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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광스러운 교회

하나님아들 2013. 6. 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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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러운 교회

엡5:25-27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오직 한 가지를 만드시기 위한 목적으로 역사하고 계시는데 그것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지금도 완성을 향하여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2장20-22절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영광은 곧 그 구성원인 우리 성도의 영광인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교회가 영광스러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교회가 예수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엡1장23절에 “교회는 그의 몸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님의 영광만큼 영광스런 존재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5장27절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일원인 저와 여러분이 얼마나 영광스런 존재인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능력 있는 만큼 우리도 능력 있고, 그리스도께서 영원하시므로 교회 역시 영원합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왕이시듯이 교회 역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왕 노릇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마귀의 일을 멸하셨듯이 교회 역시 주의 이름으로 마귀를 물리치며, 주님의 몸이 능력 있음 같이 우리 역시 큰 은사가 존재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하신 고린도전서12장27말씀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또한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에 거룩합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5장27절에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자기 안에서 실제로 흠도 점도 티도 없이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에 거룩한 곳입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속성이기 때문에 교회는 영광스러운 곳인 것입니다.

사도행전20장 28절에 교회를 일컬어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교회입니다. 즉 우리 성도들을 그렇게 사랑하신다 말씀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스바냐 선지자는 스바냐3장17절에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온갖 아름다운 보물로 단장한 새 예루살렘이 바로 우리 교회의 영광스러운 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요, 주님과 함께 다스릴 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본문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교회는 하나님의 피 값으로 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으로 산 것입니다. 우리가 ‘피 값’즉, 주님의 생명의 값을 어찌 계산할 수 있겠습니까? 계산 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가치는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주님이 엄청난 가치의 피 값을 지불하시고 살 정도로 사랑하시기에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또한 교회가 영광스러운 이유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부여 받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28장18-19절에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라고 하셨습니다. 이 귀한 일을 교회에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그 일은 천사도 흠모할 인생을 구원할 일입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러 감람산에 모였습니다. 제자들은 이제야말로 예수님이 이 나라의 임금이 되실 때가 되었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는 일보다 더 귀한 일이 복음전도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구원하는 성도의 직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로마서 1장 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바로 이 지극히 영광스러운 복음을 전하기에 영광된 것입니다.

둘째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세워진 곳입니다.

교회는 세상 건물과 같이 돈만 있다고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합당한 자들을 통해 그들의 신앙고백 위에 세우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외형적으로 멋지게 지어진 교회가 있다할지라도 그 모임의 지체들이 바른 신앙고백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교회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라는 이름이 반석이라는 의미를 가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 반석 위에”라는 말은 “이 베드로 위에”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합니다. 베드로가 고백한 바로 그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을 터로 하여 자기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고전3:11) 교회는 바른 신앙고백을 한 사람들 위에 세워집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안전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마태복음16장18절에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신 것은 다시 말해 “교회는 안전하다 왜냐하면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라는 말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 좋은 증거가 오순절에 있었던 그의 설교였습니다. 그는 자기를 교회의 터라 하지 않고 예수가 구원자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회개하고 돌아온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의 반석으로 고백한 교회를 형성하였습니다. 교회의 터는 예수님이었습니다.

모든 건축물들은 반석을 토대로 삼아 세워야 튼튼하게 오래갑니다. 이처럼 교회도 바른 신앙의 공동체 위에 세워져야 튼튼한 교회로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도 교회를 이기지 못합니다. 이것은 역사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기독교를 향하여 극심한 박해가 있었습니다. 300여년에 걸쳐 10여명의 황제들이 기독교를 핍박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박해가 주어졌습니다. 히11장37절에도 보면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라고 한 것을 보면 그 당시의 박해가 어떠했는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이 권세들을 이겼습니다.

지금도 로마에 가면 카타콤이라고 불리는 지하 무덤이 있다고 합니다. 박해를 피해 기독교인들은 이 지하의 무덤 카타콤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멋진 예배당에서 모인 것이 아닙니다. 시신을 옆에 두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희롱을 당하고 선찬 때에는 아이를 잡아먹는다고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어느 날 로마를 떠나야 했습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압류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로마가 교회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세계를 제패했던 로마는 사라졌지만 교회는 남았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중국의 교회가 이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49년 공산정권이 들어서고 교회의 문을 닫았습니다. 문화혁명이 일어나면서 모택동의 부인이었던 강청은 “중국에는 그리스도인이 없다”라고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교회가 사라진 것 같았지만 중국의 공산당도 교회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교회를 핍박했던 강청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20여년의 세월이 흐르고 다시 교회의 문을 열었을 때 100만이던 그리스도인이 그 열 배인 1000만으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중국의 그리스도인을 1억 이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결코 지옥의 문이 교회를 이길 수 없습니다.

반석 위에 세워진 지상의 교회는 언제나 전투적이라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항상 사단의 유혹과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도 이길 수 없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요란하다 하더라도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산돌의 공동체인 교회만큼은 안전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탁류에서 살아남고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에서 살아남기 원하는 자들은 지금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른 신앙 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장차 세워질 교회에서 어떤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로써 원소유자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에게 위탁하신 ‘천국의 열쇠’는 사도들을 위시한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하나님의 인정과 함께 자신들의 사역을 수행하고 그 권위를 세우는 데 있어 필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이 천국 열쇠는 여러 가지로 해석 할 수 있겠지만 마18:18-20절에 보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천국 열쇠는 이도라고 할 수 있고, 공동체가 드리는 기도에 대한 그리스도의 동참과 응답의 열쇠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셋째로, 예배는 교회생활의 중심입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면 교회생활은 무너지고 맙니다. 그런데 말세가 되면서 이 교회생활의 중심인 예배가 점점 폐해지는 현상들이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달 우리 교회가 속해 있는 지방회에는 80여개의 교회가 폐쇄되었다고 합니다. 히브리서10장25절에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참된 예배를 다시 회복하고,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시는 예배를 드림으로 교회생활을 잘하는 신앙의 성공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시는 예배는 준비된 예배, 즉 정성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관의 만남이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억지로 나오면 안 됩니다. 의무적으로 드려서도 안 됩니다. 최선의 준비를 갖추어서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막12장 30절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라고 하셨고 시122:1절에도 보면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야훼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고 고백한 것 처럼 우리도 다윗처럼 성전에 가자는 말만 들어도 기뻐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예배를 드린 다윗은 예배의 성공자가 됨은 물론, 인생의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교회에 나올 때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호6:6절에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말씀하고 있고 시편107편9절에는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나와야 만족을 주시고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예배하는 자는 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고 요한복음4장 24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영은 성령을 말씀하시는 것인데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으로 드리지 않는 예배는 종교의식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예배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하심입니다. 우리가 영으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흠향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령님은 지, 정, 의의 인격을 가진 분이시므로 성령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죽이고, 성령에 민감해야 합니다.

진리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어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요한복음14장6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까지 나갈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드릴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또한 진리로 예배드린다는 것은 말씀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7장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함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 축복과 치료와 기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면 이생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머리 속에 입력하는 속도보다 잊혀 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서 설교내용을 받아 적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매 주 마다 듣는 말씀이 엄청 난데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행할 수 없고 행하지 않기 때문에 자꾸 말씀과 멀어지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말씀을 잘 기억하지 못할 것을 아시기에 신명기에 보면 문에도 써 붙이고 이마에도 써 붙이고 손목고리에도 말씀을 매달아서 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산실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거룩하고 사랑스러우며 복음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예수님을 반석으로 한 튼튼한 교회, 또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성도들로 넘쳐나는 멋진 교회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출처 :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
글쓴이 : 민족의 어머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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