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구원을 행위는 축복을 (삼하7:1-17) 모자이크장로교회 조나단
하나님은 노력하는 자에게는 축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일본에서 농업 혁명을 일으켰던 사람 중에 ‘니노미아 긴지로’가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어려서 부모를 잃었습니다. 고아였습니다. 백부 집에서 머슴살이로 살았습니다. 긴지로는 열심히 일하며 공부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백부는 공부를 시켜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호롱불을 켜 놓고 공부를 하였습니다. 백부는 그런 그에게 기름을 주지 않았습니다.그러자 그는 마을 귀퉁이에 피마자 를 심고 백부가 자는 늦은 밤이면 일어나 앉아서 자기가 짠 기름으로 불을 키고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는 열심히 노력해 백부 밑에 독립하였고 결국 일본의 위대한 농업 혁명가가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기복주의에 빠져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그 기복주의의 위험 성을 지적하고 있지만 저는 한국교회가 더욱더 복을 사모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복과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네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히6: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바꾸어 표현하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복의 하나님이요, 당신의 자녀들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천지창조 이후에 맨 먼저 아담과 하와에게 복을 주셨습니다(창1:28). 노아 홍수 심판 이후에도 복을 주셨고(창9: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도 복의 근원이 되리라 약속하셨습니다(창12:2).
성경의 복은 세상적인 기복신앙과 다릅니다. 성경의 복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우리는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물질의 복, 개인주의의 복을 세상에서 말하는 기복 신앙이라 말하지만 성경적 복은 첫째, 복의 영원성입니다. 축복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영원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찾는 영생의 복입니다. 축복이 아닙니다. 둘째,복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일꾼으로 쓰임 받는 사명이 선교를 통한 축복입니다. 셋째 복은 불가시성입니다. 보이는 것은 다 사라질 것으로 복은 보이지 않는 것이어야 하며 미래를 담보해야 합니다. 천국이 침노하는 자의 것인 것처럼 어떤 복도 정복하고 침노하는 자의 것이고 사모하고 찾고자 하는 자의 전유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의 축복을 늘 사모했던 다윗의 이야기 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다윗이 받았던 축복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우리도 그와 같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다윗은 영원한 왕국을 보장 받았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 들판에서 아버지의 양을 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보내셔서 기름을 부으시고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습니다(삼하7:8). 사울에게 주셨던 왕권을 빼앗아 다윗에게 주셨고 결국 사울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다윗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였습니다. 그는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였고 행동하는 신앙인 주에 한 사람이 분명하였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서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의 정직한 마음으로 주 앞에서 주와 더불어 행하였다”고 아버지 다윗을 평가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후대의 왕들에게 “나의 종 다윗과 같이...”라고 다윗을 자랑하셨습니다.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축복(상급)은 행위로 받는 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왕권을 얻어 평안하게 되었을 때도 어려울 때나 다름 없이 동일하게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을 하며 하나님을 기뻐하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하나님의 전이 자신이 거하는 궁보다 초라한 것을 보고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통해서 다윗의 그 마음을 보시고 다윗에게 언약을 베푸십니다. 그 언약은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9절), 너의 나라가 영원히 견고하게 되리라.(13절)”
하나님은 우리를 언약으로 백성으로 삼아 주시고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무엘하 7장 14절에 보면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 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언약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시지만, 그 약속을 이루시는 과정에서 죄를 범하면 징계하시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축복의 삶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강팍한 마음에는 지혜가 없고 선한 생각이 자라지 못합니다. 결국 가라지가 자라고 마음의 균형을 잃고 모든 실패를 가져 오고 말게 됩니다. 그러면 좌절 가운데 질병이 찾아옵니다. 사고가 찾아옵니다.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선한 행동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축복을 누릴 수 있는 방법입니다.
2. 하나님은 성전보다도 다윗의 마음을 받으시길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히11:8-9) 그런데 이제 다윗의 왕국은 안정적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장막에 살지 않고 백향목 궁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가 시선을 둔 것은 바로 장막안 휘장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보았던 것입니다.그런 다윗은 하나님이 계실 “성전을 짓겠다”고 하자 하나님은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7절)라고 물으시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다윗의 그러한 마음에 얼마나 기뻐 하셨을까요?
그러나 다윗의 성전 건축은 허락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전을 지울 수 있는 모든 재료들을 준비하였고 그의 능력으로 성전을 지을 수 있는 능력도 있지만 그런 축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대신 “한 곳을 정하여 옮겨 다지지 않게 해 주겠다”10절에서 약속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 중심으로 살았습니다(출40:36-37). 성막 또한 하나님의 궤를 둔 곳입니다. 성막이 옮겨지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 이동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옮기지 않아도 되며 한곳에서 예배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축복입니다. 성막의 이동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나라가 안정되지 못할 때 이동하게 되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교회를 못 찾고 떠도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모자이크 장로교회는 우리모두에게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화려한 성전 건물에 있지 않고 우리 마음에 하나님 사랑과 순종의 아름다운 열매가 있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3. 다윗은 환란 가운데 구원을 이루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았습니다.
미국에 MGM영화사는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Metro Goldwin Mayer)라는 이름으로 메이어가 설립한 영화사입니다.메이어가 어렸을 때 친구와 싸운 적이 있었습니다. 메이어는 친구에게 맞고 집에 돌아와 분통을 터뜨리며 친구를 욕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메이어를 산으로 데리고 가 친구 욕을 실컷 하라고 합니다. “나쁜 놈아. 못된 놈아.” 그런데 이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자신에게 10배의 소리로 되돌아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이번에는 “하나님이 너를 축복하신다”고 외쳐보라고 말합니다. 메이어가 그렇게 말하자 동일하게 메아리가 자신에게 축복의 말로 되돌아옵니다. 그때 메이어는 깨닫게 됩니다. “내가 남을 향해 한 번의 욕을 하면 그것이 10배로 되돌아오고 남을 한 번 축복하면 10배로 축복이 되돌아온다.” 메이어는 이 교훈을 평생 마음에 새기고 MGM이라는 큰 영화사를 세우게 됐습니다.
축복이란 축복하는 자가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늘 축복을 사모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16절에 보면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라고 축복 하셨습니다. 그 후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망하고 남유다도 바벨론에 의해 망합니다.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네 나라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해 나라를 잃어버리고 포로 신세가 된 것입니다. 다윗의 나라는 망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윗의 나라가 영원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세상적인 시각으로 보면 다윗의 왕국은 망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약속은 허무한 약속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한 축복은 현실의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니고 소망가운데 영원한 미래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나라를 말씀하실 때, 그 나라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영원한 나라를 의미합니다. 눈에 보이는 다윗의 나라가 유지될 때에도 그 나라를 통해 하나님께서 다스리심을 나타내려 하셨고, 눈에 보이는 다윗의 나라가 망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영원한 나라를 이루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바로 다윗의 계보를 통하여 말입니다. 결국 다윗의 계보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나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영원한 나라를 세우시는 겁니다. 성경적인 축복인 다윗의 왕국은 오늘날도 우리를 통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입니다. 그리고 그 다윗의 왕국이 나를 통해 이어지고 있는 것은 크나큰 축복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의 역사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왕국의 왕이시고 다스리시는 통치자 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축복을 받기 위해 왕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축복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모자이크 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 우린 이미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은 우리가 더욱 사모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이 땅에서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의 왕국이 구원의 백성으로 선택 받았다 할지라도 그들 나라가 나뉘고 멸망하며 꺼져 가는 등불과 같이 생명을 이어 간다면 축복을 누리는 백성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앞서 행하시며 모든 적들을 물리치셨던 하나님께서 왜 그들의 어려움 가운데 계시지 않는 것일까요? 바로 축복 받을 행위가 아닌 가증한 우상을 섬기는 죄악들을 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다윗처럼 하나님은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다윗의 생각 하나만으로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존귀케 만들어 주었고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이름인 예수 그리스도(빌2:9-10) 앞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그의 이름이 기록되게 됩니다(마1:1). 다윗은 살아있을 때에도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었다고 말씀합니다(대상29:26-28).
모든 우리의 대적들에게 보호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분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 가야 합니다. 훗날 하나님은 그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할 때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부친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는 것이 좋도다"(왕상8:18) 하나님은 무엇을 이루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노력 했는가를 보시는 하나님입니다. 다읫은 성전을 짓지 못했습니다. 실패한 왕처럼 여길 수 있으나 그는 위대한 성공자로 칭송을 받았습니다. 위대한 성공자라고 우리가 칭송하는 솔로몬도 결국 그가 우상을 섬기자 그의 아들 대에서 그의 나라가 갈리는 비참한 실패자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고 낙심할 것이나 마음에 품고 열심으로 노력한 자들은 비록 성취가 부족해도 하늘에서 큰 성공자가 될 수 있고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축복을 사모하는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은혜 설교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예수님의 전도 막4:35-5:2 (0) | 2013.02.14 |
|---|---|
| [스크랩] 12-7-8 경건에 이르는 연습 디모데전서 4-4-16 (0) | 2013.02.14 |
| [스크랩] 12-8-5 인생의 경주 고전 9_24-27 (0) | 2013.02.14 |
| [스크랩] 12-10-19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고전 12: 27- 31절 모자이크장로교회 조나단목사 (0) | 2013.02.14 |
| [스크랩] 12-26 행복의 길 시 1;1- 6 모자이크 조나단 목사 (0) | 2013.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