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신앙 골 3;15-17
‘감사’란? ‘고마움을 표시하는 마음’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지보(한번 밥을 얻어 먹은 은혜에 대한 보답),일반천금(한끼의 식사에 천금 같은 은혜가 들어있다는 뜻)라는 말이 있습니다.밥 한끼에 대한 감사를 사자성어로 표현 한 말입니다. 이렇듯이 밥 한끼에도 은혜요 그것을 감사해야 한다고 선인들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밥 한끼에 감사하는 삶’이 중요하다면 영원한 생명을 거저 얻은 신자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질문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죄의식과 심판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입니다.그러나 신자들은 구원의 소망과 감격으로 신자들을 이끌어 주는 삶의 원동력이 바로 이 ‘감사’입니다. 신자는 죄와 죄책 그리고 죽음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구출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새로운 삶을 감사하며 사는 것이 신자입니다. 또한 “나는 너를 에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1). 우리의 믿음은 바로 이 출애굽을 통해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에 대한 진정한 감사가 신자들의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에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자의 새로운 삶을 설명해나가면서 바울은 감사함을 세 번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의 삶 속에서 ‘하라,하지 마라’라는 율법이 우리의 삶을 이끈다면 우리는 이 감사와 멀어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거저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이끌어 간다면 우리는 있다면 우리는 진정한 신앙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입니다. 율법주의는 때때로 신앙의 바른 길을 방해하고 다른 길로 인도하여왔습니다. 신자는 죄책을 없애거나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율법에 복종하는 이중성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사와 순종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신자들의 순종은 하나님께서 이미 신자들의 죄책을 없애시고 값없이 구원의 선물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은 구원을 얻는 방편이 아니라 구원의 선물에 대하여 “감사합니다”라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삶의 방식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감사함을 느끼고 그것을 하나님께 표현하는 자입니다.우리는 늘 율법을 지키기 위해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보은의 표현으로 감사하고 사는 삶이어야 하기에 율법을 준수하며 살아야 했지만 ,솔직히 그렇지 못했음을 우리는 솔직하게 인정하고 회개해야 한다. 모든 참된 순종은 감사의 마음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사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몇가지 중요한 기본 요소가 있음을 오늘 본문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 보아 우리가 감사함으로 더욱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녀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감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내 안에 있어야 합니다.
15절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감정의 동물입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인생을 더욱더 깊이 있게 풍요롭게도 하지만 감정이 개입이 되면 부작용 역시 많게 되고 올바른 길도 굽게 만드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감정입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감정을 경고하는 많은 구절이 있습니다. 왜 성경은 그러한 감정에 대해 수없이 많은 곳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가장 큰 방해거리는 바로 절제하지 못하는 우리의 감정 때문 인 것입니다.
평강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바로 이 평강 입니다. 빌4:7에 보면”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모든 지각 위에 뛰어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십니다. 즉 우리가 세상에서 얻는 위로와 평강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요14: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놀라지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 그렇습니다,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평강은 세상의 것과 전혀 다릅니다. 놀랄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안에 있어야 감사하는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평강을 얻기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삶을 내려 놓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 고난은 결국 구원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고 그 구원의 길을 따르기 위해서는 우리도 우리의 삶을 내려 놓고 그분의 길을 걸어 가 구원을 얻어 평강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낙심은 바로 평강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사탄의 전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맙시다.”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우리가 선을 행하다 낙심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참된 평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서양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어느 날 마귀가 자기가 쓰던 모든 도구를 다 경매 처분한다고 광고를 내서 많은 구매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하나에만 '이것은 팔지 않음'하고 써 붙였는데 그것은 바로 '낙심'(discourage)이라는 도구였습니다. 그 이유인즉 다른 도구는 다 없어져도 좋지만 이것만은 결코 없이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낙심'이란 도구만 가지면 마귀는 무슨 일이나 원하는 대로 해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이 '낙심'만 집어 넣으면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낙심은 신앙 생활을 잘 하다가도 어떤 이유에서건 낙심한 사람은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잃지 않아야 감사 할 수가 있는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2. 감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슴에 품어야 합니다.
16절 말씀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말씀 속에 거하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말씀을 통해서 생명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은 창조와 생명의 원천이기에 우리가 그 말씀을 가슴에 품을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혜가 생겨 납니다. 말씀처럼 지혜로 모든 일을 행하면 실수가 없고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되어 찬양이 넘쳐 나오는 것입니다. 찬양을 드리는 사람은 바로 마음에 감사가 넘쳐 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감사하는 생활을 하십시오.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자가 큰일에도 감사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산 예배를 마치면 내가 감사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하나님과 여러분 주위의 모든 분들에게 하나도 빠짐 없이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합니다.
딤전6;3절에 보면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말씀을 품지 못한 자의 결과는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 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오늘 이 말씀을 깊이 상고하여 언제 어디서든지 우리가 가는 공동체는 살아나야 하고 부흥을 이루어야 합니다.
3. 감사하는 자로 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17절 말씀에 보면 “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우라는 세례를 받을 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만 우리가 거듭 날 수가 있고 결국 천국에 갈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많은 기적들이 특히 질병을 물리치고 사탄과 귀신을 내어 좆을 때 우리는 선포하기를 “주 예수 이름으로!’라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권세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이름으로 사십니까?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실명을 그곳에 적어 넣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그는 그 그림에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중국의 만리 장성을 쌓을 대 모든 벽돌공에게 자신의 이름을 적어 사용하도록 하였다는 일화는 그 만지 장성이 얼마나 튼튼하게 쌓을 수 있었는가 하는 해답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가운데 우리도 실명으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명으로 살려면 무엇보다도 모든 일을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감당해야 만이 실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강도가 협박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실명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은 자신의 실명을 선언문에 기록함으로 그들이 하는 일이 세상에 진실된 것임을 알리는 것입니다. 의로운 길을 가는 것이 성도의 길이요 신자의 길이기에 우리는 나의 영광을 가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앞에 두고 그분의 이름의 권세와 능력으로 모든 일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에덴에서 아담은 모든 천지 만물들에게 이름을 주었습니다. 아담이 이름을 짓자 하나님은 기뻐하셨고 그 일을 계속하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이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고유 번호 입니다. 오직 나 자신 스스로가 내게 주어진 이름에 대해 책임을 다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이름의 주인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실명으로 부끄러움 없이 잘 사는 것이야 말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 치료하는 광선이 된다”(말 4 : 2)
서양여자들이 시집을 가면 자신의 본성을 잃고 남편의 성을 따라야 합니다. 처녀 메리 스미스가 총각 요한 피터슨에게 시집가면 메리 피터슨이 돼야 한다. 이렇게 자신의 혈통을 남편의 혈통 속에 소멸 당해야 한합니다. 법적으로는 성만을 상실하지만 관습적으로는 이름마저도 상실한다. 부인을 호칭할 때나 편지를 쓸 때 `미세스 요한 피터슨'이라 쓰는 것이 에티켓에 들어 맞는다. 어디까지나 피터슨 부인이지, 메리라는 이름이며 스미스란 성대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서양도 그렇고 일본도 결혼하면 성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에서도 드물게 우리나라만 부인이 그 성을 그대로 쓰도록하고 있습니다. 실명을 사용하는 권리를 준 것이지요.
성(姓)이란 글씨를 풀어보면 알 수 있듯이 여자로부터 태어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곧 모계로 성을 이어 내렸던 모권사회의 유물인 것입니다. 중국 고대의 팔대성(八大姓)으로 치는 강(姜), 희(姬),사, 원(嫄), 영(瀛),길, 운, 규가 모두가 계집녀(女)변으로 돼 있음도 바로 모계로 성이 계승되었다는 단적인 증거랄 수 있습니다.성씨의 구성도 다분히 성경적이지요. 성의 역사는 세계적으로 중국 다음에 우리나라가 깁니다. 이미 삼국시대의 시작과 더불어 성이 등장하고 있고 이에 비해 이탈리아에서는 겨우 9 세기에, 영국과 슬라브 세계에서는 11 세기경, 게르만 귀족간에는 13 세기에 성이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그나마도 상류사회 뿐이요, 일반 서민에게 성이 보편화된 것은 세례명을 교회에 등록하기 시작한 18 세기 중엽부터입니다. 이웃 일본은 명치유신 때만 해도 성이 없는 사람이 95 %나 됐고, 터키, 이란, 아프니카스탄 등은 1935 년 전후에 생겨 났습니다.
우리 한국이 얼마나 선진국이요 또 종주국인가 알 수 있습니다. 혈통을 중요시하지 않았던 탓인지 중세 유럽에서는 영주(領主)나 귀족들의 성(姓)의 매매가 심했다. 독일의 예를 들어보면 돈 없는 사람은 가장 헐값인 슈반쓰(꼬리)나 슈무스(먼지) 같은 성을 사서 행세하다가, 돈이 조금 생기면 동물 이름인 볼프(늑대)니 포겔(새)같은 성을 사서 행세하고 돈이 더 생기면 색깔 이름인 슈바르쓰(黑) 브라운(茶)으로-, 가장 값비싼 성은 로젠베르크(장미의 산) 부루멘탈(꽃피는 계곡) 같은 시적인 이름이었다고 합니다.빌2:9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가장 뛰어난 이름은 바로 예수그리스도 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그분 이름으로 만 살 수가 있다면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제 감사 할 수 있는 자들의 조건을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말씀을 잘 새겨서 평강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일을 감당하여 감사의 생활을 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 만이 우리를 풍요롭게 할 수 있으며 감사 만이 저와 여러분그리고 우리 교회 공동체를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작은 일에 먼저 감사하며 나아갑시다. 우리 주변에서부터 누가 나에게 감사한 사람인지 생각해 보고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립시다.그래서 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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