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기준 세우기 - 17. 하나님의 질투(열심)
하나님의 기준을 살펴보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기준을 읽고 다른 사람이 보이고, 다른 교회들이 보이면, 하나님의 기준을 바로 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바로 보게 되면, 자기 자신이 천리만리 주님 앞을 떠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자기 코가 석자인데, 남이 보이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 글이 자신 이외에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데 사용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모습의 가짜신앙을 따르고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질투라는 단어를 들으면 왠지 낮선 느낌이 있는 것이 현대 우리시대의 모습입니다. 그만큼 인격체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학적으로는 인정하지만, 우리의 신앙의 실제에 있어서는 이성과 과학이라는 합리주가 신앙의 실제를 대체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질투는 주목받지 못하는 주제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실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질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핵심축이고, 또한 우리가 하나님이 일하시는 현장에서 우리가 그 질투를 동일하게 품었을 때, 우리 속의 하나님의 질투가 하나님의 일을 성취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질투를 품은 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은 하나님이 이 땅에서 이루실 그 일들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질투는 신앙의 핵심축에 들어가는 중요한 개념이고, 우리 신앙의 실제에 아주 큰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투(열심)란?
하나님의 질투라는 것은, 성서적인 원리로는 “하나님께 속한 소중한 것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열심”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한글에 ‘질투’와 ‘열심’으로 다르게 번역되었습니다. 한국말로 번역할 마땅한 단어가 없기에 문맥에 따라 번역한 것입니다.
히브리어의 질투(열심)의 의미는?
히브리어 ‘카나’는 하나의 단어인데, 한글 성경에는‘질투’와 ‘열심’으로 다르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영어성경도 마찬가지로 ‘jealousy’ 와 ‘zeal’로 다른 두 단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왜 히브리어의 단어를 번역을 하면서 두 가지의 단어로 번역했느냐하면, 히브리어의 ‘카나’라는 단어를 우리 나라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 자체가 없기 때문에 문맥에 따라서 ‘질투’라는 단어로 번역되기도 하고, ‘열심’이라는 단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영어로도 마찬가지로 번역할 마땅한 단어가 없기 때문에 한국말처럼 문맥에 따라서 다르게 번역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하나님의 질투’라는 단어가 등장하면, 그것은 인간적인 질투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질투’가 나오면, ‘하나님의 열심’으로 이해해야 하고, 또한 ‘하나님의 열심’이 나오면, ‘하나님의 질투’로 이해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질투와 인간의 질투의 다른 점?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질투’는 인간적인 질투와는 다릅니다.
한국 성경에 질투라는 단어가 사람을 대상으로 사용된 것은 대부분 인간적인 시기와 질투는 부정적인 의미이고 또한 죄입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질투했다.” (창 37:11)
“라헬이 레아를 질투했다.” (창 30:1)
“미련한 사람은 자기의 분노 때문에 죽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의 질투 때문에 죽는 법이다.”(욥 5:2)
“분노는 잔인하고 진노는 범람하는 물과 같다고 하지만, 사람의 질투를 누가 당하여 낼 수 있으랴?”(잠 27:4)
그런데 하나님은, 죄의 그림자도 없는데,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분이란 말은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시기와 질투(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입니다. 한국말에 그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유사한 단어인 질투와 열심이라는 단어로 번역한 것뿐입니다.
카나 - “하나님의 질투(jealousy)”로 번역
1. 하나님의 이름이 질투입니다.
“너희는 다른 신에게 절을 하여서는 안 된다. 나 주는 '질투'라는 이름을 가진, 질투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출 34:14) “for the LORD, whose name is Jealous, is a jealous God.”
하나님의 이름이 많이 있습니다. 여호와 닛시, 여호와 샬롬, 여호와 라파 등등 많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이름중의 하나가‘질투’입니다. ‘질투라 이름하는’하나님의 이름이 ‘질투’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에, '질투'란 말을 대문자 J(Jealousy)로 쓰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성품이 질투입니다.
구약의 모든 율법을 가장 압축하면 십계명인데, 그 십계명의 처음 두 계명이, ‘질투의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너희는 너희가 섬기려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못한다. 너희는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죄값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출 20:3-5)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삼키는 불이시며, 질투하는 하나님이십니다.”(신 4:24)
“그러나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주님을 섬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당신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수 24:19)
‘질투’는 그만큼 하나님의 우선적이면서, 중요한 성품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성품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름이 ‘질투’일뿐만 아니라, 성품도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질투’는 하나님의 성품 중 가장 중요한 성품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용서의 하나님이시듯, 동시에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
3. 하나님은, 하나님이 우리의 유일한 모든 것 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유일한 전부가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의 그 마음을 “카나(질투)”한다고 하였습니다.
신32:1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하나님)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너희는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죄값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 (신 5:9)
“당신들 가운데 계시는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분노하시면, 당신들을 땅 위에서 멸하실 것입니다.”(신 6:15)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주님의 분노와 질투의 불을 퍼부으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저주를 그에게 내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마침내 그의 이름을 하늘 아래에서 지워 버려서,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신 29:20)
“그들은 이방 신을 섬겨서 주님께서 질투하시게 하였으며, 역겨운 짓을 하여 주님께서 진노하시게 하였다.”(신 32:16)
“그 때에 그 형상이 손처럼 생긴 것을 뻗쳐서, 내 머리채를 잡았다. 하나님이 보이신 환상 속에서, 주님의 영이 나를 들어서 하늘과 땅 사이로 올리셔서, 나를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안뜰로 들어가는 북쪽 문 어귀에 내려 놓으셨다. 그 곳은 질투를 자극시키는 질투의 우상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겔 8:3)
“그 때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어서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아라." 내가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니, 문의 북쪽에 제단이 있고, 문 어귀에 바로 그 질투의 우상이 있었다.”(겔 8:5)
“그제야 너에 대한 내 분이 풀리고, 내 질투가 사그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져서, 다시는 화를 내지 않게 될 것이다.”(겔 16:42)
“내가 질투하여 너희에게 분노를 터트리면, 그들이 너를 사납게 다룰 것이다. 그들이 너의 코와 귀를 잘라낼 것이며, 남은 사람들도 칼로 쓰러뜨릴 것이다. 너의 아들과 딸은 붙잡혀 가고, 너에게서 남은 것들은 불에 타 죽을 것이다.”(겔 23:25)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진실로 내가 나의 맹렬한 질투를 그대로 쏟아서, 남아 있는 이방 민족들과 에돔 온 땅을 쳐서 말한다. 그들은 내 땅을 자기들의 소유로 만들면서 기뻐하였고, 내 땅의 주민을 멸시하면서 내쫓고, 내 땅의 목초지를 약탈하고 차지하였다.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땅을 두고 예언하고, 산과 언덕에게, 시냇물과 골짜기에게 전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뭇 민족에게 수치를 당하였기 때문에, 내가 질투와 분노를 그대로 쏟으면서 말한다.”(겔 36:5-6)
“그 때에 내가 질투하고 격노하면서 심판을 선언하여 이스라엘 땅에 큰 지진이 일어나게 할 것이다.”(겔 38:19)
“주님은 질투하시며 원수를 갚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주님은 원수를 갚으시고 진노하시되, 당신을 거스르는 자에게 원수를 갚으시며, 당신을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하신다.”(나 1:2)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은과 금이 그들을 건질 수 없다." 주님께서 분노하시는 날, 주님의 불 같은 질투가 온 땅을 활활 태울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을 눈 깜짝할 사이에 없애실 것이다.”(습 1:18)
“그러므로 나를 기다려라. 나 주의 말이다. 내가 증인으로 나설 날까지 기다려라. 내가 민족들을 불러모으고, 나라들을 모아서, 불같이 타오르는 나의 이 분노를 그들에게 쏟아 놓기로 결정하였다. 온 땅이 내 질투의 불에 타 없어질 것이다.”(습 3:8)
카나 - “하나님의 열심(성)(zeal)”으로 번역
1.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시면 반드시 이루십니다.
“살아 남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오고, 환난을 피한 사람들이 시온 산에서부터 나올 것이다. 나 주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룰 것이다.'”(왕하 19:31)
2. 하나님의 이루시고자 하시는 열심히 얼마나 간절하신지, 하나님이 그 일을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하나님의 질투가 얼마나 크고 간절한지, 하나님은 그것을 반드시 이루시고 성취시키십니다. 사실 이것이 우리에게 소망이 됩니다. 하나님의 질투가 얼마나 큰지 사 9:6~7에 나타나 있습니다.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모셨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다. 그의 왕권은 점점 더 커지고 나라의 평화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가 다윗의 보좌와 왕국 위에 앉아서, 이제부터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그 나라를 굳게 세울 것이다. 만군의 주님의 열심이 이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사 9:6~7)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이 예언을 주실 때, 그 당시 예언을 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대에는 예언의 성취를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예언을 주시며 반드시 이루실 것을, 아무도 그렇게 예수님이 오실지 상상하지 못하였던 모습으로 반드시 이루셨습니다.
성경에는 ‘카나’라고 언급하지 않았지만, 수많은 하나님의 질투(열심)가 구약과 신약성경 본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것들
하나님의 질투에 대하여 자료를 찾는 중 하나님이 하나님의 질투를 가지고 그것을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것들이 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6가지가 있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성경에는 질투와 관련하여 직접적인 언급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았을 때 다음의 6가지를 찾아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6가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 많은 하나님의 ‘카나’가 존재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거룩함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이름이고,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넷째는 하나님의 교회이고,
다섯째는 예수님이고,
여섯째는 성령님입니다.
하나님의 “카나”를, 인간의 마음에 품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하면, 그러한 하나님의 질투(열심)를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그 질투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에는 카나를 품고 일하였다는 직접적인 내용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좀 더 원어를 자세히 찾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긴다면 더 연구하고 싶습니다. 비록 제한된 연구이지만, 신앙에 있어서 실제적인 하나님의 질투를 인간이 품는 다는 의미는, 한마디로 하나님 아버지의 애타는 마음을 인간이 동일하게 가지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버지 마음의 극히 일부분을 경험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열망의 일부분을 가슴에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질투를 가졌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질투를 품는 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에는 직접적으로 나와 있지 않지만, 하나님의 질투를 인간이 품으면 나타나는 현상은 성경에 무궁하게 많이 나타납니다.
에필로그
저는 하나님의 ‘카나’를 두 번 경험하였습니다. 지금도 그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돌고, 가슴에서 불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세우시고자 하시는 열망이 내 속에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자신의 유일한 모든 것 되는 것.”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저 내시면서까지 하나님이 원하셨던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목적이었습니다. 우리를 십자가의 대속을 통하여 구원하시고 화목하고자 원하시는 목적이기도 합니다. 이 하나님의 열망이 제게 부어졌습니다.
선교지에서 나 자신이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 태어난 것이 후회스럽고, 쥐나 바퀴벌레보다 못한 나 자신을 보면서 한없이 죽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을 때 이었습니다. 드러나는 행동은 누구보다도 경건하고 죄 없고 바르게 보였지만, 저의 마음속에 깊이 숨어있는 죄를 보게 되었을 때, 심지어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라기보다 나의 처지가 너무나 죄악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지금 제가 지옥에 있고 더 깊은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출애굽기 32장의 금송아지 사건을 읽다가, 더 이상 의자에 앉아 있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도저히 말씀의 무게 앞에서,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성서 속에 출애굽기 32장에 말씀하신 모든 상황을 경험하고 있고 또한 그 충격 때문에 몸서리 치고 있었습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다가 나중에는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다음날 무섭고 두려워서 성경을 읽지 못하고, 이틀 뒤 출애굽기 33-34장을 읽었습니다. 다시 의자에 앉아 있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 않았습니다. 또 성서 속에 출애굽기 33-34장의 말씀의 상황을 경험하고, 제가 몸서리 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한없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렇게 출애굽기의 과거의 상황이 성경을 통해 지금 동일시되는 경험을 하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신앙의 본질을 세우시고자 원하시는지 하나님의 질투의 크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너희는 다른 신에게 절을 하여서는 안 된다. 나 주는 '질투'라는 이름을 가진, 질투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출 34:14)
하나님이 이 시대에 신앙의 본질을 세우시고자 원하시는 그 마음이, 마치 내가 도저히 용서하지 못하는 원한으로 내 가슴에 사무치듯이 다가왔습니다. 하나님만이 자신의 유일한 모든 것을 얼마나 하나님이 원하시는지 사무치는 원한같이 나의 가슴에 박혀버렸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질투를 경험하고 지금까지 저는 지금도 그것만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나의 그 모든 것을 다 주어서라도 주님이 나의 인생의 유일한 모든 것이 된다면, 나는 모든 것을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부풀고, 이것을 설교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나눌 때면 저의 목소리는 항상 떨리고 두 눈에는 눈물이 고입니다. 사무치는 원한처럼 제 속에 자리 잡혀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시대를 너무나 선명하게 직접 경험한 것과 같은 체험은 그때가 처음이고 마지막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바른 것을 가르치지 않는 목사들에게 하나님은 “이름이 멸시 당했다”혹은 “똥칠 당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세우기-13. 하나님을 떠났다”를 쓰면서 성경을 찾고, 주님이 저를 다루어 오신 경험들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94년도에 랄프윈터 박사(Ralph Winter, U.S. Center for World Mission)가 하나님의 행하심이라 하면서 저에게 이야기 한 것이 생각이 났는데, 그가 저에게 예언해준 것이 바로 말라기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기준 세우기라는 주제로 글을 써 나가면서, 제 속에 하나님의 질투가 심어지는데, 바로 말라기의 말씀이라고 예언해주었는데, 바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는 랄프 윈터 박사의 예언을 들었을 때 저는 완전히 믿지 않았습니다. 반신반의 하면서 한편으로는 좋은 말을 해주니 기분이 좋았고, 한편으로는 이성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 불편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세우기-13. 하나님을 떠났다”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하나님이 멸시받고, 등을 돌리고, 떠나고, 배신하고, 더러워졌다고 말씀하신 것 가운데 가장 최상급 표현을 사용하셨는데, 바로 종교지도자에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모독적으로 생각하신 것이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였는데, 하나님은 그 당시 똥을 하나님이 받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시대 한국말로 표현하자면, 하나님께 똥칠하였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치욕스럽고 분노하셨는지 단적으로 드러낸 것일 뿐만 아니라,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이 그런 적이 없다고 우겼습니다.
“ "아들은 아버지를 공경하고 종은 제 주인을 두려워하는 법인데, 내가 너희 아버지라고 해서 너희가 나를 공경하기라도 하였느냐? 내가 너희 주인이라고 해서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기라도 하였느냐?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제사장들아, 너희가 바로 내 이름을 멸시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가 언제 주님의 이름을 멸시하였습니까?' 하고 되묻는다.”(말 1:6)
“"제사장들아, 이제 이것은 너희에게 주는 훈계의 말이다. 너희가 나의 말을 명심하여 듣지 않고서, 내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서, 너희가 누리는 복을 저주로 바꾸겠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가 받은 복을 내가 이미 저주로 바꾸었으니, 이것은 너희가 내 말을 명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 때문에 너희 자손을 꾸짖겠다. 너희 얼굴에 똥칠을 하겠다. 너희가 바친 희생제물의 똥을 너희 얼굴에 칠할 것이니, 너희가 똥무더기 위에 버려지게 될 것이다.”(말 2:1-3)
하나님께 드린 희생제물이 똥인데, 하나님이 너희 얼굴에 똥칠하겠다는 의미는, 한국적 표현으로 하나님이 하나님의 얼굴이 똥칠 당했으니 나도 너희 얼굴에 똥칠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분노하신 이유는 바로 종교지도자 때문이었습니다.
“너희는 바른 길에서 떠났고, 많은 사람들에게 율법을 버리고 곁길로 가도록 가르쳤다. 너희는 내가 레위와 맺은 언약을 어겼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그러므로 나도, 너희가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게 하였다. 너희가 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율법을 편파적으로 적용한 탓이다.”(말 2:8-9)
오늘날 목사들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하나님의 기준을 많이 혹은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그렇게 목회하고 성경을 가르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성도가 교회를 떠날까봐, 교회가 어려움에 처할까봐, 교회성장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타협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바른길을 가르치지 않고 자신도 가지 않습니다.
제 속에 그러한 사람들에 대한 분노는 결단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러한 목사들에게 지금 똥칠당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저의 가슴은 울분이 터지고 두 눈에는 눈물이 고입니다. 그리고 가슴이 저려옵니다. 처음 이 말씀의 무게와 지금의 이 말씀의 무게는 변함없이 동일합니다.
주님이 저에게 명하신 사역이 바로 이런 사역이기에 하나님은 저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질투를 부어주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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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기준을 정리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저를 위해서 시작한 일입니다.
카페 회원들이 하나님의 기준위에 영적인 자극이 될 수 있다면, 이 글이 유익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저 혼자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의 기준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좋은 충고와 가르침이 이 글을 더욱 알차게 할 것 같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댓글 등을 통해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위 내용을 정리하면서 지속적으로 조금씩 내용이 발전하고 다듬어 질 것을 소망합니다.
김바울 선교사 // 다음카페 // 빛과 흑암의 역사 http://cafe.daum.net/aspir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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