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하나님,살아계신 나의 하나님(23)-임마누엘 신앙

하나님아들 2013. 1. 10. 17:07

하나님,살아계신 나의 하나님(23)

= 임마누엘 신앙 =

마태복음1:22-23

마1:22-23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 그 이름의 비밀을 아십니까?

▶ 한평생을 뇌성마비로 살아온 시인 송명희는 예수의 이름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예수,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그 사랑을 말할 수 없어서,

그 풍부함 표현 못해서 비밀이 되었네.

사람들 그 이름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버렸지만

내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아름다운 보석,

내게 있는 귀한 비밀이라. 내 마음에 숨겨진 기쁨 오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의 비밀은, 그 이름의 사랑을."

오늘 이 시간엔 송명희 시인이 귀한 비밀로, 말할 수 없어 했던 에수 그리스도의 이름, 임마누엘의 비밀을 대언 하겠습니다.

본문의 개략 설명 - 비밀의 출처 사7:14

 

1. 임마누엘의 은혜를 감격하라.

임마누엘의 은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주신다는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 오래 전에 한 군인이 탈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군대 생활이 너무 힘드니까 탈영을 했다가 체포되었습니다. 그래서 20년형을 받았습니다. 20년형을 받아서 감옥에 들어갔는데 외아들이라 그 어머니가 살림을 다 팔고 교도소 가까운 쪽으로 집을 얻어서 아들 가까이 이사를 갔습니다. 가서 항상 창을 열고 그 아들 쪽을 보고 있습니다. 아들이 냉방에서 자기 때문에 그 어머니도 냉방에서 지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이라고 면회도 거절하고, 옛날 애인도 도망 가버리고, 형제들도 다 외면하고 거들떠보지 않는데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서 20 년 동안 옥바라지를 했습니다.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옷을 가져다주고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옷을 가져다주고 또 어머니가 즐겨 읽던 성경도 넣어주었습니다.

20년의 세월이 흘러서 아들이 석방될 때 그 아들은 중년 남자가 되었고 어머니는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20년의 세월이 흘러 성탄절 날 석방되어 나왔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다’는 것을 그 아들이 고백하면서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이런 시를 써서 헌시를 합니다.

내 감옥에 있을 때

어머니 나를 떠나지 않고 찾아오셨으며

내가 감옥에 누워서 외로이 있을 때

어머니 마음 내 곁에 와 있었으며

내가 추위에 떨 때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나를 덮으셨고

내가 외로워 눈물 흘릴 때

어머니의 손길 내 눈물 닦아주셨네.

내가 외로이 방안에 누워있을 때

어머니 마음은 나를 둘러 감싸주셔서

이 외로움을 너머 극복했네.

그가 이 시를 헌시하면서 무릎을 꿇고 큰절을 했습니다. 어머님이 자기를 버리지 아니하고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어머니도 떠납니다. 같이 계시고 싶어도 같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부부도 떠나고, 친구도 떠납니다. 그런데 끝까지 나를 떠나지 않고 여기에서부터 영원히 함께 하실 분은 우리 주님밖에 없습니다.

 

▶ 존 올트버그는 그의 저서 “이성을 넘어선 사랑”(Love beyond Reason)에서 기독교 철학자 키엘케골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영광의 하나님이 유한하고 평범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의 진리를 어느 농촌 소녀와의 사랑에 빠진 왕의 이야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천한 소녀를 사랑한 왕이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왕가의 혈통도 없었고 공식적인 교육을 받은 일도 없고 그녀는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치고 농촌의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소녀와 설명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진 왕은 이 사랑의 마음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왕으로서는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문제였습니다.

왕의 자문관들은 정 그렇다면 명령을 내려 그녀를 왕비로 삼으시라고 건의하였습니다. 막강한 힘을 가진 왕으로서 그렇게 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문제는 강요된 순종으로 얻은 사랑이 진정한 사랑인지를 왕은 확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어떤 참모는 그러면 그 소녀의 지위를 먼저 격상시켜 벼슬을 내리고 선물을 하사하시어 공주들이 입는 옷과 보석으로 치장한 다음 그녀를 궁중으로 데려 오라고 건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녀가 정말 마음으로 왕을 사랑하는 것인지 그녀가 얻은 지위와 보석 때문에 왕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가 왕의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마침내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됩니다. 왕은 잠시 왕으로서의 모든 특권을 포기하고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농부가 되어 그가 사랑하는 소녀가 살고 있는 곳으로 가서 농부로 살며 그녀가 입고 있는 동일한 누더기를 입고 동일한 음식을 먹고 동일한 오두막집에서 살아가며 그녀의 사랑을 얻기로 한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은혜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 사랑을 깨닫고 감격하는 것이, 임마누엘 신앙입니다.

 

▶ 로이 레신(Roy Lessin)이라는 분이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글을 남긴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로이 레신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지식이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육가를 보내셨을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건강이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사를 보내셨을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업가를 보내셨을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즐거움이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연예인을 보내셨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죄 사함이었다.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세주를 보내주신 것이다.”

임마누엘의 은혜는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은혜를 감격하는 은혜가 이 시간에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유명한 책을 썼던 성자 토마스 아켐패스가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토마스 아켐패스야, 네가 너무도 나를 사랑하고 내 뜻을 받들어 살려고 하니 내가 너의 소원을 들어주기 원하노라 네 소원을 말하라” “주님, 주님이 함께 해주시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아니다. 내가 네 소원을 들어주고 싶으니 말하라” “주님 함께 계시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더 소원이 없습니다.” “아니다. 말하라” 세 번이나 물어봐도 여전히 토마스 아켐패스는 “더 이상 소원이 없사옵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 함께 하심에 만족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네 번째 음성이 들려옵니다. “토마스 아켐패스야, 너는 세상에 아무도 부러울 것이 없는 가장 좋은 것을 가졌느니라”

임마누엘의 은혜가 제일 좋은 은혜입니다. 오늘 성탄에 이 임마누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임마누엘의 신앙을 가지라

▶ 임마누엘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 주는 ‘임마누엘’이라는 시입니다.

네가 약한 것, 네가 부족한 것,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전능자인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뜻은 질그릇을 은그릇이나 금 그릇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질그릇 속에 내가 거함으로 능력의 지극히 큰 것이 네게 있지 않고

내게 있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너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나를 믿고 내가 너와 함께 있음을 기뻐하며 바라보아라.

그리하면 나의 가장 선한 것으로 네게 채워줄 것이다.

 

나는 너와 진실한 사랑을 나누고 교제하길 원한다.

너와의 단절된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었다.

 

그러나 너는 네 자신이 은그릇이 되게 해달라고 또한 금 그릇으로 만들어 달라고

그것이 나의 뜻 인양 끊임없이 떼를 쓰는구나.

 

너를 은그릇과 금 그릇으로 만들어주면, 네 자신의 능으로 된 것으로 여기고

너는 나의 영광을 취하여 네 자신의 영광으로 바꿀 것이다.

먼저 질그릇과도 같이 연약한 네 안에, 내가 함께 있다는 그 자체로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라

감사하고 또 감사하라, 늘 조잘거리며 나와 대화를 나누자꾸나.

 

네 스스로 열매 맺기 위해 애쓰지 말고 나를 바라보고 내 곁에 머물러다오

그러면 나의 진액이 네게로 흘러들어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들이 맺혀질 것이야.

가지가 스스로 열매 맺지 못하듯 열매는 나를 통해서 절로 맺혀지는 것이란다.

 

이 성탄절은 임마누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 땅에 오신 주님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을 우리는 내 곁에 모시고 삽니다.

가난, 슬픔, 배반, 실직을 당해 실의에 빠져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함께 해 주십니다.

예수, 그 분이 임마누엘이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명퇴 당해서 직장도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증에 빠져있는 내게 임마누엘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고 싶으십니까? 여러분, 그 분 앞에 서십시오.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 분은 내 임마누엘로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만드시는 역전의 명수이십니다. 내가 당했던 손해와 내가 당했던 슬픔과 내가 당했던 멸시와 내가 당했던 좌절까지도 사용해서 그것 없이는 도무지 안 될 것 같은 성공의 길로 인도하기를 기뻐하시는 나의 임마누엘이십니다.

"할 수만 있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 내가 너의 임마누엘이라."(막9:23)고 말합니다. 그 분은 마태복음의 마지막을 닫으면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말씀했습니다.

그 분은 바로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분을 붙잡고 다시 일어납시다. 그 분 때문에 도무지 사람들이 웃을 수 없을 때 웃습니다. 왜냐면 내 속에 비밀이 있기 때문입니다. 설명은 안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화급할 때에 세상이 감당 못할 평화를 누립니다. 설명으로 안됩니다. 심리학자가 다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문자 그대로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그런 일 할 수 없는 인생들이 주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상상할 수 없는 사역을 펼칩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임마누엘, 그 비밀 때문입니다. 예수의 비밀이 모든 성도들에게 임마누엘로 역사하는 복된 성탄절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목회를 하면서 목회자로서 내가 붙들어야할 복음적인 핵심 가치가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항상 잊어버리지 않도록 핵심을 가장 단순하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가를 찾는 고민이었습니다.

어느 날부터 성경을 읽을 때 특별히 눈에 띄기 시작한 구절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서 모두 우리들과 함께 하기를 원하신다고, 자주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간절한 바람이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 대한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연인 같았습니다.

구약성서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인데, 그 어원을 분석해 보면 그가 거기에 계신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신약성서에서 하나님은 임마누엘로 계시되는데,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당신의 이름을 우리와의 관계성 속에서 계시하셨습니다.

 

▶ 이삭에게 함께 하시겠다 말씀하신 하나님

[창26: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창26:28]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 야곱에게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신 하나님.

[창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31:5]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창31:42]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공수로 돌려 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 요셉에게 함께 하신 하나님.

[창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창39:3]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창39: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창39:23]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 모세에게 함께 하리라 하신 하나님.

[출3: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 가나안 땅 탐지한 두 탐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에 신앙 강조.

[민14: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 하심.

[신31:23]여호와께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수1:5]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수1: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 예수님의 약속

[요14:23]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이 성탄에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확신하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3. 임마누엘의 삶을 살라.

▶ 사도 요한은 계시록에서 주님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은 우리와 함께 사시기 위해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누구든지 문을 열고 주님을 모셔 들이면 죄를 용서받고,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됩니다. 우리가 주 안에 거하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됩니다.

▶ 사도 요한은 이렇게 그 사실을 다시 정리합니다.

요일4:15『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초청장입니다. 하나님께 와서 같이 살자는 초청장입니다.

성령이 임하심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오셔서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 야고보는 이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약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마귀는 하나님을 잘 알지만, 하나님과 함께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두려운 분으로 알지만, 그 앞에 엎드려 순종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마귀는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두려워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살지 않는 믿음은 마귀가 가진 것과 같은 종류의 믿음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 아니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되 그 앞에 부복하여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교회인데, 성령을 따르지 않는 현상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혹시 우리가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 에녹, 노아,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 엘리야와 같은 구약의 위인들은 모두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 예수님의 제자들, 교회사의 영적 거장들 모두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과 함께 살았던 인물들입니다.

사명을 따라서 무엇인가를 하기 이전에 먼저 가장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과 헌신은 그 다음의 일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일은 모든 것이 헛수고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고자하는 몸부림이 있다면, 그 다음 사역들은 자연스럽게 주님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죄악이 관영하는 이 세상 속에서 세상을 이기고,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수 있는 길은 임마누엘의 삶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으로 여기에 임하여 계십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사역과 삶 속에도 임하여 계십니다. 키에르케고르의 말처럼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의식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임마누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어둠이 뒤덮일 때 임마누엘 신앙을 가진 이들을 세우셔서 역사를 바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임마누엘 신앙으로 우리의 사역과 삶이 새롭게 되고,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되기를 바랍니다.

▶ 요셉처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삽시다.

보디발 아내의 내실에서의 유혹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이 그로 하여금 성공하게 만든 것을 거울 삼아야 합니다.

▶ 오늘 본문 임마누엘을 예언한 이사야의 배경 :

이사야는 우유부단한 왕 아하스에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 위에 굳게 서기 위하여 하나님께 '징조'를 보여 달라고 간청하도록 제의합니다(사7:11). 그러나 아하스는 "저는 징조를 구하지도 않고, 주님을 시험하지도 않겠습니다"(사7:12)라고 이사야의 제의를 완곡하게 거절합니다. 겉으로 보아서 아하스의 말은 옳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경건을 가장한 불신앙입니다. 아하스는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지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의 뜻대로 행하면서도 경건을 가장하여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하스는 이미 성전과 궁중에 있는 금은보화를 모두 아시리아 왕에게 바치고 구원을 요청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열왕기하 16: 7에 따르면 그는 앗시리아의 왕 티글랏빌레셀 3세에게 전령을 보내어 다음과 같이 요청합니다, "나는 임금님의 신하이며 아들입니다. 올라오셔서, 나를 공격하고 있는 시리아 왕과 이스라엘 왕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이처럼 강대국에 대한 치욕적인 굴종을 통하여 동맹군의 위협을 극복하려 한 것입니다.

그는 또한 급박한 역사적 위기에 직면하여 초조와 불안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불에 태워 희생제물로 바친 적도 있으며(왕하 16:3), 시리아의 제단 모형을 본떠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는 등 이방 풍속을 받아들이기도 한 불신앙의 인물이었습니다.

이사야는 아하스의 속셈을 알아채고 분노하여 외칩니다.

이제 왕이 원하든 않든 하나님은 친히 한 징조를 보여주십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히브리어는 '알마', 희랍어로 번역된 70인역에는 '처녀')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라고 할 것입니다."(사7:14)

아하스처럼 하나님을 멀리하고 강대국 앗시리아를 믿는 불신앙적인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느낄만큼 하나님과 일체감을 지니고 있는 신앙의 인물을 의미한 것입니다.

이사야는 '임마누엘'의 표징을 통하여 아하스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항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곤경에 처한 유다 백성과 '함께 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표징으로 태어나는 아기 예수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 앞에서, 바로 그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시대와 이 한반도가 불안하여도 임마누엘 신앙으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출처 : 목회자의 요람 한서노회
글쓴이 : 다비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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