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경주 고전 9_24-27 조나단 목사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저는 장 기억에 남는 선수라면 두 수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펜싱의 준결승전에서 오심으로 눈물을 흘린 신아람 선수이고 한 선수는 유도에서 34살의 노익장으로 5등한 황희태 선수 입니다.두 선수는 올림픽에서 좌절을 맛보았는데 신아람 선수는 심판들의 실수로 인하여 오랫동안 키워 왔던 그의 꿈을 포기하며 눈물로 올림픽 메달의 무대를 내려와야 했습니다. 저는 그 신아람 선수를 바라보면서 “그가 얼마나 상심했을까”다소 짐작이 갔습니다. 항의하는 코치 옆을 아무런 책임감 없이 지나가던 여자 심판원의 모습에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경주에서 우리가 원치 않는 사탄의 공격으로 우리가 저렇게 당하고 억울하게 천국의 문 앞에서 돌이켜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어디에 가서 누구에게 항의를 할 수 있을까?
또 황희태 선수는 34살의 노장이었습니다. 그는 경기중 큰 부상을 입었지만 아픔도 느낄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는 생애 마지막 올림픽에서 메달을 움켜지고픈 욕심이 누구보다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표팀 최고참의 아름다운 도전은 비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진 선수를 인터뷰해줘서 고맙다." 늘 환한 웃음을 띠며 취재진을 마음으로 대했던 그답게 예의와 겸손으로 마지막 올림픽무대를 정리했습니다. 34살에 생애 두 번째 올림픽에 나섰다는 사실은 그의 성실성을 웅변해주고도 남는 일 입니다. 타고난 장사 체질에 성실성까지 더해 10여년동안 국내 유도 중량급 간판선수로 활약했던 황희태는 “순간 순간 최선을 다했다”는 가슴 찡한 소감을 밝히고 믹스트존을 쓸쓸히 빠져 나갔습니다.개그맨 처럼 유머가 풍부해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해 줬던 선수, 황희태는 모든 것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고 쓸쓸히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 무대를 접었지만 오랫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억될 것입니다.
인생의 경주도 이와 같습니다. 사탄의 공격에 무너져야 하는 사람,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순간 순간 피 흘리는 부상을 딛고 최선을 다해 아름다운 인생을 사는 그래서 메달 보다더 값진 황희태와 같은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경주에 임하는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 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도서7장8-10, 14절).오늘 말씀은 인생의 경주에 임하는 자의 자세를 일깨워 주는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1.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이유는 상을 얻기 위함입니다.
사도바울의 24절 말씀은 복음을 향한 자신의 각오를 피력한 말씀 이기도 하지만 인생의 경주에 대하여 잘 표현하고 있는 말씀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인생을 경주를 하며 달려야 할까요? 그리고 사람들은 경주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낼까요? 경주는 상을 얻기 위함입니다. 상은 무엇일까요? 올림픽의 금,은,동 메달 만이 상이 아닐 것입니다.올림픽 정신은 참가한 모든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열심으로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며 보내는 관객들의 환호가 진정한 의미의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 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26절) 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인생의 경주에서 상은 목적지를 잘 바라보고 골인하는 것입니다. 달리는 경주자가 목적지를 바로 보지 않고 이리저리 달렸다간 실패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 시대에는 올림픽과 이스드미아 경기가 있었는데 이스드미아 경기가 더 친숙하였습니다. 그 경기 중하나인 달리기는 다른 종목과는 달리 목적지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선수가 아무리 빨리 달린다 해도 목적지로 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간다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경주의 목표는 바로 목표점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시작이 아무리 빠르게 멋지게 했다고 할 지라도 목표점에 도달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보면 경주를 실패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롯유다가 그렇습니다. 사울이 그렇습니다. 사울은 처음에 열심이었고 백성들의 신망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경주의 방향을 놓치고 결국 실패한 임금으로서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성도들의 목표점은 어디일까요? 성도가 이 땅에서 누려야 할 목표점은 바로 이 땅이 아니기에 우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목표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절제하는 경주가 되어야 합니다.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우리는 썩지 아니 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모든 일에는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절제는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성령의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성령에 사람은 하늘나라에 상을 얻기를 소망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늘나라의 상급을 얻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우리가 가지는 육신의 소욕을 버려야 합니다 누구나 출발점에는 모든 경주자들이 멋진 모습으로 출발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총소리가 나고 경주가 정작 시작 되었을 때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물도 마시고 싶고 그늘에서 쉬고도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절제가 필요합니다.
자동차 중에 가장 안 좋은 차, 위험한 차가 어떤 차입니까? 가격이 낮은 차입니까? 브레이크가 고장 나서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하는 차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경주에서 브레이크 없는 인생처럼 계속 달음질만 해 왔다면 일단 멈춤을 하여야 합니다. 하프타임이 필요합니다. 경기마다 하프타임이 다르지만 모자이크장로교회 성도들은 오늘 이 시간이 하프 타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나를 돌아보아 지난 우리의 경주가 과연 바른 것인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후반전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자동차의 브레이크는 바로 이러한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멈추어야 할 때, 달려야 할 때, 그리고 속도를 늦추어 회전 지역을 통과 해야 할 대의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 바로 절제입니다. 절제는 경주자에게 정말 필요한 것입니다. 마라톤에서 목표 지점이 설정 되었다고 무작정 달리 다간 얼마 달리지 못해 실패해 버리고 맙니다
3. 상은 썩지 않는 면류관이 되어야 합니다.
25절 하반절에서 경주자는 반드시 썩지 않는 면류관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경주하면 우리는 디모데후서4장7-8절과 사도행전20장24절 말씀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4).사도 바울은 경주의 목적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상은 바로 썩지 않아야 할 것”임을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썩지 않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복음을 들고 경주하여 얻는 면류관 입니다. 즉 복음은 영혼 구원의 문제 이므로 내 영혼만이 아닌 우리 이웃들의 복음을 들고 달려야 할 신앙의 경주가 바로 그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인생의 경주는 정말 멋진 드라마였습니다. 그는 오래 살며 성공적인 삶을 통하여 쾌락을 맛보는 인생보다는 짧고 굵은 신앙인의 양심의 경주 즉 희생의 길을 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권력자 헤롯이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빼앗은 것을 책망하다가 결국 감옥에서 죽게 되는 인생의 경주를 마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경주에서 실패했고 상을 얻지 못했을까요? 그는 영원히 썩지 않는 하늘나라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며칠 전에 한 분의 장례식을 다녀왔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 살면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지만 돌아 가시기전 가족들에 의해 주님을 영접하고 모든 장례 절차를 기독교식으로 치른 복된 사람 이었습니다. 입관 때 보면 죽은 분에게 화장하는 순서가 있습니다. 한국은 화장에 매우 신경을 쓰지 않지만 외국은 죽은 자의 모습을 마치 산 자의 모습처럼 만들기 위해 화장의 방법이나 종류에 따라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산 자처럼 만드는데 돈을 쓰는 것이지요. 죽은 사람을 영어로 Departed라고 표현합니다. 떠난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그렇습니다. 죽은 것은 죽은 것입니다. 아무리 산 자처럼 화장을 한다 할 지라도 죽은 것은 산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떠났다는 것”의 영적인 원리를 잘 알아야 합니다. 영은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며 하나님이 계시는 그 하늘 나라로 떠난 것이 죽음의 원리 입니다. 죽은 자의 썩어질 육신에게 화장하는 것은 어찌보면 참 무익 한 일인 것입니다.
우리의 경주의 목적은 육체의 육체의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하인생의 경주는 영원히 썩지 않는 것 바로 ‘영적’인 원리에 목적이 있기에 모든 것을 영적으로 풀어야 합니다. 구세군에서는 사관생도들의 난에 사망이란 난이 없고, 다만 진급의 난만이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망은 바로 천국으로의 진급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시록 14장 13절의 말씀을 유의해서 들어야 합니다. “자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인생에 경주는 주안에서 행하여야 되고 결국 경주를 마친 후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행한 것에 대한 보응이 있을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인생의 경주는 출발점이 있으면 언젠가 종착점이 있게 됩니다. 경주는 출발점의 문을 나서는 순간 즉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 종착점은 모든 경주가 다른 것 같이 사람들의 죽음이라는 종착점 또한 다릅니다. 어던 경기는 일찍 마쳐지는 경우가 있고 어던 경주는 연장전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도 자기 경주의 마치는 날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목회 사역 중에서 중요한 것 하나가 ‘호스피스’ 사역 입니다. 인생을 마감하는 환자들에게 미래의 죽음 이란 어떤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도와 결국 편안한 임종을 맞이하도록 하는 것을 호스피스 사역이라고 합니다. 죽음을 위해 부자가 되거나 보험을 많이 드는 것이 위로가 될까요? 그러나 그것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들의 인생의 경주의 종착역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임종자들의 마지막 소망이 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올림픽이 끝나면 많은 선수들이 돌아 옵니다, 그리고 그들이 거둔 성적에 다라 포상을하게 됩니다. 성대한 파티에도 참석을 하고 많은 영광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경주에 실패한 패배자들에게는 그 기간이 오히려 고통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저는 신아람 선수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가 구제를 받아 은메달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실패한 인생도 하나님이 오늘도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길 원하십니다. 비록 메달은 다지 못했지만 우리의 노력과 수고를 기억하시고 영광의 그 자리에 우리를 세워 주실 것을 우리는 믿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참고 인내하면 결국 주님이 도우시고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기차가 건널목에서 잠시 쉬어 가는 것 처럼 잠시 멈추어 서서 내 인생의 전반전을 돌아보고 후반전의 목표를 재점검하여 볼 수 잇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내가 달려가고 잇는 이길이 과연 바른 길인지 아님 열심히 하고 잇는 지 돌아보아 잘못된 방향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실패한 인생살이를 만회하여 역전시킬 수가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인생의 경주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습니까? 내 삶의 모든 현장을 디자인 하시는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감독임을 고백하십시오. 매사에 그 분을 바라보시고 그 분의 원하시는 사인대로 움직이십시오. 그 분의 의도를 간파하십시오. 그리고 열심히 달리십시오. 그래서 경주를 마치는 그날 우리모두 행복한 하늘 파티를 즐길 수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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