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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의 기준 세우기 - 4. 본질과 의식

하나님아들 2013. 1. 19. 14:25

하나님의 기준 세우기 - 4. 본질과 의식 

 

 

하나님의 기준을 살펴보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기준을 읽고 다른 사람이 보이고, 다른 교회들이 보이면, 하나님의 기준을 바로 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바로 보게 되면, 자기 자신이 천리 만리 주님 앞을 떠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자기 코가 석자인데, 남이 보이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 글이 자신 이외에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데 사용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모습의 가짜신앙을 따르고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본질(복음)은 하나님(예수)을 알고 사랑하는 하나님과(예수)의 친밀한 교제와 하나님(예수)의 행하심을 보고 온 삶으로 동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복음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신앙의 본질과 의식과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지 못하면, 그릇된 가짜신앙에 빠지고 맙니다.

 

의식(儀式)은 주님이 명령하신 중요한 것이지만, 의식은 본질을 담는 그릇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17:3)

 

성경에 나온 가장 큰 계명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마22:37,38)입니다.

 

호세아 6:6절에는 “나는 인애(사랑)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라 하였습니다.

 

주님이 원하는 두가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 그분을 아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은 번제와 제사, 즉 예배와 속죄의식 이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본질과 의식의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번제와 제사는 원래 하나님이 드리라고 명한 규례입니다. 레위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그것을 정하였습니다. 그럼 이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말씀을 당신은 어떻게 이해합니까?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두 가지는 번제와 제사입니다. 번제와 제사는 원래 하나님이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그것들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그것들을 원치 않으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어떤 때는 제사를 좋아하셨다가, 다른 때는 그것을 싫어하시는 분이십니까? 하나님도 사람처럼 조변석개하시는 분입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분입니다. 만약 호세아서가 신약 성경에 나온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는 더 이상 구약 시대에 드렸던 제사나 번제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호세아서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점이 바로 우리에게 우리 신앙의 본질(reality)과 의식(ritual)의 관계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우리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와 번제를 포함한 모든 종교적인 행위와 의식은 그 본질을 상징하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즉, 본질을 담는 그릇입니다.

 

본질이 없는 의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의식이 많아도 본질이 없으면, 그 의식은 하나님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신앙에서 모든 종교적인 행위들과 의식들은 본질인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표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그 속에 본질이 담겨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그 속에 본질이 담겨져 있지 않으면, 아무리 화려한 의식이나 많은 희생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 (이사야 1:10-15)

 

여기에서 소돔의 관원들과 고모라의 백성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부르고 계십니다. 그들은 참으로 많은 희생과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모든 절기들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안식일은 말할 것도 없고 월삭(매월 첫 날)을 지켰고 모든 대회와 절기를 지켰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맥추감사절, 대강절, 사순절, 오순절 등과 같은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절기들까지 그들은 빼놓지 않고 철저하게 지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그 절기마다 수많은 제사들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수양, 수송아지, 어린 양, 수염소 등 그들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은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또한 많은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사야 58장에 의하면, 그들은 정기적으로 온 백성이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예배(절기)와 헌금(희생)과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그 모든 예배와 헌금에 신물이 났다고 말씀하셨으며, 심지어 그것들을 증오하신다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그 모든 모임들과 예배들은 하나님의 마당만 밟고 돌아가는 것과 같은 헛된 예배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의식 속에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 담겨져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삶 속에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생각까지 들여다보실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이 행동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의 깊은 곳까지 모두 아십니다. 우리의 동기가 어떤 동기로 시작되었는지, 나 자신보다 하나님이 나를 더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거짓된 동기로 인한 외적인 의식이 아무리 많을 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뮈 화려한 의식이나 많은 희생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났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휼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사1:4)

 

하나님은 이사야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렸고, 멸시하여 물러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많은 희생예배를 드렸는데, 하나님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버렸다는 사실을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의 본질이 없었습니다. 의식은 가득하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많은 헌금을 하였고, 예배조차도 자신들이 최선을 다해 더 많은 예배를 만들어서 예배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고, 하나님을 멸시하여 물러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을, 교회를 떠났다 라든가 배교 등을 이해합니다. 더 이상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헌금도 드리지 않고, 그 어떤 봉사나 순종을 하지 않는 것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는 아무리 의식이 가득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이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면 하나님을 떠난 것으로 간주합니다. 자기가 아무리 하나님을 위해 전 재산을 헌금 드렸어도, 그 마음에 “내 모든 것이 하나님 것 입니다. 다 돌려드립니다.” 이것 하나만 있다면 하나님은 그 예물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전 재산을 드리니, 나에게 다른 더 많은 복(세상에서의 성공)을 주실 것을 기대하였다”면 하나님 앞에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생각을 다 아십니다. 헌금의 동기가 어떤지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주일 헌금을 드리면서, 하나도 그 헌금 안에 감사한 마음이 없습니다. 주일 이니까 당연히헌금을 드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30년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고 주일성수한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난적이 몇 번이나 만나셨습니까?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은 그분관의 만남입니다. 예배 30년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은 것 중에, 몇 번이나 그런 경험을 하였습니까? 하나님은 그 중에 하나님 기준에 맞는것만 세어서, 주일성수로 기억하실 것입니다.

십일조를 빠짐없이 정확하게 드린 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드릴 때, 과연 내 모든 것이 하나님것입니다 라는 마음이 있었나요? 십일조 드리면 축복주시니까 촉복 때문에 드렸나요? 아니면 율법과 같이 반드시 드려야 한다니까 드렸나요? 하나님은 우리 속 마음을 보십니다. 동기와 그에 대한 의식을 함께 보십니다.

교회 섬기면서 많은 봉사를 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그 봉사에 있어서, 사람들에게 자신이 칭찬받기 위해서, 또는 직분을 성취하기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시작하였다면, 하나님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봉사와 섬김이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또 목회자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서 교회에서 많이 봉사하도록 유도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남이 아닌 바로 내가 그러고 있는데도, 자신은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신앙생활 잘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보이십니까?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는 자신이 보이면 하나님의 기준이 보여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본질이 없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무릇 거기 거하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그러나 아무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 같이 되었음이니라 너는 낮에 거치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거치리라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세아 4:1-6)

 

하나님의 백성이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면,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의식이 아무리 많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 모든 의식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면, 그것은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본질이 없이도 얼마든지 의식이 가득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시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이러한 왜곡된 이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은 누구보다도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아무리 말씀하셔도, 자신들은 그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사야의 말이 너무 귀에 거친 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를 톱으로 켜 죽였습니다. 이것이 저와 오늘날 교회가 처한 상황입니다.

 

이사야 시대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을 코앞에 두고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남왕국 유다의 멸망이 코앞에 있을 때, 예레미야는 동일한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반응은 동일하였습니다.

“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렙7:13)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은 동일하였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1주일에 2일은 금식하며 기도할 정도였고, 바리새인이 될 정도면 모세오경을 통째로 히브리어로 외웠다고 합니다. 그들의 행동은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범일 될 정도로 철저히 신앙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의 동기를 아신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 표현하였습니다. 외적으로는 누구하나 나무랄데없는 완벽하게 보이는 신앙을 보여주었지만, 외식으로 가득찬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이제 조금 보이십니까? 내가 바로 바리세인이라는 것이요? 내가 바로 독사의 자식인 것이 보이십니까? 내가 심판받고 저주받을 그 대상이라는 것이 보이십니까?

 

조심해야할 사항

 

의식은 본질을 담는 그릇입니다. 본질이 없는 의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니, 이래도 저래도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니 아무런 의식도 하지 말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의도를 벗어난 생각입니다.

의식은 본질을 담는 그릇입니다. 본질이 살아있을때만 그 의식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식 가운데 본질을 살아 있도록 해야합니다. 버리라고 주신 의식이 아닙니다.

 

에필로그

 

처음 주님이 저에게 주님의 기준을 보여주신 것이 본질과 의식 부분이었습니다. 나는 바리새인이 보여준 신앙의 모습보다도 못하지만, 나의 속 마음은 바리새인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북왕국 시대의 백성들의 모습이 저였습니다. 남왕국 시대 멸망이 코 앞에 다가왔는데, 편안하다 외치던 그 자가 나였습니다. 바리새인이 이 세상에 내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이 말씀 앞에 까무러치듯 쓰러졌습니다. 힘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내 모든 인생중 많은 순간이 지옥을 걷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생명을 바쳐 주님을 위해 산다고 산 내 인생 많은 부분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떠난 생활이었다는 것을 안, 저의 반응이었습니다. 수많은 헌신과 섬김과 희생을 통해 주님을 섬겨왔는데,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주님을 향한 섬김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밥을 먹을 때 눈물을 반찬삼아 먹었습니다. 주님이 저의 생명을 끊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적까지 있었습니다. 더 이상 이세상에 살 가치가 없는 존재로 인식되었었습니다. 꿈을 꾸어도 주님을 떠났다는 그 말이 맴돌아 밤새도록 울고, 꿈에서도 울었습니다.

헌금을 드리려고 봉투에 헌금을 담았다가, 기어이 그 헌금을 못 드린적도 있었습니다. 집에와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예배가운데 주님 만나려하였지만, 내 마음이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지지 않는 것 때문에 참 괴로워했었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기준앞에 정죄하려는 마음이 생기면서, 또 다른 가짜신앙이 저를 괴롭히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내가 안보이고 남이 보이는, 사탄의 음성이었습니다.

 

4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종교 의식 가운데, 본질이 들어있지 않은 모습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십자가 앞으로 기어들어갑니다. 하나님의 기준 앞에 실패하여 엎드려지는 나 자신이, 매일매일 순간순간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의지하여 주님을 구하면, 주님이 내 속에서 살아주시는 경험을 합니다. 내가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렇게 살게 하십니다. 주님과의 연합은 이렇게 주님의 기준 앞에, 내가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는것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정리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저를 위해서 시작한 일입니다.

카페 회원들이 하나님의 기준위에 영적인 자극이 될 수 있다면, 이 글이 유익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저 혼자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의 기준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좋은 충고와 가르침이 이 글을 더욱 알차게 할 것 같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댓글 등을 통해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위 내용을 정리하면서 지속적으로 조금씩 내용이 발전하고 다듬어 질 것을 소망합니다.

 

김바울 선교사 // 다음카페 // 빛과 흑암의 역사 http://cafe.daum.net/aspire7

 

출처 : 빛과 흑암의 역사 (성경연구,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글쓴이 : 샤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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