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내용!! 강해!!

[스크랩] <팔복강해 4>온유한 자의 복

하나님아들 2014. 1. 1. 16:21

<팔복강해 4>

온유한 자의 복

-마5:5-

오늘 우리가 살펴 보고자 하는 세 번째 복은 온유한 자의 복이며, 이는 매우 시사성이 있는 주제입니다. 바로 땅을 차지하는 것에 대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땅을 점령하고 정복하는 것에 대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주제가 아니겠습니까?

물론 이 주제 역시 세상의 가르침과는 상반된 가르침입니다. 세상에서는 강한 자, 약삭빠른 자, 힘 있는 자가 땅을 차지합니다. 요즘 우리나라를 보면 세상의 가르침이 잘 맞아 들어갑니다. 돈(자금력)이 있는 자가 부동산을 차지합니다. 떴다방 식의 약삭빠른 자들이 이 나라의 부동산을 다 사들입니다. 권력층에 있는 사람들이 이 땅을 다 차지합니다. 그런 것이 없는 사람들은 있던 것도 다 빼앗기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들이 진정한 소유자입니까? 그들이 진정한 지배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차지하는 것은 잠시 잠깐의 지배에 불과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바는 언제나 결론적인 것입니다.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는 것이 이 땅의 부동산 취득과 관련지어서 생각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마치 온유함이 부동산 잡기의 한 방법처럼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온유에 대해서 살펴보기 전에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 땅을 정복하고 지배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합시다.

첫째, 이는 영원한 소유와 실효적인 지배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온유하심은 천하가 다 아는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33년의 생애를 사시는 동안 아무 부동산이 없었습니다. 태어날 때에 남의 마굿간에서 태어나셨고, 돌아가신 후에도 남의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셋방 인생을 사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은 온 땅의 주인이십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영원한 주인으로서 영원한 지배권을 행사하십니다. 이렇게 온유함으로 얻는 기업은 영원한 것이라는 의미와 함께 실효적인 지배권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는 것은 어떤 영향력과 영예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유대인들이나 로마인들의 강포한 권력은 당대로 끝이 났습니다. 그들은 전설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징기스칸의 제국도, 나폴레옹의 제국도, 일본 천황의 제국도 그랬고, 춘추전국시대의 영웅호걸들도, 요즘 역사드라마의 주인공들인 주몽이나 연개소문 등의 영웅들도 찰나의 빛을 뿌리고 사라지는 유성들과 같은 역사 속의 전설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향력은 지금도 변함없이 세계에 미치고 있습니다. 아니 갈수록 주님의 영향력은 더욱 광범위하고 강력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외에도 이 세상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바울이나 어거스틴, 루터나 칼빈 등의 영적인 거성들은 영적 영향력을 지금도 발휘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그 학문으로 아주 오래도록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탁월한 정신을 소유했던 이들은 아주 오랫동안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력은 그에게는 영원한 영예가 되고, 영원한 면류관이 됩니다. 이렇게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는 것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의미하고, 영향력을 통해 영원한 영예를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셋째,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는 것은 진정한 승리, 종말론적인 승리를 의미합니다. 강포한 바로와 온유한 모세의 대결에서 결국 모세가 승리를 했습니다. 강포한 사울과 온유한 다윗의 대결에서 다윗이 결국 승리했고, 강포한 유대인들과 온유한 스데반의 대결에서 스데반이 결국 승리했습니다. 이런 승리는 진정한 승리이자 종말론적인 승리입니다. 즉 사람들이 승리를 인정하는 그런 승리가 아니라 최후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승리를 인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승리, 하나님이 최후의 승리로 인정해 주시는 종말론적인 승리를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온유한 자가 얻는 땅의 기업은 이렇게 땅에 미치는 영향력과 그 영향력으로 인한 실효적인 지배와 영예, 진정한 승리이자 종말론적인 승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런 것이라야 정말 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복을 사모하기를 바랍니다. 이런 복을 얻기 위해 온유한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그리고 이미 그런 복을 얻은 자는 그 복을 누리는 마음으로 온유함으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서론이 길어졌습니다. 이제 온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Ⅰ.낮아짐과 겸손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자라고 성경이 평하는 모세는 본래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신분은 보통 높은 것이 아닙니다. 그가 배운 애급의 문무(文武)는 아주 권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과 대면하면서 얻게 된 영적 권위는 그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낮아졌습니다. 그는 겸손하였습니다. 그는 헛된 것은 버렸고, 신령하고 탁월한 것일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알기에 스스로 높이거나 자랑하거나 군림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낮아졌고, 겸손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낮아짐과 겸손은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한결같았습니다. 이런 그였기에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셨고, 그리하여 그는 바로를 이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력하게 이끌었습니다. 낮아짐이 그를 진정으로 높은 자가 되게 했고, 겸손으로 강포를 꺾었습니다. 그의 낮아짐과 겸손은 모든 반대자들을 감화시켰고, 굴복시켰습니다. 여기서 감화와 굴복이 함께 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감화 없는 굴복은 다시 고개를 들고 대적하지만 감화된 굴복은 영원히 굴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볼 때 낮아짐이나 겸손은 약한 자의 비굴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강하고, 모든 것을 가졌을지라도 그것이 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인정할 때 낮아짐과 겸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내가 자랑하거나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길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스스로를 높이고 자랑하고, 스스로 영광을 취하면 하나님은 그 주셨던 것들을 모두 회수하십니다. 그러면 그는 전설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것을 알고 인정하고, 감사하고, 영광을 주님께 돌리고, 오직 주님의 이름과 그 나라를 위해서 그것을 아름답게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그 주신 것을 영원히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영원한 소유권과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알고 인정합시다.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리고 그 주신 것을 낮아지고 겸손한 모습으로 사용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섬깁시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가졌다가 일순간에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소유하는 사람이 되고, 유성처럼 반짝 스치고 지나가는 인생이 아니라 별처럼 영원히 빛나는 그런 영예를 가지고 사는 자가 됩시다.

Ⅱ.자신에게는 엄격하나 타인에 대해서는 관용하는 것을 온유라 합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늘 예수님의 반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주님께 시비를 거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율법의 전문가로 자처하고, 자기들보다 엄격하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없다는 우월의식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선생 노릇을 하고, 그들이 인기 있는 선생으로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이 나타나 사람들을 가르치고 사람들에게 인기를 끄니까 그들의 자존심이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하여튼 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경건과 가르침을 모든 이들이 따를 것을 강요하였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엄격한 율법 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처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대해서 무시하고 비판하고 적대시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관용이라고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지극히 거룩하고 존귀하였으나 자신의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하거나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비록 자신에 비해 거룩하지 못하고, 죄와 허물이 많으며, 지극히 천박스럽고 불경스럽게 살아간다 할지라도 그들에 대해서 관용하였습니다. 정죄하지 아니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책망하지 아니하고 그들을 차근차근 가르치셨습니다. 꾸짖지 아니하시고 교훈하셨으며, 때리지 아니하고 싸매셨으며, 아프게 하지 않고 위로하셨습니다. 들춰내지 아니하고 덮어주고, 심판하지 아니하고 회복시키셨습니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셨습니다. 그 어떤 비열한 죄인일지라도 끝까지 사랑하고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죄인들을 대신하여 당신이 십자가를 지셨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이런 주님으로 사시면서 자신을 가리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마11:29)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온유함입니다. 자신에게는 비록 엄격할지라도 다른 이에 대해서는 관대한 것, 관용하는 것이 온유입니다. 냉대할만한 사람이지만 따뜻하게 대하고, 비난할만한 사람이지만 감싸주고, 때릴만한 사람이지만 덮어주고, 용서 못할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온유입니다. 그리하여 사람을 고쳐내고, 살려내고 회복시키고 온전케 만들어주는 것이 온유입니다. 이렇게 온유의 목적은 사람을 건지고 살리고 고치고 회복시키고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사는 자가 온유한 자입니다. 이를 위해 사는 자가 사람도 얻고 하나님도 얻고 하나님이 주시는 땅과 영예를 얻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정죄하고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그를 고치고 회복시켜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심으로써 주님의 온유하심이 사람을 살리고 고치고 회복시키는 것이 목적임을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주님이 그렇게 온유함을 본받아 사는 자가 복이 있고, 그가 땅을 차지할 것에 대해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온유합시다. 그리하여 사람을 살리고 고치고 회복시켜 주는 자가 됩시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가질 수 있는 영향력임을 알고 이 영향력을 확대해 감으로 이 땅을 차지합시다.

Ⅲ.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 악과 대항하되 선으로 이기려는 것이 온유입니다.

세상은 선과 악의 대결이 늘 있습니다(물론 악과 악의 대결도 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기 전에도 이런 대결은 있었고, 예수님 이후에도 이런 대결은 역시 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그 대결구도 속에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하신 예수님은 그 대결의 방법이 달랐습니다. 주님은 비록 악과 대결을 하셨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 늘 선하셨다는 것입니다. 악이니까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식이 아니라 비록 악과 대결하는 것이지만 그 방법은 언제나 선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원칙이었고, 주님은 한번도 그 원칙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 주님을 믿는 모든 이들,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모든 이들, 세상에 아름다운 영향력을 끼치기 원하는 모든 이들, 세상 속에서 멸망당하는 이들을 살리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이 선으로 악을 이기신 것처럼 그렇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바로 온유한 것입니다. 악인에게까지 선을 베푸는 것, 원수에게까지 선을 베푸는 것, 이것이 온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이런 온유를 요구하시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이런 온유를 실천하려면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데, 당신의 백성들에게, 당신이 너무너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그렇게 해서 성취해야할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악을 선으로 이기면서, 악인을 감화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악을 선으로 이겨야 할 이유는 그렇게 할 때 악인들이 감화를 받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님을 못 박는 자들을 저주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신 것은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이 배신자를 미워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신 것은 배신자로 하여금 돌아올 길을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선으로 악을 이길 이유와 목적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선으로 악을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선으로 악을 이기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한 번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쉬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작은 손해는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쉬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 번 그렇게 해야 한다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 손해가 커지면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정말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선으로 악을 이기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 에너지가 없으면 몇 번 이기다가 쓰러집니다. 그 에너지가 없으면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할 때에 감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자가 선으로 악을 이기려면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 에너지의 원천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받는 루트를 알고 끊임없이 공급을 받아야 합니다. 그 에너지의 원천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나를 선대하셨습니다. 내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시고 선을 베푸셨습니다. 내 죄 값을 내게서 받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당신의 아들이 대납토록 했습니다. 이 사랑을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도 악한 자를 선대할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자의 손을 들어주신다는 확신입니다. 주 예수께서 선으로 악을 이기셨을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셔서 예수님의 승리를 선언해 주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던 사도와 제자들이 악인들의 핍박 속에 피 흘리며 죽어갈 때 악인들은 승리를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계시록 성경을 보십시오. 복음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고 목 베임을 당한 이들이 흰 옷을 입고 있습니다(계7:14). 승리자의 모습입니다. 또 그들이 심판하는 권세를 받고 천 년 동안 왕 노릇합니다(계20:4). 승리자의 모습입니다. 지극히 명예롭고 권세 있는 모습입니다. 누가 그렇게 될 줄 알았겠습니까?

다윗은 이런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악한 사울의 핍박에 악으로 대항하지 아니하고 선으로 대항했습니다. 그러한 그를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축복하셔서 사울에게서 나라를 빼앗아 다윗에게 주셨습니다. 다윗은 이 경험을 가지고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5).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내가 선으로 악을 이기고자 하면 주님이 나를 대신해서 싸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욕이 변하여 영화가 되게 하십니다. 이를 확신하십시오. 주님이 힘 주셔서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이 말씀은 우리들이 잠깐 머물러 섰다가 내놓아야 하는 몇 평의 땅을 약속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땅을 차지하고, 영원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영원한 소유권과 지배권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승리와 영원한 승리, 종말론적인 승리를 약속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영화와 면류관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유하다는 것은 낮아짐과 겸손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는 것이며, 자신에게는 엄격하나 타인에게는 관용을 베푸는 것이며,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온유한 자로 살아야 할 이유와 목적은 그렇게 살므로서 영혼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악한 자를 그 악에서 돌이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짐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상과 면류관을 얻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온유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과 영원한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부터 힘을 공급받아 주님의 온유하심과 같이 온유하십시오. 할렐루야!

 

행복으로 가는 길 ④

마5:1-12

지난 주 우리는 행복으로 가는 길... 세 번째

“온유한자는 복이 있나니” 라는 말씀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행복으로 가는 길... 네 번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라는 말씀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요.”

팔복의 네 번째 단계는...

앞의 체험들을 배경을 삼고... 거기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특이함은,

이 네 번째는... 다른 것들과 놀라운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온유한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모든 어떤 일정한 특성을 획득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네번째는 의를 획득한 자들에게 선포되는 복이 아니라

의를 갈망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복입니다.

다른 복들과는 다르게... 도달하지 않았음에도 주시는 복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가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배부른 자가 복 있는 자이지...

=목마른 자, 주린 자가 어떻게 복이 있는 자이겠습니까?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인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올바른 사람이라면... 자기가 현재 가지고 있는 인격에 만족하지 않고

=지금보다 더 나은 인격의 소유자가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소유하고 있는 현 수준의 인격에 만족하는 것보다,

비록 아직 도달하지 않았지만 보다 더 차원 높은 인격을 갈망하는 것이 훨씬 더 훌륭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란 바로 그런 것을 의미합니다.

현재 자신의 상태가 아닌... 더 높고 높은 의를 추구하는 목마름입니다.

팔복의 네 번째 복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주시는 두 가지 메시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영혼의 주림과 갈망에 대해서, 둘째는 확실히 보장된 영혼의 만족에 관한 말씀입니다.

먼저 성경에서 말하는 "의"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의"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의" 옳음, 바름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의”는 원어로(디카이오쉬네)라고 합니다.

“의”는 신적 본질의 속성이며, 구원을 가져오는 능력이자 선물입니다.

“의” 는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이며, 곧 그리스도자신입니다(롬 1 : 16).

믿음으로,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의”가 되셨고(고전 5 : 21),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었습니다(고후 5 : 21).

이 “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義)이며(빌 : 9),

곧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입니다(롬 1 : 16).

따라서 이러한 “의”를 가진 자는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 이웃과, 자연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제시하는 법을 준수하고 의무를 이행하는 선행,

즉 하나님의 명령이나 요구하는 것을 준행하는 것입니다.

그는 마음에 있어서는 의지를 하나님께 복종시키고,

행동에 있어서는 무슨 일을 하든 고상하고...

사랑할 만하고... 칭찬할 만하게 처신하는 것입니다.

“의”는 주기도문의 제 3 간구, 하나님의“뜻”과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한 인간의 구원과

그것에 따른 의와 사랑과 진리의 실현은 하나님의 뜻이요, 그것이 우리가 갈망하는 “의”인 것입니다.

그러한 인격의 형성, 심령과 행위의 완전에 대한 지향은... 인간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는 사람이요.., 의로운 세계를 갈망하는 사람입니다.

자 그러면 본문을 통해 주시는 말씀의 은혜를 살펴보겠습니다.

1. 영혼의 주림과 목마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사람에게는 두 영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두 가지 목마름이 있습니다.

하나는 육적인 목마름이요, 다른 하나는 영적인 목마름입니다.

첫째) 육적인 목마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서 8:5-8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은... 확연히 구분이 됩니다.

육의 사람은 육의 것만을 추구합니다. 육에 대한 목마름만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돈, 명예, 권력, 쾌락, 한마디로 세상부귀영화만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육의 속성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그 목마름이 끝이 없습니다.

그 목마름은 자신의 영혼에게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합니다.

육의 사람은 육의 목마름만을 축구하다가...

일생을 의미 없이 살다가 어느 날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그러기에 성경은 육신대로 살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사55:1-3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육신대로 살면 배부르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자기 인생에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대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목마름만을 위하여 살면... 진정한 만족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인생의 참된 행복이나 보람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 비참한 인생을 마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이야기 중에

노벨문학상을 탔던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 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노인은 능숙한 어부였습니다.

그는 어느 날 모든 장비를 준비한 후에 고기를 잡기 위해서 험한 바다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84일 동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85일 째 되는 날에 큰 고기를 발견했습니다.

그 노인은 밤새 파도와 고기와 함께 싸우며 고생하여 그 고기를 잡았습니다.

노인은 고기를 잡은 후에 그 것을 배에 묶고 의기양양하게 항구를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돌아오는 도중에서 상어 떼를 만났습니다.

노인은 최선을 다해 그 고기를 지켰지만,

상어들은 고기를 물어뜯어 앙상한 뼈만 남기고 말았습니다.

노인이 항구로 돌아왔을 때는 노인에게 남은 것은 수많은 상처와 뼈만 앙상하게 남은 고기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잡아보려고 밤잠을 자지 않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권세를.., 어떤 사람은 재산을... 얻기 위해 뛰어 다닙니다.

어떤 사람은 지식을 얻기 위해 책과 씨름하고, 어떤 사람은 신기록을 세우려고 지옥 훈련을 감수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쁜 아내나 멋진 남편을 얻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 중에서 몇몇 사람들은... 좋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누리는 기쁨도 잠시뿐, 그들은 이제 자신이 얻은 것을 지키기 위해 피 흘리며 싸웁니다.

결국 그는 마지막에 가서 수없이 많은 상처와 빈손만 가지고 마지막 인생의 항구로 돌아옵니다.

이러한 모습은 그리스도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항상 행복을 추구하지만, 진정한 행복에는 항상 굶주려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아시죠?

남편이 여섯이었던 여인 말입니다. 이 여인은 육신의 쾌락만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주위의 따가운 눈총뿐이었습니다.

이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육신의 목마름의 끝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목마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육신의 우물은 언젠가는 말라버리고 맙니다.

눅16장에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거기 등장하는 부자는 오직 세상의 것만을 추구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며 즐기고 살았습니다.

그는 오직 육의 목마름만을 추구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영원한 목마름의 땅인 지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거기서 영원히 목말라하며 주리며 살아야만 합니다.

또 에서의 이야기를 아지죠

그는 세상의 한 끼 주림을 참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장자권을 한 끼의 식사에 팔아버렸습니다.

그는 오직 육신의 주림을 해소하기 위하여 살다간 사람입니다.

결국 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영원한 유업을 잃어버렸습니다.

슬피 울며 탄식하게 되었습니다.

롯의 아내의 이야기를 아시죠?

그는 하나님께서 멸망당하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라고 하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므로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쾌락을 추구하며 살았던 그는 그것을 중지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므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이 사람들은 한결같이 육에 이끌려 살았습니다. 육신의 목마름을 채우고자 살았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영원한 나라를 상실 했을 뿐 아니라

세상에서 배불리려다가 영원히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된 것입니다.

둘째) 영적인 목마름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방금 전에 말씀드린 사람은 육적인 사람으로서 세상적인 목마름만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육적인 사람은... 오직 세상의 것만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육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말씀드리고자 하는 사람은... 그와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사람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입니다.”

육신의 사람은... 땅에 속한 사람이기에... 땅에 것만 목말라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사람은 영의 사람이기 때문에 하늘의 것을 추구합니다.

하늘의 것이란? 하나님께 속한 것을 말함입니다.

천국 백성은... 하늘에 속한 사람이기에... 하늘에 속한 것을 간절히 목말라합니다.

그래서 천국 백성은 하늘의 것인 "의"에 대해서 굶주리고 갈증을 느낍니다.

비록 몸은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자신의 신분은 하늘에 속한 사람이기에 하늘에 속한 것을 목말라합니다.

하늘 양식에 목말라 합니다.

하늘의 뜻을 알고자 애를 씁니다. 하늘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고자 애를 씁니다.

하늘의 법대로 살려고 애를 씁니다. 하늘의 뜻을 실현하려고 애를 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신분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예)...미국으로 이민가기로 확정된 사람은...

여기 살고 있지만...

어를 배우고

미국법을 배우고...

미국비디오를 보면서 미국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비록 이 땅에 살지만... 우리가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늘이 우리가 갈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육은 이 땅이 자기의 고향입니다....그래서 육은 항상 이 땅의 것만을 목말라합니다.

그러나 영은 다릅니다.

영은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영은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자기의 고향이 이 땅이 아니라... 하늘인 것을 잘 압니다.

그러기에 하늘의 것을... 간절히 목말라합니다.

그러기에 하늘 백성은 항상 하늘의 것을 목말라합니다.

자신이 하늘 백성인 것을 잘 아는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과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영혼이 죽거나 병든 사람은... 이런 욕구가 없습니다.

그러나 중생한 영혼, 거듭난 영혼, 살아난 영혼은 이런 욕구를 강하게 느낍니다.

마치 건강한 몸을 가진 사람이 음식과 물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정상적인 영혼, 산 영혼을 가진 사람은...

하늘의 “의”와 하늘의 “양식” 을 간절히 필요로 합니다.

그러한 모습이 바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성령에 의해 중생한 사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자 그러면 중생한 영혼은 구체적으로 어떤 목마름을 느낄까요?

첫째로 중생한 영혼은 무너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려는 욕구를 강하게 느낍니다.

“의”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피조물의 위치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의인”입니다.

반대로... 죄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피조물로서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제 멋대로 사는 사람은 죄인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피조물의 위치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갖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그 영혼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사망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이러한 그릇된 관계를 바로 하려는 강력한 욕구를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는 성령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회복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던 모든 일들을 가슴치며 회개합니다.

그리고 원래의 창조의 형상을 회복하여

다시 피조물의 자리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는 날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한 욕구를 강렬히 느끼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욕구를 강하게 느끼는 사람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입니다.

둘째 성령을 통해 중생한 사람은...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려는 강렬한 욕구를 느낍니다.

중생한 영혼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려는 강렬한 욕구를 느낍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뜻과는 다르게 계속해서 죄를 범합니다.

그는 이러한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서

자기 안에 자기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강력한 죄의 세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을 받은 후에... 그 누구보다도 의롭게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죄를 짓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오로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롬 7:24).

중생한 영혼에는 이러한 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가 있습니다.

만일 구원받은 후에도 이러한 영혼의 욕구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 영혼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혼이 병든 영혼일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사탄에게 눌림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자신이 주님을 알게 되면서...

옛날 성적으로 방탕하던 생활을 끊으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수없이 성적 유혹에 무력하게 넘어졌습니다.

그때에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은 나의 낡은 옛 사람에 속한 습관의 밧줄을 당장 끊어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 속으로

'지금 당장 끊어 버려야지!' '이 줄을 벗어버릴 때가 바로 지금이다!' 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죄의 뿌리를 뽑지 못한 채 지금도 옛 자리를 숨 가쁘게 지키고 있습니다.

나는 다시 한 번 옛 사람을 벗어버리기 위하여 발버둥을 쳤습니다."

이와 같이 중생한 영혼을 가진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강력한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기를 소원하는 큰 욕구를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욕구를 강하게 느끼는 사람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입니다.

셋째로 중생한 영혼은

죄의 세력을 벗어나서 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닮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려는 강렬한 욕구를 느낍니다.

중생한 영혼은 죄의 세력을 극복하고 주님을 닮아가려는 욕구를 강렬하게 느낍니다.

구원받기 전에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닮는 일에 아무 욕구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의에 대한 불감증 환자들이었습니다.

그때에 그들의 영혼은 아프리카 난민과 같이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주님을 닮으려는 강한 욕구를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욕구를 가진 사람은... 이미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이러한 의에 대한 갈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죽은 영혼이나, 병든 영혼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 3장)에서 이것을 "옛 사람과 새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를 믿기 전에 하나님을 떠나 육신의 정욕을 좆아 살던 사람을 "옛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는 회개하고 주님을 믿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을 "새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명령하기를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정욕을 좆던 옛 사람을 헌 옷을 벗는 것처럼 벗어버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령을 좆아 진리 안에 행하는 새 사람을 새 옷을 입는 것처럼 입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각 사람은 자기 신분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학생은 학생에게 맞는 옷을 입고,

군인은 군인의 제복을 입으며...교수는 교수의 신분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기 전에는 사단의 자녀였으며 따라서 정욕을 좆아 죄의 노예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후에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령 안에서 진리를 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도 죄의 노예처럼 사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자녀가 누더기를 걸치고

밥을 빌어먹으며 돌아다닌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도 죄와 정욕을 좆아 살던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골 3:5)고 명령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땅의 지체는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과 같은 것들"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것들을 "길들여지지 않은 사나운 짐승"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해치는 사나운 짐승은 살려두는 일은 위험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짐승은 가두거나 죽여버려야만 합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악한 정욕들을

사나운 짐승을 죽이듯이 인정두지 말고 죽여버리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좆아 지식에까지 의롭게 된 새사람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새 옷을 가리켜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용서와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주님의 성품이며 성령의 열매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성령께서 우리안에 들어오시고,

우리가 성령을 좆아 살 때에 자연스럽게 맺혀지는 성품입니다.

중생한 영혼은 자신안에 계신 성령을 통해서 이러한 열매를 맺기를 원하는 욕구를 강하게 느낍니다.

그리고 조금씩 성령을 좆아 행하면서 그는 주님의 성품을 닮아 가기 시작합니다.

이때가 되어야 비로소 성도들은 하나님 자녀로서의 모습과 성품을 조금씩 나타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중생한 영혼의 안에...

이러한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강렬한 소원을 일으켜 주십니다.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러한 소원이 바로... 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바로 이러한 의에 대한 소원을 가진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상적인 천국 백성은 주님을 알고 닮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그가 전에 알고 귀중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바울사도는 거듭나기 전에

자신이 가지고 알고 잇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다 버렸다고 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버리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제자들은 부름 받는 즉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쫒았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 받고 거듭난 후에 우상을 버리고 재물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3)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영혼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 5:6)하셨습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이 바라시는 의에 순응하며 살수가 있습니까?

이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가능합니다.(슥4:6)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보혜사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영원까지 함께 하십니다.

그 성령께서 함께 하시면서 도와주시기 때문에 의롭게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슥4:6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요16:13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우리는 앞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을 얻기 위해 명예와 재물, 권력과 지식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결코 사람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합니다.

주님은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이 음식과 수분을 필요로 하듯이,.. 사람의 영혼은 의를 필요로 합니다.

건강한 사람이 식욕과 갈증을 느끼듯이...

중생한 영혼도 의에 대한 갈증을 느낍니다.

중생한 영혼은 잘못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사악한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며, 주님을 닮아 성령의 열매를 맺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사람들이 진정한 만족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주님은 이러한 사람들이... "배부를 것" 이라고 하였습니다.

허기지고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음식과 물을 먹고 만족해하듯이,

의를 갈망하는 사람도 하늘로부터 오는... 의를 인해...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이들이 얻는 영적 만족은 다음과 같습니다.

* 칭의 =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됩니다.

첫째로 자신에게 의가 없음을 깨닫고 애통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는 판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자기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서 이미 마음이 가난한 자와 애통하는 자를 다룰 때에 자세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기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의가 없어 갈망하는 사람에 대해 내리는 하늘의 위로입니다.

* 죄를 이기게 해주십니다.

둘째로 의를 갈망하는 사람은 죄의 세력을 극복하는 성령의 능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앞에서 사도 바울이 자기 안에 있는 죄의 세력을 보고 탄식하며 애통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탄식하는 바울에게 성령의 능력을 통해 죄의 세력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롬 8:1-2)에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사도 바울은 자기 안에 있는 강력한 죄의 세력을 극복하려는 강렬한 소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이러한 그의 소원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는 의를 위해 굶주리고 목말라 하다가 마침내 의로 영혼을 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언젠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요 7:37-38)

주님은 누구든지 자신에게 나아오는 자들에게 성령의 생수를 주시고,

그것이 안에서 강같이 흘러넘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의를 구하는 자들이 받는 하늘의 위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한 때 자신 안에 있는 죄의 세력을 이길 수 없어서 고민했습니다.

그는 자기 안에 있는 강력한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는 죄로 인해 탄식하며 애통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영적 위로를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후에 그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유혹의 속삭임도 점점 쇠잔하여 갔습니다.

이제는 죄악 된 세상의 부름보다도 내가 새롭게 정하여 걷고 있는 방향에서

나를 부르는 음성이 더욱 강하게 들렸습니다.

이제는 세상의 유혹보다는 선한 사랑의 권고가 내 마음을 강하게 자극하였습니다."

그는 후에 성령의 도움으로 참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계속해서 성령의 음성을 따라서 (롬 13:13-14)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그는 이 성경을 읽은 후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더 읽지 않았습니다. 더 읽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 말씀은 광명한 확신의 빛으로 내 마음을 비추어

내 속에 있던 모든 의심의 어두움을 물리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계속 의를 추구했고, 마침내 모든 사람들이 추앙하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닮게 되고,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셋째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통해 죄의 세력을 극복할 수 있게 된 성도들은

정욕의 열매를 맺기를 그치고 주님을 닮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이제 서서히 성령을 좆아 살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성령을 좆아 사는 사람들은 신의 성품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로 정욕을 인해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는,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 1:4-7)

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마침내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의 열매는 사람들의 영혼에 진정한 기쁨과 만족을 가져다줍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사람들이 맺는 성령의 열매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우리는 진정한 만족과 기쁨이 명예나, 권력, 지식이나 재물이 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닮는 과정에서 맺히는 성령의 열매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영혼에 진정한 행복을 주는 것은... 이러한 거룩한 열매들입니다.

자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은 의에 대해 강한 갈증을 느끼고 계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으로부터 참된 만족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갈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다음 두 종류 중에 한 사람일수 있습니다.

첫째, 주님을 마음으로 영접하지 않은... 중생하지 않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 경우의 사람은 상하고 가난한 심령이 되어,

자기 죄인됨을 애통해 하며 주님을 진심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성령을 통해 새 생명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둘째, 주님을 믿고 중생하긴 했지만 계속해서

정욕을 좆아 살면서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성령의 뜻을 소멸하고 정욕을 좆음으로 그 영혼이 병든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정욕을 떠나 성령을 좆는 삶을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영혼이 다시 힘을 얻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의롭게 살고자하는 강한 갈증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뻐하고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인으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의에 대한 갈증이 강한 사람은 다른 정욕이 그를 시험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선한 열매를 맺으려고 힘써야 합니다.

호주에는 나도라는 식물이 있는데... 이것으로 밀가루와 같은 분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분말로 빵을 만들어 놓으면... 밀가루로 만든 빵과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도 가루에는 영양분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것으로 빵을 계속 만들어 먹는 사람은

무리 많이 먹어도 배고픔을 느끼지 못한체 영양실조로 죽게됩니다.

성경은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 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눅1:5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는 부자다. 내 힘으로 의로워 질 수 있다."라고 하는 사람은

부자관원처럼 빈손으로 쓸쓸히 돌아가게 하시지만...

자신의 나약함을 깨닫고... 의에 주려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사람은

니고데모처럼.... 하나님의 로 배부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위선과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처럼 갈망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은혜, 하나님의 의를 선물로 받게 됩니다.

세리장 삭개오는 모든 사람들이 지탄하는 죄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의를 갈구했으나 하나님의 의를 얻지 못했습니다.

몹시 괴로워하던 중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식을 듣자

예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의를 체험하기를 소원하였습니다.

때마침 예수님께서 거리를 자나가신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거리에는 벌써 사람들로 꽉 메워져 있었습니다.

키가 작은 삭개오는 사람들로 인해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뵈올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뽕나무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뽕나무 위로 올라가 밑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마침 뽕나무 아래로 지나가시던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고... 위를 보시며... 삭개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해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는 얼른 뽕나무에서 내려와...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가서... 융숭하게 대접했습니다.

사람들은 세리장의 집에 가셔서...

대접을 받는 예수님을 보고... 손가락질하며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의 허물과 죄악과 교만과 위선을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것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의가 아니면...그리스도의 의가 아니면...

그분이 주시는 생명수를... 지금 먹지 않으면...,

지금 마시지 않으면... 곧 죽을 사람처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삭개오에게 베푸셨던 것처럼...

주님께서 하나님의 의로 우리를 배부르게 만족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요.” 아멘


출처 :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 엘리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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