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12-11-11 고난과 영광의 면류관 시 17:14-15 모자이크 장로교회 조나단 목사

하나님아들 2013. 2. 14. 12:00

고난과 영광의 면류관  17:14-15

다윗은 사울과 그의 군사들에게 거의 죽을 번한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 하나님께 자신의 온전 함을 고백하며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며 하나님의 즉시 개입을 위해 기도하는 내용이 시편 17편입니다. 다윗은 참으로 고달픈 인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욥기 5:7절에 보면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라고 기록된 것처럼 인생은 고난의 연속 입니다.왜 인생을 고난으로 표현 했을까요? 그것은 죄의 열매 때문입니다. 세상에 모든 종교가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한 것은 기독교 밖에 없습니다.

 

어떤 시인은 고난의 아름다움이라는 시에서 고난을 나무의 가지치기로 표현하였습니다. 가지치기는 가지를 자르는 아픔이 있지만 그 가지를 쳐주어야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 처럼 고난의 가지치기 없다면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땅에서 받는 고난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34:19”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 도다.”하나님은 의로운 성도들이 겪는 고난을 그냥 두시지 않는 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또 약속하시기를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8:18). 성도들은 장차 받을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사는 사람들 이 성도입니다. 성경은 세상에서 받는 어떤 고난도, 세상에서 경험하는 하늘나라의 체험과 비교 할 수가 없다고 강조합니다.

 

 사람들은 고난을 당하면 강해집니다.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거나 그야말로 완악하고 강팍한 성격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30년 간 애굽에 종살이하면서, 노역이 늘어 날수록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 했습니다. 한나는 첩인 브닌나가 자식 여섯을 낳고 그를 괴롭힐 때마다 성전에 나아가 무시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사무엘이라는 걸출한 자녀가 생긴 것입니다. 

 

고난이 없어서 하나님을 찾지 않은 부자들보다, 고난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은 사람들이 부자들이 가지지 못한 더 멋진 것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노역의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서 홍해를 걸어서 건널 수 있게 해주셨고 광야에서 메추 라기와 만나를 먹을 수 있도록 해주셨으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에서 영원히 살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고난이 주는 축복이요 소망입니다. 실망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더 멋진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난을 받는 우리가 이 땅에서 무엇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우 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 릴지니라”( 8:24-25).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이 땅의 것은 우리의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소망 중에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 바로 구원이요 영생 입니다. 오늘 우리는 고난의 의미와 장차 우리가 얻게 될 면류관의 의미에 대하여 본문 말씀을 통해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보이는 것을 소망하는 자는 이 땅에서 분깃을 받은 자 입니다.

14절 상반절에서 시편 기자인 다윗은 자신이 겪는 고난과 고통이 세상에서 분깃을 받은 자들에게서 나온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다윗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는 핍박을 받아 생명 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다윗을 핍박하는 자들은 권력을 지닌 사울왕과 그들의 추종 세력 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핍박자들을 다윗은 세상에서 분깃을 받는 자,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산업을 어린아이들에게 물려 주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분깃을 받았다는 표현은 이 땅에서 비록 많은 것을 누리게 되겠지만 결국 하늘나 라에서는 누릴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악인은 이 땅에서 일시적으로 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땅에서 만이 가능한 일시적인 것입니다. 교회에는 십일조와 감사 헌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십일조는 자신의 수입 중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것이고 감사헌금은 그 중 일부로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 십일조와 감사헌금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3;10”만군의 여호와 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상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헌금을 주님께 드리지 않고 모은다면 다소 보탬이 될 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어떤 거지가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였습니다. 그곳을 지난던 사람들이 거리에서 하지 말고 교회 앞에 가서 구걸을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충고하자 교회 앞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엎드려 구걸을 했더니 정말 돈이 잘 벌리는 것입니다. 그러자 교인 중에 한 사람이 교회에 왔으면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자 그 걸인은 예배 시간에 예배를 드리고 얼른 나와서 구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인들은 걸인이 예배에 참여하자 기뻐서 더 그에게 돈을 많이 주기 시작 했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교인이 감사헌금이나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하자 그 걸인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 님이 헌금시간에 걸인이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낸다고 광고를 하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해서 그 걸인에게 더욱더 많은 헌금을 하였다 합니다. 그 후 그 걸인은 믿음이 더욱 자라고 그 교회에서 장로가 되었으며 더 이상 구걸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소개 된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농장의 법칙은 심은 대로 소출이 납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납니다. 그리고 한알을 심으면 30 60십배 100배의 결실을 거두고 이 땅에 심으면 이 땅에서 하늘나라에서 심으면 하늘나라에서 거둘 수 있는 것이 바로 농장의 법칙입니다. 우리 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유익한 고난을 하늘에 많이 심어야 합니다. 유익한 고난은 그리스 도안 에서 겪는 고난이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소망을 위해 겪는 고난 인 것입니다.       

2.    보이는 것을 소망하는 자는 재물로 배를 채우는 자 입니다.

14절 중반절에 보면 다윗은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 주는 자들에게 고난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악인의 성공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악인들이 이룩한 성공은 일시적인 것이기에 결코 부러움에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10절 말씀을 보면 다윗은 잘 먹고 잘 살아서 뱃살이 두둑해지고 교만한 말을 하는 악인들을 보았습니다. “저희가 자기 기름에 잠겼으며 그 입으로 교만히 말하나이다(10).” 악인들은 뱃살이 두둑해지면서 그들은 자신들보다 연약한 자들을 짓밟는 죄악을 범합니다. 그들과 그들의 자녀는 오직 육신의 정욕을 위해 기름진 것으로 배를 채웁니다. 그리고 그 악인들이 남긴 재산을 상속받아 떵떵거리며 삽니다.

 

 다윗은 그런 악인들과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악인들을 존경하지도 않았고 그들과 한패가 되지도 않았습니다. 악인들은 의롭게 사는 다윗을 죽이려고 나섰던 것이고 그것은 그들의 유익을 위해 다윗을 죽이려 한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 구원을 베푸신다고 고백하며 그분의 절대적인 도우심을 믿고 의지 했습니다.(7). 그 누가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을 격퇴할 수 있겠습니까? 그 누가 우리를 당신의 눈동자처럼 여기시고 사랑하시며 지키시는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암탉이 날개로 병아리를 사랑하여 품듯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사랑하여 품으십니다.

 

 악인들의 기업은 세상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인의 기초는 하늘에 있습니다. 악인들의 기업은 마지막 날에 그들의 기업은 영원한 고통으로 끝나 버리지만 하늘에 기초한 믿음의 기업 의인들의 기업은 마지막 날에 진정으로 복된 하늘의 기업을 유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다윗은 의인으로 악인들의 미움을 사 기름진 배를 채우기 위해 날뛰는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 할 위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다윗을 하나님은 강한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6:13,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결국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소망으로 고난을 참고 이겨야 합니다.

3.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하는 자는 주의 얼굴을 볼 것입니다.

15절에서 다윗은 의로운 중에 주를 뵈오리니라고 그의 소망이 하나님께로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형상을 뵈올 수 있습니까? 그것은 다윗처럼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 가 하나님을 뵈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뵙기 위해서 죄인의 모습으로는 불가능 합 니다. 하나님은 영광의 광채시기 대문에 그의 얼굴을 뵈는 순간 우리는 그분의 빛을 받아 모든 더러움과 어둠이 사라져 버립니다. 우리가 그분의 얼굴을 뵈올 때 우리는 기쁨과 평화와 안식과 만족과 거룩함의 나라에 거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마지막 날에 우리의 죽음의 잠에서 깨어날 때 그 때엔 주의 형상으로 만족 할 것입니다. 거짓과 탐욕은 마귀의 자녀나 좋아하는 것입니다. 특히나 세상에서 살 때 물질로 거짓된 악인의 모습으로 살 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나니야와 삽비라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러 성전에 왔다가 거짓된 태도를 보였다가 큰 화를 당했습니다. 거짓은 사람에게 하든 하나님께 하든 성령을 속이는 죄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 누구 에게든 거짓이나 탐욕을 부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정결하고 정직한 삶은 하나님을 영화로우시게 해드리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산 제사입니다. 세상에 거의 대부분의 죄악들이 물질에 집착하거나 욕심 대문에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질을 선용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여야 합니다. 좋은 향기가 변질되면 가장 독한 악취를 발하고, 향기로운 꽃이 썩으면 가장 악한 냄새를 내듯 선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짓과 탐욕의 마음을 품어 변질되면 정말 아름답지 못한 존재가 됩니다. 항상 거짓과 탐욕을 마음에서 몰아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자들이 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나사로는 미래의 소망으로 살았습니다. 부자의 대문간에서 부스러 기를 주워 먹는데, 그 집을 지키는 개가 나사로의 헌데를 핥았습니다. 고통스러운 이 땅에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거할 수 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은 이 세상에서 누리던 부자의 행복이나 그가 거지의 삶으로 받은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뻐했습니다. 부자는 지옥에 나사로는 천국의 면류관을 쓸 수 있었기에 하나님이 나사로를 위해 마련하신 하늘나라 장막은 이루 비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나나로 처럼 못 먹는다고 해도 굶는 사람이 없고, 옷 입는다고 해도 헐벗은 사람이 없고, 못 잔다고 해도 이슬 맞는 곳에서 자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하늘 나라를 소망하고 살기에는 더 없이 좋은 때입니다. 아브라함이 부자를 향해서도얘 너는 살았을 때 좋은 것을 이미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16:25) 하셨던 말을 기억 합시다. 면류관은 수고한 자들이 얻는 영광의 관입니다. 마라톤에서 면류관을 얻기 위해 그 먼길을 고통 속에서 달려야 하고 그 가운데 한명 만이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고난이 없으면 면류관도 없습니다. 성도의 길은 기름 진 길이 아닙니다.

 

성도의 길은 희생의 길입니다. 섬김과 봉사의 길입니다. 성도의 길은 이 땅에 분깃이 아니라 하늘의 분깃을 위한 길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달려 갈 경주를 마감하는 날 우리의 고난이 유익이 되어 우리가 하늘의 기업을 유산으로 받기를 위해 노력합시다. 이 땅에서 성도는 자족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받은 은혜와 축복은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우리는 그 은혜로 사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5: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고난은 우리에게 유익이고 산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시고 받으신 그 고난에 우리가 참여하므로 영원한 면류관을 받는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출처 : 익산모자이크장로교회
글쓴이 : 다윗과 조나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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