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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설교를 예술로 승화시킨 워렌 W. 위어스비Ⅰ 탁월한 설교자

하나님아들 2013. 9. 14. 15:33

설교를 예술로 승화시킨 워렌 W. 위어스비Ⅰ
영혼을 살린 설교자 11
2008년 10월 17일 (금) 00:00:00 권영삼 032kwon@naver.com

신학교 시절, 어느 외부강사 목사님이 채플에서 설교를 했다. 그 목사님은 창세기 3:15절을 본문으로 설교했는데, 모든 신학생들이 그 설교에 심취되었다. 신학생들만 사용하는 속어로 소위 ‘홈런’을 친 것이다. 예배당을 빠져 나오면서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우리도 저렇게 설교하면 성도 중에 잠자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겠다”는 말을 한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목사님은 청중들에게 상상이 담긴 설교를 했다.

존귀하신 하나님 말씀을 전달하는데, 성도가 왜 잠을 잘까? 본문과 제목만 읽어도, 미리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설교를 하기 때문은 아닐까? 또는 차갑고 기계적인 설교를 하기 때문은 아닐까?

 

 

무어신학교(Moore Theological College)에서 구약과 해석학을 가르치는 그레이엄 골즈워디(Graeme Goldsworthy) 박사는 “뻔한 설교는 설교자의 명백한 잘못”이라고 말한다(『성경신학적 설교 어떻게 할 것인갱, p.15). 이런 설교가 한국교회의 강단을 지배하고 있는 한 성도들을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고민이 없는 설교, 깊은 묵상이 없는 설교, 청중들의 마음을 정확히 읽지 못하는 설교, 시간 때우기 식의 설교가 성도들을 잠들게 한다. 워렌 W. 위어스비(Warren W. Wiersbe)는 마치 이러한 설교는 “강단에 해골을 갖다 세우고 좌석엔 송장으로 가득 차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한다(Preaching & Teaching with Imagination, p.60).

 

 

위어스비는 설교자가 본문을 중심으로 회중과 함께 설교의 세계에 빠져 설교의 그림을 그려가는 설교자다. 동시에 이미지(Image) 설교자이기도 하다. 20세기 복음주의의 거장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목사는 “위어스비 목사야말로 우리 시대 지상 최고의 강해설교자”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워렌 W. 위어스비, 그는 누구인가


위어스비 목사는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북인디애나 산업지구에서 성장했다. 그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인도한 YFC(A Youth For Christ) 집회에 참여해 그리스도께 헌신했다. 위어스비는 인디애나 대학교를 나와 북침례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루즈벨트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그 후에 YFC(A Youth For Christ)에서 활동했다.

 

그는 1971년부터 1978년까지 약 7년간 시카고 무디기념교회(Moody Church)에서 담임목사로 목회사역을 했다. 그 후 켄터키 주 코빙턴 시의 갈보리침례교회(Calvary Baptist Church)의 목사로 2번에 걸친 목회사역을 하였다. 또한 1986년에 트리니티 신학교에서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원과 그랜드래피즈 침례신학대학원(Grand Rapids Baptist Seminary)의 설교학 교수로 재직했다.

 

1989년까지 ‘성경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ible)는 운동의 총무 및 동일한 제목으로 진행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인기 있는 설교자로 활약했다. 현재는 코너스톤 대학(Cornerstone College)에서 은퇴하고 왕성한 집필 활동을 있다.

 

위어스비는 저명한 성경연구가이며 신학자요, 저술가로서 정평이 나있다. 그는 복음주의자로서 그 어떤 목회자와 신학자보다도 많은 책을 썼으며, 강해설교집이 수십 권에 이른다. 한국어로 번역된 책 가운데『만족하여라』,『순종하여라』,『인내하여라』,『헌신하여라』,『대기하여라』,『견고하여라』등이 있다. 위어스비의 대표적인 저서『상상이 담긴 설교』(Preaching & Teaching with Imagination)는 모든 설교자들에게 고전이 된 책이다. 그 밖에도 Be Myself와 Wiersbe’s Expository Outlines on the Old and New Testaments 등을 들 수 있다.

 

 

위어스비의 멘토들


위어스비가 위대한 강해설교자가 되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영향을 받았다. 특별히 그는 동시대 인물보다 역사 속에서 족적을 남긴 설교 위인들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첫째 인물은 캠벨 몰간(Campbell Morgan)이다. 위어스비는 캠벨 몰간의 설교와 책들을 통해서 커다란 용기를 얻었다. 둘째는 그의 후계자 존 헨리 조웨트(John Henry Jowett)였다.

 

그리고 셋째는 ‘강해설교의 황태자’라고 불린 찰스 스펄전(Charles H. Spurgeon)이다. 위어스비는 스펄전의 설교집을 틈틈이 읽을 정도로 그의 책을 좋아했다. 한 예로, 주일예배 후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가 식사준비를 할 때 시간을 내어 그의 책을 탐독했다.

 

넷째는 스코틀랜드의 설교가 조지 모리슨(George Morrison)이다. 조지 모리슨은 글래스고 장로교의 목회자였는데, 위어스비가 그의 책을 좋아한 이유는 모리스의 설교가 시적인 은사가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위어스비는 “설교의 목적은 주제 설명에 있지 않고 목적 성취에 있다”고 말한 해리 에머슨(Harry Emerson)의 설교관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분석적이던 그의 설교는 상상력을 사용함으로 설교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역사 속에서 그 어떤 설교가도 스스로 훈련받지 못했듯이, 위어스비 또한 위대한 설교가들로부터 간접적으로 설교 지도를 받았다.

 

 

복음 중심의 교리적 설교관


모든 설교자들은 복음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이 잃어버린 양을 찾아 세상에 오신 것처럼, 이 시대의 모든 설교자들은 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와 같고 잃어버린 동전을 찾는 한 여인과 같이 모든 설교자들은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한다.

 

왜 그리스도를 설교해야 하는가? 모든 성경은 바로 그리스도를 내포하고 그리스도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요한은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고 했다. 바울도 그의 설교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했다(롬 6:2, 5).

 

위어스비는 모든 설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를 전하는 복음주의적 설교는, 설교의 의도와 목적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하여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사역과 구원에 관한 것이다. 설교 본문을 인위적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식의 설교가 아니다.

 

위어스비는 또한 강해설교는 교리적 설교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상황마다 성경 한 절 또는 심지어 한 장으로 교리 설교를 시도한다.

 

우리 시대에 위어스비가 시도한 교리 설교는 중요한 도전이다. 왜인가? 교리는 신앙의 뼈대를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신앙의 뼈대가 튼튼하지 못하다. 쉽게 흔들리고, 이단의 유혹에 너무도 쉽게 빠진다. 이런 면에서 교리는 신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주춧돌이다.

 

위어스비는 장례식이나 기념식 메시지 아이디어를 적은 특별한 공책을 지니고 다녔다(The Dynamics of Preaching, p.134). 이와 함께 평소에는 성경 구절과 개요를 적어 다니면서 늘 묵상했다. 청중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한 관찰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설교를 예배로 생각하면서, 설교자로서의 영적 준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토요일 저녁 시간만큼은 결코 방해받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는 “한 주간 동안 설교를 준비한 뒤, 토요일 저녁에는 나 자신을 준비했다. 토요일 저녁이 되면 내 작은 서재에 들어가서 준비한 메시지를 한 주간 동안 이루어진 목회사역에 비추어 다시 곰곰이 생각하며 더욱 완벽하게 가다듬었다”라고 고백했다(『참된 예배를 회복하라』, p.183). 더불어 토요일 저녁에 설교를 만들어내는 설교자는 자기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이라고 질책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설교의 홍수’ 시대다. 여기저기서 설교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설교집과 케이블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에서 하루 24시간 동안 언제든지 설교를 들을 수 있다. 이렇게 밀려드는 설교 속에서, 청중의 귀를 열기 위해 설교자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노력 중, 자기 고유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설교자에게 절실하다.

 

위대한 설교자는 예외 없이 자기만의 색깔이 있다. 교리에 탁월한 설교자가 있었는가 하면, 예화에 탁월한 설교자도 있었다. 위어스비는 “가장 효과적인 설교는 설교자 자신을 알고, 자기 스스로를 인정해야 하며, 또 설교자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신을 최고로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함”을 역설했다(“당신만의 독특한 설교를 하라”『그말씀』(1996. 7) p.160).

 

 

‘특별한 날’ 설교를 강조하는 특별한 설교자


워렌 위어스비는 설교자들이 설교하는 동안에는 시계를 쳐다보아야 하지만, 평소에는 달력을 쳐다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왜 그런가? 설교자들이 교회력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교회력에 맞춘 설교의 중요성과 함께, 달력에 표시된 ‘특별한 날’의 설교의 중요성을 말한다(The Dynamics of Preaching, p.134).

 

그런데 위어스비가 처음부터 교회력에 따른 절기 설교를 강조한 것은 아니다. 그의 설교 패턴은 목회하면서 점차 바뀌게 되었다. 그의 첫 설교지 갈보리 침례교회에서 설교할 때는 성경 한 권을 연속적으로 강해했다. 그러나 시카고 무디교회에 부임하면서, 이런 설교에 청중들의 집중력이 그리 길지 않음을 보았다. 이에 따라, 그는 교회력에 따른 설교를 시행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어린이 날, 어버이 날, 노동절, 감사주일, 독립기념일, 인권 기념의 날, 경찰의 날, 재향 군인의 날 등 절기와 특정한 날에 맞춰 설교했다. 그리고 이 설교를 통해 전도효과가 배가된 것을 체험했다. 위어스비는 교회력과 달력에 의한 ‘특별한 날’ 설교가 더 좋은 강해설교자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보았다.

위어스비의 이러한 설교 특징은, 오늘날 한국교회 강단에도 도움이 될 만하다. 사실, 21세기 한국교회 강단에서 절기설교가 많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다 보면, 달력에 비친 절기의 의미를 모른 채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이 많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성경에 나타난 절기의 정확한 의미를 설교를 통해 제시된다면, 그 은혜가 더하지 않을까?

 

 

상상력을 최대로 활용한 설교자


설교자 위어스비의 가장 큰 특징은 뭐라고 해도 ‘상상력을 통한 설교’다. 그는 본문을 현재의 환경에서 바라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 본문이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말씀하시려는 이미지를 확인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그는 항상 ‘본문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물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본문이 시인가? 격언인가? 기사인가? 이야기인가? 아니면 비유인가? 어째서 성경저자는 이런 유형의 문학을 사용했는가?’라는 문법적인 의미를 물었다.

위어스비의 이런 준비는 상상력으로 설교할 때 설교자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이미지를 사용해 설교할 때도, 성경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 않고 드라마처럼 각색하는 것을 거부했다(“상상력과 복음주의적 설교”,『그말씀」, p.98).

그가 상상력을 동반한 설교를 강조한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 내용은 그림이 가득하고, 문학적으로 쓰였기 때문이란다. 그는 상상력을 설교자가 가져야 하는 이유로, 주님은 상상력이 풍부한 접근방법을 사용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위어스비는 상상력 설교와 그렇지 않은 설교를 비교함으로써 상상력을 동반한 설교가 청중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가를 설명한다(Preaching & Teaching with Imagination, p.57).

그의 지적처럼 설교의 맛을 느끼며,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설교 패턴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위어스비는 “이미지를 써서 원래 이미지를 손상하거나 바꾸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이지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설교자나 청중들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거부했다.

 

 

 

간결하고 명제가 분명한 설교


수많은 이들이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설교가 본문과 전혀 관계없는 설교를 함으로써 회중들에게 혼란을 줄 때가 많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설교자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는 자기고백도 있다. 설교의 목표가 없고 장황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목설교라지만, 주제와 전혀 관계없는 설교를 함으로써 설교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설교는 연설이 아니다. ‘분명한 명제’가 없는 설교는 많은 말을 하지만, 산만한 종교적 연설이 되고 만다(The Dynamics of Preaching, p.134). 설교는 회중들에게 하는 것이며, 설교를 통해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말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듣는 사람들이 설교를 파악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설교자에게 중요한 것은 설교의 ‘간결성’이라 할 수 있다. 위어스비는 간결한 설교를 강조한다. 간결한 설교는 청중들을 집중시킬 수 있으며, 설교의 세계에 빠지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간결하지 못한 설교는 회중들의 영적인 생명을 빼앗는 행위일 수 있다. 핵심을 짚지 못한 장황한 설교는 설교자가 본문에 땀을 흘리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다양성과 균형 있는 설교


설교의 다양성은 청중들로 하여금 신선함을 갖게 한다. 설교의 다양성이란 주제와 내용, 형식의 다양성을 말한다. 특정 주제를 지나치게 반복하면 청중들은 쉽게 그 결과를 예측하게 된다. 청중들이 균형 잡힌 설교를 제공받게 되면 건강한 영혼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위어스비는 “성경적인 강해설교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균형 잡힌 식사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위어스비가 권면하는 설교 원리』, p.46).

그는 설교를 진행하면서, 한 가지 주제를 말할지라도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은 형식을 취할 것을 권고한다.

 

▲ 평서문: “성령께서 신자를 도우십니다.”
▲ 명령문: “신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 의문문: “우리는 어떻게 성령 충만할 수 있을까요?”
▲ 권고문: “기도를 계속 하십시오!”
▲ 감탄문: “천국의 기쁨을 생각만이라도 해 보십시오!”
▲ 정의문: “믿음은 궤계 없이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위어스비는 메시지의 다양성을 강조하면서도 본문에서의 주제의 다양성도 강조했다(『예배하면서 살라』, p.4). 일반적으로, 청중들은 특정한 주제보다 생각지 못한 주제를 보게 되면, 마음을 열고 설교에 귀를 기울이며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 위어스비가 한결 같이 강조하는 사항이다. 워렌 위어스비는 이렇게 “설교자는 누구이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일깨워준 위대한 설교자다.

출처 : 무학교회 청년사역 셀 G12 제자훈련
글쓴이 : 이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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