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과 하나님 사람의 말
열왕기하 5 : 1 - 14
말을 하고 말을 듣는 것은 사람으로서 가장 기본입니다. 말을 할 수 없고 듣지 못한다면 사람으로서 산다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농아들은 말을 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기 때문에 수화로 말하고 듣습니다. 그런데 말을 들을 수 있지만 말이 들려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말을 들었지만 무슨 말을 들었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을 들었지만 자기 생각과 같지 않으면 들었던 말도 무시해 버립니다. 같은 말을 여러 사람이 똑 같이 들었지만 그 말에 대한 반응은 사람의 생각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말이란 능력입니다. 말을 듣고 행동합니다. 그래서 말은 힘이요 능력입니다. 학생이 선생이 가르치는 말로 지식인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도 능력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의 능력입니다.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축복입니다.
베드로가 밤새워 고기를 잡아도 한 마리도 잡지 못했을 때 예수님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라’고 하셨을 때 베드로가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그물을 내려 두 배를 가득 채울 정도의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눅5:5).
하나님의 말씀은 고치고 살리는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향하여 ‘일어나 걸으라’고 하시므로 중풍병자가 벌떡 일어나 걸었습니다. 소경을 향하여 ‘보아라’고 말씀하시므로 소경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죽은 자를 향하여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므로 죽었던 사람이 살아났습니다. 나아만의 문둥병도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므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고치고 살리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요 축복이지만 말씀이 잘 들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말씀을 들었지만 들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분명히 귀는 밝고 귀가 열렸음에도 말씀이 들려지지 않습니다. 오늘에 많은 사람들이 능력이요 축복이 되는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말씀을 들려주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고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막고 있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고, 병도 고칠 수 있는 말씀을 들었음에도 귀가 열리지 않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져야 말씀을 듣고 말씀이 주는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귀를 막고 듣지 않으면 말씀이 주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귀를 막고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귀가 열리지 않고 귀를 막고 있습니까? 막은 귀를 열어야 합니다.
아람 군대 장관 나아만은 자신의 몸에 문둥병을 고칠 수 있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하여 문둥병을 고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문둥병을 고칠 수 있는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을 바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나아만이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하기까지는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아만이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여는 것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오늘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를 잘 열지 않습니다. 귀를 막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축복을 받으려면 귀를 열어야 합니다. 귀를 열지 않으면 말씀이 주는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나아만이 어떤 사람입니까? 귀를 쉽게 열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아만은 아람 왕으로부터 크고 존귀함을 받는 군대 장관입니다. 큰 용사였습니다. 전쟁터에 나아가 승리하여 나라를 구하고 국력을 키운 공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은 누구의 말도 잘 듣지 않습니다. 왕의 말이라면 쉽게 들을 수 있지만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아내의 종으로 부려먹으려고 사로 잡아온 어린 소녀의 말을 듣는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을 큰 용사 나아만이 아내의 시종 드는 종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린 것입니다. 나아만이 어린 여종의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문둥병자였기 때문입니다. 나아만은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은 문둥병자였습니다. 왕으로부터 존귀함을 받는 큰 용사 군대 장관이지만 살이 썩어 고름이 나는 고통으로 괴로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이 없었다면 나아만은 어린 종의 말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살이 썩는 고통이 나아만의 귀를 열게 하였습니다. 나아만에게 이러한 고통이 없었다면 귀를 열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통이야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열게 하는 것입니다.
누구의 말도 잘 듣지 않는 사람이 교회에 나와 고개를 숙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리고 듣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그를 괴롭히는 고통이 그의 귀를 열게 한 것입니다. 고통이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를 열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통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린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건강할 때는 말씀이 전혀 들려지지 않았는데 자신이 모진 병으로 고통을 당하니까 말씀이 들려지더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아프든지 어려움을 당하는 것 때문에 교회를 찾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려움이 없었다면 교회를 찾지도 않았을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들려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나아만에게 문둥병은 막힌 귀를 열어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나아만의 집에 이스라엘에서 사로 잡혀온 어린 소녀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자신의 나라 이스라엘를 친 대적의 집에 종이 된 것입니다. 부모의 생사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장관이지만 원망이나 불평도 하지 않고 그 주인에게 관용과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주인에게 친절을 베풀므로 주인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고 하나님의 경배하게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나아만과 어린 여종 두 사람을 비교해 봅시다. 너무나도 대조적인 두 사람입니다. 겉으로는 나아만은 왕으로부터 존귀함을 받는 군대 장관이요 큰 용사입니다. 어린 소녀는 남의 나라에 잡혀온 종입니다. 누가 누구를 위하며 돕는 자가 되어야 합니까? 지금 누가 누구를 위하고 도와주고 있습니까? 종으로 사로 잡혀온 어린 여종이 군대 장관을 염려하고 도와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어린 여종은 주인 나아만을 위해 기도도 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을 모신 성도와 불신자와의 차이입니다. 죄수인 요셉이 애굽의 왕바로를 도와주었습니다. 요셉은 비록 옥에 갇힌 죄수이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바로 왕을 염려하고 기도하고 도와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남의 불행을 염려하며 기도하는 성도에게는 그이 말에 능력이 있습니다. 말을 듣지 못하는 귀를 열게 하고 마음을 감동케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린 소녀의 말은 여주인의 마음을 감동 시켰고 나아가 나아만의 귀를 열어 듣게 하였습니다. 비록 잡혀온 종이요 어린 소녀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였습니다. 어린 여종이 전하여 준 말은 곧 하나님의 사람의 말이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어린 아이가 전해준 말은 아람 왕까지도 감동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람 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편지를 쓰서 나아만에게 주며 이스라엘 왕에게로 보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말씀에 과인 반응입니다. 내 생각이 문제입니다.
어린 여종은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3)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그 말을 들은 나아만은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 앞에 서면 됩니다. 그러나 왕의 편지와 은과 금과 옷을 가지고 갔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어린 여종의 말을 듣고서 자기 생각대로 한 것입니다. 여종은 왕의 편지도, 은금과 옷을 가지고 가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왕의 편지와 은과 금과 옷을 가지고 가면 그 선지자가 좋아하고 더 잘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렇게 왕의 편지와 은과 금을 가지고 온 나아만을 사마리아에 엘리사는 나와 맞아 주지도 않았습니다. 종에게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10)는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종이 하는 말을 들은 나아만은 화가 났습니다. 나아만의 자기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11)라고 했습니다. 나아만이 생각한 것처럼 엘리사가 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말씀을 듣는 귀가 열려서 말씀을 듣기는 했지만 자기 생각 때문에 말씀이 주는 축복을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오늘의 성도들에게 이와 같은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말씀이 주는 복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내 생각’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듣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내 생각’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내 생각대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자기 생각을 더하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 때문에 귀가 열려 어린 여종의 말을 들었지만 자기 생각대로 왕의 편지와 은과 금과 옷을 더 많이 준비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나아만은 더 많은 것을 준비하고 노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잘하려고 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나와 자기를 환영하고 자기 앞에 서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손을 흔들어 주문을 외우며 병을 고쳐 줄 것으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얼굴도 내 비치도 않고 종이 나와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 그리하면 낫을 것이라’고 하고 쏙 들어가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자기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그래서 화를 내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아만의 생각은 엘리사가 나아만 자신이 누구이며 많은 은과 금과 옷을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알아주지 않았다는 것에 화가 난 것입니다.
그리고 요단강물에 몸을 씻으면 낫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요단강물보다 더 깨끗하고 좋은 강이 있는데 요단강물에 씻는다고 낫겠느냐는 생각입니다. 내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을 들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대로 한 것입니다. 나아만 뿐 아니라 오늘의 성도들에게도 하나님 말씀을 잘 듣지만 그 말씀대로 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가르쳐주는 대로 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합니다. 가끔 설교 말씀을 은혜롭게 잘 들은 성도가 자기 생각은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나아만은 자기 생각대로 해 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며 돌아갈 때 그의 종들이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13)라고 하니 나아만이 그제야 자신을 돌이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하였습니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14)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하기 위해서 높은 데서 내려야 합니다. 나아만은 ‘내려가서’ 말 안장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잡겼습니다. 이것은 나아만의 낮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왕으로부터 존귀함을 받는 장관에서 낮아져서 물속에 잠기는 것은 자기를 낮추고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요단 강물에 일곱 번 잠기는 것은 완전한 겸손과 순종을 의미합니다. 요단 강물이 문둥병을 고칠 수 있는 약효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아만이 자기 생각을 버리고 요단 강물에 잠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오늘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습니다. 그러나 말씀 앞에 자기 생각을 주장합니다. 자존심을 버리지 못합니다. 자기 주관이 강합니다. 말씀이야 뭐라고 해도 자기 생각이 옳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씀이 주는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을 버리고 겸손해야 합니다. 내려가야 합니다. 요단 강물에 온 몸을 잠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물에 몸을 잠겨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자기 생각을 남기지 않고 말씀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아만에게 요구하신 것은 자기 생각을 다 내 버리고 낮아지는 겸손을 원하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역시 내 생각을 다 버리고 낮아지고 낮아지는 겸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겸손과 순종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은 교만입니다. 자기 생각을 죽이는 것이 겸손과 순종입니다. 어린 여종이 일러 준 말이나 엘리사가 전해준 말씀이 바로 자기 생각을 버리고 낮아지고 자신을 죽일 때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나아만은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물에 일곱 번 몸을 잠그므로 온 몸이 깨끗하게 고침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에게 괴롭히는 것에서 자유하고 치유 받기를 원한다면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겸손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자기 생각을 먼저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낮아지고 낮아졌을 때 하나님은 병을 고쳐 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귀를 열어 하나님의 말씀이 듣고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하여 고통에서 벗어나는 복을 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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