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하는 삶 Ⅱ
요4:23-24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번 한 주간도 성령님이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저는 지난주에 예배하는 삶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누구에게 예배하는가? 예배를 받으시는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라고 말씀드렸고,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가?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신데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자 창조하셨기 때문이고 또 한 가지, 우리가 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그 이유는 예배가 바로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예배의 틀 안에 찬송과 기도와 예물, 또 말씀축복이 있다고 쭉 나열하면서 말씀을 전해드렸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지난 한 주간 예배하는 삶을 잘 사셨습니까?
제가 이런 설명까지 해 드렸습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굳이 중력의 법칙 운운하지 않아도 밑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예배를 드리다 보면 당연히 복은 받게 되어 있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오늘은 성공적인 예배는 어떤 예배인가, 성경에 나와 있는 사례를 살펴보고 그렇다면 우리의 예배하는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약시대의 예배와 예배를 드리기 위한 처소로서의 성막은 하늘의 것을 미리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구원의 계획을 미리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막을 통해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식양대로 나와야만 했습니다. 자신의 공로나 의지가 아닌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길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죠.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들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성막을 지을 것을 명령하십니다. 출애굽기 25장 2절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내게 드리는 자”의 것을 너희는 받으라! 역으로 보면 즐거운 마음으로 내지 않는 자의 것은 받지 않으시겠다는 것이죠.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이라고 하는 것은 받는 자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출애굽기25:8절에 보게 되면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즐거운 마음으로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드리는 자의 것을 너는 받아서 내가 거할 처소를 나를 위하여 지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 설립의 목적과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는 영리를 목적으로 한다거나 자아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쓰여 지는 장소가 아닌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계신 처소이며, 이곳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고, 또한 여기서 하나님은 그의 택하신 백성과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22절 말씀에 보게 되면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이것이 바로 교회의 기능이자 예배의 기능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에서 만나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나온 성도들을 위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주의 종에게 일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에 거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교회의 기능을 다 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의지와 방법으로 교회를 이끌어 가려고 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다만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하나님의 명령을 알아들을 수 있는 영의 귀가 열려있어야 하겠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서 40년을 봉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의 부정행위로 인해 그의 사명은 끝이 났기 때문에 하나님이 부르시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의 음성조차 듣지 못했습니다. 사무엘상3:7절에 보면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오히려 성전에 살면서도 아직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몰랐던 사무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계시를 받게 됩니다. 그것도 엘리제사장의 가문에 대해서, 아들들의 범죄를 묵인한 죄에 대한 저주와 심판에 대해서 말입니다. 비록 촛대는 옮겨질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다면 교회의 기능은 제대로 수행되어져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의미는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로서의 만남이며, 동시에 장차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백성들이 죄를 씻음 받고자 할 때, 성전 뜰을 지나 제단 앞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제사법으로 제물을 바칠 것인가에 따라 제물을 손질하고 내장과 정강이등 더러운 곳은 다 물로 먼저 씻은 다음에 불에 태웁니다. 어차피 태울 거니까 라고 그냥 다 올려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열어 놓으신 구원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들의 더러운 죄들을 깨끗이 씻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야 하나님과의 교제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현장입니다. 아브라함이 제사를 드릴 때도 그랬고, 야곱이
제사를 드릴 때도 그랬는데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릴 때에도 하나님은 임재 하셨습니다. 둘 다 똑같이 자신들이 소득으로 얻은 것을 가지고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왜 가인의 제사는 열납되지 않았을까요? 여기에서 예배의 자세와 동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세기4장2절에서 15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가인의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는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자기중심적인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죄임임을 인정하지 않는 교만한 제사였고,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한 독선적인 제사였습니다. 제사를 드릴 때의 자세를 감안할 때 그는 평상시에도 얼마나 자기 멋대로 생활했을지 가히 짐작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제사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하나님 앞에서 조차 분하다고 할 정도면 사람 사이에서는 오죽 했을까 싶습니다. 창세기4장 7절에 보면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그는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그야말로 의롭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제사를 통해서 죄를 사함 받았어야 하는 그는 오히려 그 죄값으로 하나님으로부터도 피해 유리하는 자가 되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살아야 하는, 주홍글씨와 같은 표를 달고 살아가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사무엘 13장에 보게 되면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전쟁에 앞서 사무엘 선지자의 도착이 지연되자 자신이 서둘러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무엘13장 8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에 잘 나오는데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뒤늦게 도착한 사무엘이 “왕이 행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사울은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이스라엘의 군사들은 점점 흩어지고, 사무엘 선지자는 정한 날에 오지 않고, 블레셋 군사들은 당장이라도 쳐들어 올 것 같아서 자기가 나서서 부득이하게 제사를 지낼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사울의 그러한 변명은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도 아니었음 이거니와 눈앞에 닥친 현실을 바라보며 마음이 조급해진 사울은 불안한 마음에 하나님과 사무엘 선지자를 믿지 못하는 불신앙의 제사를 드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이 없는, 또 월권행위의 예배로 인해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하리라는 사무엘 선지자의 예언대로 사울은 전쟁터에서 자살을 하고 말았고, 그의 세 아들들조차도 같은 날에 목숨을 잃는 비극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사기11장에 보면 그릇된 서원의 제사가 얼마나 큰 비극을 초래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신제사를 가장 가증히 여기는데 당시 이방나라들 사이에서는 인신제사가 보편화되어 있었습니다. 입다는 암몬족속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시면 가장 먼저 나와 자기를 환영하는 자를 번제로 드리겠다고 서원을 합니다. 흔히 그런 경우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또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그 무엇이라도 아낌없이 바치겠다는 조건부적인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국 입다는 서원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불경죄를 저지를 것인가 아니면 무남독녀인 자신의 딸을 인신제사에 바칠 것이냐 하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구약에는 서원의 이행이 크게 강조되었으며 경솔한 서원은 경고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결국 입다는 하나님께서 원치도 않으시고 자기도 원치 않는 자기기만의 예배를 드리면서 자기의 딸을 번제물로 바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예배 한 번 잘 드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복도 받은 경우들이 여러 군데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에 보면 믿음으로 드린 아벨의 제사가 나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의로운 사람이 악한 마음으로 예배드릴 리 없고 악한 사람이 의로운 제사를 드릴 리 없습니다. 아벨은 늘 하나님을 믿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가장 처음의 것을 정성껏 드렸고 그 이유만으로도 의로운 자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보면 솔로몬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드린 내용이 나옵니다. 3장 3절열왕기상3장에 에서15절에 보면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솔로몬이 깨어 보니 꿈이더라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모든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하였더라.”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드렸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쏟아놓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마음에 맞다 여기시고 구하지 않은 것 까지도 풍성하게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열왕기상 18장32-39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간절히 의지하여 드리는 엘리야의 제사가 나옵니다.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아멘. 이방신상을 섬기는 아세라 선지자들과 바알 선지자들 앞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 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는 엘리야의 제단에 하나님은 불로써 살아계심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사도행전10장에 보면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고넬료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사도행전10장31절에서33절을 보게되면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고넬료는 말씀이신 하나님을 얼마나 사모하고 경외하는지 말하는 것만 들어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방인에게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오게 된 베드로를 향하여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경건하고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결국은 그의 마음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최초로 성령세례를 받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을 사도행전10장 44절에서 46절은 전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아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라면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누구든지 만나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을 고넬료가정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역의 본질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들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항상 찾고 계신다고 요한복음4장 23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모인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 예배라고 한다면 진정 예배는 드려도 되고 안 드려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마땅히 드려야하는 하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예배를 드려야 할까요? 아벨과 같이 의로운 삶과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 솔로몬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엘리야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간절히 의지하여 드리는 예배, 또 고넬료와 같이 평소의 구제와 기도가 하늘에 닿아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성령 충만케 하시는 예배를 우리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성도들이 바빠져서 예배드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할지라도 교회의 가장 큰 사명이 예배라고 본다면 교회와 목회자는 성도들이 끊임없이 하나님과 만날 수 있도록 예배의 자리를 항상 펼쳐 놓아야 할 것이고, 또한 성도들이 예배의 자리로 나올 수 있도록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행의 한 차원인 것입니다.
때로는 예배의 자리로 나오는 게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일이 생긴다고 보면 우리는 예배를 먼저 포기 할 때가 많습니다.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기도 합니다. 어릴 적에 방학이 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생활계획표를 짜는 일이었습니다. 계획표를 짤 때 기준이 되는 것은 수면시간입니다. 몇 시에 잠들어서 몇 시에 일어날 것인가를 먼저 자리 잡은 다음에 하루의 일정을 정하게 되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배에 성공하는 삶이 되려면 모든 예배가 생활의 기준이 되면 됩니다. 예를 들어 나의 일과는 새벽 4시에 시작된다고 마음먹으면 일어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꼭두새벽에 일어나려니 너무 힘들어 라고 생각하면 이미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왜냐면 마음먹은 대로 몸도 움직이기 때문이죠. 모든 예배와 개인의 신앙시간을 먼저 기준으로 정한다음에 다른 일들을 하게 된다면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5장8절 말씀과 같이 근신하고 깨어 있지 않으면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을 때 우리는 먹잇감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영적 전쟁터와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 남을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예배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말씀의 양식을 먹고 영의 힘을 비축하는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주목을 받아 크게 쓰임 받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모두 투명인간과도 같은 마귀와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많은 부분들을 점령당하고 있는데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의 현장인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풍성한 영감을 허락해 주시고 예배의 성공적인 삶을 통해 매일매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있는 우리의 신앙이 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의 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내주 교통 인도하심이 성공적인 예배의 삶을 통해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는 모든 영혼들의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계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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