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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태복음 7:7-12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2012.11.25

하나님아들 2013. 7. 24. 11:40

 

1998년도 국내에 개봉되어 인기를 끌었던 외화 중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에는 멜빈 유달(잭 니콜슨 분)이라는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주인공은 강박증 증세를 가지고 있고, 게다가 완벽주의자의 모습을 보이는 로맨스 소설 작가입니다. 뒤틀리고 냉소적인 성격인 멜빈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경멸하며, 신랄하고 비열한 독설로 그들을 비꼬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강박증 역시 유별납니다. 길을 걸을 땐 보도 블록이 맞닿은 선을 밟지 않고 걸으려고 뒤뚱거리면서 걸어갑니다. 식당에 가면 언제나 항상 똑같은 테이블에 앉습니다. 누가 자신이 안자 있었던 테이블에 안장 있으면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자신만이 앉는 그 자리에 앉아서 식당에서 내어주는 포크와 나이프를 받지 않습니다. 집에서 가지고 온 자신만의 플라스틱 나이프와 포크로 식사를 한다. 완벽주의적인 모습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이런 까칠하고 모난 성격 때문에 아무도 이 사람 옆에 다가서기를 꺼려합니다. 영화 내내 주인공의 이런 까칠한 모습이 등장하면서 많은 시선을 끌었던 영화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완벽주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일에 하나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고, 허점이 없이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을 <완벽주의자>라고 부릅니다. 글자의 뜻으로만 생각하면, 참 듣기 좋고 좋은 내용의 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완벽주의자는 본인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큰 부담을 줍니다.

텔레비전의 의학 프로그램에 나온 의사분이 말하기를 완벽주의자는 항상 완벽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강밥관념에 시달리다 보니 신경성 위장병이나 노이로제를 상습적으로 달고 산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완벽주의자의 곁에 있는 사람들도 부담을 느끼면서 같은 증상을 호소한다는 말을 합니다.

 

며칠 전에 한 청년이 한강에 빠져 죽으려고 뛰어 들었습니다. 빠진 이유를 물어 보니 서울대에 들어가지 못해서 그랬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 청년이 지금 아주 이름도 없는 그런 대학에 다는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서울에 있는 연세대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살하려고 한 것이 자신은 천재들만 가입할 수 있다는 멘사 회원(IQ140이상 천재만 가입)이면서 다들 서울대에 들어가는데 자신만 서울대에 들어가지 못해서 죽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이 청년이 가진 완벽주의 모습은 실패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실수와 실패를 알지 못하는 참으로 어리석은 청년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단 한번도 실수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은 사람이 남긴 역사의 발자국이 아닙니다. 실제로는 인류 역사에 큰 기여를 하였던 수많은 발명품들은 실패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에서 얻어진 것들이 허다합니다. 거듭거듭 실패하여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실수와 맞서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승리자가 됩니다.

실패와 실수는 다음에 더 잘 할 수 있는 기회를 나에게 만들어 줍니다. 이렇게 깨닫는 사람은 실패와 실수 속에 갇히지 않고, 더 나은 성공을 바라보는 사람이 됩니다. 내가 맡은 일에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은 할지언정 완벽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완벽주의를 꿈꾸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성도들에게 신앙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허락해 주지 않았습니다. 비록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구원이 전적 하나님의 100% 완벽한 선물이지만, 하나님은 신앙과 신유와 은혜의 모든 것을 믿는 성도들에게 다 주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하면서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별것 아닌 것을 가지고 좌절할 때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심한 상처를 받아서 회복하는데 많이 더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에 진정한 믿음을 가진 성도는 부족하고 못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바로 나는 실패자이다라는 생각을 가질 때입니다. 내가 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한 달 남아 있는 2012년의 시간을 돌아 보면서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까요?

비록 나에게 지난 날의 실수와 실패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지난날의 실수와 부족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주님에게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더욱 잘 섬겨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나와 우리 모두에게 원하는 것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1. 기도 합시다

 

7-8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기도하라는 말씀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반복하여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기도는 중요하면서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어떤 것인지 알지만 실천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말하였습니다. 반복적이고 점층적으로 행동으로 강화되는 말씀입니다. 쉽게 설명 드리면 이런 말입니다. <구하는 행동>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것이 <찾아 나서는 행동>입니다. 찾아 나서는 행동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것이 문을 두드리는 행동입니다. 구하라>>>찾으라>>>문을 두드리라입니다.

이런 행동은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인내와 끈기로써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인간의 머리로써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우리는 금강석을 캐어 금을 제련하듯 귀중한 땀과 눈물의 무릎 꿇는 수고와 노력을 바쳐야 합니다.

 

톨스토이 저서 중에 <재화의 근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동네에 의좋게 나란히 두 집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 집에 닭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닭이 자기 집 마당을 와두고 옆집에 가서 알을 낳아 버렸습니다. 이 모습을 본 닭의 주인인 마나님이 옆집에 찾아가서 우리 닭이 낳은 알이니 달걀을 달라고 말합니다. 달걀 하나를 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옆집에서 말하기를 댁의 닭이 알을 낳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주지 않습니다. 결국 이집 아내와 저집 아내가 서로 말싸움이 벌어집니다. 아내들이 말싸움을 하자 누가 나서서 거들기 시작합니까? 이제 남편들까지 합세하여 큰 싸움이 되었습니다. 승자도 없고 패자 없이 기분 나쁘게 싸움이 끝나 버립니다.

그 날 밤 자신의 닭이 낳은 계란을 받지 못한 여인이 분을 삭이지 못하여 옆집에 불을 질러 버립니다. 그런데 때마침 강하게 볼어온 바람 때문에 불씨가 자기 집까지 날아와서 두 집을 모두 홀라당 다 타버립니다. 두 집은 불탄 자리위에 거적을 깔고 앉아서 서로 마주 보며 한숨을 지으며 말합니다. “아무 것도 아니었는데......”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죠. 아무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 것도 아닌 흥분의 싸움이었지만 계란 자기 것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욕심 때문에 결국은 모든 것을 달 날려 버리게 됩니다. 이런 즉흥적인 모습은 신앙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특히 기도생활에 즉흥적인 것은 해악만 남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결코 배반하지 않습니다. 즉흥인 모습으로 기도생활, 신앙생활해서는 곤란합니다. 지금 우리는 기도해야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달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향후 5년간 이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고 나갈 지도자를 뽑는 중차대한 일입니다. 대통령 선거에 관심이 없다는 분이라도, 자신을 위한 기도와 가정을 위한 기도와 교회를 위한 기도, 그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 완수를 위한 기도는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까지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자세로 계속~ 그리고 더욱 강하게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2. 하나님을 믿읍시다

 

9-11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요즈음 신문지상을 보면, 끔찍한 패륜 범죄가 자주 등장합니다. 가끔 자녀를 학대하고 살해하는 부모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부모님들은 자신의 자녀를 지극 정성으로 사랑합니다. 아들이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주거나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얼마 전에 큰아들 아이가 휴가를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작은 아이야 토요일 저녁만 집에서 자고 나머지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그 혜택을 받아 누리지 못했지만, 저는 큰 아들 휴가 나온 턱을 톡톡히 보았습니다. 아이가 주일에 휴가를 나와 토요일에 귀대하는 일정이라 한주간 꼬박 집에 있었습니다. 아이가 휴가를 받아 있는 한 주간 집에 있는 동안제가 몸보신 왕창 하였습니다. 왜 제가 몸보신 했을까요? 집사람이 큰 아이에게 멀 해 먹일까? 정신이 없는 거에요. 하루는 애가 좋아하는 닭도리탕, 그리고 다음에는 갈비찜, 메누도 다양하게 준비합니다. 그러면서도 더 해 줄 것이 없을까 고민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어떤 모습이에요? 바로 부모의 모습이고 마음입니다. 떡이 먹고 싶어 떡을 달라는 아이에게 돌을 주는 부모가 없으며, 생선을 달라는 아이에게 뱀을 주는 부모는 지구상 그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줘도 더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한결같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이런 부모님의 마음을 오늘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비유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더 해주고 싶어서 견디지 못하는 분입니다. 얼마나 많이 아낌없이 주시는지, 하나뿐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기까지 내어 주는 사랑입니다.

좋으신 하나님,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능력이 충만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그 좋은 하나님을 지금 저와 여러분들이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 일입니까? 좋은 것을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 와 있습니다. 이 예배가 하나님을 믿는 현장이고 사랑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최고의 행운과 은혜와 축복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과 세상은 아무런 가치와 의미도 없으며 행복과 기쁨도 없습니다.

<워싱턴 포스트>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정말 음악을 알아듣는 귀가 있는가?”를 실험하였다고 합니다.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Joshua Bell)에게 거리의 악사처럼 허름한 옷을 입히고, 300만 달러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싸구려 바이올린 처럼 들고 연주해 보라고 한 것입니다. 연주 장소는 지식인들이 가장 많이 왕래하는 워싱턴 데팡스 지하철역 앞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은 연주회 입장권이 수천 달러나 하는 세계최고의 스타입니다. 그러다 보니 죠수아 벨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 보고 사인해 달라고 덤비면 어떡하나 걱정하기까지 합니다. 연주시간은 아침 7시에서 8시 반까지 출근 시간입니다. 죠수아 벨이 허름한 옷을 입고 지하철 입구에서 돈을 받을 바이올린 가방을 열어 놓고 연주를 합니다.

그런데 조슈아 벨을 알아보기는커녕, 그 아름다운 음악을 귀담아 듣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다들 휴대전화 통화로 정신이 없고, 바삐 출근하느라고 걸음을 멈추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구두닦이만이 그 음악을 알아들었다고 합니다. 구두딱이 조차 조슈아 벨인지는 모르고 저 사람이 참 바이올린을 잘 연주하구나이 정도만 느꼈다고 합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항상 나의 곁에 계십니다. 아름다운 하나님의 음악이 내 귀에 늘 울려 퍼지는데, 우리는 바삐 출근하느라, 지하철을 타러 뛰어다니느라, 돈을 번다고 정신 팔리는 동안 그 음악을 못 듣는 것입니다. 조슈아 벨이 연주하는 음악은 못 들어도 괜찮습니다. 그 음악 못 들었다고 천국가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더 좋은 것을 주고자 노력하는 하나님의 손길은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에 무덤덤한 자가 되지 마십시오. 내가 받은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 줄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3. 대접합시다

 

12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이 말씀을 황금률(The golden rule)이라고 합니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힘이 있는 말씀입니다. 어떤 분들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라는 이 말씀을 왜곡애서 받아 들이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라는 말씀은 정확히 주고 정확히 받자는 매우 계산적인 대접을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저 사람에게 하나를 대접하였으니 나도 저 사람에게 하나를 대접받아야 되겠다는 모습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은 서로의 권리 주장을 앞세우지 말고, 겸손하게 먼저 사랑을 실천하라는 뜻입니다. 내가 타인에게 무엇을 받으려고 기대하기 이전에 내가 먼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입니다.

세상에는 크게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1)남의 것을 착취하여 사는 사람, 2)자기 것을 가지고 자기만 사는 자급자족하는 사람, 3)남을 대접하고 섬기는 사람. 성경은 어떤 사람을 원하나요? 자기만 잘 먹고 잘 살자는 사람은 성경은 원하지 않습니다. 베풀고 사랑하고 실천하는 성도를 성경은 원합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젊은 부부가 목사님을 찾아와서 상담을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비난하며 서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알아 주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연애하는 시절에는 둘다 죽고 못사는 사이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서로를 미워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한 것에서 출발합니다.

아내는 남편보다 공부를 많이 하였고, 완벽하고 고상한 것을 좋아해서 고전음악과 미술을 즐기면서 사용하는 말씨도 항상 정중합니다. 반대로 성격이 털털한 남편은 캐주얼을 좋아하고 흙이 잔뜩 묻은 신발을 신고 와서는 털지도 않고 벗어놓습니다. 음악도 항상 대중가요만 부르고, TV도 켰다 하면 대부분 개그나 오락프로입니다.

연애시절 아내는 지금 남편의 털털함과 남자다움에 반했었고, 남편은 아내의 이지적이고 여성스런 모습에 끌립니다. 그런데 결혼 후의 현실은 이상과는 달랐습니다. 무식하게 행동하는 남편을 창피하게 여긴 아내가 제발 무식한 티 좀 내지 말라고 핀잔을 주면, “혼자 고상한 척 하지 말라고 남편이 되받아 칩니다. 만나기만 하면 서로의 자존감을 깎아 내리는 언어폭력이 계속되면서 결혼 생활이 지옥으로 변해갑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성격 때문에 도저히 함께 못 살겠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목사님이 내린 결론은 서로의 마음에 품고 있는 이기심을 없애야 된다고 말합니다.

대접하는 모습이 바로 내 이기심과 자존심을 내려 놓는 것입니다. 내 것 주장하면 남을 대접할 수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더 진실하게 믿으면서 대접하는 손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남아 있는 1달의 기간 동안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이라 믿고 따르기를 소망합니다.

출처 : 덕민사랑
글쓴이 : 선한목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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