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살아계신 나의 하나님(18)
여호와 삼마를 믿으라
에스겔 48:30-35
▶ 시인 도종환은 ‘당신은 거기 계십니다’란 시에서 ‘거기 계시는 여호와-삼마 하나님’이란 본문 성경의 내용을 시로 표현한 것을 봅니다.
“당신은 거기 계십니다. 장미의 문을 지나 당신은 거기 계십니다.
오월 꽃들의 단내와 함께 당신은 그곳에 계십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꽃이 가심덤불 속에서 피어나듯
고통과 형극의 길 위에서 당신은 아름답게 계십니다.
우리가 처음 당신을 만난 것은 절망의 골짜기를 헤매일 때였습니다.
어둠 건너편에서 당신은 환하게 계시었습니다.
-중략-
당신의 집에 모여 올리는 우리의 간절한 목소리들이 우렁차게 광야를 향해 떠날 때
그곳에도 항상 당신은 함께 계실 것입니다.
가시덤불 속에서 오월 장미가 피면 장미의 단내를 딛고
당신은 항상 우리에게 오실 것입니다. 우리와 늘 함께 가실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시인처럼 ‘항상 거기 계셔서’ 우리를 도우시며 위로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감사하며 평안한 성도의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는 1791년 3월 2일 오전 10시에 88년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열흘 전에 마지막 설교를 하고 기력이 쇠해져서 병석에 누웠습니다. 병석에서 무엇을 쓰려고 했는데 펜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비서인 릿치 양이 "선생님 무슨 말을 쓰시려 합니까? 제가 쓰지요" 했습니다. 웨슬리 선생은 "별로 쓸 것도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 밖에"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기도하고 찬송해 달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기도할 때 웨슬리는 "아멘"을 크게 했습니다.
임종이 가까운 것을 보고 사람들이 웨슬리 선생이 누운 방으로 들어 왔습니다. 웨슬리 선생은 사람들을 보고 두 손을 들고 "제일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비문에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고 쓰여 있다고 합니다.
인간에게 있어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처럼 좋은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 노아 홍수의 심판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으로, 노아와 그 식구들과 함께해 주셨습니다. 방주를 짓고 방주 안에서 홍수 심판의 기간을 보낼 때도 ‘그 곳에’ 하나님은 늘 함께해 주셨던 것입니다.
▶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 불 속에서 체험한 것도 ‘여호와 삼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평일보다 7배나 뜨거운 불로 인해 그들을 집어넣은 병사들이 타 죽을 정도로 뜨거운 풀무 불 속에서도 그들이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보호받을 수 있었던 것은 풀무 불 속에서까지 그들과 함께해 주셨던 ‘여호와 삼마’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단 3:24-27).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든지 하나님이 함께하는 것처럼 좋은 것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에스겔이 포로생활을 하는 중에 예루살렘이 회복된 모습을 환상을 통해 본 것입니다.
이때 에스겔은 바벨론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바벨론에 끌려 온지 25년이 지났고 예루살렘성전이 무너지고 불타 없어진지는 14년이 흘렀습니다. 유대와 성전의 회복은 이제 완전히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성전환상의 계시를 통해 그 성전의 모습과 구조 그 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성읍의 이름이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라는 뜻을 가진 여호와 삼마라는 이름을 갖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으로 예언을 끝냅니다.
오늘 본문은 에스겔에게 ‘여호와 삼마 하나님’이심을 믿을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 삼마 신앙이란 어떻게 믿는 것을 말하는가? 그 답을 대언 하겠습니다.
1. 여호와 삼마(새 예루살렘)의 도래를 믿으라
분문은 절망적인 에스겔에게 여호와 삼마가 도래할 것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여호와삼마는 신약에 와서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으로 바뀐 것을 봅니다.
절망적인 밧모섬의 요한에게 새 예루살렘의 도래를 계시하여 신약 백성들에게 이 신앙을 가질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계21:9-11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새 예루살렘 성 즉 하나님의 장막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함으로서 완성 됩니다.
이기는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합니다.
새롭게 된 새 하늘과 새 땅 위에 하나님의 장막인 새 예루살렘 성이 내려와 하나가 됩니다(계21:2-3)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계21:7) 했으니 믿음을 지키는데 이기십시오.
▶ 새 예루살렘 성은 여러 가지 이름들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하나의 장소입니다
거룩한 성(계21:2,10), 하나님의 장막(계21:3), 하나님의 성(계3:12), 시온산과 하나님의 도성(히12:22), 영구한 도성 = 장차 올 도성(히13:14), 내 아버지의 집(요14:2), 낙원(고후12:4, 계2:7), 셋째 하늘(고후12:4), 하늘에 있는 성(히11:16),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고후5:1-2), 흔들리지 않는 나라(히12:28), 더 나은 본향(히11:16)... 등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모두 같은 의미의 또 다른 표현들입니다.
성경 이렇게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을 통해 신천신지를 계시하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의 온전한 이해는 우리가 장차 누릴 영광의 하이라이트이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에스겔의 ‘여호와 삼마’ 예언은 단순히 역사 속에 있을 이스라엘의 회복만을 말하는 묵시적 차원에서 환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뛰어 넘어 종말에 있게 될 그리스도의 강림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새 예루살렘성과 새 하늘과 새 땅이 반드시 이 땅에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벧후3:1-5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2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4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벧후3:10-13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 1928년 헝가리에서 태어난 종군 작가인 엘리위젤이 쓴 [밤]이란 책 중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나치 정권 아래에서 대량 학살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 일에 주동역할을 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유대인인 아히만이었습니다. 그를 통하여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했습니다. 어느 날 큰 거리에 아치를 세우고 남녀 각각 한 사람씩과 한 어린 소년의 목을 아치에 매달아두고 많은 사람들을 그 밑으로 지나가게 하며 위협했습니다. 이때 종군 기자이며 작가인 엘리위젤이 한 독일군을 향하여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고 묻자, 능청스런 독일 군인은 “지금 막 죽어가는 저 소년과 함께 죽어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종전 후 아히만은 자기의 범죄 상이 너무 두려워서 어디론가 잠적해버렸습니다. 유대 비밀경찰은 총력을 기울여 아히만을 찾으려고 노력한 끝에, 여러 해 만에 아르헨티나 어떤 시골 공장에서 수염을 기르고 머리 모양을 바꾸고 이름까지 고쳐 살던 아히만을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방탄유리 상자에 넣어져서 최고 재판소의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엘리위젤은 그의 책을 통하여 다시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고 두 번째 질문을 던지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아히만을 심판하고 계신다.”
▶ 어떤 아이가 사과를 먹으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 "얘야, 어디서 그 사과를 얻었니"하고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과일 가게에서요" - "아저씨가 주시던?" - "아니, 안 주셨어요, 아무도 보지 않기 때문에 갖고 왔어요." - "뭐?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하늘에서 하나님이 보고 계셔." 라고 어머니가 말하니까 애는, "괜찮아요, 가게에는 지붕이 있으니까 하나님도 못보셨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혹시라도 이런 사람은 없으십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심판하시고 계시며, 마지막 날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여호와 삼마로 같이 하시는 것을 반드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66:22-2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23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삭과 매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 24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여러분, 여호와 삼마, 신천신지의 도래를 믿고 어려운 세상 이겨나가시기를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이 성전에 계심을 믿으라
에스겔은 1-24장에서 아직 유다가 완전히 멸망하기 전 예루살렘이 훼파되고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였는데, 40-48장에서는 성전이 재건되고 새 예루살렘이 건설될 것을 이상 중에 보고 예언합니다. 이 성전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과 영원히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에스겔서에는 에스겔이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실망을 많이 한 일이 여러 군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8장에는 환상 중에 예루살렘의 우상숭배를 보는 일이 자세하게 나옵니다. 질투의 우상이 있는 것을 보았고 교회의 지도자들이 우상숭배하는 것을 보았고 여인들이 앉아서 우상 가운데 하나인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는 것을 봅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는 것을 봅니다.
10장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는 것을 보는 일이 기록되어 있고 16장에는 예루살렘이 방자하고 음탕한 여인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실망이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서는 "예루살렘에는 더 이상의 소망이 없더라" 하는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예루살렘 성전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환상을 보여주고 갈라졌던 유다와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는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동쪽으로 향한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점점 많아져서 강이 되었는데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삼마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하심, 하나님의 영광의 상징입니다.
겔 43장 2절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 그 모양이 내가 본 이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이상 같고 그발 하숫가에서 보던 이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으로 말미암아 전으로 들어가고 성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
유다의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함으로 성전을 떠나셨던 여호와의 영광이 에스겔이 이상 중에 보는 성전으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43장 7절에서 에스겔에게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영원히 거할 곳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삼마’는 유다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나신 것과 같이 아니하시고, 항상 그 성전에 거하시며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모습을 보이시고 도움을 간구하는 자들에게 복의 근원으로 임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성막과 솔로몬 성전에 임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려고 할 때 광야의 성막과 솔로몬 성전에 가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시11:4]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합2:20]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 하나님이 성전에 계심을 믿으면 다윗처럼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시84:1-12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셀라)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에게도 이 여호와 삼마 신앙이 충만해 지기를 축복합니다.
성전은 여호와삼마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 계신 곳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야 성전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해답을 주고 위로를 주고 새 힘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때때로 교회에 대해 실망하고 환멸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삼마라는 이름을 생각하며 교회에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해 힘쓰는 가운데 그 실망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환멸이 변해서 환상이 됩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이리저리 찢기고 훼파되고 있으나, 하나님은 반드시 교회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회복하시어 교회에 함께 하실 것을 희망을 갖게 됩니다.
▶ 미아리에 성문순복음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 옆에 불신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언제나 예배를 드릴 때는 찬송가와 기도 소리에 가축들이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하면서 전축을 크게 틀어 놓았고 때로는 가축의 더러운 오물을 일부러 교회의 창 밑에다 집어 던져서 더운 여름철에 악취가 나서 창문을 열어 놓기를 못하였습니다. 새벽 기도를 드릴 때면 심심찮게 돌멩이를 던져 유리창을 깨기도 하였습니다.
싸울 수도 없어서 모든 교우들과 합심하여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며칠이 지난 후에 큰 돼지가 새끼를 낳다가 죽더니 이어 수백 마리의 닭이 병들어 죽었습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고 교회 때문에 이 가축들이 죽었다고 주인은 손해배상을 해 달라고 악담을 하다가 며칠 후에 병들어 죽었다고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성전에, 교회에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여호와삼마,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새로운 소망과 환상을 갖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이 성전인 나와 함께 하심을 믿으라.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계십니다.
▶ 어느 어린이가 하나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오는 금요일 우리 식구는 두 주간 휴가를 떠납니다, 우리가 돌아 올 때까지 교회에 계시기 바랍니다. 참, 하나님은 언제 휴가 가세요?>
여러분 하나님은 교회에만 계시는게 아닙니다. 내가 휴가를 가도 거기에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경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고후6:16]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 다윗의 신앙 :
시편 139편 7-10절에서 다윗은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니이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많은 경우에 ‘여호와 삼마의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그의 성전인 우리의 몸’(고전 6:19)을 떠난 까닭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마음 속에 영으로 거하고 계신 ‘여호와 삼마의 주님’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은 항상 거기 가까이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로 부르짖고 간구드릴 때,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은 항상 우리 가까이에 계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그의 길로 인도하시며, 우리에게 그의 영광을 소망 중에 바라볼 수 있게 하십니다.
성경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지키신다는 "여호와 삼마의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성전삼고 계십니다.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항상 거기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됩니다.
▶ 야곱이 형을 피하여 가는 벧엘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체험한 예 : 창28:10-22
▶ 여호와 삼마의 믿음이 있을 때 여호수아는 가나안땅을 정복할 수가 있으며,
▶ 소년 다윗은 골리앗과 싸워 승리할 수가 있었고,
▶ 사도 바울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으로 로마를 정복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여호와 삼마의 믿음"을 가질 때에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하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또한 이 믿음으로 우리들이 독수리의 날 개치고 올라감 같을 것이며 달음박질해도 곤비치 않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하고 수많이 죄 없는 자유인들이 독일의 수용소(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가던 그 현장 속에서 유대인들이 눈물을 뿌리면서 외친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이 왜 이런 사건을 허용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연합군이 이 수용소를 탈환하고 이 수용소의 벽을 감시하다가 한쪽 벽에 쓰여진 찬송가의 가사를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이 그의 신앙의 고백으로 기록해 놓았던 구절이었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하나님의 사랑? 이 저주와 이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하나님의 사랑이라니 웬 말입니까? 그러나 또 다른 곳에서는 이런 글자가 선명하게 쓰여져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God is here)."
여호와 삼마의 주님께서 영으로 우리 안에 계신 것은 우리의 슬픔과 고통과 약함과 유혹을 담당하시고 위로하시고 도우시고 격려하시기 위함입니다.
성도의 평안과 건강이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우리 몸이 질병으로 고통받고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으로 환난 당함도 또한 은혜인 것은 환난과 고통 가운데 우리가 ‘여호와 삼마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고자 함이 있기 때문이며, 그 때에 ‘여호와 삼마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위로하시기 때문입니다.
▶ 시편기자는 시편 121편 1절 이하에서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고 찬양합니다.
이 말은 새 예루살렘의 이름일 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이름이 되어야합니다. 그리스도인, 크리스천처럼 쓰여야 하는 이름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안에는,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셔야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여호와삼마라는 이름을 꼭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을 알면 함부로 행동하지 못합니다.
아기를 가진 분들은 여러 가지를 조심합니다.
하물며 내 안에, 거기에 하나님이 계신데, 나의 또 다른 이름이 여호와삼마인데 내가 어떻게 함부로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술이나 담배 같이 정결하지 않은 것들을 어떻게 내 안에 넣을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삼마, 여호와께서 거기에, 내 안에 계신데 내가 거칠게 행동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부터 내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그렇게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생활은 여호와삼마가 되어야 합니다.
▶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는 신앙으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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