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감사로 제사를 드리라

하나님아들 2013. 6. 25. 17:50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자

시편 50 : 1 - 15

 

敎人과 聖徒는 같은 의미가 있으면서 다릅니다. 敎人은 교회에 등록하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입니다. 법적으로 세례를 받아야 교인으로 자격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를 믿어야 하지만 사실상 예수를 믿지 않아도 교인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敎人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을 聖徒라고 합니다. 교인이라고 해서 모두 聖徒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자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지 않은 자는 교인은 될 수 있지만 성도는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聖徒가 어떤 존재인가를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聖徒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잘 가르쳐 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성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나의 것’이라고 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깊이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천지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 사탄 마귀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탄 마귀의 종으로 끌려 다니며 귀신을 섬겨왔습니다. 죄의 종인 된 자에게 ‘나의 성도’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은 그냥 쉽게 부를 수 있게 된 것이 아닙니다. 죄값을 지불하고 사탄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내시고 ‘너는 나의 것이라’(사43:1)고 하신 것입니다. 오직 죄 사함을 받은 자들만이 聖徒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게 하시고 우리를 ‘나의 성도’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5)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죄로 말미암아 사탄 귀신의 종이 된 우리를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어 주시므로 하나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나의 성도들”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는 하나님께서 언약 맺어주신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약 맺어주신 이들만이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聖徒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다른 종교에서는 聖徒가 있을 수 없습니다. 불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에서는 信徒, 信者라고는 하지 聖徒라고는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아니 聖徒가 될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잘 믿어도 성도라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언약 맺어주신 자들만이 聖徒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된 여러분은 성도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하며 성도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맺은 언약의 증표는 무었습니까?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사’로 언약을 맺었다고 하였습니다. ‘제사’는 사탄의 종 된 우리가 성도가 될 수 있는 오묘한 진리입니다. 감히 우리가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어 주심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무리, 聖徒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가 성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죄인이 성도가 될 수 있는 조건은 오로지 ‘제사’로서 가능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제사’란 성도된 자들에게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해 줍니다. 제사는 죄사함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해야 합니다. ‘제사’는 오늘의 ‘예배’입니다. ‘제사’가 ‘예배’로 바뀐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예루살렘 성전에 지성소와 성소를 가리었던 휘장이 찢어지므로 더 이상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되고 대신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소나 양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제사를 지냈던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기 때문에 더 이상 제사를 지내야 할 필요 없어진 것입니다. 대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에 성도들이 제사를 지내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이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에 성도들에게는 ‘제사’가 아닌 ‘예배’로 바꾸어 생각해야 합니다. 성도들인 나와 여러분은 하나님과 예배로 언약을 맺은 자들입니다. ‘예배’는 곧 ‘제사’입니다. 제사 형식이 예배로 바뀐 것이지 그 의미가 바뀐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사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변질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8절에서 18절까지 당시 하나님께서 성도로 삼으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제사가 잘못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아무런 제물로 제사를 드려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제물만 드리는 제사는 원치 않으심을 역설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시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수소나 수양을 잡아 제물로 바쳤습니다. 수소나 수양은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제물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형식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먼저 제물이 되는 수소나 수양은 흠 없는 수컷이라야 하며, 제물인 소나 양의 머리에 안수하고 제사장은 그 제물을 잡아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서 불에 사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제물의 피를 제단 사방에 뿌렸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까지 이렇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제사가 잘못된 제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제사와 백성들이 드린 제사가 형식은 같을지라도 성질이 달랐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가 되지 못한다면 매우 불행할 것입니다. 얘배를 드리고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지 못하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의 예배가 과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언약 맺어 주신 성도로서 합당한 예배를 드리느냐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예배가 변질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잘못된 것을 찾아 고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제사의 잘못이 무엇이였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제물이 아니라 감사입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14),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23)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사나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물이 아니라 감사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감사가 없는 제물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소나 수양을 잡아 제물로 바쳤습니다. 백성들이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많은 제물을 바쳤는지 하나님은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으로다”(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단에 소나 양의 제물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제단에 불이 끄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제물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네 집의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시겠다고(9)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삼림의 짐승들이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모든 새들도 내 것이라’고 하시며 백성들이 제물로 바치는 ‘고기와 피를 먹고 마시겠느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면서 마치 이방사람들이 귀신 섬기는 것처럼 하나님께 제물을 바쳤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죽은 조상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정신이 있습니다.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조상이 굶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조금 떼어서 무덤 앞에 뿌리지만 짐승들이 와서 주워 먹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제사 지내는 것도 많은 짐승을 잡아 제물로 태우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어라고 하셨습니까?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12)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리실 일도 없지만 가령 주린다 해도 네가 바친 제물을 먹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오늘 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어느 성도가 큰 맘 먹고 남들이 잘 하지 못할 정도의 고액을 헌금을 합니다. 작은 액수를 헌금할 때는 봉투에 액수를 잘 쓰지 않다가 고액을 할 때는 자기 이름과 얼마라는 액수까지 적어 헌금을 하였습니다. 목사가 헌금봉투를 받아들고 그 사람의 이름과 액수를 말해서 전 교인들이 다 알도록 하고 크게 축복 기도를 해 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신 줄 알고 만족하게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액을 했다는 말도하지 않고 특별하게 기도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헌금하고 시험들게 됩니다. 헌금한 것이 아깝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미국에 한 여 성도가 남편은 일찍 죽고 아이 다섯을 키웁니다. 남의 집 빨래를 해 주고 받은 돈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합니다. 그러나 주일이면 5센트를 헌금을 합니다. 한 주일도 빠지지 않고 5센트씩 헌금하는 것을 장로님이 알고 ‘생활도 어려운데 매주일 헌금하는 것이 너무 감동적입니다. 다음 주일부터는 그 헌금을 내가 대신 낼 터이니 어려운데 헌금을 하지 마세요. 나는 매 주일 10불씩 하는데 5센트를 더 내면 됩니다.’ 라고 했더니 그 여성도가 ‘왜 나에게서 매 주일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바치는 기쁨을 빼앗으려고 합니까?’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비록 작은 액수이지만 그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바쳤다고 했습니다.

 

헌금 액수가 얼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치는 마음 자세가 중요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헌금은 많은 것을 바쳐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 비록 작은 것을 바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십일조를 바칠 때도 하나님께서 이만큼의 소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헌금을 바칠 때도 진정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바칠 때 하나님이 받으실 수 있는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수입이 작을 때도, 많을 때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헌금이나 십일조를 바칠 때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마치 세금을 내는 것처럼 약간의 부담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여질 때가 있습니다. 헌금을 가지고 하나님과 거래를 한답니다. 부산서 목회할 때 한 청년이 ‘목사님 선납 십일조를 아십니까?’라고 묻습니다. ‘뭐냐고?’고 물었더니 ‘선납 십일조’는 십일조를 선납하는 것이랍니다. 10만원을 십일조를 하면 100만원의 수입을 주실 것을 믿고 바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없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시나 안주시나 기다린답니다. 그래서 안주면 선납한 십일조를 다시 돌려달라고 한답니다.

 

오늘 본문에는 제사와 예배에 합당한 것이 무엇인가를 하나님께서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손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14,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배의 본질을 말씀하셨습니다.

 

첫째가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소나 양을 제물로 바쳐 드려도 감사가 없는 제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받지 않으실 뿐 아니라 외면하십니다. 그러나 비록 작은 것이라도 감사가 있고 기쁨으로 바쳤을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작은 헌금이라도 ‘오늘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것을 바칩니다’는 마음으로 정성껏 바치는 것이라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송을 부르고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네 서원을 갚으라’고 했습니다. ‘서원’이란 헌신과 충성의 표시로서 어떤 일을 하기로 맹세하였던 것을 하는 것입니다. 넓은 의미로 하나님께 예배자가 가지게 되는 마음의 결심이나 다짐 등을 실생활 속에서 반드시 이행할 때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섬기며 봉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을 말씀하셨습니다. 감사로 예배를 드리고 서원을 갚는 자가 어려운 일들을 기도하면 즉시 응답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성도들에게 예배에 대한 오해가 무엇입니까? 감사가 없고 서원을 갚지 않으면서 도와달라고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감사와 서원 갚는 것, 그리고 어려움을 도와달라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성도에게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14)라고 하셨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감사로 예배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릴 뿐 아니라 그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구원’은 물론 영원한 구원일 수 있지만 세상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를 드리는 성도에게 하나님은 세상적인 모든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구원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감사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허창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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