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자
요나서3장1-3절 말씀
“1.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번 한 주간도 성령님이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요나서3장1-3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다시 시작하자”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언젠가 우리 목사님께서 예화로 말씀하셨던 내용입니다.
토마스 카알라일은 런던의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나 1837년 ‘프랑스 혁명사’를 집필하여 세계적인 역사학자가 된 사람입니다. ‘프랑스 혁명사’가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원고는 1834년에 일차로 쓰여 졌는데 그가 잠시 외출한 사이에 하녀가 버릴 원고인줄 알고 난로에 태워 버렸습니다.
토마스 카알라일은 너무 실망이 커서 며칠씩 밥도 못 먹고 잠도 자지 못하면서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더 좋은 원고를 쓰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답니다. 그것은 히브리서2장10절 말씀으로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라는 말씀이었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용기를 내 새롭게 역사를 쓰게 되었는데 그것이 불후의 명작 “프랑스 혁명사”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한두 번 실패해 보지 않고 성공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크게 성공한 사람은 거의 많은 실패를 거듭한 경험을 토대로 다시 일어나 시작한 사람입니다. 인생이 자신의 맘먹은 대로 술술 풀리면 좋겠지만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기에 그 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용기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는 인생으로 다시 일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실패하면 걱정, 염려가 찾아오는데 이것을 물리쳐야 합니다.
마태복음6장 25-34절에 “25.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다 보면 염려가 생기는데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 해답이 빌립보서 4장6절에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성도들은 걱정거리, 염려거리가 찾아오면 기도와 간구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눈이 없는 아이여서 온 집안이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4년이 지나도 아이가 없어서 근심하고 걱정하다가 아이를 낳았는데 눈이 없는 아이니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그런데 그 부부가 고백하기를, 중고등학교 때는 부지런히 교회 나가고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인데 결혼 후에 교회를 안 나가다가 기형아를 얻으면서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하고 교회에 나가는 기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생활 속에 크고 작은 염려가 있는데, 성경은 이때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염려를 풀어 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왜 염려를 하지 말아야하냐면 근심, 염려는 우리의 건강을 해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모든 병은 마음에서 오는데 근심, 염려로 인한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염려한다고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고, 잠 못 자고 중병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염려는 할 것이 못됩니다. 고린도후서7장 10절에 보게 되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염려’라는 말은 헬라어로 “메림나”입니다. ‘갈라버린다’는 뜻을 가진 ‘메리조’라는 어휘와 ‘마음’이라는 뜻을 가진 ‘누스’가 합해서 염려라는 단어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두 갈래, 세 갈래로 갈라지는 것이 염려입니다. 누가복음21장 34절에 보면 “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열매가 맺혀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 안에 세상을 향한 염려하는 마음이 더 크지 않나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마가복음4장 18절에서 19절에 보면 “18.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19.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축복의 말씀을 주신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 밭이 세상의 염려와 근심으로 가득 차 있다면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과 같아서 가시가 기운을 막아서 축복이 자리 잡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근심이 있다면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구하시고 근심하다가 육체의 질병, 정신의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보면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의 평안이 우리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예수님께 평안을 달라고 먼저 기도 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둘째, 실패에서 실패로 끝나는 아담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기 전에 세 번씩이나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그때마다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고 실패에서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나님이 물으신 것은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을 거신 것은 아담에게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하나님이 금지하신 선악과를 제가 먹었습니다.’라고 회개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담은 ‘내가 벗었으므로 숨었나이다.’라고만 대답했지 회개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이 물어보았을 때도 하와에게 책임을 전가했고 하와 역시 뱀을 핑계 삼으면서 세 번의 기회는 모두 자신들의 죄를 회피하는 변명거리에 불과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세 번이나 기회를 주셨지만 모두 변명하고 원망하면서 회개를 하지 않았기에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모두 잃은 것입니다. 생활이 어렵다고 원망하고 힘들다고 원망하고 부모자식을 원망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힘들다고 주의 길을 가는 것이 힘들다고 원망하는 것은 더구나 사람에게가 아닌 하나님께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잠 19장3절 말씀에 보면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고전 10장10절 말씀에도 보면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그들은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킵니다.
성경에 ‘원망’이라는 단어가 37번이 나오는데 그 중에 반 이상을 차지하는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지도자를 원망하여 광야에서 죽은 것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틈만 나면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출애굽기 16장 7절에서 10절까지 보게 되면 “7.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이기에 너희가 우리에게 대하여 원망하느냐 8.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9.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느니라 하라 10.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그들은 광야에서 생활하면서 물이 없다고 원망하고, 먹을 것이 없다고 원망하고 심지어 하나님이 모세만 지도자로 세웠냐고 하면서 원망하더니 그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하는 일까지 겪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하고 보아야 할 내용은 원망하는 것은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는 것과 또 원망한 그 한 사람만 죽는 게 당연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몇몇의 원망하는 사람들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젊은이에서 노인들까지 광야에서 다 죽고 오히려 어려서 전쟁에 나가지도 못 하는 스무 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을 길러서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누구누구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한 아담과 하와처럼, 또 하나님을 원망하고 주의 종을 원망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우리의 삶이 그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원망이라는 말은 ‘못마땅하게 여기어 탓하거나 불평을 품고 미워한다.’는 뜻인데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원망할 수밖에 없게끔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대가를 치러야 맞을 것 같지만 그러나 원망의 결과는 원망한 당사자에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부인이 죽자, 이방 여인인 구스여자와 재혼을 합니다.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미리암은 하나님이 모세와만 말을 하느냐며 불평의 말들을 쏟아놓습니다. 모세가 문제의 원인을 제공했다면 모세가 죄의 대가를 치러야 했겠지만 오히려 원망의 말을 쏟아놓은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려 진 밖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 사람을 불러 놓고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셨다고 민수기12장 6절에서 9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설사 우리에게 피해를 주거나 손해를 입혔다 할찌라도 신원하시는 하나님께 결과를 맡기고 우리의 입으로는 절대로 원망하는 말을 하지 말아서 죄가 문 앞에 와서 엎드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원망하고도 남을만한 삶을 산 사람 중에 두 번째 가라고 하면 서러워할 사람은 바로 요셉입니다. 남도 아니고 형들에 의해서 남의 나라의 종으로 팔려갔으니 억울하고도 원망스러운 삶을 살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 어떤 환경에서도 남의 탓을 하지 않고 열심히 산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39장 2절에서 3절을 보면 “2.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남을 원망하며 허송세월을 보내기보다 주어진 현실 속에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며 열심히 살았기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가는 곳마다 은혜를 베푸시고 애굽 나라까지도 구하는 일등공신으로 쓰임 받고 자기의 가족들을 위기에서 건지는 구원자로서의 멋진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욥기 1장 22절에도 보면 “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욥의 마음을 잘 알고계시는 하나님께서는 결국 갑절의 축복을 내려주신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새로운 뜻을 펼치시려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새로운 세계의 문을 두드리게 하셨다면서 오히려 기쁘게 새로운 일에 적응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심기일전해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길은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는 것임을 알고, 새로운 일을 위해 부지런히 두드려 보아야 합니다. 제2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이나 환경을 탓하지 말고 원망하는 일로 세월을 허비하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셋째, 실패에서 다시 일어나는 요나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요나는 구약의 12소선지자 중에 한 사람으로 스불론 땅 갓 헤벨 사람입니다. 요나는 여로보암 2세 때, 그러니까 B.C825년경 사람으로, 앗수르 도성 니느웨에 가서 그 죄악을 책망하고 장차 멸망할 것을 예언하라는 명령을 받고도 거역하여 다시스로 도망가다가 광풍을 만나 배가 파선할 위기에 처하자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요나는 실패 중에 염려하지 않고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물고기 뱃속에 있다는 것은 전혀 살아올 가망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가 회개하니 고기가 요나를 육지로 토해냈다고 요나서2장 10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회개하는 자에게 제2의 기회를 주신다는 희소식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의 삶은 어땠습니까? 우리도 요나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베드로는 굉장히 적극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지취적인 사람이여서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늘 예수님의 측근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자기를 부인할거라는 예언에도 그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까지 했었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히자 그는 예수님보다는 자신의 목숨을 선택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안 계시는 무덤을 보았으면서도 그는 갈릴리로 돌아가 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갑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몸으로 세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조반을 차려주시는데 그 때 베드로를 부르셔서 세 번 질문을 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나의 양을 치라!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승천을 앞두시고 모든 제자들을 향하여 마지막 당부를 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고. 예수님께서 다시 한 번 주신 기회를 베드로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오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했을 때 그에게는 정말로 성령이 임하셨고 삼천 명, 오천 명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는 열정과 적극성이 다시 되살아난 것입니다.
잠언 24장16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첫 번째 인생은 세상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십자가에 못 박혀 처절하게 죽은 실패자였습니다. 그 토록 열성적으로 따라다니던 제자들조차도 배신하고 자신들의 고향으로 내려가 버렸으니 누가 봐도 그는 실패자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죽음과 어두움을 깨뜨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인류의 구세주가 된 것입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워낙 어려워서 그는 한참 공부해야 할 나이에 아버지를 도와 농장 일을 해야 했습니다. 새엄마의 도움으로 책을 가까이 하는 습관을 기르게 되었지만 책이 흔하지 않은 상황에서 책 한 권을 빌리기 위해 수 십 킬로미터씩 걸어가야 했으므로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통독하고 특히 성경을 자주 읽었다고 합니다. 혼자서 문법과 수학을 독학 한 후 법률까지도 독학해 그는 27세에 변호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 차례 사업을 실패하고 또 수 십년에 걸쳐 국회의원이나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었지만 계속 낙선을 했었고, 부통령에까지 출마했지만 그는 또 떨어지고 맙니다. 신경 쇠약에 걸릴 정도로 그는 건강마저 잃게 되는데 아마 다른 사람들 같으면 인생 자체를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2년 뒤에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여 끝내는 당선이 됩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역경을 성공적으로 넘어선 훌륭한 모범사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도 꾸준히 역경을 딛고 일어나서 국회의원이 되었고, 마침내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링컨에게도 염려가 있었고, 실패도 있었고, 약점도 있었으나 더 큰 노력과 끈기와 기도로 성공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헬렌켈러도, 베토벤도 모두 역경을 극복한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에게는 많은 염려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성도들은 염려거리는 기도거리라는 것을 알고 기도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합니다. 살다보면 아담처럼 실패했을 때 기회가 있는데도 그 기회를 잘 사용하지 못해서 절망에 빠진 사람도 있고 실패했으나 요나처럼, 그리고 베드로처럼 다시 일어나 하나님의 뜻을 발견함으로 큰일을 한 사람도 있으므로 우리 모두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2010년의 새 해를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작년 보다는 올 해가 더 비전 있고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이 더 커지게 도와주시고 주어진 시간 시간을 잘 사용하여 주님께 영광 돌리는 우리의 삶이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주시되 걱정하고 염려하는 습관을 물리쳐 주시고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적극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성령님 도와주시옵소서. 병든 몸을 치료하여 주시고 예수님의 거룩하신 보혈로 수혈하여 주셔서 피는 맑아지고 새로운 세포로 채워 주시며 근육과 장기의 모든 조직들이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새 힘을 공급하여 주옵소서. 정신도 맑아지게 도와주시고 매일 아침 생명의 빛 되시는 하나님의 생기를 공급받아 활기차고 역동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영혼이 잘 되는 복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근심, 걱정, 원망, 좌절은 사단이 가장 좋아하는, 그래서 우리 인간들에게 가장 많이 던져주는 죄의 미끼임을 알고 한 시도 우리의 마음을 주님으로부터 늦추지 않는 영적인 삶으로 무장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빛과 진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헌금 축복기도
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생명의 호흡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생활에 필요한 물질 또한 공급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그저 받은 것이오니 주님께 드릴 때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드릴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이웃을 위하여서도 아낌없이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용기를 주시옵소서.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하셨사오니 하나님의 아름답고 신령한 것들로 풍성하게 되돌려 주실 줄 믿습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하나님 아버지께 드린 손길들을 통하여 홀로 영광 받아주시고 성령님,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오니 범사에 동행하여 주옵소서.
지금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내주 교통, 인도하심이 2010년을 활기차게 다시 시작하기를 원하는 모든 영혼들의 머리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계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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