 또 하나의 행운이었다. 브로이어는 환자가 자신의 불안과 그 징후를 이야기함으로써 스스로 그것들을 제거하는 정화법을 발견한 사람이었다. 프로이드는 그와 함께 정화법을 사용하여 보았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 정화법은 히스테리라는 것이 환자에게 잊혀진 어떤 육체적 충격의 결과라는 가정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 그래서 치료법은 잊혀진 충격을 떠올리기 위해 적절한 감정을 수반하여 환자를 최면 상태로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는 브로이어와 함께 1895년 [히스테리 연구]라는 책을 함께 출간하였다. 프로이드는 그 과정 속에서 히스테리의 주된 원인이 성욕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그의 저서 [히스테리 병인론]에 처음으로 정신분석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그 후 1895년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정신분석학의 발전과 그 학문의 이론적이고 실제적인 영향을 탐구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정신분석은 심리학뿐만 아니라 문학, 예술, 인문, 사회 등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거의 모든 행동이 무의식적인 과정에 의해 지배된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무의식적 과정을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무의식은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무의식은 주로 충동, 욕구, 공포, 원망, 공격성, 성욕과 같은 원초적 본능들이다. 그리고 인간이 알 수 있는 의식의 세계는 빙신의 일각에 불과하다.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지배하는 무의식은 물 속에 잠겨 있는 빙하처럼 인간의 정신세계의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무의식적인 성적, 공격적 충동들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든지 처리하여만 한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무의식적 충동들을 억압한다면 그것은 단지 그것이 의식에 떠오르지 못하도록 억누를 뿐이지 근본적인 해결은 될 수 없다는 이론을 폈다. 따라서 무의식적인 충동들은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무의식에서 벗어나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지배하려 할 것이다. 이런 무의식적인 충동들은 꿈이나 말의 실수와 같은 착오행위, 버릇, 그리고 신경증을 비롯한 각종 정신질환으로 나타난다. 또는 무의식적 충동들은 예술이나 문학적 활동과 같은 사회적으로 인정된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그의 정신분석적 접근은 실수와 같은 착오행위, 꿈, 신경증 등을 설명하고 자아를 방어하려는 행위 즉 무의식적인 핑계, 변명, 합리화 더 나아가 포르노 잡지를 금지시키는 사람들의 심층심리까지도 분석하려고 하였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모든 심리와 행동에는 원인이 있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원초적 본능, 특히 성욕과 공격성이라고 보았다. 정신분석은 인간의 무의식적 동기나 소망, 갈등을 다루기 때문에 심층심리학이라고도 한다. 프로이드는 말년에 무의식적 동기 가운데 선천적인 것 외에도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도 있다고 인정하였다. 그리고 성격은 본능적인 이드(id), 이드와 현실이 접촉한 곳에서 구성된 자아(ego), 사회적 규범이 관습과 부모의 영향에 의해 내면화된 양심인 초자아(superego)로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나. 인간 성격의 기본가정
프로이드는 인간의 성격 발달에 중대하게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 기본 원칙을 제시 했다. 즉 정신결정론, (psychic determinism), 무의식적 동기(unconscious motivation), 그리고 성적 에너지(libido)이다.
첫째, 정신결정론이란 인간의 모든 정신적 활동은 자연현상과 마찬가지로 우연히 없으며 그 이전의 행동이나 사건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즉 한 인간의 사고나 감정의 원인을 잘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현재의 행동은 반드시 과거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정신세계, 특히 현재의 그의 성격을 알기 위해 어린 시절의 경험이나 이전의 정신경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인간의 행동은 반드시 무의식적 동기가 반드시 있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살펴보면, 언뜻 보아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 같은데 그 의식의 밑바닥을 보면 인과 관계로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세계가 바로 무의식의 세계이다. 이런 무의식은 인간의 심적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일부분은 자각 상태인 의식과 쉽게 의식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전의식도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대부분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무의식에 의해 동기화 되는 것이다.
셋째, 인간의 사고와 행동의 주요동기는 인간본능의 성적 에너지라는 것이다. 그는 인간이 배고픔, 목마름, 성에 대한 원초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정신적 흥분을 하거나 긴장을 해소해 나감으로서 성격 발달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프로이드의 성의 개념은 감정, 애정, 사랑 등을 모두 포함하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 성격의 구조
프로이드는 인간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욕구를 충족하려할 때 어쩔 수 없이 사회나 현실과의 갈등을 초래하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어떻게 이러한 갈등의 상황을 해결하는지 알아보자. 그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성격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이 출생할 때 갖고 태어나는 원본능(id)은 비이성적이고, 무의식적이고, 이기적이다. 예를 들어 영아는 현실에 대한 감각은 없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에 판단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강력한 충동적 본능에 의해 즉시 그의 욕구를 채워달라고 울음으로 요구한다. 영아는 즉각적인 욕구에 대한 만족을 추구하기 때문에 쾌락원리(pleasure principle)이나 일차적 과정의 사고(primary process thinking)에 의해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후 2년째가 되면 아이들은 자신들의 기본적 본능이 현실과 충돌하거나 마찰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아이가 배고프다는 본능적 충동을 수시로 갖게 되지만 어머니가 있고 없고 에 따라서 그 충동욕구에 대한 충족의 시간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어떤 때는 엄마가 없어 참아야 할 때가 있고, 어떤 때는 엄마가 주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아이는 자신의 욕구 충동은 즉각적으로 만족될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는 계속적인 원초적 본능과 현실사이에 갈등을 경험하게 되고, 이러한 갈등의 과정을 걸쳐 성격의 제 2단계인 自我(ego)가 이드로부터 갈라져 나와(분화) 발달하게 된다. 자아는 언제나 현실원리(reality principle)를 따르며 현실과 타협하기 위해 이성적 사고나 인식, 그리고 계획 등이 포함되는 이차적 과정의 사고(secondary process thinking)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자아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을 것을 의식하면서 생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아는 ‘만족의 지연이 때로는 바람직하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이성적 수준의 성격이다.
원본능이 즉각적인 만족을 원하는 데 비해 자아는 현실 판단을 통해 가장 적절한 해결책을 찾고, 이를 통해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한다. 한 가지 주지할 사
외부세계
의식 자아 가시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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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식 ego
무이식 초자아
superego 원초본능(id)
원본능, 자아, 초자아, 의식간의 관계(출처:Coon, 1980. p 423)
항은 원본능과 자아는 정반대의 성격 수준이 아니라 같은 목표를 향해 역동적으로 작용하는 성격의 두 가지 수준이다.
생후 3~4년이 되면서 발달되기 시작하는 성격의 세 번째 구조는 초자아(superego)이다. 이것은 원본능과는 달리 출생 시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학습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다. 초자아는 자아와 같이 현실과의 접촉을 통해 발달하지만 물리적 현실보다는 사회적 현실에 의해 그 바탕을 형성한다. 초자아는 아동이 부모나 타인과의 자기 동일시를 통해 사회적 가치나 문화적 규범을 얻게 되면서 내면화된 표상이다. 부모나 사회는 아이에게 ‘하지 말라’의 금지와 ‘잘 한다’의 칭찬을 사용하게 된다. 아이는 부모나 사회로부터 듣게 되는 ‘하지 말라’의 금지 명령으로부터 초자아의 한 얼굴인 양심을 형성 받게 된다. 또한 부모나 사회로부터 듣게 되는 ‘잘 한다’의 칭찬을 통해 아이는 초자아의 다른 얼굴인 ‘도덕적 자아 이상’을 형성 받게 되는 것이다. 사회적·문화적 규범은 원본능과 반대되는 것이므로 원본능과 초자아는 일반적으로 갈등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 원본능과 초자아의 갈등을 적절히 해결해 주는 것이 자아라는 중재자이다. 또한 자아는 원본능과 초자아 그리고 현실세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자신도 모르는 방어적 기제를 사용하게 된다.
프로이드의 방어기제에 대한 연구들은 그의 딸에 의해 정리되어져 [에고와 방어기제]라는 제목으로 1936년에 출간되었다. 이 책에 나타난 인간의 방어기제들은 억압· 반대 행동형성 · 투사 · 입사 · 동일시 · 승화 · 무반응 · 역할 반대 · 자학 등이다. 정신분석학자 바일런트(Vaillant, 1975)는 인간 발달 수준에 따라서 18개의 방어 기재를 분류하고 그들을 유사성에 따라서 4개의 그룹으로 나누었다.
첫째, 원시적· 병적 · 나르시시즘적 방어기제로서 망상적 투사, 정신증의 부정, 왜곡이 있다. 둘째, 미성숙한 방어기제로서 퇴행, 동일시, 수동적 공격, 즉흥적 · 추동적 행동, 신체화, (건강염려증, 회피)가 있다. 셋째, 신경증적인 방어기제로서 합리화, 억압, 전치, 반대 행동 형성, 해리가 있다. 넷째, 성숙한 방어기제로서 이타주의, 유머, 억제, 예견, 승화가 있다. 이 밖에 한국인에게는 허세라는 방어기제가 있는데 이는 신경증적인 방어기제에 속한다.
1) 투사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개인감정이나 소망, 태도, 성격특징이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속한 것이라고 지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기제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거나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자신의 결함이나 결점을 본다. 또한 자신의 불만족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만족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들은 실지로는 자신 안에 어떤 사람에 대한 미움의 감정이 있을 때 그 사람이 자신을 미워하기 때문에 그를 미워할 수밖에 없다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투사기제를 아주 심하게 사용하는 경우, 다른 사람의 무의식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되고, 편견, 부당한 의심이나 경계, 오해 그리고 남에게로의 책임전가, 현실을 왜곡시키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는 정신증적 상태나 망상증후군에서 발견되며, 또한 정상상태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기제이다. 일반적으로 투사는 자신이 실어하는 부분을 떼어 내어 다른 사람에게 이전한다. (예)며느리가 나를 독살하려한다는 시어머니 ----> 며느리를 독살하고 싶다는 마음의 투사이다.
2) 부정: 이 기제는 갑작스런 생각· 욕구· 상실· 불안· 걱정· 고통 등을 부정함으로써 마음의 고통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이들은 사건 자체에 대하여 그리고 사건이나 경험과 관련되는 감정에 대하여 부정한다. 예를 들어 질병이나 실패, 불행한 사건을 현실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부정의 기제를 많이 쓰는 사람 중의 하나가 알코올 중독자들이다. 이들은 대개 만취되어 비틀거리면서도 ‘취하지 않았다’, ‘조금밖에 마시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AA 모임 ‘나는 알코올 중독자 입니다.’라고 공개석상에서 말하게 함으로서 치료를 시작하게 한다.
3) 왜곡: 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내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외부 현실을 왜곡시킨다. 예를 들면 환각, 망상, 특히 과대망상적 신념, 우월감과 연관되는 망상이 여기에 속한다. 왜곡은 종교적 신념에서와 같이 매우 적응적일 수 있다. 예) 정신병원에 간 클링톤..
4) 퇴행: 퇴행이란 개인이 직면하고 있는 갈등이나 좌절을 현재의 연령수준에 알맞은 방식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나이 어린 시기에 의존하였던 방식으로 되돌아가서 미성숙한 적응행동을 취하는 방식이다. 예) 어느 사무장의 울음
이제 미성숙한 방어기제에 대하여 살펴보자.
5) 동일시: 이는 가) 존경하는 대상의 힘을 내면화하기 위해 그 대상의 특징, 행동, 가치관을 모방하고, 나) 대상과의 이별상황에서 대상을 내면화함으로써 이별의 현실을 방어하고, 다) 공격자와의 동일시를 통하여 공격적 정서가 자신의 통제 하에 있도록 함으로써 두려움을 방어할 수 있게 된다. 예) 파출소에서 내가 누군지 알어?; 유명한 사람을 한번 만나 기념사진을 찍고나서 ‘내가 그 사람 잘알지...하면서 동류임을 공감하거나 자기 자신과 권위자를 동일시를 한다.’
6) 수동적 공격: 다른 사람에 대한 공격적인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수동적 저항으로 표현함으로써 공격적인 감정을 처리한다. 이러한 행동으로 실수, 꾸물거리는 행동, 저항적인 묵묵부답이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은 어느 시기까지는 개인 자신보다 상대방에게 자극을 주게 된다. 그러나 나중에는 자기 자신에게 해롭고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수동적 공격의 내용은 상대방에게 화가 날 경우 직접 화를 내는 대신, 뒷전에서 일을 훼방 놓거나, 골탕 먹이는 심술궂은 행동을 하거나, 소극적으로 저항하거나, 고집을 세우고,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묵묵부답으로 침묵하고, 늦장을 부리는 행동 등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약속이나 지시를 쉽게 잊어버리는 행동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7) 신체화: 이 기제는 심리적인 갈등이 신체적인 증상으로 전환됨으로서 신체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이다. 이러한 경향성이 있는 개인은 해결하기 어려운 갈등에 처하면 반복하여 신체적인 증상을 나타내면서 심리적인 갈등을 회피하는 반응을 보인다. 이런 개인은 갈등장면에서 회피하면서 극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행동을 취한다. 대인관계는 의존적이고 동정과 관심을 끌고자 자기과시적인 행동을 한다. 예) 시험 날에 배가 아픈 것.
8) 즉흥적 행동화: 행동화는 충동을 행동으로 너무 빨리 변환시키므로 행위자는 자신이 행한 것에 대한 느낌 또는 사고에서 도피하는 기제이다. 또한 행위자로 하여금 행동을 금하는 내재화된 금기를 무시하고 무의식적 충동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도록 하게 한다. 행동화는 젊은이들에겐 보통 있는 일이다. 이 시기에는 본능을 억제하는 자아의 능력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본능이 가장 강하게 표출된다. 친숙하지 않은 열정에 압도되고, 이 열정을 의식할 수 없기에 10대들은 먼저 행동하고, 그러고 나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고 노력한다. 궁극적으로 행동화의 결과는 비참으로 끝이 난다. 예) 자살한 어느 사병(장교의 꾸지람에 즉시 목을)
9) 건강염려증: 이 방어기제는 관심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데, 사람들은 이 기제를 사용함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이들은 첫째, 건겅염려증에서 대인관계의 갈등이나 느낌은 신체의 어느 부분으로 전위된다. 둘째, 이들은 은연중에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처벌한다. 셋째, 건강염려증은 자신의 신체 내부에 있는 타인을 향한 비난을 억제하고, 사실상 남몰래 푹푹 속을 썩임으로써 건강염려증환자의 양심을 달래준다. 넷째, 대부분의 방어기제와는 달리 건강염려증환자는 감정을 과장한다. 건강염려증은 분노, 충족되지 않은 의존욕구, 죄의식 등에서 생기는 고통을 완화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성적 갈등을 관리하기 위해서도 사용될 수 있다. 예) 자식을 통제하기 위해 늘 머리가 아픈 어머니(이런 어머니는 ‘내가 이렇게 아픈 것은 너희 때문이야’라고 무의식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10)회피: 갈등상황이나 문제 상황을 무조건 도피하고자 하는 동기가 강하다. 이러한 동기에 따라 행위자는 문제 상황을 도피하고, 외적인 상황에 순응하고, 문제해결을 체념하는 행동방식을 나타낸다. 예) ‘아니 안돼, 나 바빠’, ‘어떤 일에 책임을 맡고서도 아무것도 안하거나 슬며시 그 자리를 빠져나가 버리는 것. 그리고 다시 나타나서 다른 사람이 이유를 물으면 ’갑자기 중요한 일이 생겨서‘하고 변명한다.
11) 합리화(이지화): 합리화기제는 용납하기 어려운 개인 자신의 태도, 신념, 또는 행동을 정당화하기 쉬한 노력으로서 합리적이 설명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실제로는 사람의 행동은 정당한 동기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동기에 의해 결정될 수 있는데, 이러한 방어기재를 쓰는 사람은 그 가운데서 용납될 수 있는 동기만을 선택하여 개인 자신의 행동이나 태도가 정당한 것인 냥 나타내고자 한다. 합리화는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방어기재이다. 사람들은 어떤 기대나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얼버무린다. 예) 여우와 신포도; 포도를 따다가 실패한 여우, 그곳을 떠나며하는 말- “저 포도는 시어서 먹을 수 없다. 저런 포도는 누가 주어도 먹지 않겠다.”, 친구의 생일모임에 가고 싶었던 김군은 자신이 초대에 빠진 것을 알고 “바빠서 초대했어도 갈 수 없었을 거야”라고 친구들에게 말한다.
12) 억압: 억압기제는 의식 속에서 생각을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고통· 상처· 갈등 등의 마음의 괴로움을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억제하여 기억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프로이드는 ‘잊어버렸다’라는 것은 머리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억압의 힘이 약해지거나 유사한 자극의 힘을 받으면 그 내용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것이 신경증적 증세라고 본다. 예) 19살이 어떤 내담자는 7세 이전의 생활을 아무것도 기억 못했다. 그러나 32세 때 어린시절에 집안에서 일어났던 문제들을 아주 분명히 기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의 어린 시적을 괴롭히게 했던 무시무시한 부모들의 부부싸움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 댔다. 47세 때에 그는 자신의 기분을 부인에게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무엇 때문에 감정이 폭발했는지 알지 못했지만, 감정의 표출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그의 연상이 부인에 대한 말없는 비난으로 이어졌다. 면담하는 가운데 그는 일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기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13) 전치: 전치기제는 원래의 대상에게 느끼는 감정을 그 대상과 유사점이 있는, 그러나 보다 덜 중요하고, 덜 위협적인 다른 대상에게로 옮기는 것이다. 이 때 원래의 대상에게 느끼는 감정이나 욕구는 그 성질이 변화되지 않은 채 대리 대상에게 옮겨진다. 이와 같이 원래의 대상 대신 대리 대상에게로 감정이 옮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개인이 자각할 수도 있고, 자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특히 분노감이나 성적욕구가 대리 대상에게 전치되기 쉽다. 전치의 특수한 경우로서, 감정 지연반응이 있는데, 이런 경우는 원래의 상황에서 느꼈던 분노나 슬픔, 그리고 이러한 속에 동반되는 두려움, 수치감, 죄의식이 시간이 지연된 다음에야 다른 상황에서 느껴지게 된다. 예) 동쪽에서 뺨맞고 서쪽에 가서 분풀이 하는 것. 아버지에게 야단맞고 나서 아버지가 좋아하는 강아지를 발로 차는 것. 아침에 남편에게 싫은 소리를 들은 여선생이 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분풀이를 하는 경우....
14) 반대행동 형성: 이 방어기제는 용납될 수 없는 충동을 억압하고 그러한 충동과는 반대되는 감정이나 행동을 겉으로 표현하도록 만다. 반동형성에 의해 나타나는 감정표현이나 행동은 매우 가장되어 있고 상황에 어울리지 않고 부자연스럽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 기제는 대개 분노와 성욕 그리고 의존성을 너무 지나치게 표현하는 것에 반대해서 전개된다. 그 예로서는 적개심이 겉으로는 지나치게 복종적이거나 상냥하거나 정중한 태도로 표현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예) 1. 한 며느리는 시어머니로부터 혹독하게 시집살이를 했다. 엄격한 종교적 분위기와 유교가문에서 성장한 그녀는 늘 차가운 얼굴로 철저하게 시어머니에게 복종했고, 갑자기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자 굳은 얼굴로 계속해서 시어머니의 뒷수발을 도와드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효녀라고 칭송했으나 그녀의 얼굴은 늘 차갑고 경직되어 있었다. 2. 49세의 박씨는 어렸을 때 치명적인 병을 장기간 앓은 적이 있어서 청소년이 되어서까지도 어머니가 계속 등을 씻어주었다. 그는 성인이 되었을 때 완고하게 자기 독립적인 사람으로 변해서 아랫사람의 의존성을 비난했다. 19세 때에는 친구들 사이에 ‘동정을 잃어버리지 않을 천연기념물 1호’로 뽑혔었고, 수도자가 되고자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49세 때 그는 수도자적인 열망을 버린 지 오래 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지나치게 성을 밝히는 것이 아닌가를 늘 염려 했다. 그러나 사실 객관적으로는 그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었다.
15) 해리: 이 기제는 감정적인 고통을 피하기 위해 개인의 인격이나 자아정체감, 일시적이지만 극적인 의식의 변형이 일어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감정적인 고통을 주는 인격 부분이 해리에 의해 제거되고 개인의 통제를 벗어나 정상적인 의식과 분리되어 독립적인 인격으로 기능한다. 여기에는 대부분의 히스테리성 전환반응, 개인의 행동이나 감정을 일시적으로 지각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포함된다. 모든 자아 방어기제 중에서 해리는 가장 극적이다. 예) 지킬 박사와 하이다.
해리와 억압이 다른 점은 해리는 생각을 의식 속에 남겨두지만 감정은 모두 제거시키는 것이라면(나는 그를 죽이는 것을 생각하지만, 화가 난 건 전혀 아니다.) 억압은 의식상태에 감정은 남기지만, 의식적인 생각을 없앤 나머지 그 대상조차도 모호해 있는 것이다(나는 오늘 화가 나지만 누구한테 그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반대로 전위(전치)는 사람에게 갈등을 유발시킨 사고와 감정은 연결된 채두지만 보다 덜 위험한 대상으로 지향하게 한다. 반동형성은 무의식과는 정반대되는 생각과 감정을 의식상태에 유지한다(그를 사랑하는 것은 나의 그리스도교인으로서의 의무이다). 해리는 자아로 하여금 개인의 내부 상태를 변경시켜서 갈등으로 인한 고통이 부적절해지게 한다.
건강한 대상자들이 사용한 모든 방어적 책략 중의 절반가량은 신경증적 방어이다. 신경증 환자는 의사에게 도움을 구하지만 신경증적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환자라고 볼 수는 없다. 이러한 신경증적인 방어기제는 성숙한 방어기제로 변환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인간의 진정한 고통의 저변에 있는 것은 미성숙한 방어기제이다. 신경증적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스스로 진단한 죄인으로서 사제에게 고해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죄를 받는 사람이다. 반면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성숙한 방어의 사용자들은 사제를 만나고 밖으로 달려 나와서 성당의 문에 돌을 던지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이 어리석은 자들로부터 부당히 박해받는 선각자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옳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타파하는 유일한 길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아을 바라보고 직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성숙한 방어기제에 대하여 살펴보자.
16) 이타주의: 이 방어기제는 자신이 받기를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줌으로써 기쁨을 얻는 것을 포함한다. 이 방어기제에 의하여 개인은 다른 사람에게 건설적인 봉사를 통하여 개인적인 만족감을 얻고 충족적인 경험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사용자로 하여금 내부의 무의식적 열정을 외부적으로는 다르게 표현하는 반동형성기제로부터 발전된 적응기제이다. 이 기제의 사용자들은 이를 통해 예술적 창조처럼 강력한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예) 마더 데레사
17) 억제: 현재 어떤 갈등이나 욕구가 적절하게 다루어질 수 없는 상황일 경우, 이러한 감정이 적절하게 다루어질 때까지 일단 이에 대한 간심을 보류하고 문제해결을 지연시킨다. 이는 의식적이거나 반의식적인 결정으로서, 회피나 뚜렷한 동기 없는 나태한 태도와는 구별된다. 예를 들면 보다 긴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을 때, 그 외의 감정이나 행동을 일단 보류시키고 긴급한 문제를 해결하고 난 다음 적절한 시기가 오면 억제하고 있던 갈등이나 욕구를 다룬다. 이러한 과정에서는 갈등을 감수하면서 행동이나 감정을 보류시킨다. 억제는 효과적으로 사용되면 잘 조절된 항해와 비유될 수 있다.
18) 예견: 이 기제는 미래의 내적 불편함에 대해 현실적인 예견을 하고계획을 세우는 방식이다. 다시 말하면 실제적이거나 잠재적인 걱정스런 결과를 미리 생각해보고 감정적 반응을 예견해 봄으로써, 현실적인 여러 대안 책들을 탐색한다. 무엇보다도 예상은 미래의 불안을 분명하게 지각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하게 되는 능력을 나타낸다. 예) 연극인 이주실
19) 유머: 유머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정말로 우아한 방어 중 하나이다. 프로이드는 이를 가장 좋은 방어기제라고 말했다. 이 방어기제는 다른 사람에게 불쾌한 자극을 주지 않고 개인에게도 불편감을 주지 않으면서 해결해야 할 갈등에 관한 개인의 감정이나 생각을 사실대로 말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런 방식으로 개인이 직면하기 고통스런 문제를 직면할 수 있게 되고, 이를 타인에게도 전달해 준다. 예) 연대 어느 장님교수- 보건복지부 해결사.
20) 승화: 원초적이며 용납될 수 없는 충동을 억제하는데 사용되던 에너지가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방향으로 방출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욕구는 억제되지 않고 방출되고 충족되지만, 욕구의 대상과 목적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뀌게 된다. 예를 들면 개인의 원초적인 욕구가 예술, 문학, 종교, 과학 등 직업 활동으로 표현되거나 공격성의 경우는 오락이나 운동, 취미로 표현된다. 예) 베토벤(귀먹은 작곡가; 모든 세상에 대한 키스와 함께 모든 사람들을 포옹하라: 서정적이고 삶을 긍정하는 합창으로 9번 교향곡에 불멸의 생명을 불어넣었다.)
인간 자아는 인생의 여정을 통해 그 적응양식에 있어서 성숙·발전해 간다. 자아방어기제에 대한 버클리대학의 그랜트연구팀은 조사 대상자들이 30세 때의 모습과 45세 때의 모습의 비교에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반동형성과 공상을 반영하는 행동들은 감소하지만 이타주의와 억제를 반영하는 행동들은 증가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들은 또 30세의 모습과 비교해 볼 때 45세 때에 “훨씬 더 동정적이고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생산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도 알았다. 성숙의 변인 중의 한 가지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지속된 관계에 대한 외관적 환경의 영향이었다. 그리고 생물학적 성숙(고도로 발달된 중추신경계를 갖춤) 역시 사람들과의 더 많은 안락감과 인간관계에 대한 깊어진 이해를 필요로 한다. 여기서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것이 하나가 있는데 사람들이 어린 시절의 미성숙한 방어기제와 계속 접촉을 하면 그러한 방어기제의 사용을 영구화 시키는 경향을 갖기 때문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방어기제가 미성숙한 형태로부터 더욱 성숙한 형태로 발전되어 가는 점을 이해함과 동시에, 성인들의 세계가 아동들의 세계보다 더 안전하고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
* 참고 사항--- 생물학적으로 볼 때 알콜은 뇌세포와 신경계를 손상시킨다. 따라서 만성적 알콜중독은 사람을 방어적 퇴행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알코올중독으로부터의 회복은 적응양식이 다시 성숙해가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 예로 한 미국의 연구대상자는 알콜로 인하여 회계학과 경제학에 강박적인 흥미를 보였다. 더 나아가 상습적으로 취했을 때 그는 비록 덜 적응적이긴 하지만 더 흥분되는 강박적인 도박의 세계로 도피하였다. 그가 성숙한 마음의 평정을 찾은 후에 매사추세츠 주지사에게 공공교육을 위한 재원마련에 대한 조언을 주는 등 그는 내적 만족과 사회적 보상을 얻을 수 있었다.
라. 발달단계
프로이드는 인간 발달은 원본능, 자아, 초자아의 발달로 인해 일련의 단계를 거친다고 보았다. 이 일련의 단계를 심리성적 단계(psychosexual stage)라 하며,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복기, 성기기로 나뉘어진다. 아동이 성장하면서 성적 만족을 얻는 신체부위가 단계마다 변화하나 각 단계는 그 이전의 단계와 그 다음의 단계와 어느 정도까지 겹치게 된다.
1) 구강기(Oral Stage): 구강기는 출생에서 1세 정도까지다. 프로이드는 출생을 인간 불안의 근원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수면은 불안에 대한 도피이며 인간은 자궁에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인간이 어두운 곳을 좋아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을 접촉하고 싶은 것은 이 욕망을 반영한다. 또한 물에 빠지는 꿈도 자궁으로의 복귀를 뜻한다.
구강기에는 입, 입술, 혀, 잇몸 등을 자극하는데 만족을 느껴 빨고, 깨물고, 삼키고, 입술로 장난함으로써 충동적이고 즉각적인 만족을 얻는다.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심으로써 본능적 욕구를 만족시키고 긴장을 해소한다. 세상을 보는 견해인 낙천적인가, 비관적인가는 이 시기에 얻어진다고 한다.
구강기에 어머니가 애정적인 분위기에서 유아에게 수유한다면 유아는 본능적 욕구에 대한 만족을 느끼며, 행복하고 안정된 시기를 지나게 되어 순조롭게 다음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인공유를 수유하는 등 어머니의 애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엄격한 수유시간 등으로 이 시기에 얻어야할 만족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면 이 시기에 고착(fixation)현상이 나타난다. 예)원숭이 실험
유아는 너무 많은 만족에서도 고착현상을 보이는데, 이것은 유아가 누렸던 기쁨에 더 머물고 싶어 하여 다음 단계로의 순조로운 진행을 보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 구강기에 대한 집착현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구강적 성격을 지니게 한다. 구강적 성격의 특징행동들은 손가락 빨기, 손톱 깨물어 뜯기, 지나친 흡연이나 과음, 과식등이 그 예이다.
2) 항문기(Anal Stage): 항문기는 1세에서 3세 정도까지이다. 이들에게는 성적 에너지가 항문과 그 주위부분으로 옮겨 왔기 때문에 항문기라 부르며, 이 시기의 아동은 대·소변의 배출이나 보유에서 만족을 얻는다.
항문기에는 대·소변 가리기 훈련이 시작되므로 그 훈련 과정에서 아동의 본능적 충동은 외부에 의해 통제될 수밖에 없다. 이때 아동은 대·소변의 배출을 통제하기 위해 본능적 욕구에 대한 만족을 지연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또한 아이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아의 분화와 발달의 과정을 걷게 된다.
항문기 동안 적절한 대·소변 가리기 훈련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고착현상이 일어나 항문기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너무 일찍 대소변 가리기 훈련을 시킨다거나 또는 지나치게 청결을 강요한다면 결벽증적인 성격을 갖게 된다. 특히 신체적으로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을 때 대·소변 가리기 훈련이 강요된다면 이러한 현상은 더 현저할 것이다.
아동은 배설물을 즉각적으로 배설하지 않고 참고, 보유함으로써 오는 괘감과 배설하고 난 뒤의 근육의 이완으로 오는 쾌감을 아울러 갖게 된다. 이 경험은 아동으로 하여금 가치 있는 물건을 보유하고 이를 통해 만족을 얻게 된다. 배설물 보유를 적절히 훈련하지 못하였다면 아동은 무엇이나 보유하려고 하는 수전노의 인색함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적절한 대·소변 가리기 훈련이 앞으로의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성격의 성인을 만드는데 중요한 바탕이 됨을 알 수 있다.
3) 남근기(Phallic Stage) 남근기는 대략 3세 이후부터 4~5세까지를 말하는 데, 이 단계에 이르면 주된 성적 에너지가 항문에서 성기로 옮아가서 아동은 성기에 관심을 가지고 가치를 부여한다. 성기를 만지고 자극함으로써 성적 기쁨을 얻고 성별에 대한 신체적 차이를 인식하고 출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 이 시기부터 원본능, 자아, 초자아가 역동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프로이드는 이 시기 동안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현상으로써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를 들었다. 남아는 이 시기에 자신의 어머니를 성적 애착의 대상으로 바라게 되나 어버지가 어머니의 사랑을 얻은 성공적인 경쟁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어머니를 혼자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애정의 경쟁 대상자인 아버지는 신체적으로도 월등하기 때문에 적대감을 느끼기보다는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화시킨다. 더 나아가 아기는 아버지가 자신의 제일 중요한 부분인 성기를 제거할 것이라는 거세 불안(castration anxiety)까지도 상상하게 된다.
이러한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과 어머니에 대한 성적인 욕망 사이에서 느끼는 유아의 심리적 갈등은 그 욕망을 억누르고 동성의 아버지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해결하게 된다. 즉 남아는 자신의 사랑의 경쟁자인 아버지의 도덕률과 기치체계를 내면화함으로써 양심과 남성적 역할을 습득하고 자아 이상을 발달시킨다.
반면, 여아들은 사랑의 짝으로 아버지를 원하나 어머니에 의해 좌절되는 에렉트라 콤프렉스(Electra complex)를 경험하고, 아머지의 사랑을 잃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는다. 여아 역시 동성의 어머니를 동일시함으로써 이 심리적 갈등을 해결한다. 이 시기의 여아는 나아의 성기를 갖지 않았다는데서 남근을 부러워하는 남근 선망(penis envy)을 지니고 있다.
Oedipus complex나 Electra complex가 동성의 부모를 자신과 동일시함으로써 해결하는데 만약 이것이 잘 해결되지 않는다면 계속적인 갈등이 무의식에 남아 앞으로의 성격에 결함을 주게 된다. 예를 들어 동성연애자들은 남근기 동안 동성의 부모를 동일시하는 과정을 순조롭게 경험하지 못한 데서 일어난다고 한다.
4) 잠복기(Latency Stage): 이 시기는 6세 정도에서 시작하여 사춘기에 접어들기까지의 시기로 이때는 성적 욕구에 대한 흥미가 약해지고, 그 욕망을 억누르고 있기에 잠복기라 한다. 성적 만족은 여전히 성기 부위에서 얻으나, 아동의 행동에는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으며, Oedipus complex를 해소하기 위해 성에 대한 표현이 억제된다.
이 때에 아동은 지적 활동인 학업에 열중하고 환경의 탐색도 하며, 앞으로의 사회생활에 필요한 여러 기술도 습득한다. 동성의 친구와 친하게 놀면서 집단을 이루어 몰려다니며 놀이나 게임을 통해 규칙을 알게 되고 사회의 규범에 대해서도 배우나 이성에 대해서는 배타적이다. 따라서 이 시기를 동성기라고도 부른다.
Oedipus complex를 해결하고 잠복기를 성공적으로 보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업이다. 이 시기 과업 수행에 실패하여 고착현상이 일어나면 성인이 되었을 때 이성에 대해 안정감을 갖지 못하고, 이성과의 성관계를 회피하거나, 성행위를 할 때 정서적으로 위축되거나 공격적이 될 수 있다.
5) 성기기(Genital Stage): 프로이드가 볼 때 이 시기는 마지막 단계로서 13세에서 19세 정도까지이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신체적으로 성 기능이 성숙되면서 성적 관심이 높아진다. 성적 만족의 1차적 영역은 여전히 성기 부근이고 이성과의 성적 욕구도 충족시킬 수 있는 생리적인 기능도 갖추게 된다. 그러므로 잠복기에서 동성의 또래 집단간의 관심은 성기기의 시기에 이성과의 접촉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심리적 전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청소년들은 성적 본능을 성숙된 방법으로 만족시킬 뿐 아니라, 이성에 대한 건전한 애정으로 자신의 성본능을 발전시키게 된다. 더 나아가 그들은 자아 중심적인 사고로부터 세계를 객관적으로 보는 사고 능력을 갖게 된다.
이성에 대한 성적 욕구는 심미적인 활동을 통하여 승화시킬 수 있다. 독서, 운동, 과외활동, 사회봉사 활동 등은 도덕적 규범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승화하는 대체활동이라 하겠다. 이 시기의 청소년들이 그들의 성적 에너지를 잘 처리하지 못한다면 비행으로 표출될 수 있다.
마. 프로이드의 종교관
프로이드는 인간의 문화에 관하여 여러 가지 저술활동을 하였다.4) 그는 종교의 기원을 인간의 성격을 형성시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갖고 있는 절대자에게로 향하는 믿음, 절대자에 대한 관념이나 이미지, 그리고 종교적인 관행들을 충동 조절이나 죄책감에 대한 보상행위라는 차원에서 보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인간은 본능적인 충동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할 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삶의 고통으로부터, 그리고 엄청난 자연의 힘으로부터 무력해진 자신을 보호받기 위하여 강력한 보호자로서 신의 존재를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인류가 처음 단계엔 신화적(정령 숭배적), 둘째 단계는 종교적,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학적 단계를 거친다고 설명한다. 그의 종교에 대한 비판은 시대적인 종교분위기에 대한 비판이었다. 당시 하느님에 대한 종교적인 시각은 그에게는 단순히 보상을 바라는 유아적인 모습으로 파악되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하여 ‘하느님이 이렇게 해주시면 나는 이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흥정하는 유아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더 이상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유아적인 환상에서 벗어나 성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현실을 그 자신의 자원들과 과학의 도움으로 지배해야 하고, 도망칠 수 없는 운명의 필연성에 대하여 단념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리학적으로 이것은 괘락원리에서 실재원리에로 전환하는 성숙한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프로이드에게 있어서는 인간이 자신의 진정한 현실을 인식하게 될 때, 종교는 그 필요성이 상실되고, 무의미한 것이 된다. 또한 성숙한 인간은 유아기적 잔재물인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성숙한 상태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현실 도피적인 수단으로서의 그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프로이드의 종교관은 포이에르바하(Ludwig Feuerbach, 1804~1827)가 주장했던 ‘하느님 개념에 대한 투사는 소원이나 환상에서 온다.’라는 무신론적 철학개념을 심리학적으로 입증하려는 시도였다. 그는 당시 종교에 대한 비판적 시도를 함에 있어서 19세기 생물학적 진화론, 유물론적 인과론을 바탕으로 한 당시의 지배적인 과학적 견해를 그의 이론에 무비판적으로 끌어 들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프로이드의 종교관은 후대에 계속해서 비판받게 된다. 프로이드 후대 신 정신분석학파에 의하여 새롭게 제기된 견해에 따르면, 종교는 더 이상 현실 도피적이고 유아기적인 잔재물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성숙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연구되었다.5) 또한 종교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심리적 기제에서 기원되었다는 프로이드의 주장은 후대 에릭슨에 의해서 거부당하였는데, 에릭슨은 종교적 기원이 오이디푸스 단계 이전에 형성되는 아기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6).
그러나 프로이드의 인간에게 있어서 하느님 상은 그들의 아버지 상이라는 분석은 아직까지 그 의미를 갖고 있고, 종교에 대한 유아기적 보상신앙 즉 ‘하느님 내가 이렇게 할 테니 이렇게 해주십시오.’라는 신앙관은 오늘날 우리에게서도 극복해야할 부분이라고 본다.
2. Erik Erikson(1902 ~ 1994)
“아동이 성장하면서 겪는 자아 양식의 위기와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은 성격 발달의 중요한 요인이다.”
프로이드는 심리적인 고통과 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간의 성격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환자들의 꿈을 분석하면서 인간의 성격을 분석해 보았다. 그는 인간의 자아가 어떻게 나타났고, 그 자아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하였다. 그는 자아가 건강하게 자기가 할 일을 하는 경우 그를 성숙한 사람, 건강한 사람으로 정의하였다. 그러한 사람은 본능적인 충동을 억압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충동을 의식의 세계로 끌어올려, 그 의미를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초자아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다. 프로이드에게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관심은 무의식의 영역을 의식의 영역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그 내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본능적인 충동을 승화시키면서 성숙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치료는 환자로 하여금 자신을 진정으로 알게 도와주고, 이해하게 돕는 과정인 것이다.
고전적 정신분석학으로 분류되는 프로이드의 심리학은 인간을 본능의 힘에 지배받는 존재로 보았다는 점에서 비관적이고 환원주의적인 관점을 보이고 있다. 또한 프로이드는 어린 시절의 경험에 거의 절대적인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주장했기 때문에 그의 이론은 정신결정론이라 하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정신분석학 분야에서 프로이드의 입장을 수정하는 새로운 이름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학자중의 한 사람이 에릭슨이다.
독일 심리학자인 에릭슨은 1902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유태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대학의 정식학위가 없는 학자로서 하버드 대학의 교수직을 수행했다. 에릭슨의 발달이론은 근본적으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적 접근에 기초하고 있으나 프로이드와는 달리 아동의 사회적, 문화적 환경의 중요성에 관심을 보였다. 따라서 프로이드의 이론을 심리성적 이론(psychosexual theory)라고 부른다면 에릭슨의 이론은 심리사회적 이론(psychosocial theory)라고 한다. 그는 또한 자아심리학의 입장을 받아들여 인성의 중심 구조를 원초아(id)가 아닌 자아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자아가 인간행동의 기초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인성발달 과정에서도 자아가 형성되는 심리 사회적 환경을 중시하여 인간발달은 전 생애를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인간의 발달은 한 개인이 경험하는 사회적인 상호작용과 개인 내적인 생물학적 성숙이 결합되어 진행되는 것이다. 심리사회적 발달이론 체계에서 자아는 이제 더 이상 원초아(id)에 의해 지배를 받지 않는다. 자아는 자율적인 본성을 갖고 종합하는 기능 및 현실지배라는 그 자체의 동기를 갖는 새로운 의미를 갖추게 되었다. 더 나아가 그는 프로이드와는 달리 건강한 인성과 신경증적 인성을 같은 맥락에 놓고 보지 않았다. 그는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요인들이 인성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확신하였다.
1) 프로이드와 에릭슨의 정신분석학적 이론의 차이점
가. 에릭슨은 문화적 요인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아동의 성장 발달에는 부모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사회, 문화배경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보았다. 반대로 프로이드는 단지 부모의 중요성만을 강조했다.
나. 프로이드는 인간의 발달과정에서 한 단계에서의 실패를 고착이라는 것으로 설명하여 그 실패는 되돌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에릭슨은 비록 실패를 했다하더라도 수정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패를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은 적절한 사랑과 보살핌이라고 말했다. 이런 의미에서 에릭슨은 인간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다. 프로이드는 발달 단계에서의 설명은 20세 이전까지만 언급하였고 그것도 6세 이전이 인간 발달에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에릭슨은 인간의 발달은 평생적인 발달이라고 주장했다.
라. 프로이드는 원초아를 중심으로 한 인간의 심리성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다. 반대로 에릭슨은 자아의 발달에 따른 건강한 정체감 형성을 강조하였고, 심리 사회적 위기를 통해 자아가 발달하는 것임을 증명하였다. 심리 사회적 위기는 신체적 성장이나 문화적 영향에 의해 기인하는 것으로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따라 정상인으로서의 성장이 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이 에릭슨은 인간발달에 있어 유연적이고, 낙관주의적이면서 환경론적인 견해는 인류학적이고 행동주의적인 입장이 많이 첨가된 것으로 보여 진다.
2) 에릭슨의 인간발달이론
가. 제 1단계(유아기): 신뢰감 대 불신감(trust vs. mistrust): 0~1세
에릭슨의 첫 단계인 신뢰감 대 불신감의 시기는 프로이드의 구강기에 해당한 생후 1년간에 형성된다. 에릭슨은 건강한 성격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신뢰감으로 보았다. 따라서 이 시기에 있어서 어머니나 어머니를 대신하는 사람은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된다. 또한 아동이 궁극적으로 갖게 되는 신뢰감과 불신감은 어머니와 아동 관계의 질에 의해 결정된다. 아기가 어머니로부터 따뜻하고 애정적인 보살핌을 받게 되면 앞으로 이어질 사회관계에 대한 신뢰감을 발달시킬 수 있게 된다. 아기는 어머니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됨으로써 어머니가 때때로 없다 하더라도 누군가가 자신을 돌보아 주리라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믿음은 결국 타인에 대한 믿음이며 타인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뢰로 이어지는 것이다.
삶의 기본은 무엇인가? 기본은 신뢰이다. 신뢰는 삶에 있어서 초석과도 같다. 우리가 어린이와 어머니 사이에 신뢰의 관계가 이루어 졌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신뢰의 관계를 이룬 아이는 안정성이 있다. 어머니가 잠시 아이 곁을 떠나면서 시장에 갔다 온다고 하면서 친구와 ‘잘 놀아’하고 말할 때 , 아이는 ‘그래, 잘 갔다 오세요’라고 응답하고 친구와 재미있게 노는 아이가 있다. 반대로 엄마가 어디를 간다고 말하면 악착같이 울며 매달리는 아이가 있다. 전자는 신뢰감이 있는 아이이고, 후자는 신뢰감이 없는 아이인 것이다. 신뢰감과 불신감의 관계는 마치 시소와 같다. 문제는 어느 쪽에 그 중심을 두게 할 것인가이다. 신뢰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발달시키는 덕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희망이라는 덕성이다. 희망이란 불확실한 것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신념이다. 희망의 반대는 절망이다. 절망하는 자는 신체적으로 죽기 전에 먼저 심리적으로 죽게 된다. 예) 죽음의 수용소, 단독비행.
부부사이의 신뢰와 상호존경은 아이의 잉태의 순간부터 태아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임신한 어머니가 ‘지울까, 말까’를 생각할 때 아이는 ‘죽느냐, 사느냐’의 위험을 받게 된다. 부부가 사랑과 신뢰와 존경으로 성관계를 나눌 때, 난자와 정자는 신뢰와 사랑 속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아이와 어머니는 수태되는 순간부터 상호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어머니의 심리는 즉시 아기에게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탄생되고, 사랑과 기쁨으로 어머니와 아버지와 가족들에게 받아들여질 때, 아이는 삶에 대한 신뢰를 갖는다. 출생한 아기는 전적으로 어머니에게 의존되어 있다. 참으로 아기는 타인의 손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는 무력한 존재이다. 따라서 춥고, 배고플 때, 욕구 충족이이 되지 않고 기저귀가 젖었을 때도 어머니가 그 상황을 해결하여 주지 않는다면 아기는 불신의 감정을 가지고 인생을 시작할 것이다. 이러한 신뢰감 대 불신감의 비율은 아기가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맺게 되는 모든 사회적 관계와 사회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가, 혹은 실패하는가에 밀접한 관련을 갖게 된다. 따라서 심리사회적 성격을 주장하는 에릭슨은 이 시기를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로 보고 있다.
나. 제 2 단계(아동 전기): 자율성 대 수치심 및 회의감(autonomy vs. shame and doubt)(자신에 대한 의심): 2~3세
이 시기는 프로이드의 항문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이 시기의 아동은 신체 근육이 성장하고 대변과 소변 가리기로 배설물을 방출하고, 보유시키는 것에 대한 통제를 훈련받는다. 신체적으로 2세가 되면 아기는 자신의 행동 주체자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다. 따라서 지금까지 동물적인 자극과 반응의 반사적(S-R) 행동에서 반응적인 (S-O-R) 행동양식으로 변화한다. 예를 들어 엄마 젖을 빨 경우, 적당한 자극이 주어졌을 때 수동적인 빨기 반사의 행동을 하던 아기는 이 때가 되면 자신의 의도에 의해 젖을 빨게 된다. 아이는 이러한 의도적인 행동을 통해 자율성을 획득하게 된다. 자율성이란 스스로 법칙을 정해 그 법칙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아이들의 경우 이 나이가 되면 어머니로부터 대소변에 대한 훈련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사회적으로 대소변을 보는 것은 시간과 장소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아기는 마음 놓고 기저귀에 일을 보다가 이 때가 되면 서서히 부모로부터 통제를 받게 된다. 아기는 이 과정 속에서 세상에는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이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독립심을 갖게 되고 자율성이 개발되게 된다. 다시 말해서 부모가 사회적으로 적합한 행동을 요구하므로 아기는 이러한 훈련을 통해 결국은 스스로 환경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때 아기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생각과 동시에 자신의 지나친 시도에 대한 주위의 비난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아기는 이 둘 간의 평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만약 아동이 덜 성숙한 상태에서 외부의 통제가 너무 빨리 또는 너무 엄격하거나 강하게 다가온다면 아동은 자신의 통제 능력이 미약함을 느끼는 동시에 외부의 압력자를 조절할 수 없는 무능력함을 느껴 심한 수치심과 자신에 대한 의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아동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감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이거나 구강기로 퇴행함으로써 만족을 추구하려고 한다. 또한 이러한 아이들은 적대적이고, 고집이 세지며, 타인의 도움을 거부함으로써 자신이 진보하고 있음을 가장하려고 시도한다. 만일 아이가 자기에 대한 의심을 갖게 된다면 아기는 나 보다는 더 힘을 갖고 있는 다른 사람이 이 일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런 아이는 자신을 믿지 못하고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게 된다. 또한 아이기 이 단계에서 수치심을 갖게 된다면 수치심을 모면하기 위해 사회가 만든 관습과 법에 맹종하게 된다. 왜냐하면 수치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남의 눈에 나쁜 행동으로 보일 거라는 생각 때문에 사회에서 허용하고 있고 인정하는 율법을 따르게 되고 율법주의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에릭슨은 ‘이 시기의 엄격한 배변 훈련은 아동을 강박적으로 만들어 사랑, 노력, 시간, 돈에 있어 인색해진다’고 하였다. 또한 엄격한 배변훈련은 아이를 소심해지게 하고 강박적인 행위는 회의심, 수치심과 병행하여 나타난다고 하였다. 반면, 확고하고 친절하며 점진적인 배변 훈련을 받은 아동은 자존감을 잃지 않으며 자기 통제 감각을 발달시켜 강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자율의 감각을 획득한다고 보았다.
다. 제 3 단계(아동 후기): 주도성과 죄책감(initiative vs. guilt): 4~5세
주도성이란 인간이 계획이나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하는 성질을 말한다. 이 단계에서 아이는 스스로 자기 식으로 해보겠다는 성향을 많이 보이는 시기이다. 이 때 어머니의 입장에서 아이를 보면 ‘미운 오리새끼’로 보여 지는 것이다. 이 때 아이는 언어를 사용할 수 있고, 신체적으로 혼자할 수 능력이 개발되며 주변의 여러 가지 물건을 점점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많은 호기심으로 질문하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찾음으로써 상상력을 개발한다. 충분한 어휘를 획득한 아기는 그 개념들을 이해하게 되면서 주변 환경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에 목표와 계획을 세우는 주도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 때 아기가 주도하는 행동들은 때때로 사회에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어서 부모로부터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부모의 행동들이 일관되면서도 부드럽지 않다면 아동은 자신의 주도적인 행동에 자신감을 잃을 뿐만 아니라 나쁜 짓을 한다는 죄책감도 갖게 된다. 한국에서의 많은 부모의 행동들을 보면 자기의 아이들에게 일관성을 잃은 행동들을 많이 하고 있다. 엄마는 ‘하지 말라’하고 아빠는 ‘괜찮다’라는 반응은 아이를 혼란하게 한다. 자식이 예쁘다고 아이가 하는 모든 행동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버릇만 나빠진다. 반대로 아이들에게 복종만을 강요한다면 아이 스스로 어떤 것을 시도하려는 주도성의 싹은 잘라져 죄의식만 남게 된다. 이러한 아이는 결국 남이 시키는 일만하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아이는 도덕교과서적인 사람으로 변화되고, 어떤 일을 하고도 스스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이 시기에 있어서 부모의 역할이 아동의 주도성 발달에 중요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수치심이란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이 타인의 눈에 근거해서 나타나는 것이고, 죄의식이란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이 자신의 양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도덕적이다’라는 말과 같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양심도 적당히 발달하여야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 있다. 또한 지나친 죄의식은 현실생활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에릭슨은 지속적인 죄책감 또는 죄의식이 성인기로 연결될 경우 일반화된 소극성, 성적 무기력, 불감증, 정신 병리적 행동 등의 정신병리로 발전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또한 그는 이 시기에 아동이 주도성을 발달시킨다면 죄의식이나 실패의 처벌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가치 있는 목표를 상상하고 그것을 추구해 나가는 용기가 생겨난다고 보았다. 반대로 주도성이 발달되지 않는다면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만을 수행하게 된다고 말한다.
인간의 발달에 있어서 첫 단추는 상당히 중요하다. 만일 아이가 신뢰감을 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율성과 주도성으로 넘어가기 쉬운데 반하여 불신감 속에 성장했다면 수치감과 죄의식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이 시기는 프로이드의 이론에서 볼 때 Oedipus 갈등의 시기로, 동성 부모를 자기 자신과 동일시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하고 그들 자신이 누구인가를 발견하는 시기이다. 이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성 부모에 대한 성 충동의 두려움 또한 죄의식의 원인이 된다.
라. 제 4 단계(학동기): 근면성 대 열등감(industry vs. inferiority): 6~11세
이 시기는 성인이 되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을 발달시키는 과정이다. 이 시기는 프로이드의 잠복기에 해당하고 사춘기 전 단계이다. 이 시기는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작은 사회를 경험하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시기이다. 아동에게 있어서 이 시기는 자신의 삶이 확장되는 시기인 것이다. 아동은 학교에 들어가면서 경쟁을 배우게 된다. 가정에서 공주와 왕자로 자란 아동은 동년배나 선배들을 만나면서 그 꿈이 깨지기 시작한다. 아동들은 내가 잘나서 왕자가 아님을 알게 되고 경쟁을 통해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아동들은 이 시기 동안 모두가 왕자가 되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된다. 그 결과가 열등감이다. 너무 강한 동료를 만나면 경쟁하지 못하고 주의 집중도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 때 외톨이로 떨어지는 아이들이 생겨난다.
또한 아동은 학교생활을 통해 많은 지적 능력을 개발할 뿐 아니라 친구와의 접촉은 사회의 가치관이나 규범을 획득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 아동은 친구들을 통해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되고, 자기의 존재의미를 확립한다. 친구와의 관계에서 아동들이 무엇인가를 주도적으로 할 수 있고, 자신감을 얻게 되면 근면성이 개발된다. 아동들은 가치 있는 일을 하길 원하고 무엇인가 인정받고자 할 뿐 아니라 일을 완성하는데 인내력을 발휘함으로써 만족을 얻는다.
이 때 부모와 교사들은 아동에게 적당한 과업을 주어 그 과업을 수행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러한 과업을 수행하면서 아동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 느낀다면 아동들은 건전한 근면성을 개발하게 된다. 반면 친구와 비교하여 아동이 스스로 자신감이 없다고 느끼거나 학교생활에 적응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입학하여 계속적인 실수를 하게 된다면 자신감과 근면성이 개발되지 못하고 오히려 열등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은 권력에의 의지 즉 우월성의 의지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이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려는 과정은 열등감에서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열등감 그 자체는 나쁘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그 열등감을 승화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열등감은 또한 남들이 갖은 것을 나는 못 가질 수 있다는 느낌이기도 하다. 따라서 부모들은 아동들이 없는 것을 채워 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해서 성취할 수 있는 정신을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일 이 시기에 아동들이 열등감에 빠져 버린 채 성장한다면 그들은 의미 없는 형식주의에 빠지게 된다. 다면 에릭슨은 이 시기에 아동의 잠재적 능력이 개발되어 키워지지 않는다면 영원히 잠재해 버릴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마. 제 5 단계(청소년기): 자아정체감 대 역할 혼란(ego identity vs. role diffusion): 12~18세 혹은 한국에서 대학생시절까지
인간의 성장이란 의존적 상태에서 독립적인 상태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이 시기의 청소년은 아동과 성인의 중간지역에 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이 시기는 가정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 또한 부모에서 교사로 교사에서 친구로 눈을 돌리는 시기이다. 이 때 친구관계를 어떻게 맺느냐가 중요하다. 이 시기에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정체성이 활성화된다. 친구를 만나야 하는데 부모에 의해서 그 과정이 유보되거나 방해받게 된다면 청소년들은 계속 부모의 영향 하에 마마보이로 남게 된다. 이 시기에는 책을 읽고 인생을 논하고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를 찾아야할 시기이다. 청소년은 아동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인도 아닌 상태에서 갈등하게 된다. 이 시기에 청소년은 ‘내가 누구인가?’, ‘내가 무엇을 하여 보람 있게 살 것인가?’를 질문하여야 한다. 정체감의 형성이란 다른 사람이 아닌 진정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청소년 이전의 시기는 동일화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아동들은 첫 번째로 부모에게 의존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자신을 부모와 동일시하게 된다. 그러데 청소년시기는 부모로부터 독립을 시도하는 시기이다. 나와 부모는 다르다는 차이를 알게 되면서 부모에게 반발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청소년은 독립과 의존의 두 세계에서 갈등한다. 부모에게 자신을 의존시킨다면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반면 독립하게 될 때는 그 안정을 포기해야만 한다. 따라서 이 때 청소년은 두려움 속에 살게 되는 것이다. 청소년의 정서상태는 불안정 속에 있다. 그들은 충동적이고 추돌적이다. 만일 이 시기에 청소년이 안정감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는 부모가 시키는 것을 그대로 따르게 된다. 나라는 것을 포기하고 자기 일에 대한 책임을 부모가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자신을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 그 부모가 원하는 것을 거부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부모들은 이 시기에 처한 자녀들의 상태를 그대로 인정해 주고 신뢰해 주어야 한다. 그 때 자녀들은 안정감을 버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청년기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
어떤 청소년은 이 시기에 부모로부터 반발하여 부모가 하지 말라는 것만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된다면 그들은 부정적인 동일시의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부정적인 동일시란 나는 부모처럼 살지는 않을 거라는 마음의 기제에서 나타난다. 이 때 청소년은 부모가 아닌 다른 수많은 모델을 찾게 되고 더욱 커다란 방황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청소년들로 하여금 시행착오를 극복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청소년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있어서 청소년들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부모에게서부터 받았던 안정감을 메꾸게 된다. 따라서 부모들은 자식들의 소원함을 섭섭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부모들은 자식에 대한 믿음과 신뢰, 사랑의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이 시기의 청소년은 부모가 어떻게 해주어도 비판한다. 그럼으로 부모들은 ‘이 녀석이 커갈려고 나를 비판하는구나, 그래 그냥 그렇게 해라. 그렇게 커가는 구나.’하면서 인정해 주어야 한다. 청소년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훨씬 커져가지고 돌아온다. 그래서 훗날 부자의 관계보다 인격적으로 동등한 관계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 시기의 청소년들은 부모로부터 독립의 과정을 거치면서 정체감의 혼돈을 방어하기 위해 영웅이나 위인, 슈퍼스타 등을 동일시하여 그들의 개성을 일시적으로 잊으려고도 한다. 가까운 친구들도 서로 전형적 모델이 됨으로써 정체감 혼돈의 위기를 잘 지나가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일부 청소년들은 첫째, 정체감의 혼돈의 현상이 지속되면서 갖가지 방황과 일탈행동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정체감 혼돈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은 자신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소유하려고 한다. 그들은 돈이든, 물건이든, 지위이든, 여자이든 그들이 탐욕 하는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다고 본다. 만일 그런 것들이 제대로 소유되지 않을 때 그들의 욕망은 행동화되거나 심지어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특성은 ‘신뢰 대 불신’의 위기가 미해결된 상태에서 비롯되는 경향이 높으며, 이런 청소년들은 방탕아적 혼미 상태를 거듭하게 된다. 또한 이들은 존재하는 위기를 부정하고, 약물이나 알코올, 섹스 등의 방법으로 위기를 회피하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일시적으로 정신적 안정을 찾기도 하지만, 이것 지속되거나 심각할 경우 정신분열이나 자살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떤 청소년들은 조기 완료의 시기에 머무는 경우가 있다. 정체감에 대한 조기 완료란 가치와 직업, 개인적 이념 등에 관여는 하고 있지만, 위기의식이 없는 상태이다. 이들은 사춘기의 심리적, 사회적, 육체적 혼돈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일시적으로 회피하기 위하여 부모나 기성세대 또는 동료에 의해 만들어진 기종의 가치체계를 그대로 수용하려고 한다. 따라서 외형상으로는 안정된 상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가치체제가 고착화되어 있고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자신의 정신적인 지주라고 할 수 있는 부모 등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이 높다. 정체성에 대한 조기 완료의 모습은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서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삶의 주체성을 상실하게 되며, 융통성이 결여되게 된다.
어떤 청소년들은 지불유예의 상태에 돌입하기도 한다. 지불유예 상태란 자아 정체성에 대한 관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위기상황만을 경험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들은 자기 삶의 주체성과 독립성을 주장하기에는 무언가 불안감을 느낀다. 이들은 또한 자신감도 없는 까닭에 아동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어중간한 청소년으로서의 특권을 계속 유지시켜 나가고자 하는 일종의 정체상태를 겪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은 좀처럼 자신의 현재의 위치를 바꾸려고 하지 않지만, 새로운 차원의 가치체계에 도전의식을 갖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태도를 고정시켜 놓고는 기존의 가치체계나 권위주의에 대해 도전하고, 비판하고, 모험을 감행함으로써 나름대로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행동이나 생각은 불예측적이다. 그러므로 외형적인 행동에서는 정체감 혼돈과 비슷하게 방황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이들은 과격하지만 열망을 나타내고, 자신의 사회적, 직업적 역할을 탐색하고, 가치관 정립을 위해 계속적으로 노력한다.
자기 개성에 대한 강한 인식을 갖고 자신의 정체감을 갖게 된 청소년은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고, 자신에 대한 확고한 정체감을 형성하여 건전한 성인으로 성장하게 된다.7) 반면, 정체감 혼돈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지 못한 청년들은 생의 후기에 부정적이며, 타인을 잔인하게 취급하고, 영웅에 대해 무조건적 동일시나 충성을 다 하는 미성숙한 인성 특징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에릭슨은 이 시기를 인생에 있어서 두 번째로 중요한 시기로 보고 있다. 에릭슨은 ‘이 시기의 자아 정체감형성이 인생 전체 발달과업의 수직적, 수평적 통합일 뿐만 아니라 생애 동안 반드시 획득해야만 하는 과업이기에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강조하였다. 따라서 에릭슨의 이론을 자아정체감이론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에릭슨의 정체감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는 내적 동일감과 일관성, 그리고 확신감에 대한 자신의 지각 및 자신에 대한 타인의 지각이라고 할 수 있다.
바. 제 6 단계(성인 전기): 친밀성대 고립감(intimacy vs. isolation):
공식적인 학교교육을 마친 시점에서부터 35-40세
이 시기는 청년기에서 성인기로 전이되는 시기로 친밀감을 발달시키지 못하면 고립감의 위기를 갖게 된다. 이 시기 동안 젊은 성인들은 정력적으로 일하고 개인적 ‘정착’을 갈망한다. 이러한 정착은 성적 친밀성과 더불어 사회적 친밀성을 의미한다. 친밀감이란 일반적으로 ‘개인적 정체감의 공유’라고 정의할 수 있다. 친밀감이란 비이기적인 방법으로 다른 사람과 감정이나 가치관을 교류하는 성숙된 인간관계로 자아정체감이 잘 확립된 사람이라면 원만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친밀감이란 자신이 무엇을 상실한다는 두려움 없이 자신의 자아정체감을 다른 어떤 사람과 공유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Evans, 1967:48). 에릭슨은 이러한 친밀감을 성공적인 결혼의 필수조건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진정한 친밀감은 개인적인 정체감의 성취를 전제로 하게 된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진정한 친밀감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인가에 대한 확고한 느낌이 발달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친밀감을 바탕으로 한 결혼은 ‘사랑에 쉽게 빠져서 결혼하는 청소년기의 결혼과 질적으로 다르다. 청소년기에 있어서 이성친구에 대한 친교와 결혼은 상대방을 통해서 자신의 자아정체감을 탐색해 보고자하는 시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청소년기의 결혼은 성인기의 결혼보다 불안정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고립감은 타인과의 친밀감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위기를 스스로 해결하거나 극복하지 못하였을 때 나타나는 반응이다. 이 때 사람들은 자기도취나 소외감, 회피 등의 형태를 나타내게 된다. 고립감에 빠진 사람은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으므로 이성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피상적이고 외형적인 관계만을 지속할 뿐이며, 사회적 공허감이나 소외감을 크게 갖게 된다. 이러한 영향은 자신의 직장에서도 그대로 그 영향이 나타날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직업을 쓸데없는 것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직업에서 소외감을 갖기 쉽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반사회적 행동이나 정신 병리적 성격유형(책임감이나 도덕심이 결여된 사람)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들은 남을 조정하거나 착취하고도 후회하지 않으며,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행동을 나타낼 수 있다.
에릭슨은 남녀간의 사랑이란 서로의 역할이 다르기에 상호 모순 됨에도 불구하고 상호 헌신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은 둘의 인격을 파괴하지 않고 서로의 능력을 함께 공유하는 관계맺음인 것이다. 우리는 종종 하나 됨이란 둘이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판단하고 똑 같이 행동해야 한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래서 두 남녀의 결혼은 두 인격체가 한 몸을 이루기에 똑 같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한다는 착각에 빠진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들은 고립주의에 빠지게 되고 서로가 서로를 힘들게 만든다.
에리 프롬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인간이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할 대상이 갖고 있는 문제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랑에는 네 개의 요소가 있다고 본다. 첫째, 배려함이다. 배려함이란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상대방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노력이 표현된 말이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먼저 예의를 다해 도와주는 것이다. 예) 자동차에서 문을 열어주는 것, 식당에서 옷을 받아주고, 앉을 때 의자를 편안하게 놓아주는 것. 둘째, 책임감이다. 영어에서 responsibility란 response to 즉 ~에 대해 반응하다, 대답하다의 뜻을 갖고 있다. 또한 response는 사회가 한 개인에게 주어지는 의무를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책임감이란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물음에 대한 응답인 것이다.
에리 프롬은 사랑에 배려와 책임만이 있다면 그 둘의 관계는 지배와 복종, 소유의 사랑만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래서 셋째로 필요한 요소가 존경(respect)이다. respect의 어원은 look at에서 나왔다. 상대방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것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더 나아가 상대방을 있는 그대의 모습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 있다. 존경이란 한 개인을 독립된 개성으로 독특한 삶의 모습을 갖고 있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타인에 대한 존경에는 자신에 대한 수용과 존경이 앞서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요소로서는 지식이다. 지식이란 상대방이 어떤 눈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지를 아는 것이다. Knowledge란 understanding의 뜻이 담겨 있다. understanding이란 under + standing의 합성어이다. 그의 아래에 서서 그를 그의 눈을 갖고 그를 보고 세상을 보는 것이다. 그 때 나는 상대방을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 제 7 단계(성인후기):
생산성 대 자기 침체(generativity vs. stagnation): 35~60(65)세
유아기 아동기 전기 아동 후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
부모 부모와 교사 부모와 교사 부모친구 (부모)친구 (친구,
동년배 배우자 자녀,배우자 배우자)
자녀
집 집 + 학교 집+학교 집+직장 집+직장 집
이 시기의 성인들은 다음 세대의 복지와 사회의 건강에 지대한 관심을 나타냄으로써, 자신의 문화를 유지, 보존, 발전시키는 일에서 보람을 느낀다. 이것은 진화적인 면에서 ‘인간은 누군가를 가르치고, 교육시설을 만들고, 학습하는 동물로 진화되어 왔다’고 하는 에릭슨의 신념을 근거로 하고 있다(에릭슨, 1968:291). 이 때 사람들은 자녀, 물건, 이상 등 기존에 이미 있는 것들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된다. 또한 인간은 자기가 아는 것을 가르치는 것에 기뻐하는 내적동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보상을 바래서가 아니라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것은 인간의 문화의 영향에서 나타난다. 부모와 교사, 종교지도자나 예술가, 선배들 등은 자신이 습득한 것을 후배들에게 가르쳐 줌으로써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충족한다. 문화는 릴레이식으로 계속해서 전달되거나 전수된다. 만일 바통을 넘겨줄 사람이 없게 된다면 그들은 쉽게 자기 침체에 빠지게 된다. 자기 침체의 늪에서 나오는 것은 권위주위이다. 우리는 권위와 권위주의를 구별해야 한다.
권위란 타인에게 명령하고 최종결정을 내릴 수 있는 힘이나 능력 또는 권리를 말한다. 사람들은 제 각기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능력이 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그의 능력을 인정하게 된다. 한 개인인 지속적으로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이나 능력을 개발하여 나갈 때 그는 그 부분에 대한 능력과 해결의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다른 사람들은 그에게 권위를 부여해 주게 된다.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킨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돌보아주고, 화목하게 하고, 사랑하는 관계가 형성되고 유지된다. 그래서 그는 그 사회에 한 모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말은 힘이 있고, 사람들은 그가 한 결정을 존중하고 따르게 된다.
이와 반대로 권위주의란 그가 갖고 있는 권력에서 나온다. 그는 신분과 계급과 지위와 돈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사람들이 그에게 굴복하도록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그가 갖고 있는 신분이나 계급을 떠나면 그의 권위는 없어지고 만다. 그래서 그는 타인이 자신의 권력을 노릴까 걱정하고, 의심하고, 그래서 세상을 두렵게 살아가게 된다.
다시 생산성으로 돌아가자. 생산성은 창조적인 과업으로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모든 것, 예컨대 기술적 생산품, 아이디어, 저술, 예술작품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인류복지에 대한 긍정적인 배려가 곧 생산성인 것이다.
이와 반대로 침체감은 이 단계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으로, 개인적 욕구나 안위에만 관심을 가지고 자기도취의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자기 탐닉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무엇에 대해서도 관여하지 않는다. 또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생산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구만을 추구하기 위해 살아가며, 인간관계는 황폐하게 되는 등의 특징을 나타낸다. 이것은 ‘중년기의 위기’라고 일컬어지는 현상으로, 우울증을 비롯한 삶의 무의미감을 확대시키게 된다. 이 시기를 사추기라고 한다. 이 때에 느끼는 허무감은 과거 지향적이다. 잘못 살았다는 후회감과 자식도 소용없다는 절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좀더 장년기의 특징을 살펴본다면 첫째, 신체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시기이다. 둘째, 시간 전망에 대한 변화가 찾아온다. 죽음이 자신의 옆으로 점점 다가옴을 느끼게 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많이 들게 되는 시기이다. 시간에 대한 속도감이 달라지고 따라서 점점 마음이 급해지기도 한다. 셋째, 부모와 자녀, 사회 등의 세계 속에서 자신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넷째, 사회에 있어서 중심의 단체가 되고 전문가로서 자신감이 넘치는 시기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자신을 확장시키는 삶을 살아간다. 다섯째, 보통 자기의 삶을 돌아보는 경향아 많아지고 직장을 옮기거나 다시 종교를 갖고자하는 열망이 생겨나는 시기이다. 여섯째, 여성인 경우 폐경기를 맞이하게 됨에 따라 우울증에 떨어지기도 한다.
아. 제 8 단계(노년기): 자아 통합 대 절망감(integrity vs. despair):
60(65)세 이후
이 시기는 자신의 완성에 대한 노력과 성취에 대하여 반성하게 되고, 체력과 건강의 약화에 대하여 적응하는 시기이다. 이들은 퇴직과 수입의 감소에 대처하여야 하고, 배우자와 친한 친구의 죽음에 직면하여야 한다. 또한 개인의 관심이 미래에서 과거로 현격하게 옮겨지게 되는 시기이다.
에릭슨이 보는 자아통합이란 결혼, 자녀, 손자, 직업, 취미 등을 비롯한 자신의 모든 인생을 돌이켜보고, 겸허하게 그러나 확고하게 “나는 만족스럽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확신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자아 통합을 이룬 사람은 자신의 존재가 후손이나 창조적 업적을 통하여 계속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죽음을 더 이상 두려운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에릭슨은 어떤 개인이 만일 천부적인 지혜를 타고 났다면 실질적으로 ‘노인의 지혜가 바로 그것일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 노인의 지혜는 한 생애에서 얻은 모든 지식의 상대성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이러한 노인들은 죽음에 직면하여 초연하고, 이념의 벽을 넘어서 모두를 포용하고, 자신의 자손만이 아닌 모든 이웃에게 풍족하고 공평한 사랑을 베풀 수 있다.
그래서 노년기의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통합하기 위해 자신의 생을 개관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자신의 생을 회상하고 역사적인 책을 쓰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과거 사건에 대한 의미를 다르게 부여 하게 된다. 그래서 노인들은 자신의 과거에 대하여 계속해서 말하려 한다. 이러한 노력은 자아통합에 대한 노력인 것이다. 자아 통합에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지혜인 것이다.
반면에 절망감이란 죽음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의 심정과 같이, 물러설 수도 없고 이제 다시 시작할 수도 없는 절박한 심정을 뜻한다. 자아통합의 결여나 상실은 죽음에 대한 감추어진 두려움, 되돌릴 수 없는 실패감, 희망했던 것에 대한 끊임없는 미련 등으로 나타난다. 에릭슨은 절망감에 휩싸인 노인들에게서 두 가지 뚜렷한 감정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첫째, 인생이란 다시 살 수 없다는 후회이고, 둘째 자신의 부족함과 결함을 외부세계로 투사함으로써 그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절망감이 극단에 이르게 되면 노인성 정신병, 우울증 등에 걸리게 되며, 매우 심술궂기도 하고 과대망상의 증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3. 에릭슨과 종교
1) 종교의 의미와 기원
에릭슨은 인간의 발달은 전 생애를 통하여 개인이 경험하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개인 내적인 생물학적 성숙이 결합되어 진행된다고 보았다. 그는 8개의 그룹으로 인간발달의 과정을 분류하면서 각 과정마다 도사리고 있는 심리사회적 위기를 제시했다. 심리사회적 위기는 인간이 발달해 가는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정상적인 위기이기 때문에 그는 이것을 발달적 위기라고 하였다.
따라서 누구나 각 단계에서 경험되는 위기를 건강하게 해결함으로써만이 현재의 단계에서의 필요한 성장이 이루어지고, 그것은 다음 단계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자아가 그 기능을 발달시켜 적응력을 갖춘 건전한 인성을 갖춘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각 단계에서 만나는 위기를 적절하게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과 프로이드의 심리성적 발달이론의 차이는 여기서 분명히 다르게 나타난다. 에릭슨의 인생주기 이론은 인간 발달의 역동성 안에서 문화가 내포하고 있는 상징체계와 사회적 제도 및 관습 그리고 전통이 주는 중요한 영향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프로이드의 심리성적 발달이론에서는 사회관습과 문화 등의 요인들이 본능의 욕구를 억압하는 다시 말해 이드와 대립적인 관계로 표현된다. 이러한 차이는 두 사람들이 자아를 보는 시각에 달려 있다.
에릭슨은 그의 저서 ‘청년 루터’에서 세 가지의 주제를 자신의 종교심리학에 연결시키고 있다.
첫째, 에릭슨은 종교를 인간 발달과정에 있어서 영향을 미치는 긍정적인 요인으로 보고 있다. 인간 발달의 구조 안에서 종교는 신뢰감, 희망, 그리고 신앙으로 경험되는 요인으로서 삶의 최초의 신뢰와 불신의 단계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종교심은 인생의 최초의 단계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본래의 바람에서 생겨나므로 인간이 소유한 종교적 차원은 유아와 어머니 사이에 존재하는 신뢰의 관계와 유사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성인의 종교적 표현은 최초의 내적인 경험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 그는 종교를 정체성 형성이라는 인간발달 과제와 이념의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다. 그는 사회 이념의 역할은 인간의 정체성 형성을 위한 제도적인 지원체계로서 대단히 중요성하다고 보았고, 종교는 일종의 신념 체계로서 이념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념적인 존재라고 규정함으로써 이념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대시켜 주었다. 그는 신뢰감은 이념의 정서적 측면이라고 이해하여 종교가 내포하고 있는 이성적이고 지적인 측면과 함께 감정적인 측면도 함께 연결시켜주었다. 그래서 그는 종교가 인간발달의 마지막 과제인 자아 통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고, 죽음의 위협에 놓인 인간에게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자기 초월의 형식으로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셋째, 그는 종교를 고향에 대한 향수의 형태 묘사된다고 보았다. 종교가 향수의 형태로 이해될 때 그것은 어머니와의 일체감을 원하는 강한 바람과, 인간의 양심을 인도해 주는 아버지의 음성에 대한 일깨움, 그리고 순수한 자아 그 자체에 대한 그리움을 의미한다. 이러한 심리적인 상들은 종교의 중심이 되는 심리적 대상이고, 이들은 또한 종교의 첫 번째 주제와도 다시 연결되다. 그러므로 자기초월이란 신뢰감의 원천으로서의 어머니와의 일체감과 이념과 지배적인 신념 체계의 기원으로서의 아버지의 음성과, 그리고 부모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고 그 자리는 바로 순수한 자아가 자리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2) 종교의 역할
그는 종교의 역할을 인간 발달의 각 단계에서 자아가 성취해야 하는 심리사회적 위기의 해결과정과 연결시켜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의 자아란 프로이드의 설명과는 달리 더 이상 원초아의 지배를 받거나 충동조절이라는 이차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자아가 현실 적응이라는 일차적인 기능을 한다고 보기 때문에 자아는 자율적이면서 인성의 중심이 되는 존재로 이해했다.
종교의 어원인 Religio는 서로를 묶어주다(to bind together)는 뜻을 가진 것처럼 종교의 묶어주는 기능은 자아의 능력을 발달시키는데 촉진제가 된다고 본다. 종교는 인간의 전 생애를 통하여 건강한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신뢰감을 보전해 주는 원천이다. 또한 종교는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요구되는 의미의 명료화 기능을 해 준다. 종교는 의식과 이야기 및 상징 등을 통하여 경험의 의미들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하여 우리가 무분별한 혼동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아준다. 그리고 개인의 내적, 외적 세계가 통합되도록 도와주는데 이러한 기능은 청소년기에 더욱 중요하게 작용한다. 종교적 경험을 통하여 얻게 되는 확신은 자아 정체성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청소년기에 이르면서 젊은이들은 자연스럽게 어떤 이념적인 관점에 자신을 헌신하려는 욕구를 갖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정체감 형성과정에서 특정한 신념이나 이념 체계에 근거하여 자신이 희망하는 인생의 방향을 찾으려는 청소년기의 경향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은 막중하다 하겠다.
마지막으로 종교는 자아의 발달과정에서 성인기의 생산적 행위를 격려하고 강조하여 자녀들을 돌보는 능력을 개발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노년기에 들어선 사람들이 불안감이나 무력감에 빠질 경우 종교적 신앙이 그런 사람들에게 삶의 한계를 넘어서는 희망과 활력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3) 종교론 평가
에릭슨의 종교론적 평가는 프로이드와는 달리 그가 모성적인 관점에서 종교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프로이드는 종교의 기원을 오이디푸스 콤플레스의 상황에 두고 있어 필연적으로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적대감, 죄책감, 억압, 심판, 거리감과 같은 심리적 현상들을 느끼게 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러한 아버지에 대한 심리적 현상들은 하느님의 상으로 그대로 이어져 개인의 신앙을 부적절하게 통제하고 지배하여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데 장애 요인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에릭슨은 루터의 연구를 통해 모성적인 차원의 종교가 양육이나 사랑, 용서, 인정, 친밀감, 신뢰와 같은 심리경험들을 통해 개인을 안정감과 평안함으로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실제로 현대의 종교심리학 분야에서 연구된 하느님 상에 대한 자료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신자들은 하느님의 부성적 측면과 모성적 측면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나타났다. 또한 현대성서 신학 분야의 연구도 신자들의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종교가 각 인간 발달단계에서 마주하는 심리적 위기들을 극복하고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 적극적인 기능을 한다고 보았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신앙의 성숙은 인간적인 성숙에 기초한다고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종교에 대한 긍정적 역할에 대한 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의 종교심리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은 종교를 인간이 갖고 있는 하나의 투사라고 보는 점이다. 프로이드와의 차이는 그것이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투사인가 혹은 부정적인 투사인가에 있을 뿐이다.
이러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에릭슨의 종교심리학에서의 업적이라면 종교나 종교적 신앙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미시적으로 고찰하여 일상적인 언어로 정리해 주었다는 것이다.
3. Carl Gustav Jung(1875 ~ 1961)
융은 1875년 스위스 동북부, 투르가우주의 작은 마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961년 퀴스나하트의 호반에서 작고하였다. 융은 어린시절을 언제나 외롭게 보냈다. 그는 어린 시절 벽돌을 쌓았다가 부수기도하고 하면서 스스로의 방법으로 혼자 놀면서 성장하였다. 융의 아버지는 자주 불쾌한 감정과 초조감을 나타냈고 이 때문에 어머니는 정서 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심해지면, 융은 지붕 및 다락방에 올라가 자신이 나무로 깍아 만든 난쟁이 인형을 갖고 놀면서 마음의 평정을 찾기도 했다. 다락방에서 난쟁이 이외에 비밀 조약서와 조그마한 두루마리가 숨겨져 있었다. 융은 난쟁이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기 마음 속의 비밀을 털어 놓곤 했다. 융은 어린 시절 꿈속에서 지하 사원에서 커다란 음경상을 한 신을 만난 꿈을 꾸었다. 이 꿈은 융에게는 최초의 신비한 비밀이었다. 융은 바젤 대학에서 의학공부를 시작했다. 학생시절 융은 두 번의 신비한 경험을 겪게 된다. 한번은 융이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권총을 쏘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옆방으로 뛰어 들어가 보니, 융의 어머니는 커다란 식탁에서 3피트쯤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고, 통나무로 만들어진 식탁이 가장자리에서 한가운데까지 쪼개져 있었다. 그것은 여문 호두나무로 만든 식탁으로 기온이나 습도의 변화로는 쪼개질 리가 없는 것이었다. 두 번째 경험은 어느 날 밤에 일어났다. 이번에는 빵 바구니 속에 넣어 두었던 커다란 칼이 산산조각이 났다. 융은 그 파편을 들고 가서 철물 장수에게 보였다. 그는 그 파편을 살펴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 칼은 아무 데도 흠이 없군요! 강철에는 결함이 없어요. 누가 일부러 조각낸 것 같은데........” 그 후 융은 오랫동안 그 칼을 간직하고 있었다 한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융은 친척 집에서 매주 토요일 밤에 열리는 강신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융은 1900년 정신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의 주요 관심사는 자기 자신의 무의식의 현상이었다. 융은 1903년 엠마 라우센바하와 결혼했고, 그녀는 195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융의 연구에 커다란 협력자의 역할을 계속했다. 융은 1907년 프로이드와 만나 서로 크게 마음이 끌려 장장 13시간의 토론을 보냈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의 개인적이고 직업적인 접촉은 6년 동안 계속되었다. 1909년 융은 아주 재미있는 꿈을 꾸었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이층집에 있었다. 그것은 나의 집이였다. 나는 내가 이층에 있는 것을 알았다. 층계에서 내려와 일층 마루에 도착했다. 거기에 모든 것은 매우 오래된 것들이었다. 나는 그 집의 이부분이 약 15세기에서 16세기의 것들임을 알았다. 나는 하나의 방에서 다른 방으로 갔다. 나는 아주 무거운 문으로 가서 그것을 열었다. 문 넘어 나는 지하실로 연결된 돌계단을 발견했다. 나는 다시 그곳으로 내려갔고, 내 자신이 대단히 오래되어 보이는 아름다운 아치형 방에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아주 가깝게 마루를 보았다. 그것은 돌 슬라브였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나는 한 개의 고리를 발견했다. 내가 그것을 잡아당겼을 때 그 돌 슬라브는 들려졌고, 나는 다시 깊은 곳 까지 연결된 좁은 계단을 보았다. 나는 역시 그 곳으로 내려갔고 돌로 깍은 작은 동굴로 들어갔다. 두꺼운 먼지가 마루에 덮여 있었고, 먼지 속에 마치 원시 문화의 형태로 남아있는 사람의 뼈와 부서진 도기가 있었다. 나는 확실히 아주 오래되고 거의 붕괴된 두개의 해골을 발견했다. 그 때 잠이 깼다.” 이 꿈은 융으로 하여금 첫 번째로 집단 무의식의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했다.
1912년 국제정신분석협회가 창립되자, 융은 프로이드의 주장에 따라 초대 회장이 되었다. 프로이드는 그 무렵 융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그를 가리켜 ‘양자로 삼은 나의 장남, 황태자, 후계자’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와 같은 암시는 융에게 커다란 짐이 되었다. 융은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나는 첫째로 그러한 일은 나의 성격에 맞지 않았으며, 둘째로 나는 지적 독립성을 희생할 수 없었으며, 셋째는 그러한 영광이 나의 참다운 목적을 왜곡시킬 뿐 나에게는 전혀 고마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진리의 탐구에 종사하고 있었던 것이지, 개인적인 명성의 문제 같은 것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이었다.”
융은 프로이드가 근친상간의 주제를 너무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에 집착하고, 상징으로서의 근친상간의 영적인 의의를 파악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융은 정신현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인 리비도를 원인론적인 입장에서 성충동으로만 보는 프로이드의 이론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프로이드의 제자이자 동료 중에 융보다 한 걸음 앞서 프로이드를 떠난 사람 가운데 아들러(Alfred Ad ler 1870~1937)가 있다. 그는 목적론적 입장에서 권력에의 의지를 성충동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보고 자기의 학설을 개인 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라 불렀다.
융은 이 두 사람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이들 두 개의 극을 연결하는데 자기의 위치를 삼았다. 다시 말해서 인간정신은 인과적 관련을 가질 뿐 아니라 미래 지향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 것이다. 즉 융은 정신현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을 중립적인 정신 에너지로 보았다. 왜냐하면 그는 정신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독자적인 존재로서 파악될 때 그 깊이는 이해할 수 없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무의식 속에는 의식보다 먼저 형성되어 있으며 의식을 넘어선 자율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융은 인간의 무의식이 출생 뒤에 형성되는 것도 있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인류태초로 거슬러 올라가는 장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융은 신화, 민담, 각종 종교, 텔레파시 등 그 밖의 정신 현상의 탐구가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그는 바로 이런 것들이 인간 정신의 뿌리를 이루고 있으며,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인 인간 행동의 기본 조건을 이루고 있음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말년에 인간에게는 자아(ego)와는 다른 모든 것을 통합시키고 일치시키는 자기(self)라는 원형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의 연구체계를 완성하였다.
가. 인간 성격의 구조
융은 자신의 학문의 목적을 ‘인격 완성’에 두었다. 인간 성격의 완성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선이며 과업인 동시에 모든 의학적인 치료와는 완전히 독립된 목표이다. 융은 인간의 정신이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는 의식에 의해 억압된 무의식의 에너지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신경증을 일으킬 수 있음을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균형에 대한 일반적인 혼란을 고치기 위해서는 무의식의 내용을 활성화시키고 드러내서 의식과 융화시키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무의식은 억압을 받으면 받을수록 정신적 균형을 위협하게 되는데, 이것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더해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의식과 무의식의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의 심리적인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그래서 융은 다음과 같은 위대한 말을 남겼다. “무의식적인 보상은 손상되지 않은 의식과 협동할 때만 효과가 있다.” 따라서 인간 성격의 완성은 인간 전체 심리를 구성하는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합쳐져서 살아있는 관계에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융은 “인간에게 있어서 박진감 넘치는 심리적 생명의 흐름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하고 말한다. 왜냐하면 무의식은 완전히 의식으로 될 수가 없고, 언제나 더 큰 힘을 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융은 “인간 성격의 완성은 도달할 수 없는 하나의 이상이다. 그러나 이 상은 하나의 과정이지 결코 목표는 아니다.”하고 말한다. 따라서 인간 성격의 발달은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의 축복이면서 저주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는 인간 성격의 발달을 위해서 고독과 고립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융은 “참다운 인간 성격을 갖춘 사람만이 집단 속에서 자기의 위치를 깨달을 수 있다.”하고 말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집단속에 속한 외적 인격과 자신의 참다운 인격에 대한 두 가지의 의미의 자기 인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자기인식은 자기실현을 위한 인간의 개성화과정을 돕는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하여 자세히 조사를 하거나 자기를 실현한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또 다른 중요한 의무이다. 개성화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개체 존재로 되는 것을 말한다. 영어로 Individual 즉 In + dividual 더 나눌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이 말은 우리들 안의 가장 깊고 궁극적인 것, 즉 외적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인격이 아니라 참으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개성화는 인간을 이기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개성 있게 만든다. 개성과 이기주의 그리고 개인주의는 아주 다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혼동해서는 안 된다. 개성화를 통해 인간은 하나의 개인이 되는 동시에 진정한 집단의 구성원이 된다. 그리고 그가 이룩한 완성은 의식과 무의식의 바탕 위에서 전체 세계와 만난다. 즉, 개체와 전체가 연결되는 자기 성격의 완성을 실현하게 된다. 개성화의 과정은 인간의 육체가 성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심리가 성숙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각 개인은 이 개성화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성격을 성숙시키고 원만하게 된다.
따라서 개성화란 의식의 지도 아래에서, 성실하게 내면의 심리과정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려는 노력인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노력은 의식과 무의식의 양극에 있는 긴장을 풀어내어 무의식을 활성화시키고, 그들의 구조에 대한 산지식을 얻게 한다. 바로 이러한 요령과 과정을 통해, 우리는 균형을 잃고 고통 받는 심리를 차근차근 파고들어가 모든 심리의 근원인 자기에 이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타인과 함께 진행하여야 한다. 자기 내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혼자서 알아보고자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성공할 가능성도 아주 적다. 인간이 자기에게만 의존을 한다면 그는 정신적인 자만에 빠지거나, 내용도 없는 명상을 하고 있거나, 자아내부의 격리를 부추기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와 신부가 대화를 통해서 고백을 하고 듣는 것은 대단히 훌륭한 방법이다. 고해를 할 수 없는 비신자들을 위해서 심리분석자와의 만남이 대단히 유용하다. 심리분석과정의 목표는 내담자의 잠재적인 성격의 충족과 완성이다. 또한 이 과정은 자연스럽게 발전해야 한다.
그렇다면 먼저 인간의 마음의 구조를 살펴보자.
자아(나) 의식
0 0
그림자 0 o o 0
o oo o 콤플렉스들 0 o ooooo o 0
아니마 o ooooooo o 개인적무의식
0 o ooooooo o 0
o ooooooo o 집단적무의식
자기 0 o oooooo o 0
o oooo o 원형
0 o o 0
o
마음의 구조
인간의 마음에는 우선 ‘나’ Ich, Ego(자아)라는 것이 있다. ‘나’의 둘레에는 의식이 있다. 내가 의식하고 있는 모든 것, 나의 생각, 내 느낌, 나의 과거, 내가 아는 이 세계, 무엇이든 자아를 통해서 연상되는 정신적 내용은 의식이다. ‘나’는 이 의식의 중심에 위치한다.
자아
의식
개인적 무의식
집단적 무의식
자기
'내‘가 아는 세계를 의식이라 한다면 내 안에 있으면서도 내가 아직 모르는 정신세계를 무의식이라 부른다. 자아에 속하지 않으며 자아와 아직 연관되지 않고 있는 모든 심리적 경향, 내용들을 통틀어서 무의식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무의식이란 아직 의식되지 않은 정신세계로서 자아의 통제 밖에 있는 것이다. 그것을 미지의 정신세계라고 부를 수 도 있다.
‘나’(자아)는 사회 환경을 만나면서 외부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마음인 내부세계와 관계를 갖도록 되어 있다. 우리가 사회라고 하는 세계 속에서는 대사회적 적응태도라든가 역할이 주어진다. 교수, 신학생, 신부, 수녀, 부모, 자녀 등 집단이 개인에게 준 역할, 의무, 약속 등 여러 가지 행동양식을 융은 페르조나 Persona(가면)이라 불렀다. 이것은 외부세계와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인 만큼 그 개체의 외적 인격(external personality)이라 부를 수 있겠다.
인간 마음에는 외적인격에 대응해서 내적인격(internal personality)이 존재한다. 이것을 융은 Seele'넋(혼)‘이라 부른다. 남성과 여성의 경우 그 내적 인격의 특성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남성의 넋(혼)을 아니마(Anima), 여성의 넋(혼)을 아니무스(Animus)라고 불렀다. 외적인격이 자아가 외부세계와 관계를 맺도록 하는 매개체라고 한다면 내적 인격은 자아로 하여금 무의식으로 눈을 돌리게 하는 중요한 교량의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심을 좀더 우리의 무의식으로 돌려 보자. 프로이드는 초기에 무의식을 의식으로부터 억압되어 생긴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융은 인간의 무의식에는 출생 이후의 특수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개인에 따라 서로 다르다는 뜻에서 개인적 무의식과 선천적으로 존재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인간에게 있어 보편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집단적 무의식이 있다고 주장했다.
집단적 무의식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것은 태고유형(Archetypus, 원형)이다. 태고유형은 처음에 단지 ‘내용이 없는 형식’으로 단지 어떤 타입의 지각과 행동의 가능성들로 무의식 속에 담겨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들은 어머니의 기본적인 태고 유형 이미지를 유전적으로 물려받게 된다. 이 미리 형성되어 있는 어머니의 이미지는 현실의 어머니가 나타나 행동하고, 아기가 어머니와 관계를 갖고 어머니를 경험함에 따라 명확하게 그 자신의 이미지의 내용들을 채워나가게 된다. 따라서 각 개인의 어머니에 대한 태고유형의 표현은 각기 그 차이가 있게 되는 것이다. 특별히 태고 유형 중에 페르조나, 남성 속의 여성적 요소(anima), 여성 속의 남성적 요소(animus), 그림자, 자기는 우리의 인격과 행동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태고유형이다. 태고 유형은 인간의 자기실현의 과정에 있어서 중심 혹은 핵으로서 작용하며, 마치 자석처럼 관계가 있는 것들을 끌어 모아 콤플렉스를 형성한다.
의식의 중심이라고 부르는 자아는 나의 정신의 의식된 부분에 불과하므로 자아인 ‘내’가 나의 전체를 통괄하고 자각하려면 무의식적인 것을 하나하나씩 깨달아 나아가는 의식화(개성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제일 먼저 부닥치는 무의식의 내용은 ‘그림자’(Schatten)이다. 그림자란 자아의식의 무의식적인 부분을 말한다. 그림자는 아직은 어둠 속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자아의 일부분이다. 보통 ‘그림자’ 다음에는 ‘넋(혼)인 아니마, 아니무스의 의식화가 뒤따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인간은 자기실현을 하게 된다. 자기실현 혹은 개성화(Individuation)란 결국은 자기의 전체 인격을 실현하는 것을 뜻한다. 융은 자기실현이 인간의 내부에서 우러나오는 필연적 요구하고 보았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 속에는 정신의 분열을 지양하고 통일케 하는 요소가 존재하는 데 이것을 융은 ’자기 자신‘ 또는 본연의 자기(Self)라고 불렀다. 인간은 자아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 무의식적인 것을 깨달음으로써 본연의 자기를 실현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의식은 남김없이 의식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무의식이 갖고 있는 그 깊이를 알 수 없고, 그 성질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완전한 자기실현이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융은 생각했다. 그래서 융은 자기실현이란 완전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원만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융은 자기 전체를 실현시키는 근원적 능력이 의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에 있다고 관찰했다. 그러므로 무의식은 항상 그 근원적인 전체에의 지향성으로 말미암아 의식에 작용하여 의식으로 하여금 무의식적인 내용을 의식하도록 촉구한다. 만일 의식이 그것을 외면하고 무시하면, 자아는 무의식의 힘에 의하여 해리되거나 무의식의 콤플렉스에 의하여 사로잡히게 된다.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정신장애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 뒤에는 ‘해리를 지양하고 통일된 정신세계를 형성하려는 무의식의 지향성이 작용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기실현은 한 인간의 과제일 뿐 아니라 전 인류의 과업이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극소수의 사람들이 거의 완성에 가까운 자기실현을 성취하였다. 사회에 따라서 자기실현을 억압하고 유일 절대의 원칙 밑에 개성을 누르는 경우도 많이 있다. 자기실현을 막는 규범적이고 교조주의적 사회에서는 오히려 자각된 인간들이 사회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며 때로는 박해의 대상이 되는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보다 성숙되기 위해서 먹어야할 쓴 약이다. 상업주의 문화, 매스컴의 집단암시, 그 밖의 집단적 행동은 모두 개성화를 저지한다. 집단은 그 구성원에게 똑같은 생각과 똑같은 행동을 하기를 강요한다. 왜냐하면 자기와 비슷하지 않으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손에 손을 잡고 ‘사이좋게’ 어린 시절의 단꿈 속에서 잠들고자 한다. 그러나 개성화는 이 긴 잠을 깨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개체나 집단이 다같이 고통을 겪고 때로 사회적 물의를 감수 해야만 한다. 모든 개인이 이렇게 자기실현을 이룬다면 하나의 이상적이고 성숙한 사회가 실현될 것이다.
1) 정신
융은 인간성격 전체를 정신(Psyche)이라고 한다. 프시케라는 라틴어는 본래 ‘영혼’을 뜻했지만 한국적 번역으로는 마음을 뜻한다. 정신은 의식적, 무의식적인 모든 생각과 감정 및 행동을 포함하고 있다. 융은 프시케라는 말을 쓰면서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의 전체임을 주장했다. 융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일생을 통해 해야 할 바는, 이 타고난 전체성을, 그리고 분화된 것을 일관성 있고, 조화롭게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뿔뿔이 흩어져 제멋대로 움직임으로써 갈등을 일으키는 삐뚤어진 인간성격을 통합하는 것이다.”
인간 정신은 가지각색이지만, 서로 관련되어 있는 수많은 체계와 수준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신에 있어서는 세 가지 수준으로 구별될 수 있다. 의식, 개인 무의식, 집합무의식이 그것이다.
2) 자아(eg, Ich)와 의식
가) 의식
개인이 알고 있는 마음의 부분은 의식뿐이다. 의식은 무의식적 상태에서 상황에서 생겨난다. 유아기에 우리는 무의식적인 상태에 있다. 가장 중요한 본능적인 기능들은 모두 무의식인 것이다. 아이들은 마치 자아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유아는 네 살 또는 그 이전에 자아감각(sense of ego), ‘나, 내 자신’이라는 것을 발전시킨다. 의식은 첫째로는 자기신체, 자기존재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 둘째로는 일련의 기억에 의해서 형성된다. 그 뒤에 많은 것이 의식을 구성하게 된다. 정신적 기능의 분화, 여러 가지 종류의 개인적 분화 등이 뒤따른다. 사고, 감정, 감각, 직관 등 융의 이른바 정신의 네 가지 기본기능도 의식의 내용이 된다.
아이의 의식적 주의는 생각, 감정, 감각, 직관의 네 가지 심적 기능의 적용을 거쳐서 나날이 성장해 간다. 어린 아이는 이 네 기능을 같은 비율로 쓰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어떤 기능을 다른 기능 보다 상당히 많이 쓴다. 이 네 가지 기능들 중 어떤 것을 우선적으로 썼느냐에 의해 어린 아이의 기본적인 성격이 달라진다. 따라서 사고형의 아이는 감정형의 아이와 성격적인 면에서 상당히 차이가 난다. 이와 같은 네 가지 심적 기능 외에 의식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태도에 따라서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진다. 내향성과 외향성이다. 외향적 태도는 의식을 외적, 객관적 세계 쪽으로 돌리고 내향적 태도는 의식을 내적, 주관적 세계 쪽으로 돌린다.
여기서 인간의 ‘개성화’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개성화는 인간 심리적 발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한다. 개성화란 앞에서 말했듯이 별개의 분할이 불가능한 통일체 또는 ‘전체’가 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인간 개성화의 목표는 가능한 한 완전히 자기 자신을 아는 것, 즉 ‘의식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융은 개성화과정에 있어서 의식의 역할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융은 ‘의식의 시작’은 ‘개성화의 시작’이라고 했다.
‘자아’는 의식의 개성화과정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요소인 것이다.
나) 자아
자아의 탄생 - 이것은 엄청난 일이다. 의식은 무의식의 생산물이고, 자아는 의식에 있어서 문지기와도 같다. 자아는 의식적인 지각, 기억, 생각,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신 전체 속에서 자아는 아주 적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지만, 문지기인 자아에게 그 존재가 인정되지 않는 관념, 감정, 기억, 지각은 자각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아는 매우 선택적이다. 매일 우리는 많은 체험을 한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의식에 도달하기 전에 먼저 자아에게 제거되어 의식적으로 되지 않는다. 이것은 자아의 대단히 중요한 역할이다. 만일 자아가 선택적으로 어떤 경험들을 취하지 않는다면 대량의 자료들이 의식으로 몰려들어 우리는 그 자료 속에 파묻혀 버릴 것이다.
만일 인간에게 자아가 없다면 인간정신의 성숙도 불가능하고 개성화(Individuation)도 불가능하다.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화하려면 자아가 있고 의식이 있어야 한다. 정신분열증에서처럼 자아가 분열되면 모든 가치감각이 사라지고 능동적인 재생을 꾀하기 어려워진다. 자아가 무의식의 내용을 파악하고 그것을 의식화하고자하
면 할수록 무의식은 그의 창조적인 암시를 더욱 활발히 내보내게 된다. 융은 “자아 콤플렉스는 마치 자석과 같은 큰 매력을 갖고 있다. 그것은 무의식의 내용을 우리가
모르는 어둠의 세계에서 끌어당긴다. 그것은 또한 밖에서 오는 여러 가지 인상들을 끌어당긴다. 그것들이 자아와 관련을 가지게 되면 그것들은 의식이 된다.”하고 설명
자아 페르조나
자아 외부세계
의식
무의식 그림자
자기
아니마와 아니무스
자 기
자기실현 자기실현과 ‘페르조나’
한다.
자아는 인간 성격의 동일성과 연속성을 유지하게 한다. 오늘의 네가 어제의 너인 동일한 사람으로 느끼게하는 것은 자아덕분이다. 또한 개성화와 자아는 긴밀히 협력해서, 끊임없이 개별적인 성격을 발달시키고 있다. 자아가 의식화를 허용하느냐, 않느냐는 다음과 같이 결정된다. 감정적 유형인 사람의 자아는 더욱 많은 정서적 경험을 의식화하도록 허락한다. 반대로 사고적 유형인 사람의 자아는 더욱 많은 생각 쪽의 경험을 의식화하도록 허락한다.
3) 페르소나
의식이 분석과정에서 제일 처음에 만나게 되는 것은 페르소나(Persona)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페르소나라는 말은 연극에서 배우들이 썼던 가면을 뜻했다. 융 심리학에서 이 말은 우리의 진정한 성격을 드러내지 않게 하고 그 위에 쓴 가면을 가리킨다. 그러나 배우들은 그 가면을 그들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고 연극 속에서 맡은 역할과 그 자신의 본래 모습을 의식적으로 구분시킨다. 그러나 융의 페르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작용한다. 우리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한, 위험은 그리 크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페르소나를 꼭 필요한 경우에나 혹은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활용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벗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때로 페르소나가 우리를 사로잡을 때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페르소나와 나를 동일화 시킬 때이다. 위험은 이 때 나타난다. 페르조나는 우리의 진정한 존재를 점차적으로 감추어 버리는 가면이다. 예로 우리는 옷이 수도승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경우 옷이 수도승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페르소나는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 페르소나는 자아와 외부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장군님, 변호사님, 교수님, 신학생님, 부모님이 바로 한 개인의 페르조나인 것이다. 만일 자기 자신을 사회가 부여한 역할과 동일화한다면 여러 가지 고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한국사회는 특히 페르조나가 강조되는 사회여서 개인이 싫든 좋든 그것과 동일시하도록 강요하거나 어느 틈엔가 동일시되어 있을 때가 많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으로 개성적인 것을 잊어버리게 만들기 쉬운 사회이다. 한국사회는 누구의 아들, 누구의 아버지, 어디 출신, 무슨 직위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한 개인의 개성과 능력을 판단할 때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회이다. 또한 집단적 규범을 벗어나 조금이라도 개성을 발휘하려고 하면 즉각 이를 위험시하고 아들된 도리, 친구의 의리를 내세우고 집단으로부터의 이탈을 이기적, 비인간적, 몰인정, 몰상식 등으로 규탄함으로써 사회규범의 와해를 막고 개인을 일정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집단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자아는 차츰 자기도 모르게 집단정신에 동화되어 그것이 자기의 진정한 개성인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페르조나는 그것이 사회적인 것이건, 내면적인 것이건 우리 인격의 본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문제를 파고 들어가면 페르조나는 좀더 미묘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 이유는 페르조나가 언제나 우리의 교만 또는 자부심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만과 그의 동료인 이기심은 언제나 정신적 왜곡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자아가 자신을 페르조나와 동일화 할 때 교만이나 권위주의가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잘못된 겸손이나 거짓 자비, 잘못된 열등감도 나타날 수 있다. 성서에서 바리새인들이 페르조나의 한 유형이라 하겠다.
페르조나의 문제와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참되게 사는 것이다. 그런데 참되려면 자기 자신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기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도 완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의 무의식은 사람들에게 페르조나의 다양한 요소들을 조금씩 보여주면서, 무의식을 알게 해 준다. 우리는 우리의 약점이 어디 있는가 하는 사실을 알 때, 우리의 약점을 고칠 수 있다. 따라서 각성된 마음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도 한번의 각성이 아니라 각성된 의식은 끊임없이 작용해야 한다.
4) 그림자
개성화의 목표는 가능한 완전히 자기 자신을 아는 것, 즉 '자기의식'에 있다. 결국 결정적인 요인은 의식이다. 개성화와 의식은 인격의 발달과정에서 항상 같이 보조를 맞추고 있다. 의식이 증가하면 자연히 개성화도 증가한다. 개성화과정의 첫째 단계는 우리들의 ‘어두운 면’, 즉 ‘우리 마음속의 어두운 반려자’ ‘검은 형제’를 경험하는 것이다. 자아의 ‘어두운 면’이란 아직 분화되지 않은 기능과 덜 발달한 태도유형이다.
빛 앞에 선 모든 물체는 뒷부분에 그림자를 갖는다. 그림자는 다른 어떤 태고유형보다도 인간의 기본적인 동물적 본성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개인의 기능적이고 태도적인 유형에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그림자와 만나게 된다. 이 사건은 개인에게 있어서 경험적이고 의식적인 현실이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정의를 주장하는 사람이 부정의 수렁에 자기도 모르게 빠지며, 도덕적인 결백을 신조로 내세우는 사람이 성적인 추문을 일으키며, 자유와 고매한 정신을 지향하는 지식인이 권력과 금욕에 눈이 어두워 뭇사람의 손가락질을 받는 것을 본다. 위선자라든가 이중인격자란 바로 자기 마음속의 ‘검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못하는 데서 온다. 민간설화에 나오는 ‘흥부’와 ‘놀부’, ‘콩쥐’와 ‘팥쥐’ 등 무수한 쌍들이 바로 인간정신의 의식성과 무의식성, 밝음과 어두움을 표현하고 있다. 그림자는 의식의 바로 뒷면에 있는 여러 가지 심리적 내용이다. 그림자는 마치 어두운 창고에 내버려진 곡식이나 연장과 같은 것으로 오래 두면 곰팡이가 생기고 녹슬게 되는 이치와 같다. 다시 말해서 의식화될 기회를 잃었으므로 미분화된 상태로 남아 있는 원시적인 심리적 경향들이다. 그림자는 단지 무의식 속에 버려져 있어서 분화될 기회를 잃었을 뿐이며, 그것이 의식되어 햇볕을 보는 순간, 그 내용들은 창조적이며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림자의 부정적 측면은 대개 상대적인 것들이다. 그림자는 흔히 외부 세계에 투사되며 우리는 많은 경우 투사된 내용을 통해서 비로서 자기 그림자의 존재를 알 수 있게 된다.
무의식적인 내용이 외부세계에 투사되는 경우에는 강렬한 감정이 투사대상을 향하게 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대상에 대한 관심을 떼어 놓으려고 해도 떼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대상에 집착하게 된다. 그 감정은 대개 혐오감이나 불쾌감으로 나타난다. 그림자가 투사될 때 사람들은 ‘왜 그런지 모르게’, ‘공연히’, 어떤 대상에 대하여 혐오감이나 그 밖의 부정적인 감정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를테면 같은 성의 친구 사이, 형제간, 자매간, 동료 사이, 상사와의 관계, 같은 성의 가족 사이, 예를 들면 시누이와 올케 사이 등에서 “왜 그런지 모르게 그 사람은 보기만 해도 싫다, 거북하다, 긴장이 된다, 화가 난다”하는 등이 나타날 때 이러한 것들은 그림자의 투사라고 볼 수 있다. “왜 싫은가”하는 것을 설명할 수 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너무 잘난 체 해서’, ‘덮어 놓고 저속하고 시시하니까’, ‘뭔가 비굴하고 천해 보이니까’, ‘영악스럽고 교만해 보여서’, ‘너무 쌀쌀맞아서’하는 등의 상당히 부정적인 감정으로 채색되는 성격의 내용들을 갖고 있다.
그림자의 발달은 자아의 발달과 함께 평행하게 진행된다. 자아는 자아가 필요로 하지 않거나 사용하지 않는 성질을 언제나 없애 버리거나 억압해 버리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자의 가장 두드러진 성질은 끊임없이 의식 앞으로 나타나면서 자아와의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다. 그림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아는 활력을 지니게 되고, 인간의 성격 속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그림자는 내면적이고 상징적인 모습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외부세계로부터 온 어떤 구체적인 모습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첫째의 경우에 그림자는 무의식에서 물체로 나타난다. 즉, 꿈꾸는 사람의 정신적인 성격의 한 가지 혹은 여러 가지의 것들이 의인화되어 꿈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둘째의 경우에는 그림자의 일정한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서, 그림자는 무의식 속에 숨겨진 몇몇 성질을 반영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울분을 터뜨릴 때라든가, 남을 저주하거나 거칠게 행동할 때, 자기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비사교적인 행동을 할 때, 인색하고 편협하며 화를 잘 내거나 비겁할 때, 그리고 경박하거나 위선적일 때, 등 우리는 자신의 환경에서 숨기거나 억압된 성질이 자신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융은 그림자가 서로 다른 두 가지의 것이 있음을 발견했다. 첫째, 개인의 심리적인 면을 포함한 개인 그림자의 형태이다. 둘째 집단 그림자의 형태이다. 한국사회는 문벌, 동창, 동문회, 지역 등 집단의 심리적 응집력이 강하다. 그래서 일단이 집단이 만들어지면 집단적인 편견을 강화시켜 집단으로 하여금 결속하게 하고 다른 집단과 팽팽히 맞서는 결과를 빚어낸다. 물론 집단 활동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나 그것이 편견에 의해서 형성되거나 배타의식, 독선 등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때 여기에는 언제나 집단적 그림자의 형성이 가능해지고 그 투사로 말미암아 집단간의 불필요한 갈등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또한 그림자는 진화의 역사 속에 퍽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모든 태고유형 중에서도 아마 가장 강하며, 잠재적으로 가장 위험한 것이다. 만일 근원적 유형으로서의 그림자가 투사될 때, 그 사람은 그 투사대상에서 형언할 수 없는 두렵고 무서운 감정, 죽이고 싶을 정도의 증오감, 혐오감을 느끼게 되고, 때로는 실제로 이 감정에 따라 파괴적인 행동을 하기까지 한다. 근원적인 그림자 상이 투사될 경우에는 마치 자신이 정의의 화신이오, 가장 인간다운 자유의 투사라고 확신하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경우에 인간은 그 스스로가 생사여탈을 마음대로 누리는 초인이나 신의 권력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전자는 ‘그림자 원형’을 외부로 투사함으로써 나타나고, 후자는 그림자 원형과의 동일시에 의해 그러한 파괴적 행동을 일으킨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에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림자에 포함되어 있는 동물적 정신을 길들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러한 동물적 정신을 길들일 수 있을까? 그것은 그림자의 징후들을 억눌러 그림자의 힘에 대항하는 강한 인격을 발달시킴으로써 가능하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마음속의 그림자들을 하나하나씩 소화시켜 나간다면, 우리의 의식은 그만큼 넓어지게 되고, 자기 자신의 통찰도 그만큼 깊어진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방법으로 외부에 투사시킨 자신의 그림자 부분을 자아에게 되돌려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림자의 특징을 좀더 알아보자. 우선 그림자는 참으로 끈질기다. 그림자는 억압에 의해 간단히 굴복하지 않는다. 그림자는 그 지독한 끈기에 의해 개인을 더 만족할 만한 창조적 활동 속에 몰아넣는다. 자아와 그림자가 훌륭히 조화를 이루고 있으면, 개인은 생기와 활력에 넘쳐 있다고 느낀다. 매우 창조적인 사람의 그림자는 가끔 자아를 압도하여, 그 때문에 그는 잠시 발광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림자 속에 존재해 있는 '고약한'요소는 의식에서 내어 쫒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 아니다. 잠시 물러나 있을 뿐이다. 만일 개인이 위기나 어려운 생활 장면에 부딪치면 그림자는 이 기회를 이용해서 자아에 힘을 뻗치고자 한다. 그래서 융은 "우리 속에 살고 있는 동물은 억압되면 더욱 포학하게 될 뿐이다"라고 말했다.
종종 우리는 굉장한 결단과 반응이 필요한 상황에 직면할 때, 혹은 자식이 죽거나 하는 등의 주변 상황의 갑작스런 충격에 의해 어리벙벙해 진다. 그 때 무의식 특히 자신의 그림자는 그 자체의 독특한 방법으로 상황에 대처하게 된다. 그런데 그림자가 개성화되어 있으면, 위협과 위험에 대한 그림자의 반응은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림자가 억압되어 미분화 상태 속에 있었다면, 본능의 큰 파도가 밀려와 더욱 자아를 압도함으로써 개인은 무너지고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 인간의 생명력, 창조력, 활기, 힘들은 바로 그림자의 본능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림자를 거부하면 개인의 성격은 무미건조한 것으로 된다. "
5) 아니마와 아니무스
일반적으로 그림자가 의식화되면 그 다음 단계로 사람들은 자신의 아니마, 아니무스를 인식하게 되고 이것이 인식되면 자기, 즉 마음의 전체를 실현하는 마무리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아니마는 독일어 제엘레(Seele, 심령)에서, 아니무스는 가이스트(Geist, 심혼)에서 빌려온 라틴어 용어다. ‘제엘레’와 ‘가이스트’는 우리 마음 속의 혼과 같은 것이다. 혼(넋)은 자아의식을 초월하는 성질의 표현이며 ‘나’의 통제를 받기보다는 고도의 자율성을 지닌 독립된 인격체와 같은 것이다. 융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이와 같은 독자적 인격이라 할 만한 것이 있다고 관찰하였다. 그는 이를 ‘내적 인격’이라 불러 집단 사회에 적응하는 가운데 형성된 ‘외적 인격’인 페르조나에 대응하는 무의식적 인격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융은 ‘외적 인격이 타고난 성에 따라 남성성과 여성성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처럼 내적 인격도 남성과 여성에 따라 각기 다른 특성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남성의 무의식의 내적인격은 여성적 속성을, 여성의 무의식의 내적 인격은 남성적 속성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의 여성적, 남성적 속성이란 집단사회의 전통적 여성관, 남성관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남성이 여성에 관해 체험한 모든 것의 침전물이요, 여성이 남성에 관해 체험한 모든 것의 침전물로써 인간의 꿈, 신화, 민담에 나타나는 상징을 통해 인지된다. 이것은 여신과 영웅신, 선녀와 산신등과 같은 인격적인 이미지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새, 사슴, 바람처럼 비인격적인 이미지로 표현되는 수도 있고 심지어 물질, 이념에 투사되기도 한다.
원초적 여성성(아니마)은 여러 가지 다양한 성질을 나타내지만 남성들이 남성의 페르조나 때문에 소홀히 하기 쉬운 감성(pathos)과 예감 능력으로 표현될 수 있다. 또한 원초적 남성성(아니무스)은 여성들이 소홀히 하기 위운 생각하는 힘(logos) 과 지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내적 인격의 표현은 남성에서는 주로 기분(mood)으로, 여성에게는 의견(opinion)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만일 내적 인격, 아니마와 아니무스라는 존재를 인식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면 그것은 다른 모든 무의식의 내용처럼 미숙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이때 우리는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부정적 작용을 목격하게 되는데 남성에서는 남자다운 남자의 변덕스런 기분과 짜증 섞인 목소리로, 여성에서는 융통성 없는, 따지는 버릇을 보게 되는 것이다.
아니마, 아니무스는 원형이지만 무의식의 원형 중에 특수한 원형으로써 자아를 무의식의 심층, 즉 ‘자기’에게로 인도하는 인도자(psychompos), 또는 매개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니마, 아니무스의 인식을 통한 인격의 통합과 분화는 자기실현의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된다.
6) 자기(Self, Selbst)
‘자기’란 자기실현의 종착점이자 시발점이다. 자기란 전체정신, 의식과 무의식이 하나로 통합된 전체정신이다. 이것은 인격성숙과 개성화의 목표이자 이상이다. 그것은 의식의 중심인 ‘나’(자아)를 훨씬 넘어서는 엄청난 크기의 전체정신 그 자체이요, 그 전체정신의 중심이며 핵이다. 우리가 인생의 목표를 자아실현이 아니라 자기실현이라고 칭하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우리가 전체정신의 중심핵이라는 뜻에서 자기를 말할 때, 특별히 이것을 자기원형이라 부른다.
자기원형은 많은 원형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 자기원형은 의식과 무의식의 조화로운 통합을 위해 스스로 조정하고 질서 지우는 인간 정신의 내적인 방향타이며, 나침반이며, 최고의 진리이다. 한마디로 융은 인간 무의식 속에서 하느님과 같은 ‘하느님의 모상’을 발견한 것이다. 융은 자신의 연구 속에서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자신들이 하느님이라 부르는 어떤 대상에 해당되는 것이 발견된다고 겸손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발견은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하느님의 모상성’을 찾은 것이고, 대승불교의 ‘모든 사람이 부처다’라는 여래장사상과 진여의 관념을 증명한 것이라 하겠다. 또한 융은 인간의 밝고 어두운 심리적 대극의 합일로서 전체정신에 도달한다는 대극합일을 주장하였다. 그는 이러한 상태를 자기실현의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이론은 음양이 합쳐서 도를 이룬다는 도가의 이론과도 일맥상통한다.
융은 “우리는 원형 그 자체를 모른다. 그것은 인식 불가능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원형 그 자체를 인지할 수 없다.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자기원형의 상(이미지)이다. 그것은 여러 가지 상으로 인간의 꿈, 환상, 신화, 민담, 종교적 표상 속에 나타난다. 자기 원형은 그리스도상, 붓다상 등 인격적인 신의 상에서, 금강석, 장미 등 꽃, 빛, 기하학적 구성, 혹은 원과 사각으로 에워 쌓인 중심이 강조된 만다라상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것은 흩어진 마음을 합쳐주므로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무의식은 궁극적으로 무의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아가 전일(하나 됨)의 경지인 자기의 경지에 근접할 수 는 있으나 그것과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는 언제나 자아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실현이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언제나 그곳에는 미지의 세계가 남아 있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실현을 통해서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 온전한 인간(원만한 인간)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융은 끝없는 무의식 앞에 자아가 참으로 겸허하게 자기를 내려놓아야 함을 수도승처럼 고백했다.
7) 심리학적 유형
심리학적 유형설은 융의 초기학설에 속한다. 선천적으로 사람은 삶을 살아가는 데 두 가지 서로 다른 일반적 태도와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를 내향적 태도 ・ 외향적 태도라 하고 이 둘 중에서 어디에 더 많이 의지하며 사느냐에 따라 각각 내향형 ・ 외향형이라 불리운다. 또한 사람의 정신에는 사고・ 감정・ 직관・ 감정의 네가지 기능이 있다. 직관과 감각은 정보를 수집하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서 비합리적 기능으로 부른다. 사고와 감정은 판단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 합리적 기능으로 부른다.
외향적 사고 (제1기능)
감각(제2기능)
직관(제3기능)
내향적 감정(열등, 제4기능)
외향적 사고형의 열등기능
사람에 따라 이러한 정신의 네 가지 특수기능을 타고난 성향에 따라 발달시켜 나가는데 이에 따라 사람들 간에 개인차이가 나타난다. 그 사람이 평생을 주로 어떤 우월기능에 좇아 살아가고 있는가에 따라 사고형, 감정형, 직관형, 감각형이라 부른다. 이것을 에너지의 흐름인 내향형, 외향형과 연합시켜 내향적 사고형, 외향적 사고형 등으로 구분하면 여덟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또한 가장 잘 발달된 주기능 다음으로 발달된 제2기능이 어느 것이냐에 따라 다시 두 경우로 구분되어 열여섯 종류의 심리학적 유형을 생각할 수 있다.
메이어와 브리그는 융의 심리유형이론을 바탕으로 심리검사도구를 개발하여 사람들이 자기인식을 보다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심혜숙, 김정택 교수에 의해 이 검사이론이 보급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검사라 할지라도 심리유형 검사와 그 활용에 있어서 절대성을 부여하는 것은 피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검사결과로 그 사람의 진정한 개성을 알 수는 없을뿐더러 안다고 자만하는 것은 자기실현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융은 우세한 의식의 태도나 그 기능은 그 반대극의 무의식의 태도나 기능에 의해 보상된다고 생각했다. 내향형의 사람이 지나치게 내향적 태도에 집착하면 무의식에는 의식에서 배제된 외향적 경향이 억압되어 의식과는 상반된 경향을 띠게 된다. 만일 이러한 의식의 일방성이 지속되고 외향적 경향이 계속 억압되어 활동하지 못하면 무의식의 외향적 경향은 미분화된 열등한 상태에 있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외향형의 무의식에는 열등한 내향적 경향이 있게 되고, 사고형은 열등한 감정기능을, 감정형은 열등한 사고를 무의식에 가지고 있게 된다. 무의식의 열등기능은 의식에 대한 보상작용을 일으켜 의식을 자극하여 의식의 일방성을 제지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은 자신의 어두운 면을 외계로 투사된다. 만일 그 보상작용의 정도가 적절한 경우에는 열등기능이 의식계로 떠올라 활성화됨으로써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균형 있는 발전이 저절로 이루어질 수 있다. 열등기능이 외계로 투사되면 그 대상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내향형은 외향형을 보고 속에 든 것 없이 겉치레만 좋아한다고 흉을 보고, 외향형은 내향형을 고집불통의 독선가, 비현실적인 이상론자라고 비난하게 된다.
그러나 열등기능을 찾아서 그것을 살리고 발전시키면 그것은 이미 열등기능이라는 상태를 그치게 된다. 그래서 모든 정신기능을 가능한 한 골고루 발전시킨는 것은 전체정신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작업이다. 따라서 자기실현의 과정에서도 열등기능의 의식화는 반드시 요구되는 조건이다.
나. 인생의 여러 단계
융은 인생을 네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1) 아동기
이 단계는 출생에서 시작하여 사춘기 또는 성적 성숙기까지 계속된다. 어린아이는 의식은 있지만, 그의 지각이 거의 조직화되어 있지 않고 그의 의식적 기억은 매우 유동적이다. 따라서 아이의 의식은 계속적이지 못하고 자기 동일성의 감각이 없다. 어린 아기는 최초의 몇 해 동안 그의 정신이 모두 본능에 지배된다. 이 때 어린 아이는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여 있고, 부모에게 조성된 분위기에 휩싸여서 살아간다. 그의 행동은 규율과 통제가 없고 무질서와 혼란 상태에 있다. 그래서 아이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3인칭으로 이야기하다가, 뒤에 가서는 자아콤플렉스의 성숙으로 인해 본래 자신이 갖고 있던 에너지를 발휘하게 됨으로써 처음으로 나라는 주체가 되며, ‘나’라는 느낌을 갖는다. 드디어 아이가 나라고 말할 때, 이것은 아이가 자기 자신에 대해 처음으로 ‘자신의 기억이 계속 된다’는 자각하는 상태인 것이다.
이 때부터 어린 아이는 자기 자신을 일인칭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서서히 어린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부모의 닫힌 세계 또는 ‘심리적 자궁’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2) 청년기 및 젊은 성인기
이 단계가 시작되는 것은 생리적 변화이다. 융은 “생리적 변화는 정신적 혁명을 가져온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이 시기를 ‘정신적 출생’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자아는 육체적인 현상을 통하여 강하게 강조되기 때문이다. 이 때 청년은 큰 힘과 열의를 가지고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한다. 청년기에는 자신이 모든 문제, 여러 가지 결단의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하고, 사회생활에 다양하게 적응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독립해가려는 청년들은 인생의 여러 가지 필요요인들을 만나면서 수많은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이 때 청년들이 적당한 준비와 적응력, 그리고 자각이 충분히 발달되어 있으면, 아동기의 활동에서 직업 생활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
누구나 어떤 책임 있는 생활에 접어들 때면 어떤 기대를 갖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기대가 많은 경우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 이유는 이 기대가 본인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 때 조종사가 되려고 했는데, 막상 항공대학에 들어가려 하니까 시력이 나빠 자기가 원하는 학과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쉽게 다른 작업으로 돌려지지 않는다.
이 시기에 생기는 모든 문제는 오직 외적 문제만은 아니다. 같은 정도로 내적, 정신적 문제도 일어난다. 융은 이 시기에 젊은이들이 성본능에 의해 정신적 균형의 붕괴로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또한 이 시기에 극단적인 과민성과 불안정에서 생기는 열등감도 내적 문제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된다. 이 시기에 문제를 일으키기 쉬운 사람은 아주 신경질적인 사람이다. 여기서 우리는 신경증과 문제를 간직하고 있는 것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신경증인 사람은 자신의 문제성에 대하여 의식하지 않으므로 병이지만, 문제를 간직한 사람은 자신이 의식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고민은 하지만 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청소년기에 아이들은 의외로 기성세대에서 강한 고집을 보인다. 이러한 청소년들의 고집스러움은 안과 밖에서 자신들을 세계 가운데로 휩쓸려 들어가게 하는 여러 가지 운명의 힘에 대한 반항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청소년들은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언제까지나 아이로서 계속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다. 다시 말해서 완전히 무의식 세계에만 있고 싶어 하는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자기의 자아만을 의식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것은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그것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최소한 자기의 적은 의지에 예속되어 있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가 좁은 모태의 울타리에서 밖으로 나올 때, 자아의 확대에 대하여 처음으로 방어를 시작하는 저항의 모습이다. 이것은 물리학적으로 보면 등량의 원칙인 것이다. 등량의 원칙이란 열역학의 제 1법칙, 혹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 사회는 언제나 공적인 일을 수행할 것을 요구하고 그에 대한 보답을 하기 때문에, 청년들은 자기가 달성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도록 훈련 받고, 특정한 능력을 연마하도록 압박받는다. 이것을 통해 각 개인은 사회적 업적을 쌓게 되고 개인은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킨다. 그래서 이 시기에 사람들은 자기의 위치를 세상 속에서 구축하려고 노력하고 외적 가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그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굳센 의지가 가장 중요한 덕이 된다. 젊은 남녀는 효과적으로 결단을 내려야하고, 자신 앞에 나타나는 무수한 장애물을 극복하며, 자기 자신 및 가족을 위해 물질적인 것을 확보하도록 자극 받게 되고, 자신의 의지를 갖고 노력해야만 한다.
3) 중년기
인생의 제 2 단계는 대체로 35세에서 40세 사이에 끝난다. 이 정도의 나이의 사람들은 대체로 많든 적든 외적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다. 지위는 안정되어 있고, 결혼하여 자녀를 갖고 있으며,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때때로 좌절이나 실망, 불만 등을 느끼겠지만 중년기의 사람들은 인생을 안정된 상태로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이 있다. 바로 사회적인 목표의 달성은 인격의 총체적인 희생에 의해 얻어진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사회적 성공은 바로 자기 자신의 총체적 희생의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40세 전후의 남성에게는 우울증이 어느 정도의 빈도를 나타낸다. 여성에게는 보통 남성보다 다소간 빨리 나타나 신경증적인 장애가 시작된다. 그래서 이 때까지 좋아하던 것이나 흥미가 시들해지기 시작하거나, 다른 것에 흥미를 느끼거나, 또는 종래의 신념이나 주의 등에 사로잡히게 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50세경에는 적게나마 광신주의자로도 굳어질 때가 있다. 인생의 후반기에는 이러한 내적 문제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일은 새로운 가치체계를 중심으로 하여 생활을 바꿔 나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외적 적응에 사용했던 에너지를 이 새로운 가치로 돌려야 한다. 이 새로운 가치란 정신적인 가치이다. 정신적인 가치는 계속 마음속에 잠재해 있었지만 젊었을 때는 외향적, 물질주의적 흥미가 팽창하고 있었기 때문에 등한히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시기에 사람들은 새로운 수로로 정신 에너지를 돌려야 하는데 이것은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도전 가운데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도전을 극복하지 못하고 인생을 파멸로 이끄는 경우도 있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이전에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시시하게 보이고, 인생이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생각된다. 그리고 그들은 우울 상태에 쉽게 빠져 있곤 한다. 융은 그 이유를 가치의 상실로 보았다. 가치의 상실이 인격에 공동(空洞)을 만들어 낸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낡은 가치 대신 구멍을 메울 새로운 가치를 찾아야 한다. 그것은 물질주의적인 관점을 넘어 개인의 지평을 확대시키는 가치라야 한다. 그 지평은 정신적, 문화적 지평이다. 이제는 활동보다는 기도나 명상에 의해 자기를 실현해야 할 때다.
4) 노년기
융은 노년기를 아동기와 비슷하게 보았다. 개인은 자신의 무의식 속에 가라 앉는다. 어린이는 의식으로 떠오르지만, 노인은 무의식 속에 가라앉아 마침내는 그 속에서 소멸된다. 융은 내세의 문제도 자기 나름대로 점검하여 보았다. 그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종교의 첫째 요소이며, 수많은 신화와 꿈의 테마인 내세의 관념을 단지 미신이라고 경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관념은 어떤 무의식적인 기반에 담겨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후의 삶이라는 관념이 정신의 개성화의 또 하나의 단계를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정신은 완전한 자기실현을 달성하지 못했으므로, 정신생활은 사후에도 계속된다고 추측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다. 개성화 과정의 특성과 그 단계
융은 인간에게서 종교체험이 나타나고 있는 영역은 무의식의 영역이라고 주장했다. 그에게서 종교체험이란 각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하느님의 이미지를 체험하는 것이다. 그는 하느님의 이미지를 원형적 이미지로 보았다. 그래서 하느님의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져 있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종교체험을 하게 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서 우리 인간이 생각하고 있는 이미지들 가운데 가장 강한 이미지인 것이다.
그런데 이 하느님의 이미지는 “우리 -안에 있는 - 하느님”으로 체험된다. 융에게 있어서 “우리 - 안에 있는 - 하느님”은 자기와 동일시 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융이 인간 정신의 중심이라고 일컫고 있는 자기는 많은 종교들이 상징하고 있는 하느님 또는 하느님의 이미지와 똑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개성화 과정은 “우리 - 안에 있는 - 하느님”인 자기를 만나서 그것을 실현시키는 체험이다.
1) 개성화과정이란 인간의 여러 가지 정신적 요소들을 통합시켜주는 인간의 정신작용이다. 그는 인간을 대극적인 존재로 보았다. 의식과 무의식, 자아와 그림자, 외적인격과 내적인격, 직관과 감각, 사고와 감성, 외향형과 내향형등... 이러한 균형이 깨어질 때 문제가 발생한다. 수많은 정신병이란 정신적 균형이 깨어질 때 생겨난다.
2) 개성화과정은 각성을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권태감, 우울, 허망감 등은 우리가 어떤 매우 중요한 정신요소들을 억압하고 있을 때 생겨난다고 융은 주장한다. 이런 우울이나 허망감 등은 우리로 하여금 억압되어 있는 요소들을 다시 우리 존재의 일부로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는 신호이다.
3) 개성화과정은 그 체험자의 인격을 변화시키고 있다. 개성화과정이란 모든 사람이 자신의 모든 정신요소를 통합하여 전일적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이다.
4) 개성화과정은 인격발달을 위한 계속적인 과정이다. 인격의 통합은 결코 한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생의 과정은 수많은 기복으로 점철되어있다. 인간의 무의식은 인간이 한번에 알 수 있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 자신의 무의식의 내용들을 의식에 동화시킨다 해도 의식해야할 것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실제로 우리가 개성화의 과정에서 우리 인격의 그림자 요소를 통합시키고, 아니마(아니무스)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통합시킨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어떤 때 마성적 인격의 형태로 나타나는 원형까지 통합시켜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융에 의하면, 사람들이 그의 그림자와 아니마를 통합한 다음에 어느 정도 자신의 정신요소들이 통합된 것을 의식하게 되면서 자아의 팽창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이 상태는 마치 그가 고대 신화에 나오는 영웅이나 초인이 된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집단적 무의식의 부정적인 힘에 사로잡힌 상태이다. 이 때, 그는 아집과 독선에 빠져서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읽게 되어 수많은 오류를 범하게 된다. 융은 이런 상태를 ‘심리적인 인플레이션’이라고 불렀다. 이런 상태는 인격 내부에 있는 마성적인 인격과 자신의 자아를 동일시하여 자아가 팽창된 상태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 단계조차도 극복해야 한다. 인간이 부정적인 아니마를 극복한 것을 부정적인 어머니상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마성적인 인격을 극복하는 것은 진정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이다.
개성화의 과정은 넘어야할 많은 단계로 점철되어 있다. 또한 각 단계마다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시련을 겪고, 때로는 실패와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을 인내로이 참고 극복해 나가야 한다. 융에 의하면, 개성화의 과정은 몇 개의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 단계에서 사람들은 정신병적 상태를 경험한다. 즉 신경증이나 정신병 혹은 풀리지 않는 정신적 문제가 사람들로 하여금 개성화의 과정을 밟게 한다. 따라서 정신적 고통은 인간에게 저주이며 축복이다. 둘째 단계에서 인간은 자포자기(자아포기)의 상태에 떨어진다. 사람들은 스스로 심리적 고통을 풀기 위해, 그곳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예) 책(심리학), 명상, 굿 등... 그러나 그가 이러한 의도적인 노력을 하면 할수록 그의 상태는 더욱 악화된다. 왜냐하면 그의 의식 속에서 왜곡된 의식이 점점 자신을 더 왜곡시켜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이상 의도적인 노력을 포기하는 상태가 찾아온다. 이 상태를 자아의 포기라 부른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상태가 될 때, 그의 문제는 이제 의식의 영역을 떠나서 무의식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고 드디어 의식과 무의식의 중심인 ‘자기(self)'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자기는 인간정신의 중심이고 집단적 무의식의 원형이다. 자기는 자아에게 자신을 알리는 여러 가지 상징들을 올려 보낸다. 자기의 상징은 그 속에 많은 성스러운 에너지를 포함하고 있기에 자기의 상징이 나타날 때, 사람들은 이 성스러운 에너지에 사로잡히게 된다. 융은 그에게 치료받고 있는 내담자들이 만달라상 등 자기의 이미지를 꿈이나 환상을 통해보고 말할 수 없는 지복감을 느끼고, 그것에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이러한 감정적인 체험은 융에게는 사실상 정신치료의 시작이었다. 그 전까지 복잡했던 정신상태가 비로서 정리되고 질서 잡혀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후 사람들은 자신의 정신요소들을 통합시켜 가는데 이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은 정신적인 인플레이션의 상태(자아의 확장)에 빠지기도 한다. 이 상태를 극복하고 나면 비로소 사람들은 원만하고 원숙한 인격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개성화의 과정은 ‘끝나지 않는 길’이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무의식의 정식적 요소들을 의식화하고 통합해 나가야 한다.
융은 개성화의 과정을 넘어온 성숙한 사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자기실현은 통속적인 의미의 성인, 군자나 도사를 만드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만들어 준 하나의 탈(가면)이다. 자기실현의 사람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그의 머리에는 집단적 투사에 의해 생기는 명성이라는 후광이 없고, 구태여 스스로 그 후광을 만들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만일 누가 명예를 만들어서 그에게 씌어 준다면 그는 또 구태여 거부하지도 않고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그런 것이 인생에서 대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라. 개성화 과정과 종교체험
개성화 과정의 진행:
- 정신적인 문제 ----> 자기 포기 ----> 누미노제 체험 ---->
(실존적 상태) (무의식적 작용) 자기체험
심리적 인플레이션 ----> 원만한 인격 을 이루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심리적 팽창 위험성 인격의 변화
종교체험의 과정:
- 실존적 위기 ----> 자기포기 ----> 에스타시체험 ---->
영혼의 어둔 밤 ----> 새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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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상심리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기본활동을 심리진단·심리치료·심리연구등 3가지로 분류한다. 진단에서는 심리검사의 실시와 해석이 필요한데, 그중에서도 특히 1번에 1명씩 실시되는 검사에 능숙해야함을 강조한다. 덜 공식적인 진단절차가 적용되기도 하는데, 특히 심리진단을 위한 면접이 그 예가 된다.
2) 프로이드의 저서들: 환영의 미래, 문명과 그 불만, 모세와 유일신교 등
3) 종교심리학, 윤주병, 종교심리학, 서광사, 1986 p 22~23 참조
4) 토템과 터부(Totem and Taboo,1919), 환상의 미래(The Future of an Illusion,1927), 문명과 불만(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 1930), 모세와 유일신론(Moses and Monotheism, 1939).
5) Donald E. Capps, "Contemporary psychology of Religion : The Task of Rheoretical Reconstruction," in Current Perspectives in the Psychology of Religion. ed. N. Malony,
6) 위의 책
7) 청소년심리학, 한상철 등, 양서원, 1997, p 339~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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