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기준 세우기 - 2. 비전
하나님의 기준을 살펴보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기준을 읽고 다른 사람이 보이고, 다른 교회들이 보이면, 하나님의 기준을 바로 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바로 보게 되면, 자기 자신이 천리 만리 주님 앞을 떠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자기 코가 석자인데, 남이 보이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 글이 자신 이외에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데 사용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모습의 가짜신앙을 따르고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비전이 없다면 짐승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비전을 가진 자는 항상 생기가 돌고 의욕이 충만합니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납니다. 그에게는 기쁨과 감사가 있고 어떤 고난과 고통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비전을 가진 자에게는 불러야 할 노래가 있고 들어야 할 깃발과 외쳐야 할 구호가 있으며 죽어야 할 이유도 알고 있습니다. 비전을 가지는 자는, 자신의 꿈과 야망을 성취하려는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비전의 사람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을 통하여 성장하며 성숙해 집니다.
비전에 대하여 인터넷을 치면, 참 많은 글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많은 유익을 주는 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같이 깊이 연구한 흔적들이 보이는 글들입니다. 그리고 그 글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왜 비전은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의 비전을 인간에게 초청하신다는 성경에서의 비전은 보기가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는 비전에 대하여 성경은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비전은 하나님이 계획을 세우시고, 인간을 초청하십니다.
비전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가지고 계신 뜻과 의중을 가지고 계획을 세우십니다. 그 뜻과 의중을 그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 그것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비전은 우리가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세우시고 인간을 초청하십니다. 그것이 비전입니다.
노아시대에 주님이 가지고 계신 뜻과 의중은 무엇이었습니까?
죄로 가득한 세상을 멸하시고, 하나님이 선택하신 한 가족을 통해 믿음의 유업을 이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뜻과 의중을 이루시기 위하여 한 사람을 선택하시는데, 그 사람은 노아였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뜻과 의중을 알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손까락질에도 불구하고, 120년 동안 산 위에 배를 만들었습니다.
노아의 비전은 방주를 짓는 것이었고, 믿음의 유업이 이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먼저 이 비전을 세우셨습니까?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이 가지신 뜻과 의중을 안 노아는, 자신의 인생에 하나님의 뜻과 의중이 이루어지도록 자신의 비전으로 삼았습니다.
아브라함 시대의 하나님의 뜻과 의중은 무엇이었습니까?
믿음의 조상을 만드는 것이 주님의 뜻과 의중이었습니다. 그분은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과 의중을 알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는 비전을 소유하였습니다.(창 12:1-3).
모세시대에 주님이 가지고 계신 뜻과 의중은 무엇이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왕으로 삼는, 자신의 백성 만드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모세를 택하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주님께로 인도하고(출19:4), 그 부산물로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 되시는 것이 그의 비전이었습니다.
다윗시대에 주님이 가지고 계신 뜻과 의중은 무엇이었습니까?
이스라엘에 주님 마음에 합당한 왕을 세우고, 그의 후손을 손해 메시야를 약속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은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다윗을 선택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그분이 인생의 모든 것이 되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이 그의 비전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주님이 가지시고 계신 뜻과 의중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나라의 삶을 살고, 선포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은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자신의 독생자 예수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지상에서 가지셨던 비전은 하나님나라와 십자가 였습니다.
성경은 누구하나 자기가 이루고 싶은 것을 비전 삼은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하나 자기가 하나님께 이루어 드리고 싶은 것을 비전 삼은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하나 자기의 재능을 감안하여 그것에 맞추어서 비전을 삼은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하나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신의 맞추어진 계획을 가지고 나가 그것을 이룬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하나 자기 처지를 생각하여 분수에 맞게 자기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비전을 삼은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주도권을 하나님이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분이 주권자이십니다. 계획도 그분이 세우시고, 어떻게 그 비전을 이루어 갈지도 주님이 세우십니다.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거대한 비전을 세우시고 인간에게 초청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 그 일을 이루십니다. 이것이 비전입니다.
거짓 비전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성경의 원리를 따르자면,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가지고 계신 비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이 이 시대에 가지고 계신 뜻과 의중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주님을 위해 무언가 주님이 기뻐하실만한 비전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비전이 성서적으로 입증되기 위하여, 성경의 옳은 말씀들을 모두 끌어들여, 그 비전을 합리화시킵니다.
구약성서에 엘리 제사장이 나옵니다. 그는 외세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는 사사이며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그 시대에 하나님이 가지신 뜻과 의중을 전혀 몰랐습니다. 성경을 탁월하게 잘 알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전승한 언약궤가 그들에게도 동일하게 통할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는 모든 성경구절을 동원하여 성서적인 설교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터에 언약궤를 내어오자, 이스라엘 진이 진동할 정도로 사가가 충천하였습니다. 얼마나 큰 함성을 질렀던지 땅이 울릴 정도였습니다. 그들의 언약궤 앞에서 요단 강물이 서고,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과 같은 성경의 역사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대와 반대로, 더 많은 이스라엘 전사들이 죽고, 언약궤마저 빼앗겼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시기에,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이 적군을 향해 싸우셔야 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엘리 제사장의 편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엘리제사장은 그 시대에 갖고 계신 하나님의 뜻과 의중을 몰랐습니다. 대신 사무엘은 알고 있었고, 엘리 제사장은 그것을 무시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거짓 비전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 계획을 세우고 그것이 성서적인 것이라는 모든 성경구절로 사람을 설득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비전을 하나님의 비전으로 둔갑시키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의중을 이루기 위해,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있습니다. 그러나 막연하게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없습니다.
누구든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도 하나님 중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이든 무의적이든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려는 경향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헨리 블렉가비 목사님이 쓴 “하나님의 경험하는 삶” 속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고자 할 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과연 무엇인가?” 제 신학교 교수시던 게인스 도빈스 박사님은 “잘못된 질문을 하면 잘못된 답을 얻는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모든 질문은 타당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답을 찾으려는 데 항상 틀린 답만 나올 때 우리는 뭐가 잘못되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답을 찾기 전에 당신이 과연 올바른 질문을 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십시오.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질문이 아닙니다. 제 생각에 바른 질문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일단 파악하며 나는 인생을 하나님에게 맞출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내가 처한 곳에서 하나님이 목적하고 계신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일단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신지 알게 되면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초점은 내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 맞춰져야 합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중심으로 어떤 일들을 벌여나간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늘 자신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뜻과 의중을 보는 것이 아주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과 의중을 펼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가지신 뜻과 의중을 사람에게 보이시고, 그것을 이루시기위한 인간을 향한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미묘한 차이 같아 보이지만, 절대적으로 중요한 차이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신앙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뜻은 항상 자기 중심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 중심에서 시작된 신앙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막연하게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의중을 이루기 위해,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있습니다.
비전은 고난을 먹고 자란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은 고난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성숙됩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0-12).
비전은 고난을 먹고 자랍니다.
노아는 산꼭대기에 배를 지어야 하는 고난이 있었으며,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는 고난이 있었으며,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까지 이끌고 가야만 하는 고난이 있었습니다.
예언자들 치고 고난을 겪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십자가를 지는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고난 당하는 종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고난이 있었습니다.
스데반과 사도 바울도 고난을 겪었습니다.
기독교 2000년의 교회사를 통하여 볼 때 하나님의 사람들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더욱 분명하게 하며 고난을 통하여 비전은 완성됩니다.
비전은 새로운 이상을 만든다.
교회사에 나오는 인물 중 루터나 칼빈 등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사람들이나 조지 윗필드, 죠나단 에드워드, 요한 웨슬레, 무디 등 영적 대각성을 일으킨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모두 영적인 이상을 가졌고 그 꿈을 실현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한 시대를 변화시킨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죄인들과 함께 사셨고 그리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떻습니까?그는 복음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는데 특별히“이방인을 위한 사도의 비전”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비전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난 자는 새로운 비전과 이상을 갖습니다. 교회에 대한 새로운 꿈과 이상을 갖게 되며 조국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됩니다. 그의 몸은 현실에서 살지만 그의 마음은 이상 속에서 삽니다.
비전은 영적인 사람을 만든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새로운 이상을 가진 사람으로 변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살펴봅시다. 그들은 갈릴리의 소박한 사람들이었고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사렛 예수를 만난 후 위대한 예수의 제자들로 변했고 초대 교회의 주역들이 되었으며 순교하기까지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적으로는 유명하거나 훌륭한 지도자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인류역사상 이 사람들만큼 영향력을 가진사람들이 드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죽이려던 사람이 예수를 만난 후부터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모두가 영적 이상을 가진 자들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영적인 지도력을 갖습니다. 그들을 통하여 영적인 변화와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비전은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합니다
비전을 가진 자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보입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새롭습니다. 자신에 대하여 새롭고 가정이 새롭고 사회가 새롭고 민족이 새롭습니다.
이사야 35장에 보면 새로운 세계에 대한 그림이 나옵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1-2절).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5-6절).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10절).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영혼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줍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받은 자는 민족의 부흥과 통일을 보게 하고모든 미전도 종족의 영혼도 보게 합니다.
비전의 사람은 높은 산을 정복하는 사람과 같고, 험한 바다를 헤쳐 가는 사람과 같고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는 이 시대의 등불이며 소망이며 이상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을 지도자라고 부릅니다. 참된 지도자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교회를 혁신시키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게 될 것입니다.
비전은 지도자를 만든다
오늘 우리 시대의 소망은“하나님의 꿈을 가진 한 사람의 지도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로운10명이 없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돌아보십시오. 대통령 외에 수많은 지도자가 있었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지도자는 찾기 어렵습니다.
현대는 유명한 스타는 즐비하게 많으나 존경할 만한 지도자가 많지 않습니다. 용기 있고 덕망있고 실력 있는 지도자 한 사람이 있으면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 될 것이요, 사랑이 넘치는목회자 한 사람이 있으면 교회는 변화와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세상의 문제는 지도자의문제요 교회의 문제도 지도자들의 문제입니다.
비전은 시대를 초월하고 문화를 초월하여 지도자를 만들어냅니다.
지도자는 태어나기보다는 만들어집니다. 지도자에게는 환경보다 비전이 더 중요합니다.
에필로그
저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비전에 대한 성서적인 시각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뽑아 버렸습니다. 이 말씀 앞에 제가 걸어왔던 인생 가운데, 과연 하나님중심으로 비젼을 선포하고 추구하였던 것이 얼마나 되는지 돌아보았습니다.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분명히 성서적으로 모두 맞는 말이지만, 내가 선포하고 내가 추구하였던 모든 비전속에는 내 야망이 담져 있었습니다. 나는 분명히 성경 속에서 그 비전을 찾아내었고, 주님이 분명히 그것을 기뻐할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분명한 하나님의 비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나의 비전인지 하나님의 비전인지 분별하는 저만의 노하우를 발전시켰습니다.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이 세상을 향한 그분의 비전이 99%이고, 내 마음 속에 아주 깊이 들어있는 야망이 1%가 드러나면, 더 이상 하나님 그분의 비전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을 이용하여 이루고자 하는 야망으로 간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님을 위해 일하다가, 이 일을 인하여 내가 조금 유명하여 지겠지 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내 속의 야망과 주님의 비전이 섞이는 것입니다.
이 일이 더 커지면, 더 큰일을 할 수 있고 사람들이 저를 좋게 칭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즉시, 내 야망이 주님의 일에 섞여 들어간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내가 하는 모든 사역이 내 야망이었습니다. 더 이상 사역을 할 수 없었습니다. 울고 또 울고, 밤을 지새우며 기도해도 내 야망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기도원을 다녀온 후 모든 목회와 계획을 그만 두었습니다. 목사직분도 반납하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저의 아내에게, 나는 목회자 자질이 없으며,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나의 처지를 보며, 죽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을 때, 청소년시절 주님이 육성으로 하신 말씀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자고 있는 나를 5번 이상 사무엘처럼 불러서 깨우시고, 육성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말씀하시면서, 저를 하나님이 이루실 비전으로 초대하신 일들이 기억이 났습니다. 그것은 이슬람과 개신교와 케톨릭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흥에 대한 계획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흥을 방해하는 프리메이슨에 대한 저의 사역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주님이 그 때 하신 말씀 중에서, 선교사로 나가되, 선교헌금을 모집하지도 말고, 선교사로 나간다고도 하지 말고, 모든 것을 주님을 의지여 나아가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공부하던 교육학을 선교학으로 바꾸었습니다. 선교훈련을 받고 선교사로 나아갔습니다. 형식적인 파송교회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감사의 마음이었습니다. 그 어떤 모금 운동도 하지 않고, 냉장고에 부치는 기도제목도, 기도제목 책갈피도, 명암에 계좌번호 조차도 넣지 않고, 믿음으로 선교지에 나아갔습니다.
한번도 끼니를 건넌적 없었고, 더도 덜도 아닌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만큼만 주님은 우리는 먹여 살리셨습니다. 오늘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한 적이 있었는데, 1달반 동안 우리가족이 한국 돈 100원으로, 3명이 하루 하루를 보낼 때 였습니다. 가장 큰 불안은, 우리가 굻어 죽어도 선교지에서 아무도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고난가운데, 저에게 이렇게 질문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래도 내가 너의 모든 것이냐? 너는 나 때문에 이 상황에서 기뻐할 수 있느냐?”
한시간을 울고 또 울었습니다. 풍토병으로 온가족이 쓰러졌 있고, 돈도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는 상황가운데, 밥과 개란으로 하루 끼니를 때우는 지금. 그래도 주님이 나의 모든 것인지 나를 돌아보니 나는 완전히 예수님이 주인이 아닌 가짜였습니다. 그렇게 정직하게 나의 모든 마음을 고백드리고 나니, 내 마음에 기쁨의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찬양을 흘러나왔습니다. “주님이 저의 전부이며 주님이 나의 유일한 기쁨입니다.” 하며 얼마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웃었는지 모릅니다. 정말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그리고 자녀와 아내를 위해 기도하였더니, 아침이 되자 풍토병이 다 나아버렸습니다. 기적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내가 기대하지 않았고,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저의 계좌에 입금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기들보다 못사는 외국인이 불쌍해서인지 많은 무슬림들이 우리를 도와주기 시작하였고, 외국인으로서 마을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주님은 우리 가족을 주님 자신에게로 인도하시고 계셨습니다.
비전은 이렇게 저의 삶 가운데, 고난을 통해서 먹고 자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정리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저를 위해서 시작한 일입니다.
카페 회원들이 하나님의 기준위에 영적인 자극이 될 수 있다면, 이 글이 유익한 일을 하는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또한 저 혼자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의 기준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좋은 충고와 가르침이 이 글을 더욱 알차게 할 것 같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댓글 등을 통해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위 내용을 정리하면서 지속적으로 조금씩 내용이 발전하고 다듬어 질 것을 소망합니다.
김바울 선교사 // 다음카페 // 빛과 흑암의 역사 http://cafe.daum.net/aspir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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