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하나님, 살아계신 나의 하나님(20)-엘 로이를 믿으라.

하나님아들 2013. 1. 10. 17:05

하나님, 살아계신 나의 하나님(20)

= 엘 로이를 믿으라 =

창16:11-14

▶ 동네 입구에 불법 쓰레기가 상습적으로 버려지는 곳에 어느 날 cc-tv가 설치되었고, 그 아래 빨간 글씨로 <cc-tv 작동중>이라는 경고문구가 붙었습니다.

사람들은 <cc-tv 작동중>이라는 경고 문구를 보고 가짜 cc-tv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여전히 불법 쓰레기 투기는 계속 되었습니다.

어느 날 동네 입구가 잘 보이는 전봇대 위에 새로운 cc-tv가 설치되었습니다. 어디에도 <cc-tv 작동중>이라는 글씨는 없었습니다. 그 cc-tv 는 자신의 존재를 일부러 광고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진짜이기 때문에 진짜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력이 있습니다. 그날부터 쓰레기가 싹 사라졌다고 합니다.

전 우주를 살필 수 있는 곳에 cc-tv 보다 더 좋은 성능으로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의 눈도 진짜임을 이 시간에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어느 곳 누구이건 살피시는 하나님을 발견한 한 불우한 여인 하갈의 신앙 고백을 봅니다.

창16:13-14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이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 ‘엘 로이’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은 '나의 눈으로 확인한 하나님' 또는 '나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히브리어 원어 성경에는 “엘 로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엘”은 하나님이라는 뜻이고, “로이”는 “본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동사 “라아”와 목적어 “나를”이 합해진 말입니다. 그리고 문법적으로는 분사형입니다. 그러니까 직역을 해 보면 “나를 계속 살펴보시는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하는 자를 친히 시야에 두시고 살펴보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절망과 고통 중에 처한 하갈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도우심 및 약속을 받고, 그분을 뵈온 감격에서 참회의 마음으로 부른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 ‘브엘라해로이’ 란 하갈이 자신에게 나타난 하나님을 기념하여 붙인 샘의 이름으로 '살아 계셔서 나를 지켜보신 자의 우물' ‘나를 감찰하시는 생존자의 우물’이란 뜻입니다.

하갈의 생각에는‘사래의 하나님 일뿐 나의 하나님은 아닐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버려진 존재요, 소망 없는 존재요, 아무리 노력해도 출신이 나빠서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래의 하나님이었을 뿐만 아니라 하갈의 하나님도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서자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적자나 서자나 똑같이 축복해 주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만난 하갈은 얼마나 감동하고 은혜가 충만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엔 이 ‘엘 로이’ 신앙에 대하여 대언하겠습니다.

 

1.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라(13절)

창16: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 성경의 감찰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증거 :

시11: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글들을 감찰하시도다.

시33:13-15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14 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하시도다 15 저는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

시편139:1-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나이다......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 한 때 많이 불렀던 복음성가 중에 '네 귀가 듣는 것을 조심해, 네 눈이 보는 것을 조심해. 위에 계신 주께서 사랑스레 보시네, 네 눈이 보는 것을 조심해' 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숨겨지고 가리어질 죄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나의 모든 언행 심사를 감찰하신다는 의식이야말로, 죄악을 범치 못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억제책이 되는 것입니다.

▶ 한 운전기사가 정비소에 와서 차를 수리한 다음 영수증을 가지고 와서 말했습니다.

“사장님, 여기에 부품을 몇 개 더 교환했다고 써 주세요.” - “안 됩니다. 그렇게 못합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내가 우리 회사에 가서 돈을 더 받아 가지고 사장님께도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 “우리는 그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러면 나도 좋고 사장님도 좋은데 왜 안 해요?” - “우리는 그런 것 하지 않습니다.”

“다른 정비소는 다 그렇게 해주는데 왜 이 정비소만 안 해줘요?”

“다른 데서는 다 그렇게 해주어도 우리는 안 합니다. 그런 곳으로 가 보세요.”

그러자 운전기사가 “고맙습니다. 사실 나는 운수 회사 사장인데 믿을 만한 정비소를 찾기 위해 일부러 해 본 말입니다. 이제야 내가 원하던 정비소를 찾았습니다. 우리 회사의 모든 차를 여기로 보낼 테니 잘 정비해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 사람들 보기에는 바보 같고 우직해 보여도 그것이 잘 되는 길입니다. 후회 없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우리의 언행 심사와 죄악을 다 감찰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눈을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하나님의 감찰을 의식했음의 교훈 :

하나님 앞에는 감추일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비밀한 일이나 감추인 은밀한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은밀히 감출 수 있는 것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렘23:4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지금 하나님 앞에 서 있다고 하는 사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하나님 앞에서 행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님 앞에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우리 마음과 생각에 대한 것까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기 때문입니다(히4:2).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살전2:4).

다윗은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처럼 말했습니다.

대상28:9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히4:13 하나님 앞에는 모든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가려질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시며 알고 계십니다. 성경은 종종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시선이 우리의 폐부 깊은 곳까지도 꿰뚫어 보고 계심을 말해 줍니다.

렘17:9 예레미야 선지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속담에도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마음속은 모른다고 했으니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부패한 인간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마음도 숨겨질 수 없습니다.

다윗이 회개하며 부르짖었듯이 오늘을 사는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라는 고백하며 마음을 늘 정결케 품어야 합니다.

▶ 우리의 행동까지도 감찰하시는 하나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까지도 다 보며 세고 계십니다. 성도는 아는 것과 믿는 것과 행하는 것이 일치해야 됩니다.

시139:1-4 에 보면 다윗의 고백이 나옵니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라고 하여 그의 모든 행위가 다 하나님의 감찰 대상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도 설마 여기 내가 있는 것을 알지는 못할 거야, 혹은 설마 이 일 정도는 눈감아 주시겠지' 하는 어리석은 기대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행위를 감찰하시고 하늘의 행위 록에 다 기록해 놓으십니다. 그리고 종래는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십니다. 하나님은 피할 자는 아무도 없으며 하나님에게서 숨을 자도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행위 모두를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신령과 진정이 깃들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매일의 삶이 하나님의 면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서 추호도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시켜 드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2. 고통을 살펴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라(11절)

창16:11-14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12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하니라 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14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이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보시고서 적절한 때에 긍휼과 자비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갈은 여주인 사래를 멸시한 죄로 쫓겨나 광야로 도망합니다. 이때 여호와께서는 그를 돌아보시고 그 고통을 들어주시고 아들 이스마엘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비록 선민이 아닌 하갈까지도 감찰하셔서 그를 도우셨습니다.

하갈은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늘 의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는 우리를 돕기 위해서 우리를 감찰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고통을 자초하였을지라도, 우리의 고통을 감찰하시고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 보호하시기 위해 감찰하심 :

하나님께서 우리를 따라 다니시며 보시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지켜주시기 위함입니다.

마10:29-31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사43:1-3『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많은 성도들이 자기가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이 돌보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불평 합니다.

▶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라는 분이 고고학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기자들이 고고학자와 결혼한 소감을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성에게는 고고학자가 최고의 남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여자가 늙으면 늙을수록 더 관심과 흥미를 갖게 될 것이니까요“

사실 여인들은 나이 들어 늙어가도 계속 남편이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랍니다. 여인들 뿐이겠습니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를 알아주고 자기에게 관심을 기울여주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세밀한 관심을 보이시는 분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끝까지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이시고 살펴보시는 분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렇게 세심하게 살피고 계십니다.

세상에 그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보여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살피십니다. 오늘도 사랑어린 눈으로 여러분을 살피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어려움이나 억울함이나 주님을 위해 행하는 모든 수고에 있어서 어느 것 하나 결코 허술히 넘기시거나 잊으심이 없습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25:4-5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충돌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자의 보장이시며 환난 당한 빈핍한 자의 보장이시며 폭풍 중에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 마른 땅에 폭양을 제함 같이 주께서 외인의 훤화를 그치게 하시며 폭양을 구름으로 가리움같이 포학한 자의 노래를 낮추시리이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이 하나님의 살펴 주심, 보호해 주심을 믿고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3. 앞날을 살펴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라(10-12절)

창16:10-12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 곁 곧 술 길 샘물 곁에서 그를 만나 8 가로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가로되 나는 나의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9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12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하니라

우리 인생의 목표와 그 성공 실패 여부를 감찰하시고, 마음의 숨은 동기를 모두 감찰하십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우리의 선악만 감찰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하나님은 나의 모든 형편을 나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내모든 형편 잘 아시는 주님께서 늘 돌보아 주실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늘 걱정스러운 앞 날도 살펴 주시는 하나님임을 잊지 마십시오.

▶ 예수님의 교훈 :

마6:25-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이 400년 4대 만에 귀환 언약(창15:13-21)

창15:13-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 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 요셉을 애급으로 팔리게 하신 하나님의 세밀한 앞날의 계획하심(창45:8)

창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가난한 광원의 아들로 태어난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거리에서 구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가난 너머에 찬란한 미래」가 있다는 것을 믿고 언제나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모습을 인상 깊게 본 한 중년 남자가 소년을 불러 대화하다가 『오늘부터 우리 집에서 기거하며 공부하도록 해라. 나도 얼마 전 아들을 잃어 외롭단다』라고 말했습니다.

소년은 이후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며 성장하여, 세계사에 남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입니다.

여러분 앞날도 하나님은 살펴주십니다. 가난너머, 고난 너머의 찬란한 미래를 믿으십시오.

 

▶ 아놀드 토인비(1889-1975)는 문명의 발상과 발달을 결정하는 법칙을 연구한 역사철학자였습니다. 그는 특히 합리주의를 배제하고 신비주의와 종교적 이상주의 관점으로 역사를 조명했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언제나 강조했습니다. 81세 생일을 맞아 그는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사람이 늙으면서 과거에 붙들려 있으면 불행하다. 또 미래에 대해 눈을 뜨지 않으려는 약한 마음도 생긴다. 과거의 사람은 몸이 죽기 전 이미 죽은 사람이다. 희망을 갖고 미래를 보는 용기가 사람을 젊게 만든다."

여러분 하나님이 나의 앞날도 살펴 주신다는 희망을 갖고 미래를 보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 1868년에서 1894년까지 영국의 수상을 지낸 W.E.글래드스톤이 어느 날 한 대학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당시 영국은 경제악화 사회혼란 등으로 미래가 불투명했습니다. 그러나 글래드스톤은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며 희망을 역설했습니다. 강연 후 한 학생이 「그러면 원로께서는 미래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씀입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글래드스톤은 천천히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은 사람들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사라져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엘 로이 하나님이 여러분께 있습니까?

하나님이 살펴 주신다는 이 확신이 여러분의 신앙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출처 : 목회자의 요람 한서노회
글쓴이 : 다비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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