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이런 말 들어보셨지요? 남자는 세 여자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에는 엄마의 말을 잘 들어야 하고, 결혼해서는 아내의 말을 잘 들어야 하고, 운전할 때에는 네비게이션 안에 있는 여자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현명한 남자는 여자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 주장대로 살아가는 강한 남자가 아니라,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남자입니다. 역사적으로 여자의 말을 잘 듣고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조선시대 성종 때 우의정을 지낸 허종(許琮)이라는 분입니다. 서울 종로구 내자동에 종침교(琮琛橋)라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리는 없어지고 다리표지석만 남아 있습니다만, 거기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져 있습니다. “조선 성종 때 우의정을 지낸 허종(許琮)과 허침(許琛) 형제가 갑자사화의 화를 면한 일화가 얽혀 있는 경복궁 입구 다리터.” 지금은 종침교 자리에 종교교회가 들어서 있습니다. 종교교회라는 명칭도 종교에 있는 교회라는 뜻입니다.
종침교의 일화는 이렇습니다. 당시 성종은 연산군을 낳은 왕후 윤씨를 폐비시키고 결국 사약을 내려 죽게 만듭니다. 왕후 윤씨를 폐비시키기 위한 어전회의가 열리던 날, 허종의 누이가 아침 일찍 어전으로 가는 허종을 부릅니다. 그리고 “오늘 어전회의에 나가면 훗날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니 어떻게 해서든지 어전회의에 나가지 말라”고 당부를 합니다. 누이의 말을 들은 허종은 누이의 말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어전으로 가던 도중 궁궐로 들어가기 전에 이 종침교에서 일부러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칩니다. 그리고 다리 다친 것을 핑계 삼아 어전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집으로 귀가합니다.
허종이 참석하지 못한 그 어전회의에서 왕후 윤씨를 폐비시키기로 결정되었고, 폐비가 된 윤씨는 다음 해에 사약을 받아 죽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사약을 받고 억울하게 죽은 폐비 윤씨의 아들인 연산군이 왕이 됩니다. 연산군은 왕이 되자 자기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당시의 신하들을 다 죽이는 끔찍한 일이 벌입니다. 이것을 역사적으로 갑자사화(甲子士禍)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갑자사화에서 어전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던 허종과 그 가족들은 그 참혹한 죽음의 위기에서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허종이 일부러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친 그 다리를 허종 허침 형제의 이름을 따서 종침교(琮琛橋)라고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때로 누군가를 말을 귀담아 잘 들으면 화를 면하고 복도 받게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지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혜가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십니까?
지혜는 누군가의 말을 잘 듣는 데서 시작됩니다. 누군가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혜자 솔로몬이 인생의 지혜를 가르쳐준 잠언에 이런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잠 1:5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잠12:15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잠13: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잠 13:10 “교만에서는 다툼이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이상 제가 열거한 잠언 말씀에서 공히 나타나는 지혜의 출발점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지혜입니까? 잘 듣는 것입니다. 잘 들어야 지혜가 생겨나고, 잘 들어야 지혜로운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잠언에 나오는 몇 구절만 읽었지만, 이 외에도 잠언 뿐만 아니라 성경 다른 곳에도 잘 들어야 한다는 말씀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말씀이고, 참 부러운 말씀입니다.
5절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솔로몬이 왕이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께 1천 번제를 드립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저는 이 본문만 읽으면 이런 상상을 해 봅니다. 하나님이 내 꿈에 나타나서 “김목사야! 내가 네게 무엇을 줄까? 너는 내게 구하라”는 말씀을 상상해 봅니다. 상상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함이 가득한 내용입니다. 복권을 사는 분들은 이런 상상을 하지 않습니까? 이 복권이 당첨되면 당첨된 돈으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런 흐뭇한 상상을 합니다. 복권당첨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상상입니다.
그런데 로또 복권당첨은 상상이지만, 솔로몬에게 나타난 하나님은 상상의 하나님이 아니라 직접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입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는 말에 솔로몬이 무엇을 하나님에게 구합니까? 9절 보십시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본문의 <듣는 마음>이란 단어를 유심히 보십시오. 예전 성경에는 이 부분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요? 예전 성경에는 <지혜로운 마음>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달라고 대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솔로몬이 구한 “지혜로운 마음”이 어떤 마음이에요? 바로 <듣는 마음>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무얼 줄까?”라고 물으실 때에 <듣는 마음>을 달라고 말합니다.
왜 솔로몬은 하나님에게 <듣는 마음>을 달라고 했을까요? 그 해답이 9절에 있습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재판을 올바르게 할 수 있도록 백성들의 소리를 올바르게 들을 수 있고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듣는 마음을 달라고 말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에게 듣는 마음을 달라고 말한 특별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그 출발점을 7절에 나오는 “작은 아이”라는 단어에서 찾아 보고자 합니다.
7절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솔로몬은 스스로를 ‘작은 아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솔로몬이 몇 살에 왕이 되었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학자들은 솔로몬이 왕이 될 때가 20세 전후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이 스무 살이면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20살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작은 아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나이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왕으로서 하나님 앞에, 또 백성들 앞에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못 된다는 자기 겸손의 뜻입니다. 그래서 작은 아이와 같은 내가 왕이 되었기에,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이 귀한 왕의 직분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듣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제 솔로몬에게 듣는 마음이 지혜로운 마음이고, 이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임이 밝혀 졌습니다. 솔로몬은 듣는 마음이야말로 지혜로운 마음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앞에 말씀드린 잠언에서 보았듯이, 솔로몬은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듣는 마음이야말로 지혜로운 마음이고, 듣는 마음을 갖는 것이 지혜를 얻는 방법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듣는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에게 듣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였고, 이것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의롭고 인정 받는 기도 내용이 되었다면, 오늘 우리 또한 하나님에게 듣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도 해야 하지만, 우리들의 행동 또한 잘 듣고 지혜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는 두 가지를 잘 들어야 합니다. 두 가지를 잘 들어야 지혜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도는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예배 드리러 나와서 설교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말만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설교 말씀을 분명히 들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생각나지 않고, 떠들고 다른 집사 흉보았던 것만 생각합니다. 이것은 올바르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모습이 아닙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롭고 똑똑한 척 하더라도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이 아는 것처럼 보여도, 어떻게 하나님과 비견할 수 있겠습니까?
롬 11:33절“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요.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 넘치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원천이라고 고백합니다. 고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인간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세상의 그 어떤 말과 학문보다 뛰어남을 바울은 알았기에 고전 1:25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다.”
이 말씀을 굳게 믿는 여러분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불신자들이 아무리 헐뜯고, 하나님의 능력을 깍아 내린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무궁무진합니다. 끝이 없습니다. 그 무궁무진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가 어디에 담겨져 있습니까?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이 있습니다.
저희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지난 주간에 아파서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수의사가 체온도 제어 보고, 청진기를 배에 대고서 맥박도 검사하고, 이것 저것 다 검사를 합니다. 제가 “어디가 아픈 것일까요?” 질문하니깐, 수의사 선생님이 하는 말이 “잘 모르겠다, 일단 약을 이틀치 먹이고 증세가 호전 안 되면 피를 뽑고 더 심도 깊은 검사를 합시다”라고 말만 합니다. 동물을 전문적으로 보살피는 수의사도 저처럼 모르기는 마찬가지더라구요.
이렇게 어떻게 해야 될지, 어디로 가야 될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이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람은 생명의 길이 어디인지 모르고 방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가 담긴 말씀은 생명이 어디에 있고, 어느 길로 가야 그 생명을 얻는지를 가르쳐주십니다. 참된 행복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고 있으며, 어떤 것이 참된 행복인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들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지혜를 얻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똑바로, 제대로 들어야 합니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이 어디서 난다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습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믿음이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기도할 때에 나에게 들을 귀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강단에서 똑같은 설교를 하지만, 어떤 분은 그 말씀에 은혜를 받고 아멘으로 화답하는 분이 있는 반면, 어떤 분은 그저 맹숭맹숭한 분이 있습니다. 그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듣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덕민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듣는 마음을 하나님에게 선물로 받아 지혜가 충만하고 믿음이 성장하는 성도가 되길 축원합니다.
2.사람들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이 잘 듣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한 것은 백성들의 소리를 잘 듣기 위해서입니다. 좋은 왕이 되기 위해서는 잘 들어야 합니다. 잘 들어야 좋은 왕이 됩니다. 그것을 솔로몬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소리를 잘 듣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백성들의 소리에 귀를 막아버린 왕은 좋은 왕이 될 수 없습니다. 솔로몬 왕의 아들인 르호보암이 그랬습니다. 솔로몬이 죽고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백성들이 르호보암 왕을 찾아와서 “세금이 너무 과중했으니 그것들을 좀 감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더욱 왕을 잘 섬기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때에 르호보암 왕이 어떻게 처신합니까? 지혜로운 장로들과 노인들의 말을 무시하고, 젊은 부류들의 말만 듣고 더 세금을 가중하게 매겨 버립니다. 결국 이것 때문에 솔로몬의 통일 왕국은 깨어져서 남북으로 나뉘어 원수지간이 되어 버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도 잘 들어야 하지만, 사람들의 말도 잘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말을 잘 들으라고 말하니깐,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을 마구 들어서 내 줏대도 없이 지조도 없이 흔들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말을 잘 듣되, 좋은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우리를 잘못된 길로 유혹하는 말은 듣지 않아도 됩니다. 나의 올바른 신앙 생활을 가로 막는 악한 마귀의 속삭임은 듣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는 말에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때로는 듣기 싫은 따가운 충고의 소리라고 하더라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나에게 유익된 말이라면 , 들어야 할 것을 잘 듣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 시간 제가 잘 듣는 방법 하나를 소개합니다. 내가 가장 잘 듣는 방법이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침묵>하는 것입니다. 내가 입을 열고 계속 떠들고 있으면 나에게 오는 유익한 말을 잘 들을 수 없습니다. 고로 내가 침묵하지 않으면 들지 못합니다. 어느 글에서 이런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영어 동사 가운데 “listen(듣는다)”는 동사입니다. listen이란 단어는 6개의 철자를 가지고 있는데, 이 6개 철자를 이용해서 만들 수 있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silent(침묵)”이란 단어입니다. 똑같은 철자 6개인데 순서만 바꾸면, listen(듣는다)이 될 수도 있고, silent(침묵)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냥 무시하고 넘기기에는 참 성경적인 의미가 있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침묵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때로는 기도할 때에도 침묵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 기도만 일방적으로 내 뱉어 놓고, 하나님의 뜻을 듣지 않는 못된 기도 습관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똑똑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아닙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많이 아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무게가 없어 보입니다. 여러분은 말을 많이 하기 보다는 말을 많이 듣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말을 조금씩 더 아껴보십시오. 그러면 내 안에 하늘의 지혜가 쌓입니다. 조금 더 침묵하는 것을 배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른 사람의 소리가 들데 됩니다.
사도 야고보는 이런 지혜로운 말씀을 권면합니다. 얍 1:19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이 말씀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지혜이고, 지혜를 얻는 방법입니다. “하나님! 듣는 마음을 저에게 주옵소서.” 이 기도가 우리 덕민 교회 모든 성도들의 기도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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