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하나님의 기준 세우기 - 16. 하나님의 다루심

하나님아들 2013. 1. 19. 14:28

하나님의 기준 세우기 - 16. 하나님의 다루심

 

하나님의 기준을 살펴보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기준을 읽고 다른 사람이 보이고, 다른 교회들이 보이면, 하나님의 기준을 바로 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바로 보게 되면, 자기 자신이 천리만리 주님 앞을 떠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자기 코가 석자인데, 남이 보이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 글이 자신 이외에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데 사용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모습의 가짜신앙을 따르고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헌신하였지만, 모두를 하나님이 즉시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선택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사용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바로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헌신하고 나면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에서 나오는 자신의 착각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용하실 때는 반드시 다루심의 기간이 있습니다. 목회자로 선교사 혹은 특별한 사역자만 하나님이 다루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앞에 자신의 인생을 내어드리며 주님으로 고백한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누구든 주님을 주인님으로 고백하고, 자신을 내어드리고, 주님이 자신의 모든 것 삼은 사람은, 하나님이 반드시 다루시고 다루심의 기간을 가지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다루시는 이유

 

하나님이 사람을 즉시 사용하지 않으시고, 다듬으시고 훈련하시고 성숙시키시어 숙성 시키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의 모든 것 되는 것이 무엇인지 실제로 삶의 과정을 통해 알아가게 하십니다.

 

자신은 하나님만이 유일한 모든 것(사랑한다)이라 생각하지만, 그의 삶 가운데 진국처럼 우러나는 맛은 하나님의 다루심을 통해 나타나는 경험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자신의 고향을 떠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그냥 “떠나라”, “가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땅은 없고, 매일 마다 어디로 가라고만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매일 주님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길을 갔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을 다루신 하나님의 다루심 시작이었습니다.

 

아들이삭을 자신에게 바치라 하시면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반응할지 하나님은 아셨지만, 반드시 그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보고서 다시 약속을 아브라함에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그 분이 자신의 모든 것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루아침에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다루심 가운데 그는 믿음의 조상으로 빚어졌습니다.

 

2.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친밀하게 교제하며,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들을 다루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서 바로 가나안으로 데려가면 되는데, 하나님은 백성들을 다루십니다. 광야에서 40년간 시험하시고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다루심을 통과한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입성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다루심의 목적은 자신의 백성과의 친밀한 교제를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다루심의 과정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을 이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다루심은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당신들은, 사람이 자기 자녀를 훈련시키듯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도 당신들을 훈련시키신다는 것을 마음속에 새겨 두십시오.” (새번역, 신 8:5)

 

“주님께서 광야에서 야곱을 찾으셨고, 짐승의 울음소리만 들려오는 황야에서 그를 만나, 감싸 주고, 보호하고, 당신의 눈동자처럼 지켜 주셨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뒤흔들고 새끼들 위에서 퍼덕이며, 날개를 펴서 새끼들을 받아 그 날개 위에 업어 나르듯이, 주님께서만 홀로 그 백성을 인도하셨다. 다른 신은 옆에 있지도 않았다. 주님께서 그 백성에게 고원지대를 차지하게 하시며, 밭에서 나온 열매를 먹게 하시며, 바위에서 흘러내리는 꿀을 먹게 하시며, 단단한 바위에서 흘러내리는 기름을 먹게 하셨다.”(새번역, 신 32:10-12)

 

어미 독수리가 그 새끼를 공중에 내어 던지는 것은 그를 미워해서가 아닙니다. 그를 하늘의 왕자로 키우기 위한 어미 독수리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 내내 어미 독수리는 곁에서 그 눈을 그 새끼에게서 떼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행동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을 자기 눈동자와 같이 그들을 지키셨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앞으로 인도하셨던 것은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들을 먹을 것이 없는 광야로 인도하신 것도, 마실 것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신 것도 모두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또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향하여 자녀에게 말하듯이 하신 이 권면을 잊었습니다."내 아들아, 주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그에게 꾸지람을 들을 때에 낙심하지 말아라.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을 징계하시고,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신다." 징계를 받을 때에 참아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녀에게 대하시듯이 여러분에게 대하십니다.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자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모든 자녀가 받은 징계를 여러분이 받지 않는다고 하면, 여러분은 사생아이지, 참 자녀가 아닙니다.”(새번역, 히 12:5-8)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다루심은 항상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신약성경도 히브리서에서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다루심은 힘들고 고통스럽고 눈물도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부르심과 세우심, 약속의 때와 성취의 때 사이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1. 아브라함은 자신의 인생에 그 약속의 성취를 못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큰 민족을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또 뭇별과 같이 많은 자손의 약속을 하십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 15:5)

 

하나님은 자신의 자식을 아낌없이 바치려 하였던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되게 하리라 약속하시며 만민의 복이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창 22:17-18)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아들과 손자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 약속이 궁극적으로 성취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이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 3:14)

 

2. 요셉은 부르심을 받고 성취되는데 13-1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요셉은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창 37:7-9)

 

그의 형들에게 미움을 받은 요셉은 형들에게 팔리우게 되었는데, 애굽의 노예시장에서 보디발의 집으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가정 총무로 모든 재산을 관리하다가 감옥에 가게 됩니다. 그는 억울하게 다시 왕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왕의 꿈을 해몽하여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 때가 30살 이었습니다.

 

요셉이 꿈을 꾼 것이 청소년때 14살-17살 때쯤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가 30살이 될 때까지 약 13-16년이 걸렸습니다.

 

3. 다윗은 왕이 될 때까지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습니다.

 

다윗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왕으로 몰래 기름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삼으시려는 의중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삼상 16:13)

 

다윗은 죽을 고생을 하며 사울왕의 낮을 피해 살아남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헤브론에서 유다지파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상태로 약 7년 6개월 동안 있었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뜻과 의중이 성취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자기와 함께 한 추종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다윗이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읍에 살게 하니라” (삼하 2:3)

 

그가 이스라엘 12지파의 명실상부한 왕이 되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삼하 5:3)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치리한 것이 약30년이 됩니다. 그러나 왕이 되기까지 그는 10-13년 정도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4. 바울은 그가 소명을 받고 사역할 때까지 약10여년 이상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바울은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의 소명을 가져온 것은 아나니아 이었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바울은 침례(세례)를 받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행 9:17)

 

이만하면 바울이 가지고 있는 가말리엘 문하의 제자답게 탁월한 사역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져서 그는 하나님께 그 자리에서 쓰임 받을 만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역사 속에서 사라집니다. 역사 속에서 잊혀 있었던 바울을 바나바가 다소로 찾아가서 바울과 함께 안디옥에서 사역을 시작합니다.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19-26)

 

안디옥에서 바나바의 리더쉽 가운데 사역하였던 바울이 안디옥교회로부터 파송을 받아 선교사로 떠나가게 됩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행 13:1-2)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명은 이방인을 위한 사역이었습니다. 그것이 실현되기 까지 약 10여년 이상의 기간이 흘러갔습니다.

 

다루심의 기간이 없으면 하나님께 버림받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다루심을 통하여 우리가 정금같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다루심을 감당하기 싫어합니다. 다루심보다 지금의 편안하고 안락하고 쉬운 길을 선택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느 시기에 그를 떠나가십니다. 구원을 취소하였다는 말이 아닙니다.더 이상 하나님은 이 사람에게 간섭하시지 않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이 상관하시 않습니다.

 

1. 모세와 함께한 광야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 가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열 번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열 번째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그들에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그 땅을 취하라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여태까지 그들이 불신으로 일관했다 할지라도, 이번만이라도 그들이 믿음으로 순종하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 땅을 주시려고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번에도 환경만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에서 흩으시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세우시기로 결단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기회를 주시고 다듬으십니다. 그것을 거부하고 따라가기를 거부하면,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2. 하나님을 멸시한 엘리제사장

 

엘리는 제사장이며 이스라엘의 사사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멸시하였다고 하나님은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 2:30)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언약궤를 싸움터에 가지고 갔고, 자식의 죄를 방치하였기에 하나님은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총체적인 죄악을 하나님을 멸시하였다 표현하였습니다. 한평생 그는 하나님의 다루심을 회피하고 꽁수만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멸시받았다고 하셨습니다.

 

3. 사울은 속성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버림 받았습니다.

 

사울왕은 처음에는 겸손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성화에 급하게 왕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사울왕은 왕이 되어서도 하나님의 다루심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왕에게 메시야를 약속하기 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다루심의 기간에 실패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삼상 13:13-14)

 

그래서 모든 약속이 다윗에게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속성을 원했지만, 속성은 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이에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부르심과 세우심 사이의 시간이 “다루심의 기간”입니다. 다루심의 기간이 없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정금같이 연단한 금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부르시고 바로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연단 받고 고난을 당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전부가 되고,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을 배우게 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요셉과 모세와 다윗과 바울은 부르심을 받고 세우심의 자리까지 갔지만, 모세시대의 이스라엘과 엘리제사장과 사울왕은 부르심은 받았지만 세우심을 자리까지 가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다루시는 방법은? 바닥까지 갈 때까지 우리를 낮추십니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 하는 것 마다 잘 되고,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 우리를 덮어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면 얼마나 좋습니까? 정말 그런 삶을 산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이 높아집니다. 높아진 마음은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이 거할 곳을 마련하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한 손이 그렇게 성공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공 뒤에 자신이 그래도 먼가 잘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교만한 마음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고 모든 성공을 주님이 모두하신 것이라 입으로는 고백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으로는 멀어져버립니다.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도, 자신이 교만한지 모르는 특징이 있습니다. 종교적인 겸손의 표현으로 늘 고백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특출함에 뿌듯한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을 다루시기 위해 우리들을 낮추십니다. 조금 잘 된다 싶으면 그것도 일순간의 꿈처럼 송두리채 앗아가 버리고 맙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 8:2-3, 16)

 

하나님이 히브리인들을 자신의 백성 삼으시고, 자신의 백성을 자신에게로 이끄시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항상 똑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백성 삼으십니다. 그것은 다루심인데, 그 방법은 낮추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낮추시되 바닥까지 가서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바닥 맨 밑바닥까지 낮추십니다. 아무리 소리치고 주님께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해도, 주님은 자신에게서 멀리만 있고, 자신의 소리에 귀를 막은 것 같습니다. 하는 것마다 주님이 지키시고 돌보셔야 하는데, 자신은 사생아처럼 그러한 하나님의 따뜻함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조금 된다 싫으면 여지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송두리채 잃어버리는 일을 반복하며,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이것이 주님의 사랑이냐며 반문해 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히 경험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자신의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는 그 사랑이 보이지 않습니다. 손가락질을 당하고 수치와 모욕을 당합니다. 치욕가운데 주님께 자신의 생명을 가져가시라 기도해도 주님은 대답이 없으십니다. 이러한 경험을 하고 계시다면 하나님이 지금 당신을 다루시고 계십니다. 낮추시고 계신 것입니다. 자신이 바닥까지 갔다고 생각하였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직 바닥이 아니라 생각하시기에 더 큰 밑바닥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선한 것이 없되 하나도 없는, 전적으로 타락하고 무능한 것을 보기 원하십니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입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무능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님이 필요합니다. 그 무능함 때문에 내가 주님만을 의지하게 하고,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의중을 이 세상에 실현할 수 있습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이 방해받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낮추시고 무능하게 만드십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장 큰 존재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무능하게 만드시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대적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잘 되지 않고, 풀리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고, 환경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은 운을 타고 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고 부모를 원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좋은 학벌을 가지지 못한 것 때문에 자신이 지금 어려움에 처해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지 못하였기 때문에 철저히 자신이 혼자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이 이제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 것으로 드리고, 주인님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드렸다면, 지금 하나님의 다루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루심은 고통스럽습니다. 괴롭고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육체적인 한계와 주변의 인간관계와 경제문제와 자신의 마음까지 어디하나 만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다루심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아침 말씀을 묵상하다 주님의 사랑의 눈길에 저의 모든 상처를 녹여냈습니다. 저의 한없는 수치와 상처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그런 나를, 한 번도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내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으신 하나님 앞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독수리 어미가 자식을 하늘의 제왕으로 키우기 위해

모질게 둥지를 어지럽혀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리듯

모질게 나를 다루시는 주님은

한 번도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십니다.

 

나의 눈물,

나의 고통

나의 울부짖음

나의 절규에

주님은 한 번도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나보다 더 슬퍼하셨습니다.

 

어떤 때는 원망도 하고

어떨 때는 고통의 절규

어떨 때는 살려달라고 애원도하고

어떨 때는 내 생명을 가져가 달라 기도하였습니다.

주님은 한 번도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고

그리고 나보다 더 슬퍼하셨습니다.

 

이런 주님을 어떻게 미워하고 원망할 수 있습니까?

한 아름 고인 그의 눈이 나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합니다.

그의 흐느낌이 나의 원한으로 다가온 감정을 녹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방법은 다루심입니다.

그분은 나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두 눈에 방울방울 고이시며 한시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으셨습니다.

 

(2012년 11월 19일 월요일 오전 9:32:58)

 

이 기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하나님이 인생의 유일한 모든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자신의 백성들을 이끌어내신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첫 번째가 하나님 그분이, 자신의 인생에 유일한 모든 것 되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그것을 호세아는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것”(호 6:6)이라 하였고,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한 일을 보았고, 또 어미독수리가 그 날개로 새끼를 업어 나르듯이,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나에게로 데려온 것도 보았다.”(출 19:4)

 

하나님의 첫 번째 목적은 하나님 그분 자신에게로 인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의 유일한 전부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전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유일한 전부”가 되기 원하십니다. 유일한이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그분 자신이 우리의 인생에 유일한 전부가 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다루시는 목적이 이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것은 될 수 있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이 유일한 모든 것이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는 다루시는 목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여 죄 사함과 구원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주님께 자신을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전부인 삶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것에 만족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유일한 전부가 되기 원하십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유일한 전부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광야 40년 동안 다루셨습니다. 동일하게 우리 인생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다루십니다. 하나님 그분이 유일한 전부가 될 때까지 하나님은 다루십니다.

 

2. 하나님의 기준을 잡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유일한 모든 것이 되기를 원하지만, 어떻게 유일한 모든 것 되는 사랑을 관계를 가질 수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기준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바르게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의중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항상 말씀하십니다. 구약에서는 선지자들을 지속적으로 보내셨지만 그들은 그것을 싫어했습니다. “ 너희 조상들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었으나,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조상들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렘 7:25-26)

 

거짓신앙을 부여잡고 하나님께 복달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지만, 자신이 거짓신앙속에 빠져 있는 것은 보지 못합니다. 그것은 분별력이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붙잡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거룩한 행실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산상수훈에 있는 것과 같이 성령의 법이 자신의 삶 가운데 실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다루심은 이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이 유일한 모든 것 되시는 것, 하나님의 기준 앞에 서는 것,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여 하나님 보좌 앞에 서는 것을 요구하십니다.

 

3.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합니다.

 

믿음은 인격체 되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냥 생겨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경험을 통해 믿음은 성장합니다. (믿음에 대한 글은 ‘하나님의 기준세우기 - 11. 믿음“에서 다루었습니다.)

 

광야에서 생활하였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노력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마실 물을 광야에 찾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사막에서 먹을 양식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먹을 고기는커녕 목마르고 먹을 것이 없어 굻어 죽는 가축들만 넘쳐났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200만 명이나 되는 백성들이 삶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너희가 너희 손으로 살 수 없는 광야사막에서 오직 나만 의지하고, 나만 신뢰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의 군대를 홍해에서 물리치시고, 밤에는 불기둥과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시시때때로 밀려오는 배고픔을 만나와 메추라기로 자신의 백성들을 기적을 통해서 먹이십니다. 그들의 옷이 낡아지지 않고 발의 신이 헤어지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그의 영광을 그의 모든 백성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백성들의 반응은 그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때문에 죽을 것 같아서 두려워할 정도였습니다. 천지창조 이후, 이 땅에서 일어난 가장 큰 기사와 이적과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까지 소유할 수 있었던 시기가 바로 모세시대 이었습니다. 20살 이상 남자 60만 명 중에 이 광야의 다루심 가운데 하나님 마음에 합격한 사람이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의 약속을 유업으로 이어받은 것은 이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의 훈련을 시키기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함으로써,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원하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온 열방이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출 14:4; 수 4:23-24 참조).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의도를 전혀 몰랐습니다(히 3:10 참조).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어려움이 닥치자 하나님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움이 닥치자 처음에는 절박하게 기도했을지 모릅니다. 물이 없고 먹을 것이 없어서 3일을 굶게 되니,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환경만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불신을 두고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시험했다, 대적했다, 화가 활활 타오르게 했다, 배반했다, 하나님께 범죄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시 78:17-22 참조).

 

오늘날 우리들을 다루실 때에도 하나님의 가장 주된 목적과 목표 중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만이 신뢰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에필로그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이루실 일들을 저에게 말씀하시고 저를 초청하신지 이제 26년입니다. 저는 바닥을 쳤다고 생각하고 그 다루심이 이제 끝나겠지라고 생각한 것이 20년이 넘었습니다. 아직도 저는 바닥 맨 밑바닥까지 오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직 밑바닥까지 가지 못하였기에 주님은 여전히 저를 모질게 대하십니다. 그런데 저를 모질게 대하실수록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시는 주님을 봅니다. 모질게 대할실수록 더 주님의 두 눈의 눈물의 시선을 보게 됩니다. 미워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주님이 하실 일을 저에게 말씀하시고 저를 다루셨던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가장 방해하고 대적하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렇게 모질게 저를 다루셨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주님을 대적하고 멸시한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 저였기에 주님은 저를 그렇게 모질게 다루셨습니다.

 

동영상 서비스가 종료되어 해당 콘텐츠를 재생할 수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with all i am 이라는 찬양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저의 전부가 되시고 그분 손에 저를 내어 드렸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가사가운데,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with all i am

(with all i am 을 한국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전 생애와 나의 모든것 나의 전심을 다해)

 

Into your hand i commit again (당신의 손안에 나를 맡겨 드리립니다.)

with all I am for you Lord, (with all I am 주님에게)

You hold my world in the palm of your hand(나의 삶의 세상이 당신의 손안의 손바닥에 있습니다)

and I'm yours forever(그리고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영원히)

 

Jesus I believe in you (예수님, 내가 당신을 믿습니다(신뢰합니다))

Jesus I belong to you (예수님, 내가 당신에게 속하였습니다)

You're the reason that I live ( 당신은 나의 삶의 이유가 되십니다)

the reason that I sing, with all I am (나의 노래의 이유가 되십니다. with all I am)

 

I'll walk with you, wherever you go (나는 당신과 걷겠습니다. 당신이 어디를 가시든)

through tears and joy (눈물과 기쁨을 통해)

I'll trust in you (나는 당신을 신뢰합니다)

and I will live in all of your ways(그리고 나 당신의 길로 살겠습니다)

and your promises forever(당신의 약속따라, 영원히)

 

Jesus I believe in you (예수님, 내가 당신을 믿습니다(신뢰합니다))

Jesus I belong to you (예수님, 내가 당신에게 속하였습니다)

You're the reason that I live ( 당신은 나의 삶의 이유가 되십니다)

the reason that I sing, with all I am (나의 노래의 이유가 되십니다. with all I am)

 

I will worship I will worship you(나는 경배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경배합니다)

 

저는 through tears and joy 부분에 오면 가슴이 저려오고 사무치는 상처들이 저의 가슴을 죠여옵니다. 주님의 다루심의 상처가 눈물과 기쁨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정리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저를 위해서 시작한 일입니다.

카페 회원들이 하나님의 기준위에 영적인 자극이 될 수 있다면, 이 글이 유익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저 혼자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의 기준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좋은 충고와 가르침이 이 글을 더욱 알차게 할 것 같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댓글 등을 통해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위 내용을 정리하면서 지속적으로 조금씩 내용이 발전하고 다듬어 질 것을 소망합니다.

 

 

김바울 선교사 // 다음카페 // 빛과 흑암의 역사 http://cafe.daum.net/aspire7

 

출처 : 빛과 흑암의 역사 (성경연구,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글쓴이 : 샤론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