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심리치료의 목회적 적용
1. 서 론
필자는 1996년 가을에 『한국기독교 상담문화연구원』에서 상담 교육 과정의 하나인 '집단심리치료'(Group Psychotherapy)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심리치료 과정에서 역동적인 치료의 현상들을 체험하게 되었다. 필자가 집단 심리치료 과정에 참여하게 된 개인적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아래의 내용은 치료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필자 자신이 진정으로 치료받고 싶었던 두 가지 문제를 그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동료들에게 발표한 부분이다.
첫째, '분노의 감정'에 대한 건강한 자기 조절 능력(Self-Control Ability)을 지니고 싶다.
1.1 "한강에서 뺨 맞고 마누라에게 화풀이한다"는 옛 속담처럼 A라고 하는 장소 또는 사람에게서 화가 났거나 불쾌한 일을 겪었을 경우 B, C의 장소나 사람에게 그대로 그 감정이 노출된다거나 A에게 전이된 감정을 B나 C에게 투사하여 어색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경우가 많다.
1.2 화가 나면 극단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간혹 행동으로도 옮기는 경우가 있는데, 시간이 지나 그 흥분과 분노의 감정이 가라앉고 나면 그 행동의 결과에 대해 무척 후회하게 된다.
1.3 상대적으로 비교 해 볼 때 지나치게 일(Works)이나 사물에 대해 예민하며, 언어사용이 거칠고 퉁명스럽다. 그리고 원하는 바대로 일이 잘 진전되지 않을 때에는, 쉽게 짜증난 표정이 노출되어 주위 사람들을 긴장하게 한다.
1.4 1.3과 비슷한 이야기인데, 마땅히 되어야 할 것이 되지 않을 경우나 어떤 물건이 거기 있어야 하는데 딴 곳에서 제멋대로 놓여져 있는 경우에도 극도의 분노, 좌절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분노의 감정에 내 자신이 함몰될 때, 특히 아무도 없을 경우에는 스스로 객관자가 되어 최대한 감정을 조절 해 볼 수 있지만, 한 사람이라도 내 곁에 있게되면 서로가 매우 불편해진다.
둘째, '무기력' 또는 '허탈감' '불안감'에서 해방되고 싶다.
2.1 감정의 기복이 매우 크다. 사람들과의 대인관계가 비교적 원만하지만 사귐, 교제의 場에서 기분이 매우 유쾌하고 좋았다가도, 돌연 이유 없이 우울해지거나 마음이 착찹 해지거나 혼자 있고 싶어 지기도 한다.
2.2 많은 일을 책임자의 직책으로 활동하다보니 체력이 점점 소모된다. 결국 일하지 않는 시간도 일의 연장이 되어 체력적, 정신적 무기력증에 시달리게 된다.
2.3 일을 하면서 분노의 감정을 가장 많이 느꼈기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많이 생긴다.
2.4 아직은 학생신분이므로 공부를 해야 할 터인데 '삶의 현장에 위기'가 자꾸 내 목을 졸라대기에 허탈하고 불안하다. 공부가 무슨 유익이 될 것인지 잘 모르겠다. 삶의 현장은 늘 불안하다.
필자는 이처럼 늘 상한 감정의 바다 한 가운데 사는 것 같았다. 마음속에서는 필요이상의 "분노"가 자꾸 일어났다. 이런 감정의 상태는 나아지기보다는 오히려 계속 악순환 되어갔다.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필요이상으로 반응하는 '내 안의 나'는 항상 실존적으로 흔들리게 하는 결정적인 딜레마였다. 결국 이 문제는 인생에 가장 큰 고민으로 다가왔고 이러한 이유가 집단치료 과정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논문은 필자 자신이 집단치료 과정에 참여하면서 겪었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그러한 이유에서 필자는 이 논문의 성격을「경험논문」이라고 말하려 한다. 필자는 여기서 집단심리치료가 21세기 목회 비전을 꿈꾸는 목회자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수 있겠는가? 를 생각해 보려 한다.
2. 혼선된 용어의 바른 이해
한국에서는 지금 '상담(相談)의 붐'이라 해도 될 만큼 상담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고조되어있다. 하지만 이토록 많은 관심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상담문화는 그 분야에 쓰이는 용어 하나 제대로 정리되어있지 않은 실정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부분에서 혼선된 용어들을 바르게 정리하고 동시에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물론, 앞으로 상담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려 한다. 특별히 용어구별에 대한 인식은 집단치료를 바르게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반드시 필요 불가결한 요소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구별이 잘 안되는 용어는 돌봄(Care)과 상담(Counseling),그리고 심리치료(Psychotherapy)에 대한 용어이다.
돌봄(Care)은 "예방"의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나 병원, 교도소에서 신도들이나 환자들을 보살피고 위로해주고 지지해주는 일반적인 행위를 지칭한다. 돌봄은 단기적으로 설교나 세미나를 통해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많은 사람에게 한 번에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돌봄의 용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발생을 미리 예방하는 차원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돌봄은 성장을 목표로 하며 지시적 성격을 지닌다.
상담(Counseling)은 돌봄(Care)과는 달리 내담자의 동기부여가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상담의 목적은 문제의 증상을 해결하는 것이며, 성장에 저해되는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상담자가 교육적 정보를 제공하여 증상 중심적이고 현재(Here & Now)를 중심으로 '인식의 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다.
심리치료(Psychotherapy)의 목적은 "치료" 그 자체에 있다. 문제를 파악하여 그 증상의 원인을 심층적으로 통찰하고 현재보다는 과거 중심적으로 접근하여 그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내담자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온전한 인간, 자립적으로 살아가도록 치유하는 것이다. 또한 이 심리치료는 장기간의 시간을 요구하며, 의식과 무의식을 다루어 정서적이나 행동의 장애를 교정하고 성격구조를 변화시키며 무의식의 세계에 잠재되어있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다룬다.
돌봄(Care)과 상담(Counseling), 심리치료(Psychotherapy)의 관계를 넓은 의미에서 나타내보면 [심리치료 ⊂ 상담 ⊂ 돌봄]과 같다. 돌봄 속에 상담이 그 속에 심리치료가 포함된다고 생각하면 쉽게 개념 정리가 될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엄격히 구별되는 이 용어들의 이해를 통해 필자가 참여한 집단 심리치료(Group Psychotherapy) 프로그램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가겠다.
3. 집단 심리치료
필자가 참여한 집단심리치료(Group Psychotherapy)
필자가 참여한 집단치료는 상담자를 위한 과정이다. 이 과정은 보다 효율적인 전문 상담자가 되기 위하여 상담자 자신의 내면적 치유과제들을 치료하는데 일차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고, 집단구성원들의 피드백(Feedback)을 통해 자신의 상담태도와 기법(Skills)을 발전시키는데 이차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집단상담의 장점은 개인상담 방법의 한계를 넘어서는 상담방법으로서 개인상담보다는 집단구성원에 의한 치유능력이, 보다 효율적인 상담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상담이념을 근거로 한다. 그러면 여기서 집단치료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숙지하고 있어야 할 집단에 대한 용어의 바른 이해와 '집단심리치료'와 '집단상담'의 차이점을 알아보자.
집단의 성격
각주 4)에서처럼 4가지 유형의 집단이 서로 차이는 있으나 지도집단을 제외하고 나머지 집단들 속에서는 집단역동이 매우 강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집단치료에서 말하는 '집단'은 흔히 일반적으로 쓰이는 '집단'이라는 용어와는 의미가 다르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 집단은 개인들의 집합체로서의 일반적인 의미와는 달리, 상호작용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는 역동적인 집단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집단치료에서 만나는 집단은 다른 집단생활과는 달리 경쟁적인 관계를 떠나서 상호간의 이해심과 협동심을 촉진 시켜주는 관계를 말한다. 이런 집단 안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위로와 지지와 사랑을 주며, 자기의 인격적-정서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집단동료들로부터 배척 당하지 않는다는 신뢰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서로가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공감하면서, 진실로 자기는 "이상한 사람", "문제가 있는 사람", "비정상적인 사람"이라는 의식을 버리고, 서로 공감하고 다른 사람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주며 자신의 문제를 통찰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또한 자신도 다른 동료들을 이해하고 도와주면서 자기 자신과 타인을 더 이해하게 되고 수용하게 된다.
집단심리치료의 특성과 목적
집단심리치료의 성격을 말하려면 앞에서 정리한 용어구별의 시각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그 이유를 집단상담과 비교하여 설명하면 집단심리치료의 성격이 분명하게 부각되기 때문이다. 집단상담은 문제증상을 파악하여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증상을 해결 해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집단심리치료는 심리적인 원인에 초점을 두어 느낌의 변화를 통하여 성격의 교정을 그 목적으로 한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집단심리치료는 "치료"를 위한 집단이다. 이 "치료"라는 용어를 상담문화원의 원장인 심상권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치료는 마술(Magic)이 아니라 과정(Process)이다." 이것은 맹장수술을 한 환자가 수술이 끝나고 바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회복기를 거쳐 점진적으로 건강을 되찾아 가듯이 집단심리치료에 참여하여 "수술"을 받은 사람은 회복의 단계를 거쳐 점차적으로 건강해져 가는 것이다. 이처럼 집단심리치료는 치료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러한 치료는 장기간의 시간이 요구되어지며 여러 가지로 얽히고 섥힌 매듭을 하나씩 풀어가듯이 경험과 검증을 반복하는 과정인 것이다. 집단심리치료의 목적은 내담자로 하여금 "변화"를 요청한다. 이 변화는 고통과 아픔을 수반하지만 이 아픔과 고통을 피한다면 결국 성장의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이다. 성장은 자기노출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만일 자신을 방어하고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지 않으려고 본인이 저항하거나 방어기제를 사용한다면, 치료의 효과는 절감될 수밖에 없고 성장의 기회를 잃게 되고 만다. 그 자리는 순수해지는 자리이며, 내 진심만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것이지, 잔재주나 테크닉만으로는 다른 사람이나 자기자신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없는 것이다.
4. 집단심리치료의 구성
집단심리치료에서의 역할
집단심리치료의 구성은 주 치료자와 보조 치료자 그리고 집단구성원으로 이루어진다. 집단 구성원들은 6∼10명 정도가 적당하며 그 이상, 그 이하가 되면 치료의 효과가 절감된다. 치료실 안에서는 4가지의 역할이 있다. 그 역할은 환자의 역할, 집단구성원의 역할, 보조치료자로서의 역할, 그리고 주 치료자의 역할이다.
① 환자(내담자)의 역할 : 그룹구성원 중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신이 치료받고 싶은 내용을 적어와 15분에서 20분 정도 자신의 문제, 갈등내용의 요약과 그 출발점, 그리고 치료받기 원하는 내용을 이야기한다. 환자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최대한 솔직하고 개방적인 자세로 임해야 하며 방어하는 자세는 지양해야 한다.
② 집단구성원의 역할 : 발표하는 동료가 환자가 되어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으면 집단구성원은 각자 치료자가 되어 내담자의 아픔에 공감해주고 무조건적인 긍정과 지지를 보내주며 문제의 해결과 내담자가 문제를 통찰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준다. 설령 집단구성원이 상담교육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운동경기에 선수로 참여하여 경기를 할 수는 없지만, 경기를 볼 수 있는 '눈'을 누구나 가지고 있듯이, 진실성과 사랑으로 환자의 문제를 진단할 수만 있으면 그는 최고의 치료자가 되는 것이다.
③ 보조치료자 역할 : 이 역할은 주 치료자의 의도를 파악하여 예측하고 치료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역할이다. 집단구성원들의 역할을 촉진하며 환자를 보살피는 역할도 동시에 해야한다.
④ 주 치료자 : 다른 집단구성원과 우·열이 없으나 필요시에 개입한다. 비교를 하자면 수술실에서 주 치료 의사와 주변에 레지던트들이 있듯이 모든 치료를 총괄하고 치료의 방향을 이끌어간다. 주 치료자는 전문적인 훈련과정을 거친 사람이어야만 가능하다.
현대목회상담은 권위적인 상담자 위주의 전통적인 이론, 즉 내담자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 기술(Skills)로서만 감당하려 했던 기존 목회상담의 한계성을 발견하고, 효과적인 목회상담 방법은 기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를 살피는 것으로 방향 전환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그 대표적인 학자가 로저스(C.Rogers)인데, 그는 상담자와 내담자의 치료관계가 강하면 강할수록 치유는 활발하게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계에서 내담자는 치유자를 신뢰하게 되고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치유가 활발하게 일어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관계를 형성하는 단계에서는 무조건적으로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각, 객관적인 공감, 진실성, 따뜻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기법은 상담의 기술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간 관계 속에서도 충분히 이루어져야 하는 내용이다. 이처럼 상담에서 중요한 점은 기교적인 잔재주가 아니라, 진실한 사랑을 표출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깊은 공감과 이해, 지지하고 지탱해주는 것이다.
탐색의 과정에서는 육하원칙의 질문보다는 내담자의 느낌을 묻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원인을 묻는 질문보다는 상황을 묻는 질문을 해서 내담자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통찰 해야한다. 그러나 절대로 상담자의 호기심에 의한 질문이나 임의로 판단하고 해석하는 자세는 지양한다.
치료의 과정은 내담자로 하여금 변화하도록 도와주는 단계이다. 과거에 억압된 감정을 풀어주거나 잘못된 인지(認知)를 찾아서 치료하는 단계이다. 그 다음에 종결의 단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종결의 단계에서는 이제까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고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정리하면서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명확하고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집단치료에서는 집단구성원들이 이 치료과정을 거치면서 동료의 아픔을 느끼고 문제를 파악하게 되고, 치료의 전반적인 흐름은 주 치료자가 진행하게 된다. 집단치료에서는 주 치료자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집단구성원들이 관망의 자세로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치료자로서 동료의 문제를 진단하고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아래의 표는 집단구성원들이 기본적으로 숙지하고 사용해야하는 치료에 필요한 기법들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이 기법들을 사용할 때에는 적당한 시기에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만일 치유관계 형성에 사용해야 할 기법을 종결의 단계에서 사용한다던지 치료의 기법을 관계형성의 단계에서 사용한다면 치료의 맥을 단절시킬 뿐만 아니라 치료의 효과도 절감시킨다. 이러한 이유로 집단치료에서는 시간의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
■ 집단심리 치료실에서 사용되는 치료자의 기법(파일에서는 볼 수 있음)
치료실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
집단심리치료를 통해 도달하려 하는 궁극적 목표는 사고의 변화, 느낌의 변화, 행동의 변화이다. 현대목회상담의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바뀌기도 하고 그 느낌에 의해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결정되기도 하고, 또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생각이 바뀌고 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특히 심리치료나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잘못된 느낌이 원인이 되어, 자신이 원하는 행동으로 표출되지 않는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치료실에서는 "느낌"을 중요시하며, 이러한 내담자의 언어적 또는 비언어적인 행동 속에서 집단구성원은 느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더구나 한국사람들은 이성보다는 감성이 지배하는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기분이 나쁘면 옳은 것도, 문제가 되는 것이 한국사람들의 보편적이 정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화는 유교적인 세계관 속에서 느낌은 유치한 것이고 느낌은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생각과 아울러 느낌을 도덕적으로 판단하여 '좋은 느낌'과 '나쁜 느낌'을 나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한국남성들은 느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것은, 느낌이 죽은 것이 아니라 느낌을 표현하는 기능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여성들은 느낌을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한국의 여성들은 부부 관계, 친구, 연인의 관계에서 느낌을 원만하게 주고받지 못해 오해와 갈등들이 빚어지는 현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치료실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해야 할 기본적인 기법이 있다. 그것은 경청기법이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소리가 있는데 머리의 소리, 마음의 소리, 몸의 소리이다. 경청은 이 세가지의 소리를 구별하여 듣는 것이며, 그 소리에서 "느낌"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흔히 우리는 문자적인 경청을 하기 쉬운데 말하는 사람 중심으로, 그의 언어적이거나 비언어적인 표현(Body language, 침묵, 웃음, 신체언어, 눈물...)에서 "느낌"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 경청은 듣는 사람의 심리적인 상태와 몸의 상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경청을 하지 못하면 환자의 문제를 파악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가 경청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몸이 아프면 남의 말이 들리지 않듯이 자신의 마음속에 상처가 많거나 응어리가 많으면 자신의 소리에 집착하여 남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되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적인 상담자, 목회현장에서 상담자의 역할을 해야만 하는 목회자는 이 '느낌"을 함께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치유가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집단심리치료에서의 참가자 규범(規範)
구성원들은 아래와 같은 규범들을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첫째는 시간엄수다. 집단심리치료는 흐름이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이러한 흐름을 방해할 수 있고, 치료를 받는 환자에게는 자신의 문제를 완전히 개방할 수 없도록 분위기를 만들게 되며, 지각하는 사람 역시 구성원들의 흐름을 읽기가 힘들게 된다.
둘째는 변화하는 것이다. 참가자는 자기 자신의 변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한다. 자신의 변화의지에 따라 치료의 효과는 커지기 때문이다.
셋째는 공감, 경청하기이다. 참가자는 다른 참가자들의 희노애락의 감정에 대해서 공감하고 경청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넷째는 평가를 조심해야 한다. 참가자는 다른 참가자들의 생각과 느낌을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중요하며 감정은 가치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섯째는 솔직해야 한다. 참가자는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여섯째는 자기개방과 모험의 시도이다. 참가자는 다른 참가자들이 표현하는 반응을 경청하는데 노력하고, 자기에게 익숙하지 않는 언행을 실행할 수 있는 모험을 하도록 노력해야한다.
일곱 번째는 비밀보장이다. 참가자는 다른 참가자들의 신분과 사생활에 대한 내용을 타인에게 절대로 누설하지 말아야 한다.
여덟 번째는 공격적인 행동을 조심하고 독점을 자제해야 한다. 참가자는 다른 참가자들을 공격하지 않도록 해야하며,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들로 과정을 독점하지 않도록 노려해야 한다.
아홉 번째는 집단치료 이후 집에 가서 꼭 그 날 일지를 작성해야한다. 이 일지는 자신의 경험과 통찰력을 글로 표현함으로써 투명성과 새로운 통찰을 하게된다.
열 번째는 치료기간 중에는 집단구성원들과의 사적인 교제를 금해야한다. 사적인 교제는 오염된 관계가 되어 치료에 방해가 될 수 있다.
5. 필자의 경험
집단치료의 흐름
집단심리치료의 과정은 전부 12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번째 시간은 자신의 별칭을 짓고 별칭이 나타내 주는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자신의 문제를 간단하게 발표하는 것으로 끝난다. 첫 시간에 참여하면서 가장 놀란 사실은 처음으로 만난 사람들이 너무도 솔직하게 자신을 개방하는 것을 보고 이 집단이 다른 집단과는 다른 모임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하였다는 점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자신을 개방하는 모습을 보고 어디서도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함과 신뢰감이 형성되었으며, 기대감이 앞섰다. 그 후 2주간은 집단치료에 대한 이론적 강의를 들은 후, 첫 시간에 약속한 순서에 따라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었다.
3시간 동안 진행되는 심리치료단계는 모두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처음에는 지난주에 치료받은 사람이 일주일을 보내면서 자신의 치료되고 변화된 모습을 이야기하고 치료에 참여했던 구성원들도 이 사례를 들으면서 자신에게 변화된 부분이나 통찰된 것을 발표한다. 그 다음 몸의 긴장을 풀고 치료실로 들어간다.
15분에서 20분 정도 그 날 발표하기로 약속했던 환자는 자신의 문제를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다른 동료들은 그 이야기를 공감해 주며 문제를 파악하고 주 치료자의 치료를 돕고,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준다. 치료가 끝나면 치료실에서 나와 뒤풀이를 갖는다. 이 뒤풀이는 상담기법에 대한 질문이나 치료실에서 어떤 느낌이 오고 갔는지 치료실에서 있었던 일을 객관화시켜서 이론적인 접근을 시도해 나가는 시간이다.
김남순 양의 사례
여기서는 필자 자신의 환자로서의 경험을 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느끼며 아래의 사례를 제시함으로 집단심리치료의 구체성을 대신하고자 한다. 이 사례는 환자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치료에 관계되지 않은 요소들을 상당부분 바꾸었고 이름도 가명을 사용하였다.
김남순(가명)양은 20대 중반의 여성으로서 상담계에 종사하고 있다. 그녀의 첫인상은 자신감이 넘쳐 보였고 당당하며 여성적인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그녀는 유년기를 지나 '나(ego)'라는 개념이 형성 된 초등학생이 되고 부터 그녀의 생활은 그리 즐겁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녀에게는 언제나 이길 수 없는 경쟁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경쟁자는 항상 그녀보다 키가 컸고 나이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이나 할머니는 항상 그 경쟁자에게 많은 배려를 하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항상 '누구누구의 동생'이라는 간판을 달고 다녀야만 할 정도로 학교에서도 그 경쟁자를 이길 수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육성회 회원을 항상 반장인 경쟁자의 반에서만 하실 뿐 그녀의 반에서는 못하셨다고 하신다. 그녀가 지금도 가슴이 아픈 것은 경쟁자와 싸우면 항상 부모님은 경쟁자의 편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오빠라는 이유였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지금도 '위계질서'라는 말을 싫어하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이유 없이 복종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그 경쟁자가 연장자의 이유보다는 남자라는 또 다른 이유 때문에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게되었다. 그녀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가정적인 성격인데도 불구하고 가사노동을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좋아서, 자신이 그렇게 보이도록 노력했었다고 했다. 지금은 올바른 여성학적인 인식을 가지고 인간으로서 자신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요리를 하고 가사일을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여성인 자신이 참으로 싫었다고 했다. 지금도 여전히 자진해서 요리를 할 뿐 부모님이 시키는 가사일은 잘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녀에게 가장 힘든 것은 자신이 사랑했던 할머니의 사랑이 오빠에게로 많이 간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오빠는 노력하는 것에 비해 일이 잘 풀리는 사람이었고,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왜 나만.."이라는 기도를 많이 했다고 한다. 상담을 해서인지 그녀는 자신의 신앙이 여기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녀의 가정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화목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한다. 그녀는 부모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성장했고 상담을 하면서도 많은 통찰을 얻었지만 과거의 감정이 씻기지 않았다고 했다. 이제는 이런 문제에서 좀 벗어나고 싶다고 하면서 울먹거렸다. 그녀는 이제 멀리 유학을 가는 오빠와 편하고 자연스럽게 지내고 싶다고 한다. 오빠는 너무 착해서 동생에게 잘해주는데도 화를 내는 자신이 너무 지겹고 이제는 잘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근원적인 행복을 누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야기를 하면서 간간이 눈물을 보였지만 자신의 감정을 많이 억제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집단구성원들은 그녀를 진심으로 공감해주고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주면서 감정을 끌어올리도록 노력하였다. 그 과정 속에서 주 치료자가 개입하였다. 그녀 앞에 빈 의자를 두었다. 그녀는 그 의자에 오빠를 불러서 오빠에게 서운한 말들을 다하고 솜방망이로 분노의 감정을 풀기 위하여 내리쳤다. 내리치면서 그녀는 "지겹다"라는 말을 되풀이했으며 울면서 계속 내리쳤다. 그 후 빈 의자에 앉아서 오빠와 얘기를 나누면서 화해를 했고 오빠의 입장에서 대화를 했다. 잠시 후 주 치료자는 그녀에게 눈을 감고 "오빠"를 계속 크게 부르도록 시켰다. 그녀는 생각만큼 큰소리를 지르지는 못했지만 옆에 있는 내 자신도 그녀가 울면서 오빠를 부르는 소리에 가슴이 뭉클함과 오빠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집단구성원들과 주 치료자에게 그녀는 다음과 같은 진단을 받았다. 오빠도 똑같은 가부장 문화 속에서 희생자일뿐,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올바른 인식의 통찰을 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앞으로는 잃어버린 오빠를 찾는 것이 과제로 남았다. 또한 부모님에 대한 분노의 감정은 없는가? 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 있었고,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을 배우고 오빠와 진심으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해 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 다음 주에 그녀는 밝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직은 힘들지만 오빠를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 이제는 혈육으로서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 신경써서 습관화된 신경질적인 행동을 삼가하고 있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잃어버린 오빠는 물론 잃어버린 하나님도 찾고 있다고 말했다.
6. 결 론
목회상담의 목표는 인간의 온전성(Wholeness)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온전성'이라 함은 한 송이 꽃과 같이 살아있고, 성장하며 항상 변화하는 유기체로서 비유되며, 온전성에는 각 부분이 있고 그것이 존재하는 환경이 있다. 클라인벨은 이러한 온전성을 꽃에 비유해서 꽃의 중심에는 건강한 영성이 있고, 그 영성을 발판으로 한 신체, 인간관계, 생태계, 일, 사회구조, 놀이, 마음이라는 꽃잎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 요소 중에 어느 하나라도 결핍되면, 목회상담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전인건강(Well Being)에 이를 수 없다고 한다.
또한 그는 온전성이 존재하는 환경으로서 '사랑'을 특별히 강조한다. 사실 '사랑'에 대한 강조는 클라인벨 만의 독특한 사고는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이란 생명체들을 완성하고 충족시키는 그 무엇으로 늘 이해되어져 왔다. 바로 그 '사랑'이 전인건강의 핵심인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전인건강의 꽃을 온전히 피우기 위한 토양이자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목회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목회는 엄밀하게 말해서 목회자 자신과 교회 공동체 구성원들의 온전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목회자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어설픈 잔재주나 지식이 아니라 순수하고 정열적인 사랑이다. 순수하고 진솔한 사랑은 목회자 자신이 건강할 때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목회자의 성장과정 속에서 쌓여온 분노나 슬픈 감정, 왜곡된 자아관들이 억압된 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 그의 사랑은 절대로 온전하게 표출될 수 없다.
목회자의 온전한 사랑이 표출되기 위해서는 그 억압된 감정들을 풀어내고 그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작업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심리치료나 상담은 이러한 작업을 가능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우리는 지금 20세기에서 21세기로 나아가는 전환점에 서있다. 우리가 제3의 천년대를 시작하는 21세기를 준비한다는 것은 어떤 거창한 프로젝트를 세우고 어떻게 하면 교회를 양적-질적으로 성장시킬 것인가를 고민하자는 것이 아니다. 또는 어떤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의 습득과 훌륭한 인격을 갖추자는 것도 아니다.
필자가 이 경험논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주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순수하고 고귀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표출하여, 그것으로 21세기 목회를 준비하자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는 이 '사랑'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필자는 집단심리 치료의 경험 속에서 깨닫게 되었다. 집단 내에서 활발하게 치료가 이루어질 때는, 고도의 기술이나 지식이 사용될 때가 아니라 온전한 사랑이 표출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또한 필자는 치료실에서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였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을 통해 다른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공감 해 주는 관계 속에서, 점진적으로 변화되는 새로운 차원의 경험이었다. 만일 우리 자신의 삶이 병들어 있다면, 21세기에 대한 목회비전은 여전히 불투명할 것이며 물위에 떠있는 기름과 같이 시나브로 물 안에 있는 모든 생명들을 파괴시키고 말 것이다. 명심해야 될 일이다.
1. 서 론
필자는 1996년 가을에 『한국기독교 상담문화연구원』에서 상담 교육 과정의 하나인 '집단심리치료'(Group Psychotherapy)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심리치료 과정에서 역동적인 치료의 현상들을 체험하게 되었다. 필자가 집단 심리치료 과정에 참여하게 된 개인적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아래의 내용은 치료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필자 자신이 진정으로 치료받고 싶었던 두 가지 문제를 그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동료들에게 발표한 부분이다.
첫째, '분노의 감정'에 대한 건강한 자기 조절 능력(Self-Control Ability)을 지니고 싶다.
1.1 "한강에서 뺨 맞고 마누라에게 화풀이한다"는 옛 속담처럼 A라고 하는 장소 또는 사람에게서 화가 났거나 불쾌한 일을 겪었을 경우 B, C의 장소나 사람에게 그대로 그 감정이 노출된다거나 A에게 전이된 감정을 B나 C에게 투사하여 어색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경우가 많다.
1.2 화가 나면 극단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간혹 행동으로도 옮기는 경우가 있는데, 시간이 지나 그 흥분과 분노의 감정이 가라앉고 나면 그 행동의 결과에 대해 무척 후회하게 된다.
1.3 상대적으로 비교 해 볼 때 지나치게 일(Works)이나 사물에 대해 예민하며, 언어사용이 거칠고 퉁명스럽다. 그리고 원하는 바대로 일이 잘 진전되지 않을 때에는, 쉽게 짜증난 표정이 노출되어 주위 사람들을 긴장하게 한다.
1.4 1.3과 비슷한 이야기인데, 마땅히 되어야 할 것이 되지 않을 경우나 어떤 물건이 거기 있어야 하는데 딴 곳에서 제멋대로 놓여져 있는 경우에도 극도의 분노, 좌절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분노의 감정에 내 자신이 함몰될 때, 특히 아무도 없을 경우에는 스스로 객관자가 되어 최대한 감정을 조절 해 볼 수 있지만, 한 사람이라도 내 곁에 있게되면 서로가 매우 불편해진다.
둘째, '무기력' 또는 '허탈감' '불안감'에서 해방되고 싶다.
2.1 감정의 기복이 매우 크다. 사람들과의 대인관계가 비교적 원만하지만 사귐, 교제의 場에서 기분이 매우 유쾌하고 좋았다가도, 돌연 이유 없이 우울해지거나 마음이 착찹 해지거나 혼자 있고 싶어 지기도 한다.
2.2 많은 일을 책임자의 직책으로 활동하다보니 체력이 점점 소모된다. 결국 일하지 않는 시간도 일의 연장이 되어 체력적, 정신적 무기력증에 시달리게 된다.
2.3 일을 하면서 분노의 감정을 가장 많이 느꼈기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많이 생긴다.
2.4 아직은 학생신분이므로 공부를 해야 할 터인데 '삶의 현장에 위기'가 자꾸 내 목을 졸라대기에 허탈하고 불안하다. 공부가 무슨 유익이 될 것인지 잘 모르겠다. 삶의 현장은 늘 불안하다.
필자는 이처럼 늘 상한 감정의 바다 한 가운데 사는 것 같았다. 마음속에서는 필요이상의 "분노"가 자꾸 일어났다. 이런 감정의 상태는 나아지기보다는 오히려 계속 악순환 되어갔다.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필요이상으로 반응하는 '내 안의 나'는 항상 실존적으로 흔들리게 하는 결정적인 딜레마였다. 결국 이 문제는 인생에 가장 큰 고민으로 다가왔고 이러한 이유가 집단치료 과정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논문은 필자 자신이 집단치료 과정에 참여하면서 겪었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그러한 이유에서 필자는 이 논문의 성격을「경험논문」이라고 말하려 한다. 필자는 여기서 집단심리치료가 21세기 목회 비전을 꿈꾸는 목회자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수 있겠는가? 를 생각해 보려 한다.
2. 혼선된 용어의 바른 이해
한국에서는 지금 '상담(相談)의 붐'이라 해도 될 만큼 상담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고조되어있다. 하지만 이토록 많은 관심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상담문화는 그 분야에 쓰이는 용어 하나 제대로 정리되어있지 않은 실정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부분에서 혼선된 용어들을 바르게 정리하고 동시에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물론, 앞으로 상담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려 한다. 특별히 용어구별에 대한 인식은 집단치료를 바르게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반드시 필요 불가결한 요소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구별이 잘 안되는 용어는 돌봄(Care)과 상담(Counseling),그리고 심리치료(Psychotherapy)에 대한 용어이다.
돌봄(Care)은 "예방"의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나 병원, 교도소에서 신도들이나 환자들을 보살피고 위로해주고 지지해주는 일반적인 행위를 지칭한다. 돌봄은 단기적으로 설교나 세미나를 통해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많은 사람에게 한 번에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돌봄의 용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발생을 미리 예방하는 차원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돌봄은 성장을 목표로 하며 지시적 성격을 지닌다.
상담(Counseling)은 돌봄(Care)과는 달리 내담자의 동기부여가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상담의 목적은 문제의 증상을 해결하는 것이며, 성장에 저해되는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상담자가 교육적 정보를 제공하여 증상 중심적이고 현재(Here & Now)를 중심으로 '인식의 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다.
심리치료(Psychotherapy)의 목적은 "치료" 그 자체에 있다. 문제를 파악하여 그 증상의 원인을 심층적으로 통찰하고 현재보다는 과거 중심적으로 접근하여 그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내담자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온전한 인간, 자립적으로 살아가도록 치유하는 것이다. 또한 이 심리치료는 장기간의 시간을 요구하며, 의식과 무의식을 다루어 정서적이나 행동의 장애를 교정하고 성격구조를 변화시키며 무의식의 세계에 잠재되어있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다룬다.
돌봄(Care)과 상담(Counseling), 심리치료(Psychotherapy)의 관계를 넓은 의미에서 나타내보면 [심리치료 ⊂ 상담 ⊂ 돌봄]과 같다. 돌봄 속에 상담이 그 속에 심리치료가 포함된다고 생각하면 쉽게 개념 정리가 될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엄격히 구별되는 이 용어들의 이해를 통해 필자가 참여한 집단 심리치료(Group Psychotherapy) 프로그램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가겠다.
3. 집단 심리치료
필자가 참여한 집단심리치료(Group Psychotherapy)
필자가 참여한 집단치료는 상담자를 위한 과정이다. 이 과정은 보다 효율적인 전문 상담자가 되기 위하여 상담자 자신의 내면적 치유과제들을 치료하는데 일차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고, 집단구성원들의 피드백(Feedback)을 통해 자신의 상담태도와 기법(Skills)을 발전시키는데 이차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집단상담의 장점은 개인상담 방법의 한계를 넘어서는 상담방법으로서 개인상담보다는 집단구성원에 의한 치유능력이, 보다 효율적인 상담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상담이념을 근거로 한다. 그러면 여기서 집단치료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숙지하고 있어야 할 집단에 대한 용어의 바른 이해와 '집단심리치료'와 '집단상담'의 차이점을 알아보자.
집단의 성격
각주 4)에서처럼 4가지 유형의 집단이 서로 차이는 있으나 지도집단을 제외하고 나머지 집단들 속에서는 집단역동이 매우 강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집단치료에서 말하는 '집단'은 흔히 일반적으로 쓰이는 '집단'이라는 용어와는 의미가 다르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 집단은 개인들의 집합체로서의 일반적인 의미와는 달리, 상호작용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는 역동적인 집단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집단치료에서 만나는 집단은 다른 집단생활과는 달리 경쟁적인 관계를 떠나서 상호간의 이해심과 협동심을 촉진 시켜주는 관계를 말한다. 이런 집단 안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위로와 지지와 사랑을 주며, 자기의 인격적-정서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집단동료들로부터 배척 당하지 않는다는 신뢰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서로가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공감하면서, 진실로 자기는 "이상한 사람", "문제가 있는 사람", "비정상적인 사람"이라는 의식을 버리고, 서로 공감하고 다른 사람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주며 자신의 문제를 통찰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또한 자신도 다른 동료들을 이해하고 도와주면서 자기 자신과 타인을 더 이해하게 되고 수용하게 된다.
집단심리치료의 특성과 목적
집단심리치료의 성격을 말하려면 앞에서 정리한 용어구별의 시각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그 이유를 집단상담과 비교하여 설명하면 집단심리치료의 성격이 분명하게 부각되기 때문이다. 집단상담은 문제증상을 파악하여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증상을 해결 해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집단심리치료는 심리적인 원인에 초점을 두어 느낌의 변화를 통하여 성격의 교정을 그 목적으로 한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집단심리치료는 "치료"를 위한 집단이다. 이 "치료"라는 용어를 상담문화원의 원장인 심상권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치료는 마술(Magic)이 아니라 과정(Process)이다." 이것은 맹장수술을 한 환자가 수술이 끝나고 바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회복기를 거쳐 점진적으로 건강을 되찾아 가듯이 집단심리치료에 참여하여 "수술"을 받은 사람은 회복의 단계를 거쳐 점차적으로 건강해져 가는 것이다. 이처럼 집단심리치료는 치료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러한 치료는 장기간의 시간이 요구되어지며 여러 가지로 얽히고 섥힌 매듭을 하나씩 풀어가듯이 경험과 검증을 반복하는 과정인 것이다. 집단심리치료의 목적은 내담자로 하여금 "변화"를 요청한다. 이 변화는 고통과 아픔을 수반하지만 이 아픔과 고통을 피한다면 결국 성장의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이다. 성장은 자기노출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만일 자신을 방어하고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지 않으려고 본인이 저항하거나 방어기제를 사용한다면, 치료의 효과는 절감될 수밖에 없고 성장의 기회를 잃게 되고 만다. 그 자리는 순수해지는 자리이며, 내 진심만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것이지, 잔재주나 테크닉만으로는 다른 사람이나 자기자신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없는 것이다.
4. 집단심리치료의 구성
집단심리치료에서의 역할
집단심리치료의 구성은 주 치료자와 보조 치료자 그리고 집단구성원으로 이루어진다. 집단 구성원들은 6∼10명 정도가 적당하며 그 이상, 그 이하가 되면 치료의 효과가 절감된다. 치료실 안에서는 4가지의 역할이 있다. 그 역할은 환자의 역할, 집단구성원의 역할, 보조치료자로서의 역할, 그리고 주 치료자의 역할이다.
① 환자(내담자)의 역할 : 그룹구성원 중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신이 치료받고 싶은 내용을 적어와 15분에서 20분 정도 자신의 문제, 갈등내용의 요약과 그 출발점, 그리고 치료받기 원하는 내용을 이야기한다. 환자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최대한 솔직하고 개방적인 자세로 임해야 하며 방어하는 자세는 지양해야 한다.
② 집단구성원의 역할 : 발표하는 동료가 환자가 되어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으면 집단구성원은 각자 치료자가 되어 내담자의 아픔에 공감해주고 무조건적인 긍정과 지지를 보내주며 문제의 해결과 내담자가 문제를 통찰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준다. 설령 집단구성원이 상담교육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운동경기에 선수로 참여하여 경기를 할 수는 없지만, 경기를 볼 수 있는 '눈'을 누구나 가지고 있듯이, 진실성과 사랑으로 환자의 문제를 진단할 수만 있으면 그는 최고의 치료자가 되는 것이다.
③ 보조치료자 역할 : 이 역할은 주 치료자의 의도를 파악하여 예측하고 치료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역할이다. 집단구성원들의 역할을 촉진하며 환자를 보살피는 역할도 동시에 해야한다.
④ 주 치료자 : 다른 집단구성원과 우·열이 없으나 필요시에 개입한다. 비교를 하자면 수술실에서 주 치료 의사와 주변에 레지던트들이 있듯이 모든 치료를 총괄하고 치료의 방향을 이끌어간다. 주 치료자는 전문적인 훈련과정을 거친 사람이어야만 가능하다.
현대목회상담은 권위적인 상담자 위주의 전통적인 이론, 즉 내담자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 기술(Skills)로서만 감당하려 했던 기존 목회상담의 한계성을 발견하고, 효과적인 목회상담 방법은 기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를 살피는 것으로 방향 전환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그 대표적인 학자가 로저스(C.Rogers)인데, 그는 상담자와 내담자의 치료관계가 강하면 강할수록 치유는 활발하게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계에서 내담자는 치유자를 신뢰하게 되고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치유가 활발하게 일어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관계를 형성하는 단계에서는 무조건적으로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각, 객관적인 공감, 진실성, 따뜻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기법은 상담의 기술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간 관계 속에서도 충분히 이루어져야 하는 내용이다. 이처럼 상담에서 중요한 점은 기교적인 잔재주가 아니라, 진실한 사랑을 표출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깊은 공감과 이해, 지지하고 지탱해주는 것이다.
탐색의 과정에서는 육하원칙의 질문보다는 내담자의 느낌을 묻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원인을 묻는 질문보다는 상황을 묻는 질문을 해서 내담자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통찰 해야한다. 그러나 절대로 상담자의 호기심에 의한 질문이나 임의로 판단하고 해석하는 자세는 지양한다.
치료의 과정은 내담자로 하여금 변화하도록 도와주는 단계이다. 과거에 억압된 감정을 풀어주거나 잘못된 인지(認知)를 찾아서 치료하는 단계이다. 그 다음에 종결의 단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종결의 단계에서는 이제까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고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정리하면서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명확하고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집단치료에서는 집단구성원들이 이 치료과정을 거치면서 동료의 아픔을 느끼고 문제를 파악하게 되고, 치료의 전반적인 흐름은 주 치료자가 진행하게 된다. 집단치료에서는 주 치료자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집단구성원들이 관망의 자세로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치료자로서 동료의 문제를 진단하고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아래의 표는 집단구성원들이 기본적으로 숙지하고 사용해야하는 치료에 필요한 기법들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이 기법들을 사용할 때에는 적당한 시기에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만일 치유관계 형성에 사용해야 할 기법을 종결의 단계에서 사용한다던지 치료의 기법을 관계형성의 단계에서 사용한다면 치료의 맥을 단절시킬 뿐만 아니라 치료의 효과도 절감시킨다. 이러한 이유로 집단치료에서는 시간의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
■ 집단심리 치료실에서 사용되는 치료자의 기법(파일에서는 볼 수 있음)
치료실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
집단심리치료를 통해 도달하려 하는 궁극적 목표는 사고의 변화, 느낌의 변화, 행동의 변화이다. 현대목회상담의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바뀌기도 하고 그 느낌에 의해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결정되기도 하고, 또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생각이 바뀌고 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특히 심리치료나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잘못된 느낌이 원인이 되어, 자신이 원하는 행동으로 표출되지 않는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치료실에서는 "느낌"을 중요시하며, 이러한 내담자의 언어적 또는 비언어적인 행동 속에서 집단구성원은 느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더구나 한국사람들은 이성보다는 감성이 지배하는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기분이 나쁘면 옳은 것도, 문제가 되는 것이 한국사람들의 보편적이 정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화는 유교적인 세계관 속에서 느낌은 유치한 것이고 느낌은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생각과 아울러 느낌을 도덕적으로 판단하여 '좋은 느낌'과 '나쁜 느낌'을 나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한국남성들은 느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것은, 느낌이 죽은 것이 아니라 느낌을 표현하는 기능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여성들은 느낌을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한국의 여성들은 부부 관계, 친구, 연인의 관계에서 느낌을 원만하게 주고받지 못해 오해와 갈등들이 빚어지는 현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치료실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해야 할 기본적인 기법이 있다. 그것은 경청기법이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소리가 있는데 머리의 소리, 마음의 소리, 몸의 소리이다. 경청은 이 세가지의 소리를 구별하여 듣는 것이며, 그 소리에서 "느낌"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흔히 우리는 문자적인 경청을 하기 쉬운데 말하는 사람 중심으로, 그의 언어적이거나 비언어적인 표현(Body language, 침묵, 웃음, 신체언어, 눈물...)에서 "느낌"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 경청은 듣는 사람의 심리적인 상태와 몸의 상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경청을 하지 못하면 환자의 문제를 파악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가 경청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몸이 아프면 남의 말이 들리지 않듯이 자신의 마음속에 상처가 많거나 응어리가 많으면 자신의 소리에 집착하여 남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되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적인 상담자, 목회현장에서 상담자의 역할을 해야만 하는 목회자는 이 '느낌"을 함께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치유가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집단심리치료에서의 참가자 규범(規範)
구성원들은 아래와 같은 규범들을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첫째는 시간엄수다. 집단심리치료는 흐름이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이러한 흐름을 방해할 수 있고, 치료를 받는 환자에게는 자신의 문제를 완전히 개방할 수 없도록 분위기를 만들게 되며, 지각하는 사람 역시 구성원들의 흐름을 읽기가 힘들게 된다.
둘째는 변화하는 것이다. 참가자는 자기 자신의 변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한다. 자신의 변화의지에 따라 치료의 효과는 커지기 때문이다.
셋째는 공감, 경청하기이다. 참가자는 다른 참가자들의 희노애락의 감정에 대해서 공감하고 경청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넷째는 평가를 조심해야 한다. 참가자는 다른 참가자들의 생각과 느낌을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중요하며 감정은 가치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섯째는 솔직해야 한다. 참가자는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여섯째는 자기개방과 모험의 시도이다. 참가자는 다른 참가자들이 표현하는 반응을 경청하는데 노력하고, 자기에게 익숙하지 않는 언행을 실행할 수 있는 모험을 하도록 노력해야한다.
일곱 번째는 비밀보장이다. 참가자는 다른 참가자들의 신분과 사생활에 대한 내용을 타인에게 절대로 누설하지 말아야 한다.
여덟 번째는 공격적인 행동을 조심하고 독점을 자제해야 한다. 참가자는 다른 참가자들을 공격하지 않도록 해야하며,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들로 과정을 독점하지 않도록 노려해야 한다.
아홉 번째는 집단치료 이후 집에 가서 꼭 그 날 일지를 작성해야한다. 이 일지는 자신의 경험과 통찰력을 글로 표현함으로써 투명성과 새로운 통찰을 하게된다.
열 번째는 치료기간 중에는 집단구성원들과의 사적인 교제를 금해야한다. 사적인 교제는 오염된 관계가 되어 치료에 방해가 될 수 있다.
5. 필자의 경험
집단치료의 흐름
집단심리치료의 과정은 전부 12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번째 시간은 자신의 별칭을 짓고 별칭이 나타내 주는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자신의 문제를 간단하게 발표하는 것으로 끝난다. 첫 시간에 참여하면서 가장 놀란 사실은 처음으로 만난 사람들이 너무도 솔직하게 자신을 개방하는 것을 보고 이 집단이 다른 집단과는 다른 모임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하였다는 점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자신을 개방하는 모습을 보고 어디서도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함과 신뢰감이 형성되었으며, 기대감이 앞섰다. 그 후 2주간은 집단치료에 대한 이론적 강의를 들은 후, 첫 시간에 약속한 순서에 따라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었다.
3시간 동안 진행되는 심리치료단계는 모두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처음에는 지난주에 치료받은 사람이 일주일을 보내면서 자신의 치료되고 변화된 모습을 이야기하고 치료에 참여했던 구성원들도 이 사례를 들으면서 자신에게 변화된 부분이나 통찰된 것을 발표한다. 그 다음 몸의 긴장을 풀고 치료실로 들어간다.
15분에서 20분 정도 그 날 발표하기로 약속했던 환자는 자신의 문제를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다른 동료들은 그 이야기를 공감해 주며 문제를 파악하고 주 치료자의 치료를 돕고,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준다. 치료가 끝나면 치료실에서 나와 뒤풀이를 갖는다. 이 뒤풀이는 상담기법에 대한 질문이나 치료실에서 어떤 느낌이 오고 갔는지 치료실에서 있었던 일을 객관화시켜서 이론적인 접근을 시도해 나가는 시간이다.
김남순 양의 사례
여기서는 필자 자신의 환자로서의 경험을 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느끼며 아래의 사례를 제시함으로 집단심리치료의 구체성을 대신하고자 한다. 이 사례는 환자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치료에 관계되지 않은 요소들을 상당부분 바꾸었고 이름도 가명을 사용하였다.
김남순(가명)양은 20대 중반의 여성으로서 상담계에 종사하고 있다. 그녀의 첫인상은 자신감이 넘쳐 보였고 당당하며 여성적인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그녀는 유년기를 지나 '나(ego)'라는 개념이 형성 된 초등학생이 되고 부터 그녀의 생활은 그리 즐겁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녀에게는 언제나 이길 수 없는 경쟁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경쟁자는 항상 그녀보다 키가 컸고 나이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이나 할머니는 항상 그 경쟁자에게 많은 배려를 하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항상 '누구누구의 동생'이라는 간판을 달고 다녀야만 할 정도로 학교에서도 그 경쟁자를 이길 수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육성회 회원을 항상 반장인 경쟁자의 반에서만 하실 뿐 그녀의 반에서는 못하셨다고 하신다. 그녀가 지금도 가슴이 아픈 것은 경쟁자와 싸우면 항상 부모님은 경쟁자의 편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오빠라는 이유였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지금도 '위계질서'라는 말을 싫어하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이유 없이 복종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그 경쟁자가 연장자의 이유보다는 남자라는 또 다른 이유 때문에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게되었다. 그녀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가정적인 성격인데도 불구하고 가사노동을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좋아서, 자신이 그렇게 보이도록 노력했었다고 했다. 지금은 올바른 여성학적인 인식을 가지고 인간으로서 자신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요리를 하고 가사일을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여성인 자신이 참으로 싫었다고 했다. 지금도 여전히 자진해서 요리를 할 뿐 부모님이 시키는 가사일은 잘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녀에게 가장 힘든 것은 자신이 사랑했던 할머니의 사랑이 오빠에게로 많이 간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오빠는 노력하는 것에 비해 일이 잘 풀리는 사람이었고,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왜 나만.."이라는 기도를 많이 했다고 한다. 상담을 해서인지 그녀는 자신의 신앙이 여기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녀의 가정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화목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한다. 그녀는 부모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성장했고 상담을 하면서도 많은 통찰을 얻었지만 과거의 감정이 씻기지 않았다고 했다. 이제는 이런 문제에서 좀 벗어나고 싶다고 하면서 울먹거렸다. 그녀는 이제 멀리 유학을 가는 오빠와 편하고 자연스럽게 지내고 싶다고 한다. 오빠는 너무 착해서 동생에게 잘해주는데도 화를 내는 자신이 너무 지겹고 이제는 잘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근원적인 행복을 누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야기를 하면서 간간이 눈물을 보였지만 자신의 감정을 많이 억제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집단구성원들은 그녀를 진심으로 공감해주고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주면서 감정을 끌어올리도록 노력하였다. 그 과정 속에서 주 치료자가 개입하였다. 그녀 앞에 빈 의자를 두었다. 그녀는 그 의자에 오빠를 불러서 오빠에게 서운한 말들을 다하고 솜방망이로 분노의 감정을 풀기 위하여 내리쳤다. 내리치면서 그녀는 "지겹다"라는 말을 되풀이했으며 울면서 계속 내리쳤다. 그 후 빈 의자에 앉아서 오빠와 얘기를 나누면서 화해를 했고 오빠의 입장에서 대화를 했다. 잠시 후 주 치료자는 그녀에게 눈을 감고 "오빠"를 계속 크게 부르도록 시켰다. 그녀는 생각만큼 큰소리를 지르지는 못했지만 옆에 있는 내 자신도 그녀가 울면서 오빠를 부르는 소리에 가슴이 뭉클함과 오빠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집단구성원들과 주 치료자에게 그녀는 다음과 같은 진단을 받았다. 오빠도 똑같은 가부장 문화 속에서 희생자일뿐,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올바른 인식의 통찰을 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앞으로는 잃어버린 오빠를 찾는 것이 과제로 남았다. 또한 부모님에 대한 분노의 감정은 없는가? 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 있었고,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을 배우고 오빠와 진심으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해 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 다음 주에 그녀는 밝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직은 힘들지만 오빠를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 이제는 혈육으로서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 신경써서 습관화된 신경질적인 행동을 삼가하고 있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잃어버린 오빠는 물론 잃어버린 하나님도 찾고 있다고 말했다.
6. 결 론
목회상담의 목표는 인간의 온전성(Wholeness)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온전성'이라 함은 한 송이 꽃과 같이 살아있고, 성장하며 항상 변화하는 유기체로서 비유되며, 온전성에는 각 부분이 있고 그것이 존재하는 환경이 있다. 클라인벨은 이러한 온전성을 꽃에 비유해서 꽃의 중심에는 건강한 영성이 있고, 그 영성을 발판으로 한 신체, 인간관계, 생태계, 일, 사회구조, 놀이, 마음이라는 꽃잎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 요소 중에 어느 하나라도 결핍되면, 목회상담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전인건강(Well Being)에 이를 수 없다고 한다.
또한 그는 온전성이 존재하는 환경으로서 '사랑'을 특별히 강조한다. 사실 '사랑'에 대한 강조는 클라인벨 만의 독특한 사고는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이란 생명체들을 완성하고 충족시키는 그 무엇으로 늘 이해되어져 왔다. 바로 그 '사랑'이 전인건강의 핵심인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전인건강의 꽃을 온전히 피우기 위한 토양이자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목회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목회는 엄밀하게 말해서 목회자 자신과 교회 공동체 구성원들의 온전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목회자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어설픈 잔재주나 지식이 아니라 순수하고 정열적인 사랑이다. 순수하고 진솔한 사랑은 목회자 자신이 건강할 때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목회자의 성장과정 속에서 쌓여온 분노나 슬픈 감정, 왜곡된 자아관들이 억압된 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 그의 사랑은 절대로 온전하게 표출될 수 없다.
목회자의 온전한 사랑이 표출되기 위해서는 그 억압된 감정들을 풀어내고 그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작업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심리치료나 상담은 이러한 작업을 가능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우리는 지금 20세기에서 21세기로 나아가는 전환점에 서있다. 우리가 제3의 천년대를 시작하는 21세기를 준비한다는 것은 어떤 거창한 프로젝트를 세우고 어떻게 하면 교회를 양적-질적으로 성장시킬 것인가를 고민하자는 것이 아니다. 또는 어떤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의 습득과 훌륭한 인격을 갖추자는 것도 아니다.
필자가 이 경험논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주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순수하고 고귀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표출하여, 그것으로 21세기 목회를 준비하자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는 이 '사랑'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필자는 집단심리 치료의 경험 속에서 깨닫게 되었다. 집단 내에서 활발하게 치료가 이루어질 때는, 고도의 기술이나 지식이 사용될 때가 아니라 온전한 사랑이 표출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또한 필자는 치료실에서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였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을 통해 다른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공감 해 주는 관계 속에서, 점진적으로 변화되는 새로운 차원의 경험이었다. 만일 우리 자신의 삶이 병들어 있다면, 21세기에 대한 목회비전은 여전히 불투명할 것이며 물위에 떠있는 기름과 같이 시나브로 물 안에 있는 모든 생명들을 파괴시키고 말 것이다. 명심해야 될 일이다.
출처 : 말씀의 공간
글쓴이 : 착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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