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맺는 신앙
요한복음15:1-16
“1.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는 오늘 ‘열매 맺는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성령의 은사는 큰 유익을 줍니다. 그러나 은사를 소유했다고 해서 다 경건한 신앙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 즉 신앙의 인격이 없는 은사는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괭가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전부가 아니라 부분적으로 주어지지만, 성령의 열매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총체적으로 맺어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무와 열매에 관하여 여러 번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늘나라에 심겨진 성도는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으면 주인이 와서 그를 제해 버릴 것입니다. 마태복음7장 16-20절에 보면 “16.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는 나무라고는 하지만 실은 포도 덩굴입니다. 포도나무는 관상용 나무가 아니기 때문에 볼품이 없는 나무입니다. 더구나 재목으로 쓰이기엔 턱없이 부족한 나무입니다. 그렇다고 땔감으로 쓸 만한 나무도 못됩니다. 포도나무는 오직 열매를 위해 존재하는 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열매 없는 포도나무는 찍어 불에 태울 수밖에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15장 1-16절은 우리가 하나님 자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이유도 오직 열매를 맺는데 있다고 말씀합니다. 결론적인 구절은 16절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15장은 던지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좋은 나무요, 당연히 좋은 열매가 맺혀지게끔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의 나무요 우리는 그의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맺는 열매도 분명합니다. 사과나무엔 사과가 달리고 배나무엔 배가 달리고 포도나무엔 포도가 달립니다. 우리가 예수나무에 붙어 있다면 우리에게 맺혀지는 열매 또한 예수 열매일 것입니다.
이처럼 열매는 그 나무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전혀 맺지 않고 육체의 열매만 맺는 사람은 진정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인지 의문을 가져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열매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인격, 예수님의 품성, 예수님의 존재를 닮으면 예수님의 인격의 열매가 맺어집니다. 또 다른 열매는 예수님이 하시던 일,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내가 하면 그것이 예수 열매인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엔 은사도, 열매도 있습니다. 은사는 외적인 것이고 열매는 내적인 것입니다. 은사는 섬기기 위한 것이고 열매는 존재, 즉 성품을 위한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 예수의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 인생,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입니다. 때론 나에게 소중한 이들이 떠나고 떨어져 나가고 잘려 나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 집중하여, 더 소중한 것, 영원한 것에 집중하여 열매를 더 맺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을 끄는 사실은 ‘열매’라는 말이 복수가 아니라 단수로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열매들이 모두 한 가지에서 나오는 아홉 가지의 다른 맛을 의미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홉 가지로 등장하지만 성령으로 맺어지는 모두 한 가지, ‘예수 열매’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홉 가지 열매를 다 맺어가야 합니다.
자녀가 태어났을 때 부모들은 자신을 닮기를 원하고, 닮았을 때 신기해하고 닮았을 때 기뻐합니다. 또한 남들이 보기에는 아닌 대도 닮았다고 우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님께서도 우리를 통해 가장 먼저 맺게 하시는 열매가 있는데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눠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의 열매입니다.
사랑은 가장 좋은 길이고, 첫 번째 계명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4장8절에서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하고 있고 7절에서는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사랑의 본질은 하나님이요, 사랑의 소속이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온 것이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의 뿌리가 하나님, 사랑의 출발이 하나님일 때 그것이 성령의 열매인 사랑입니다. 성령의 열매로서 사랑의 목적은 9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함과 같이,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구원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이 맺는 첫 번째 열매는 사랑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너무나도 기쁨을 얻고 행복을 얻기 위해서 온갖 몸부림을 칩니다. 심지어 의학에서는 우리 몸에서 슬픔과 불행을 느끼는 요소를 완화시키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고 많은 돈을 들여 행복을 만드는 약(해피 메이커)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기쁨에는 쾌락이 있고 희락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서로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쾌락은 육신적이요 희락은 영적인 것입니다. 쾌락은 순간적인 것인데, 희락은 영원한 것입니다. 쾌락이 소유를 통해 얻는 기쁨이라면 희락은 존재 자체를 통해 얻는 기쁨입니다. 환경 안에서 만들 수 있는 기쁨이 쾌락이라면 성령의 임재와 함께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 희락입니다. 쾌락은 환경의 지배를 받으나 희락은 고통 중에도 맺힐 수 있는 열매입니다. 참된 기쁨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희락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만 주어지는 신령한 기쁨입니다. 신명기33장29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야훼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함과 같이 신앙 안에서 얻는 거룩한 기쁨이 희락입니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기록한 편지로 그는 도무지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뻐했습니다. 상황과 환경을 뛰어 넘어 기뻐할 줄 아는 성령의 열매로서의 희락을 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고통 중에서도 내가 기뻐하니 너희도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빌립보서말씀 중에는 ‘강조어’들이 있습니다. “항상, 모든, 무엇에든지, 언제나”등 이런 단어가 여러 번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나 많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뻐할 이유가 있을 때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기뻐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정말 기도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래도 기뻐하고 감사하고 기도하라고 사도 바울은 강조어를 써서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상황과 환경에 좌우되는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존재 자체 때문에 행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전천후 신앙인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로 맺어지는 환경을 초월하는 기쁨인 희락인 것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화평은 환경이 가져다주는 화평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맺게 하시는 화평의 열매는 외부 환경에 구애됨이 없이 영혼 깊은 곳에 가득 채워지는 화평입니다. 이 화평만이 우리에게 두려움과 불안을 이기게 하고 강한 믿음과 용기를 줍니다. 하나님과 이웃과의 화평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화해의 상징입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과의 화해, 사람과 자연과의 화해와 조화를 상징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과 불화하게 되고, 그 후손끼리도 반목과 질시를 일삼으며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마귀와 죄가 존재하는 한 절대로 화해와 평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 보혈을 통하여 우리에게 화해와 평화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하시는 일이요, 분열과 살상을 일으키는 것은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평을 만들어가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맺어지는 첫 번째 열매는 사랑인데 그 사랑 안에서 희락과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열매는 환경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이 그러하듯이 우리의 성품이 성령이 맺어주시는 열매를 통해 사랑과 희락과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처럼 대함으로써 맺는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청지기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자신의 일을 위임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의 일, 주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모든 일은 우리의 일이자 주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일을 주님이 하시듯이, 주님의 자세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래 참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바탕이 됩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전에 시험해 보시기도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확신을 가지고 참는 것이 인내입니다. 어둡고 캄캄한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확신을 갖고 인내하고 참고 나가는 것입니다. 인내가 없는 믿음은 참다운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마음 가운데 믿음으로써 인내의 열매를 맺게 도와주십니다.
성경은 오래 참을 수 있는 지혜를 야고보서5장7-11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오래 참고 기다리는 농부의 지혜입니다. 둘째는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참았던 선지자들의 모습입니다. 셋째는 극한의 환란 중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여 좋은 결말, 즉 승리를 얻은 욥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기에 우리는 참을 수 있습니다. 오래 참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한 결말을 보게 해 주실 줄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은 반드시 선한 결말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 계시기 때문이고 성령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오래 참음이 필요한 경우는 많습니다. 영적 성장에 있어서 또는 대인 관계에 있어서 그리고 영적 전쟁과 시험에 있어서입니다. 야고보서1장2-4절은 말씀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성도들에게 시험은 인내를 만드는 좋은 도구입니다. 인내 즉 오래 참음을 통해 우리는 신앙의 강한 힘을 얻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참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에만 인내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자비’는 ‘부모가 자식에 대해 사랑 이전에 애처롭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사람, 특히 긍휼이 필요한 작은 자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나누는 행위’를 말합니다. 친절, 자비라는 헬라어의 ‘크레스토테스’라는 말과 예수 그리스도, 즉 ‘크리스토스’라는 말은 비슷합니다. 초대 교회 당시 사람들은 ‘크레스토테스’와 ‘크리스토스’를 많이 혼용해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친절하고 자애로운 분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원래 자비한 마음을 갖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런데 죄와 마귀가 인간 속에 들어와 이것을 파괴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듭나면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마음속에 사람을 살리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자비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성령님께서 맺게 해 주시는 자비는 자기의 위치나 영광을 주장하지 않으며 사랑의 기초 위에서 상대방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2장6-8절 말씀을 보면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7.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8.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예수님의 자비가 내 안에 가득 채워지고 성령님이 일하셔서 아버지의 마음을 부어 주시면 나를 통하여 자비가 이웃에게로 흘러 들어가게 됩니다. 자비는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는 작은 친절로 나타납니다. 성령의 마음으로 작은 자들의 신음소리를 듣고 함께 동참하는 사람들, 이들이 자비의 사람들입니다. 고통당하는 이웃에게 베푸는 작은 친절, 이것이 성령의 열매인 자비인 것입니다.
양선은 자비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양선은 ‘착함, 올바름, 너그러움, 덕스러움’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성령으로부터 나오는 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양선은 물질적인 자선 행위를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마지막 심판 날에 그대로 드러내도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 되도록 행해지는 것입니다. 즉 사람 보기에만 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양선은 자비보다 적극적이고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것으로서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선은 곧 행동하는 사랑입니다. 양선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나훔1장7절 말씀에 “야훼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라고 말씀하셨고 마태복음19장17절에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는 말씀에서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는 말씀은 선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초대 교회에 성령의 임재가 강력히 나타났을 때 가장 크게 맺혀진 열매가 바로 양선의 열매입니다. 초대 교회는 생명을 걸고 복음을 나누었습니다. 힘껏 물질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성도가 가는 곳마다 양선의 열매가 풍성했습니다. 어디든지 선행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로, 공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 구원받은 존재들입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역, 그것이 바로 양선이고 선행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향기가 품어 나와야 합니다.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은 사람들을 대할 때 풍겨나는 그리스도인의 향기로, 예수님을 닮은 인간관계를 통해 맺는 열매입니다. 갈등 속에 있는 인간관계는 성령님이 주시는 열매로 해결해야 합니다.
셋째는 예수님처럼 일하는 것을 통해 얻어지는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일을 맡은 청지기들입니다. 베드로전서4장10절 말씀에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사도 바울도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었다”고 고린도후서5장20절에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맡겨주신 일을 할 때에도 예수님처럼 일해야 합니다. 주님처럼 일하는 자세는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보면 충성의 반대말은 ‘반역’이 아니라 ‘게으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래 ‘게으름’의 반대말은 ‘부지런함’이어야 하는데 ‘충성’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깊은 교훈이 있는데 ‘충성’의 대적의 정체를 벗겨보니 ‘게으름’인 것입니다. 그래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 붙어서 나오고 ‘악하고 게으른 종’이 붙어 나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충성은 하나님을 위해 바쁘게, 신나게 살라는 부름입니다. 그런데 충성은 대가, 절제,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게으른 사람은 그것들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것이 부르신 자에 대한 불충이요 ‘악’인 것입니다. 성경은 충성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게으름을 이기고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이유는 더 주시고 싶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25장29절에도 보면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입니다. 충성의 신비입니다. 충성된 사람과 게으른 사람의 마지막 상황엔 엄청난 차이가 있게 됩니다. 게으름을 이기고 하나님께 충성된 자에게는 상급이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충성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더 나은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요한계시록2장 10절 말씀에 보면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충성의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힘으로 게으름을 이기고 충성의 열매를 맺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온유는 흔히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이라고 표현하는데, 잘 길들여져 있는 순종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곰이나 사자같이 길들여지지 않은 사나운 짐승은 험한 산에서 거칠고 험한 삶을 살며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기르는 가축은 온유한 짐승들로 사람의 보호와 돌봄을 받고 편하게 삽니다.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사나운 사람들이 잘 살 것 같지만 오히려 평안하게 살지 못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5장5절에 보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고 복을 누리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돌봐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마음속에 온유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온유를 배울 수 있습니다. 주께서 마태복음11장29절에 친히 이르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온유는 예수님을 바라보는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바라보면 닮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그 마음속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마음에 미움과 복수심과 원망이 사라지고, 언어가 부드러워지고, 그 성품이 예수님을 닮아 가는데, 그것이 바로 온유인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돌로 쳐 죽이려 했으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살려주시면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온유한 사람은 책망을 달게 받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요한계시록3장19절에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책망을 받을 때 온유한 마음으로 그것을 달게 받으면 자신의 신앙성장에 큰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로 맺는 온유는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의 승리를 가져다줍니다.
‘절제’는 ‘자기 스스로를 알맞게 조절하고, 분수에 맞게 조절하는 것’을 뜻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친 것은 좋지 않습니다. 나쁜 일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좋은 일에도 언제나 절제를 통해 균형이 잡혀야 합니다. 그럴 때 참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절제의 영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조절하여 사는 절제심을 열매 맺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정욕, 마음(생각)과 말, 행동들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의 모든 부분들을 절제함으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야 합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서 절제가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은 그것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절제야말로 다른 열매를 완성시키는 열매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제는 다른 열매들을 담는 바구니와 같습니다. 아무리 많은 성령의 열매가 맺혀도 담을 그릇이 있어야 합니다. 절제가 없다면 모든 열매가 쏟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절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을 잘 지키는 지혜입니다. 절제는 이미 우리에게 부어 주신 열매들을 소중히 간직하는 성품입니다. 결국 충성과 온유와 절제는 예수님을 닮은 사역의 태도입니다. 예수님의 사람, 성령님의 사람은 예수님처럼 사역합니다. 예수님을 대신하여 행함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은 우리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해주시고 복을 주신 이유는 많은 열매를 보기 위함입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고 요한복음15장8절에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으라!”고 명령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5장 전체를 읽어도 “열매를 맺으라!”는 명령형은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열매, 성령의 열매는 몸부림치고 발버둥 친다고 해서 맺는 열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열매는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저절로 맺혀지는 성령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5장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중 하나가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입니다. 15장1절부터10절까지만 읽어보면 “안에 거한다”는 말이 무려 11번이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란 열매를 맺지 못해 늘 가슴을 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묶여지고 하나가 되기 위해, 예수 안에 평안히 거하기 위해 애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히브리서 12장1-2절에서 신앙의 경주를 말할 때에 “1.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 성령의 임재를 구하면 성령의 열매가 맺히고, 예수님께 붙어 그분이 주시는 은혜를 받고 살면 예수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사랑과 희락과 화평의 열매를, 예수님처럼 대함으로 맺는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의 열매를, 그리고 예수님처럼 일함으로 맺는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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