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궤 2
속죄소 - 아사셀양
출애굽기 25장 17절 - 22절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할지며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속죄소를 궤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있습니다.
이 언약궤의 뚜껑 위에는 그룹(천사)들이 있는데, 그 천사들은 펼친 두 날개로 언약궤를 덮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언약궤 안에 십계명을 새긴 돌판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 그리고 만나를 담은 항아리를 놓게 하셨습니다.
이 언약궤 위를 속죄소(시은소)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는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은 1년에 한번 즉 대속죄일에 희생제물의 피를 이 시은소 위에 뿌렸습니다.
언약궤 안에 있는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은 인간이 마땅히 행할 의무를 기록했는데, 이 돌판은 이 계명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의 죄를 증거했기 때문에 증거판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피가 뿌려진 시은소의 언약궤 뚜껑이 사람들의 죄를 가리워 주었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한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를 회복한 후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영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모두 다 시온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시은소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속죄소는 하나님의 보좌요, 언약백성들과의 만남과 교제의 장소였습니다.
속죄소는 시은소라고도 하는데, 언약궤의 덮개 즉 언약궤의 뚜껑을 의미합니다.
“속죄소” 혹은 “시은소”는 하나님의 은혜가 베풀어지는 곳이라는 뜻이며, 또한 속죄가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속죄소에서 만나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속죄소란 헬라어의 ‘헬라스테리온’ 즉 화목제물이란 뜻입니다.
십자가에서 화목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로마서 3장 25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출애굽기 12장 13절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보시지 않으십니다. 이것을 간과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사용하고 있는 ‘간과’ 라는 단어의 의미는 ‘건너뛰고 넘어갔다’는 뜻입니다.
사실은 죄가 있지만 죄가 없는 듯이 보시고 뛰어 넘어갔다는 말씀입니다.
유월절이라고 할 때 유월이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죽음이 없으면 죄는 용서함 받을 수 없습니다.
죄 사함은 피를 흘림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가 용서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가 흘려져야 합니다.
그 이유가 바로 죄의 삯이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속죄소에서 자신의 백성들과 만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만남은 일 년에 한번씩 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 피를 뿌림으로 백성들의 죄를 속한 대제사장을 통한 만남이었습니다.
이는 자신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우리가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의 교제가 이루어질 것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 했을 때 수송아지나 숫염소나 암염소나 어린양이나 심지어 짐승을 드릴 형편이 되지 않는 백성들은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라도 바쳐야만 죄가 용서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사람의 노력으로 죄가 용서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용서되기 위해서는 생명의 희생이 반드시 요구된다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희생의 제사를 수없이 많이 드렸지만 그 제사는 완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의 완전한 제사가 필요하였습니다.
짐승의 피나 사람의 노력으로 드려지는 제사가 아닌 완전한 제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 완전한 속죄 제사가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주 예수님에 의해 드려졌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 - 4절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졌는데, 단번에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피로서, 죽음으로서 모든 죄값이 지불되었는데 단번에, 일시불로 지불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화목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의 모든 죄 값이 갚아졌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었다”(요19:30)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소에서가 아니라 참 장막인 하늘나라의 성소에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주님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성막의 속죄소 앞에 예수님이 당신의 피를 가지고 나아가 뿌리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구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값이 갚아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시므로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만 화목제물로 세우셨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롬 3:25)은 믿음으로 받아들였을 때 하나님과 화목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엡2:8)
이 구원은 하나님이 감추어 놓으신 비밀입니다. 이 구원은 오직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통해서만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 구원의 놀라운 비밀은 하나님이 숨겨 두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 받는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속의 비밀을 깨닫게 하여 주심으로써 우리 마음에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사함 받는 순간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의 마음 속에 들어와서, 우리는 비로소 구원의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놀라운 구원의 비밀은 우리가 그냥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말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죄 사함을 받을 때 알 수 있습니다. 그 때 비로소 성령이 들어오셔서 우리의 마음에 구원을 인쳐 주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듭났다는 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1. 언약궤 위에는 시은좌로 덮었습니다.
언약궤의 뚜껑입니다. 은혜를 베푸는 곳이요, 속죄소이고 피를 붓는 곳입니다.
주님이 대신 죽으시고 우리를 살리시는 곳이 이 시은좌의 의미입니다.
법궤를 덮고 있는 두껑인 시은좌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표하는 인간인 대제사장과 만나는 장소입니다.
법궤 위에는 속죄소가 있습니다. 양옆에는 두 그룹이 날개를 펴서 속죄소에 대고 있습니다.
그룹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2. 대제사장 옷에는 방울이 달렸습니다.
성경을 보면 대제사장과 제사장이 입은 옷이 달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제사장 아론의 경우에는 관에 황금으로 된 띠를 둘렀고, 몸에는 천연색 실(적,청,자,백, 또는 금색)로 짠 에봇을 입었으며, 그 안에는 청색으로 된 받침옷을 입었습니다.
가슴과 어깨에는 찬란한 보석들로 이루어진 흉패와 견대를 달고 있었습니다.
제사장 격인 아론의 아들들은 이러한 색이 있는 옷을 입지 않고, 흰 세마포 속옷과 띠와 관을 만들어서 입었습니다.
문의하신 방울은 에봇 받침으로 입는 청색 옷 밑부분을 돌아가면서 달았습니다.
대제사장은 반드시 에봇을 입기 전에 먼저 방울이 달린 청색 받침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일반 제사장들이 입은 흰 세마포 옷에 이러한 방울이 달렸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3. 청색 받침 옷과 금방울(또는 석류)의 의미에 대해서
성경에서 청색은 주로 신성과 생명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맑은 파란색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생각나게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대제사장이 입은 청색 받침옷은 대제사장들이 거루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을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보면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옷 가에는 금방울과 석류를 번갈아가면서 매달았습니다. 금방울 사이마다 매달린 석류는 금방울끼리 부딪혀서 불협화음을 내는 것을 막아주었습니다.
성경에서(욜 1:12) 석류는 주로 화평을 상징합니다. (사과-사랑(아2장), 포도-기쁨 (요15장).
팔레스타인에서 석류는 평화로움, 안식, 풍요(아 6:11-12, 7:12)를 상징하는 과일입니다. 석류는 생산성(민 13:23 이하에서는 석류가 땅의 비옥함을 나타냄)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석류와 금방울은 화평과 평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금방울과 석류가 달린 옷을 입고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일을 할 때에 이 방울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이 소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과의 관계가 온전하며,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 화평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 방울 소리는 대제사장이 지성소 안에서 무사히 맡은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이 잘못 했을 경우에 그는 죽임을 당했으며, 이 경우에는 방울 소리가 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성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이를 알고 끈을 잡아 당겨서 시체를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금방울은 화평의 복음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모든 성도들을 가리켜서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신약 시대의 모든 성도들이 평화의 복음을 울려 퍼지게 해야 할 장본인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4. 평상시에 대제사장(또는 제사장들)은 주로 성소에서 일을 했습니다.
저녁부터 아침까지 등대에 불을 켜고 관리했으며, 아침이 되면 분향단에 향을 피우고 저녁이 되면 그 향을 정리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이스라엘의 12 지파를 대신해서 12개의 떡을 떡상에 진열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일 외에도 성소를 청소하고 관리하는 일 등 사소한 일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거룩한 일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속죄 일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항상 정해진 예복을 입고 성소에 들어가서 맡겨진 일을 담당해야 했습니다.
성소에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쫓지 않고, 임의로 행동을 하거나 불순종 할 때에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론의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가 분향단에 향을 피울 때에 실수를 해서 죽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분향단에 향을 피울 때에 번제단에 있는 불을 향로에 담아서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그 일을 귀찮게 여기고 다른 불을 사용해서 향을 피웠습니다.
그때에 여호와 앞(지성소의 속죄소에서) 불이 나와서 옷을 입은 채로 그들을 태워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아론은 대제사장의 직무를 시작한 지 하루 만에 두 아들을 잃는 참사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아론은 이 일로 인해 충격과 두려움에 빠졌을 것이며, 그 이후로는 매우 조심해서 성소를 돌아보는 일을 담당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대제사장은 대속죄일 뿐만 아니라, 매일 매일 성소를 돌아보고, 제사를 인도하는 일을 할 때에 정해진 예복을 입고, 정해진 규례에 따라야 했습니다.
5. 시은소, 시은좌 라는 말은 은혜를 베푸는 곳이란 뜻입니다.
이 언약궤 위를 속죄소(시은소)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는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은 1년에 한번 즉 대속죄일에 희생제물의 피를 이 시은소 위에 일곱번 뿌렸습니다.
언약궤 안에 있는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은 인간이 마땅히 행할 의무를 기록했는데, 이 돌판은 이 계명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의 죄를 증거했기 때문에 증거판이라고 불렀습니다.
피가 뿌려진 시은소의 언약궤 뚜껑이 사람들의 죄를 가리워 주었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한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를 회복한 후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영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모두 다 시은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속죄소는 하나님의 보좌요, 언약백성들과의 만남과 교제의 장소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하나님께 대한 오해를 하고 있는 중에 가장 큰 오해는 하나님은 법대로 하시고 계심을 알지 못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니 마음대로 모든 일을 처리하시는 듯 오해하고 있으나, 실은 하나님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대로 모든 일을 실행하고 계십니다.
왜 하나님은 마귀를 직접 지옥에 안 보내시고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예수로 마귀를 이기게 하시는 이런 복잡한 일을 하였을까도 역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법대로 하시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죄를 용서하여 주고 싶어도 피가 없이는 용서를 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법임으로,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양의 피로,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예수의 피로 인하여 그 피를 믿는 사람만이 죄 용서를 받게 됩니다.
벳세메스 사람 50.070인이 죽은 것은 피 없이 보여지는 죄인이니 하나님의 법과 성품 때문에 그들이 죽은 것입니다.
웃사가 아무리 선한 마음으로 법궤를 붙들었어도 하나님의 법에 위반되는 일, 피 없이 법궤를 가까이 하였으니 죽게 된 것입니다.
제사장이 피를 시은소에 뿌리고 부을 때에 인간의 죄가 도말 되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눈에 가려져, 죄 대신 피를 보고 허물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예수의 피로 인하여서 그 피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죄를 가리 우는 것이 아니고, 지워 버리고, 잊어버리고, 기억도 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졌는데, 단번에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피로서, 죽음으로서 모든 죄값이 지불되었는데 단번에, 일시불로 지불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화목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의 모든 죄값이 갚아졌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었다”(요19:30)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소에서가 아니라 참 장막인 하늘나라의 성소에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당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성막의 속죄소 앞에 예수님이 당신의 피를 가지고 나아가 뿌리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구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값이 갚아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시므로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만 화목제물로 세우셨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롬 3:25)은 믿음으로 받아들였을 때 하나님과 화목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사장이 피를 시은소에 뿌리고 부을 때에 인간의 죄가 도말 되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눈에 가려져, 죄
대신 피를 보고 허물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예수의 피로 인하여서 그 피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죄를 가리 우는 것이 아니고 지워 버리고 잊어버리고 기억도 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후에 성막과 성소를 대체한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언약궤를 두었던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것도 일년에 한번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날이 대속죄일입니다.
그날 대제사장은 희생 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그 피를 언약궤 위에 일곱번 (세차게) 뿌립니다.
그 피로 “이스라엘” 을 대속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속 합니다.
대속죄일에 일곱번 뿌려지는 피를 보면서, 대속하시고자 상처 받으신 예수님의 몸을 생각합니다.
등에 채찍을 맞으시면서 터진 상처로부터 피가 흐릅니다?한군데.
머리에 가시 면류관이 씌워지면서 터진 상처로부터 피가 흐릅니다?한군데.
양손에 못이 박히면서 터진 상처로부터 피가 흐릅니다?두군데.
양발에 못이 박히면서 터진 상처로부터 피가 흐릅니다?두군데.
옆구리에 창이 꽂히면서 터진 상처로부터 피가 흐릅니다?한군데.
그렇게 일곱 군데에서 터진 상처로부터 피가 흐릅니다.
대속죄일에 일곱번 뿌려지는 피를 보면서
예수님의 몸 일곱 군데에서 터진 상처로부터 흐르는 피를 봅니다.
그 피로 나를, 하나님의 백성을 구속 하셨습니다.
그 피로 저희를 구속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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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셀 양
요한복음 1장 29절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 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레위기 16장 6절 - 22절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오늘 이 말씀을 그대로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죄와 저주와 사망에서 구속을 받고, 완전한 자유와 해방을 누리는 사람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도 일년이 한 번씩, 솔로몬의 성전을 지은 후에도 속죄하는 죄를 씻는 죄 사함을 받는 제사를 일년에 한번씩 크게 행하는 제사가 있습니다.
이 제사는 大贖罪日의 제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6장 34절 “이는 너희의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위하여 일년 일차 속죄할 것이니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일 년 동안 지었던 모든 죄를 1년에 한차례씩 대 속죄일에 모든 백성은 주의 성전에 모여서 통회하며 울며 죄를 자복하며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레위가 16장 29절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칠월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리하라”
7월 11일에 일 년에 한 차례씩 이 대 속죄일을 지키면서 자기의 지은 일 년 동안의 모든 죄를 사함을 받는 날입니다.
7월은 지금의 달력으로는 10월입니다.
이 절기를 나팔절이라고도 말하고, 통곡절이라고도 말하고, 대 속죄절이라고도 말합니다.
대 속죄일 10일전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 앞으로 모여서 금식하며 애통하며 회개를 합니다.
제사장들이 가끔 나팔을 불 때마다 일제히 무릎을 꿇고, 가슴을 치면서 통곡을 하며 일 년 동안 지은 죄를 생각하며, 이 죄를 고하며 회개를 합니다.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기 때문에 나팔절 이라고도 말하고, 통곡하며 회개하기 때문에 통곡절이라고도 말합니다.
이때 대제사장은 속죄일 1 주일 전에 성전에 특별히 대제사장을 위하여 지은 특별한 숙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정하신 법대로 몸을 정결케 하며 7일을 보내며 속죄일을 기다립니다.
이제 7일이 되고, 대 속죄일이 되면, 수염소 두 마리를 취하여 제비를 뽑아서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제물로
드리고, 한 마리는 아사셀(광야의 마신. 사단의 다른 별명)에게 보낼 염소로 삼습니다.
예수님은 이 두 마리의 양이 할 일을, 화목제물과 속죄양이 되는 일을 동시에 십자가의 고난 가운데 모두 다 함께 행하시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제비뽑은 수염소를 죽여서, 피를 받아서 그 피를 가지고 1년에 1차, 대 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에 대제사장이 들어갑니다.
지성소에는 일 년에 한번밖에 들어 갈 수 없고, 들어 갈 때에는 향연을 많이 피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향연이
찼을 때에 대 제사장이 양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아무나 들어가거나 일년에 두 번 들어가거나, 어린양의 피를 안 갖고 들어가거나, 들어가서 함부로 법궤를 들여다보거나 손을 대거나 하면 웃사와 같이 즉사하게 됩니다.
대제사장의 옷에는 방울이 달려 있어 방울 소리가 울리면 데 제사장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또 대제사장은
끈을 매고 들어갑니다.
만일 대제사장이 잘못하여 하나님의 벌을 받아 죽으면 시체를 가지러 들어 갈 수가 없음으로, 끈을 잡아 당겨 끌어내기 위한 것입니다.
아무리 대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지성소에 들어 갈 때에는 죽음을 각오하고, 양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의 정하신 법을 그대로 지키며 자기를 위하여 먼저 번제단에서 속죄한 후에, 하나님이 임재하신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법궤에는 모세의 십계명이 적힌 돌비와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와 만나가 들어 있습니다.
법궤에 들어 있는 십계명의 의미는 우리는 이 계명, 말씀대로 살지 못한 죄인이라는 것, 하나님의 양심의 법이 있는데, 우리의 양심은 물론 이 하나님의 양심의 법을 지키지 못한 죄, 인간의 속성이 이 법궤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즉 죄의 기준이 되는 것이 있는데,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 죄를 심판하는 하나님의 법이 있는 것입니다.
그 법으로 우리를 다 정죄하여 멸망시킬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공의가 있는 것입니다.
지성소에 들어 갈 때에는 반드시 피를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들어가기 전에는 향단에서 향을 가득히 피워야 합니다.
레위기 16장 12절 - 13절 “향로를 취하여 여호와 앞 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두 손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채워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우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음을 면할 것이며”
향단에 향을 가득 많이 피워 연기가 가득하여 법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기로 가려지게 한 후에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이 지성소에 들어가서는 하나님의 정하신 법대로 염소의 피를 시은좌, 법궤 뚜껑에다 피를 뿌리고, 귀퉁이 턱에 물을 붙게 되어 있는 곳에 피를 붓고서,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은좌는 은혜를 베푸는 보좌라는 말로, 어찌하여 이 시은좌에 피를 뿌리고 붙는가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보시지 않고, 그 안에 있는 율법의 계명을 보시기 전에, 먼저 보이는 피를 보시겠다는 언약의 뜻이 있습니다.
그 계명의 율법을 보면 우리는 다 멸망 받아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시은좌에 뿌려지고 부어진 피가 율법의
계명을 덮고 있음으로, 하나님은 그 피를 보시고, 돌비에 새겨진 계명을 보시지 않고, 속죄의 피를 보심으로, 이 피가 죄를 가림으로 내 백성의 죄가 사하여 졌다는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 백성의 죄가 사하여 졌노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법궤 속에서부터 들려지게 됩니다.
대 제사장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고 나 올 때까지, 속죄일 10일 전부터 모여서 나팔을 불며 통곡하며 회개 하다가
지성소에서 “내 백성의 죄가 사하여 졌노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온 대제사장이 “내 백성아 네 죄가 사하여 졌노라”는 선언을 하면, 지금까지 통곡을 하던 사람들이 할렐루야를 부르며, 찬송하며, 기뻐 뛰며 춤추며 노래하며 속죄제의 축제가 시작됩니다. 죄 사함을 받은 기쁨의 축제가 시작됩니다.
대속죄제의 처음 양인 화목제의 양으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양인 아사셀을 위한 양에 대한 행사가 있습니다.
대 제사장은 아사셀을 위하여 살려 둔 양을 끌어다가 머리에다가 두 손을 얹고서 안수를 합니다.
레위기 16장 21절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여 염소가 그 불의와 죄를 넘겨받아, 지고, 아사셀에게
보내어 집니다.
이 아사셀 양은 이스라엘의 모든 불의와 죄를 지고 광야로 보내져서 들짐승이 염소를 잡아먹을 때에, 그 들 짐승이 이스라엘의 모든 불의와 죄까지 먹어 버리게 됨으로 불의와 죄가 마귀에게 다시 돌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대 속죄 법을 생각하며 신약에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생각하여 보아야 하겠습니다.
1. 우리가 속죄함을 받으려면 성전으로 먼저 모여야 합니다.
성전에 모인다는 것은 주님 앞에 먼저 나아오는 것입니다.
속죄일 10일 전에 성전 뜰에 모여서 자기의 죄를 원통히 여기고, 사함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 성전에 모이는 사람들은 나팔절을 지키는 순종의 사람들입니다.
주님 앞에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만이 예수를 믿을 수 있으며 주께로부터 고침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기와 만난자에게만 능력과 은혜를 베풀어주시었습니다.
죽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나사로도, 야이로의 딸도 살리셨고, 38년 된 병자도, 문둥이와 소경, 중풍병자, 수로보니게 여인, 마르다, 수가성 여인, 세리도 주님을 만난 사람들만이 고침을 받고, 살아남의 은혜와 능력을 받았습니다.
주님이 계신 성전에, 주의 몸 된 성전에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를 만나려면 성전에 나오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를 외면하고, 죄 사함을 받겠다는 사람은 죄를 한 가지를 더 추가하는 것입니다.
대 속죄의 규례는 영원히 너희가 지킬 규례라고 하였습니다.
대속죄일 10일 전부터 죄 사함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성전 뜰에 나아 와서 통회를 합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기 위하여 예수를 믿으려면, 먼저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나와서, 죄를 통회하며, 주님의 보혈의 피를 의지하여야 우리의 속죄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2. 속죄함을 받으려면 회개를 하여야 합니다.
10일 전에 자기 몸을 괴롭게 하며, 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통곡하며 회개의 기도를 올리고, 성전 뜰 앞에서 모인 이스라엘 백성 같이 우리도 회개를 하여야 합니다.
대제사장도 7일을 깨끗게 하며 자기를 위하여 다른 속죄제를 드렸듯이, 우리도 이 속죄의 피를 참례하기 전에 먼저 회개의 기도가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목사가 적어도 7일전에 다음 주일에 성찬식이 있다고 공고를 하는 것은 7일 이전부터 회개를 하며 주님의 피를 대하기 위하여 주의 십자가 보혈을 생각하며 속죄함을 얻는 제사에 참례하기 위하여 광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찬을 대 할 때에 함부로 대하지 말고, 이 시간 성찬을 떼면서 자기의 용서받을 죄를 고백하며,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대하여야 합니다. 통회하는 회개함이 있어야 합니다.
대 제사장의 음성, 내 백성의 죄가 사하여졌노라 는 음성이 들릴 때까지 회개를 열심히 하여야 합니다.
3. 피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습니다. 왜 우리가 주의 성찬을 먹고 마십니까?
우리의 몸은 주님의 성전입니다. 몸 된 성전에 이제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내 더러워진 육신 속에 부음으로 성결케
받는 예식입니다.
마태복음 26장 28절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수양의 피가 아닌 언약의 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습니다.
피가 없는 제사는 하나님의 성소에는 없는 것입니다.
내 육신도 주의 성전인데, 오늘 이 주의 피를 마심으로 피의 제사로 내 생활 중에 잘못된 죄를 다 사함 받는, 가리움을 받는 성전 된 몸이 되는 것입니다.
4. 모든 죄를 주께 담당 시켜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아사셀 양에게 나의 모든 불의와 죄를 모두 전가 시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죄를 고하여, 주님이 내 죄를 모두 지시고 담당하시는 아사셀 양임을 알고, 우리는 구체적으로 나의 불의와 죄를 주님께 말하여 전가시켜야 합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8장 17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우리의 모든 수고와 죄와 질병과 연약함을 주님께 고하여 아사셀 양이 되신 예수님께 모두 전가시키고, 나는 자유와 해방을 누리며 기쁨 속에, 감사 속에 살아야 합니다.
아사셀 양이 되신 어린양에게 전가 안 시키고, 내가 그대로 짊어지고 있으니 문제가 항상 있고 죄책감과 저주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지고 오라고 하였으니 안 가지고 자가가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역시 불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죄악, 질병, 허물, 간고, 멸시 등 모든 수고와 무거운 짐과 연약한 것을 가지고 오라 하였으니, 우리는 나의 이러한 것들을 주님께 갖고 가서 아사셀 양이 되신 주님께 전가시키고 나는 해방되어야 합니다.
5. 마귀에게, 아사셀에게 모든 죄를 반납하여야 합니다.
레위기 16장 21절 - 22절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불의와 죄를 지고, 아사셀 양에게 죄를 고한 사람의 모든 불의와 죄를 지고 광야 멀리
무인지경에 가셔서 버림을 당하였습니다.
무서운 사나운 짐승들이 있는 광야에 버림을 당하는 어린양은 무서워서 외쳐 울게 됩니다.
주인님 어찌 나를 이 들짐승이 우글거리는 무서운 광야에 버리고 가십니까? 나는 이제 들짐승에게 잡혀 죽게 됩니다. 하고 울부짖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세상 죄를 지고 광야에 버림을 당할 때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며 십자가상에서 외친 것은 바로 이 아사셀 양으로 세상의 불의와 죄를 지고 버림을 당하시는 때이요, 마귀에게
모든 불의와 죄를 돌리는 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이와 같이 부르짖었지만 아사셀 양이 되어 세상 죄를 지고 모든 불의와 죄와 저주를 짊어지신
아사셀 양이기에 돌이킬 수 없는 십자가의 죽음, 아사셀 양이 짐승에게 잡혀 먹는 일이 되었을 때에,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 하시며 운명하시며 이 세상에 오신 모든 사명을 마치셨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의와 죄악은 마귀에게 돌려 졌습니다.
마귀는 이제 이 죗값으로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 죄를 마귀가 갖고 지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11절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하나님은 사람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을 책임지시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으로 다 알고 계시지만, 그 책임을 마귀에게 돌리게 하시려고 “누가” 선악과를 먹게
하였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마귀가 꾀임으로 먹었다는 대답이 나오게끔 유도하는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게 한 죄를 마귀가 지게하고, 마귀를 먼저 저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다음에 예수를 보내어 구원을 약속하시고, 구원이 이루어 질 때까지 인간의 수고가 있을 것을 말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에 내가 죄를 지었다고, 책임을 내가 지지 말고, 우리는 마귀로 인하여 죄를 지었다고 마귀에게 책임을 돌려야 합니다.
먼저 마귀가 나를 죄를 짓게 한다고 하나님께 고하고, 내 죄를 주님이 담당하여 달라고 기도하고, 죄를 마귀에게 돌려보내어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6. 아사셀 양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아사셀 양을 무인지경에 가서 완전히 버리고 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다시 끌고 오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소 도둑이 되었습니다. 변명하기를 내가 줄이 길바닥에 있어서 줄을 끌고 왔더니, 그 줄에 소가 매여 있는 줄을 몰랐었다고 변명하였다는 사람이 있듯, 아사셀 양을 버리지 못하고 줄을 다시 끌고 옴으로, 다시 죄와 저주를 불러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한 1서 1장 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죄를 회개하고도 죄를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다시 끌고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죄를 중복하여 짓는 사람들이 이러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회개를 하였으면 완전히 버리고 잊어 버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사셀 양은 1년에 한 번씩 보냅니다. 우리가 1년 전에 한 것을 또 회개하고 회개하는 중복 회개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죄를 사하여 주셨으면 기억도 안하시는데, 내가 기억하고 아사셀 양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역시 하나님 앞에 잘못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이 죄를 지을 줄을 모르고 택하고 부르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녀를 삼을 때에 다 아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하나님이 자녀를 삼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항상 죄책감에 사로 잡혀 살수는 없는 것입니다.
죄를 지어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하나님의 법을 적용 받는 믿는 자의 적용이 있음으로 우리를 자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아사셀 양을 완전히 버리고 와야 합니다. 죄에 미련을 두지 말고 완전히 죄를 끊어 버리고 한번 회개한 죄는 다시 죄책감에 잡혀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법에 따라 의롭게 죄 사함을 받은 자로 감사와 기쁨과 찬송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7. 기뻐하고 즐거워하여야 합니다.
죄 사함을 받은 후에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춤을 추며 축제를 벌여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 모든 죄 짐을 맡기고, 홀가분하고 시원한 마음으로 즐겁게 감사 찬송을 하며, 주 앞에서 즐거워하여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뜻이지, 쉬지 말고 회개하라고 하신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자로 하나님의 설계대로 내가 살 때에 기쁨과 평안과 즐거움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 할 때에, 우리에게 기쁨이 오고, 건강이 오고 즐거움과 감사가
오는 것 입니다.
이를 떠나서는 일시적인 기쁨은 있을 수는 있으나 영원한 기쁨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이 설계한 설계대로 살아 갈 때에, 내가 순종하며 살아 갈 때에, 인생의 참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정리:
우리는 이 성찬을 떼기 전에 먼저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 아사셀 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깊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 모든 죄와 수고와 불의를 다 담당하신 화목제물의 양도되시고 아사셀 양도되십니다.
우리는 이 아사셀 양되신 예수님께 오늘 나의 죄와 불의와 수고와 질병과 모든 저주를 다 담당시키고, 나는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 속에서 기쁨과 감사와 용서의 기쁨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두 마리의 염소가 하시는 일을 십자가로 다 한 번에 이루시었습니다.
우리의 과거의 모든 죄를 마귀에게 돌려버리고, 우리는 자유로운 새로운 의인으로, 의롭게,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아사셀 양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며, 기쁨의 삶을, 축복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막의 정점은 예수님이 내 죄를 담당하시어 십자가에 피를 흘리시며 죽으신 일과 아사셀 양이 되어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를 담당 하신 후 마귀에게 돌리고, 우리는 용서 받은 의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 감사하시고,
친히 고난을 당하시면서 피를 흘리어 죽으신 어린양 예수님께 감사 드리고,
내 몸에 성전 삼고 와서 계신 성령님께도 감사를 드리면서 이 성막 공부를 마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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