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기준 세우기 - 5. 죽은정통
하나님의 기준을 살펴보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기준을 읽고 다른 사람이 보이고, 다른 교회들이 보이면, 하나님의 기준을 바로 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바로 보게 되면, 자기 자신이 천리만리 주님 앞을 떠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자기 코가 석자인데, 남이 보이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 글이 자신 이외에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데 사용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모습의 가짜신앙을 따르고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다루는데 있어서 개인과 교회가 다루어져야할 부분은 죽은정통입니다. 정통은 틀린 것이 아닌 것을 말합니다. 모두 옳은 것 입니다. 그런데 죽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 가운데 철저하게 버려져야할 것입니다. 우리 신앙을 좀 먹는 벌래와 같아서 진짜와 가짜사이에 진짜같이 행세하고 있는 신앙의 모습을 말합니다.
죽은정통이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에게 헌신의 마음을 가지고, 성경에 나와 있는 것처럼 바른 동기로 신앙생활의 모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규례와 규칙을 신뢰하는 행위입니다.
예배, 십일조, 성찬식, 침례(세례), 성경공부, 기도 등 우리 신앙의 모든 영역이 죽은정통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주님을 위한 이런 신앙의 행위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신앙 행위가 될 수 있는지 의아해 할 수 있습니다. 본질과 의식에서 살펴보았듯이, 본질이 없는 껍데이만 남은 의식은 하나님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2:16-17)
종교적인 의식이나 행사 그리고 신앙적인 이유로 고기를 먹지 않는 것도 다 그림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알맹이고, 이러한 의식들은 예수님을 감싸고 있는 포장지입니다. 의식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대체해버리고, 의식을 잘한 것이 신앙생활 잘 한 것으로 빠져버린 것을 말합니다.
12 내가 너희의 살 곳으로 예전에 지명했던 실로에 가보아라. 내 백성 이스라엘이 못되게 굴다가 나에게 어떤 벌을 받았는지 가보아라.
13 그런데 너희도 이제 꼭 같은 일을 하고 있다. 내 말이니 잘 들어라. 내가 아무리 타일러도 너희는 듣지 않았다.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14 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성전을 믿고 안심하지만, 나는 실로를 해치웠듯이 이곳을 해치우고 말리라. 자손 대대로 살라고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땅을 해치울 것이다.
15 너희와 한 겨레인 에브라임 족속을 다 내쫓았듯이 너희도 내 앞에서 쫓아버리리라.'
(공동번역 개정판, 렘7:12-15)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성전을 믿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엘리 제사장 때 실로에 있던 성막이 무너지고 언약궤를 빼앗기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크게 살육당한 것과 같이, 예루살렘 성전과 이스라엘에 그러한 일이 일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전형적인 죽은정통입니다.
죽은정통이 될 수 있는 것들
1. 의식들
예배, 십일조, 성찬식, 침례(세례), 성경공부, 기도 등 우리 신앙의 모든 의식들.
2. 자신의 종교적인 배경이나 신앙적인 열심
자기의 종교적인 헌신이나 희생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적 열심이지, 하나님을 그분을 구하고 찾는 것이 아닙니다.
3. 성경적인 지식
마틴 로이드 존스의 부흥 책에 다음과 같이 죽은정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교리, 참된 교리, 인격에 관한 참된 교리를 인격이 서야 할 자리에 세우는 무서운 위험”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성경적인 올바른 지식은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꼭 필요하며 배우고 연구하고 묵상해야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인격체이십니다. 성경을 배우고 공부하는데 있어서 깊은 성경의 배경과 앞뒤 문맥을 통해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일과 그분 자신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계시는지, 또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않으면, 성경이 쓰여진 이유를 모르는 체 성경 지식 그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4. 성령의 은사나, 사회적인 영향력, 세상적인 축복 등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이렇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소위 성수주일하고, 십일조하고, 성경보고, 기도하는 것과 같은 몇 가지 규칙을 잘 지키는 것으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잘 지키는 것을 신앙의 주요 목적으로 삼음으로써, 근본적인 복음의 길에서 벗어나 죽은정통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 주변의 신앙의 모습은 많지만, 하나님의 실제와 생명은 없고, 하나님의 임재도 없고,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에게서 떠나 있으며, 우리 안에는 온갖 죄악이 가득해졌습니다.
죽은정통의 열매
1. 외식.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거기에 없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없이 그저 형식과 절차로 가득한 종교입니다.
경건의 능력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종교적인 의식들을 잘 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킨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오직 거룩함과 경건한 삶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 속에 거하시며 다스리실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5)
2. 형식적인 예배
입술로만 드리는 형식적인 예배는, 정성이 부족한 예배가 아닙니다. 예레미야나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은 예배가운데 얼마나 정성으로 많은 희생과 헌신과 정성을 담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형식적인 예배는 정성이 부족한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개인적이고 사실적으로 만남이 없는 예배를 뜻합니다.
예배로 나아올 때 하나님을 추구하여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기를 더욱 목말라하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기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의중과 의도를 깨달아 그곳에 같이 있기 원하는 열망으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아름다운 일들을 인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올리고, 하나님 자신을 기뻐하기 위해 나아와야 합니다.(시24:6)
그런데 죽은정통은 예배의 순서와 절차를 잘 마치는 데 초점을 둡니다. 그 순서와 절차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큰 정성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당만 밟고 돌아가는 예배요 입술로만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예배의 순서와 절차가 있는 예배가 문제가 있는 예배가 아닙니다.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있고, 하나님 그 분을 만나는 기대는 하나도 없이, 정성이 들어가는 것이 신령한 예배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3. 실제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관점과 바리새인들의 관점이 하늘과 땅 만큼 다른 것은 이론과 실제의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아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시대 바리새인들에게 신학적으로 전혀 문제없었고, 신앙의 본질조차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이론에 대한 실제를 보여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나라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론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실제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실제는 성령님의 조명으로만 우리에게 알려집니다. 지금 열심히 타자 치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이 글을 읽고 지식적으로 그렇다고 동의는 될 수 있지만, 성령의 조명으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은 성령입니다. 죽은정통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들의 종교적인 행위에 의존하기 때문에 교만합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기를 구하지도 않습니다. 영적인 장님의 당연한 결과입니다.
4. 믿음이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성경을 이론으로 알고 있는 것을 믿으면, 그것이 곧 믿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참 믿음은, 인격체이신 하나님 그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에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실 별을 보고 찾아온 동방박사들이 헤롯왕을 찾아갔습니다. 서기관들은 왕으로 오실 메시야가 미가서에 나오는 예언을 단순에 외웠습니다(마2:5-6). 그렇게 예루살렘에서 소란을 떨던 단 한사람도 동방박사와 같이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진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면, 동방박사보다 더 빨리 베들레헴으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성경의 진리에 믿음으로 동의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지난번에 살펴본 것처럼, 사탄도 모든 성경 진리의 말씀이 참된 것에 동의합니다.
그러므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에필로그
신학대학 시절 죽은정통을 마틴로이드존스 목사가 쓴 부흥 책을 통해 정리하면서, 교회를 비판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나 자신을 못 보면서, 남이 보이고 교회가 보이는 것이, 죽은정통 속에 있는 나 자신을 못 본 모습이었습니다.
성령에 저의 마음을 인도하시되, 내가 죽은정통신앙의 괴수인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새벽기도가 마친 뒤 성도들의 기도 빨을 살리기 위해 강대상 앞에서 소리치며, 분위기 만들어 가던 나를 보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졸면서 소리친 것까지 생각나더군요.
내가 예배 순서를 정할 때, 20분이면 순서를 다 정하는데, 기도나 사회를 맡은 성도에게는 금식 시키고 기도로 준비시키는 일을 시켰습니다.
찬양을 인도 할 때도, 찬양에 힘이 가게하기위해 여러 가지 기교를 부리기도 하였습니다.
목사이기 때문에 새벽기도 나가지 않으면, 금요 기도모임에 나가지 않으면, 정말 내가 하나님 앞에 머무르지도 않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치지 않으면, 내가 스스로 나를 위해서 성경을 연구하지 않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내가 과거에 얼마나 잘나갔는지, 얼마나 많은 교회에서 설교하고 강의하고 다녔는지, 그것이 나의 자랑으로 여겼던 것들이 생각났습니다.
과거의 목회적 성공을 나의 자랑으로 생각하였던 것들이 생각났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1시간이든 20시간이든 나에게 주어지기만 하면, 아무런 강의안 없이도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수 있는 나의 성경지식이, 나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죽은정통신앙을 내 삶에서 없애버리기 위해, 나 자신을 정죄하면서 하나님 앞에 몸부림치며 지금까지 넘어지면서 왔습니다.
나의 의식 속에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는 나 자신이 주님을 찾고 갈망하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갈망하는 하루를 보내지 않았다면, 예배 때에도 전혀 주님을 찾고 구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내가 주장하고 위험한 신앙이라고 부르짖는 죽은정통신앙으로 다시 돌아가 버리고 마는 나 자신을 봅니다. 그리고 주님 일에 바빠서 정신없이 그 일에 몰두하고 있다 보면, 주님은 온데간데없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진짜 주님을 갈망하면, 그 정신없는 일 속에서도 주님을 갈망하고 찾으며 그 일을 이룹니다.
어느 순간은 내가 죽은정통신앙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데, 나 자신을 못 볼 때가 있습니다. 과거의 외식으로 가득한 나를 못 볼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았을 때, 죽을 것 같습니다. 내가 얼마나 괴롭고 내 꼴이 한심스러운지 글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그렇게 넘어지면서 또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여 주님 앞에 정직하게 모든 것을 아룁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나의 죽은정통신앙까지 죄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음으로 의지합니다. 그리고 나면, 내 가슴에 주님이 얼마나 크게 실제로 다가오는지 모릅니다. 그 기쁨, 그 감사, 형용할 수 없는 그분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며, 주님이 항상 내 곁에 계신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죽은정통신앙은 주님을 찾고 구하고 갈망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가장 크고 힘들고 괴로운 것은, 내가 죽은정통신앙으로 돌아선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 앞에 나가서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였지만, 여전히 죽은정통신앙의 모습이 내 속에 남아 있을 때입니다. 정말 이런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시간이 가도 계속 나의 가슴은 답답하고 냉냉합니다. 문제를 아는데, 문제가 문제로 인식되지않고 그냥 그렇게 계속 가는겁니다. 그렇게 얼마동안 지나다가, 나에게 있는 어떤 죄가 이것을 가리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며 주님께 내가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며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주님앞에 나가서 정직하게 나의 죄를 회개하고나서, 죽은정통신앙에서 돌아서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내가 죽은정통신앙에서 돌아서야하겠다고 돌아서지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은혜가 나를 인도하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정리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저를 위해서 시작한 일입니다.
카페 회원들이 하나님의 기준위에 영적인 자극이 될 수 있다면, 이 글이 유익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저 혼자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의 기준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좋은 충고와 가르침이 이 글을 더욱 알차게 할 것 같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댓글 등을 통해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위 내용을 정리하면서 지속적으로 조금씩 내용이 발전하고 다듬어 질 것을 소망합니다.
김바울 선교사 // 다음카페 // 빛과 흑암의 역사 http://cafe.daum.net/aspir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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