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6 (마6:11절)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여기서 오늘날 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날”이라는 단어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2250 hJmevra(헤메라)와 4594,shvmeron(쎄메론)입니다
그런데 hJmevra(헤메라)는 사전에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1476, eJdrai'o"(헤드라이오스)의 여성형, 5610,w{ra(호라)의 뜻이 함축됨; 낮,(새벽부터 저녁까지의 시간대), 또는 24시간, 그래서 시간’시대, (한)낮 으로 보는데 문장에 따라서 규명한다, 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1476,eJdrai'o"(헤드라이오스)에 대해서는 앉다, 의 파생어에서 유래;‘앉아있는’, 즉(함축적으로)‘움직일 수 없는’, 고정된, 튼튼한 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hJmevra(헤메라)라는 고정된 “육적 시간인” 하루하루를 말하고 있고
그다음 shvmeron(쎄메론)은- 정관사 o(호)와 hJmevra(헤메라)의 합성어의 중성부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shvmeron(쎄메론)은 정관사가 들어 있는 지정된 어떤 날들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냥 보통 하루하루가 아니라 지정된 어떤 날들, 즉 오늘날이라고 하고 또한 영적인 날이라고 말하는 날들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날이 언제냐?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주님의 음성이 들려진 날입니다
음성이 들려져서 아들로 낳아진 그때를 말하죠,
이제 아들로 낳아졌으니 양식이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일용할 양식을 주시요 하고 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분들은 일용할 양식을 육신의 양식도 되고 영의 양식도 된다고 말한다는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예 육신의 양식으로만 해석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일용할 양식이 뭐냐? 원어로 봅니다,
여기나오는 일용할 이라는 단어 ejpiouvsion(에피우시온)이 1909, ejpiv(에피)와 1510, eijmi(에이미)의 현재분사 여성형의 파생어에서 유래했는데 그 뜻은 “위에 있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런데 a[rton<(아르톤)이 “떡” 이니까 “일용할 양식은” 육신의 양식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위에 있는 양식”인데 관사가 앞에 있어서 위에 있는 우리들의 “그” 양식입니다,
이것을 히브리말로는 Wn hQ;j !j,l,(레헴 후카 누)인데 899, !j,l,(레헴)은 양식이고
2708, hQ;j(후카) 는 정해진 그런 의미고 Wn(누)는 우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 정해진 양식이다 이겁니다
그러면 정해진 양식이 뭐냐?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매일 걷어온 그날 양식이었습니다,
그날그날의 양식이죠, 욕심으로 많이 걷어 와도 썩어버리고 내일 것까지 걷어다 나둬도 썩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날그날 필요한 만큼만 걷어다 먹어야만 하는 양식입니다
그런데 그날그날 필요한 양식을 주신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신8:3)
두 번째는 복을 주시기 위함 이셨습니다,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라(신8:16)
그러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복이 뭐냐?
궁창을 명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저희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으로 주셨나니 사람이 권세 있는 자의 떡을 먹음이여 그가 식물을 충족히 보내셨도다(시78:23-25) 이것이 말라기3장에서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는 복입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내린 양식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주시느니라(요6:32)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조상들은 죽었지만(요6:49)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은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는 (요6:50) 영생하는 떡입니다,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요6:51)
그러니까 예표인 만나를 통해서 참 하늘양식을 주시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가나안땅에 들어가면 만나는 그치고 그 땅의 소산을 먹게 됩니다,
만나는 그 땅의 소산을 먹는 그 다음날부터 그쳤습니다,(수5:12)
그때부터는 그 땅에서 나오는 양식을 먹고 살아갑니다,
그러면 그 땅의 양식은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바로 네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나니라, 하는 그 생수 양식을 말합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인데(요6:33)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6:34)
여기서 생명을 주는 동사가 현재 시제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늘에서 내린 하나님의 떡은 세상에게 현재 생명을 주시죠,
이것을 요6:35절에서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지금 생명의 떡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하고 언제든지 목마르지 아니한다고 하셨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시제는 오직 현재만 있습니다,
어떤 책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마귀의 달력에는 언제나 내일만 있다고,,,,
삼백육십오일 내일 내일만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달력에는 오직 오늘만 있습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언제나 현재입니다
내가 어제 아무리 큰일을 했다고 해도 그것은 어제의 일입니다 또한 내가 내일 엄청난 일을 한다 해도 내일은 나의 소관의 날이 아닙니다 모든 날과 모든 시간들이 다 주님의 권한아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매일 매일을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사느냐가 바로 오늘의 구원입니다
아무리 오늘 양식을 배불리 먹었어도 오늘의 양식은 오늘양식입니다
내일의 양식은 또 내일 먹어야 배고프지 않는 겁니다,
내일 구원은 내일 다시 시작해서 내일의 구원을 이루는 겁니다,
이것이 매일 매일 현재 시제로 계속 이어져서 그것이 날마다의 구원이고 오늘날 일용할 양식을 먹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입니다,
왜요? 생명의 역사는 단절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떨어졌다가 붙었다가 할 수가 없습니다,
떨어지면 말라 시들어 버리는 것이고 붙어있으면 계속적으로 붙어서 뿌리로부터 양분을 공급받고 열매를 내는 겁니다,
다만 태양의 영향을 받느냐 아니면 땅의 진액을 빨아먹느냐하는 차이점만 있을 뿐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당신의 은혜를 공급해주시지만 자라고 장성하면 자기가 내린 뿌리에서 진액을 공급받아 스스로의 삶을 사는 겁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분명 세상 사람하고는 다른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 살면서 어려움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광부가 금을 깨는데 금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잡석도 같이 나옵니다, 우리에게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은 금을 깨는데 나오는 잡석과 같습니다,
이것이 금을 케내기위한 필요악인 동반자입니다
그러나 금을 깨지 못하고 잡석만 있다면 나중에는 그것 때문에 지쳐죽고 맙니다,
그러니까 매일 매일 내 영적 상태를 지속하지 못하면 결국 혼적인 잡석 때문에 질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계시록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2:17)
그런데 그 이름을 계19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계19:12-13) 그래서 그분 자신이 생명의 떡인데 생명의 떡은 말씀입니다,
그러면 왜 일용할 양식인 말씀을 구해서 먹어야 되느냐?
그 다음에 kai v(카이)라는 대등 접속사로 연결된 탕감 문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6:9절부터 주기도문이 나오는데 kai(카이)라는 접속사는 12절 맨 앞에서 처음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카이라는 접속사를 사용하느냐?
앞의 11절 내용하고 뒤에 12절 내용이 대등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의 내용은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고
뒤에 내용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인데 두 가지가 대등하다는 것이죠,
왜냐? 앞에서 그날그날에 필요한 하늘 양식을 충만히 먹고 나면 배가부름과 동시에 흡족하게 됩니다, 이 상태가 바로 주님과 하나 된 사랑의 상태입니다
이제 사랑이 되었으므로 탕감 문제는 한마디로 사랑해 버리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사랑할 수가 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면 사랑하기 위해서 여기서 나오는 죄가 뭔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죄라는 것이 ojfeivlhma(오페이레마)인데 그 뜻은 빚, 의무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롬4:4절에서는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여기서는 빚으로 표현했습니다,
원래 죄라는 단어가 aJmartavnw(하마르타노)라고 따로 있는데 ojfeivlhma(오페이레마)를 쓰는 이유는 갚아야 된다는 개념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빚이라는 것은 반드시 갚아야 되는 겁니다,
갚지 않으면 언제까지든지 채무로 남아있는 것이 빚이죠,
그런데 빚이라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죄 빚이고 또 하나는 은혜의 빚이 있습니다,
이미 죄 문제가 해결되고 은혜가운데 사는 자들은 은혜 빚이고 아직도 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자들은 죄 빚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직역하면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탕하여준 것같이 우리들의 그 빚들을 우리에게 탕감해 주옵시고 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탕감해 주옵시고가 a[fe"(아페스)인데 ajpo(아포)+ivhmi(히에미)입니다
그런데 ajpo(아포) 라는 전치사는 완전히 라는 개념이 있고 ivhmi(히에미)는 보내버리다,
떠 넘겨버리다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보내버리다, 혹은 완전히 떠 넘겨버리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빚을 아주 보내 버리다, 라고 하면 탕감해버리다 라는 의미고, 또한 죄를 아주 보내버리다 하면 죄가 완전히 사해졌다는 것입니다,
,
그러나 무조건 탕감을 받고 무조건 사함을 받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이쪽에 있던 것이 저쪽으로 옮겨가는 것을 의미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죄를 십자가에 다 떠 넘겨버렸습니다
그러면 은혜는 어디에 넘겨야 합니까? 내가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넘기는 것입니다,
만약에 말씀을 a[fe"(아페스)하면 말씀을 떠 넘겨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장소 개념의 a[fe"(아페스)입니다
그런데 마6:14절에서는 죄를 과실로 표현을 했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려니와,,,
여기서 과실은 paravptwmata(파라프토마타)입니다
즉 옆으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 하죠,
이것이 아담과 하와의 범죄 입니다 목적을 생명나무에 두고 가야 하는데 선악과를 향한 것이 paravptwmata(파라프토마타)범죄입니다,
그래서 죄라는 것은 도덕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대한 파라프토마타 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살아있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로 나갔어야 했는데 선악과로 갔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요6:38절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살리는 이것이라, 그러니까 그분이 양식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살리시는 겁니다,
왜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퐁당 빠졌어야 되는데 선악과 쪽에 퐁당 떨어진 겁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죄 빚이 된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뜻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그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죄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를 가장 잘 표현한곳이 마18:21절 이하 입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그 다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탕감 받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다음에 백데리온 빚진 동관 얘기가 나온 뒤에 33절에서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35절에서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여기서 보면 주인이 나오고 일만단란트 빚진 종이 나오고 또 하나는 백데라니온 빚진 종 셋이 나옵니다,
일만단란트 빚진 종은 주인한테 돈빚을 졌습니다, 그런데 불쌍해서 탕감을 해 주었습니다
탕감해주었으므로 종은 주인한테 빚을 갚을 의무가 없어졌습니다,
문제는 주인한테 일만단란트 빚진 종과 그 종에게 백달란트 빚진 종과의 관계입니다
백데리온 빚진 종이 일만다란트를 탕감 받은 종에게 빚을 감을 능력이 없으니까 백데리온 빚진 종을 옥에 가뒀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그 소리를 듣고 일만달란트를 탕감해 준 종에게 다시 갚으라고 했는데
왜 그랬을까요?
결국 백데라리온 진 빚을 탕감해 주지 않으면 일만단란트 빚이 다시 되 살아난다는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왜 되살아난 겁니까?
이미 채무 관계가 끝이 났는데 다시 되살아난 것은 완전히 채무관계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일만단란트 빚진 종은 일만단란트 빚은 탕감 받았지만 이제는 은혜 빚이라는 것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은혜의 빚도 반드시 갚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은혜 빚을 갚아야 만이 일만단란트 죄가 완전히 끝이 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만단란트 탕감 받은 종은 주인의 은혜를 모르는 종입니다
왜냐면 자기한테 백데다리온 빚진 자를 안 감는다고 옥에 가두었거든요
그래서 주인이 다시 일만단란트를 갚으라고 한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죄 빚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탕감 받았습니다,
탕감 받은 그 사실이 엄청난 사실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은혜로 말미암아 탕감을 받았으니 이제는 죄 빚은 갚을 필요가 없지만 반드시 은혜의 빚은 갚아야 됩니다,
만약에 그것을 갚지 않을 때는 죄 빚이 다시 되살아난다는 겁니다,
왜요? 죄 사함 받은 것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모르는 것은 죄 사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라 이겁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결론적으로 다른 사람의 빚을 탕감해주는 것으로 자기의 빚이 완전히 탕감이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구원시키는 사역을 전제해야 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목사나 전도사만이 아니라 구원받은 모든 사람은 자기가 과거에 이런 사람이었던 것을 되돌아 보면서 그런 상태에 있는 다른 사람에 대한 뜨거운 정렬과 마음이 있는 것이 내 죄 빚이 탕감된 것이고 아울러 이웃의 죄 빚을 탕감해줄 수 있는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마25장의 양과 염소 얘기입니다
주님께서 오른편에 있는 양들에게 내가 주릴 때에 먹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했고 헐벗을 때에 입었다고 했습니다, 그때에 그들이 언제 우리가 그렇게 하였나이까 했습니다,
지극히 적은 소자 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베푼 양들은 잃어버렸는데 주님은 기억을 하고 계십니다,
이 양들은 왜 잃어버렸을까요?
양들은 채무관계가 아니라 은혜관계였기 때문에 잃어버린 겁니다,
채무관계는 절대로 잃어버려지지 않죠,
마태복음18장 사건과 연관시켜볼 때 일만란트를 탕감 받은 종이 백데라리온 빚진 자를 탕감해주지 못한 것은 이 종은 양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양들은 많은 죄 빚을 탕감 받고 감사해서 일부분을 소자들에게 베푼 겁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해 놓고 나서도 잃어버린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왼편에 염소들에게는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렇게 하지 아니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염소들은 언제 당신이 굶 주렸고 언제 당신이 옥에 갇혔나이까, 하고 반문합니다,
이들은 얼마든지 있는 지극히 적은 소자들에게 왜 안했습니까?
그것은 은혜를 못 받았기 때문에 소자들에게 베풀어야 될 동기도 없고 이유도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당연히 영벌에 들어갈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신앙의 결론입니다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은 사람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행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세상이고... 하고 잃어버리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자들입니다
그러면 결론적으로 paravptwmata(파라프토마타) 옆으로 떨어진 사람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 주는 사람들이 진 빚을 갚는 사람들이고 이들이 양식을 공급해 줌으로써 그들은 그 양식으로 말미암아서 살게 되고 살게 되는 그것이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하늘 문을 여시고 솥아 부어주시는 은혜를 받아서 거져 갚아버리는 a[fe"(아페스) 사건이다 이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집안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공급하는 자들입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44)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마24:45)
그리고 다음에 48절에 악한종이 나오죠,
그러면 왜 44절에서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하고 소절표시도 없이 바로 45절에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라고 나옵니까?
인자가 오리라하는 사건과 때를 따라 양식을 공급하는 것이 관계성이 있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요6:27절이죠,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자니라,
마24:44절에서는 인자가 오리니~~ 여기서는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그 인자가 6:35절에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로 연결이 됩니다,
그러니까 카이라고 하는 접속사 하나가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가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점일획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결국 빚 갚는 paravptwmata(파라프토마타)는 양식과의 관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롬1:14절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무슨 빚입니까 복음 빚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1:15)
이 복음은 16절의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의 빚과 하나님의 능력이 17절의 하나님의 의죠,
이것이 13절에서 다른 이방인과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입니다
결국 11절에서 내가 너희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나누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라,
그래서 로마서8장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래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완전히 탕감 받고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다(롬8:12)
무슨 빚을 졌습니까?
바로 은혜 빚인데- 생명의 성령으로 말미암아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결코 정죄함이 없는 은혜 빚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면 반듯이 죽고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고 성령을 좆아서 살면 살게 되죠,
그러니까 파라프토마 한자들을 생명으로 이끄셔서 그들을 빚쟁이 만드시고 빚쟁이 만드셔서 빚 갚게 하시는 것이 바로 바울 사도 같은 하나님의 종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겔3:17-19절입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
3:1-3절입니다,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이 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해줘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은혜의 빚을 진 사람입니다
왜냐? 33:1절-6절까지 입니다, 여기서 파숫군의 나팔이 나옵니다, 칼이 임한다는 경고 나팔을 불어야합니다 그런데 울리지 않아서 적군에게 죽으면 그 피 값은 네게서 찾겠다 그겁니다
마지막 때에는 환란, 기근, 적신이 오는데 왜 옵니까? 말씀 때문에 옵니다, 말씀을 얻어먹지 못한 기갈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경고해서 생명 되신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라고 외치는 이것이 인자들이 해야 할 은혜 빚 갚는 일입니다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7-9)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할 기근 때가 온다는 것을 경고해서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중매쟁이 역할입니다,
겔 33:10- 그런즉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중에서 쇠패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 하거니와
여기서 우리의 허물과 죄가 우리에게 있어- 이 사람은 아직 죄 빚 문제가 해결이 안 된 사람입니다
그다음 겔 33:11절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하나님은 악인이 죄 때문에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악인의 죄와 허물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상태에서 떠나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있는 것 때문에 오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죄에서 떠나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죄가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서 돌이켜서 생명가운데로 나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악인이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나니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겔33:11)
왜 죽기를 작정하느냐 그 말입니다, 왜 살려고 하지 않느냐 그 말입니다, 이것이 파숫군이 외쳐야할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12절입니다,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 하는 날에는 그 의가 구원치 못할 것이요 악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 하는 날에는 그 의로 인하여는 살지 못하리라
이것이 바로 구원은 현재라는 겁니다,
어제 내가 대단한 의인 이었다고 할지라도 오늘 범죄 하면 어제의 의가 오늘 나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고전 9:27절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그래서 항상 영적인 상태를 지속해야 되는데 그것이 주님의 십자가 사랑입니다
먼저는 머리이신 주님께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공급받고 그 다음에 그 양식을 이웃과 나눔으로써 빚 탕감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구원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속에서 나 혼자만의 구원이 아니라 연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라 하셨죠,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정상이면서 아울러서 이웃과의 관계성이 정상일 때 이것이 바로 화목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둘로 하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들의 죄지은 자들에게 우리도 사하여준 것 같이- 이것은 우리가 말씀을 받아서 하나님의 생명가운데 들어간 것은 누군가가 우리들에게 그 은혜의 빚을 떠 넘겨서 들어가게 된 겁니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울이나 사도들이나 선지자들이죠,
그들이 우리들에게 자기들의 빚을 떠 넘겨준 것같이 우리가 그들에게서 떠넘겨 받은 빚더미를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게 해 주소서, 이것이 죄 빚은 이미 해결되었고 현재 은혜 빚 가운데 있는 자들의 기도다, 이겁니다
한마디로 우리로 전도할 문을 열어 주사 하나님의 비밀을 담대히 말하게 하시옵소서,
바울사도의 기도입니다
왜요? 우리는 이미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신 새 언약이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가 성취된 사실을 감사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은혜의 빚을 갚으므로 내 빚이 완전히 탕감되어지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섭리요 뜻이며 완성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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