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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의 기준 세우기 - 18. 신앙의 회복이 되어질 때 나타나는 현상

하나님아들 2013. 1. 19. 14:27

하나님의 기준 세우기 - 18. 신앙의 회복이 되어질 때 나타나는 현상

 

하나님의 기준을 살펴보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기준을 읽고 다른 사람이 보이고, 다른 교회들이 보이면, 하나님의 기준을 바로 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바로 보게 되면, 자기 자신이 천리만리 주님 앞을 떠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자기 코가 석자인데, 남이 보이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 글이 자신 이외에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데 사용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모습의 가짜신앙을 따르고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사실 신앙의 본질(하나님 나라)의 삶으로 전환하는 것은, 그리스도 그 분이 나의 유일한 전부인 삶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이 분야는 책이나 인터넷과 그리고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들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산 사람들의 신앙의 여정을 저는 제대로 접해볼 수 없었기 때문에, 전적으로 저를 하나님 그분에게로 인도하신 저의 여정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1. 나중심의 신앙에서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전환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나를 신앙적으로 성숙시키시고 나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말 자체는 틀린 것이 없지만, 이 말 속에는 잘못된 세계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에 대하여 생각할 때 항상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을 하지 못할 때가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 중심으로 신앙을 생각하고 성경을 나름대로 도입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보지 못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하며 성경을 도입하면 그것이 맞는 줄 압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 확실하게 증명되었기 때문에 정통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리세인이 성서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 그들이 왜 예수님께 버림받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항상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해야합니다. 즉 생각하는 가치관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인격체 되신 하나님을 전 존재로 사랑하는 것”, 다른 말로 말하면 “인격체 되신 하나님이 자신의 유일한 모든 것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소망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것도 이것 때문이고, 우리를 십자가의 대속으로 죄에서 구원하신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보며 자신의 신앙생활에 실제가 되면, 자기중심의 신앙생활에서 하나님 중심의 신앙생활로 전환하게 됩니다.

 

2. 기도할 기도제목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이 나의 인생에 유일한 모든 것 되면, 기도할 기도제목들이 없어집니다.

 

그전까지 야망이 있기 때문에 내가 하고 있는 목회적 성장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동일시하였고, 목회적 열매를 많이 맺으면 사람들과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저의 마음속에 숨겨진 깊은 속마음 때문에, 사역을 위해 기도를 참 많이 했습니다. 그전까지 수많은 기도제목들이 있었는데, 삶의 전환 이후로 지금까지 해왔던 수많은 기도제목이 더 이상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그 분만으로 만족하니, 수많은 목회 욕심과 목회 꽁수들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부흥도 교회성장도 열심히 사역한 모든 것이 나의 야망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모든 것이 내려놓아지니, 더 이상 욕심이 없이,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내게 주어진 사역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필요한 것 이외에는 기도할 기도제목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과거의 전통과 의식이 신앙의 본질을 대체해버린 율법주의, 자기 힘과 목적 방법대로 살며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착각하고 있는 인본주의, 자신의 필요를 위해 하나님이 우리의 수단된 기복신앙, 성경을 많이 아는 것을 신앙이 깊다고 착각하였던 수많은 나 자신들 속에 있던 가짜들과의 싸움을 가운데, 제가 가장 많이 기도할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하나도 선한 것이 없는 존재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내 속에 괴물이 하나 살고 있다며, 울부짖으며 기도한 적이 참 많았습니다.

 

하나님 그분만으로 만족하고 살면, 하나님이 우리의 쓸 것을 채워주신다는 그 약속을 신뢰하고 나니, 나의 필요를 위해 기도조차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정말 먹을 것이 하나도 없어서 하나님께 오늘 먹을 양식을 위해 기도해본적은 있어도, 오늘까지 우리의 필요를 위하여 기도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우리를 굶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항상 필요한 만큼만 채워주셨습니다.

 

병자를 위하여 그리고 주위에 기도할 일반적인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고 다른 사람의 기도제목들을 가지고 기도하고 나면, 기도할 내용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하도 할 기도가 없어서 방언으로 기도를 하며 시간 때우기도 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삶의 전환이후 기도하기위해 자리에 앉으면, 기도할 것이 없어서 심각한 고민까지 했었습니다.

 

차츰차츰 기도제목이 없어도 자리에 앉아서 그냥 하나님 생각하며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주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것이 그냥 그렇게 하나님 생각하며 있는것인줄 알았는데, 그리스도의 임재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유익한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시행착오들을 하면서,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을 읽으며 기도할 기도제목들이 풍성하게 발견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나 기도할 것들이 많은지 흥분된 상태로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전까지는 성경의 지식을 알고, 성경의 진리가 내 삶 가운데 적용되게 하기 위해 성경을 읽었는데, 이제는 성경 속에서 살아계시고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성품과 그분의 열망이 발견되어지니, 그것을 가지고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벅찬 기도의 부담이 다가왔습니다.

 

특별히 성경은 예전 고어로된 성경과 별로 차이가 없는 개혁개정판 가지고 읽을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부족하지만 현제로서는 원어에 충실하고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새번역 성경” 혹은 다른 좋은 번역판을 아신다면 그것을 가지고 읽는 것이 좋습니다. 원어를 완벽하게 번역한 성경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 가운데 여러 가지 좋은 번역본을 비교하면서 읽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 것 같습니다. 저는 개역개정, 새번역, 공동번역 개정판 3가지를 함께 비교하며 읽습니다.

 

3. 그리스도의 임재가 조금씩 시작됩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임재 개념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 하나님을 찾는다, 하나님을 갈망한다 등등”으로 말하였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구한다 또는 하나님 속성을 알기위해 묵상을 하는 것으로 저는 생각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모두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말의 뜻으로는 틀린 것이 아니지만, 신앙의 실제에 있어서는 잘못 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가짜신앙들을 하나씩 제거해가며, “하나님이 나의 유일한 모든 것”되기 위해 몸부림을 치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오직 그분만으로 만족하고 그분과 함께 하고 싶은 열정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하나님 그분을 한시도 잊지 않고 함께하고 싶어서 하나님 의식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임재가 조금씩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 “하나님 나라”, 바울의 “그리스도 안에서”, 요한서신의“생명” 모두가 그리스도의 임재 이었습니다. 그분의 의식으로 모든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연습이 필요하며, 믿음으로 주님을 신뢰하는 계기를 통하여 삶 가운데 실제가 되어나갈 수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주님을 찾게 됩니다. 간절히 주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주님 곁에 있고 싶은 간절함과 그분의 품 안에 있고자 하는 간절함이 마음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영광에 감격하며 홀로 눈물 흘리며 감격의 시간을 가질 때도 많았습니다. 누군가 그리스도의 임재를 가르쳐준 도 없었지만, 로랜스형제가 걸어간 그 길을 나 자신도 모르게 걷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무조건 연습한다고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유일한 모든 것 되는 것이 자신의 삶의 목표이고 목적으로 삶의 전환이 시작되면 그리스도의 임재가 조금씩 실제가 되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은 듣지 못하지만, 그분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나 자신에게 나타나고 있는 속마음을 정직하게 그리고 친밀하게 말씀드릴 때 마다, 그 분으로 인해 기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4. 죄에 민감해지며,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인 것이 보여 집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접하고 자신의 신앙에 실제가 되어서 적용되면, 가장 크게 나타나는 현상은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인 것을 보게 됩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쉽게 타인에게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6)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신앙 가운데 거할 때는, 절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잘못 고백하였다가는 자신이 큰 오해를 받아서 잘못된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서입니다. 또 자신을 많이 힘들고 어렵게 만들었던 원수에게, 자신이 얼마나 그를 미워하였는지 말하고 자신의 죄의 용서를 구하면, 자기가 미워하였던 사람은 자기가 아무 잘못이 없는 줄로 생각하고 더욱 기고만장해질 것 같아서 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전적인 타락의 정도의 수위를 자신이 알가가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죄인으로 취급하더라도 그것은 진실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더 이상 자신의 죄 됨을 숨길 필요 없을 정도로 자신의 처지를 심각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통해 말씀하신 용서를 할 수 있고,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자신을 꾸밀 필요 없이, 적적으로 타락한 자신을 이야기 하고 다니게 됩니다.

 

부흥 때마다 하나님이 회복하신 신앙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2000년 역사기간동안 부흥 때마다 기록되어진 기록은 항상 이러한 신앙의 현상들이 일어났습니다.

 

5. 환경이 어렵고,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 앞에 신앙의 본질로 전환하게 되면,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에 나타나는 불행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다루심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전까지 자신의 환경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것을 벗어나기 위하여 기도하고 지나가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주님이 자신을 다루시는 다루심으로 인식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신앙의 전환 때문에 환경이 어렵고 힘들게 하는 사람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것들은 항상 우리 주변이 있어 왔던 것들인데, 이제는 이것들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다루실 때, 후원모금을 하지 말고 선교지로 나가라 하셨습니다. 이슬람 지역에 이슬람 마을에 들어가서 언어를 배우고 이슬람 풍습과 삶들을 배워나가는 것도 두려운 일이었는데, 후원까지 하지 않고 믿음으로 돌 지난 딸아이를 데리고 선교지로 가는 것은 정말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인생의 가장 큰 역경으로 몰아넣고 저를 다루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힘이신 것을 그 과정을 통해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은 저를 계속 다루시고 계시고 저는 계속 저의 선한임 없음을 보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을 통하여 저를 다루셨습니다. 첫 번째는 저를 아주 시기하는 목사님입니다. 저의 신학교 3년 선배이며, 특수목회를 하다가 대형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며 저를 부사역자로 불러서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설교와 교회 홈페이지에 적는 글들이 부담이라는 말을 두 번이나 저에게 했습니다. 급기야 미움이로 변해 교단선교부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협박을 해서 저를 쫒아내기까지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목사님을 통해 저를 다루었습니다. 제 속에 탁월하게 사역하는 사람에 대한 질투가 있는 것을 보게 하였습니다. 그 목사님은 행동으로 보여주었지만, 저는 행동으로는 보여주지 않았지만 내 속에 동일한 마음이 가득한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 목사님과 저는 다른 것이 하나도 없는 죄인인 것이 보여졌습니다. 저는 이 문제로 몇 년 동안 하나님 앞에 다룸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 목사님 진심으로 축복하고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동료선교사님을 통하여 저를 다루셨습니다. 선교사가 선교지에 가서 약 10년은 지나야 제대로 된 사역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선교지에 가서 몇 년 지났는데 유창하게 설교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가슴의 언어로 설교하기까지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야 합니다.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상황과 완전히 다르고 문화도 다르기 때문에 적합한 사역을 발견하고 적응하기 까지 많은 시간들이 요구됩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4년 이내에 무언가 열매를 바라고 보고받기 원합니다. 그러한 한국 교회의 풍조 때문에 선교사가 한국 교회에 보고할 사역을 제조해야 하는 부담감을 가집니다. 선교사역 제조라 하면 좋지 않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한국 교회에 선교사가 무언가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역하는 모든 것입니다. 그 내용에는 틀리거나 잘못된 사역은 하나도 없고 모두 주님을 위한 사역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선교사역 제조를 잘 하고, 선교의 최전방에서 사역하지만 한국에 보여주는 선교사역을 추구하는 선교사님을 통하여 저를 다루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추구하면 안 되는 것을 알지만 그 선교사님이 많이 불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선교사님을 통하여 제 속에 그런 사역을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 그분을 추구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다루시는 동안, 저는 그 선교사님에게 여러 번 저의 생각의 잘못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속에 있는 야망을 그 선교사님을 통하여 다루신 것입니다. 내 속의 야망 때문에 죽어지는 경험을 하며, 내 속의 아망이 하나님 앞에 다룸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부담스럽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의 특징은, 자신도 그 사람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전환되면 이제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을 보게 됩니다.

 

6. 눈물을 많이 흘리게 됩니다.

 


신앙의 전환이 이후 삶이 괴롭고 힘들어서 우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전환이후 뚜렷한 두 가지 눈물 현상이 나타납니다.

 

첫째, 자신의 죄 때문에 까무러칠 절도로 놀라 웁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죄인인지 그 깊이와 넓이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알게 되고, 이제는 자신 위주의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신앙이 바뀌면서 자신의 죄 때문에 참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저는 처음 하나님의 기준을 접하고 신앙의 본질을 알게 되었을 때 한 달을 울었습니다. 자면서도 울었고, 밥을 먹으면서도 얼마나 울었는지 밥 위에 떨어진 눈물의 짭짤한 맛을 반찬삼아 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자다가 꿈에서도 나 자신이 얼마나 전적으로 타락한지를 보고 울었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울었고, 화장실에서도 울었습니다. 한 달간 인간이 흘릴 수 있는 눈물의 한계가 얼마나 많은지 저는 실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기준이 더욱 저의 삶 가운데 깊이 자리 잡히자 더욱 심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후회스럽고 지금 내가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아 까무러치기도 하였습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은 쥐와 바퀴벌레와 도마뱀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야망이 내려지지 않는 나 자신 때문에 경찰서에 찾아가 나를 감옥에 가두어 달라고 달려갈 뻔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질투를 저의 마음에 부어주시기 까지 저는 죽어지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알면 알수록 나 자신의 전적인 타락을 보게 되며 수많은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통회하였습니다. 2000년 역사동안 기록된 부흥 때마나 하나님이 신앙을 회복시키시면 나타나는 현상을 저는 경험하였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 그분 때문에 많이 울게 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 그분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자상하심에 감격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린 것이, 양동이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많이 있었습니다. 이 현상은 지금도 만찬가지입니다. 하나님 그 분의 성품과 그분의 마음 때문에 감격해서 그것을 이기지 못해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기쁨이 얼마나 큰지 눈물이 주르르 흐릅니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찬양이 변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전까지는 찬양의 리듬이 좋거나, 그때그때 가사들이 저의 삶에 와 닫는 찬양을 좋아했습니다. 신앙의 전환이후 저는 십자가 찬양과 내 속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찬양들을 즐겨 부르게 되었습니다. 보혈찬송은 모두 좋았고, 또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주님’등이 저의 상태를 대변하는 찬양들이 좋았습니다. 저의 속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기에 십자가만이 유일한 저의 희망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부흥 때마다 십자가 찬양이 교회들마다 울러 퍼진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십자가만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씩 시간이 지나가면서 찬양의 내용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알기 원하는 신앙의 본질과 관련된 찬양들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보혈과 저의 상태에 대한 찬양도 좋았지만, 신앙의 본질과 관련된 찬양들이 좋았습니다. ‘온 맘다해, 주 내소망은, 주께 가오니, 주님을 더욱, 그 사랑 얼마나’등등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와 그의 통치와 위엄과 관련된 찬양을 좋아합니다. 저는 보좌에 계신 주님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 감격과 그 위엄에 노래를 부르지 못할 정도로 감격해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주님께 영광, 내 주는 구원의 주, 예수 우리 왕이여’등등

 

제가 신앙의 전환이후 확실한 것은,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데 저의 깨끗하고 정결한 삶과 주님을 인격적으로 알아가는 두 가지 영역이 확연하게 나타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7. 다른 사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신앙의 본질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기 시작하면, 나타나는 현상 중에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지식으로 알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남이 보이고 교회가 보이고 목사님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제가 경험하며 지나온 것일 뿐만 아니라 저의 주변에 이러한 신앙의 전환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보이고 교회가 보이고 목사님이 보이기 시작하면, 반드시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자신이 지식으로 하나님의 기준을 알았기 때문이지, 아직 자신의 삶에 실제가 되지 않은 이유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기준이 자신의 삶에 실제가 되어 나타나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기준 앞에 한없이 무능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죽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자기 코가 석자인데 어떻게 다른 것이 보인단 말입니까? 다른 사람이 보이고 그 마음이 지워지지 않게 되는 이유는, 비교를 하나님의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비교하고, 지식으로 아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또 다른 가짜신앙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바리세인과 다른 것이 과연 무엇이 있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자신이 또 다른 가짜신앙에 빠져있는지를 체크할 수 있는 척도는 바로 다른 사람이 보이고 정죄의 마음이 생기는 것으로 자신을 체크할 수 있습니다.

 

8. 단 마음으로 섬기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직분 때문에, 혹은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기복신앙 때문에 교회를 섬겼던 모든 가짜를 들추어내고 거짓신앙이라 질책하면, 성도들이 교회를 떠날 것이라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현상이 일어납니다. 가짜를 몰아내고 자신이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 기 시작하면 단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기 시작합니다.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하고 사람들에게 하듯하지 말라”(엡 6:7)

 

그전까지는 성경을 읽거나 묵상하다가 이 말씀과 같은 구절이 나오면 반짝 마음을 고쳐먹었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는 신앙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신앙의 혁명이 일어나 신앙의 전환이 일어나면, 주님을 위해 섬기는 일들이 달게 느껴집니다. 이제 그러한 사소한 모든 것이 복을 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좋아서 즐겁게 일하고 섬기기 시작하게 됩니다. 힘들어도 몸이 힘든 것이지 마음에 기쁨이 가득하고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주위의 칭찬도 이제는 자신의 마음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저는 설교하고 내려와서 성도들이 은혜 받았다는 칭찬이 얼마나 나를 죄악으로 인도하는지 보게 되면서, 한때는 강대상에서 내려와서 나 자신을 숨기는 것부터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많이 예배 참석하면 기분이 좋고, 적게 참석하면 의기소침해지는 나 자신을 보며, 하나님이 유일한 기쁨이 아닌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단 마음으로 섬기면 주님 그분으로만 만족합니다. 더 이상의 것은 없습니다. 주님이면 충분합니다.

 

9. 단순하게 살아집니다.

 


저는 단순하게 살고 싶어서 단순하게 사는 책들이 서점에 나오기만 하면 사서 읽었습니다. 조금 단순하게 살게 되긴 하였지만, 여전히 저는 삶에 대한 생각이 많았고 복잡하였고 수많은 인생의 계획들을 짜고 수정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 바쁜 인생을 살았습니다.

 

신앙의 전환이후 저의 생각은 단순해졌습니다. 단순해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야망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저의 야망을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 그분만으로 만족한 삶을 사니, 그렇게 많은 복잡한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된 옛날의 저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 많았던 생각은 하나님 그분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는데 소모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이 사용하신 많은 신앙의 위인들의 특징이 단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의 경험으로 단순한 삶은 자기 노력으로 훈련한다고 단순한 삶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나의 삶의 유일한 모든 것 되어서, 그분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시작하니 따라오는 것이 단순한 삶인 것 같습니다.

 

10. 하나님의 질투가 부어집니다.

 


저는 저의 죄로 죽어지는 경험을 하면서, 성경 출애굽기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질투가 저의 속에 사무치는 원한같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한분만이 자신의 인생에 유일한 모든 것 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질투 때문에 저의 인생이 변하였고 저도 그 질투를 품게 되었습니다.

 

2번의 하나님의 질투를 제가 품게 되면서 저는 저의 신앙에 큰 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질투를 부흥과 연결하여 부흥의 질투로 인도하려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저에게 부흥의 질투를 부어주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마음만 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질투에 관해서는 “하나님의 기준세우기-17. 하나님의 질투(열심)”에서 설명하였습니다.

 

11.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저의 글 “하나님의 기준세우기-15. 임재와 영광의 임재”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임재와 영광의 임재는 다릅니다. 그런데 영광의 임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그분의 주권대로 우리 인간에게 부어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의 임재는 출애굽기 33장에 모세가 영광의 임재를 구한 것처럼, 초월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 그분이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자신 안에 여호와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보듯, 여호와 하나님의 성품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보여질 때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반포하십니다. 마지막에는 그리스도 자신을 채우고 싶은 갈증으로 가득 차는데, 세상의 모든 것이 그것을 대체하지 못하는 강렬한 갈증입니다. 인간이 지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복이 이것일 것 같습니다. 이것보다 더 귀한 복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이러한 영광의 임재는 부흥 때마다 일어난 일들입니다. 부흥은 신앙의 회복입니다. 부흥은 항상 기존의 주류된 기독교의 부패 때문에 항상 변두리 변방에서 시작되어서 많은 핍박을 주류 기독교로부터 받으며 새로운 기독교의 중심이 되었다고 일반 사회학자가 말하였습니다. 즉, 지금이 부흥이 필요하고 반드시 부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지금의 기독교 주류가 가지고 있는 신앙과 신학이 문제가 있다는 것에 동의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세인을 향하여 진짜 신앙을 가지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바리세인의 가짜신앙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요 5:37)

 

예수님은 그 형상을 본 일도 없다고 말씀하신 것을, 많은 학자들은 영광의 임재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임재로 보기보다 구약의 표현들이 영광의 임재를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메시지의 핵심인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살면, 영광의 임재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음성도 들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영광의 임재는 그리스도의 주권이십니다. 정말 하나님이 회복시키고자 원하시는 신앙의 본질이 회복되어 지면, 그 주권적으로 부어주시는 영광의 임재가 흔하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바로 부흥 때마다 그러한 일들이 흔히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또 성서시대 이후로 모든 신령한 것은 끝났기 때문에, 성경을 읽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사두개인은 모든 신령한 것을 부정하였지만, 바리세인은 부분적으로 동의하였습니다. 우리시대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정말 신앙의 본질 가운데 거하면, 영광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음성도 듣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시대 또 다른 위험이 있는데, 자신의 마음의 생각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언도 합니다. 이것은 심각합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충분히 하나님 앞에 정결케 되지 않고 임재가운데 거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이 아닌 몇 가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닌 분별을 피해가기만 하면 하나님의 음성으로 믿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내적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믿는 것입니다. 성서시대 하나님이 사용하신 수많은 사람들의 임재수준을 못 따라가면서, 성서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역하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실제 신앙에서 실현시키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지만, 시간이 필요하고 충분한 하나님의 임재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사도이면서도 사역하는 도중에도 주님이 사역을 막으시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러한 과정 가운데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바울을 인도하셨습니다. 바울조차도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사역하기 까지 오랜 세월이 필요하였습니다.

 

에필로그

 


지금까지 하나님의 기준을 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신앙이 전환하게 되면 나타나는 신앙의 변화를 저의 경험을 통해 간증하였습니다. 제가 항상 바른길로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 저는 그 길을 가고자 원합니다.

 

제가 걸어왔고 전환되었던 신앙을 나눔에 있어서, 제가 걸었던 신앙의 모습이 바른 모습이라 생각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함께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잘못된 것을 붙잡고 있다면, 질책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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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기준을 정리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저를 위해서 시작한 일입니다.

카페 회원들이 하나님의 기준위에 영적인 자극이 될 수 있다면, 이 글이 유익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저 혼자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의 기준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좋은 충고와 가르침이 이 글을 더욱 알차게 할 것 같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댓글 등을 통해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위 내용을 정리하면서 지속적으로 조금씩 내용이 발전하고 다듬어 질 것을 소망합니다.

 

 

김바울 선교사 // 다음카페 // 빛과 흑암의 역사 http://cafe.daum.net/aspire7

 


출처 : 빛과 흑암의 역사 (성경연구,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글쓴이 : 샤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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