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 성전!! 하나님의 집!!!

[스크랩] 알기 쉬운 성 막 론

하나님아들 2014. 1. 21. 15:33

엠파스 쉴터에서 가져옴

 

알기 쉬운 성 막 론
 
 서론(序論)
 
   성막(聖幕)은 하나님을 섬기는 천막이다. 성막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시고 출애굽 시키실 때에, 광야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한 이스라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게 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에게 모든 식양(式樣)을 보여 주시고 그대로 만들게 한 이동식 성전(聖殿)이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몇 대를 걸쳐, 430년 동안 기나긴 세월을 살아 왔기 때문에, 애굽의 종교와 생활이 몸에 배어 있었다.
   한 예로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받을 때, 모세가 오래 동안 내려오지 않자 자신들을 인도한 신을 만들라고 아론에게 졸라대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앞에서 번제(燔祭)와 화목제(和睦祭)를 드리고 즐거워했던 그러한 신앙이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聖幕)은 여호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게 하고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지시하시고 만들게 한 것이다.  출애굽기 25장8절 이하에 말씀에서“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서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帳幕)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고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성막은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함께 계신 것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짓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막(聖幕)의 재료와 기구 또 구조와 모양 그리고 제사법(祭祀法) 하나 하나에는 신비한 영적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래서 성막에 대하여 배우고 연구하므로 엄청난 영적 성장을 가져 올 수 있다.
   성막론(聖幕論)을 배우다 보면, 신론(神論), 교회론(敎會論), 내세론(來世論), 인간론(人間論) 등과 신앙생활의 참된 방법을 터득하게 되고, 말씀 위에 굳건히 선 신앙을 가지게 될 것이다.
  영적으로 혼탁한 이 시대에 살아가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에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바른 신앙을 제시해 줄 것이다. 매시간 풍성한 은혜가 넘치는 성경공부가 될 것을 확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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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의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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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막 조감도
 
 
 
제1장 성막의 건축에 필요한 설계, 재료와 인력
 
     성막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설계하신 대로 모세에게 명하여 짓게 하셨다.  출애굽기 25장9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무릇 내가 에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성막을 짓는데 필요한 모든 물질과 인력은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조달(調達)하라고 하셨다.  출애굽기 25장1절에서9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고 하셨다.
    또 출애굽기 31장1절에서11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사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가지 재주로  공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보석을 깍아 물리며 나무를 새겨서 여러가지 일을 하게 하고,  내가 또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세워 그와 함께 하게 하며 무릇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로 내가 네게 명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  곧 회막과 증거궤와 그 위의속죄소와 회막의 모든 기구와 상과 그 기구와 정금 등대와 그 모든 기구와 분향단과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과 제사직을 행할 때에 입는 공교히 짠 의복 곧 제사장 아론의 성의와 그 아들들의 옷과 관유와 성소의 향기로운 향이라 무릇 내가 네게 명한대로 그들이 만들지니라."(출 36:1)고 하셨다. 이렇게 성막을 짓는데 필요한 물질과 인력을 자체 조달(調達)하도록 말씀하셨다.
    그리고 성막을 짓는데 들어간 건축 재료는, 금이 29달란트 730세겔(약 1톤 반), 은이 100달란트 1775세겔, 놋이 70달란트 2400세겔이었고(출 38:24-29),  또 청색, 자색,  홍색의 가는 베실, 양가죽, 염소털, 14보석, 해달가죽, 조각목등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지금으로부터 50년전 미국에 자료에 의하면 500만$(약60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학습문제
 1.성막은 누가 설계하고 만들게 하였는가?
 
2.성막을 짓기 위한 재료는 어디서 조달하라고 하였는가?
 
3.성막을 짓기 위한 예물은 어떠한 마음으로 드리는 사람의 것을 받으라 하였는가?
 
4.성막의 겉모양은 허름해 보였고 내부는 매우 호화롭게 꾸며졌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였다고 생각되는가? 각자 느껴지는 생각을 두 가지 이상 자유롭게 써보자.
 
 
제2장 성막(聖幕)이 갖고 있는 의미는?
 
1.성막의 명칭이 가진 의미.
 
  1)성막(聖幕)
  (출 26:1∼너는 성막을 만들되 양장 열폭을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만들지니) (출 26:15 ; 39:33)
   성막(聖幕)은 히브리어로 '미쉬칸'이다. 이 말은 '거주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거처', '거주지'란 의미를 뜻한다.
  그러므로 성막은 하나님이 거처하시는 천막임을 말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계신 곳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매우 성스럽고 거룩한 곳이다. 그래서 성막은 이스라엘백성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도록 울타리가 쳐지고 레위지파에 의하여 24시간 지켜졌다.
  만약에 함부로 범하는 사람이 있으면, 즉결처분이 될 정도로 성역화 된 곳이다. 이렇게 성막은 성스러운 천막인 것이다.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2)회막(會幕)
 (출 33:7∼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다 진밖에 회막으로 나아가며) (출 39:32)
   회막(會幕)은 히브리어로 '오헬 모메드'이다. 이 말은 '회집(會集)하는 장소'로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만나는 장막', '만나는 집', '만나는 천막' 즉 교제하는 곳이란 뜻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만물의 창조자시며 주관자이시다. 또 거룩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는 장소를 구별하셨던 것이다.
 
  3)여호와의 장막(帳幕)
 (왕상 2:28∼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 저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에 뿔을 잡으니)
  장막(帳幕)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오헬'로 '천막', '처소'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장막은 하나님이 계신 처소(천막)이란 뜻을 갖고 있다.
  솔로몬 왕은 성전 봉헌식때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정이오리이까"(대하 6:18)하였다.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장막은 꼭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곳에만 계신 곳이라기 보다는 섬기는 장소에 의미를 더 부여(附與)하고 있다.
 
 
  4)법막(法幕)
 (대하 24:6∼왕이 대제사당 여호야다를 불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레위사람을 시켜서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의 회증이 법막을 위하여 정한세를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거두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법막(法幕)은 히브리어'오헬 에드트'이다. 이 말은 '법의 막', '증거(證據)의 천막'이란 뜻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법막은 하나님의 증거막(證據幕) 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천막이란 뜻이다. 십계명의 돌판을 증거판이라고 하였다(출25:6).
 
   5)여호와의 전
 (출 23:19∼너희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여호와의 전은 히브리어로 '여호와 바이트'이다. 이 말은 '여호와의 집', '여호와의 궁전(宮殿)'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신 곳으로 말할 수 있다.
 
*학습문제
 
1.성막의 명칭을 통하여 느껴진 성막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에 대하여 각자에 의견을 적어보자.
 
 

 
2.성막(聖幕)의 구조(構造)가 갖고 있는 영적 의미는?
 
  성막은 길이가 100규빗(45m)에 폭이 50규빗(22.5m)인 장방형의 세마포 울타리를 친 마당 안에 지어졌다. 약 310평 정도의 대지 위에 지어졌다.
  성막의 외형의 크기는 길이가 30규빗(13.5m), 폭이 10규빗(4.5m), 높이가 10규빗(4.5m)의 크기로 지어졌다. 그리고 성막 안에는 휘장으로 칸을 막아 지성소는 가로10규빗, 세로10규빗, 높이10규빗이 되는 것이다. 성막은 밖에서 보면 장방형으로 지어졌고, 안에는 정방형인 지성소와 장방형인 성소로 두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다. 겉으로는 약18평 정도밖에 안되는 작은 장막이었다. 그러나 이 성막은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며, 만나는 장막으로, 성스러운 곳이요, 거룩하게 구별된 곳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막의 규격을 통하여 여러 가지의 영적 의미를 찾아 볼 수 있다.
 
 1)장방형(長方形)의 뜰
 
   성소를 가운데 두고 주위를 가로50규빗, 세로100규빗으로 하고 높이5규빗되는 세마포 울타리를 두르고 세마포 울타리 안을 성막뜰이라고 하였다. 이 뜰에는 번제를 드리기 위한 놋 제단과 물두멍이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폭이 20규빗이나 되고 고가 5규빗 되는 넓고 높은 문이 동쪽에 나 있어서, 이스라엘백성은 누구나 항상 들어올 수 있도록 개방되어있었다. 그러므로 이 뜰은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이곳을 마구 밟고 다녔던 것이다. 우리는 이 성막 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생각할 수 있다. 우리 주님의 생애는 무시당하고 짓밟힌 생애이시다. 그것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한, 그들에 의해서였다.
 
*학습문제
1.예수님은 어떤 부류의 사람으로부터 많이 짓밟히고 무시당했는가? 직분을 적고 그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나 적어 보자.
  
 
2.성막 뜰로 들어가는 문은 20규빗으로 넓고 높게 나 있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여 주고 있는 것인가? 마태복음 11:28절 말씀을 읽고 대답하여 보자. 참조: 요 3:16 ; 6:37, 롬 10:9∼13절.
 
 

 
  2)성소(聖所)(출 26:31∼33)
   
  성소(聖所)는 성막안에 있는 방이다. 성막은 앞에서도 말하였지만 장이 30규빗이고, 광이 10규빗으로 지어졌다. 그 중에 성소는 출입문 입구로부터 장이 20규빗이고, 광이 10규빗 되는 방이다.
  성막(聖幕)에는 지성소(至聖所)와 성소(聖所)로 나뉘어진 두개의 하나님을 섬기는 방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의 방이다. 이 성소와 지성소는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짠 휘장으로 구분하였다. 이곳은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 아론의 지파라도 제사장들만이 출입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다.
   웃시야 왕은 이곳에 들어가서 분향단(焚香壇)에 분향(焚香)을 하려다가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는 징계를 받았던 곳이다. 이와 같이 거룩하게 구별된 곳이다.
  성소의 내부의 크기는 약12평 정도이다. 그러나 성소의 내부에는 모든 성물이 금과 은으로 되어 있고, 가는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공교히 수놓아 짠 천으로 덮여져있었다. 한마디로 호화찬란하게 꾸며져 있었다.
 이곳에서 제사장들은 떡상의 떡을 다시 전설하고, 분향단의 향을 피우며, 정금 등대의 불을 밝히는 일을 하며, 하나님을 섬겼다. 온전한 섬김과 봉사와 헌신이 있던 곳이다.
   성막 뜰이 예수 그리스도의 외적인 모습을 상징한다면 성소는 신성과 인성을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의 내적인 모습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외적으론 인간들에게 크게 흠모할만한 곳도 없는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짓밟히고, 찢기시는 생애를 보내시며,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셨지만, 그분의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선하신 분으로, 성부 하나님 앞에서도 흠도 없고, 점도 없으신 분이시다. 그리고 항상 성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의 뜻대로 사셨으며, 성령 충만한 삶과 기도와 사람을 실천하시며 살아가신 분이시다.(요 7:16 ; 8:28, 29)
  마태복음11장29절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친히 말씀하셨듯이, 성자 하나님이시면서도, 항상 겸손한 모습으로 섬기는 삶을 친히 보이시고, 용서와 희생과 자비를 베푸시며, 진실한 사랑을 친히 실천하신 분이시다. 가장 고귀한 삶에 모범을 보이셨다. 성소는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중에, 내적 속성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성도가 처음에 주님의 부름을 받고 교회에 나오면, 속죄의 은총을 깨닫게 되고 죄를 자복하며 회개를 하게된다. 그리고 자신의 죄와 허물을 알게 되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 단계의 신앙은 성막 뜰의 신앙이다.
  그러나 신앙이 성숙하여지면,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헌신하고 봉사하는 생활을 하게된다. 사명감도 깨닫게 되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까? 생각하며 충성하게 된다. 할 수 있는 한 예수님의 뜻안에서 살아 보려고 노력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이 신앙이 성소의 신앙이다.
  또 성소에서는 지상교회의 모형을 찾아 볼 수가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학습문제
 
1.예수님의 사역중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고 은혜스럽지 않은 것은 없다. 그 중에서 가장 크게 감명을 받고 은혜스럽게 느낀 것을 한가지만 말해보자.
 
 2.지금 나 자신의 신앙의 단계는 어디에 와 있다고 느껴지는가? 묵상하고 적어보자.
 
 

 
 3)지성소(至聖所) (출 26:34, 히 9:3∼7)
 
   지성소(至聖所)는 사방이 각 10규빗으로 된 정방형의 방이다. 성소와 지성소는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짠 휘장으로 가려져 있었다. 이 지성소는 별개의 출입문이 없고 성소에서 휘장을 열고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지성소에 출입은 아무나 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일년에 한 차례 온 이스라엘백성을 대표하여 뽑힌, 대제사장만이 출입했던 곳이다. 제사장이라도 일반제사장들은 들어 갈 수가 없는 곳이다.
   성막은 크게 세 곳으로 나눌 수가 있다. 성막 울타리 안에 있는 성막뜰과 성막안에 있는 성소와 지성소이다. 성막 뜰에는 이스라엘백성이나 성전을 지키고 제사를 돕는 레위인들은 누구나 출입할 수 있던 곳이고, 성소에는 제사장들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성소는 휘장으로 가리워있어서, 성소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도 감히 들여다 볼 수 없는 특별히 구별된 곳이다. 이 곳에는 순금으로 쌓인 법궤와 순금으로 만든 속죄소(시은좌)와 그 위를 덮고 있는 그룹들이 있다.
  그 해 대제사장은 정해진 날에 혼자 지성소에 들어가서 자신을 위한 속죄의 피와 온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의 피를 뿌리며 하나님을 섬겼던 곳이다.
  히브리서 9장7절 말씀에서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고 기록하고 있다.
   지성소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천성교회의 모형과 그림자이다. 지성소는 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을 상징하는 법궤를 모신 곳이며,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가장 신성시 된 곳이며, 가장 거룩하게 구별된 곳이다. 성막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그림자라면 이 지성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 인 양성중 신성을 찾아 볼 수가 있다.
  빌립보서 2장 6-7절 말씀에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라고 기록하고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가 되시는 분이시다. 전지전능하시고 거룩하시고 영화로우신 하나님의 신성을 지니신 분이시다. 이 분이 친히(몸소) 이 지성소와 같은, 거룩한 하늘나라의 문을 열고, 죄많은 인류를 그 곳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위에서 당신의 몸을 찢으시고 피흘리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골고다 십자가위에서 못박혀, 피흘리시고 찢기셔서 운명하실 때에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은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갈라졌던 것처럼 하늘나라에 문을 활짝 열어 놓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14장6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성도님들이 하나님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총 때문인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과 마주 대하며, 그 분의 영광가운데 기쁨과 찬양과 감사가 넘치는 그 날이 약속되어 있는 것이다. (고전 13:12, 계 21:22-24)
 
 
*학습문제
1.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의 피를 뿌리는 대제사장은 어떠한 마음이었을까? 생각대로 적어보자.
 
2.고린도전서 3장 10-16절을 읽고 우리의 자신은 누구이며, 누구를 모신 사람인가? 를 적어보고 성도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여 보자.
 
 
제3장 성막(聖幕)의 울타리 (출 27:9-19)
 
  성막 울타리는 성막의 본체를 사방으로 둘러쳐 있는 세마포(細麻布)의 울타리였다. 이 성막 울타리는 남쪽과 북쪽이 각각 100규빗씩 , 동쪽과 서쪽이 각각 50규빗으로 되어 있었으며, 높이는 5규빗으로, 남쪽과 북쪽은 각각 20개씩 그리고 동쪽과 서쪽에는 각각 10개씩 놋으로 만든 받침 위에 세워진 놋기둥에 흰 세마포를 매달아 둘러쳐서 만들어졌다.  세마포(細麻布)를 매다는 갈고리와 기둥과 기둥사이를 연결하여 고정시켜 주는 가름대는 은으로 만들어졌다.
  성막 울타리를 경계로 안쪽은 성막뜰이고, 바깥쪽은 일반적인 지역으로 구분하였다. 그러므로 울타리 안에는 동쪽에만 있는 문을 통하여 들어가야만 했다.
  성막 울타리는 이방인이나 짐승들이, 함부로 성막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또 성막 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보호하는 역할도 하기 위함이었다.
    성막 울타리 안은 거룩한 성역이고, 성막 울타리 밖에는 세속적인 곳이었다. 울타리 높이는 5규빗(약 2.25m)이었으므로,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성막 울타리의 높이는 성막의 높이 반이므로, 밖에서는 성막의 윗부분에  일부는 볼 수가 있었다.
    성막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동쪽으로 하나만 나 있었다. 그러나 이문은 폭(幅)이 20규빗이고, 고(高)가 5규빗이나, 되는 넓고 높은 문이었다. 이 문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짠 천으로 가리웠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면 누구나 쉽게 열고 들어갈 수 있게 되어있었다.
   성막 울타리에 둘러친 천은, 흰 세마포로 의와 거룩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람들의 접근을 금지하고 있다면, 넓은 울타리의 문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나 들어와도 좋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성막 울타리 밖에서는 흰 세마포만 보이지만, 성막 울타리의 동쪽에 있는 문에 휘장을 열고 들어오면, 성막 울타리의 세마포를 지탱하는 놋기둥이 5규빗 간격으로 총총히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놋은 심판을 상징하는 쇠로 놋 기둥은 심판의 십자가를 상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신약시대에도 교회의 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교회 안에 들어와야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보이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지신, 심판의 십자가가 보여야 참된 회개를 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를 출석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보이지 않아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지 못하였다면 육신의 몸은 교회를 들락거려도 마음은 아직 주님의 몸된 교회에 들어와 있지 않은 사람이다. 성전 마당만 밟는 사람인 것이다(사 1:12).
 
*학습문제
 1.성막 울타리의 기둥과 받침은 놋으로 만들었다. 민수기 21장 8∼9절과 요한복음 3장 14∼15절을 읽고 놋 기둥은 무엇을 상징하나 적어보자.
 
 2.울타리 연결고리와 갈고리는 은(銀)으로 만들었다. 은(銀)은 순결과 시련을 상징하기도 한다(시 12:6, 시 66:10). 은으로 만든 연결고리와 갈고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어떠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가?
 
 3.성막 울타리의 세마포가 밖으로 쳐지었으므로, 놋기둥과 연결고리와 갈고리는 울타리 안에서만 온전히 볼 수가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보이는 교회와 예수님의 모습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후에, 교회와 예수님의 모습은 어떻게 다른 가를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간략하게 적어보자.
 
4.요한복음 10장 7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을 읽고 성막 울타리의 문과 예수님과 연결하여 생각하여 보자.
 
제4장   번  제  단  (출 27:1-8)
 
  1.번제단(燔祭壇)의 뜻
   번제(燔祭)란 히브리 말로 '올라'이다. 이 말은 '피워 올리다.' '올라가다' 란 뜻의 기본동사인 '알라'에서 유래된 말로, 희생의 제물을 불에 태워 그 냄새를 하나님께 올리는 제사를 말한다. 그리고 단은 히브리말로 '미쯔바하'로 '동물을 학살하다 또는 죽이다'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번제단의 뜻은 짐승을 잡아 태워서 하나님께 제사를 올리는 단이란 말이다. 이 단(檀)에서는 인간이 죄를 범했을 때, 드리는 속죄제(贖罪祭),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드리는 감사제(感謝祭), 그리고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하여 드리는 화목제(和睦祭)가 드려졌던 곳이다.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께 드려질 제물(祭物)로 선택된 동물들이 이 단에서 죽여서 가죽을 벗기고 쪼개진 후에는 태우는 냄새가 항상 있었던 곳이다. 또 번제단은 제단 전체가 놋으로 싸여졌기 때문에 놋 제단으로 불러지기도 한다.
   놋은 동과 아연의 합금으로 된 부패되지 않는 견고한 쇠이다. 그래서 놋은 완악하고 교만한 사람을 (사 48:6)상징하기도 하며, 힘(단 2:29)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리고 놋은, 심판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번제단은 심판의 단이다. 신약시대에  십자가를 상징하는 단이다. 번제단에서 인간이 지은 죄를 대신하여 짐승이 대신 심판을 받아 드려져서, 피가 뿌려지고, 태워질 때, 그 짐승을 제물로 드린 사람의 죄를 사함 받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번제단은 속죄의 단이다.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지신 십자가는 심판의 장소이며, 희생의 장소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는 속죄의 장소이며, 하나님과의 화해의 장소이며, 구원의 장소이다.(행 10:39-43, 고전 1:18, 고후 13:4)
  예수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절)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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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제단
 
 2.번제단(燔祭壇)의 위치
   번제단(燔祭壇)은 성막 울타리에 하나뿐인 동문(東門)으로 들어가면, 성막 뜰에서 가장 먼저 대하게 되는 곳이다. 누구나 성막 뜰이나 성막 안에 들어가기 전에 이 번제단을 만나야만 한다. 번제단은 죽음이 있는 곳이며, 희생이 있는 곳이며, 용서와 자비가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번제단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림자이다. 그래서 성막뜰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만나는 장소에 있는 것이다. 성막이 이 땅에 세워진 하늘나라의 모형이요 그림자라면, 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가장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3.번제단(燔祭壇)의 규격
   번제단(燔祭壇)은 장과 광이 각각 5규빅(약 2.25m)으로 정사각형이며, 높이는 3규빗(약 1.35m)이다.   번제단의 장과 광은 5규빗이었다. 성경에서 5라는 수는 고통의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질병의 고통을 안고 온갖 병자들이 모여드는 솔로몬의 행각의 기둥이 다섯이고, 수가성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여인이 다섯 남편과 이혼한 고통을 겪은 사람이다. 이 번제단은 고통의 장소이다. 짐승들이 죽임을 받아 불에 태워지는 고통의 장소이다. 그리고 죄를 범한 인간이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하여 괴로워하며 용서를 구하는 곳이다. 이와 같이 번제단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이다(엡 2:13∼16).  그리고 번제단의 고(높이)는 3규빗이었다. 이 3이란 숫자는 하나님의 수이다. 하나님은 성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고난을 겪으신 장소가 십자가위에 이었듯이, 번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예표하는 장소이다.
  
*학습문제
1.번제단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를 적어 보자.
 
 2.예수님이 가롯 유다를 통하여 은 삼십개에 대제사장에게 팔리신 후, 어떤 수모와 고난을 당하셨나 차례대로 적어보자
(참조; 마 26:41∼27:56, 막 14:43∼15:41, 눅 22:54∼23:49, 요 18:12∼19:42).
  

 4.번제단(燔祭壇)의 재료(材料)(출 27:1∼2)
   번제단의 재료는 조각목으로 만들라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셨다. 그리고 놋으로 싸라고 하셨다. 번제단은 이와 같이 조각목과 놋으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조각목은 팔레스타인 광야에서 자라는 싯딤나무(아카시아나무)로 광야의 기후에 특성인, 가뭄과 강한 바람과 뜨거운 햇살을 이기고 자라는 나무이다. 모진 풍파를 이기고 자라는 나무인 것이다. 이 나무를 베어서 가시를 떼어내고 껍질을 벗기고, 잘 다듬어 조각 조각을 맞추어 번제단을 만들었다.
   이 조각목을 두 가지의 견해로 해석하고 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으로 보고 있다. 이사야53장2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는 주 앞에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태어나시고 자라셨으며, 또 공생애의 사역시에도 많은 시달림을 받으시고, 끝내는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죽으심을 당하셨다.  싯딤나무가 광야에서 모진 풍파를 이기고 자라서, 베어지고 다듬어져 번제단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듯이, 예수 그리스도도 죄악된 인류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가난과 유혹과 핍박을 이기시고, 한 마리의 어린양처럼, 십자가 위에서 제물이 되셨기에, 조각목을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으로 보는 것이다.
   또 하나는 조각목을 죄로 인하여 버림받은 인간으로 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가 아니고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죄로 뭉쳐진, 거칠고 모진 인간의 모습으로 보고 있다.  겉에는 가시가 나있고, 거칠고 딱딱한 껍질을 가지고, 모진 세파에 이겨나가며, 속을 감추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으로 보고 있다. 다듬지 않고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인간의 모습으로 보고 있다.
   이런 조각목으로 번제단을 만들고, 모든 겉을 놋으로 싸라고 하셨다. 놋은 십자가를 상징한다. 십자가는 심판의 장소요, 죽음이 장소요, 고통의 장소이다.   이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을 위하여 대신 못 박혀 죽으셨다. 그리고 삼일만에 부활하셨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누구에게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을 이룬 은총의 장소이며, 죄를 사함 받은 속죄의 장소이며,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화목의 장소이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능력의 장소이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완성시킨 장소인 것이다.
   놋은 또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심판과 사랑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인성과 신성을 가지시고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죄많은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친히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저주와 죄를 짊어지시고, 고난의 십자가위에서 고통과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을 완성시키신 것과 같이, 번제단은 조각목으로 만들고, 그 위를 놋으로 쌓던 것이다.  그래서 죄인인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이 아니고는, 다른 어느 것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사도행전 4장 11절,12절에서 베드로와 요한 사도는 다음과 같이 설교하고 있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하였다.  
 
*학습문제
1.조각목(아카시아나무)과 나 자신을 비교하여 보자.
 
2.당신은 정말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가? 그 이유를 적어 보자.
 
 

 5.번제단(燔祭壇)의 뿔(출 27:2)
   번제단의 네 모퉁이에 뿔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뿔은 놋으로 쌓여졌다.   이 뿔의 용도 중에 하나는, 제물로 드려진 짐승을 번제단에 매어두기 위하여서 였다. 그러므로 이 뿔은 견고하게 만들어졌다. 소나 염소나 양들을 매어 두기에 충분한 견고성을 지니고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 뿔에는 속죄의 짐승에 피를 바르기도 하였다.(출 29:12)
   이 뿔은 힘과 능력을 상징하기도 하고 또 구원과 생명을 상징하는 뿔이다. 시편기자는 시편 118편 27절에서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우리에게 비취셨으니 줄로 희생을 제단뿔에 맬지어다"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세례요한의 아버지인 샤가랴는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에 집에 일으키셨으니"(눅  1:68,69)라고 찬송하였다. 또 다윗은 "여호와는 …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시 18:2)라고 찬송하였다.
   열왕기상 1장 말씀에서 다윗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였다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솔로몬이 왕이 되자, 그는 반역자로 죽을 위기를 맡게 되자, 하나님 전에 가서, 번제단의 뿔을 잡고 살려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자 솔로몬은 아도니야를 살려주었다. 죽어야 마땅한 반역 죄인이, 이 뿔을 잡고 구원을 요구했기에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이 뿔은 그러므로 생명의 뿔인 것이다. 죽을 사람을 살리는 능력의 뿔인 것이다.
    죄인을 구원하는 길은 오직 한 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 복음에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능력이 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하였다. 이 뿔은 복음의 능력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뿔은 번제단 네 모틍이에 동서남북 사방으로 달려 있었다. 그러므로 어느 쪽에서든지 번제단의 뿔은 잡을 수 있었다. 이것은 십자가의 복음은 세계의 어느 민족이든지,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복음으로, 전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말하여 주고 있다.
  그래서 성도는 세계를 향하여 복음을 증거할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고 하였던 것이다.
 
*학습문제
1.죄인된 인간을 대신하여 희생될 짐승들은 번제단 뿔에 줄로 매어졌다가 희생을 당했다. 우리의 구세주인 예수님은 무슨 줄에 매여서 희생의 제물이 되셨는가?
 
2.죄인인 인간이 구원을 얻으려면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가?
 
3.복음의 전파는 성도의 사명이다. 당신의 전도계획을 적어보자.
 
 

 6.번제단(燔祭壇)의 고리와 채(釵) (출 27:4∼7절)
  성막은 이동할 수 있도록 천막으로 만들어진 하나님을 섬기는 전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동할 때에는, 성막도 함께 이동하여야만 하였다.  그러므로 성막의 모든 기구들도 제사장들에 의하여 메어져서 옮겨졌다. 그래서 번제단에는 이동할 때에 채를 꿸 수 있게 끔 놋으로, 번제단의 좌우에 두 개씩,   둥근 고리 네 개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번제단을 메는 채는 조각목을 곧게 다듬어서, 그 위를 놋으로 싸서 만들었다. 번제단을 옮길 때는 이 네 개의 고리에, 긴 채를 꿰어서, 사방에서 제사장들이 메고 이동하였다. 우리 나라에 가마를 메듯 제사장이 메고 옮겼다.
   번제단의 고리는 놋으로 둥근 원형으로 되어 있었는데, 놋은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며, 둥근 원은 영원(永遠)을 상징하고, 또 사랑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시다. 아침과 저녁으로 변하는 인간의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이시다. 이 사랑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인 우리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셨던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외형적으로 아무리 크고 아름다운 건물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참된 사랑이 없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과 무관한 교회인 것이다. 참된 교회는 사랑의 연결고리에 의하여 서로 서로가 하나 되어서, 화합하는 교회인 것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가 된다. 한 지체, 한 지체가 서로 공존하고 협력할 때, 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에 속한 성도는,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만 나타나야 한다. 교회에서 내 주장이 강하면, 주님은 뒷전으로 물러서라는 의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체된 성도는, 자기는 주어진 십자가를 담당하며, 희생과 이해와 용서를 하며,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은 둥근 원형의 고리처럼, 모가 나서도 안 되고, 중단되어서도 안 되며, 처음과 끝이 같아야 하는 것이다.(고린도전서 13장)
   그리고 번제단을 메는 채는 거칠고 비틀어진, 싯딤나무(아카시아)을 곧게 다듬고, 그 위를 놋으로 싸서, 번제단을 메어도 부러지지 않게 튼튼하게 만들었다.
  이 두 개의 곧은 채는 진리를 상징하는 것이다. 진리는 하나님 말씀이며, 진리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두 채를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상징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또 다른 면으로 보면 삐뚤어진 인생이 바르게 살려면, 길이요 진리되신 그리스도안에 붙잡혀야 함을 말하여 주고 있다. 이 진리의 채가 사랑의 고리에 끼워져서 십자가의 상징인 번제단을 메었던 것이다.
   십자가는 진리와 긍휼이 만나는 곳이다. 골고다 언덕의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는 진리를 사랑으로 완성시킨 장소이다. 이 십자가는 번제단이 놋고리를 꿰어진 채에 의하여 메어지듯이, 진리이시며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짊어지셔야 하셨던 것이다.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무거운 십자가를 홀로 지셔야 하셨던 것이다.  교회는 그래서 진리와 사랑이 공존하는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서 세운 교회이기 때문이다(행 20:28).
 
*학습문제
1.번제단에 원형으로 된 놋고리와 사랑을 연결시켜 생각해 보자.
2.자신이 예수님을 영접하기전의 생의 목표와 믿고 난 후의 생의 목표를 말해보자.
 
 
제5장 번제단(燔祭壇)의 기구(器具)(출 27:3)
 
  번제단(燔祭壇)에는 제사를 돕는 기구들이 있었다. 기구의 종류는 '재를 담는 통' '고기를 담는 대야' '부삽' '고기 갈고리' '불을 옮기는 그릇' 등이 있었다. 본 장에서는 이 기구들에 담겨있는 영적 의미를 찾아보기로 하자.
 1.대야(고기를 담는 그릇)
   번제단의 대야는 번제물로 바쳐진 짐승들을 잡을 때에, 피를 받는 데 쓰이기도 하였고, 또 각을 뜬 고기를 번제단에 올리기 위하여, 옮기는 그릇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번제단의 모든 기구들이 놋으로 만들어 졌듯이, 이 대야도 놋으로 만들어 졌다. 놋으로 만든 대야는 주님이 지신 십자가라 볼 수 있고, 그 안에 담긴 제물이 된 짐승의 고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밤새 고문과 빌라도의 채찍으로 지치고 지친 몸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다가, 쓰러지고 또 쓰러지셨습니다. 그러자 로마병정은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우고, 골고다에 오르게 하였다. 주님은 갈기갈기 찢겨져서, 대야에 담겨, 불에 태워지기 위하여 옮겨지는 고기처럼,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던 것이다.
   십자가는 구원받은 인간에게는 사랑의 장소이다. 그러나 죄인인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심판과 고통의 장소이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엉키는 심혈의 기도를 드리시면서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셨다.(마 26:39) 이와 같이 골고다의 십자가는 예수님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고난의 장소였다.
   그리고 번제물로 드려진 짐승의 고기가 이 대야에 담겨져서 번제단의 놋 그물 위에 올려져서 태워질 때, 죄지은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대야는 인간의 죄를 옮기는 그릇으로 볼 수 있다. 이 그릇에 담긴 고기가 하나님의 거룩한 불에 의해서 태워졌을 때, 온전한 속죄의 제사가 되었듯이, 인간의 모든 죄는, 인간의 모든 죄를 친히 짊어지시고 대신 심판을 받으신,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이 지시고, 피흘려 죽기까지 하신 십자가에 의해서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 대야를 전도의 대야라고 말할 수 있다. 전도는 죄인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십자가위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믿으면, 죄사함에 은총을 받아,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전도의 대야가 되어야 한다. 죄로 인하여 죽어있는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해야 한다.
   번제단에는 대야에 담겨져서 옮겨진 제물의 고기가 있어야만 제사가 올려졌던 것처럼, 오늘날 교회의 예배에는 성도의 심령이 제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번제단의 대야처럼 전도의 사명을 꼭 감당해야만 한다. 번제단의 대야에 가득히 고기를 채워서 옮겨질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를 드렸던 것처럼, 하나님이 기뻐하는 영혼을 많이 주님 앞으로 옮기는 것이 진정한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요한복음 4장24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말씀하셨다.
   그런데 고기를 담아 옮기는 대야가 그 사명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피가 묻어야 되고 피비린내를 맡아야 하듯이 전도를 하려면 거기에 따르는 희생과 헌신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전도에 열매가 맺어 지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교회가 아무리 아름답고 크게 지어졌어도 성도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천하만물보다 인간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신다. 죄인 한 심령, 한 심령이, 성령에 불에 의하여 태워지고 거듭날 때, 주님은 가장 기뻐하시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 잘하는 교회를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전도 잘하는 성도를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이다.
  교회의 부흥은 주님의 뜻이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다. 전도는 최고의 사랑의 실천이다.
 
*학습문제
1.번제단의 놋대야는 무엇이 담겨졌는가? 이것들이 담겨졌을 때 놋대야는 어떻게 되었을까?
 
2. 성도의 사명은 전도대야를 채워서 제단에 옮기는 것이다. 당신의 전도 계획은?
 
 

 2.고기 갈고리(출 27:3)
   번제단에는 번제물의 짐승의 고기를 옮기는데, 쓰이는 고기 갈고리가 있었다. 이 갈고리도 놋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갈고리는, 사람의 손에 들고 사용하기 편리하게 작지만, 정교하게 만들었다. 제사장들은 이 갈고리로 번제물로 드려진 짐승의 고기를 찍어서 옮기기도 하였고, 번제단의 그물위에 고기를 고르게 펴는데도 사용하였다. 또 요제로 드리는 고기를, 하나님께 흔들어 드리는데도 사용하였다.(레 7:30)
   이 갈고리는 번제단에서,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이 온전히 드려지도록 돕는 갈고리이다. 갈고리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번제단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도록 돕는 기구 중에 하나이다. 이것이 갈고리의 사명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갈고리는 번제물의 짐승들을 직접 잡아서 드리는, 제사장들 외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귀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띄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갈고리는 단단한 놋으로, 끝이 뾰족하게 만들어졌고, 굽어졌기 때문에, 찍혀진 고기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쉽게 달지도 않고 단단하여,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더욱 반들반들 빛났던 것이다.  이 번제단의 갈고리는 봉사의 갈고리라고 볼 수 있다. 이 갈고리는 봉사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잘 말하여 주고 있다.
  교회에 이 갈고리와 같은 직분자나 성도가 많으면, 교회는 든든히 서고, 자연히 부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봉사는 하면 할수록 더욱 가치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학습문제
1.봉사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4가지로 구분하여 적어보자.
 ①
 ②
 ③
 ④
2.봉사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3.교회는 주님의 몸이다. 나는 지체 중에 어디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가?
 
4.신앙생활을 하면서 봉사를 한 다음에 어떤 생각이 들었었나 진실히 적어보자.
 
5.앞으로 교회생활을 하면서 해보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3.  불을 옮기는 그릇(화로) (출 27:3)
   번제단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지는 번제물을 태우는 불은 거룩하게 구별된 불이다. 같은 물건도 쓰이는 용도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다르게 나타난다.
   같은 질그릇을 강단에 올리고 꽃꽂이를 한다면, 그 질그릇은 예배를 위하여 구별된 성물이 된다. 그러나 같은 질그릇이라도, 김치를 담았다면 김치그릇이 된다.  성물로 쓰여지는 그릇은, 김치를 담는데 사용하는 그릇과는 같은 질그릇이라도 다르게 보이고, 또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다.
   번제단의 불도 마찬가지다. 어느 물질을 가열하여 태우는 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다른 불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을 태우는 불이기에, 거룩하게 구별된 불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관리되어져야 한다. 번제단의 화로는 이 불을 담고 옮기는데 쓰는 그릇으로 놋으로 만들어졌다.
   번제단은 제물을 불로 태워서 드리는 제단이다. 번제단에 번제물이 드려져도, 불이 없어서 태우지 못하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번제단의 불은 매우 귀중한 것이다. 이 불을 담아 두고 옮기는 그릇은 그래서 없어서는 안되는 그릇이다. 이 그릇은 하나님의 불을 꺼지지 않게 관리하고 또 번제물을 태우는 불씨를 제공하는데 사용하였다. 그래서 매우 철저하게 관리되었다.
   이 그릇은 놋으로 만들어졌고, 불이 계속 담겨져 있었으므로, 항상 그 그릇 자체도 뜨거웠을 것이다. 특히 이 그릇에 담겨진 불은 하나님이 직접 내려주신 불이다.(레 9:24)
   불은 성령을 의미한다. 교회는 성령의 불을 받은 성도가 이 그릇과 같은 것이다. 교회가 전도에 불이 붙고, 열심을 내고 부흥하려면, 성령의 불을 받은 성도가 있어야 한다. 즉 불씨를 담아 옮기는 그릇과 같은 성도가 있어야 한다.  성령의 불은 죄를 태우고 능력을 임하게 한다. 그래서 성령의 불붙는 교회가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많은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것이다.
    이 불을 옮기는 그릇이 만들어지기 위하여서는 먼저 금속들이 녹아져서 서로 하나가 되어야 했고, 다음에는 두들겨지고 다듬어져야 했을 것이다. 성도가 성령의 불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깨어지고, 녹아지고, 다듬어져서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령의 불을 받은 성도는 마귀의 시험도 능히 이기게 된다. 성령의 불을 받으면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자연히 신앙생활이 재미있고 힘차게 되며, 핍박이나 환난이 닥쳐도 두렵지 않게 된다.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확신과 영적인 힘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학습문제
1. 놋이 번제단의 불을 옮기는 그릇을 만드는 공정과 인간이 하나님이 성령의 그릇이 되기 위한 과정을 비교하여 적어보자. 그리고 나 자신은 어느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2.불이 담겨진 그릇과 불이 안 담겨진 그릇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리고 성령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을 비교하여 글로 써보자.
 
3.마태복음 26장 69∼75절과 또 사도행전 4장 13∼21절을 읽고 두 곳의 말씀에서 베드로 사도의 차이를 세 가지로 분류하여 적어보고 또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를 적어보자.
 

 4.부삽(재를 퍼담는 기구) (출 27:3)
   부삽은 번제단에 드려진 제물이 타고난 재와 찌꺼기를 긁어서 재통에 담는 기구이다. 부삽은 다른 기구들과 같이 놋으로 만들었다.   부삽은 재와 찌꺼기를 긁어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습은 온통 재와 찌꺼기로 더럽혀져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부삽의 맡은 바 임무이기에 그 일을 담당해야만 했다.
  부삽에서는 우리를 위하여 더럽고 추한 인생의 길을 친히 체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히브리서 4장15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고 하셨다.
   우리 주님은 인생의 삶에, 찌꺼기 같은 몸 속에 있는 각종 질병과 더러운 귀신 또 심령 속에 있는 악하고 추한 것들을 깨끗하게 긁어내어 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처럼 일곱 귀신들려서 괴로움 당하던 사람도, 예수님을 만나자 깨끗하게 치료를 받아서, 충성되고 헌신적인 사람이 되었다. 불치의 병으로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고 가족들로부터 외면 당하던 문둥병자들도, 예수님을 만나서 깨끗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의 심령과 육체 속에 붙어있는 더러운 것들을 깨끗하게 하시는 부삽과 같은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성도는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서 부삽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교회 안에 성도님들중에 어떤 사람은 자신이 명성이 잘 드러나는 일은 잘하는 반면, 드러나지 않고 힘들고 어려운 일은 '나 몰라'라 하는 성도들이 있다. 그러나 반면에 어떤 성도님은, 남이 하기 싫어하고 지기 싫어하는 짐을 묵묵히 지는 성도님이 있다.
   교회생활은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이므로 찌꺼기가 생기게 마련이다. 여러 가지 시험도 생기고, 말도 많이 생긴다. 그래서 부삽같이 묵묵히 찌꺼기를 긁어내는 성도가 있어야 한다. 궂고 드러나지 않는 일을 담당하는 성도가 있어야 한다. 교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다. 이러한 성도님들 때문에 교회의 교우들간에 화목하게 되고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게 된다.
 
 *학습문제
1.성경에 인물 중에 부삽과 같은 인물은 누구인가?
 
2.나 자신은 부삽과 같은 일을 한 적이 있는가? 있었다면 어떤 일이었나를 적어 보자.
 
3.부삽의 일은 번제단의 재와 찌꺼기를 긁어내고 퍼서 재통에 담는 일이다. 갈라디아서 6장2절의 말씀을 읽고 자신의 신앙계획을 적어 보자.
 
4.다른 성도나 이웃사람이, 남에게 잘 드러나는 일은 열심히 하고, 궂은 일은 피하는 것을 볼 때에 어떤 마음이 들었었나 적어 보자.
 
 

 5.재를 담는 통(출 27:3)
  이 통은 번제의 제사를 드리므로 생기는 재를 담아다가 멀리 진밖에 갖다 버리는데 사용하였다. 그러니까 이 통은 번제단을 청소하는 도구중에 하나였다. 이 재 통도 놋으로 만들어졌다.
  번제단의 재가 그대로 방치되었다면, 성막의 뜰과 울타리는 바람에 날리는 재로 더럽혀졌을 것이다. 그리고 성막 주위에 진을 치고 있는, 이스라엘백성들의 장막에 날리어서 불결한 환경을 가져오게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재를 진밖에 버리라고, 모세에게 명령을 하셨을 것이다.
  또 한가지는 번제단의 재는 하나님께 드려진 거룩한 제물이 타서 남긴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일반적인 재와는 다른 재이다. 그러므로 구별된 재통에 담겨져서 버려져야했던 것이다.  재통은 재를 담아 뚜껑이 닫혀진 상태로 옮겨져서, 진밖에 가서 재를 쏟아 버렸던 것이다.
    재통에서는 온 인류의 더럽고 추한, 죄악과 허물을 짊어지시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미련하고 연약한 인간을 감싸주시고 덮어주시고 어루만져 주시는 주님의 온유하신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더럽고 추하고 버림받아 마땅한 인간이라도 예수님안에 들어오면,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신 주님께서 감싸주시고, 어루만져 주시고, 지켜주시는, 주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말씀하셨다. 아무리 추하고 악한 인간이라도 예수님께 나오면 받아 주시는 분이시다.  
     또 재통은 교회의 나쁜 일이나 부정적인 요소들을 혼자 안고 있다가 멀리 가져다 버리는 귀한 성도를 생각 할 수 있다. 이런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한 성품을 닮은 성도이다. 교회에서 꼭 필요한 일꾼이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꾼이다. 오늘날 교회는 재통의 역할을 하는 귀한 성도가 더욱 필요한 시대이다. 개인 주의가 성행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문제나 남의 허물을 전해 듣고 나서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기도로 이기지 못하고, 동네방네 다니며 말하는 사람은 교회의 일꾼이 아니다. 마귀의 기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잠언 18장 8절 말씀에서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 같아서 뱃 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고 말씀하신다. 좋은 말보다는 나쁜 말이 사람의 귀에 잘 들어온다. 그래서 교회의 일이나, 가정의 일이건, 나쁜 것은 담아서 멀리 버리고, 좋은 말만 하려고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주님의 도움을 간절히 요청하며 기도해야 한다.
    재통은 뚜껑을 반드시 덮어야 했다. 뚜껑이 열려있으면 담겨진 재가 바람에 날리기 때문이다. 뚜껑은 성도의 입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은혜 받은 성도라면 입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 한마디 말을 잘못하면, 교회를 시끄럽게 되고, 복음의 길을 막히게 한다. 그래서 성도는 입에 자갈을 물려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학습문제
1.나는 교회나 가정에서 재통의 노릇을 담당하고 있는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었지? 한가지만 적어보자.
 
2.우리주위에서 재통같은 사람은 누구일까? 한 사람을 지명하고 그 예를 들어보자.
 
3.구스 여인을 취한 모세를 향하여 비난을 하였다가 하나님께 혼쭐난 사람은 누구이며 어떤 징계를 받았는가? (민 12:  )
 
4.잠언 18장 21절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를 적어 보자.
 
 
 
제6장 번제단(燔祭壇)에서 드려지는 예물과 제사
 
   번제단(燔祭壇)에서 번제물로 드려지는 제물에는 수소, 암소, 수 염소, 암 염소, 수양, 암양, 산비둘기 또는 집비둘기의 새끼, 곡식의 고운 가루, 구운 무교병, 볶아 찧은 첫 이삭 등이 있다.
   제사의 종류와 예배자의 직분과 형편에 따라서 제물의 종류가 다르게 올려 졌다. 그러나 번제단에 드려지는 제물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 적당히 드리거나 아무렇게 드려서는 아니 되었다. 하나님 말씀인 율법의 규정대로 드려져야 하였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추어야 하였다.
 1.온전한 것이어야만 하였다.
  (레 22:21-22절 "무릇 서원한 것을 갚으려든지 자의로 예물을 드리려든지 하여 소나 양으로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리는 자는 열납되도록 아무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할지니 눈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괴혈병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을, 너희는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단 위에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
2.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하였다.
 (출애굽기 25:2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고린도후서 9:7절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3.믿음으로 드려야만 하였다.
 (히브리서 11:4절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4.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하였다.
 (시편 50:14-15절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라로다")
5. 가장 귀히 여기는 것으로 해야 한다.
 (잠언서 3:9,10절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성도가 하나님을 공경하는 방법을 바르게 알 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고 축복도 빨리 받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형편과 그 마음속까지도 다 아시고, 보시고, 계신 분이시다.
 
*학습문제
1. 누가복음 21장1-4절의 말씀을 읽고 과부의 두렙 돈을 모든 사람의 것보다 많다고 말씀하신 주님은 뜻은 어떤 의미에서인가?
 
2.이스라엘의 백성이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에,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취한 사람은 누구이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미친 영향과 그 자신에게는?
 
3.성경의 말씀중에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나 자신이 하나님께 드린 것들 중에 가장 귀한 것은?
 
4.말라기 1장13,14절을 읽고 하나님께 제물을 잘못 드렸을 경우 하나님은 어떻게 하신다고 말씀하셨나를 적어 보자.
 1).
 2).
 

1. 번제단(燔祭壇)에서의 제사 (레 1: ∼7:  )
  번제단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번제의 제사를 드린 단이다. 제사란 히브리어 '자바흐'로 '희생을 드리다, 제사를 드리다'란 뜻을 가진 말이다. 그러니까 제사는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행위를 말한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구약시대의 예배인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이 교회에 나와서 드리는 예배는 구약시대의 제사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성막 제사를 바르게 이해한다면, 지금 이 시대에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고, 바른 예배를 드리게 될 것이다.  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인간으로써 가장 고귀한 일이다. 이 세상의 어떤 일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보다 더 귀한 것은 없을 것이다. 할렐루야!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안에서 하나님께 영원히 드리자.
 
 1).번제를 드리는 목적
   번제는 구약교회에서는 가장 일상적이고 보편적으로 드려진 제사이다. 그리고 번제로 드려진 제물로는 수소(레 1:3), 양과 염소(레 1:10), 산비둘기나 집비둘기의 새끼(레 1:14)들이었다.
   번제를 드리는 시기는 매일 아침과 저녁, 안식일, 월삭, 유월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그리고 출산한 여인이나 문둥병자의 정결 의식 때였다. 번제는 의무제가 아니라 자원제로 생활정도에 따라 다른 제물을 드렸다.
   번제는 '속죄'와 '성결'과 '헌신'을 위한 제사이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정상적인 교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드린 예배행위였다.
  또 번제는 인간을 죄악된 것을 성결케 하고, 하나님과 인간과의 만남을 가져오게 하는 제사이다. 그래서 번제를 인간의 원죄에 대한 제사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번제는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기 위한 제사이다.
 
  2).번제에 사용된 제물
   ① 수소 (레 1:3)
  번제에 사용된 제물중에 가장 크고 값이 나가는 것이다. 소는 온순하여 복종과 인내심이 강한 동물로 겸손과 헌신을, 또 근면과 봉사 정신의 상징이라 볼 수 있다. 흠없는 수소를 번제로 드리는 것은 최고의 것으로, 적극성을 가지고 드려야 함을 상징한다.
   ② 양과 염소(레 1:10)
  소의 번제로 드릴 형편이 못되는 사람은, 양과 염소를 수컷으로 드렸다. 양은 온유와 순결과 겸손과 희생의 상징이다. 염소는 양과 모양은 닮았으나, 순결성외에는 양보다 호기심도 많고, 꾀도 많고, 고집도 세고, 성급하다.  이것은 인간의 장점과 단점을 반영하는 것으로, 인간을 대신한 희생의 제물이 되었다.
   ③ 산비둘기와 집비둘기의 새끼 (레 1:14)
  가난한 사람들이 번제를 드릴 때에, 이것들을 드리도록 하였다. 비둘기는 온순하고 순결한 새이다. 비둘기는 겁이 많고 약하나, 서로 사랑하며 평화를 상징하는 새이다. 그리고 사람에게 잘 길들여지는 새이다. 그래서 인간을 대신으로 희생의 제물로 선택되었다.
 
*학습문제
1.당신은 예배를 드릴 때에 어떠한 목적과 마음의 자세로 드리는가?
 
2.당신의 형편상 구약 번제시대로 생각한다면 무엇을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3.번제물로 드려지는 제물의 공통점을 적어 보자.
 

 3) 제사(祭祀)의 방법
  제사의 방법은 번제로 드려지는 제물에 따라,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었다. 이 시간에는 제사의 방법을 연구하여 보기로 하자.
  ① 번제물이 소인 경우(레 1:3∼9)
   ㉠흠없는 수소로 드려야 함.
   ㉡번제물을 드리는 자가 드려지는 수소의 머리에 직접 안수해야 함.
   ㉢번제물을 드리는 자가 번제단 앞에서 제물을 죽여 제단에 바쳐야 함.
   ㉣제사장들은 제물의 피를 가져다가, 번제단의 사면에 뿌려야 함.
   ㉤번제물을 드리는 자가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야 함.
   ㉥제사장들은 번제단에 불을 피우고, 나무를 벌여 놓아야 함.
   ㉦제사장들은 각을 뜬 번제물의 고기와 머리, 그리고 기름을 번제단 나무 불위에 벌여 놓아야함.
   ㉧제사장은 번제물의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어서 단 위에서 불살라야 함.
 
  ② 양이나 염소일 경우 (레 1:10∼13)
   ㉠흠없는 수컷으로 드려야 함.
   ㉡번제물을 드리는 자가 제물의 머리에 안수해야 함.
   ㉢번제물을 드리는 자가 번제단의 북편에 성막 뜰에서 번제물을 직접 죽여야 함.
   ㉣제사장은 번제물의 피를 번제단의 사면에 뿌려야 함.
   ㉤번제물을 드리는 자는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머리와 기름을 떼어내야 함.
   ㉥제사장은 번제단에 불을 두고 그 위에 나무를 벌여 놓아야 함.
   ㉦제사장은 번제물의 각을 뜬 고기와 머리 그리고 기름을 번제단 위에 벌여 놓아야 함.
   ㉧제사장은 번제물의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어서 번제단에서 태워야 함.
 
  ③ 새일 경우(레 1:14∼17)
   ㉠산비둘기나 집비둘기의 새끼
   ㉡번제물을 드리는 자는 제물을 안수하지 않고, 손수 죽이지도 않고, 산채로 제사장에게 드려야함.
   ㉢제사장은 번제단에 불을 두고 나무를 벌여 놓아야 함.
   ㉣제사장은 제물을 번제단에 가져다가 머리를 비틀어 끊고, 피를 번제단 곁에다 흘려야 함.  
   ㉤제사장은 새의 멱통(먹이통)과 더러운 것을 제하여, 단 동편 재 버리는 곳(진밖에 있었음)에 던져야 함.
   ㉥새의 날개 자리에서 몸까지 찢되, 완전히 찢지 말아야 함.
   ㉦번제단 위에서 불살라야 함.
 
*학습문제
1.번제물의 머리에 제물을 바치는 자가 안수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2.제사장이 번제단 사면에 제물의 피를 왜 뿌렸다고 생각하는가?
 
3.제물의 가죽을 벗기는 이유와 각을 뜨게 한 이유를 적어 보자.
 
4.제사장은 번제물의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은 후에 번제단에서 불살랐다. 이것은 어떤 의미를 말하여 주고 있는가?
 
5.새를 번제로 드릴시에는 멱통(먹이통)과 더러운 것(노차타흐; 깃털)을 제거한 후 불살랐다. 이렇게 한 상징적 의미는?
 
6.번제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엇을 의미하나? (마 26:39, 눅 22:42,  막 14:36,  엡 5:2) 그리고 예수 안에서 성도들의 무엇을 의미하는가?(롬 12:1,2)
 
 

 4)번제(燔祭)를 드리는 시기와 그 제물
 
 ① 상번제(上燔祭)(출 29:40∼41)
  ㉠드리는 시기와 방법
  상번제는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드려졌다. 상번제의 제주는 제사장이어야 했다. 제물로는 1년된 어린양을 아침 번제에 한 마리, 저녁 번제에 한 마리씩 드렸다.
  ㉡상번제를 드리게 한 이유(출 29:42∼43)
  여호와 하나님과 만나기 위하여 드리라고 하였다.
 
 ② 안식일(安息日)의 번제(민 28:9∼10)
  ㉠안식일에는 일년된 흠없는 수양 둘을 드렸다. 그리고 왕은 여섯 마리의 어린양과 흠없는 수양 한 마리를 드렸다.
  ㉡안식일에 특별 번제를 드리게 한 이유?
  안식일은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시고 안식한 날이다. 그리고 안식일을 이스라엘 백성은 노동을 말며 안식하라고 한 날이다. 이 날은 육체의 안식을 취하며, 하나님 앞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몸과 마음을 드렸던 날이다.  그러므로 특별한 날이다. 오늘날 주일과 같은 날이다. 오늘날 주일은 주님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이다.
 
 ③ 월삭(月朔)에 드린 번제(민 28:11)
    ㉠월삭은 매월 초하루를 말한다. 이 날의 번제는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수양 하나 또 일년된 수양을 번제로 드렸다.
    ㉡월삭 번제를 드리게 한 이유?
  매월 첫 날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모든 날을 하나님을 위하여 살겠다는 신앙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④ 절기(節氣)마다 드린 번제 (민 28:16∼29:16)
    ㉠유월절(踰月節)에 드린 번제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출애굽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 이때에 죽음의 사자가 애굽의 장자를 모두 칠 때, 문인방과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의 집에는 그냥 넘어가므로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 유월절은 이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이스라엘의 민족 해방의 절기이다.
  이러므로 수송아지 둘과 수양 하나 일년된 수양 일곱을, 번제로 날마다 칠일간 절기가 끝나는 날까지 드렸다. 그러니까 유월절은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의 절기이다.
    ㉡칠칠절(七七節)(오순절, 맥추절)에는 수송아지 둘과 수양 하나와 일년된 수양 일곱으로 번제를 드렸다. 이 절기는 유월절이 지나고, 일곱 번째 맞는 안식일 다음 날부터 시작되는 절기로, 이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보리의 추수를 거의 끝날 때이다.
  이 절기는 보리 수확에 대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이며 또 새로이 추수할 곡식인 밀에 감사의 표현의 절기이다
    ㉢나팔절(喇叭節) (레 23:23∼25, 민 29:1∼6)
  나팔절은 안식의 달인 일곱 번째 달을 맞아 봉헌하기 위한 절기로 일반 월삭보다 더 큰 규모의 희생제사를 드렸다. 이 날은 종교력으로 7월 초하루이지만, 민간력으로는 정월 초하루이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의 설날과 같은 날이다. 그래서 이날은 신년절이라고도 한다.
  이 절기에는 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길고 우렁차게 불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노동을 금하고, 성회로 모여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날이다. 나팔절이라는 절기에 이름은 나팔을 부는 절기였기 때문이다.
  이 절기의 의미는 새해의 첫날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새로 시작되는 한 해를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겠다는 신앙을 나타내는 절기이다.
  이 날은 월삭도 되므로 매일 드리는 상번제와 월삭때 드리는 번제와 나팔절에 드리는 특별한 번제등 세가지의 제사를 모두 드리므로, 많은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던 날이다. 이 날의 번제물은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와 일년된 흠없는 수양 일곱 마리를 드렸다.
  나팔절은 영적으로 두 가지의 미로 보는데 하나는 복음의 나팔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하나는 재림의 나팔로 연관하여 생각할 수 있다.
   ㉣속죄일(贖罪日) (레 16:26∼32, 민 29:7∼11)
  속죄일은 종교력으로 칠월 십일이며, 민간력으로는 정월 십일이다. 이 날은 일 년중에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이 날은 노동을 금지하고, 금식을 하며, 스스로 괴롭게 하였다. 또 두 염소의 의식이 거행되는 날이다. (레 16:6∼10)
  이날에는 전민족적 참회의 날로, 통회하는 마음으로 금식하며 제사를 드렸다. 번제물로는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와 일년된 수양 일곱 마리를 드렸다. 특히 이 날은 속죄 제물로 드려진 짐승의 피로, 온 백성의 죄를 대속한 날로서 온 인류를 위하여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못박혀 피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예표하고 있다.
   ㉤초막절(草幕節) (레 23:33∼44, 민 29:12∼40)
   초막절(草幕節)은 장막절(帳幕) 또는 수장절(收藏節)이라고도 한다. 초막절은 종교력 7월15일부터 8일 동안 지켰다. 이 절기는 일년 동안 지켜지는 모든 절기의 마지막 절기이다.
  초막절기 때는 7일간 광야에서 온 이스라엘백성이 초막을 짓고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성회로 모였다.
  이 절기는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시에, 광야 40년의 생활을 온전히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의 절기였고, 또 하나는 일년의 추수를 무사히 끝마치게 하시고, 축복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였다. 대략 양력으로는 9,10월이 된다. 이러한 절기이므로 이 때는 많은 제물이 하나님께 드려졌다. 이 절기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축제의 절기인 것이다.
  *이 때에 드려진 제물을 보면
   첫째날 - 수송아지 13마리, 수양 2마리, 일년된 수양 14마리(흠없는 것)
   둘째날 - 수송아지 12마리, 수양 2마리, 일년된 수양 14마리(흠없는 것)
   셋째날 - 수송아지 11마리, 수양 2마리, 일년된 수양 14마리(흠없는 것)
   넷째날 - 수송아지 10마리, 수양 2마리, 일년된 수양 14마리(흠없는 것)
   다섯째날 -수송아지 9마리, 수양 2마리, 일년된 수양 14마리(흠없는 것)
   여섯째날 -수송아지 8마리, 수양 2마리, 일년된 수양 14마리(흠없는 것)
   일곱째날 -수송아지 7마리, 수양 2마리, 일년된 수양 14마리(흠없는 것)
   여덟째날 -수송아지 1마리, 수양 1마리, 일년된 수양 7마리(흠없는 것)
     그리고 각 일마다 속죄제로 수염소 1마리를 드렸으며, 상번제는 따로 드렸다. 초막절은 은혜를 되돌아보는 절기인 동시에, 영적으로는 주님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성도의 구원의 완성과 기쁨과 번영과 평화를 예표하는 절기로 보기도 한다. 초막절은 많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풍성한 절기였다.
⑤ 기타
  상번제, 월삭, 절기때 외에도 드려지는 번제가 있다.
  ㉠제사장의 위임(委任)식 때에 (레 8:18∼21)
   제사장은 하나님께 제사를 집례하는 귀한 직분은 맡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앞에 깨끗함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리고 사욕을 버리고 헌신적이어야 한다.
  제사장이 되는 레위지파는 기업이 없었다. 오직 하나님의 성막을 지키며, 모든 제사를 돕고, 백성들로부터 나오는 헌물을 가지고 생활해야 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몰두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오직 희생적이고 헌신적이어야 했다. 이러므로 제사장이 드린 번제는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과 희생을 다짐하는 것이다. 이때 드려진 번제물은 수양을 드렸다.
    ㉡나실인이 몸을 더럽혔을 때에 (민 6:9∼11)
   나실인은 '구별된 자'란 뜻이다. 나실인은 성별에 관계없이 일정기간이나 또는 평생을 하나님만 섬기기로 서원한 평신도이다.
  나실인은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소산을 먹을 수 없으며, 머리에 삭도를 대지 못하며, 서원한 기간은 머리도 깍지 못하며, 죽은 사람을 가까이 하므로 자신은 더럽혀도 안되었다. 그래서 뜻하지 않은 때에 시체를 대하게 되어 부정해지면, 몸을 정결케 하는 의식으로 번제를 드렸다. 이때 번제물은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 새끼였다.
    ㉢출산한 여인 (레 12:6∼8)
   여인이 아이를 나으면 정결케 하기 위하여 번제를 드렸다. 남자아이를 낳았을 경우에는 33일을 지나고 난 후에, 여자아이를 낳으면 66일을 지난 후에 정결케 하기 위하여 번제를 올렸다.  
  이때에 번제물을 일년된 어린양이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산비둘기나 집비둘기의 새끼로 드릴 수 있었다.
    ㉣출혈로 부정한 여인 (레 15:29∼30)
   비정상적인 출혈한 여인이 7일을 지난 후에 정결케 하기 위하여, 번제를 드렸다. 이때에 번제물은 집비둘기나 산비둘기의 새끼였다.
    ㉤유출병을 앓았던 자 (레 15:13∼15)
   유출병을 앓다가 낳은 사람은 낳은 지 8일만에 정결케 하기 위하여 번제를 드렸다. 이 때의 번제물은 산비둘기나 집비둘기의 새끼였다.
    ㉥문둥병환자가 치료를 받고 난 후 (레 14:10∼20)
   문둥병을 앓던 환자가 고침을 받고, 제사장으로부터 완전하다는 진찰이 나오고, 팔일 만에 정결케 하기 위하여, 번제의 제사를 드렸다. 이 때의 제물은 원래는 어린 수양이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산비둘기나 집비둘기의 새끼로 드릴 수 있었다.
 
*학습문제
1.번제의 제사와 번제물에 대하여 공부하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어떤 생각이 들었나를 자신의 말로 두 가지만 적어보자.
 
2.나 자신이 하나님께 어떤 모습으로 드려지어야 하나를 각자의 생각으로 적어 보자.
 
3.번제의 제사에 있어서 제물에 관계없이 공통된 것 여섯 가지를 적어보자.
  ①
  ②
  ③
  ④
  ⑤
  ⑥                                    
 
제7장 물두멍(출 30:18∼20)
 
   성막 울타리안에 들어서면, 성막 뜰안에 제일 먼저 번제단이 있고, 그 다음에 물두멍이 있었다. 물두멍은 히브리어로 '키요르'이다. 이 말은 '둥근' '도려낸' '솥' 등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물두멍의 모양에 대하여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둥근 대야의 모양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솔로몬의 성전의 놋 바다도 둥근형이었다. (왕상 7: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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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두멍
 
 1.물두멍의 재료 (출 38:8)
   물두멍은 놋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 놋은 이스라엘 여인들중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이 바친 거울로 만들었다. 이 여인들은 레위지파의 여인들로 추정되며 성막뜰을 청소하거나 잡다한 일들을 거드는 여인이었을 것이다.
   당시 놋 거울은 여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도구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육체를 아름답게 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으므로 기쁜 마음으로 헌물을 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신앙인의 참모습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과연 나의 육신을 돌보는 일보다 더 하나님의 일을 중요시하는가? 생각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참 신앙인은 주님의 말씀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썩어질 육체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쓰이던 놋 거울이 영혼을 축복 받게 하고, 강건하게 하는 귀한 예물로 쓰여졌던 것이다.
   놋은 십자가를 상징하기도 하나 또 다른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물두멍은 주님의 몸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2.물두멍의 모양과 규격
   물두멍의 모양과 규격은 성경에서 자세히 다룬 곳이 없다. 그러나 서론에서 다루었듯이 원어상으로 볼 때에 둥근 형의 대야 모양으로 만들어 졌을 것이다. 그리고 크기는 제사장들이 수족을 씻기에 족하고, 옮기기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물두멍은 놋으로 만든 받침대에 앉혀져 있도록 만들었다. 물두멍을 얹져 놓은 받침대를 십자가로 본다면, 물두멍은 인류의 수많은 죄악을 짊어지시고 대신 심판을 받으시기 위하여 십자가위에 달리신 주님의 몸으로 생각하여 볼 수도 있다.
 
 3.물두멍의 용도 (출 3:18∼21, 출 40:30∼32)
   물두멍은 제사장들이 회막을 들어가기 전이나 번제단에 가까이 할 때에 손과 발을 씻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물이 담겨져 있었다.
   이 물두멍에서는 제사장들 외에는 다른 사람들은 수족을 씻기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었다. 거룩하게 구별된 물이며 물두멍이다.  만약에 당시 제사장들이 이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지 않고 번제단을 가까이 하거나 회막안에 들어가면 죽음을 당하였다.(출 30:21)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거나 회막안에서 무슨 일을 하던지 꼭 먼저 들려야 했던 곳이다.
   물은 광야지대에 메마른 기후 때문에 뭍은 수족의 티끌과 먼저를 씻는데 사용하였다. 더러워진 손과 발이 물두멍에 물로 깨끗하게 씻겨졌다. 물두멍은 몸을 성결케 하는 곳이다.
   물두멍을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듯이 물두멍의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고 있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의 심령의 더러운 것을 씻어 성결케 하는 능력의 말씀이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살아가면서 허물과 실수로 지은 자범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씻음을 받아야 한다.
   번제단에서는 원죄를 씻음받고 중생의 체험을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물두멍에서는 매일 살아가면서 지은 자범죄를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씻음 받고, 성결케 되는 곳이다. (엡 5:26, 요 15:3, 시 119: )
 
4.물두멍의 규격은 왜 밝히지 않았을까요?
   성막의 기구들은 치수가 주어지고 그대로 만들게 하였다. 그러나 물두멍은 그 치수를 밝히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생각하여 볼일이다. 몇 가지로 생각하여 보기로 하자.
  ①물두멍에 치수가 없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이 무한하심을 암시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사죄의 은총은 엄격한 조건이나 규율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함 받고, 더럽고 추한 심령이 깨끗함을 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무한한 은혜이다.
   마태복음 18장21절이하의 말씀에서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께 물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까' 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하셨다.
   당시 이스라엘의 랍비들은 세 번까지 용서해 주라고 가르쳤다. 그러니 베드로의 일곱 번이란 제의는 엄청난 관용을 베푸는 제의였다. 그러나 주님은 여기서 그치지 말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고 하셨다. 이것은 무한한 용서를 베풀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우리 죄인들에게 이렇게 무한한 사죄의 은총을 베푸시고 계신 분이시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더욱 크게 느꼈던 사람일수록 주님의 은혜에 더욱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물두멍이 규격이 밝혀지지 않은 것은 주님의 사죄의 은총은 무한함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물두멍에서 더러워진 손과 발을 씻을 적마다 깨끗하게 해 주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②물두멍의 치수가 밝혀지지 않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의 축복은 무한함을 말씀하고 있다.
   마태복음 14장13절 이하의 말씀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따라다니던 굶주린 군중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여인과 아이의 수를 빼고도 남자만 5000명이 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 하고 열 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행하셨다. 어린아이의 적은 도시락이 주님께 드려지니, 이와 같이 엄청난 기적을 일으켰다. 그야말로 몇 만 배의 기적이다.
   또 열왕기하 4장1절이하의 말씀에서 선지생도의 아내였던 과부의 적은 한 병의 기름이 온 동리에서 빌려 온 큰그릇을 가득히 채우는 기적을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베풀었다. 하나님의 축복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이와 같은 것이다. 인간의 계산을 초월하는 축복인 것이다.
  참된 믿음만 있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면 성도가 받은 축복은 무한한 것이다. 축복의 그릇을 준비하면 이렇게 놀라운 축복으로 채워주시는 주님이시다. 이런 축복을 받아 누리고, 나누며, 살아 갈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이다.
  ③물두멍의 치수가 정해지지 않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의 능력의 무한함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주님께서 요한복음 14장12절 말씀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셨다.
   세상에 어느 누가 주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가 있겠는가? 이 말씀은 주님 안에는 무한한 능력이 있고, 지혜가 있음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주님을 믿는 백성을 통하여, 행하실 주님의 능력과 기적등을 약속하신 말씀이다.  
   베드로 사도는 앉은뱅이도 일으키고, 죽은 도르가도 살리는 기적을 행하였고, 수많은 사람을 주님앞으로 인도하여 구원에 이루게 하였다. 사도 바울은 죽은 유두고를 살리고, 앉은뱅이도 일으키고, 옥중에서도 기적을 일으켜서 간수의 집을 구원하고, 옥에 갇힌 몸으로도 복음을 전하여 로마의 황제의 집안 식구들에까지 복음을 전하는 기적을 행하였다.
  주님을 믿는 성도를 통하여 행하시는 주님의 능력은 한계가 없다. 인간들 스스로가 부인하는 것이지, 지금 이 시대에도 믿음이 있는 성도를 통하여 계속 기적을 주님은 베푸시고 계시다. 히브리서 13장 8절 말씀에서 '예수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느리라' 고 말씀하신다.
 
*학습문제
1.나 자신은 얼마만큼의 믿음의 그릇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2.요한복음 13장3∼11절까지의 말씀을 읽고, 발을 씻지 않으면 주님과의 관계가 어떻다고 하였나? 이 말씀과 물두멍과 연관하여 느낀 점을 생각하여 보자.
 
3.하나님 말씀을 듣거나 읽다가 자신이 지은 몰랐던 죄가 떠올라 회개 한 적이 있었으면, 그때를 회상하여 보자.  
 
 
제8장 성막의 구조
 
   지금까지는 성막의 외부의 울타리와 성막의 뜰에 있는 번제단과 물두멍에 대하여 공부하였다. 본 장에서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는 성막은 어떻게 만들어졌나를 공부해 보도록 하자. 그러니까 성막의 재료와 구조를 연구하여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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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소의 널판과 구조
 
  1. 성막의 뼈대인 널판 (출 26:15∼30)
   성막은 짓기 위하여 널판을 만들었다. 이 널판은 조각목으로 만들었다(15절). 그리고 널판의 규격은 장이 십 규빗(약450㎝), 광이 일규빗 반(약68㎝)였다(16절). 그리고 널판마다 두 개의 촉(돌기)을 만들었다. 이 촉은 받침대에 끼워서 고정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 널판의 수는 남편의 벽쪽용으로 20개와 북쪽의 벽쪽용으로 20개와 서쪽의 벽쪽용으로 6개를 만들었고, 또 서쪽 벽과 남과 북쪽 벽과 만나는 모퉁이의 두 개의 널판을 만들었다.  특히 이 모퉁이의 널판은 다른 널판의 두 겹 두께로 하였고 ㄱ자 앵글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성막용 널판은 총48개이었다.
   그리고 이 널판은 금으로 모두 싸서 만들었고, 널판을 서로 견고히 지탱케 하기 위하여 띠를 다섯 개를 두루었는데, 띠를 꿰기 위한 금고리를 만들었다.
   이 널판은 한 개 한 개마다 은 한 달란트로 만든 두 개의 은받침의 구멍에 촉을 꽂아서 세웠고, 각 벽마다 다섯 개의 띠를 두루어, 견고하게 세우도록 만들었다. 성막의 널판의 띠도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았다.
   성막 널판의 은받침은 널판 한개에 두 개씩 만들었으므로, 총96개였다. 성막은 이렇게 금으로 쌓인 널판이 은받침위에 세워지고, 널판과 널판은 고리에 끼워진 띠에 의하여 견고하게 만들어 졌다. 그리고 그 위에 덮개를 씌웠던 것이다. 그러니까 금으로 쌓인 널판은 성소의 벽이 되는 것이다.
 
*학습문제
1.널판은 조각목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금으로 그 겉을 싸았다. 조각목과 금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말하여 보자.
①조각목
②금
2.널판에 달린 고리와 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되나? 교회가 견고히 서려면 무엇과 무엇이 필요한가?
 
3.널판의 은받침은 한 개당 1달란트로 만들었다(출 38:27). 은에 성질에 대하여 말하여 보고 영적인 의미를 찾아보자.
 ①성질
 ②무게
 ③가치
4.은으로 만든 널판 받침은, 널판에 촉을 꽂기 위하여 구멍을 만들었다. 구멍과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하여 생각해 보고 또 교회에 대하여서도 생각해 보자.
 
5.삼면이 금으로 싸여진 널판으로 벽을 만든 성막 안은 어떠할 것이라고 생각되는가? 앞으로 우리가 갈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계시록 21장 9절∼ 22장 2절의 말씀을 읽고 대답하여 보자.
 
6.믿음이 아니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믿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나를 아는 대로 적어보자.
 

  2. 성막의 덮개 (출 26:1∼14)
   성막의 덮개는 네 겹으로 되어있다. 겉으로부터, 첫 번째는 해달의 가죽으로 만든 덮개, 두 번째는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으로 만든 덮개, 세 번째는 염소털로 짠 앙장,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는, 백색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화려하게 만든 앙장으로 만들어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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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의 덮개
 
 1).해달의 덮개
   밖으로부터 첫째번 덮개는 회색 빛이 나는 해달의 가죽으로 되어있다(14절). 해달의 가죽은 모양이 아름답게 보이거나 호화롭게 보이지 않는 가죽이다. 그러나 질기고 햇빛과 비바람에 강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가죽이다. 그러니 성막의 외모는 화려하게 보이지 않고, 오히려 초라하게 보였을 것이다.
   성막은 그리스도의 그림자며 하늘나라의 모형이다. 예수님도 천국도 겉만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우습고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불신자들의 눈에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우습게 보이고, 어리석게 보이는 것이다. 그들은 외모만 보이기 때문이다.
 
   2).붉게 물들인 수양의 가죽
   두 번째의 성막 덮개는 붉게 물들인 수양의 가죽으로 만들었다(14절). 수양은 죄많은 인간들이 제물로 드려지던 짐승이다. 수양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드려질 때에, 수양의 피를 뿌림으로 죄를 사함 받았다. 피뿌림이 없이는 죄사함을 받을 수 없었다.
   천국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위에서 흘리신 보혈로 말미암아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주님의 피 값으로 친히 세운 지상의 교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이 넘치는 곳이다.
   천국의 시민권을 얻은 성도들도 보혈의 공로를 믿고 자신의 죄를 자백하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축복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그래서 감사가 저절로 마음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19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라고 말씀하시듯이 주님의 흘리신 피가 우리를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3).염소털로 짠 앙장(막)
   성막의 밖으로부터 세 번째는 염소털로 짠 앙장(막)으로 덮었다. 이 막은 규격이 광이 사 규빗, 장이 삼십 규빗의 앙장을, 열한개를 만들어, 한 장은 다섯 폭을 또 한 장은 여섯 폭을 이어서 두장으로 만들었고, 앙장과 앙장을 연결하는 쪽 말폭가에, 각각 고 오십 개씩을 달아서, 놋 갈고리 오십 개로 앙장과 앙장을 연합하여 만들었다.  이 규격은 성막의 천정인 네 번째의 앙장보다 앙장 한 폭이 더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장의 넓이는 이 규빗을 더 큰 것이다. 이것은 천정의 앙장을 완전히 감싸서 덮을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이 세 번째 앙장은 염소털로 짜서 만들어, 그대로 덮었기 때문에 화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밖에 드러나지 않았다. 성막 안에서도, 밖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염소는 성막 제사에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드려진 짐승이다. 번제와 화목제 그리고 속죄제때 드려졌다. 특히 레위기 16장6절-22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아론은 두 마리의 염소를 취하여 제비를 뽑아, 한 마리는 여호와를 위하여 드렸고, 한 마리는 산채로 두었다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기어 광야에 무인지경에 이르기까지 끌고 가서 놓아주었다. 이 염소는 이스라엘의 모든 불의를 지고 광야에 버림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염소털로 짠 이 덮개는 온 인류의 죄를 한 몸에 지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영문 밖의 골고다 언덕에 오르셔서 양팔과 양발이 큰 대못에 의해 십자가 못박혀 돌아 가셨던, 주님의 깊으신 대속의 은총을 상징하고 있다.
  주님의 이 깊으신 뜻을 당시 누가 알았을까? 제자 베드로도 모르고 주님을 세 번씩 부인하였고, 이스라엘의 장로나 제사장과 백성들은 오히려 주님을 향하여 분노하며 저주하며 희롱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깊이 감추어진 주님에 대속에 은총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다가 실족하거나 또 복음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감추어진 대속의 은총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주님이 오르실 때, 주님을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울며 따라 오는 그들을 향하여 주님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하신 주님의 깊으신 마음을 그 누가 알겠는가?
   이 염소털로 짜서 만든 세 번째의 앙장이, 화려하게 수놓아 짜여진 성소 천정의 앙장과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으로 만든 성막의 사이에 덮여져서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예수의 보혈로 죄씻음 받은 인간이 대속의 은총가운데 영광의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무지한 인간은 헤아릴 수가 없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성막 덮개의 두 앙장을 서로 있기 위한, 오십개의 둥근 고리들은 구약과 신약의 중심이신 사랑의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며, 두 앙장을 연결하는 오십 개의 놋 갈고리는, 구약의 율법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영광과 존귀를 다 버리시고 묵묵히 한 마리의 짐승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화목제물이 되시어 하나님과 원수된 인간과의 만남 길을 열어 놓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하나님을 만나는 것도,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다른 어떤 이름으로도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죽음에서 건지시기 위하여 골고다언덕 십자가에서 묵묵히 죽으시고, 무덤까지 들어 가셨던 예수님은, 죽은 지 삼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살아 계신 주님이시다.
 
 4).백색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만든 앙장
   성소의 천정이 되는 이 덮개는 다른 덮개와는 달리 백색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화려하게 만들어 졌다.   이 덮개는 매폭의 장이 이십 팔 규빗이고, 광이 사 규빗으로 된 앙장 열폭을 같게 만들어 다섯폭씩 이어서 두장의 큰 막을 만들고, 오십개의 고를 각각 만들어서, 금 갈고리 오십개로 두장의 큰 앙장을 하나로 연결하였다.
  앙장의 직조 방법은 카페트를 짜는 방식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본다. 그룹을 수놓는 것이 천 위에다가 수놓은 것이 아니라, 앙장을 직조할 때에, 실의 색깔을 배합하여 직조하였던 것이다.   지금 문명이 발달한 이 시대에도 손으로 수 작업한 카페트가 고급품으로 인정받아 고가에 거래되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이 막에 네가지의 색깔로 수놓은, 그룹은 하나님의 보좌 주의에 둘러싸고 있는 천사들의 일종으로 확실한 모양은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에스겔서 1장10절 말씀이나 계시록 4장 6-8절 말씀을 종합해서 보면, 사람과 비슷한 모습에 날개를 가진 영적 존재로 볼 수 있다. 이 그룹들은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을 선포하고 지키는 일을 하였다. 이러한 그룹을 수놓아 만들은 것은, 성막의 성소안에 거룩성과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룹을 수놓은 네가지의 실의 색깔은 각기 다른 영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1).청색은 희망을 의미함;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
  (2).자색은 부귀와 고귀함을 의미함; 만왕의 왕되시는 예수그리스도
  (3).홍색은 희생을 의미함; 인류를 위하여 고난 당하신 예수그리스도
  (4).백색은 성결과 의 그리고 순결을 의미함;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
   이렇게 성막의 덮개는 겉에 것은 볼품도 없고 화려함도 없지만, 안에 덮개는 매우 화려하고 정교하게 만들어 졌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 구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겉으로 보기에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 인간들이 보기에는 신통치 않게 보이셔서, 환영받지 못하시고 멸시까지 받으셨지만, 그분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셨고, 하나님의 신성을 지니셨으며, 영생케 하는 생명력을 지니셨던 분이심을 상징하고 있다.
   신앙 생활하면서 예수님과 깊은 교제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은, 성막의 겉모습만 보고 실망하듯이, 예수님에 대하여 실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분과 깊은 교제가 이루어질 때, 큰 감격과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학습문제
1.이사야서 53장 1∼3절의 말씀을 읽고, 내 자신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 주님을 생각하던 것과 지금은 주님을 생각하는 것을 적어 보자.
 
2.성경말씀에서 예수님이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 그리고 핍박을 받은 것을 찾아서 적어 보자.
 
3.나 자신도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핍박이나 멸시와 천대를 받은 적이 있는가? 있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 가지씩만 적어 보자.
 
4.예수님이 우리 인간들을 위하여, 피를 몸의 어느 부의에서 흘리셨나를 적어 보자.
 
5.요한복음 6장 53절∼57절을 읽고 다음 질문에 대답하여 보자.
 (1)생명이 내 안에 있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나?
 (2)영생과 부활의 영광을 얻으려면?
 (3)예수안에 거하려면?
6.히브리서 13장 10-13절에 말씀을 읽고,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어디서 어떻게 하셨는가? 를 적어 보자.
 
7.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을 때, 당시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각자 자기의 생각대로 적어 보자.
 (1) 제사장들과 장로들
 (2) 이스라엘 백성들
 (3) 로마총독 빌라도와 로마군병들
 (4) 가롯 유다
 (5) 제자들
8.당신은 예수님의 대속의 은총을 가슴 깊이 느끼고 있는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적어 보자.
 
9.성경에서 오십이란 수와 관계가 있는 년(해)을 찾아보고 거기에 대하여 적어 보자.(레 25:8-17)
 
10.신앙생활을 하다가 시험에 들은 적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때였나를 적어 보자.
 
11.성막의 덮개와 예수님과 연관하여 생각하여 보고 느낀 것을 적어 보자.   
 
 
제9장 성소의 출입문(출 26:36,37절)   
         
    바깥에서 성막 뜰안으로 들어오려면, 성막 울타리 동쪽에 나있는, 한개의 문으로만 들어 올 수가 있었다. 그리고 성막 뜰에서 성소 안으로 들어가려면, 성막 동쪽으로 나있는 한 개의 문을 통하여 들어 갈 수가 있었다.
   울타리의 문은, 집으로 말하면 대문과 같은 것이고, 성소에 들어가는 문은 현관문과 같은 것이다.  울타리에 나있는 성막의 문은, 예수 그리스도로 나오는 첫 관문이라고 한다면, 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번제단과 물두멍의 과정을 통하여 회개와 성결로 거룩함을 얻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기 위한 관문인 것이다.  이문은 울타리의 문과는 달리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제사장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문이었다. 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호화찬란하게 꾸며진, 거룩한 성소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안에 들어가려면 제사장들이라도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고 들어가야만 되었다. 만약에 그냥 성소안에 들어가서, 성소를 더럽히는 과실을 범하면 죽음을 당하는, 무서운 징벌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소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제사장의 직분을 가진 사람들 외에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거룩한 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소의 문은, 죄많은 인간들이 함부로 성소에 접근하여 불상사를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한, 은혜적인 기능을 가진 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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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의 구조와 출입문
 
 1.성소 출입문의 구조(출 26:37)
   성소의 출입문은 다섯 개의 기둥이 세워졌고, 기둥에 성소 문 역할을 하는 장(막)을 걸 수 있는, 금 갈고리를 만들었다.   성막 문에 세워진 기둥은, 조각목으로 만들고, 그 위를 금으로 싸서 만들었다. 그리고 기둥의 받침을 각 기둥마다 한 개씩 다섯 개를 놋으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놋 받침위에 세워진, 금으로 싸인 다섯 개의 기둥에다, 금 갈로리에 의해 성소의 문의 역할을 하는 장(막)이 치어졌던 것이다.
   여기서 놋 받침위에 세워진 다섯 개의 조각목을 금으로 싼 기둥은 인간을 위하여, 죄악의 심판을 대신 받으시고 부활하신,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승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금 갈고리는 영원히 불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아가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다.
 
 2.성소 출입문의 장[막](출 26:36)
   이 막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를 놓아서 짜서 만들었다. 그런데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는 휘장과는 다른 것은, 이 막은 그룹을 수놓지 않고 다른 문양을 수놓아 짜여졌던 것이다.
   이미 지난 시간에, 성막 덮개의 시간에 색깔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다른 면으로 보는 분도 있다.
  청색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한, 요한복음을 상징하며,
  자색은, 이스라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한, 마태복음을 상징하며,  
  홍색은, 고난의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한, 은헤의 복음인 마가복음을 상징하며,
  하얀색은, 죄가 없으시며 완전하시며 거룩하신 인성을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한, 성결의 복음인 누가복음을 상징한다고 보고 있다.(성막론; 황 대근목사저 44p)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살려면 말씀으로 다져진 신앙만이 가능함을 말하여 주고 있다. 그리고 천국을 상징하는 성소에 들어가려면 꼭 이 문을 통과해야 하듯이, 이 땅에 인간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불가능함을 말하여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나는 양의 문이라”(요 10:7)“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9)말씀하셨다.
 
 3.성소의 출입문의 규격
  성막의 규격은 길이가 30규빗이고, 폭이 10규빗이다. 성소의 출입문은 성막의 동편에 폭면의 전체이다. 성막의 크기에 비하여 넓은 문이다.  그러나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제사장들 외에는, 넓지만 함부로 들어 갈 수 없는 좁은 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은 항상 넓게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자격을 갖추어야만 한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내 안에 모셔들여야 한다.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 이 길은 좁은 길이다. 주님은 말씀하셨다.“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
  그러나 주님을 믿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셨다.(벧전 2:9) 이들에게는 천국을 들어가는 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넓은 문이 마련되어 있다. 성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호화찬란한 성소이듯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들어가게 될 천국은 참으로 영광과 환희가 넘치는 곳이다.
 
*학습문제
1.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실 때의 모습과 부활하신 후에 모습이 당시 제자들에 눈에 어떻게 보이셨나를 성경의 말씀을 가지고 적어 보자.
 1).막달라 마리아
 2).엠마오로 가는 두제자
 3).열 제자들
 4).도마
 5).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
2.당신은 좁은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있다면 한 가지씩 말하여 보자.
 
3.성소의 문을 열고 들어 갈 수 있는 자격을 가진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당신은 이 자격을 얻었다고 생각하는가?
 
 제10장 성 소               
    히브리서 기자는, 성소와 지성소에 대하여 히브리서 9장1절에서5절까지 말씀에서 기록하기를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고 하였다.
   성막 문을 열고 들어서면 호화 찬란한 성소안에 들어서게 된다. 생각하여 보자 성소의 입구의 막을 열고 들어서면, 남쪽 벽과 북쪽 벽은 온통 황금빛 나는 금으로 싸여져 있고, 바로 앞에 보이는 서쪽에는,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흰색 베실을 섞어서 그룹을 수놓은, 지성소와 성소를 구별하는 막이 쳐있고, 천정에는 역시 사색으로 그룹을 수놓은 앙장으로 덮여져 있었다.
    그리고 왼편에는 황금으로 만든 정금 등대에서 밝히는 일곱 개의 불이 켜져 있고, 또 지성소의 휘장 바로 앞에 있는 황금으로 싸여진 분향단에서 피우는 향으로 성소안이 가득 차 있었다.
   또 오른편에는 황금으로 싸여진 떡상위에 떡이 진열되어 있는 곳이 성소이다. 정말 바깥 황막한 광야와는 비교도 안 되는 호화로운 곳이다.
   성소에 들어오려면, 먼저 성소 뜰에 있는 번제단에서 피뿌림의 제사를 드리고,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은 제사장만이 들어 올 수 있는 곳이다. 성소는 지극히 거룩하게 구별된 곳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도 성소를 함부로 범하였다가는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죽임을 당하게 된 곳이다.
  성소와 지성소는 이렇게 거룩하게 구별된 곳이었다. 지성소에 대하여는 다음 장에서 공부하도록 하고 이 시간에는 성소안에 있는 성구(聖具)들을 고찰(考察)하여 보고 공부하여 보자.
                                          (지성소)                                  (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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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소와 지성소
 
1. 떡 상(출 25:23-30,레 24:5-90)
 
  1).떡상의 규격과 모양과 그 의미
   떡상은 다른 성구와 마찬가지로 조각목(싯딤나무])로 깍아서 맞추어 모양을 만들고, 그 위를 정금으로 싸고, 그 주위를 금테를 둘렀다.  그리고 크기는 장이 이 규빗이고, 광이 일 규빗이고,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만들었다. 떡상은 우리 나라 가정집의 밥상크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가로가 약90센치, 세로가 약45센치, 높이가 약68센치이다)   모양은 우리 나라의 교자상과 비슷하게 만들었는데, 상의 사면가에 손바닥 넓이 만한 턱을 만들었다. 이 턱은 떡이 떨어지지 않도록 만들은 것이다.   그리고 상의 네발위쪽 턱 곁에 둥근 금고리를 만들어 달았다. 이 금고리는 상을 메어서 이동할 때에, 채를 꿰어서 메도록 만들은 것이다. 이 상을 메는 채는 조각목으로 만들고 이것도 금으로 전체를 싸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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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상
    떡상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요한복음 6장32절이하 35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하자 예수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요한복음 6장48절에서도 예수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하셨고, 51절에서도 "나는 하늘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살이로라"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 전설병(떡)을 전설하는 떡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번제단과는 다르게, 떡상의 규격이, 장이 길고, 광이 짧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나타내 주는 것이다.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생애는 짧은 생애였지만,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의 생애는 영원하신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또 떡상의 재료에서 조각목은, 이 땅에 연약하신 모습으로 오셔서, 질고와 고난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상징하여 주는 것이며, 정금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화로우신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정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신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떡상의 용도는 떡을 전설하는 상이다. 이 상에는 떡이 전설되지 않으면 떡상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생명의 떡인 말씀을 날마다 공급해야 하는 것이다. 말씀이 없는 교회는 생명을 잃은 교회다. 지금 이 시대의 교회는 특히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 교회가 세상 이야기로 철학으로 많은 지식을 가르친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생명력이 없는 교회이다.
    아모스 8장11절 말씀에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고 하셨다. 요즈음이 그런 시대가 아닌가 생각된다. 교회가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이고 웅성거려도 말씀이 없는 교회는 세상의 모임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 세상의 것들이 들어와서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온 지구상의 교회들을 눈동자처럼 지켜보시고 계신 분이시다. 특히 목회자들은, 주님 앞에서는 날 말씀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교회에 말씀이 없게 하였다면, 변명할 수 없는 책망을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떡상에 달린 금으로 만든 네개의 둥근 고리와 그 고리에 꿰어 메는 채는, 교회는 주님의 영원히 변치 않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움직이는 곳임을 말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 십자가의 도가 사라지고 예수님의 사랑이 없다면 주님과는 먼 교회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말씀이 있어야 하고, 기도가 있어야 하며, 희생과 헌신적인 사랑이 있어야 하며, 주님이 주신 사랑을 가지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전도에 힘써야 한다. 요한복음 15장12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학습문제
1.성소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은 어떠한 마음으로 하였을까? 적어 보자.
 
2.성소안에 들어간 신앙은 성숙한 신앙이다. 골로새서 3장12-17절까지를 읽고 자신의 신앙을 하나하나 점검하여 보자.
 1).지킨다고 생각하는 것-
 2).못 지킨다고 생각하는 것-
3.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이 자라게 된 동기와 어려움이나 시험이 올 때에, 시험을 어떻게 이기고, 믿음을 지켜 나갔나를 적어 보자.  
 
4.떡상과 떡을 교회와 말씀으로 비유하여 보았다. 당신은 언제 말씀에 갈증을 느낀 적이 있는가.
 
5.교회에 꼭 있어야 하고 교회가 꼭 하여야 할 일에 무엇인가?.
 

  2).떡상의 기구들                  
   떡상에는 네가지의 정금으로 만든 기구들이 있었다. 이 기구들은 떡상에 떡을 전설하는데 꼭 있어야할 기구들이었다.
  떡상을 주님의 몸된 교회로 생각한다면, 이 기구들은 교회의 기관과 같은 것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사명을 감당하려면 교회의 각 기관들의 활동이 활발해야 하는 것이다.
  떡상을 기구를 만든 정금은 값진 귀금속이며, 불변하며, 아름다운 광채를 내는 금속중의 최고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리고 금은 성경 말씀에서 믿음을 상징하기도 하며 영광을 상징하기도 하는 금속인 것이다. 욥기 23장10절 말씀에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고 말씀하고 있고, 계시록 21장18절 말씀에서는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각 기관은 순결하고 거룩하고 귀한 기관이다. 세상의 모임과는 다른 기관이다.
  그래서 교회의 각 기관은 믿음안에서 세워져서, 믿음으로 활동하는 기관이 되어야 함을 말해 주고 있다. 당회, 남 선교회, 여선교회, 권사회, 주일학교, 구역등 모든 기관들은, 성소의 떡상의 기구들처럼, 없어서 안 되는 귀한 기관들이다.
   그리고 각 기관이 귀한 것과 같이, 그 안에 속한 성도들도 귀한 그릇들이다. 그래서 정금같은 믿음의 그릇이 될 때에, 주님께 귀히 쓰임을 받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2장20∼21절에서 "큰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1).대접
   떡상의 대접은 정금으로 만들었다. 이 대접은 히브리어로‘케아라’인데, 떡상에 놓을 떡을 나르거나 떡을 전설하는 그릇으로 사용되었다.
   떡상에 전설하는 떡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본다면, 이 그릇은 말씀을 담는 귀한 그릇이다. 교회에서 성도들은 말씀을 담는 귀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 이 그릇이 될 때에 말씀을 나르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말씀을 나르는 것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전도하는 성도를 주님은 귀하게 여기시는 것이다.  
 
  (2).숟가락
    떡상의 숟가락도 정금으로 만들었다. 이 숟가락은 히브리어로 '카프'이다. 이 말은 원래 바닥이 굽은 대접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그러므로 바닥이 굽게 파인, 작은 대접 모양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 숟가락의 용도는, 떡상에 전설된 떡에 붓는, 유황을 담아서 부는데 사용된 기구이다. 이 기구에는 항상 향의 냄새가 가득했을 것이다. 여기에 담겨지는 향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만든 거룩한 향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예수님을 모시는 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의 기관들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의 기관들이 세상의 냄새가 난다면 주님은 슬퍼하실 것이다. 어느 교회의 남 선교회에서는 불쌍한 이웃을 돌보는 일을 도맡아 해서 주위에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는다고 한다. 주님의 향기를 세상에 퍼트리는 행동인 것이다.
 
  (3).잔
    떡상의 잔도 정금으로 만들었다. 이 잔은 떡상에 전제로 붓는 포도주를 담았던 것 같다. 이 잔에는 하나님 앞에 올린 전설병과 함께 떡상위에 올려져  포도주가 가득히 부어져 있었다.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한다. 포도주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주님이 흘리신 피를 상징한다(막 14:23,24).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죄인에게는 가장 귀한 속죄함을 이루는 은혜의 보혈이다.
  교회는 주님의 보혈로 세운 곳이다. 교회의 기관이나 성도들은 모든 일들을 은혜 가운데 해야만 한다. 억지로나 인간의 의가 나타나면 주님께 상달되지 않는다. 심령에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이 항상 충만하여야 한다.
 
  (4).병(甁)
  떡상의 병도 정금으로 만들었다. 이 병은 하나님께 전제로 떡상에 올려지는 포도주를 담아 두었던 병이다. 이 병은 안에는 포도주가 가득하나 밖으로는 드러나지 않으며, 또 포도주를 담아서 옮기는 역할까지 하였다.
  포도주는 주님의 피를 상징하며 은혜를 상징하는 것이다. 교회에서도 어떤 기관이나 성도는 어떤 일을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얻은 구속의 은총에서 시작하고 마쳐야 한다.
  그런데 안타가운 것은, 그렇지 못한 기관이나 성도들도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그 차이는 그들의 심령안에 은혜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다. 그래서 성도의 가슴속엔 밖으로 드러나지는 안치만, 항상 주님의 보혈의 은혜가 담겨져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봉사하고 헌신하는 일이 항상 감사하게 되고, 주님의 은혜를 옮기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학습문제
1.자신이 속해 있는 기관이나, 그리고 나 자신은, 정말 하나님 은혜안에서 봉사하고 있나? 를 생가하여 보고,  만약에 부족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를 적어 보자.
 
2.나 자신이 주안에서 봉사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때는 언제였나를 적어 보자.
                                       
3.몸담고 있는 교회에 성도중에서 가장 예수의 향기를 잘 나타내는 성도는 누구라고 생각되는가? 그 이유는?
 

 3).진설병(떡)(레 24:5-9절)        
  떡상에는 열 두개의 떡을 두줄로 진설하였다. 이 진설하는 떡을 얼굴의 떡 이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목전에 진설되는 떡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진설되는 떡은, 거룩한 떡으로, 오직 아론의 자손에게만 돌리고 그들은 거룩한 성소안에서 먹어야만 하였다.   이 진설병은 고운 가루로, 한 덩어리가 에바 십분지이(4.6ι)가 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매 덩어리에다, 각 지파에의 이름을 새겨 넣었던 것 같다.  이 진설병은 매 안식일마다, 새로 만든 떡으로 다시 진설하였다.
    진설병을 만드는 재료가 되는 고운 가루는, 광야 시대에는 하늘에서 내린 만나로 만들었을 것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 후부터는 밀가루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떡은 무교병으로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들었고, 번철에 구워서 익혔다. 이 진설병을 만드는 담당은, 레위지파 중에 그핫 자손이 하였다.
    떡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떡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요 1:14) 요한복음 6장48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고 말씀하셨다. 또 51절에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고 하셨다. 그러므로 떡상에 진설된 떡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첫째로, 이 떡을 만들려면 밀을 추수하여 타작하고 맷돌로 곱게 갈아서 가루를 체로 치어서, 고운 가루로만, 기름에 반죽하여 만들었다(레 2:5).
  고운 가루란 가장 좋은 가루로, 맷돌에 의하여 잘게 깨어지고 부서진 것을 고운 체로 쳐서 고른 가루이다. 이 가루에는, 다른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정성을 들여 만들었을 것이며, 조심하여 관리하였을 것이다. 즉 거룩히 구별된 가루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며 거룩한 말씀이다. 다른 불순물이 들어가서는 아니 된다. 특히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은 말씀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최선을 다하여 준비하여야 한다.
  떡상의 진설병과 같은 하나님 말씀은 선포하는 자나, 듣는 자 모두가 가장 귀하게 생각하며,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마음으로, 순수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 이러한 신앙인이 될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세상 어느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꿀송이처럼 달게 여기는 신앙인이 예수 중심의 신앙이 되는 것이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주의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시 118:127).
 주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한알의 밀알처럼 하나님께 드려지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는 자라야 영생을 가질 수 있다. 예수님의 살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떡상의 떡이 무교병였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가감하지 말아야 한다. 또  매주일 안식일마다 떡을 갈아 진설하였듯이, 오늘날 주님의 몸된 교회의 말씀은 새로운 은혜가 임하는 말씀이 준비되고, 선포되어 져야 한다.  그리고 이 말씀은 거룩하므로 거룩한 백성만이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거룩한 장소에서이다.
  떡은 잘 씹어서 먹어야 맛있고, 소화가 잘되어, 영양을 공급하듯이, 하나님의 말씀도, 깊이 있는 말씀을 잘 받아먹는 사람이, 신앙이 성장하고 은혜 충만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둘째로, 떡상의 진설된 떡은 아론의 자손으로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을 수 있는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왕 같은 제사장들인 성도들이다.
  이 떡은 기름으로 반죽되어 구운 떡이다. 기름은 성령을 의미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이나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을 수 없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쓰여진 말씀이다. 그래서 성령님의 감동이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움직이는 영생의 말씀이다. 세상의 소리처럼 말에 끝나는 말씀이 아니다. 그래서 말씀을 받아먹는 사람은 영혼이 살찌고 강건하게 되고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히 9:4). 육신을 위하여 먹는 양식도, 잘먹지 않고, 요것 저것 편식하는 사람은 허약하다. 잘먹고 소화 잘시키는 사람이 건강하다. 영혼도 마찬가지이다.  
  셋째로, 떡상에 진설된 진설병은 열 두 개였다.  진설병 열 두개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전체 지파이다. 한 지파도 제외되지 않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민족을 위하여 내려진 말씀임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떡상의 진설병도 레위기 24장8절에서 말씀하시기를 "항상 매 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고 하셨다. 그래서 먼저 주님께 은혜를 입어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영혼이 살찌어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는 주님이 명령하신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천하 만민에게 증거 해야 하는 것이다.
  넷째로, 떡상에는 진설병이 항상 진설되어 있어야만 했다. 떡상의 진설병은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떡상 위에 진설되었다. 떡상을 주님의 몸된 교회로 본다면, 이 떡은 교회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갈된 교회는 주님이 슬퍼하시는 교회이다. 주일날만 말씀이 있고, 삼일 저녁에만 말씀이 있어서도 안된다. 365일 항상 있어야 한다. 이런 교회가 은혜가 넘치고 살아 움직이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지체되는 성도님들도 항상 하나님 말씀과 함께 하는 신앙생활을 하여야 한다. 날마다 말씀을 먹고 날마다 말씀을 따라 사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그래서 말씀을 무시하는 신앙은 신앙이 성장하지 않고 항상 자기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도 빠짐없이 말씀을 먹어야 한다. 이러한 신앙이 기적을 체험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역사를 일으키는 사람이 된다.(행 5:12-16)
  다섯째로, 떡상의 진설병은 번철에서 앞뒤가 잘 구워진 떡이다. 번철은 불로 달구어진 철판이다. 이 철판 위에 잘 반죽되어 만들어진 떡을 올려놓고 굽은 것이다.
   불은 두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하나는 시험이다. 불같은 시험을 의미하고 있다. 베드로 사도는 말하였다. "너희 믿음에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고(벧전 1:7) 하였다. 그래서 시험을 잘 이긴 신앙은 금보다 더 귀한 신앙이 된다.
  요셉과 욥은 시험을 잘 이기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불같이 뜨거운 시험이 닥쳐와도 잘 견디는 사람은, 신앙이 성숙한 사람이 되어 떡상의 떡처럼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게 되는 것이다.
  불이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성령이다.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실 때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였다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께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운 제자들에게 불같은 성령이 임하였다. 불같은 성령을 받은 성도는 뜨거운 신앙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말씀이 없이 불같은 성령을 받으면 문제를 일으키거나 교만하여서 넘어지게 된다. 호세아서 7장8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교만한 이스라엘을 "저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고 말씀하였다.
   신앙이 한쪽만 치우치면, 하나님의 책망을 듣게 됨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 드려진 떡상의 떡은 양면이 고루 잘 익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불같은 시험을 통과케 하시고 연단 시키신다. 그러한 훈련을 받은 사람이 말씀에 깊이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시편 119편 67절에서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시편 119편 103절에서 "주의 말씀에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나이다". 하였듯이, 말씀으로 잘 다듬어지고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께 귀하게 여김을 받고, 또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여섯째로, 진설병에는 정결한 유향을 매줄위에 두었다(레 24:7). 이 유향은 떡에 뿌려지고 하나님께 화제로 드려졌다. 화제는 불에 태워서 연기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이다.
   여기 뿌려진 유향은 하얀색의 향기로운 향료이다. 이 유향은 단위에서 불살라 향기를 하나님께 올렸다. 이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땅에 오셨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어린양처럼 죄인들을 위하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제물이 되어 죽으셨다. 그리고 삼일만에 부활하셔서, 40일간 이 땅에 계시다가, 승천하시어, 영광의 보좌 우편에서 앉아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보내셨다.
   말씀을 받은 성도의 생활도 마찬가지가 되어야 한다. 떡 위에 뿌려진 유향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오직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바을은 그래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고 가르쳤던 것이다.  
 
*학습문제
1.떡상에 진설되었던 떡은 안식일마다 새것으로 진설되었고, 진설했던 떡은 아론의 자손들이 성소안에서 함께 앉아 나누어 먹었다. 이 떡을 먹을 때에 아론의 자손들은 어떠한 마음으로 먹었을까? 를 자신의 생각대로 적어 보자.
 
2.나 자신은 예배중에 하나님 말씀을 어떤 마음을 가지고 들었나를 솔직히 적어 보자.
 
3.신앙생활을 하면서 같은 교우들 때문에 시험에 든적이 있었는가? 그때 자신을 시험을 들게 한 교우를 어떠한 신앙이라고 생각하였는가?  그리고 지금 나의 신앙의 자신 있는 부분과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2. 정금 등대(출 25:31-40, 37:17-24)    
  성소 안에는 창문이 없었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빛이 없으므로 불을 켜서 빛을 밝히지 않으면 암실처럼 캄캄하였다. 그러므로 성소 안을 밝히는 불을 켜는 등이 필요하였다. 이 등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정금으로 만들어서 24시간 밝히라고 하셨다. 이 금으로 만든 등을 정금 등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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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금등대
 
 1).재료(출 25:31, 37:17)
   이름이 말하여 주듯이 순수한 정금 1달란트로 만들었다. 1달란트는 구약 시대에는 3000세겔에 해당되는 중량으로 약34kg이나 된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6000데나리온에 해당되는 것으로 약20.4kg이나 나간다. 정금 등대를 만든 1달란트는 약9000돈이다. 현 가격으로 환산해 보면 대략 50,000원×9,000=450,000,000원이다.
   정금은 아름다운 빛을 내는 불변하는 금속이다. 정금은 금속중에 가장 가치있는 귀금속이다. 그리고 정금은 부드럽고 연하며 질긴 금속이다. 그래서 정금은 믿음과 영광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정금으로 등대를 만드는 재료로 한 것은 등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다. 세상을 밝히는 등대와 같은, 빛으로 오신 분이시다. 그리고 예수님은 불변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또 영광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영화로운 부활의 주님이시다.
   계시록 5장 11,12절 말씀에서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음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고 하셨듯이, 주님은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영화로우신 분이시다.  
  2).정금 등대의 모양(출 25:31-36)
   정금 등대는 밑판(등대를 넘어지지 않게 하는 판)을 만들고 그 밑판에 가운데 줄기를 만들고 원줄기의 이편과 저편으로 각각 세 개씩의 가지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가운데 줄기를 중심으로 이편에 세 가지 저편에 세 가지로 총 일곱 개의 줄기를 있게 하였다.
   그리고 여섯 개의 각 가지에는 살구꽃 모양의 잔과 꽃받침을 있게 하였고 중앙 줄기에는 살구꽃 모양의 네개의 잔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였다. 중앙 줄기에 살구꽃 모양의 잔이 네 개를 만들은 것은, 가지가 뻗는 매 마디마다 꽃 모양을 한 잔이 있게 만들고, 중앙에 한 개의 꽃 잔이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각 줄기 위에 정금으로 일곱 개의 등잔을 만들어 두게 하였던 것이다.
    (1).정금 등대의 밑판
   정금등대에 있어서 가장 힘이 모이는 곳이 밑받침이요, 또 이 정금 등대를 지탱하는 것도 밑받침이다. 이 밑받침은 성부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이 땅에 오셔서, 성부 하나님의 뜻대로 사시다가 죄만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 십자가를 지시고 대신 심판을 받으셨던 분이시다. 요한복음 6장 38,39절 말씀에서 주님은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이 하나님 중심으로 맡은 사명을 담당하셨다. 오직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의 삶을 살으셨던 분이시다. 그러시기에 온전히 승리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만왕의 왕이요, 만주에 주가 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주님의 몸된 교회나 주님의 지체되는 성도는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교회가 인간들 중심이 된다면, 교회로써의 가치관과 사명을 잃어버린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적이고 인본주의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인간들이 중심이 되어 인간 방식과 세상을 따라 가기 때문이다.
   인본주의 교회는 든든히 설 수 없다. 외적으로 크게 보이고, 화려해 보여도 내적으로 구멍이 난 교회이다. 이러한 교회는 언젠가는 넘어지고 만다.
   중세기 때의 교회가 얼마나 화려하고 웅장하고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그러나 내적으론 부패하여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세속에 빠져서 교회의 사명을 잃어버림으로써 어떤 결과를 가져왔나? 역사는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성도님들도 하나님 말씀을 떠나 자신의 생각과 뜻대로 신앙생활을 하려면 그 신앙은 결국에는 넘어지고 마는 것이다.
  (2)정금 등대의 줄기
    정금 등대의 줄기는 중앙 줄기를 중심으로 하여 중앙 줄기에서 갈라진 가지가 이편에 셋, 저편에 셋으로 총 일곱개가 된다. 이 줄기에 중심은 중앙 줄기이다. 중앙 줄기는 밑받침에 붙여서 만들어 졌고, 나머지 가지는 중앙 줄기에 붙여서 만들었다. 그러므로 나머지 여섯 개의 줄기는 중앙 가지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앙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줄기를 중심으로 하여 달려 있는 일곱 등잔은 교회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계시록 1장20절의 말씀에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별의 비밀과 일곱 금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고 하셨다. 또 요한복음 15장1,2절 말씀에서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게 하시느리라".고 포도나무를 비유하여 예수님 자신을 원 줄기로 표현하셨다.
   모든 가지가 나무 원 둥치에 붙어 있지 않으면, 살수도 없고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의 중심으로 붙어 있지 않으면 죽은 교회이다.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교회이다.
   정금 등대는 중앙 줄기에 달려 있는 등잔이 포함되어야 일곱이 된다. 일곱은 완전한 숫자이다. 승리의 수이고 하나님 편의 수이다. 천국의 수이다.
   어느 목사님은 이 일곱 중에 중심 줄기 하나의 등잔이 빠지면, 여섯이 되는데 이 여섯은 사람의 수요 불완전한 수며, 마귀의 수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주님이 중심이 되지 못하는 교회는 불완전하고, 인간 냄새가 나고, 마귀가 역사하는 교회가 된다고 한다(성막론. 황 대근저.109p).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될 때에 든든히 서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중앙의 줄기를 중심으로 이편과 저편에 3개씩의 똑같은 줄기는, 예수 그리스도는 그 크신 사랑으로 교회를 세우시고 항상 붙드시고 계시며, 모든 성도의 짐을 맡아 주시며 공급하시는 분이시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심이 없으신 공의로우신 분이심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주님의 몸된 교회나 성도는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가지고 희생을 할 줄 알아야 하며 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누가복음 9장62절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3).정금 등대의 기구들(출 25:38)
   정금 등대에는 불집게와 불똥 그릇이 있었다. 이들 기구들도 정금으로 만들었다.  정금 등대의 등잔은 식물성 기름으로 불을 밝혔다. 그러므로 불이 탈 때, 심지에 찌꺼기가 생겨서 기름이 잘 타지 않아 불이 흐려지므로 이 찌꺼기를 제거하고 심지를 자주 다듬어 주어야 했다.
   불집게는 등잔의 심지가 탈 때에 생기는 찌꺼기를 제거하는데 사용하였고, 또 심지의 높이를 조정하는데 사용하였다. 심지가 타고 찌꺼기가 잘라 내지면, 심지가 짧아서 제대로 불을 밝히지 못하므로 높 낮이를 불집게로 적당히 맞추어 주어야 했다.
   그리고 불똥 그릇은 이 찌꺼기를 담는 그릇이었다. 성소 안의 정금 등대는 순금으로 만든 거룩한 성구이다. 그리고 여기에 쓰이는 기름도 특별히 제조된 기름이다. 그러나 이 등대의 등잔에 심지에도 찌꺼기가 생기고, 털어 주지 않으면 제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고 하여도 우리의 심령에 불똥과 같은 찌꺼기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 찌꺼기를 제거하지 않으면 올바른 빛에 역할을 담당할 수 없는 것이다. 성령의 검인 말씀으로 우리 마음에 찌꺼기를 잘라 내고 조절하여야 한다. 교만의 찌꺼기, 불평의 찌꺼기, 불순종의 찌꺼기를 제거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 찌꺼기는 다른 성도에게 튀지 않도록 담아서 버려야 한다. 성막 울타리밖에 재를 버리는 곳에 멀리 갔다가 버려야 한다. 영문밖에 골고다 언덕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버려야 한다.    
 
  4).정금 등대에 사용된 기름(레 24:1-4)
   성소 안에 불을 밝히는 정금 등대의 등잔에 기름은 순결한 감람유만을 사용하여야만 하였다.  순결한 이란, 히브리어는‘자크로’로 '투명한, 빛나는, 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성소에 올려져서 불을 밝히는 기름은 감람유에 불순물이나 다른 기름이 섞여서는 아니 된다. 깨끗하고 순수한 감람유만이 사용될 수 있었다.
   감람나무(올리브) 열매의 기름은, 왕들을 기름 부을 때 사용하였다(왕하 9:6). 또 병자들에게 바르기도 하였다. 그리고 가정에서 불을 밝히는데도 사용되었다. 감람나무는 유대인들(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다윗도 시편 52편8절에서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라고 말하였다.
   로마서 11장에서 바울 사도는 감람나무를 비유하여 이방인을 돌 감람나무로, 유대인을 참 감람나무로 말하고 있다. 성소 안을 밝히는 등대의 등잔에 이 감람나무 기름이 항상 채워지지 않으면, 불은 꺼지고 말 것이다.
   감람유는 성령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교회나 성도가 성령의 기름 부음이 충만하지 않으면, 세상을 밝히는 불은 희미하게 되다가 사라질 것이다. 교회나 성도는 그래서 성령의 기름 부음을 충만히 받아야 한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은 성도의 임무이다(엡 5:18}. 그리고 성령 충만함을 받되 순결함으로 받아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된다. 세상 것, 마귀 것이 섞여 있으면, 하나님은 받지 않으신다.
   감람나무 열매가 기름을 내려면 깨어지고 부서져야 하듯이, 성령 충만을 받으려면, 내 자아가 깨지고, 교만이 깨어지고. 고집이 깨어 져야 한다. 나는 죽고 예수님만이 나타내려 해야 한다. 주님 앞에서 바싹 부서진 사람이 큰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성령 충만을 받아 정금 등대처럼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성도가 되자. 그리하여 갈길 못 찾아 헤메는 불쌍한 영혼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등대가 되자. 그리고 감람유를 등잔에 계속 채워야 하듯이 우리도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의 재 충만을 받아야 한다.
 
  5).정금 등대가 가지고 있는 원칙
    (1).정금 등대는 순수한 정금으로 만들어야만 하였다.
    정금은 불순물이 없는 금이다. 순도가 99.99%의 금을 말한다. 금이 이렇게 순도를 가지려면 정련이 되어 져야 한다. 광석에서 채취된 금은 잘개 부서지고 불에 녹아지고 화학 처리 과정을 걸쳐서 불순물을 골라내야 한다. 그러니까 많은 연단의 과정을 걸쳐야 한다.
    하나님께서 귀히 쓰는 그릇이 되려면, 교회나 사람이나 불순물이 제거되고 순결하여야 한다. 이렇게 만들기 위하여 주님은 교회나 성도를 연단을 시키시는 것이다. 연단을 걸친 교회나 성도가 하나님 앞에 순결성을 지키게 된다.
   사울과 다윗의 차이점은 이것이다. 사울은 연단을 받지 않고 왕으로 쓰임을 받자 변질되어 자기 중심의 신앙인이 되었고, 다윗은 기나긴 세월을 연단 받고 왕으로 올랐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의 신앙인이 되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연단을 시키신 이유도 그들이 배부르고 편하면 인간 중심으로 돌이킬까 하여서였다.  정금 등대처럼 순결한 신앙의 교회와 성도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에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9:2) 말씀하셨다.
   (2).밑받침과 중앙 줄기를 중심으로 모든 가지가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든 기관이나 일들이 이루어 져야함을 말하여 주고 있다. 교회가 잘못되면 인간 중심의 교회가 될 수 있다.
   교회는 신본주의가 되어 져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인본주의가 성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인본주의의 교회는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요한계시록 2장1절이하의 말씀에 나오는 에베소서 교회는 일을 안해서 주님의 책망을 들은 것이 아니다. 많은 일을 하고, 교리도 바르게 잡고 있었지만, 예수님과 관계가 멀어지고 있었다. 즉 예수 중심의 신앙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주님은 이 에베소서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셨다. 그러나 너희에게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5) 고 하셨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인본주의는 배격되어 져야 한다. 오직 예수 중심의 교회가 되어 져야 한다.   
 (3).정금 등대의 불은 계속 밝혀져야만 하였다.
   레위기 24장1-3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을 찧어 낸 순결한 기름을 켜기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잔불을 켤 지며, 아론은 회막 안 증거궤 장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고 하셨듯이, 이 정금 등대의 불은 밤낮으로 계속 밝혀져야만 하였다. 절대로 꺼져서는 안되었다. 그러므로 항상 기름이 보충되고 심지가 청소되고 관리를 철저히 하였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세워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나 예수를 믿고서 거듭나서 새사람이 된 성도라도 주님의 주신 사명을 감당하려면 성령의 충만함을 항상 유지하여야 한다. 그래서 성령의 재 충만을 위해 쉬지 말고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하여야 한다. 성령 충만을 받지 않으면 아무리 애를 쓰고 결심을 하여도 빛을 밝히는 사명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오순절날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난 후에야 복음을 담대히 전할 수 있었고, 초대 예루살렘의 교인들이 모든 사람들로 칭송을 받게 된 것도 성령 충만을 받은 뒤였다. 사도행전 1장8절에서 주님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고 말씀하셨다.
  (4).일곱개의 등잔마다 불이 모두 밝혀져야만 하였다.
   정금 등대의 일곱개의 등잔 중에 어느 한개도 꺼져 있으면 안되었다. 불이 하나가 꺼진다면 그 만큼 빛의 밝기는 어두워진다. 성소 안을 밝게 밝히는 대는 일곱 등잔의 불이 모두 필요하였다.   하나쯤 꺼지면 괜찮겠지 하다가 보면, 등대의 사명을 바르게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즉 서로가 연합하여 하나가 되고 협력하여 선을 이룰 때에 교회나 성도가 받은 사명을 다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나 하나쯤이야 하고 빠지는 사람이 있으면 그 교회는 빛을 잃고 말게 된다.
   초대 교회 중에 고린도 교회가 이런 교회의 모습을 하였었다. 개인 중심의 신앙과 인간 중심의 신앙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은혜 받았다고 하는 사람은 서로가 자신이 받은 은혜가 제일인 것처럼 떠들어댔고, 가진 자들은 있는 것을 자랑하였고, 한 마디로 각자 자기 생각대로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 되어야 할 교회가 각 개인 중심의 교회가 되었다. 그래서 분쟁도 일어나고 음행을 저지른 자가 교회에서 큰 소리를 치는 주동 인물로 있었다. 그러니 말도 많고 문제도 많은 교회가 되었다.
    참된 교회의 모습은 나는 죽고, 예수만이 나타나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요,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성도는 그의 지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온 성도가 하나 되는 것이 참된 교회의 모습이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특별히 혼자 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몸에 손과 발이 다같이 중요하듯이, 교회의 성도도 하나 하나가 중요한 지체임을 알아야 한다. 주어진 자리에서 맡은바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가 될 때, 주님의 사랑을 받게 된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19-20). 하셨다.
  성도의 연합됨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시편 133편1-3절에서도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니 곧 영생이로다"고 하셨다.
 
*학습문제
1.나 자신의 마음에 불똥과 같은 어떤 찌꺼기가 잘 생긴다고 생각되는가? 그리고 이럴 때에 어떤 방법으로 제거하는가?
 
2.나는 성령 충만을 받았는가? 못 받았다면 어떤 것이 깨어지지 않았다고 생   각하는가? 거기에 대한 대책은?  
 
3.주님이 나에게 주신 특별한 사명이 무어라고 생각되는가? 를 한가지만을 들어보자.
 
4.신앙생활을 하면서 나 하나쯤이냐 하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가?
 
5. 히브리서 10장 25절을 읽고  나 자신은 어떤 부류에 속하는 가를 생각하여 보고 그 이유를 적어 보자.
 
 

 3. 분 향 단(출 30:1-10)  
 1). 분향단의 의미
   분향 단은 기도의 단입니다. 분향 단에서는 향을 하나님께 피워 올리는 단입니다. 여기서 타는 향기로운 향연은 하나님께 올리는 곳이다. 그리고 태워진 향냄새는 성소 안의 거룩 성을 더욱 나타내게 하는 단이다.
   이 분향 단에서는 하나님이 직접 지시하신 대로 제조된 향만이 피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분향 단에 분향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론과 그의 후손인 제사장들만이 가능하였다.
  이 분향 단에서는 분향은 이른 아침에 정금 등대의 등불을 정리할 때와 저녁때 등불을 켤 때마다 향을 살랐다. 그리고 이 분향 단에서 향을 피우기 위한 불과 향이 피워지는 것은, 끊이지 말고 대대로 지속되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요한계시록 5장8절의 말씀에서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고 하셨고, 또 계시록 8장3-4절에서 말씀하기를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의 기도와 성소 안에 분향 단의 향연과는 같은 영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향기로운 향인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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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단
 
  2).분향 단의 재료
   분향 단의 재료는 떡상과 같이 조각목으로 만들고, 단의 상면과 좌우면과 뿔을 정금으로 싸서 만들었습니다. 이 분향단에서도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또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세운 교회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3). 분향단의 위치(출 30:1-10)
   분향단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는 휘장앞 성소의 중앙에 있었다. 성소의 기구들(떡상. 정금 등대)중에 법궤가 있는 지성소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지성소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다. 먼저 시간에 분향단은 기도에 단이라고 배웠다. 분향단이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지성소와 가장 가까이 있듯이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최선의 방법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분향단이 한 중앙에 있듯이 기도는 마음에 중심이 실린 진실한 기도를 하여야 함을 말하여 주고 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를 한다면 그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않을 것이다. 예레미야서 29장13절 말씀에서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하신 것과 같이 기도는 전심을 다하여 하여야 하나님께 응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기도의 시인 시편 119편2절 말씀에서도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하시며, 또 시편 119편10절에서는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시편 119편145절에서도 "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 응답을 받아 문제의 해결을 받으려면 전심으로 기도하는 길밖에는 없다. 이사야서 38장1절 이하의 말씀에서 히스기야 왕이 병이 들었을 때에, 이사야 선지자가 찾아 와서 하는 말이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고, 죽을 것을 알리자, 히스기야 왕은 여호와께 간절히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하고 통곡하였다. 이런 기도가 전심으로 기도하는 모습이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시면, 어떤 방법으로 안 되는 상황에서, 눈물로 한 기도이다. 히스기야 왕의 이같은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셔서, 수한을 15년 더 연장 받는 응답을 얻어내게 되었다.
   기도에 있어서 진실과 전심은 필수적인 조건이다. 마음의 중심이 실리지 않은 기도는 중언 방언하는 기도인 것이다.  전심을 다하여 기도하여 하나님께 응답을 받아 주에 일에 더욱 힘쓰자.
  
 4).분향단의 모양(출 30:1-10).
    분향단은 조각목으로 만들고 그 위를 정금으로 입혔다. 그리고 분향단의 크기는 가로와 세로가 각각 1규빗으로 정방형이었으며, 높이는 2규빗으로 약45센치메터의 정방형에 높이가 약90센치메터가 되는 작은 단이다.
   그리고 분향단의 네 귀퉁이에는 네개의 정금으로 싼 뿔이 있었다. 그리고 양편에는 채를 꿸 금고리 두개씩을 만들었다. 또 이 분향단을 메는 채는 조각목으로 만들고 정금으로 겉을 입혔다. 이 시간은 기도의 단인 분향단의 모양을 통하여 기도에 대하여 연구하여 보자.
   (1).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여야만 응답된다.
    분향단은 조각목으로 만들고 그 위를 정금으로 입혀서 만들었다. 조각목은 광야의 메마른 땅에서 뿌리를 깊게 박고, 뜨거운 태양과 메마른 기후를 잘 견디며 자라나는 가시나무의 일종이다. 조각목은 이 가시나무를 다듬어서 만든 나무 조각이다.
   조각목은 보잘 것 없는 나무이고, 큰 가치가 없는 나무 조각이다. 그러므로 조각목은 육신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의 인성을 나타내며, 또한 모진 세파 속에서 뿌리를 깊게 박고 살던 죄악으로 찌든 육신을 입고 있는 우리 인간을 상징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각목을 금을 입혀서 만들니, 하나님전에 향을 피우는 거룩한 분향단이 되었다.  금으로 입힌 분향단은 조각목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찬란히 빛나는 금만 보였던 것이다.
   금은 믿음을 상징하며 영광을 상징한다. 금으로 입혀진 분향단은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후 부활의 영광을 얻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를 상징하기도 한다.
   성도는 육체적으로는 더럽고 추한 세상 사람과 외형상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내게 되며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응답 받는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여야 만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추하고 더러운 모습으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도 없다.
   구약 시대는 인간이 하나님을 보면 죽는 것으로 생각하였다.(사 6:5)  그러므로 우리의 추한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로 깨끗이 씻음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가야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14장13-14절 말씀에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주님은 말씀하셨다.   
  (2).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해야만 응답된다.
     분향단은 가로와 세로가 각각 1규빗으로 정방형에다 높이가 2규빗으로 조그만한 단이다.  그러나 이단에서는 하나님께 올리는 거룩한 향이 피워지는 거룩한 단이다. 이곳에서 피워지는 향도 하나님의 지시대로 만들어진 거룩한 향만을 피워야 하였다. 그리고 향을 사르는 불도 하나님의 거룩한 불만 사용하였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로 분향을 하였다가 여호와 하나님의 불이 그들을 쳐서 삼키어 죽었다(레 10:1,2). 이렇게 분향단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분향하는 곳이다. 인간의 방법이나 편의주의가 있을 수 없는 곳이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만이 분향되는 곳이다.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 응답을 받는 기도의 방법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는 기도이다. 정방형의 분향단처럼 말씀에 기준을 하여서 진실하고 바르게 기도하여야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이방인들이 하는 기도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마 6:7) 기도할 때에 우리가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기 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아주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요한 일서 5장14절에서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고 하신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아버지에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 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하셨다. 내 뜻을 버리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는 기도가 응답되는 것이다.
    (3).기도를 응답 받으려면 주님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분향단에는 네 귀퉁이에 뿔이 달려 있었다. 이 뿔은 분향단과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 이 뿔은 능력을 상징하는 것이다. 뿔 가진 소나 양들이 자신의 뿔로 힘을 나타내듯이 뿔은 힘의 상징이다.
   이 뿔에는 일년에 일차씩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하나님을 뵈우러 들어 갈 때에, 속죄의 짐승의 피를 발랐다. 그러므로 이 뿔은 죄를 속량하는 은혜의 뿔이기도 하다.
   누가 가장 힘있고 능력 있는 사람인가?  하나님께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이다. 세상에서도 나라에서도, 법을 어기지 않고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두려움이 없고 힘있는 사람들이다. 주먹 잘 쓰고 폭력을 하는 사람들이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법 앞에서는 꼼짝도 못하는 연약한 존재들이다.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죄사함을 받은 사람이 가장 힘있는 사람이다. 왜 그런가?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힘있는 기도를 자신 있게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다.
   교회 생활을 오래한 사람도 죄사함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믿음도 들어가지 않고 힘있는 기도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이 하는 기도가 응답 받게 되는 것이다.
   (4).사랑으로 하는 기도가 응답을 받을 수 있다.
    이 분향단에는 이동시에 채를 꿰는 네개의 금고리가 달려 있었다. 이 고리는 사랑을 상징하는 고리이다. 이 고리는 둥글게 만들어 졌다. 그러므로 끊어진 곳이 없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것이다.
   그리고 이 고리는 채를 감싸고 분향단과 연결시켜 주는 역활을 하였다. 그리고 분향단의 무게를 이 고리들이 담당하였다. 사랑은 감싸주는 것이며, 사랑은 희생하며 견디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는 그래서 사랑으로 하는 기도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희생과 용서가 있는 인내하는 기도를 기뻐하신다.
   스데반 집사가 돌로 맞아 순교를 당하는 장소에서 드린 기도를 주님은 기뻐 받으셨던 것과 같이, 진정한 사랑으로 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신다. 예수님도 골고다 언덕 십자가위에서 "아버지에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라고 친히 기도에 모범을 보이셨다.   
  (5).합심하여 하는 기도가 응답 받을 수 있다.
   이 분향단에는 이동할 때에 분향단을 메는 채가 있었다. 이채는 조각목으로 만들어서 금으로 입혔다. 이 채를 금고리에 꿰어 앞뒤에서 메어서 운반하였다. 우리나라 옛날에 가마 메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그러므로 앞뒤에 사람이 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운반할 때 매우 힘이 들었을 것이다. 마음이 맞고 발이 맞을 때 힘이 들지 않았다.
  그러므로 성도가 모여서 합심하는 기도가 빨리 응답되는 것이다. 역대하 20장의 말씀에 보면, 유다 여호사밧이 왕 때에, 모압, 암몬, 세일산 사람들이 연합군을 조직하여, 약 100만 대군을 이끌고 유다를 쳐들어왔을 때, 여호사밧은 두려워서 하나님전에 나가서 하나님의 낯을 구하며 기도하고는, 온 백성들이 모여서 금식하며 기도하라고 선포하였다. 하나님은 이 기도를 받으시고 응답하셔서, 적군과 적군끼리 서로 싸워서, 서로 죽이게 하여, 여호사밧이 이끄는 유다의 군사는, 활하나 칼하나 안쓰고, 승리를 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초대 예루살렘의 교회의 성도가 모여서 합심으로 기도할 때에, 네 패의 군사가 지키고 있는, 옥에 갇힌 베드로 사도를, 주의 사자를 보내어 기적적으로 구원해 주셨다(행 12:).
  그러므로 교회는, 온 성도가 합심하여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가정에서도 온 가족이 한 마음이 될 때에 집안이 평안하고 축복 받는 가정이 된다.
  주님께서도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게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고 마태복음 18장19-20절에서 말씀하셨다. 합심의 기도는 능력의 기도요, 응답의 기도이다.   
  5).분향단에서 피워지는 향.(출 30:34-38) .
  분향 단에서 피우는 향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시한 대로 특별히 제조된 향만이 태워야만 했다. 분향 단에서 피우는 향은 거룩하게 구별되어서 사람들을 위해서는 만들 수 없었다.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만약에 사람을 위하여 이 향을 만드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출 30:38)고 하셨다.    성소의 분향 단에서 쓰는 향은 성도에 기도를 상징한다. 계시록 8장3-4절에 말씀을 보면,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도의 기도는 오직 하나님에게 드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의 기도는 거룩한 것이다.  
  분향단에서 피워지는 향을 만드는 재료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들어갔다. 이 재료들을 통하여 기도의 방법을 생각해 보자.
    (1).소합향
    소합향은 인도나 파레스타인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채취한 향이다. 공동 번역에는 소합향을 '때죽나무' 로 번역하고 있다. 소합향을 히브리어로 '나-타-프'라고 하는데 이 말은 '방울져서 떨어진다'를 뜻하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소햡향은 수액이 태양의 열을 받아 저절로 분비되어 나오는 고무진과 같은 액으로 만들어진 향이다. (전승에 의하면 모세가 바로를 피해 애굽에서 떠날 때 휴대한 지팡이가 이 나무로 만들어진 것으로 되어 있고, 또한 이 지팡이를 땅에 꽂으니 싹을 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소합향은 주님을 향한 간절한 갈망을 의미합니다. 시편 42편1절에서 시편기자는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라고 노래하고 있다. 이렇게 갈망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억지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저절로 나오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정말 마음 중심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싶은 충동이 있을 때를 체험했을 것이다.
   특히 새로운 영적 은혜를 체험하였거나, 감사한 일이 생겼을 때, 기도와 찬양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 기도는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할 때보다 마음에 중심에서 스스로 감동되어 드리는 기도와 찬양을, 하나님은 받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이다.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찬양의 기도가 소햡향의 기도이다.
     (2).나감향
    나감향은 홍해 해안에서 수집되는 갑각류의 껍질에서 채취한 향이다. 이 향을 채취하려면 갑각류를 곱게 빠아서 채취하였고 한다.
   성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를 드리려면, 먼저 마음에 중심이 깨어져서 가루처럼 곱게 부서져야 한다. 심령의 상태가 깨어지고 부서지지 않고 드리는 기도는 자기 중심의 기도를 하게 된다.
   갑각류가 껍질로 그대로 있으면 향기로운 향을 낼 수가 없다. 이와 같이 깨지지 않은 심령에서 드리는 기도는 자기 중심의 기도로 향기로운 기도가 될 수가 없다.
   깨지고 부서진다는 것은 자기 포기이다. 깨어지고 부서진 사람은 내가 앞서지 않는 사람이다. 주님만이 나타나는 사람이다. 이런 심령을 가진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신다.
   시편 기자는 시편 34편18절에서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라고 하였고, 또 시편 51편17절에서는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고 하였다.  여기서 마음이 상한 자를 직역하면 "마음이 산산히 부수어 진다"라는 말이고, 중심에 통회는 "두들겨 맞은 마음을 가진 자"란 말이다. 이렇게 바싹 부서진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주님은 받으신다.  
    (3).풍자향
    풍자향은 아라비아에서 자라나는 관목의 일종인 '유향수' 라는 나무를 자를 때에, 고무가 채집되는데, 이 진액으로 만들었다. 이 나무는 고무나무의 일종으로 나무를 자를 때에 나오는 액체는 독소를 제거하는 해독제로도 쓰였다고 한다. 이 액체로 만든 것이 풍자향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진정한 심령에서 우러나오는 진액과 같은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이 기도는 영혼에 있는 독을 제거하는 기도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모든 죄악(독)을 깨끗게 하시는 보혈이다. 그리스도의 흘리신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참회의 기도를 드리려면, 내 자아가 먼저 꺾어져야 한다. 이럴 때에 나무가 잘려질 때, 진액이 나오듯이, 자신이 죄인임을 진정으로 깨닫고, 자신의 죄 됨을 자백하며, 눈물로 회개하는 참회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기도를 드린 사람이 변화가 일어나고 거듭나는 역사가 있는 것이다. 또 이런 사람의 기도가 향기로운 기도가 되는 것이다.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하나님께 참회의 기도를 드렸는데 이 기도가 풍자향의 기도와 같은 것이다.
  다윗은 시편 32편3-5절에서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고 하였다. 그리고 누가복음 18장 말씀에 나오는 세리가 가슴을 치며 통회하는 기도가 이런 기도로 볼 수 있다.  
  (4).유향
   유향은 감람과 나무에서 채취한 송진과 같은 것으로 만든 향이다. 유향은 향기로운 향을 내는 나무진이다. 이 향은 동방박사가 예수님께 선물로 가져왔었다. 유향은 관유를 제조 할 때도 사용되었고, 떡상에 전설된 전설병에도 두었던 향이다. 그리고 의약품으로도 사용된 귀한 향이다(렘 46:11). 유향은 잡 냄새를 없애는 대신 향기로운 향을 성소안에 가득히 채우는 향이다.
   성도는 유향과 같이 향기가 나야 한다. 무슨 향기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 한다. 향기는 억지로 나는 것이 아니다. 자연히 나게 되는 것이다.
   성도가 자연히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려면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 성령 충만을 받으려면 기도하여야 한다.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은 삶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어내게 한다. 이런 사람의 기도가 향기로운 향의 기도이다.
   특히 유향과 같은 기도는 흑암의 세력을 없애고(더러운 냄새) 하나님의 축복을(향기로운 냄새) 받게 하는 기도이다.  인간의 삶에 어려운 일들을 물러가게 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하는 기도이다. 이런 기도는 불행을 가져다주는 문제는 물러가고 분명히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을 믿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이다. 그러면서 믿음을 가지고 행동으로 옮기는 기도이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18절의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 말씀에서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이런 기도라고 볼 수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즐겁고 기뻐서 찬송이 나오고 감사가 나오는 것이 이런 기도에 속하는 것이다. 찬양의 기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럴 때에 주위에 사람들이 예수의 향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5) 소금을 쳐서 성결케 하라고 하였다.
    소금은 향을 제조하는데 꼭 넣어야 했다. 소금은 하나님의 언약을 상징한다. 그리고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는 방부제로도 쓴다.
   분향 단의 향에 소금을 넣는 것은, 성결케 하기 위하여 하라고 하였다. 소금의 기도는 성결의 기도이다. 인간의 추한 정욕을 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를 말한다. 즉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는 기도를 말하는 것이다.    또 소금은 언약을 상징한다.  세상 것은 다 변한다 해도 하나님의 언약은 변하지 안는다. 기도는 이런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기도할 때에 응답 받게 되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 봉헌식을 할때 솔로몬 왕은 이런 기도를 하였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자기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 것같이 내 율법대로 행하기만 하면 네게로 좇아 나서 이스라엘 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그런즉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주는 주의 종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대하 6:16-17) 역서 솔로몬 왕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응답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마태복음 17장20절에서 주님은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 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하셨다. 또 누가복음 17장6절에서도 주님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마가복음 11장23절에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를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하셨다. 마태복음 21장22절에서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셨다.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하는 기도가 소금과 같은 기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언약의 말씀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요한복음 14장13-14절의 말씀에서 주님은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여야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지 않는 기도는 응답되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생각하여 볼 것은 위 네 가지 향들은 모두가 동일한 중수 (동일한 중수-         '바드 베바드'로 직역하면, 한 부분에 한 부분'으로 '한 분량에 같은 분량'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로 배합하라고 하셨다. 기도는 이 다섯 가지의 조건이 빠져서는 안 된다는 영적 의미를 찾아 볼 수 있다.
 
*학습문제
1.구약 시대에 성소에 들어가 분향을 할 수 있는 직분은 누구라고 하였는가?(출   30:7). 오늘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벧전 2:9,10)
 
2.아론의 아들들인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 분향을 잘못하여 여호와 앞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무엇을 잘못하였나 말하여 보자.(레 10:1,2) 그리고 올바른 기도를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3.분향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분향을 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산 유다 왕은 누구인가? 그리고 어떠한 징벌을 받았는가?(대하 26:16-19). 그리고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자격을 당신은 얻었다고 생각하는가? 그 이유는?.  
 
4.출애굽기 30장37,38절을 읽고서, 잘못된 기도에 대하여 적어 보자.
  ①대상자(요 15:16)-
  ②기도의 내용(마 6:33)-
  ③누구의 이름(요 14:13,14}-
 
5.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하나님께 간구하여 기도하였던 적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기도하였었나?  그리고 기도에 결과는?(창 25:20-21)
 
6.기도의 어머니 한나는 어떠한 자세로 기도하였었나? 그리고 한나가 하나님께 한 기도에 내용은?.(삼상 1:9-16)
 
7.사복음서에서 나오는 인물 중에 예수님은 빼고, 가장 전심으로 기도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그의 기도에 내용과 심령의 상태를 적어 보자.
 
8.나 자신이 살아오면서 가장 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한 적은 언제라고 생각하는가? 한가지만 적어 보자.
 
9.기도의 응답을 받은 적이 있는가? 있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한가지만 말하여 보자.
 
10.오늘 이 시간에 기도를 하다가 주님께서 '네게 무엇을 줄까' 라고 하신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11.하나님의 사랑이 감사하여 기도한 적이 있는가? 그리고 이웃의(불신자나 믿음이 없는 교우) 영혼이 불쌍하여 진정한 마음으로 기도한 적이 있는가?.
 
12.교회를 위하여 눈물 뿌려 기도한 적이 있는가? 있다면 언제였나?.
 
13. 내 자신이 현재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어떤 종류의 기도인가를 생각해 보고 만약에 치우친 면이 있다면 어떤 면인가를 적어 보자.    
 
 
제11장 성소의 휘장(출 26:31-33절)
 
   성소의 휘장은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기 위하여 치어진 막이다. 원래 "휘장"이라고 번역한 "카타페타스마"란 말은 페르시아 말, "파르고트"란 단어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 말은 하늘의 궁창과 땅의 궁창을 구분하는 벽을 뜻한다.  성소에 안쪽에 분향단의 바로 뒤에 휘장이 쳐 있고, 휘장 안에는 법궤가 모셔진 지성소였다.
    지성소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다. 그러므로 지성소는 매우 거룩한 곳이다. 그래서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도 함부로 지성소를 들여다보거나 접근하지 못하도록 휘장으로 가리웠던 것이다. 만약에 함부로 인간이 지성소를 들여다보거나 들어갔다가는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휘장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인간들과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막이다. 휘장은 하나님을 만나 뵙기 위한, 마지막 관문과 같은 것이다. 지성소와 성소를 가로막은 휘장은 일년에 한번씩 출입하는 대제사장만이 열고, 들어 갈 수 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일년에 대 제사장에 의해, 한 차례만이 이 휘장을 열리고, 대 제사장이  지성소 안에 들어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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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의 휘장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법궤와 시은좌가 모셔진 곳이다, 그러므로 지성소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하늘 나라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성소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좌앞에 서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대제사장도 일년에 한번, 정한 기일에 일차만, 들어 갈 수가 있는 거룩한 곳이다.
   그런데 이 휘장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인간의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심판받아 운명하실 때에, 한 가운데가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서 성소에서는 있는 제사장들은 지성소를 안을 볼 수가 있게 되었다. 또 들어가는 길이 열렸던 것이다.(마 27:51)
   그러므로 지성소 안을 들여다보고, 들어갈 때에, 임할지도 모르는 죽음에 두려움에서 해방되게 되었던 것이다. 당당히 들여다보고 당당히 들어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히브리서 6장19,20절 말씀에서는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고 하신다.    
 
1.휘장의 재료(출 26:31절)
   휘장의 재료는 청색실, 자색실, 홍색실, 그리고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만들었다. 여기서 각 색깔은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1).청색은 하늘의 색으로 희망과 생명을 상징한다.
   성경은 예수는 하늘에서 나신 분(고전 15:47), 생명의 주(요 10:10), 하늘에서 오신 분(요 3:31)으로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분 안에 있는 영생을 암시한다.
 
  2).자색은 부요와 고귀를 상징한다.
   자색 옷은 왕이나 귀인들이 입는 옷으로 만유의 주시며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낸다.
 
  3).홍색은 희생을 상징한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못박혀 매달리셔서 붉은 피를 흘리심으로 인류의 죄를 속량하신 예수님의 희생을 나타낸다.
 
  4).흰색은 성결과 의를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무죄하시며 의로우신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은 그분의 의를 확증하셨다.  
 
 2.휘장의 모양
   이 휘장은 네 가지 색깔로 직조한 위에다 그룹들을 공교히 수놓아서 만들었다. 휘장에 그룹을 놓은 것은, 지성소는 하나님의 벱궤가 모셔진 곳으로 매우 거룩한 곳임을 말하여 주며, 또한 하나님의 존귀하심과 거룩하심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이 그룹들은 하나님의 보좌를 지키는 그룹들을 상징하는 것이다(겔9:3).
   구약 시대에는 인간이 하나님을 보면 죽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환상 중에 하나님과 보좌와 그 주위에 있는 스랍들을 보고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계신 하나님의 나라는 아무나 들어 갈 수 없는 곳이다. 죄인은 갈 수 없는 곳이다. 의인만이 가는 거룩한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들어 갈 수 있는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인인 저나 여러분이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기 때문에 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아무런 죄가 없어야 한다. 이 세상에 죄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 로마서 3장10절에서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의인은 이 땅에는 없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는 것이다. 왜 그럴까요. 그곳은 매우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곳이기 때문이다.
 
 3. 갈라진 휘장(마 27:50-53. 막 15:37-39. 히 10:19-23)
   지성소와 성소의 사이에 쳤던 휘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 휘장 안에는 하나님의 법궤와 시은좌가 있는 지성소이다. 지성소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다. 곧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 하나님을 직접 만나려면, 이 지성소에 들어가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레위기 16장의말씀을 보면, 이 지성소에는 일년에 일차씩 속죄일인 7월10일에 제사장들 중에서도, 그해 대제사장으로 뽑힌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제사장으로써 성소에 출입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여도, 지성소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지성소는 이렇게 거룩한 곳이다.
   이 당시에는 대제사장으로 뽑히어서 지성소를 출입할 수 있는 제사장은 개인으로는 큰 영광을 얻은 것이다. 속죄일에는 제사장들이라도 백성들과 함께 성막(회막)밖에 서있어야 했고, 대제사장 혼자만이 성막안으로 들어가서, 대제사장의 옷을 벗고, 몸을 깨끗이 씻고, 고운 세마포 옷으로 갈아입고 나서, 대제사장 자신을 위하여 속제의 제물로, 수소 한 마리와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물로, 수염소 두 마리를 준비하고, 또 번제물로 드릴 수양 두 마리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수 염소 두 마리 중에 제비를 뽑아, 하나는 하나님을 위한 제물로 정하고 또 한 마리는 아세살을 위하여 준비하고 나서, 자신을 속죄의 제물인 수송아지를 대제사장의 권속들을 위하여 속죄하고, 그 수송아지를 잡고는, 향로를 취하여, 여호와의 단에 피운 불을 채우고, 두 손으로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채워 가지고, 수송아지의 피와 함께 가지고 휘장을 열고,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서, 향연을 피워, 증거궤와 속죄소를 가리우게 하고, 또 수송아지의 피를 취하여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편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속죄소 앞에 일곱 번을 뿌리고 나서, 다시 성막 뜰로 나와서, 대제사장은 백성을 위하여 속제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안에 들어가서, 수송아지의 피를 뿌린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뿌려서, 이스라엘 백성의 부정과 모든 죄를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대제사장은 성막의 뜰로 나와서 아세살을 위하여 준비된 수염소에게 안수하며,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하여 준비하고 있던 사람에게 염소를 맡기어 광야로 끌고 가서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염소를 광야에 놓아주고 돌아왔던 것이다. 이 염소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불의를 짊어지고 광야에 버려졌던 것이다.  
   이런 예식이 끝나고 나면, 대제사장은 다시 목욕을 하고, 대제사장의 예복으로 갈아입고, 수양 두 마리를 잡아 번제로 드리고 나면, 대 속죄제가 끝나게 된다.
   여기서 아사셀의 염소는 인간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영문 밖, 골고다 언덕을 오르셔서, 십자가에서 대신 형벌을 받으신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아세살의 염소처럼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그 죄에 형벌을 대신 받으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영문밖 골고다 언덕에 오르셔서, 양발과 양 손이, 대못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찢기시고, 피를 흘리시다가 운명하셨다.
  이때에 성전에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치어있던, 휘장 한 가운데가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마 27:51, 막 15:38, 눅 23:45)
   이때 상황을 누가복음 23장44-46절 말씀을 보면 "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대하여 히브리서 10장19,20절 말씀에서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말씀하고 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치어진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하늘 나라의 거룩한 하나님 보좌 앞에 인간이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육체를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못박혀 찢기시고, 죽기까지 내어 주심으로, 아담의 피를 받아 죄로 말미암아 저주받은 인생으로 태어났지만, 예수를 구주로 믿고 거듭난 모든 사람들에게 하늘나라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당당히 나라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예수님은 이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우리는 이 엄청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다.
   계시록 7장9-12절의 말씀에 보면, 하늘나라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고 한다.
   얼마나 놀라운 장면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그 흘리신 보혈의 은총과 영광에 부활로, 이 대열에 저나 여러분이 서게 될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할렐루야!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자. 아멘! 아멘! 아멘!
   그리고 계시록 21장3절에서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는 있지 아니하리니, 보라 처음 것들이 다 지나 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지신, 십자가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광스러운 이곳에 가서 영원토록 하나님께 찬송하며 살게 될 것이다.   
 
*학습문제
1. 휘장을 만드는 재료에 색깔을 통하여 느낀 점이 무엇인가를 적어보자.
 
2.이 휘장은 네 가지 색깔로 직조한 위에다 그룹들을 공교히 수놓아서 만들었다. 고 하였다. 이렇게 만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되는 가?
 
3.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에서 못 박혀서 운명하실 때에, 성전 휘장 한 가운데가 위로부터 아래로 갈라지었다. 이일이 나 자신에게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4.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에서 못박혀서 운명하실때에 일어난 일들을 적어보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보자.
 
제12장 지성소
 
   지성소는 성소와 휘장으로 가리어져, 엄격히 구분되어 있는 곳이다. 지성소는 성막의 중심로 벽은 성소와 같이 정금으로 싸여져 있었고, 천장은 사색의 가는 실로 그룹을 수놓아 짠 휘황 찬란한 휘장으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사색의 가는 실로 그룹을 수놓은 휘장에 의하여 성소와 구분되어 있었다.
   성막의 겉모양은 볼품도 없는 해달의 가죽으로 덮여 있는 장막에 불과하다. 그러나 성막의 안은 정금과 그룹들이 사색의 가는 실로 공교히 수놓은, 화려한 막으로 싸여 있다.
   출애굽기 25장10-22절의 말씀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시하기를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너는 정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 금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편에 두 고리요 저편에 두 고리며,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고, 그 채를 궤 양편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채를 궤의 고리에 꿴대로 두고 빼어내지 말지며,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하게 할지며,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고 하셨다.
    지성소 안에는 이렇게 하나님의 지시대로 만들어진 정금으로 싸여진 법궤와 정금으로 만든 법궤를 덮은 시은좌와 정금으로 만든 두 그룹이 법궤를 덮고 있었다. 이렇게 지성소는 화려하게 장식된 곳이다.
  그리고 지성소는 출애굽기 25장22절의 말씀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고 하신 곳으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였다. 이러므로 지성소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레위기 16장2절에 말씀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장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사망을 면하라. 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고 하셨다.
  그래서 평상시에 성소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던 제사장들까지도, 이 지성소 안은 들여다 볼 수까지도 없는, 거룩한 곳이었다. 지성소 안을 함부로 들여다보거나 들어가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거룩한 곳이다. 지성소는 하늘나라의 지극히 거룩한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을 의미하는 곳이다.
   이 지성소에는 일년에 일차씩 속죄일인 7월10일에 제사장들 중에서도 특별하게 뽑힌 대제사장 한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다.(레 16:) 그래서 대제사장이 이곳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도, 만약의 사태를 위하여, 다리에 끈을 묶고 들어가서 한 끝은 성소에 나와 있게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대 제사장의 예복 아래에 달린 방울 소리를 들으므로, 지성소에서 제사를 드리는 대제사장의 생사를 확인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형벌을 받아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운명하실 때,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기 위하여 치어졌던 휘장의 한 가운데가 위로부터 갈라져서 성소 안에 들어온 제사장들은 지성소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있게 되었고, 들어 갈 수도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보좌앞에 당당히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하면서도, 죄의 고통과 절망 가운데 빠져 헤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을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하고,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은총과 부활의 은총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자기를 바라보며 죄와 고통과 두려움과 부끄러움 속에 빠져 헤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난 뒤, 속죄의 은총을 깨닫고 믿음으로, 죄와 사망에서 해방을 얻고 자유함을 누리며, 항상 감사하며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부활에 주시며, 능력에 주시며, 구원에 주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로마서 8장1절의 말씀과 같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은, 우리가 범한 죄보다 훨씬 더 강한 속죄의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바라보면, 죄의 가책과 두려움에서 온전히 해방하여 자유 할 수가 있고, 원수 마귀와 싸워서 이길 수 있으며,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원수 마귀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거듭난 사람은 왕같은 제사장들이다. 성막의 성소안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제사장들과 같은 영적 권세를 얻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성소안에서의 제사장들처럼 예수안에의 축복된  삶을 누리며, 살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하늘나라 지성소에 들어 갈 수가 있는 것이다.
 
 1.법 궤
  출애굽기 25장10-16절의 말씀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시하기를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너는 정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 금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편에 두 고리요 저편에 두 고리며,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고, 그 채를 궤 양편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채를 궤의 고리에 꿴대로 두고 빼어내지 말지며,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라고 말씀하셨다.
  성막의 중심은 법궤이다.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핵심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40년 생활을 마치고, 요단 강을 건널 때에도,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먼저 물이 범람하는 요단 강물에 발을 내디디었을 때에, 강물의 흐름이 멈추어서 육지의 길같이 되었고, 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여리고 성을 무너트릴 때에도,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앞서서 가고, 그 뒤를 백성들이 따르며, 여리고 성을 믿음으로 하루에 한바퀴씩 돌고, 마지막 칠 일째 되는 날 일곱 바퀴를 돌고, 온 백성이 제사장의 나팔소리에 맞추어, 큰 소리를 질렀을 때에, 견고한 여리고 성이 안으로 무너지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래서 엘리 제사장시절에 불레셋과 전쟁을 하다가 불리하자 법궤를 메고 이스라엘 진중으로 나오게 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하였다가 법궤가 블레셋의 손에 넘어가게 되는 불행을 맞기도 하였다. 이렇게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신앙의 가장 핵심이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법궤를 덮고 있는 두껑인 시은좌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표하는 인간인  대 제사장과 만나는 장소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법궤는 성막에 있어서 가장 핵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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벱궤(언약궤)
    법궤를 영어 성경에는 'Ark'라고 했다. 'Ark'라는 말은 구약 성경에서 세번 나온다.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도 'Ark'라고 되어 있고, 출애굽기 2장에 나오는 모세를 담은 갈 상자도 'Ark'라고 되어 있다.  노아의 시대에 홍수로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이 심판을 피할 수 있었던 장소는 잣나무로 지어져서 안팎으로 역청이 칠해진 노아의 방주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가 모든 히브리 사내아이들을 죽이려고 했을 때,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숨겨 키우다가 더 이상 숨길 수 없어서 나일 강에 버려야 했는데, 아이를 담은 상자는 역청을 칠한 갈대상자였다. ('모세'라는 이름의 뜻은 '건져냄', 곧 '구원'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법궤를 영어 성경에선 'Ark'라고 했다. 그러므로 'Ark'라는 말의 공통점은 구원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법궤의 재료
   법궤는 볼품없는 조각목으로 만든 상자를 정금으로 싸은 상자이다. 법궤를 만든 조각목은 본체는 하나님이시면서도, 사람의 모습을 하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이나 준수함이 전혀 없는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러나 이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모든 죄를 친히 담당하시고, 죄를 해결하시는 능력을 지니고 계셨다(사 53:1-12). 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악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 뵙고 또 모시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리고 조각목으로 만든 법궤를 둘러싼 정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 불변하시며, 거룩하신, 영광에 주이신 성자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영광에 주님이시다. 영원히 살아 계시며, 만물의 창조주가 되시며, 만왕에 왕이 되시며, 심판의 주가 되시는 전지 전능하신, 성자 하나님이시다(히 13:8; 계1:9-19).
   그러므로 법궤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당시에 법궤를 중심으로 신앙 생활을 하였듯이, 오늘 날 우리는 오직 예수 중심의 신앙 생활을 하여야 한다.   
  
   2). 법궤의 내용물
   법궤의 안에는, 광야 시절에 하나님이 하늘에서 친히 이스라엘 백성에게 양식으로 내려주신 만나가 든 금 항아리, 그리고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께 받은 십계명이 새겨진 두 개의 돌비, 아론이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임을 증명하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었다.
   십계명이 새겨진 두 개의 돌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생명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금항아리에든 만나는 죄악으로 인하여 멸망받아야 할, 인간들에게 생명의 떡이 되시기 위하여 오실 예수님을,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능력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4장6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고, 요한복음 11장25,26절에서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몸이다.  에베소서 1장22, 23절 말씀에서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 하신다. 그리고 골로새서 1장18절에서는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고 하셨다.  그러므로 지성소에 있는 법궤가 성막의 중심이 되듯이,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이시며, 교회의 중심이 되시어야 하는 것이다. 또 지성소의 법궤 앞에서 거룩한 하신 하나님을 뵐 수 있었듯이, 오늘날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학습문제
1.법궤앞에 나갈 수 있었던 사람은 누구인가?  
 
2.법궤를 통하여 예수님의 어떤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었나를 적어보자  
 
3.법궤의 속에는 무엇 무엇이 담겨져 있었는가? 그것을 적어보고 그것들이 주는 영적 의미를 적어보자
 
 

 2.속죄소
   출애굽기 25장 17절부터는 법궤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법궤를 덮는 속죄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이 규빗 반이 되게 하고,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하게 할지며,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에게 이르리라."(출 25:17~22)
  법궤의 뚜껑은 속죄소인데, 속죄소는 정금으로 새겨진 그룹 둘이 덮여 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25장 10절에서 22절까지 법궤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속죄소' 라는 말씀을 여덟 번이나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법궤의 속죄소에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내려주시기 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는 많은 죄가 함께 하고 있었다.  모세가 이른 아침부터 밤이 늦도록 재판을 해도 끝이 없을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는 많았고, 죄에 대한 시비가 많이 일어났다.(출 18:13 이튿날에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았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의 곁에 섰는지라)
   이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내려주셨다. 그런데 율법을 받기 전에는, 죄를 지어도 죄로 여기지 않았고, 죄가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었지만, 율법을 받고 나서부터는, 죄에 대한 심판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죽임을 당하여야만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율법만 주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예물로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다. 번제단이나 물두멍, 향단, 등대, 떡상 이런 기구들을 만들고, 성막도 지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법궤를 지성소에 두게 하셨다. 이렇게 법궤를 중요하게 여기신 것은 벱궤가 가지고 있는 의미도 크지만, 또 하나는 법궤 위에는 속죄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속죄소는 법궤를 덮는 뚜껑으로, 그 뚜껑 양쪽 편에 두 그룹은, 정금으로 속죄소와 한 덩이로 붙여서, 망치로 쳐서 만들었다. 속죄소의 두 그룹은 날개를 펴서 속죄소를 덮고, 그 얼굴은 속죄소를 향하게 만들라고 하셨다.
    이 속죄소에 피가 뿌려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죄가 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 만일, 성막안에 속죄소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지은 죄로 말미암아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을 것이다. 이 세상에 죄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롬 3: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어느 누구도 없었을 것이다. 죄인은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속죄소를 만들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 속죄소에서 짐승의 피를 뿌림으로, 죄악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해 주시고, 만나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죄악된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그 분을 만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곳은 속죄소이다.
   출애굽기 25장21,22절에서,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고 하셨다. 속죄소는 이렇게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말미암아 마련된 은혜의 장소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속죄소 위에서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속죄소가 없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다. 속죄소가 없으면 죄를 사함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깊은 비밀을 깨우쳐주시는 것이다.
   속죄소 위에 뿌려지는 어린양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악으로 붉게 물들어 있는, 우리를 위하여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서 흘리실 보혈을 상징한다. 히브리서 9장11,12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소에서가 아니라, 참 장막인 하늘나라의 성소에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당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하늘나라에 있는 성막의 속죄소 앞에, 예수님이 당신의 피를 가지고 나아가 뿌리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이다.
   그러므로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려면, 먼저 속죄소에서 죄를 사함받고 난 뒤에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마음에 죄를 가지고는 있지만,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죄가 있는 사람은 먼저 속죄소 앞에 나아와서 죄를 씻음 받아야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다. 그 마음속에 죄를 두고는 절대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죄를 사함받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음을, 출애굽기 25장에서는 잘 말씀하고 계시다. 하나님이 속죄소 위에서 너희와 만나겠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 속죄소가 없다면 우리는 죄 사함을 얻을 수 없고,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음성도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깊은 비밀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채로 심판을 받으실 때, 우리가 범한 모든 죄에 대한 벌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 때문에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거나 절망하여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은, 먹보다도 더 검은, 우리의 모든 죄를 흰눈보다도 깨끗게 하여 주는 능력에 피인 것이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속죄의 은총을 깨닫는 사람은, 죄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학습문제
1. 속죄소에 왜 짐승의 피를 뿌려야만 하였는가? 히브리서 히브리서 9장22절의 말씀을 읽고 그 이유를 적어보자.   
 
2. 속죄소에 뿌려진 짐승의 피는 누구의 피를 상징하는가?
 
3.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나주시겠다고 한 장소가 속죄소이다. 그 이유를 적어보자.  
 
4. 현재 우리에게 속죄소는 어느 곳에 있다고 생각되는가? 그 이유를 성경 말씀을 인용하고 설명해 보자  
 
 
제 13장 제사장
 
 1.제사장의 자격
   출애굽기 28장1절에서 3절까지의 말씀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모세에게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직분을 행하게 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이스라엘 12지파중에 하나인 레위지파 중에서도 아론의 후손 중에 남자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신체적으로도 흠이 없고 건강한 자여야 했다. 레위기 21장 17절에서 23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아론에게 고하여 이르라 무릇 너의 대대 자손 중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그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라. 무릇 흠이 있는 자는 가까이 못할지니 곧 소경이나 절뚝발이나 코가 불완전한 자나 지체가 더한 자나, 발 부러진 자나 손 부러진 자나, 곱사등이나 난장이나 눈에 백막이 있는 자나 괴혈병이나 버짐이 있는 자나 불알 상한 자나, 제사장 아론의 자손 중에 흠이 있는 자는 나아와 여호와의 화제를 드리지 못할지니 그는 흠이 있은즉 나아와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지 못하느니라. 그는 하나님의 식물의 지성물이든지 성물이든지 먹을 것이나, 장 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못할지니 이는 그가 흠이 있음이라. 이와 같이 그가 나의 성소를 더럽히지 못할 것은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신체적인 흠이나 병약한 자는 제사장이 될 수 없었다.
 
 2.제사장의 품행
   출애굽기 28장39절에서 43절까지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는 가는 베실로 반포 속옷을 짜고 가는 베실로 관을 만들고 띠를 수놓아 만들지니라. 너는 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띠를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관을 만들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되, 너는 그것들로 네 형 아론과 그와 함께한 그 아들들에게 입히고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위임하고 거룩하게 하여 그들로 제사장 직분을 내게 행하게 할지며, 또 그들을 위하여 베로 고의를 만들어 허리에서부터 넓적다리까지 이르게 하여 하체를 가리게 하라. 아론과 그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나 제단에 가까이 하여 거룩한 곳에서 섬길 때에 그것들을 입어야 죄를 지어서 죽지 아니하리니 그와 후손의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고 명하셨다.(레 6:10)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단정하여야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3.제사장의 임무
    1).자신을 성결케 하는 일.
    제사장은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부터 정결케 하여야 하였다.   출애굽기 19장22절에서 "또 여호와께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로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고 말씀하였다(레 16:6). 그리고 출애굽기 30장17절에서 21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백성을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도 그리 할지니라.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고 하셨다.
  
  2).이스라엘 백성들을 성결케 하는 일
    레위기 6장7절에서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으리라" 고 하셨다. 그리고 레위기 16장18-19절에서 "제사장은 수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를 위하여 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단을 성결케 할 것이요"라고 하셨다. 이렇게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결케 하기 위한 제사의식을 수행하여야 하였다. 중보자의 역할을 하여야 했다.
 
  3).성소 떡상에 떡 진설하는 일
   레위기 24장8절에서 "항상 매 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고 하셨다.   성소 내의 떡상에 12개의 진설병을 안식일마다 새것으로 바꾸어 진설하는 일을 제사장이 하였다.
  
  4).정금 등대의 불을 꺼지지 않게 관리하는 일
  레위기 24장2-4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을 찧어 낸 순결한 기름을 켜기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잔불을 켤지며, 아론은 회막 안 증거궤 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순결한 등대 위의 등잔들을 끊이지 않고 정리할지니라"고 하셨다.
  제사장은 이렇게 정금 등대(촛대)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아침, 저녁 하루에 두 번씩 간검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5).분향단에서 향을 사르는 일
   출애굽기 30장7-8절에서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정리할 때에 사를지며, 또 저녁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지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지며"라고 하셨다.  이렇게 대 제사장은 분향단에 향이 끊이지 않고 타오르도록 해야할 임무가 있었다.
 
  6).판결하는 일
   출애굽기 28장30절에서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으로 여호와 앞에 들어 갈 때에 그 가슴 위에 있게 하라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 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둘지니라"고 하셨다.  대 제사장은 우림과 둠빔을 차고 백성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판결하여 정의와 불의를 가려내는 일을 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하였다. 이는 대 제사장이 하나님과 백성들의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bridge)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7).진찰하는 일
  레위기 13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처를 제사장이 진찰하고, 판명(判明)케 하셨다.(레 13:1∼59)  
 
  8).율법을 가르치는 일
   신 31장9-13절에서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매 칠년 끝 해 곧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지니, 곧 백성의 남녀와 유치와 네 성안에 우거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 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고 하셨다.(신 33:10)
  제사장이 해야할 임무 중에 하나는 율법을 가르치는 일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늘 묵상하고 지키도록 가르쳤다.
 
 9).성막에서의 모든 일을 총 지휘하는 일
  민수기 3장5-9절에서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레위 지파로 나아와 제사장 아론 앞에 서서 그에게 시종하게 하라. 그들이 회막 앞에서 아론의 직무와 온 회중의 직무를 위하여 회막에서 시무하되, 곧 회막의 모든 기구를 수직하며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장막에서 시무할지니,  너는 레위인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아론에게 온전히 돌리운 자니라"고 하셨다.
  성막에서의 제반 일들은 레위인들만이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막의 모든 일의 총지휘는 대제사장이 하게 하셨다.
 
  3.제사장의 예복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 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의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으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할지며, 그들의 쓸것은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이니라.    그들이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에봇을 짓되, 그것에 견대 둘을 달아 그 두 끝을 연하게 하고, 에봇 위에 매는 띠는 에봇 짜는 법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에봇에 공교히 붙여 짤지며, 호마노 두개를 취하여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그들의 연치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보석을 새기는 자가 인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테에 물리고, 그 두 보석을 에봇 두 견대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께에 메어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  너는 금으로 테를 만들고, 정금으로 노끈처럼 두 사슬을 땋고 그 땋은 사슬을 그 테에 달지니라"(출2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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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의 예복
  1).속옷
   출애굽기 28장39절에서 "너는 가는 베실로 반포 속옷을 짜고 가는 베실로 관을 만들고 띠를 수놓아 만들지니라"고 하셨다.   가는 베실로 짠 속옷은 성결을 의미한다. 제사장은 성결, 그 자체가 재산이요 능력이다.
   2).에봇 받침 겉옷
   출애굽기 28장31-35절에서 "너는 에봇 받침 겉옷을 전부 청색으로 하되, 두 어깨 사이에 머리 들어갈 구멍을 내고 그 주위에 갑옷 깃 같이 깃을 짜서 찢어지지 않게 하고,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청색 자색 홍색실로 석류를 수놓고 금방울을 간격하여 달되,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한 금방울 한 석류 한 금방울 한 석류가 있게 하라. 아론이 입고 여호와를 섬기러 성소에 들어갈 때와 성소에서 나갈때에 그 소리가 들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두 번째 입어야 할 옷은 에봇을 입기 위한 받침 옷으로, 에봇 받침은 전부 청색이었다. 이 옷은,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청색 자색 홍색실로 석류를 수놓고, 금방울을 일정한 간격으로 하여 달되,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한 금방울, 한 석류, 한 금방울, 한 석류가 번갈아 달았다(출 28:31-34). 이렇게 한 것은, 에봇 받침 옷에 달린 금방울이, 제사장이 움직일 때마다 금방울 소리가 나게 한 것이다.
   3).에 봇
   출애굽기 28장6∼14절에서 "그들이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에봇을 짓되, 그것에 견대 둘을 달아 그 두 끝을 연하게 하고,  에봇 위에 매는 띠는 에봇 짜는 법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에봇에 공교히 붙여 짤지며, 호마노 두개를 취하여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그들의 연치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보석을 새기는 자가 인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테에 물리고, 그 두 보석을 에봇 두 견대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어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 너는 금으로 테를 만들고, 정금으로 노끈처럼 두 사슬을 땋고 그 땋은 사슬을 그 테에 달지니라" 하셨다.
   에봇은 제사자의 겉옷으로 금실,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에봇에 공교히 붙여 달라고 하셨다. 금실은 믿음 또는 영광, 청실은 생명, 자색은 존귀, 홍색은 고난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대 제사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4).두 견대
   출애굽기 28장9∼12절에서 "호마노 두개를 취하여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그들의 연치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보석을 새기는 자가 인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테에 물리고, 그 두 보석을 에봇 두 견대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께에 메어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 라고 하셨다.
   제사장이 입는 에봇에는 두 견대(肩帶)가 달려 있었는데, 우편 견대에는 르우벤, 레위, 단, 시므온, 유다, 납달리의 이름이 새겨진 보석이 달려졌고, 좌편 견대에는 아셀, 스불론, 베냐민, 갓, 잇사갈,요셉의 이름이 새겨진 보석이 달려졌다.   
    *12지파의 이름을 새긴 보석을 어깨에 메게 한 세가지 의미는?
    ①책임- 12지파를 어깨에 메듯 책임을 져야 함을 의미한다.
    ②보호- 어깨에 기록하고 메고 다니는 것은 보호를 의미한다.
    ③중보- 본래 제사장은 헬라어로 <폰디텍스>라고 하는데 이는 '다리를 놓은 사람이'란 뜻으로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다리를 놓는 중보자의 역할을 담당해야 함을 의미한다.
     5).가슴에 판결 흉패
   출애굽기 28장30절에서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으로 여호와 앞에 들어 갈 때에, 그 가슴 위에 있게 하라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둘지니라" 고 하셨다.
  우림과 둠빔은 제사장이 지녀야할 필수품이다. 그리고 제사장이 판결할 때에 5가지의 원칙이 있다.
         ①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재판해야한다.
         ②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가지고 선포해야 한다.
         ③사랑이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판결해야 한다
         ④믿음으로 판단해야 한다.
         ⑤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판결해야한다
     6).띠
   출애굽기 28장8절에서 "에봇 위에 매는 띠는 에봇 짜는 법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에봇에 공교히 붙여 짤지며" 하셨다. 그리고 출애굽기 28장27,28절에서는 "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에봇 앞 두 견대 아래 매는 자리 가까운편 곧 공교히 짠 띠 윗편에 달고, 끈으로 흉패 고리와 에봇 고리에 꿰어 흉패로 공교히 짠 에봇 띠 위에 붙여 떠나지 않게 하라"고 하셨다.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제사의 직분을 행하는 사람으로 진리인 하나님 말씀에 매인 자가 되어야 하였다. 에베소서 6장14절에서 바울 사도는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라고 하였다.
    7).관(冠)(모자)
   출애굽기 28장39,40절에서 " 너는 가는 베실로 반포 속옷을 짜고 가는 베실로 관을 만들고 띠를 수놓아 만들지니라. 너는 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띠를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관을 만들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되"라고 하셨다.
   제사장은 가는 베실로 짠 관을 쓰게 하였다. 이관은 가는 베실로 짜여졌다. 이것은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항상 성결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관은 권위와 영광을 상징하는 것이다. 제사장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직분이다. 레위지파 중에서도 아론의 자손이어야만 하고, 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결함이 없는 사람만이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제사장은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 세운 직분으로 영광스러운 직분인 것이다.
   8).패(牌)   
   출애굽기 28장36∼38절에서는 "너는 또 정금으로 패를 만들어 인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 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위에 매되 곧 전면에 있게 하라. 이 패가 아론의 이마에 있어서 그로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의 죄건(罪愆)을 담당하게 하라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고 하셨다.
   이 패는 제사장의 관, 전면 이마에 있게 하였다. 이 패는 정금으로 만들었다. 여기에다 '여호와께 성결' 이라는 글을 새겼다.
  정금은 영광과 불변하는 믿음을 상징한다. 그 위에다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글씨를 새긴 것은 영광스러운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는데 가장 중요한 성결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변함없는 믿음으로 지켜야 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패의 글씨가 이마에 있게 한 것은, 제사장의 본인도 항상 느끼게 하고, 또 이를 보는 이도 느끼게 하는 의미가 있다.
 
 3. 제사장의 권한
 
  1).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권한
   민수기 3장38절에서 "장막 앞 동편 곧 회막 앞 해 돋는 편에는 모세와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이 진을 치고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대신하여 성소의 직무를 지킬 것이며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일지니라" 고 하셨다. 성소에는, 지극히 거룩한 장소로 일반 레위인들도 들어 갈 수 없었다. 접근하였다가는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죽임을 당하였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이곳에 들어가서 직무를 담당할 수가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권한인 것이다.
   2).제물을 먹을 수 있는 권한
   출애굽기 29장32절에서 "아론과 그 아들들이 회막문에서 그 수양의 고기와 광주리에 있는 떡을 먹을찌라" 고 하셨다. 그리고 레위기 6장26절에서도 "죄를 위하여 제사드리는 제사장이 그것을 먹되 곧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을 것이며" 하셨고, 레위기 6장29절에서도 "그 고기는 지극히 거룩하니 제사장의 남자마다 먹을 것이니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 (성물)중에 하나님이 허락한 제물을 먹을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3).백성을 판결 할 수 있는  권한
   출애굽기 28장30절에서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으로 여호와 앞에 들어 갈 때에 그 가슴 위에 있게 하라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 스라엘 자손의 판결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둘지니라" 고 하셨다. 앞서 제사장의 옷에서 이미 다루었지만 제사장은 백성을 판결할 권한을 하나님께서 주셨다.   
 
  4.제사장의 기업
   민수기 18장20∼24절에서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의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이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말 것이라 죄를 당하여 죽을까 하노라. 오직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의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준 고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고 하셨다.
   성막을 섬기는 레위지파나 제사장들은 일반 사람들과 다르게 세상의 기업이 없었다. 기업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레위 지파나 제사장들은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만 하였다.
 
*학습문제
1.제사장에 자격에 대하여 적어 보자.
  
2.베드로 전서 2장9절의 말씀을 찾아서 적어보고 나 자신에 신앙의 상태와 삶에 대한 각오를 적어보자.
 
3.제사장의 직무를 통하여 얻은 교훈이 있다면 무엇인가?
 
4.제사장의 옷에서 어느 것을 공부할 때에 가장 감명을 받았는가?
 
5.제사장이 꼭 갖추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6.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레위지파나 제사장에 기업은 누구였는가?
 
7.로마서 14장5∼8절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적어 보자.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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