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과) |
< 오리엔테이션 > |
1. 대상: 평신도 2. 범위: 성경 전체 또 다른 방법은 성경을 전체적으로 조감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성경 전체를 텍스트로 해서 성경 전체에 흐르는 맥을 집어 나가는 방법입니다. 이 공부의 장점은 성경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반면에, 성경 각 부분을 깊이 다루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성경 공부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방법을 균형 있게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성경 전체를 개관하는 작업을 통해서 성경 전체의 맥을 이해하고 나서, 성경 각 부분을 심도 있게 공부해 나가는 것이 효과적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성경 각 권을 선택해서 깊이 연구하는 성경 공부는 이미 개 교회에서 많이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전체적으로 공부하는 과정을 실시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현재 이러한 성경 공부 교재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교재 중에는 크로스웨이나, 베델 성경 공부, 그리고 트리니티 성경 공부 교재가 있습니다. 이러한 교재들은 외국 교재를 번역한 것으로 국내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좋은 열매를 얻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교재 중에는 한국 장로교 통합 측 교회에서 만든 TBC성경 공부 교재와, C.C.C.리더 훈련으로 개설된 제자들 성경 공부 과정이 있습니다. 이러한 교재들은 모두 독특한 특징과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매우 효과적으로 성경 전체의 내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경 공부 과정들은 교육에 열심 있는 일부 교회나, 일부 대형 교회에서만 실시되고 있기 때문에 평신도들이 이러한 과정에 참석할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개설된 교회라고 해도 이 과정에 참석하려면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야되기 때문에 시간이 바쁜 직장인이나 대다수의 성도들은 이 과정에 참여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저는 인터넷을 통해서 성경 전체를 개관할 수 있는 성경 공부 과정을 개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3. 방법: 연대기적 사건 개관 또한 이 과정은 성경책을 현미경으로 분석하듯이 자세히 다루는 과정이 아니라, 높은 곳에서 경치를 바라보듯이 성경 전체를 개관하는 과정입니다. 저는 이 성경 공부 과정에서 평신도들이, 성경의 내용을 이해하며 읽을 수 있도록 성경 전반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개관 작업은 성경에 나오는 사건을 6하 원칙(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에 의해서 재구성해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성경의 각 사건을 분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사건을 6하원칙에 의해서 재구성해 보는 일은 매우 유익한 방법입니다. 성경의 각 사건을 언제(시간), 어디에서(장소) 일어났으며, 그 사건에 나오는 등장 인물(누가)이 누구이고, 어떤 사건이(무엇을) 일어나서, 어떻게 진행되었고, 또 그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왜-메시지)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는 일은 사건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자 그러면 지금까지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린 것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이 성경공부 과정은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둘째 이 성경공부 과정은 성경 전체를 공부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셋째 이 성경공부 과정은 연대기적으로 성경사건을 개관하는 과정입니다. 시간으로 따지면 이 과정은
약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이 기간은 성경 전체의 맥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빠짐없이 이 과정을 들으신다면 여러분도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눈을 가지고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저와 여러분이
중도에 포기하지 않도록 함께 기도해주시고, 중간에 힘들어도 빠지지
말고 참석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제 1과: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정(1) |
1) 계시 가. 계시의 종류 나. 일반 계시 가) 종교 본능(하나님을
아는 지식)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밝히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밝히 보이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눈과 귀로 하나님을 보고들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에, 그 본성 안에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제 3의 눈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만이 가진 영적인 통찰력이며, 종교심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을 찾고 섬기거나, 또 찬송을 부르거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짐승들은 들은 신을 찾거나 섬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간과 가장 닮았다고 하는 원숭이가 사원을 짓고, 신에게 제사하거나 기도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사는 세계에는 항상 종교가 있습니다. 문명 사회에도 교회가 있고, 야만 사회에도 신당이 있습니다. 동양에도 종교가 있고, 서양에도 종교가 있으며, 또 아프리카에도 종교가 있습니다. 과거에도 종교가 있었고, 지금도 종교가 있으며, 앞으로도 인간 사회에는 종교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 중에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위급한 일을 당하게 되면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한 목사님의 설교 중에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한 청년이 괴뢰군에게 붙잡혀서 북쪽으로 끌려가다가 삼각산 골짜기에 숨었습니다. 바로 그때에 유엔군 비행기들이 편대를 지어와서 그들에게 폭격을 하고 기관총을 쏘아댔습니다. 그때에 그 청년이 숨어서 보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공산당원들과 정치보위부 사람들이, 모두 나무 아래 엎드려서 "하나님, 하나님"하고 소리치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이렇게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위급한 일을 당하게 되면 본능적으로 신을 찾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인류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모두 고칠 수 없는 종교라는 병에 걸려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인간의 본성 안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종교심을 부여하셨습니다. 나) 도덕성(양심: 하나님의
뜻을 아는 능력)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을 행할 때에,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송사하고, 때로는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롬 2:14-15)." 사도 바울은 사람의 마음 안에는 처음부터 일정한 법이 새겨져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받지 않은 이방인들도 자기 안에 있는 법을 따라서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법을 양심, 또는 도덕성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에 처음부터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을 받지 않은 이방인들도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과 간음, 그리고 도둑질을 금지하고, 또한 거짓 증언이나 이웃의 것을 탐하는 일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양심이 율법과 같이 선명하게 선악을 구별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마음 안에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법을 만들고, 재판을 하며, 윤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우리 안에 이러한 법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은밀하게 음란한 행동을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즉시 우리의 양심은 우리의 그릇된 행동에 대해 고발합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우리는 마음의 평정을 잃고 갈등하게 됩니다. 그러면 또 한쪽에서는 우리가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제시하고 우리의 행위를 변명합니다. 이러한 정죄와 변호가 반복되면서 우리 마음은 우리 행동이 옳았는지, 아니면 잘못되었는지를 판단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 안에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일정한 법이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은 다른 짐승들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원숭이가 죄를 짓고 고민하다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사람들 중에는 인간의 도덕성을 부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양심이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양심이 사람들이 태어난 후에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습득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양심 가운데 후천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양심에 분명히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선천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양심의 법칙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바울은 이 양심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말합니다(롬 2:12-15). 하나님은 자연계에 자연법칙을 주셨듯이, 사람들 안에 도덕적인 법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칸트(Kant)는 "하늘에는 별이 있고, 사람의 속에는 도덕적 의식이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양심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자주 양심을 거역하기 때문에, 양심이 불 도장을 맞은 피부처럼 마비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양심의 일부가 마비되는 경우는 있지만, 양심이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양심이 선하다고 판단하는 일을 할 때에 기쁨을 느끼고, 양심이 악하다고 판단하는 일을 할 때에는 불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양심은 우리 마음속에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안에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들(종교성, 도덕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 우주: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알려줌 * 우주를 만드신 분(인과의
법칙) "창조 때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속성들을 그의 만드신 만물을 통해 알리셨으며, 이로 인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밝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부터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속성을 만물을 통해 알리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분명하게 사람들이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 우주는 어떻게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을까요? 첫째로 이 우주는 누군가 이 우주를 만든 분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인과의 법칙"을 믿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일에는 그 일이 있게 한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은 바로 이 인과의 법칙 때문에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세상이 인과 법칙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과학자는 실험을 통해서 일정한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주는 처음부터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현대에 와서 점점 그 힘을 잃고 있습니다. 과학자들 중에는 이 우주가 어느 순간에 이루어진 큰 폭발로 인해 생겨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빅뱅 이론"이라고 말합니다. 과학자들은 지금도 지구나 태양계, 또는 우주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아내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구의 연령을 매우 길게 잡고 있지만, 우주가 일정한 시각에 시작되었다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습니다. 또 이렇게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결과에 원인이 있다면, 하나님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존재도 원인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무지한 주장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무한 절대의 신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배후에 다른 원인이 있다면 그 분은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증거는 성경의 증거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수학을 공부하신 분들은 무한대의 개념을 알 것입니다. 하나를 하나로 나누면 하나입니다. 그러나 하나를 영으로 나누면 무한대라고 합니다. 이 무한대는 열을 영으로 나누거나, 만을 영으로 나누거나 모두 무한대입니다). * 우주의 구조와 질서 우리가 사는 땅에도 놀라운 섭리가 있습니다. 비오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바다에 가면 물이 많이 있습니다. 햇빛이 내리쪼이면 바다의 물은 수증기로 변해 공중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 수증기는 공중에서 찬바람을 만나 다시 비가 되어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 비는 내려오면서 공기 속의 먼지를 청소해 줍니다. 이 비는 공기의 온도를 내려 시원하게 만들어주고, 또 땅에 있는 먼지를 청소해 줍니다. 이 비는 산에 떨어져서 나무에 열매를 맺게 하고, 들에 떨어져 풀과 곡식을 자라게 합니다. 그리고 이 빗물은 시내와 강물을 통해 모여서 다시 바다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바닷물은 소금을 가지고 더러워진 물을 다시 소독합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과정을 반복하여 우리가 사는 곳의 온도를 조절하고, 열매를 맺게 하여, 청결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또한 우리 몸 역시 놀라운 질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인간 유전자 암호를 해독해서 인간 복제 문제가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동안 우연히 생물이 생기고, 그것이 진화해서 인간이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생물학자들은 인간의 세포 안에 있는 유전자 안에 인간의 모든 삶을 좌우하는 정보가 담겨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정보를 찾아내서 여러 가지 유전적인 질병을 치유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전자의 규칙은 너무나 정교해서 조금만 잘못 되어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교한 유전 정보를 사람들의 세포 안에 넣어 주신 분은 정말 크고 위대하신 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선택할 이론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이 우주가 어떻게 된 건지 "나는 모르겠다"고 포기하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이며, 다른 하나는 "이 모든 것이 저절로 우연히 생겨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시 19:1)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고 있다." 시편 기자의 노래와 같이 하늘은 지금도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으며,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솜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이 만드신 만물을 통해서 자신의 신성과 영원하신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3) 특별 계시(성경) 그러면 하나님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계시에 대해서 반응했을까요?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두 가지로 반응을 했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고의로 왜곡시켰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롬 1:21(상))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않았으며,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계시를 왜곡시켜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무한하고 전능하신 창조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왜곡시켜 하나님을 사람들과 비슷하거나, 사람들보다 조금 나은 존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아는 모든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모두 이러한 신관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전능하신 창조주로 인정하여, 그 분에게 영광을 돌리거나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짐승 모양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미련한 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롬 1:21(하))에서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허망하게 되고, 미련해져서 영적 분별력이 어두워졌습니다." 둘째로 바울은 사람들이 이러한 신적 계시를 고의로 거부했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롬 1:28)에서 "사람들이 고의로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여 주신 계시를 거부하고 신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신을 없앤 후에, 그 자리에 인간을 올려놓았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인간들을 타락한 상태로 방임하셨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양심이 정죄하는 비정상적인 일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정욕과 쾌락을 좆아 온갖 음란과 불법을 행하고 있습니다(롬 1:28).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가 이들을 향해 하늘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은 왜곡된 계시를 바로 잡기 위해서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과 그 뜻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 중에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불러 자기 백성으로 삼고, 그들을 통해 인류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백성들 중에서 일부 사람들을 선택하여 그들을 통해서 다시 하나님과 그 뜻, 그리고 인류 구원의 계획에 대해서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계시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특별 계시"라고 부릅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 계시를 글로 기록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러한 특별한 계시를 글로 기록한 것을 모아놓은 것이 바로 "성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진 6단계 중에서 첫 번째 단계인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늘은 여기에서 마치고 다음 주에 계속해서
제 2단계부터 제 6단계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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