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교회 - 존 맥아더
1) “세상을 닮아 가는 교회를 향한 경고”라고 부제가 붙은 존 맥아더의 저서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교회>(= 생명의 말씀사 )를 읽으면서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찰스 스펄전이 말했듯이 “우리는 복음주의자이다. 우리는 전적으로 복음주의자이다 하고 외치지만 복음주의가 뜻하는 바를 말하지 않는 것은 위선에 불과하다”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2)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롬 1:16)라고 말했지만, 불행히도 오늘의 교회는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교회와 신자들이 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3) 존 맥아더는 100년 전 19세기에 발생했던 일들과 오늘날의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 사이의 현저한 유사점을 분석하고 진리의 앞날을 고민하며 바른 신학, 바른 복음주의를 일깨우기 위해 현대 교회를 비판한다. 하지만 이 책은 원칙적인 문제를 다룬 교회를 향한 탄원이지 인물 비평이 아니라고 부연하고 있다. 저자는 “성경적인 신념을 명백하게 밝히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불길이 내 깊은 속에서 타오르고 있어서 침묵할 수가 없어서 이 책을 썼노라”고 밝히면서, 오늘날 이 시대의 교회는 세속주의, 자유주의, 실용주의 등 인본주의에 물들어 가고 있음을 지적한다.
4) 예수님은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하셨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예수님 위에서 교회 성장(= 교인들 숫자 불리기 )을 꿈꾸고, 방법들을 연구하고 마케팅 하는 교회가 되어 버리진 않았는지 우리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이다.
5) 저자는 성장을 위해서라면 진리 아닌 복음 아닌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추구하며, 복음은 변질되고 힘과 능력을 상실해 버렸고,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가운데 온갖 방법을 강구한다고 지적한다.
6) 이 시대의 교회는 순전한 기독교가 아니고 교회의 순수성을 잃어 버렸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리에, 마치 쇼를 방불케 하는 것들이 교회로 들어왔고 극장처럼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교회는 신자의 성숙과 거룩함을 위하여 말씀을 선포하고 설명하는 것이 교회 사역의 핵심이어야 하는데도 잘못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7) 오늘날의 교회가(= 큰 교회나 또 교회 성장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 수적 성장을 영적 성장보다 더 높이고 당장 효과를 낼 수 있는 기법이면 무엇이든 따름으로써 수적 성장을 유도할 수 있다고 믿는 교회 성장 전문가들이 종종 옹호하는 실용주의다. 그러나 수적 성장의 결과는 많든 적든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
8) 만일 우리가 우리 사역의 깊이에 관심을 갖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역의 넓이를 보살피실 것이다. 우리가 영적 성장을 목적으로 사역한다면 수적 성장은 하나님이 결정하실 일이 될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헌신하는 데 기초를 두지 않는 수적 성장은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9) 100여 년 전 찰스 스펄전이 당대의 교회를 향해 외쳤던 이야기들, 시류와 영합해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그것이 신앙의 내리막길이란 주장을 펼쳤었다. 논쟁 끝에 결국 침례교단에서 탈퇴하면서 그곳으로부터 처벌을 받았던 찰스 스펄전의 예언은 오늘날에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저자는 증명하고, 우리 시대의 교회들의 특성인 실용주의를 진단하고 분석하며 방향을 제시한다.
10) 저자는 실용주의가, 교회 성장 운동의 실용주의적 뿌리가 어디서부터 발현된 것이지 언급한다. 사역 철학으로서 실용주의는 지난 50여 년에 걸쳐 번영했던 교회 성장 운동으로부터 추진력을 얻었다고 한다. 현대 교회 성장 운동의 아버지 도널드 맥가브란은 실용주의자였다. 그는 교회성장연구소를 설립하고, 이 연구소는 1965년 풀러세계선교학교와 연합했고, 이때부터 교회 성장 운동의 실용주의적 교훈은 사실상 세계 도처의 선교 현장에 미쳤다는 것이다.
11) 수년 동안 세계 선교 활동의 요인이었던 교회 성장 운동은 복음주의의 뒤뜰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 나타난 실용주의는 우리 시대의 정신을 반영한다. 사역 마케팅, 교회 마케팅, 교회를 위하 효과적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전략 개발 등의 제목을 가진 책들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현대 목회자를 위한 역할 모델은 선지자나 목사가 아니라 법인체 경영 이사나 정치인 혹은 가장 나쁜 것은 토크쇼 사회자라고 말한다.
12) 토저는 “나는 오늘날 복음주의 진영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 일부 큰 부분이 실용주의의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실용주의에 거의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고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라고 했다. 실용적이면서 동시에 성경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실용주의는 지금 무엇이 효과적인지 알기 원한다. 성경적 사상가는 오직 성경이 명령하는 것에 관심을 쓴다. 두 철학은 가장 근본적인 데서 대립한다.'
13) 실용주의는 필연적으로 건건한 가르침을 침해하고 이것은 사역의 일차적인 수단인 예수님의 방법, 즉 설교나 가르침을 버리고 알맹이 없는 방법론을 채택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마케팅 기법과 교회 성장 이론을 결합하는 교회들은 세상의 가치들을 받아들였기에 이제 죽어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14) 세속적 태도와 방종한 태도가 교회의 심장을 먹어 치우고 있다. 오늘날 종종 선포되는 복음은 어찌나 뒤얽혀 있는지, 그리스도를 믿는 일을 만족과 번영에 이르는 수단으로밖에 제시하지 않는다고 탄식한다. 복음의 메시지를 불신자들로 하여금 받아들이기 쉽게 하려고 이용자들에게 친절한 교회가 되어 십자가의 거치게 하는 것(= 갈 5:11 )이 계획적으로 제거되었다.
15) 저자는 진리를 알고 사랑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선지자의 목소리가 되어 그 이름의 거룩함을 확언해야 한다. “거룩하다, 거룩하다(사 6:3)” 그러므로 하나님을 그렇게 드러내야 한다고 말한다. 시대가 다르다고 전하는 메시지가 바뀌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순전한 복음 말고 다른 것을 전파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사역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상실할 뿐이다.
16) 하나님의 복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완전한 것이지만 우리는 더 좋은 방법, 더 기발한 발상과 기법을 찾고 있진 않는가. 말씀과 기도, 예배보다 상담, 심리치유, 레크리에이션, 드라마 등 비본질적인 것을 더 중시하고 있진 않은가. 더 좋은 건물, 더 좋은 환경이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을 것이란 인본주의적인 사고에 물들어 있진 않은가. 우리는 세상을 닮아가고 있진 않은가. 진리보다 비본질적인 것에 더 치중하는 현 교회를 향한 일침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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