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이란!

[스크랩] 예수님이 율법을 폐하셨는가? 완전케 하셨는가?

하나님아들 2013. 1. 15. 21:10

예수님이 율법을 폐하셨는가?  완전케 하셨는가?

 

 안식일 교인들이 가장 많이 반문하는 성경 절은 마5:17절이다.

 본카페 회원중에 영보이 이란 닉네임을 가진 분이 올린 글에도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다.

그에 대한 답변과 예수님의 오신 목적을 설명하고자 한다. 안식교가 요구하는 답이 되길 바란다.

 

[영보이님의 질문]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하려 함이라.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듯이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이 말씀을 누가 하셨을 까요?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왜 계명이 폐했다고 할까요.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 합니다. 폐했으면 지킬 필요가 없지요. 십자가 이후도 사도들은 계명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데 그 계명은 무엇일까요. 마22:34-40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율법을 폐하셨다. 예수님이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얘기요 폐하여 졌다는 것은 십자가를 진 후의 얘기다. 만약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율법을 폐한다면 하나님은 거짓말장이가 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보면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래의 내용들은 예수님이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는 뜻과 오신 후에 율법이 폐지된 이유를 설명해 준다. 만약 하나님께서 범법자를 죽이지 아니하고 그대로 율법을 폐하여 버린다면 그것은 대단한 모순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은 아니지만 율법을 그대로 둔다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지옥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할 수 없이 자기육체로 율법을 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율법은 반드시 대가를 요구 한다. 그 대가는 죽움이었다. 만일 율법을 폐할 뜻이 있었다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지 않고 하늘에서 폐하여 버리면 된다. 그렇다 율법은 아무렇게나 폐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을 하기 위하여 오셨는가?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의 요구를 이루기 위하여 오셨다. 우리는 연약하여 율법을 지킬 수 없으므로 모든 사람들은 죄로 인해 죽은 자이었다. 그러자 하나님은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3)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려 하였다고 하셨는데 율법의 요구란 어떤 것인가? 율법의 요구에 대하여 표준 새 번역에는 알기 쉽게 번역되었다.


 “육신이 연약하므로 율법이 할 수 없던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죄를 속하여 주시려고, 자기의 아들을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육신에다 죄를 정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완성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롬8:3)


 예수님이 오신 것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의 요구를 이루기 위하여 오셨다. 그러면 율법의 요구가 무엇인가? 율법의 요구란 율법을 만든 목적을 말한다. 그 첫째 목적은 지키라는 것이요, 둘째는 안 지키면 죽인 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율법의 요구대로 율법을 지켰는가? 아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키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의 요구대로 죽어야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율법을 지켰으므로 죽을 필요가 없지만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죽어야 할 것을 대신 죽으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러 오신 것이다.율법을 지키지 못한 죄의 대가가 무엇인가? 그것은 죽음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


 그러므로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시지 않고 율법의 댓가를 대신지고 죽으러 오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을 담당하셨다. 죄란 어디에서 오는가? 율법에서 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율법의 요구를 해결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율법의 목적은 첫째로 지키라는 것이며, 둘째로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죽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율법을 지키지 못하였으므로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자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율법을 다 지키심으로 죽을 필요가 없는데도 우리가 죽어야 할 것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다.


 롬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현대인의 성경) 롬8:3 “우리는 그 율법을 다 지킬 수도 없”기 때문에...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다른 계획을 실행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죄 많은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어 그 육체를 죽이심으로써 이 세상의 죄를 없이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속에서 율법의 요구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위의 내용은 우리가 연약하여 율법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구원할 계획을 마련 하셨는데 그 계획은 “자기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우리의 죄를 그에게 정하사 율법의 요구인 우리가 당하여야 할 죽음을 예수님이 당하도록 했다는 말씀이다.구약의 제사 제도는 예수님의 사역을 예표하기 위하여 준비된 것이다. 곧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양을 준비하고 양위에 인간의 죄를 전가하여 양은 죽이고 사람은 양의 공로로 살게 된다.


 레16:21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간다.  출29:21 단 위의 피를 취하여 그 아들들의 옷에 뿌리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이 거룩하리라. 

 

 이스라엘이 죄를 범하면 양이나 염소의 머리에 안수함으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광야로” 보내라고 했다. 그러면 그 염소는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가는 것이다. 그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그의 몸에 짊어지고 십자가로 가셨으며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처리해 버리셨다.


 양은 죄를 대신 속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지 율법을 없애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도 율법을 없애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양이 어떻게 법을 폐할 수 있는가? 양은 법을 폐하기 위하여 준비된 제물이 아니다. 다만 법을 범한자의 죄를 담당하기 위하여 준비된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양이 죄를 담당 하므로 말미암아 죄를 범한 사람은 아무런 해도 당하지 않는다.


 그와 같이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범한 우리의죄를 담당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독자는 이 사실을 믿는가? 만약 이 사실을 믿는다면 예수님께서 율법에 대한 요구를 이루셨기 때문에 율법은 그 권세가 상실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율법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채무를 갚아버린 증서는 도말된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율법이 폐지 됐다고 한 것이다

골2:14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십계명)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엡2: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예수님이 오신 것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에 대한 요구를 담당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으며 십자가 위에서 계명을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아” 버린 것이며 십자가에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율법을 폐할 것이라면 이 세상에 오실 이유가 없다 하늘에서 율법을 폐하면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그 대가를 지불하러 오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십자가에서 율법의 댓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율법이 폐지된 것이다. 만약 예수님이 율법을 폐하러 오셨다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질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율법의 채무를 갚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율법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소멸되어 버렸다. 


 구약의 제사는 신약의 예수님을 예표 함.

 출12:27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히11: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애굽의 장자를 죽일 때 이스라엘은 유월절 양을 잡아 피를 바름으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그 집을 구원하셨다.” 바울은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유월절은 죽임당할 사람을 대신하여 양이 죽음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건인데 그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이다.


  고전5:7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스라엘의 장자가 죽어야 하는데 유월절 양의 피 때문에 살아났다. 그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의 유월절 양으로서 우리가 죽어야할 죄의 대가를 지불하시고 우리를 죽는데서 건지신 것이다. 이스라엘 집에서 장자들이 산 것은 율법을 잘 지켜서 산 것이 아니며 선해서 산 것도 아니며 자기들의 노력으로 산 것도 아니다. 그들이 산 것은 오직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산 것이다. 참으로 양의 피에 대한 놀라운 사건은 아무리 율법으로 깨끗한 사람이라도 양의피가 없으면 장자가 죽었고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피있는 집에서는 죽지 않았다. 그것은 무엇을 우리에게 교훈하여 주는가?


 그것은 아무리 율법을 잘 지켜도 예수의 피가 없으면 멸망이요 율법을 아무리 못 지킨 사람도 예수님의 피가 있으면 구원 얻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양의 피가 있는 집에 무슨 법이 그 장자를 죽일 수 있겠는가? 아무도 장자를 건드릴 수 없다. 그와 같이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속하였는데 어떤 율법이 우리를 지옥으로 가게 할 수 있겠는가? 장자를 죽음에서 건진 것은 양의 피요 우리를 죽음에서 건진 것은 예수님의 피다.예수님은 우리의 유월절 양이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5:7)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신 분이시다.

 독자는 대신이란 참된 의미를 아는가?벧전3:18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표준새번역에 는 “의인이 불의한 사람들을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라고 했다. 독자는 “의인이신 예수님이 불의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을 믿는가? 성경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다“고 말씀하셨다. 불의한 자를 대신했다는 말에 유의 하라 불의한 자란 율법을 범한 자를 말하는 것이다. 율법을 잘 지켜 의로운 자에게는 예수님이 필요 없다.


 예수님은 무엇을 대신 하셨는가? 우리의 죄를 대신하셨다. 죄를 몇 %나 대신하셨는가? 죄를 100% 대신하셨다. 독자는 이 사실을 믿는가? 믿는다면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100%인가? 100%라면 우리가 날 때부터 죽을 때 까지가 100%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신 분이시다 독자는 그 사실을 믿는가? 그렇다면 믿는 우리는 죄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요1:29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께서 세상 죄를 몇%나 지고 가셨는가? 100%를 지고 가셨다. 우리의 죄를 대신지신 예수님을 믿으라 그것이 믿음인 것이다. 아직도 자기의 죄를 예수님이 대신 지셨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당신은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이다. 교회를 다니는 것과 예수를 믿는 것은 다르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당신의 죄를 지러 오셨다.


 구약에는 정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이 있는데 예수님이 타고가신 나귀는 부정한 동물이다. 그런데 나귀가 새끼를 낳았을 때 십일조를 하나님께 들여야 하는가? 드리지 말아야 하는가? 십일조를 드리자니 부정한 동물이요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려니 율법에 어긋난다. 이렇게 되었을 때 드리는 것이 정당한가? 안 드리는 것이 정당한가? 이래도 죄로 걸리고 저래도 죄로 걸린다. 이러한 경우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가?


  출13:13 “나귀의 첫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꺽을 것이며”

 성경은 부정한 나귀는 양으로 대신 드리라고 하였으며 만약 양으로 대신 드리지 않을 경우 목을 꺽으라고 하였다. 이 말은 대신 드리지 않을 경우 죽이라는 말이다. 그렇다 나귀는 양이 대신 드려지면 살고 대신 드려지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대속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한 것이다. 우리 인간도 모친이 죄중에 우리를 잉태하였기 때문에 부정한 동물인데 예수님이 대속하셨으므로 살수 있게 된 것이다.

 

 시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나귀가 나면서부터 부정한 동물인 것 과 같이 우리도 나면서부터 죄인이다. 그렇다면 나귀가 무엇으로 씻으면 깨끗하게 할 수 있는가? 나귀는 어떤 것으로도 깨끗하게 할 수가 없다. 다만 나귀는 양으로 대신 하는 길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죄 중에 탄생한 인간은 무엇으로 깨끗하게 할 수 있는가? 십계명이나 안식일을 잘 지키면 되는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의로우신 예수님의피밖에 없는 것이다.


  나귀를 물로 씻겨서 부정한 것을 깨끗하게 할 수는 없다. 그와 같이 우리 인간도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해지는 것 밖에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깨끗해 질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율법을 지켜서 의로워 지려고 하는가? 어찌하여 안식일을 지켜서 거룩해 진다고 백성들을 속이고 있는가?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는 아무리 잘 지켜도 깨끗해 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안식일 교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면 성품이 거룩해 진다고 가르친다. 나귀는 어떻게 살아도 부정한 동물이다. 만약에 나귀가 양으로 대신 드려지지 않을 경우 그 나귀는 죽는 길 밖에 다른 아무런 길도 없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그의 피로 거룩하게 되는 길 밖에 십계명을 지켜서는 거룩해 질수가 없다. 그러나 안식일교회는 안식일을 지키면 거룩해 진다고 한다.


갈3: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전7:20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안식일 교회에서는 계명을 지킬 수 있다고 하며 계명을 지킬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사단의 음성이라고 하는데 성경은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다고 했다 그러면 누구의 말이 맞겠는가? 안식일 교회는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가르치는데 성경은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고 하였다.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 하다고 한다면 율법을 지킬 수 없다고 하는 말이 아닌가? 안식일 교인들은 성경보다 자신들의 선지자 화잇부인의 말이 더 위에 있다고 보는가?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세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율법을 범하면서 자기들은 율법을 잘 지킨다고 공언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하여 살인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안식일 교인들도 마찬 가지이다. 외형적으로는 율법을 잘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율법을 범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킬 수 있다는 안식교인들의 말은 거짓말인 것이다.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율법주의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성경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저들은 다시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했기 때문에 율법은 세상 끝날 까지 있는 것이며 예수님이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므로 안식일도 그대로 지켜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 과연 계명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 것일까?


 물론 예수님이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기 위하여 오셨다 그러면 예수님이 어떻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는가?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서 이루셨다. 예수님은 우리가 지키지 못한 율법의 대가를 십자가에서 대신 함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요구를 이루신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시지 않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오셨다. 그렇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다.

요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율법은 천지가 없어져도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율법의 권능은 율법이 없어지기 전에 그 댓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율법의 대한 댓가를 지불하므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신 것이다. 창조주의 고귀한 피로 율법의 요구가 다 이루어 졌다면 율법은 스스로 그 효력을 잃었으며 값을 지불한 채무 장부와 그 값을 요구하던 계명은 그 효력을 상실하였음으로 스스로 폐하여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버렸다고 했으며(골2:14)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고(엡2:15)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값을 지불하기 전에 있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대가를 지불하므로 율법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킨 후 “다 이루시고” 폐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가 천국 가는데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2:16)제하여 버리셨다고 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계명을 버리고 가르친 사람도 천국에 갈수 있음을 말씀 하셨다. 그러나 계명의 존폐는 구원에 관한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마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 하시기를 “계명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도 ”천국에“ 간다고 했다. 그러므로 안식일 교인들은 십계명에 대한 예수님의 증언을 받아들여라, 안식일을 지킨다고 천국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안식일을 범한다고 지옥 가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뿐이다. 그러나 안식교는 안식일을 안 지키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것은 오류 중에 오류요 이것은 완전한 율법주의인 것이다.


 만약 계명을 지켜야 천국을 간다고 한다면 바리새인보다 더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

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예수님은 분명히 “바리세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그러면 지금 안식일 교인들 중에 바리세인 보다 더 나은 자가 있는가? 어림도 없는 소리다. 그렇지만 안식일교인들은 계명을 지켜야 천국 간다고 주장한다. 거짓 목자들이여 더 이상 교인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 천국은 오직 예수로만 가는 것이다. 예수님 외에는 천하 인간에게 구원 얻을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일이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 외에 율법은 0.01%라도 더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믿음과 오직 예수뿐이다.

 

 그런데 독자들이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본인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약의 십계명이 폐지되고 신약시대의 사람들은 구약의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신약시대의 새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였더니 그 뜻을 잘 알지 못하여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것은 독자의 무지에서 온 것이다. 그대들이 바리새인보다 더 율법을 잘지키고 있는가?


 구약의 십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했으며 신약에서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의 성도들은 구약 십계명에 따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신약의 새 계명에 따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의 십계명에는 부모를 거역하면 반듯이 죽이라 했으나 신약에서는 부모를 거역해도 죽이지 않는다. 구약의 십계명에서는 우상을 섬기면 죽이라 했으나 신약에서는 우상을 섬겨도 죽이지는 않는다. 구약에서는 간음하면 죽이라 했으나 신약에서는 간음을 해도 죽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어느 누구도 구약의 십계명은 지키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안식일교회는 구약의 십계명이 폐하지 않았다고 주장 하므로 구약의 안식일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샘이다. 그러나 저들이 말로는 십계명대로 안식일을 지킨다고 하지만 실상은 아니다 안식교인 중 구약의 요구대로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런데 안식교인들은 구약의 안식일 폐지론에 과민 반응을 한다. 구약의 안식일이 폐지되지 않았으면 안식교는 안식일을 안 지키는 자들을 사형 시켜야 하며 사형시킬 수 없다면 구약의 십계명이 그대로 있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들도 구약의 십계명대로 하지 않으면서 어찌하여 구약의 안식일이 그대로 있다고 하는가?


 구약의 안식일은 폐지되었다. 신약에 와서 다른 계명들은 새 시대에도 지키도록 명하고 있는데 안식일은 지키라고 한 곳이 한 곳도 없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 안식일은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만약 안식일이 신약 시대에도 중요한 것이라면 반드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고 성경에 명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다른 계명들에 대해서는 언급 했으나 안식일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 것은 지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안식교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아주 강력한 율법주의다. 그러나 안식교에 있는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일반 개신교도의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을 받느냐고 질문 할 때 자기들의 양심을 속이고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다. 안식교는 분명히 안식일을 안 지키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가르치는 교파다. 그렇기 때문에 안식교는 율법주의다. 만약 안식교가 이단의 누명을 쓰지 않으려면 안식일은 구원과 상관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공개할 수 없다면 안식일이 구원과 상관이 없다고 하는 말은 모두가 거짓말인 것이며 전도를 위하여 자신들의 진심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안식교는 확실한 율법주의다. 안식교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고 말 하지만 분명히 안식교는 안식일을 안 지키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율법주의다. 만약 안식일교회가 나의 말에 대하여 부정한다면 안식일교회와 공개토론 할 용의가 있다.


 이제 안식일교회가 진정으로 순수한 복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구원하기 원한다면 구시대적 사상을 버리고 안식일계명이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고 구원은 오직 예수로만 얻는다는 성경적 복음을 전해야 하며 구원은 오직 믿음이요 오직 선물임을 모든 교인들에게 제시해 주어야 한다.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구원은 선물이다. 선물이란 어떤 행위도 포함되지 않는다. 어떤 노력도 어떤 열정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착각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착한 행위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구원이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다는 것일 뿐이다. 지금 논하는 문제들은 모두 구원문제에 관한 것이며 육적인 생활에 방종을 조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복음을 강하게 전할 때 사도바울도 역시 율법 폐기론 자로 오해 했다.


 행18: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재판 자리로 데리고 와서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많은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대하여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 율법을 지키지 말고 하나님만 섬기면 된다는 사람으로 오해를 했다. 그러나 바울은 구원에 율법이 필요 없다는 것이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딛3: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구원은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며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자랑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사는 날 동안 구원의 감격에 사로잡혀 주를 위하여 헌신하며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성실함으로 복음을 위하여 힘써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계명이 구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을 지라도 주의 명령에 따라 성실 하게 살아감으로 주께 영광 돌려야 한다.

 

 다음호에 계속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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