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궤 1.
출애굽기 25장 10절 - 22절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너는 정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 금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편에 두 고리요 저편에 두 고리며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고 그 채를 궤 양편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채를 궤의 고리에 꿴대로 두고 빼어내지 말지며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하게 할지며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지성소
지성소는 성소와 휘장으로 가리어져, 엄격히 구분되어 있는 곳입니다.
지성소는 성막의 중심로 벽은 성소와 같이 정금으로 싸여져 있었고, 천장은 사색의 가는
실로 그룹을 수놓아 짠 휘황찬란한 휘장으로 덮여 있습니다. 네 가지 실로 짜이고, 가는
실로 그룹을 수놓은 휘장에 의하여 성소와 구분되어 있습니다.
성막의 겉모양은 볼품도 없는 해달의 가죽으로 덮여 있는 장막에 불과하지만, 성막의 안은 정금과 그룹들이 사색의 가는 실로 공교히 수놓은, 화려한 막으로 싸여 있습니다.
지성소 안에는 이렇게 하나님의 지시대로 만들어진 정금으로 싸여진 법궤와 정금으로 만든 법궤를 덮은 시은좌와 정금으로 만든 두 그룹이 법궤를 덮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성소는 화려하게 장식된 곳입니다.
출애굽기 25장22절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하나님께서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겠다고 하신 곳으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입니다.
레위기 16장 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장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사망을 면하라. 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평상시에 성소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던 제사장들까지도, 이 지성소 안은 들여다 볼 수도 없는, 거룩한 곳입니다.
지성소 안을 함부로 들여다보거나 들어가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거룩한 곳입니다.
지성소는 하늘나라의 지극히 거룩한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을 의미하는 곳입니다.
이 지성소에는 일 년에 일차씩 속죄일인 7월10일에 제사장들 중에서도 특별하게 뽑힌 대제사장 한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고(레 16:), 대제사장이 이곳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도, 만약의 사태를 위하여, 다리에 끈을 묶고 들어가서 한 끝은 성소에 나와 있게 하였다고 합니다. 대 제사장의 예복 아래에 달린 방울 소리를 들음으로, 지성소에서 제사를 드리는 대제사장의 생사를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형벌을 받아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운명하실 때,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기 위하여 치어졌던 휘장의 한 가운데가 위로부터 갈라져서 성소 안에 들어온 제사장들은 지성소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있게 되었고, 들어 갈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당당히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니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요?
언약궤는 둘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궤 밑 부분을 언약궤라 말하고 그 윗 뚜껑을 시은좌, 시은소 라고 말합니다.
궤는 길이 2.5규빗, 넓이 1.5 규빗, 높이 1.5 규빗으로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고 금으로 궤를 싼 궤입니다.
성경에는 세 가지의 궤가 있습니다.
노아의 방주(Ark) - 창세기 6장 13절 14절
모세의 궤 - 출애굽기 2장 1절 -11절
언약궤 - 법궤라고도 말하고 증거궤 라고도 말합니다.
이 궤는, Ark 는 모두 구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언약궤의 윗부분인 시은좌, 시은소는 다음 주에 공부하기로 하고 법궤, 뚜껑인 시은좌는 다음시간에 공부하기로 하고 오늘은 법궤만을 공부하겠습니다.
언약궤
라고 말하는 뜻은 인간이 심판을 받게 되었는데, 피를 뿌리면 용서하여 주마 한 언약을
주셨기 때문에 언약궤라고도 말을 합니다.
법궤
라고 말할 때에는 하나님의 율법의 비가 들어 있기 때문에 법궤라고 말합니다.
증거궤
라고 말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1년 동안 지은 모든 죄를 사하여 주었다는 증거가 된다고 하여 증거궤라고 말합니다.
1.법 궤
출애굽기 25장 10-16절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너는 정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 금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편에 두 고리요 저편에 두 고리며,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고, 그 채를 궤 양편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채를 궤의 고리에 꿴대로 두고 빼어내지 말지며,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성막의 중심은 법궤입니다.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핵심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40년 생활을 마치고,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먼저 물이 범람하는 요단 강물에 발을 내디디었을 때에, 강물의 흐름이 멈추어서 육지의 길같이 되었고, 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여리고 성을 무너트릴 때에도,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앞서서 가고, 그 뒤를 백성들이 따르며, 여리고 성을 믿음으로 하루에 한 바퀴씩 돌고, 마지막 칠 일째 되는 날 일곱 바퀴를 돌고, 온 백성이 제사장의 나팔소리에 맞추어, 큰 소리를 질렀을 때에, 견고한 여리고 성이 안으로 무너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엘리 제사장시절에도 불레셋과 전쟁을 하다가 불리하자 법궤를 메고 이스라엘 진중으로 나오게 하였고, 그렇게 하였다가 법궤가 블레셋의 손에 넘어가게 되는 불행을 맞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신앙의 가장 핵심이었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법궤는 성막에 있어서 가장 핵심입니다.
법궤를 영어 성경에는 'Ark' 라고 합니다. 'Ark' 라는 말은 구약 성경에서 세 번 나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도 'Ark' 라고 되어 있고, 출애굽기 2장에 나오는 모세를 담은 갈 상자도 'Ark' 라고
되어 있고. 노아의 시대에 홍수로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이 심판을 피할 수 있었던 장소는 잣나무로
지어져서 안팎으로 역청이 칠해진 노아의 방주밖에 없었습니다.
바로가 모든 히브리 사내아이들을 죽이려고 했을 때,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숨겨 키우다가 더 이상 숨길 수 없어서 나일 강에 버려야 했는데, 아이를 담은 상자는 역청을 칠한 갈대상자였습니다. ('모세'라는 이름의 뜻은 '건져냄', 곧 '구원'이라는 의미.) 그런데 이 법궤를 영어 성경에선 'Ark' 라고 합니다.
'Ark'라는 말의 공통점은 구원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법궤의 재료
법궤는 볼품없는 조각목으로 만든 상자를 정금으로 싸은 상자입니다.
법궤를 만든 조각목은 본체는 하나님이시면서도, 사람의 모습을 하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말하여 주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양이나 준수함이 전혀 없는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모든 죄를 친히 담당하시고, 죄를 해결하시는 능력을 지니고 계셨고(사 53:1-12).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악 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 뵙고 또 모시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조각목으로 만든 법궤를 둘러싼 정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불변 하시며, 거룩하신, 영광에 주이신 성자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영광의 주님이십니다. 영원히 살아 계시며, 만물의 창조주가 되시며, 만왕에 왕이 되시며, 심판의 주가 되시는 전지전능 하신, 성자 하나님이 십니다
법궤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당시에 법궤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였듯이, 오늘 날 우리는 오직 예수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2. 법궤의 내용물
법궤의 안에는, 광야 시절에 하나님이 하늘에서 친히 이스라엘 백성에게 양식으로 내려주신 만나가 든 금 항아리,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께 받은 십계명이 새겨진 두 개의 돌비, 아론이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임을 증명하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습니다.
십계명이 새겨진 두 개의 돌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생명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금 항아리에
든 만나는 죄악으로 인하여 멸망 받아야 할, 인간들에게 생명의 떡이 되시기 위하여 오실 예수님을,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능력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3. 법궤 3가지 물품이 상징하는 의미
가. 만나를 담은 항아리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가나안땅으로 진군할 때 맛있는 음식이 없어 모세와 아론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합니다. 이럴 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용할 양식을 내가 너희에게 매일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16장4절) 이 양식은 바로 만나입니다.
만나의 형태는 깟씨 같고, 희고, 맛은 꿀 썩은 과자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살 때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 하늘에서 매일, 언제나, 한결같이, 늘 채워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만나 한 오멜을 항아리에 담아(출16:33) 간수하라고 했을까요? 한 오멜의 양은 약 2.3 리터 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광야에서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매일 양식을 준비하시고 먹이신 것을 후대 사람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시편 55편 22절, 마태복음 6장 26-32절, 시편23편)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만나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매일 매일 먹였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만나와 같은 좋은 것으로 우리 삶에 매일매일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십니다.
출애굽기 16장 33절 ‘또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
이 만나는 이스라엘인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늘에서 내려 그들을 먹인 떡을 말합니다. 이것을 한 오멜을 금 항아리 속에 담고,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를 다시 법궤 속에 넣어 두었습니다.
요한 계시록 2장 17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여기에서 말하는 감추었던 만나란 바로 언약궤 속에 있는 금 항아리 속에 보관해 두었던 만나를 말합니다.
감추었던 만나를 꺼내기 위해서는 뜰에서 성소로 들어가고,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고, 지성소의 언약궤 안에 있는 금 항아리 안에 감추어진 만나를 꺼내야 합니다.
여기에서 금 항아리는 거룩한 그릇을 상징하고, 금 항아리 안에 들어 있는 감추어진 만나는 비밀한 생명의 떡을 말합니다.
한 오멜이란 적은 량을 말할 것으로 오멜은 고체의 분량의 단위로서, 보리 한 단의 탈곡량인 약 2.3 리터(1되 2홉정도)에 해당됩니다.
이 단위는 B,C 1446년경 출애굽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준비하신 '만나'의 1인 1일분의 량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감추어진 적은 량의 만나를 꺼내 먹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성경 전체에 감추었던 만나가 더러 있기도 하지만, 요한 계시록 말씀은 모든 말씀이 감추었던 만나에 해당합니다. 그것은 비밀스러운 말씀들입니다.
나. 아론의 싹난 지팡이
광야생활을 하던 중 고라 자손이 반란을 일으켰고 결국 그 사건 때문에 하나님은 고라와 그와 동조했던 사람들은 심판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라자손을 심판한 사건 이후에도 아론에 대한 불만을 계속 품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론은 제사장으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아론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서 12지파에게 지팡이에 이름을 적고 지팡이를 회막 안 증거궤 앞에 놓으라고 하였고, 아론의 지팡이에서만 싹이 났습니다.
결국 아론의 권위에 대해서 사람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각자 자신의 지팡이를 가지고 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아론의 지팡이를 가져다가 증거궤 즉 법궤 안에 넣으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민수기 17장 10절 말씀처럼 패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언약궤 안에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지팡이란 길을 인도하는 인도자를 상징합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주님의 오른 손에 붙들린 인도자를 말합니다.
민수기 17장 5-10절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를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매 그 족장들이 각기 종족대로 지팡이 하나씩 그에게 주었으니 그 지팡이 합이 열 둘이라. 그 중에 아론의 지팡이가 있었더라. 모세가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더라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모세가 그 지팡이 전부를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취하여 내매 그들이 보고 각각 자기 지팡이를 취하였더라.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패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았다는 말은 생명이 있다는 것을 상징하고 순이 나고 꽃이 피었다는 말은 성장이 있다는 것을 상징하고, 열매를 맺었다는 말은 생명의 성장의 결과를 말합니다. 여기에서 살구가 상징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그대로 지켜 이루어 가시겠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예레미야 1장 11-12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살구나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지켜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열 두 두령의 지팡이는 인도자들을 상징하고 열 두 지팡이 중에서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 난 것은 열 두 지파의 두령이 있을 지라도 하나님의 택한 자만 생명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생명으로의 인도하심을 상징하고, 그 생명의 인도 방법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목자를 통하여 생명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다. 십계명 돌판
언약궤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기록된 두 돌판이 들어 있는 궤를 말합니다.
언약이란 크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일종의 계약문서와 같습니다. 그 언약의 내용은 구약 시대에는 두 돌판에 새겨진 십계명이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에 관한 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법을 지키면 하늘에 있는 신령한 복을 주시고, 안 지키면 안 주시겠다는 조건입니다.
두 돌판이 상징하는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법을 상징하며, 이것은 결국 우리를 심판하는 잣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구약의 십계명은 말씀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십계명뿐만 아니라 성경전체를 알고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신명기6장4-10절) 마음에 새기고 네 손목에 매고,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여 늘 성경말씀을 가까이 하고 자녀에게도 부지런히 가르쳐서 집에 있을 때에, 길에 행할 때에, 누웠을 때에, 일어날 때에 항상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알고 지키면 (신6장17-19절, 신명기6장24-25절, 신명기8장1절) 번성과 복입니다.
말씀을 상징하는 십계명 돌판을 넣으라고 한 것은 늘 말씀에 대해서 묵상하고 기억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솔로몬이 법궤를 열어 보았을 때는 두 가지가 분실되고 두 돌판만 남아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싹난 아론의 지팡이와 만나가 든 항아리가 없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열왕기 상 8장 9절 “궤안에는 두 돌판외에 아무 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급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우리는 지금 성막을 세울 당시의 성막을 공부하니 그런 문제는 배제하겠습니다.
4. 언약궤의 비밀
법궤가 만들어 진 것은 BC 1445년으로 알려져 있고 출애급할 때 광야에서 만들었습니다. 법궤가 없어진 연대에 대하여는 많은 이론이 있지만 모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성하고 BC 959 년경에 법궤를 성전에 두기 위하여 날라 와서 열어 보았습니다. 두 돌판만 남아 있었습니다.
성경말씀에 보면 언약궤로 인하여 많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물이 흘러넘치는 요단강이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들어서자 멈추었고, 이스라엘은 마른땅을 건너는 것 같이 요단강을 건너 간 기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언약궤의 비밀을 알 때 우리는 승리의 삶을 살수가 있고 하나님 나와 함께 계심을 확신하며 살수가 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 자신이며, 하나님의 임재요, 생명이요, 능력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언약궤를 가진 놀라운 자들입니다.
언약궤가 항상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보좌를 상징함을 보여줍니다. (사 6:1-3)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불기둥 구름기둥이 항상 회막 위에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것이요 그 위치가 바로 언약궤 바로위에 임하여 계셨던 것입니다. (출 40:34-38)
언약궤는 하나님이 제사장들을 만나주시고 백성들에게 할 말을 가르쳐 주시는 곳입니다. (출 25:22) (출 30:6)
이 모든 언약궤의 의미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희생 제물이시며 속죄 하시는 우리들의 대 제사장이 되십니다.
휘장이 되셔서 자기 몸으로 우리들의 죄악을 담당하심으로 하나님께 나갈 길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 언약의 백성이 되었습니다.(히 8:10-13)
이와 같이 언약궤는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을 상징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권능과 거룩하심과 의로우심과
영광을 의미합니다. 나가서 언약궤는 바로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합니다.
이제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들에게 적용이 되고, 이 놀라운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5. 언약궤가 제사 외에 사용된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일차적으로 성막에서 백성들의 제사를 받으시며 만나 주시는 역할이었지만 언약궤는 동시에 하나님 자신을 상징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기적의 역사가 언약궤를 중심으로 일어 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사십년 동안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 하셨습니다.
광야를 행진할 때 언약궤는 사흘 길을 앞서서 행하였으며 구름기둥 불기둥은 바로 언약궤 위에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 그들과 함께 계심을 항상 확인 할 수 있게 하신 것이며, 하나님이 친히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심을 확신 시켜 주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이 이 광야세상을 살 때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갈 5:16)
나. 언약궤 앞에서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
언약궤가 나가는 곳에 요단강 같은 앞길을 막는 것들은 모두 갈라지고 멈춥니다.
아무것도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믿음으로 우리는 앞으로 전진 할 수가 있습니다.(수 3:14-17)
다. 언약궤 앞에서 여리고성도 무너졌습니다.(수 6:1-5) (수 6:20-21)
그 철통같던 여리고성도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힘없이 무너져 버립니다.
사단의 견고한 진도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 무너집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순종하면 됩니다. (고후 10:4-5) (눅 10:19)
라. 이스라엘은 언약궤를 믿고 블레셋과 싸우러 나갔습니다.(삼상 4)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세워 블레셋과 싸우러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패하였고, 하나님의 언약궤마저 빼앗기는 패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블레셋이 쳐들어오게 된 것은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형식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언약궤를 앞세웠던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지도 않고 형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마귀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회개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하고 믿음으로 담대히 나갈 때 승리를 주십니다. (삼상 4:3-4)(삼상 4:10-11)
마. 언약궤 앞에서 다곤상이 무너졌습니다.(삼상5)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리품으로 생각하고 자기들의 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이겼다고 생각으로 하였습니다. 다곤 우상의 방에 같이 언약궤를 넣어 두었습니다.
다곤우상이 넘어져 목이 부러졌고, 블레셋 사람들의 몸에 질병이 퍼져 죽어갔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다른 잡신들에게 빼앗기지 않으십니다. 우상은 헛것입니다.
성경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예수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만이 천지 창조자시며 참 하나님이십니다.(사 45:21-22)(사 48:11-13)(시 115:3-8)(계 4:10-11)
바. 언약궤를 드려다 본 벳세메스 사람들이 많이 죽었습니다.(삼상 6)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돌려보냈을 때 벳세메스 사람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언약궤를 들여다보았고 무려 오만 칠십인이 죽임을 당했다고 말씀합니다. (삼상 6:19)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권능을 보여주시는 말씀이며, 우리 인간들이 언제든지 피없이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여야 함을 가르쳐주시는 말씀입니다.
사. 언약궤를 손으로 붙잡은 웃사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삼하6)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수레에 실어서 옮겨 올 때 수레가 흔들리므로 웃사가 언약궤를 붙잡았는데 그만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삼하 6:6-8)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길 때에는 반드시 채로 꿰어서 어깨에 메어 옮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옮기다가 사고가 난 것입니다. 나가서 수레에 옮기는 것은 오늘날의 교훈으로 편리주의를 말씀합니다. 힘들지 않고 수레에 옮기면 너무나 쉽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희생 없는 예배, 형식적인 예배, 편리주의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예배에 늦게 왔다가 일찍 가는 형식주의, 집에서 TV 설교 듣고 때우는 예배, 모든 것을 쉽게 하려는 것을 주의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정성과 중심과 노력을 보십니다. 헌신과 희생과 눈물을 보십니다.
아. 언약궤를 모신 오벳에돔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삼하6)(삼하 6:10-11)
하나님을 모신 그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마음속에 예수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시고 항상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자. 언약궤는 다윗 왕이 예루살렘으로 옮겨 왔습니다.(춤을 춘 다윗)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왔는데 이때에는 언약궤를 어깨에 메고 옮긴 것을 알 수 있습니다.(삼하 6:12-15) 언약궤를 옮길 때에 다윗에게 멈출 수 없는 기쁨이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그 마음 중심에 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기쁨 주십니다.
차. 언약궤는 솔로몬 성전에 안치 되었습니다.(왕상8)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언약궤를 들여 놓고 제사를 지냈는데,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이 가득히 임하였습니다.(왕상 8:6-14) 이것은 하나님이 성전에 계심을 확신 시켜 주시는 것이요, 이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를 기뻐 받으시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항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엡 5:16-18)
카. 언약궤는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한 후로 없어졌습니다.(대하36, 렘52)
북쪽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기다가 결국 앗수르 에게 주전 722년에 멸망을 당하였고, 남쪽 유다도 결국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부지런히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경고하셨지만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궁궐과 하나님의 전은 무너지고 불타버렸고 성전 기명들은 모두 바벨론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날 이후로 언약궤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죄악을 저질렀을 때 회개할 기회를 충분히 주십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을 때는 심판과 멸망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언약이 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사랑하사 열심히 선지자들을 보내셨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이 지켜지지 않음으로 언약관계가 깨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언약궤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큰 능력과 인도하심과 영광으로 나타났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으로 나타나심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6. 언약궤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 동안 여러 가지 고고학적 발굴을 통하여 여러 가지 주장들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어느 분은 언약궤가 이미 발견되었으며 그곳은 놀랍게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달려죽으심 그 바로 밑에 감추어져 있었고 그 속죄소위에 예수님의 피가 묻어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우리들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언약궤의 영적인 의미이며 적용입니다.
가. 언약궤는 하늘에 있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그리고 계시록에도 하나님의 언약궤는 바로 하늘 성소에 있습니다. (히 9:10-14)(히 9:24)(히 10:12-13)(히 10:19-20) 하나님의 언약궤는 바로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이요, 보좌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새 하늘 새 땅에서는 언약궤는 필요가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 졌고 더 이상 그림자는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승천 그리고 성령의 강림하심과 예수님의 재림으로 인하여모든 것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계 4:5)(계 11:19)(계 21:22-23)(계 22:1)(계 15:5)
나. 하나님의 언약궤는 이제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일년 일차 피를 가져야 만이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휘장안의 언약궤로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피가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휘장은 예수님의 십자가요 육체이기에 십자가가 없으면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다 내어주시고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해주시고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찾아 오셨고 나를 성전으로 삼으시고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말로다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고전 3:16)(요 14:16)(갈 2:20)(요일 4:12-16)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사랑하면 그 사람 속에 하나님이 계심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임재하심은 바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임하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고전 6:19-20)
매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됨으로 하나님의 언약궤가 내안에 있는 것입니다.
내 안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신 것이며 언약궤가 있는 것입니다.
내안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피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받은 우리들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이미 보통사람이 아닙니다.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이 됩니다.
예수님이 나의 능력이시며 생명이시며 거룩함이 되시고 지혜가 되십니다.
다. 그 언약궤를 누리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언약궤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나타 난 것 같이, 우리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나타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믿음이 요구됩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가 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행함으로 우리는 내안에 계신 주님을 나타내는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엡 3:17-19)(행 3:6)
라. 거룩함이 있어야 합니다.
내 안에 게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를 이기고 거룩함을 이룩해야 합니다.
죄 가운데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나를 통하여 나타나기를 바랄수는 없습니다. 날마다 새로워 져야 합니다. 날마다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마. 사랑과 순종이 있어야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대 살고자 하는 자들에게 주님은 능력과 기쁨으로 나타나주십니다.(요 14:21-23)
바. 주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빌 2:5)(고전 2:16)
기도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말씀을 통하여 주님을 바라 볼 때 주님께서 내 마음에 나타나주시고 주님의 마음을 주십니다. 그럴 때 모든 것이 믿어지며, 확신이 임하고, 용서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며 승리하게 됩니다.
주님의 마음은 믿어지는 마음이요,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사. 주님의 권능을 알아야 합니다.
언약궤가 가는 곳에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영광과 권능이 나타나셨듯이, 지금 우리가 가는 곳에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자들입니다.(고후 4:7-10)
아. 나 자신은 십자가에 죽어야 합니다.
내가 살아 있어 내 욕심을 채우며 내 뜻을 이루려고 한다면 주님은 일하실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주님만을 의하지는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내 뜻과 욕심과 계획과 자랑과 교만과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못 박아 죽어야 합니다.(고후 12:10)(고후 1:9)
이 세상에서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통의 모든 것들은 따지고 보면 내 자신이 스스로 나를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하기 때문에, 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는 주님의 손길입니다.
결국 항복하고 부서지고 주님만을 의지하는 자들이 됩니다. 그럴 때에 주님이 일하시고 비로소 나타나십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 언약궤가 내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거룩함과 믿음과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이 나로부터 흘러 나가게 됩니다.(요 7:38)
자. 우리는 모든 일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고 기도할 때 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놀라운 사랑과 전지전능하심을 믿고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내 힘이 아니라 내안에 계신 주님의 능력과 뜻을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나타나심으로 모든 영광을 받으시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지금 나타나 주시기를 원하는 기도입니다.
구약의 놀라운 하나님의 언약궤는 지금 성전이 된 내 몸 안에 있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통하여 임하여 계십니다. 믿음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내안에 살아계신 주님을 항상 바라보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지키고 그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나는 아무것도 걱정 할 것이 없습니다.
전능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내가 정말로 예수님을 믿는 자인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성전 됨과 내안에 언약궤 있음을 깨닫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언약궤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늘 성전에 있고 하나님의 보좌입니다.
성령의 임하심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곳입니다.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요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십니다.
언약궤를 누리려면 내안에 언약궤 주님이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거룩함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주님의 권능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십자가에 죽어야 주님의 권능이 나타납니다. 모든 일을 예수님의 아름으로 해야 합니다.
언약궤가 내안에 있음으로 오늘 나를 인도하시고 능력으로 나타나시며 나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정리 :
하나님은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하시고 그 예표로 언약을 주시었습니다.
법궤 안에는 십계명의 돌비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양심을 궤 안에다가 두고, 이것을 보지 않고, 뚜껑을 덮어서, 그 위에 있는 피를 보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감아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기를 원하는 심정이 들어 있는 것이고 이것이 가장 큰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궤 안에는 증거판과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가 들어 있습니다.
가. 궤안에 있는 십계명, 율법은
1. 죄를 들추어내는 일을 합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일을 합니다.
로마서 3장 20절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 율법은 인간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일을 합니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 아무리 선한 행실을 하여도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1절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3. 율법은 영원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7절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4. 율법은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완성되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율법을 완성함은 용서라는 율법을 하나 더 첨가함으로 율법이 완성이 된 것입니다.
주님이 대신 죽으심으로 용서하여 버리니 율법이 완성된 것입니다.
5. 예수는 율법의 마침입니다.
로마서 10장 4절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6. 율법의 정신도 역시 사랑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6절 - 40절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은 율법으로 우리를 판단하시지 않고 시은좌에 고여 있는 피를 보시고 우리의 죄를 보시지 않고 용서하여 주시는 사랑의 법을 만드시고, 그 아들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심으로 사랑의 완성으로 누구든지 예수 십자가를 믿으면 구원을 얻게 하는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대제사장이 1년에 한 차례씩 양의 피를 들고 들어가서 피를 뿌리고 시은좌에 붓고 한 후에 하나님께서 이를 보시고 내 백성의 죄를 용서하노라는 말씀을 들려주어 백성들이 1년 동안 지은 모든 죄가 용서받는 날이 대 속죄절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의 피로 인하여 죄 용서를 받고 구원에 참례하고 하나님의 자녀까지 되었습니다.
나. 언약궤 안에는 만나가 들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16장 4절 -36절 “4절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만나는 생명의 떡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1. 만나는 충분히 내리었습니다. -
얻지 못한 자가 없이 거두러 나간 사람은 충분하게 거두었습니다. 세상의 떡은 충분치 못하여 기근이 있을지라도, 생명의 떡은 모자람이 없이 구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하루에 55,000 가마의 만나가 매일 새벽에 내렸습니다.
550 대 트럭에 싫어야 하는 만나가 40년동안 매일 내렸습니다. 안식일에는 안내렸지만 안식일 전에는 두배로 내렸으니 매일 내린 것과 같습니다.
2.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적당합니다.
어른이나 어린아이나 모두 골고루 먹을 수 있는 양식입니다.
3. 만나는 건강식입니다.
만나를 40년간을 먹어도 몸이 허약하여지지 않고 질리지도 않는 하나님이 내리시는 최고의 영양식입니다.
4. 만나는 확실하게 매일 내리고 안식일에는 내리지 않는 확실한 생명의 양식입니다.
내일 일을 염려 할 필요 없이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순종하면 확실하게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양식입니다.
만나는 광야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양식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예수만 바라보고 살아갈 때에 이 생명의 양식이 쏟아져 내려옵니다.
세상의 양식을 의지할 때에는 만나가 그친 것을 알고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갈 때에 오늘날도 영의 양식인 만나가 나에게 공급됩니다.
다. 법궤 안에는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가 들어 있습니다.
민수기 17장 1절 -11절 “10절 -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패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지팡이는 이미 말라 죽은지 오래 된 나무이지만 다시 싹이 나고 열매를 맺은 것은 하나님의 능력은 죽은 자를 능히 살리시어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생명의 열매를 맺으시는 것을 예표 하신 것입니다.
에스겔서 37장 1절- 10절 “5절 -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하나님께서 생기를 들여보내면 모든 만물이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생기가 없을 때에는 죽는 것입니다. 생기가 빠질 때에도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생기에게 명령하여 다시 들어가라고 말하면 죽은 나무도 열매를 맺고 죽은 뼈도 다시 살이 오르고 힘이 생기고 살아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 같이 우리도 장차 부활의 생기를 받아 다시 살아 날 것을 이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를 법궤 안에 보관하여 둠으로 언약을 확실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법궤는 우리에게 함부로 가까이 할 수 없는 엄위가 있고, 또 그 속에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기도와 성결함을 입은 생활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 갈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우리들은 이제 담대히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면서 살아가는 은혜를 받은 것을 다시 생각하고 감격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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