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20120624) 예수님은 누구신가?

하나님아들 2012. 8. 2. 16:21

 

 

성경본문 요한복음 1:1~18

 

 

 

설교 예수님은 누구신가?

 

칠레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한 버스에 무시무시한 아무것도 거칠 것 없는 20대 건장한 청년 하나가 권총을 들고 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버스기사와 승객들을 위협하며, 금품을 털고 있었습니다. 그 버스에는 경찰출신도, 운동선수도 있었지만 권총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언행이 거칠어서 그 누구도 제압할 수도 없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어떤 작은 중년 여인 하나가 소리를 치며 막 꾸짖고 덤벼들어 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놀라서 말릴 틈도 없이, 아... 저 부인은 이제 죽게 생겼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강도는 어쩔 줄 몰라하며, 권총을 떨어뜨리고 냅다 피하기만 하였습니다.

알고보니, 이 중년부인은 바로 그 강도의 어머니였던 것입니다.

이 중년부인은 그 버스 승객들과 마찬가지로 공포에 떨고 있다가 보니, 그 강도의 음성과 외모가 어디서 본 듯했던 것입니다. 자세히 보니, 바로 자기 아들인 것을 알고는! 그 왜소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야단치고, 그 강도행위를 멈추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살다보면, 많은 사람들도, 많은 상황들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이나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 교회에 주일마다 또는 때마다 오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최근에 예수님을 믿으신 분들도 있고, 어떤 분들은 예수님을 오래전부터 믿으셨다고 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묻습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어볼 때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구원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실 것입니다. 하도 예배할 때, 하도 목사님께서 말씀하셔서 들은 교과서적인 답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나 자신 하나하나에게 “예수님”은 누구인가, 하나님께서 우리 한 명 한 명에게 예수님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우리 한 명 한명에게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서 살아움직이시는 것을 더 잘 알고, 이를 경험하며,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순식간에 바꾸어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의 실재, 예수님의 살아 움직이시는 모습을 잘 설명하면서, 예수님께서는 누구신가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누구시라고 했는지, 한번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3절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말씀이십니다.

아프리카에 어떤 부족들은 나무가 웃자라 쓸모가 없어지면 톱을 가지고 가서 베기보다는 온 마을 부족민이 그 나무 앞으로 몰려와서 “우리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너는 아무쓸모가 없어 죽어버려! 이렇게 외친다고 한다.”

그러면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나무가 말라 죽어버린다고 한다.

얼마나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 18:21)

 

또 아메리카 인디언 속담에 보면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말을 1만 번 이상 반복하면 당신은 그런 사람이 된다.” 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어찌보면, 입에서 나오는 말 자체도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시편 33:6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이렇듯, ‘말’ 자체가 가지는 힘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커다란 힘과 에너지를 가지고 있임을, 그리고 그 말로 통해 모든 것을 실제화되어 버리는 그런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1~3절을 보면, 세상에 창조될 때 말씀이 있었고,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는데, 곧 하나님과 동일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이 말은 하나님=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동일한 능력, 동일한 영, 동일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창조주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모든 세상 만물을 지었고, 이 지은 바 된 것의 관리나 운영 또한 이 말씀에 속한다는 뜻도 됩니다.

그러므로 단지 허상의 말이 아닌 실제화된 말씀... 바로 예수님께서는 바로 말씀이시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보면, 성경의 주에 말씀이란 헬라어로 로고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로고스란 말은 스토아 학파에서 섭리, 자연, 신과 우주적 영혼 등으로 불리워지기도 했습니다. 1세기 유대인 철학자 알렉산드리아의 필론은 로고스가 신과 우주를 매개하고 창조를 수행하며 인간정신이 신의 존재를 믿고 신의 뜻을 따르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 말은 실상 예수님의 사역을 보더라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적이나 표적을 행하실 때 주로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이 요한복음에 나타난 병고침의 사건들의 80%가 바로 예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능력이 있는 말씀으로 다 행하여졌습니다. 예를 들면,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실 때도 직접 가서 고치신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하셨고, 베데스다 연못에 있는 38년된 병자도,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가라”고 명하셨을 뿐 굿을 하고, 쌀을 뿌리고, 소리질러 주문을 외워서 그리 행하셨던 것은 아닙니다. 왜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병이라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있어서 인간의 몸이 부족함과 결함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면 병이 낫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부족함과 결함이 충족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말씀으로만 그 병이 낫습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은 누구로부터 나오는 것입니까? 만물을 만든 존재로부터 나와야 그 결함이 채워집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바로 세상만물을 만드신 하나님과 동일하시기에 모든 병을 고치시고 사람들을 병으로 괴롭히는 귀신까지도 내어쫒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서 복을 받기를 원하신다면, 병이 낫기를 원하신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받고 고난 앞에서 승리하기를 원하신다면, 예수님께서 바로 말씀이신 것을 능력과 하나님의 영의 말씀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그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시는 분입니다. 4절 함께 읽겠습니다.

생명의 반대말은 무엇입니까? 죽음입니다.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사람들은 말합니다. “아무것도 없고 그저 끝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것으로 우리는 끝일까요? 사람들은 육체와 정신, 그리고 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의 죄성 때문에 오직 육체와 정신만이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육체가 죽으면 바로 진짜 죽음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이 죽는 것” “영의 사망”입니다.

왜냐? 영이 사망하면, 우리는 사단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영이 사망하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육체의 죽음이후에도 우리의 존재는 희망이 없게 됩니다. 이것은 엄청나게 우리에게 두려운 사실입니다. 육체의 시간은 제한적이나, 영혼의 시간은 무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영이 죽은 사람들의 육체의 삶은 공허하기만 합니다. 영의 죽은 사람들의 삶은 어떠합니까? 이 공허함을 채우기 위하여 돈을 쫓아갑니다. 명예를 쫓아갑니다. 세상의 쾌락을 쫒아갑니다.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하든 스스로가 또 남으로부터 확인받고 싶어 온갖 방법으로 온갖 일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한다해도 영의 죽음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 생명의 근원이 그것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에 보면, 그 생명의 근원이 누구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바로 예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받아드릴 때 이 생명은 움직이고 우리 안의 영적인 죽음을 제거하고 우리의 영을 살리게 됩니다. 우리가 육체의 부활 또한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이루게 되지만 현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 영의 사망으로 세상풍파에, 사단의 영에, 병마에 시달리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명 되신 예수님을 우리는 받아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생명 되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영적인 사망으로 오는 현재 우리의 고난, 문제, 병마 이 모든 것들이 그 생명의 능력 안에서 제거될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4~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사람들 마음 안에는 참으로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긍정의 말을 좋아한다면서 꼭 두려운 마음쪽에 더 정신이 가고 마음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점집에 가보면, 점장이들이 항상 긍정적인 말보다는 부정적인 사실들을 알게 하여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공포심을 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굿도 하게 하고, 부적도 팔아먹는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사람들은 긍정보다는 부정에 더 약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배시간에 “하나님께서는 날 사랑하신다. 예수님께서 나의 주인되시니 난 세상의 풍파에서도 승리한다”라는 위로와 확신을 은혜로 받고도, 바로 예배 끝난후 교회 주차장도 못가서 그 은혜를 까먹는 일이 종종 우리 안에 있습니다. 왜요? 천지의 주제시고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데 왜 세상에 나가자마자 두려움을 가지게 되는 걸까요?

우리가 보면, 사람들은 다 몸이 건강해지려면, 규칙적인 운동과 야채위주의 식단, 기름진 것과 단 것을 멀리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이것을 다 지키며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왜요? 이렇게 유지하고 살려면 달고 맛있는 청량음료나 초콜렛... 우리의 혀를 즐겁게 해주는 것을 포기 해야 합니다. 그 잠깐의 즐거움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은 다이어트 약을 먹거나 비싼 헬스장을 가거나, 또한 여러 가지 시술로 건강을 유지하려 하지만 또다시 요요현상이 되어 전보다 더 나쁜 건강 상태를 가지게 됩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두려움에 더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빛으로 예수님이 오셨어도 그것을 잘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의 가치를 모르고 무시하였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요즘 교회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스캔들과 불미스러운 일들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이시고 생명을 가지신 예수님을 진짜 믿는 사람들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부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그렇게 생각되어집니다. 진짜 예수믿는 사람들이 저럴 수 있을까? 심지어 예수믿는 사람들이 진짜 더 해! 라며,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때문일까요? 우리 한국교회가 예수님의 빛되심 안에 들어가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믿는다 하지만 그 빛 안에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둠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경건의 빛, 거룩한 생명의 빛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9절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빛에 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2절~13절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 회복함 속에서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에서 빛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우리는 어떠한 자가 되겠습니까?

첫째, 14절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늘 깨닫게 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예수님께서 는 완전한 영으로 하나님이셨고, 또한 완전한 육체를 가진 사람이십니다. 그가 성육신하셨다는 것, 육체를 입고 우리와 함께 하셨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큰 기쁨과 힘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구원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의 신들은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합니다. 그저 세상사람들은 폭력적이고 강력한 힘을 가진 신들에게 벌벌 떨뿐, 그저 고통도 모르고 고난도 모르는 강력한 신에게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할 뿐입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삶에 있어 주체적이지도 못하고 맹목적인 의존일 뿐이어서 자신들에게 있어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들 스스로에게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와 같이 인간이 되셔서 우리의 삶 가운데 계신다는 것! 우리의 고통과 우리의 모든 희노애락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해결하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도 영광이지만 우리에게도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우리의 인생을 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광은 우리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까?

둘째, 우리 안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게 됩니다.

16절에 보면, 예수님으로 인하여, “은혜 위에 은혜”를 경험하며, 17절에 보면, 오직 예수님으로부터만 “은혜와 진리”가 온다고 하였습니다. 은혜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거저주시는 선물,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악 할지라도 좋은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1장13절-

 

성령을 통하여, 자신들의 자녀들을 돌보시고, 악한 영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세상풍파에서 인내하며 하나님의 뜻으로 온전한 승리를 이루게 하시는 것! 그것이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이렇다면 우리가 세상 살면서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이렇다면 우리가 세상 살면서 왜 슬퍼하겠습니까? 삼성재벌보다 더, 큰 백이 있는데 우리가 왜 낙심하며 살겠습니까?

은혜라는 것! 오직 주일예배 설교말씀이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만 믿어주면, 하나님만 믿어주면, 우리가 잠들어있을 때도 우리가 숨쉬는 순간마다 존재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진리는 무엇입니까? 바로 진짜인 것입니다. 세상에는 짝퉁도 많고 가짜도 많습니다. 그런데 가짜나 짝퉁을 사면 어떻게 됩니까? 가치가 없어서 나중에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 진짜 원리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시라고 살아있는 말씀이라고 위에서 함께 성경을 통하여 알았습니다. 진짜인 것을 잡을 때 우리는 가치 있는 것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언을 한다, 병을 치유한다, 그런 단순한 은사를 소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여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예수님 안에 있는 근본적인 힘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인간의 고통과 죄의 뿌리가 뽑혀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은혜로만 우리가 살아갈 때 우리 삶안에 있는 공포가 사라질 것이며, 오직 진리로만 살아갈 때 우리 안에 있는 헛된 우상들로 인하여 생긴 삶의 고민들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존재자체가 우리에게 진짜 복을 주시고, 우리에게 진짜 사랑을 주시는 예수님을 우리는 이제부터 진심으로 우리 마음 안에 영접하고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주인의 자리를 내어드리므로, 영적으로도 세상적으로도 승리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주의 오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진실로 어둠에 속하다가 빛의 자녀들로 다시 생명을 얻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말씀따라서 말씀되신 예수, 생명되신 예수, 빛되신 예수를 우리의 삶 가운데 받아들여, 그저 생각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도록 우리를 강권적으로 이끄소서. 이를 통해, 우리의 모든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모든 문제가 해결받게 하소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 축복을 다 아낌없이 누리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 열 방 교 회
글쓴이 : 열 방 교 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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