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길 시 1;1- 6
복있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우리가 말하는 복이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가시적인 것 장수, 아내, 자녀, 건강,물질 명예 등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복을 누린 사람을 역사 가운데서 찾는다면 누구일까요? 그것은 바로 누구나 기억 하는 아담과 이브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왜 불행 해졌습니까? 그들은 부족함이 없는 에덴에 살았지만 잘못된 길을 걸어가 타락했고 불행한 성도로 전락해 버린 케이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행복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면 사전적 답변은 “욕구가 만족되어서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불안함도 느끼지 않는 그래서 안심 해하는 심리상태가 곧 행복이지요.” 라는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과연 행복이란 무엇인가 원하는 것을 얻음으로서 만족하고, 안정된 상태가 곧 행복일까요?
그렇다면, “행복의 기준(조건)은 결국 욕구 충족이다”라고 단정 할 수가 있는데 “그 욕구란 과연 채워질 수 가 있으며 그것이 영원한 행복을 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 답 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욕구란 어떤 사람은 ‘돈, 명예, 건강, 사랑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욕구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직장을 잃어 버린 사람에게는 당연히 행복은 ‘직장’이러 할 것이며 건강을 잃은 사람에게 행복은 100% ‘건강회복’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행복의 조건은 사람 마다 다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해 지기 위해서 어떤 길을 걸어 가야 할까요?
미국 갤럽연구소가 18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행복도 조사를 했습니다. 조사결과 ‘아이슬란 드’인들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추운 북대서양에 고립되어 사나운 바다와 싸워야 하고, 겨울에 는 밤이 20시간씩 계속되며,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는 인구 30만여 명에 불과한 나라 의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아이슬란드 대학교의 사회학자 소르린드 교수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행복의 비결은 생활의 안락함이 아니라 오히려 불편함에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불편함 속에서도 아이슬란드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환경을 즐길 줄 아는 것입니다.”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안락함을 누리면서도 뭔가를 더 누리기를 원했던 것처럼 인간들에게 영원한 욕구 충족이란 한낮 허무한 목표 임을 알게 해 주는 좋은 본보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오늘 본문 말씀은 행복한 성도의 조건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면에서 세상 사람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의 복음’이요 즉 ‘성도의 행복’인 것입니다. 행복은 “소유”(having)보다 “상태”(being)를 말하는 것으로 “무엇을 소유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되어있는가?” 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있었던 행복의 조건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행복한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성도의 행복은 의인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1절)
“악인의 꾀”와”죄인의 길”의 특성은 사람에게 부정적인 생각의 씨앗을 심어 줍니다. 결국 그것들은 우리를 영원한 패망으로 길로 이끌고 갑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구원관”에 있습니다. 믿는 자 와 믿자 않는 자의 행복의 행복의 조건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모세의 행복론을 보면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신 33:29)
모세의 행복론에서 가장 중요한 행복의 조건은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모세는 행복의 조건으로 다른 것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구원만이 이스라엘의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모세가 말하는 하나님의 구원은 방패와 칼입니다. ‘바로’와 ‘홍해’와 ‘사막’, ‘아말렉’과, ‘모압’의 공격을 받을 때 ‘방패’가 되어 주신 하나님의 구원, 모압평지에 이르기까지 진군할 수 있도록 앞장서서 적들을 물리치신 하나님의 ‘칼’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인 것입니다. 이것 말고 무엇이 이스라엘을 행복할 수 있게 하겠느냐? 라는 것이 모세의 행복론입니다.
악인의 꾀에 넘어지는 자들이 구원을 얻지 못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악인의 꾀를 쫒아 가는 우리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악인의 꾀를 쫒지 않기 위해 우리가 갖고 있는 습관을 바꾸어야 하는데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모습을 잘 바라보고 문제점을 인식하여야 합니다.
만약 내가 어떤 같은 실수를 계속해서 한다면 그것은 내가 나쁜 습관이 있어서 그렇고 만약 내가 실수하지 않고 계속해서 성공한다면 그것은 좋은 습관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습관은 한번 길들여 지면 바꾸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의지와 끈기가 있다면 습관을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기진 좋은 습관이 무엇이고 나쁜 습관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두번째는 나를 알았으면 그 다음에는 나쁜 습관은 자꾸 제거하고 좋은 습관을 기르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처음엔 자기가 가지만 나중은 자기 발자취를 따라 간다” 이 말은 습관의 영향력을 경고해주는 말입니다.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 하는 사람은 바로 이런 습관에 차이 때문에 갈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행복의 조건으로 별의별 것을 다 제시한다 할지라도, 구별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을 가장 중요한 행복의 조건으로 제사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믿음 안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성도의 행복은 ‘시냇가에 심기우는 나무’와 같습니다.(3절)
나무의 성장은 뿌리와 그 뿌리가 어디에 심기어 졌는가 하는 것이 그 나무에 생명을 좌우 합니다. 오늘 성경은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의 특성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즉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는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고, 모든 일이 다 형통 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나무가 물가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 심기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 가에 심기운 나무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우연히 그곳에서 자라란 것이 아닙 니다. 그곳에 옮겨 심기어진 것입니다.
늘 그 뿌리에 신선한 물을 공급 받습니다. 시냇가에 심기우는 나무는 바로 성도에겐 하나님 께 붙어 있어 그분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력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당연히 하나님과 관계가 없습니다. 또한 행복의 조건은 다분히 물질적이고, 세속적이며, 현세 지향적 입니다. 하나님께 구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 들은 자신의 소망을 스스 로 쟁취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단련한다. 강해지고, 지혜로워지려고 애씁니다. 하나님에게는 기대도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무관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수를 공급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직 가지고자 하는 것만 가지면 되기 대문에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비도덕적인 사람’이 되며, ‘반사회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행복한 성도는 늘 새 사람입니다. 날마다 죽고 날마다 부활하는 늘 새 사람입니다.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새 사람을 입은 성도는 매일 매일을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을 믿으면서도 새사람이 되기 보다는 자신의 삶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길에 발목이 잡히는 경우가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물론 사람의 감정이나 기분이 수시로 바뀌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인생이 행복하다고 느끼며 사는 것이 도의 삶이어 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이다. 영적인 문제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 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전 6:2) 하나님이 주신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영적인 문제 때문이다. 생명수 시냇가에 심기우지 않고 세상 가운데 심기운 나무는 병이 들 수 박에 없고
성도로서의 행복을 누리는 자는 의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성도의 삶을 살지 않는 사람은 바로 악인이며 그들은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것입니다. 악인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지 않고 오히려 멸시합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형통하지 못합니다. 나무는 자신의 힘으로는 살아 갈 수 없습니다. 시냇가에 심기어지고 항상 신성한 생명수를 공급받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 성도의 행복은 의인의 모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4절)
우리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어 죄,애굽의 종살이 하던 세상에서 구원받았습니다.그래서 광야와 같은 교회 안에 들어 왔으며 오늘도 새 땅,새 하늘,새 루살렘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런 데 교회 안에는 알곡과 쭉정이가, 양과 염소가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우리는 기쁨과 고통히 혼재된 세상 가운데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강하게 연단시켜 크게 쓰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알곡과 가라지는 주님이 세상 끝날 때 추수꾼들에게 부탁 해 다 처리할 계획입니다. 우리는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신앙생활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처럼 모양만 예수 믿는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전심 으로 영혼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법도 앞에서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종을 믿음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진정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영혼구원은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정말 명심하십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미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 갈 약속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아직 남아있을지라도 혹 그 안식에 미치지 못할 자가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의 이름은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지만 그 이름이 죄악을 범하면 지워진다는 것(흐려짐)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초림 할 때는 나귀 타고 초라하게 오셨고 죄인을 구원하려 왔지만 주님이 재림 할 때는 만왕의 왕으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큰 권능과 영광으로 구름 타고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여 심판하려 오십니다.
그 때에 준비된 자 즉 말씀,기도,물질에 깨어있는 자, 자기,세상,죄악,사탄로부터 이기는 자, 환난을 이기어 끝까지 견디는 자 , 말씀 성령으로), 성령충만하여 기름을 준비한 자, 성도의 옳은 행실로 예복을 입은 자 , 듣고 행하는 자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 재물을 하늘에 쌓아 달란트를 남기는 자, 하나님은 알곡과 가라지를 양과 염소를 택하여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각기 행 한대로 심판하십니다.
모자이크 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의인은 생명의 부활로 새 예루살렘에 악인은 심판의 부활로 지옥 심판 받아 들어갑니다. 사랑하는 우리 형제자매님! 다시 한 번 우리의 신앙을 점검 해 봅시다. 만약 그동안 혹시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였다면 지금 바로 회개하시고 다시 바르게 시작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회개하고 돌아서면 구원하십니다. 진정한 회개만이 살 길입니다. 여러분이 걷고 있는 길이 과연 성도의 길이며 행복한 길인지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심판과 구원을 동시에 베푸십니다. 즉시 순종함으로 믿음을 인정받읍시다.
영혼 구원과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무렇게나 아무나 쉽게 얻고 들어가지 못합니다. 정말 명심하십시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우리가 않고 있는 육의 소욕이 죽어야만(세상과 단절=세례) 진정 육적인 몸을 벗어야만(할례) 즉 우리의 의와 옛 자아가 죽고 영의 소욕을 쫒아야만 영혼구원을 얻고 천국을 소유하며 들어갑니다. 정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며 육의 소욕(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자랑)이 죽어야 부활의 영광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은 날마다 영적인 전투입니다. 이 영적 전투에서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야 하고 반드시 여러분이 두길 가운데 의의 길, 영광의 길에 서서 행복을 누리시는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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