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산상수훈강해 25 A. S. K 법칙

하나님아들 2013. 6. 25. 17:44

A,S,K

 

마태복음 7:7~12

 

버클리대학의 연구팀이 쥐를 가지고 실험을 했습니다. 한 곳에서는 한 마리 쥐에게 먹이를 주면서 기르고, 다른 곳에서는 다섯 마리를 모아서 같이 살게 하면서 풍성하게 먹이를 주었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주인이 노래를 불러 주고 쓰다듬어 주기도 하며 손으로 먹이를 주었습니다. 그 결과 혼자 외롭게 먹고 살았던 쥐는 600일 동안 살았고, 다섯 마리가 어울려 살았던 쥐는 700일 동안 살았고, 애정을 가지고 쓰다듬어 주며 먹이를 준 쥐는 950일 동안 살았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의 실험 결과에 의하면 모든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미꽃도 주인이 늘 이야기해 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르면 더욱 향기가 나고, 색깔이 더 밝아진다고 합니다. 곡식이든지, 한 포기의 풀이든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르는 것과 미움을 가지고 기르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어떤 식물은 매일 보면서 저주를 했더니 그대로 말라 죽었다고 합니다.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더더군다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고 사람답게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이 우리의 삶을 즐겁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존재입니다. 사랑 받으며, 사랑 받기 위해서,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난 소명적인 존재입니다. 사랑할 때 장수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공동체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자아성찰을 하고 상대방의 장점을 바라보며 서로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상대방을 축복하는 관계의 훈련도 중요합니다. 모든 만물의 주인이시며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풍성할 때 서로를 비판하기 보다는 축복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의 교회는 아름답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모두를 사로잡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런 측면에서 접근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를 하실 때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적인 측면에서 인격을 말씀하셨고, 사명이라는 측면에서 소금과 빛에 대한 말씀을 하셨으며,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법칙이라는 측면에서 십계명을 설명하시고, 또한 개인적인 경건의 중요성을 말씀하시면서 구제, 기도, 금식이라는 세가지의 요소를 은밀한 중에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재물에 대한 욕심을 가질 수 있는데, 그것은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물질을 소유하는 목적이며, 물질에 대해서 염려하지 말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만 구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이러한 것들을 중심으로해서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를 세워야 하는데, 그 중에 가장 우선적인 것은 하나됨입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용서와 용납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허물을 바라보며,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을 하고, 남의 장점을 바라볼 뿐 아니라 축복해주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들을 들으면서 여러분들이 갖는 의문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과연 우리가 이 일을 지킬 수 있을까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윤리보다 더 높은 기준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인데, 세상의 윤리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늘의 법칙을 지킬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과 세상의 흐름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키려는 노력조차도 안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 말씀을 지킬 힘과 능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아마 이런 비유가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분 앞에 멋진 차가 한 대 있습니다. 디자인이 훌륭하고 차 안은 넓고 아늑합니다. 모든 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더욱이 연비조차 1등급으로 기름 값이 적게 듭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유감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름 탱크에 연료가 없다는 것입니다. 보기에는 좋은데 전혀 움직일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처지가 이렇습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은 모범적이며, 그 지향하는 목표는 이상적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행할 힘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처지가 그렇다 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좋고 그렇게 살고도 싶지만 우리 육신이 연약하여 행할 힘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산상수훈의 동력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멋진 차를 운전할 수 있는 동력은 다름 아닌 기도입니다. 기도하면 주님께서 도와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원수를 사랑할 수도, 이웃을 사랑할 수도, 대적을 위하여 기도해줄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지 말라고 했는데, 비판하지 않은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산상 수훈을 마무리해가는 이 시점에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의 능력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는 이상처럼 보이지만 기도하는 자에게 주님께서는 이 이상을 성취할 수 있는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즉 산상수훈의 말씀들은 기도를 통해서만 실현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도 바울은 우리가 씨름하고 싸우는 대상은 눈에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전신갑주가 온전히 제 기능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엡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Jesus CEO (Chief Executive Officer)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최고 경영자 예수" 라고 하는 책입니다. 로리 베스 존스라는 분이 쓴 책인데 이 분은 본래 광고대행, 마케팅, 비즈니스 개발 회사인 존스 그룹의 창업자이면서 또 동시에 신앙이 아주 좋은 사역자입니다. 이 분은 자기 스스로 경험하면서 간증하기를 인류역사상 예수님만큼 완벽한 리더쉽을 보여준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21세기의 가장 이상적인 경영자 상이 바로 예수님이기에,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지도력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존스가 말하는 예수님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리더쉽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 기도라고 했습니다. 지도자로서 예수님의 자아극복, 그리고 부하라고 할 수 있는 제자들에게 비전제시, 그리고 제자훈련의 모든 사역에서 그 근본인 기도를 통해, 상사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에서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을 배워야 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토록 많이 말씀하시고, 바쁘게 움직이시고, 많은 역사를 이루셨지만, 가중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일은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도의 생애였습니다. 사역을 시작하실 때 기도하셨고,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고,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기도하셨고, 시험 당하실 때에도 기도하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고, 십자가에 달리시고도 저들의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하셨고, 숨을 거두시면서도 아버지의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한다고 기도하셨습니다. 진실로 예수님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다음에 그들이 가장 먼저 했던 것은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기에 올인함으로써 성령의 충만함,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들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 기도가 예수님을 위한 아름다운 죽음인 순교까지도 그들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명령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기도응답에 대해서 미래형으로 약속하시고, 현재형으로 다시 한번 더 강조하심으로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 기도의 A,S,K

 

우리가 기도에 대해서 어려워 하고, 힘들어 하는 것 중에 하나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서먹함에 있습니다. 기도는 관계에 대한 반응이고, 그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해주는 특별한 통로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해야만 하는 의무라고 하는 관점에서 접근을 하기 때문에 어렵고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기도에 대해서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이것은 당시 제자들과 유대인들에게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감히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요, 나아가서는 망령되이 부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관점은 아버지와 지식간의 대화와 요청으로 이해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돈을 주고 받는 입장이 아니라, 부모 자식간의 관계로 기도를 풀고 있습니다. 그 아버지는 모든 만물을 통치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크신 분이시고, 또 우리와 함께 단 둘이 이야길 하실 정도로 그렇게 따뜻한 분이시며, 나의 모든 필요를 하시고, 채워주실 만큼 그렇게 자상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예수님은 기도에 대한 설교에 적용을 하고 계십니다.(마6:9,32,7:9~11)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첫째, 기도는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명령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약속과 그 약속에 대한 응답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에 대한 보장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구할 때에 항상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저는 이 본문을 접할 때마다 기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지기를 원하는 것은 기도의 세단계입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입니다. 우리가 기도는 흔히 모여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만을 생각하는 생각의 한계 속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구하는 것과 찾는 것과 두드리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기도는 무릎꿇고 구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삶의 현장 가운데서 찾고, 찾으면 두드려서, 계속해서 시도함으로 인해서 그것을 끝까지 성취하는 하는 것까지가 기도라고 하십니다. 그럼 우리가 기도의 세단계를 좀 나눠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구하라 Ask : 간절히 구하십시오.

 

「구하라」는 단어는 굉장히 강한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탄원한다, 애원한다, 간청한다는 뜻입니다. 애절하고 간절하게 부르짖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기도를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부르짖는 만큼 응답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요구하는 것의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자 하는 열정과 지혜와 힘을 구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잘못이해할 수 있는 것은 나의 필요와 욕구를 구한다고 생각하면 잘못된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나의 욕구가 아닌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뜻하심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는 기복주의, 나의 편안함과 유익을 구하는 이기적인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라는 세상염려 삼위일체를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에서 말씀을 전하시면서 백성들이 힘들어 하고 있는 모습을 보셨을 것입니다. 어떻게 저런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저도 설교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지만, 제 삶에서도 여전히 변하지 못한 너무나 많은 영역들이 있습니다. 때론 내가 이런 말씀을 전해도 될까라고 할정도, 심히 마음이 찔릴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의 마음을 아시기라도 하신 것처럼 “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명령이자 격려의 말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레일 위를 벗어난 기차가 얼마나 더 지속적으로 달릴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며 기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찾으라 Seek : 삶의 현장에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찾으라는 명령은 우리에게 기도가 단순히 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행동 지향적입니다. 즉 움직이며 기도하고, 기도하며 활동합니다. 대부분 기도를 정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음에 이제는 삶의 현장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찾아야 합니다. 이것은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생활을 해야함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피터 드러커는「미래 사회를 이끌어 가는 기업가정신」에서 기업가정신은 과학도, 예술도 아니고, 오직 실천이라고 말합니다.

 

기도는 눈에 안 보이는 마음의 소원을 눈에 보이는 현실로 바꿔놓는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앉아서만 하지 말고, 기도하는 만큼 부지런히 움직이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여러분들의 현장 가운데서 끊임없이 실천하십시오.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행하십시오.

 

3. 두드리라 Knock :하나님의 응답이라 확신하면 주실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인내함으로 도전하십시오.

 

두드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현장 가운데서 찾았을 때는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올인을 하면서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통업계의 신기원을 이루고 있는 「세이브 존」의 용석봉 회장 같은 분은 그야말로 행동하는 기도로 위대한 기업을 창출해가고 있습니다. 1997년 IMF 때 다 포기해도, 오히려 그는 300개의 점포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하므로 유통업계의 신기원을 이루었습니다.

 

월트 디즈니는 디즈니랜드 건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 303곳을 부지런히 찾아 다녔습니다. 마크 빅터 한센은 책을 출간하려고 167개 출판사를 노크했으나 계속 거절당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기도하고 시도함으로 드디어 한 작은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이 필요합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다 기도에 대한 명령입니다. 기도는 단순히 정적이지 않습니다. 동적이며, 우리 일상에서 계속해서 이루어져야만 그 결실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 좋은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여기서 모든 좋은 것이란 영적인 축복을 뜻합니다.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성령은 모든 좋은 것의 근본이요,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약속하신 것은 성령의 세례였습니다. 그 성령이 임할 때 우리에게 권능이 임하고 그 권능으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고, 우리가 이 땅에서 해야만할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속적으로 구할 것은 성령충만입니다.

 

첫째, 성령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둘째, 성령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셋째,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기에 생활에 여유가 있더라도, 의식주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더라도 우리가 기도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시는 성령님의 임재때문입니다.

 

한 몇 십 년 전 어느 시골에 나뭇짐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이 할아버지 혼자 살면서도 늘 신앙 생활에 힘쓰며 입에서는 찬송이 떠나는 날이 없었습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 가지고 내려올 때에는 언제나 교회 앞에 나뭇짐을 세워 놓고 성전에 들어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도를 드린 뒤에 기쁜 얼굴로 나오곤 했습니다. 날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목사님 하루는 그 할아버지한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무슨 소원이 그렇게 많아서 늘 기도를 하십니까?” 할아버지가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저는 특별히 무엇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다지 필요한 것도 없습니다. 제가 기도할 때 하나님 얼굴을 바라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저를 내려다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마주보는 것만이 저의 유일한 행복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또 하나님 앞에 내 소원을 아뢰이고,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갑니다. 이보다 복된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만한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한다.”라는 겸손함이 우리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합니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그 뜻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며 이루게 됩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마음만 있다면 우리 공동체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공동체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는 말씀이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기도하십시오. 시간을 구분하고, 여러분들의 대가를 지불하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지시기를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오클랜드 안디옥교회
글쓴이 : 따뜻한 남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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