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하나님,살아계신 나의 하나님(13)-여호와 수리를 믿으라

하나님아들 2013. 1. 10. 17:02

하나님,살아계신 나의 하나님(13)

= 여호와 수리 신앙 =

시62:1-8

▶ 탈무드엔 사람을 평가하는 세 가지 기준을 키이소오(돈주머니), 코오소오(술잔), 카아소오(분노)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절제할 줄 아는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다윗은 그 인격을 이룰 수 있는 기초를 우리에게 제시해 주었으니 오늘 본문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기초로 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 시인은 한 단어에 자신의 신앙과 모든 마음을 담습니다. 오늘 시편에도 다윗의 마음을 담은 단어가 나옵니다. "반석"입니다(2절). 시편에는 반석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반석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기에 상투적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금 깊이 생각해보면 이 고백이 다윗의 신앙의 고백임을 알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반석이라는 고백은 세상에 여러 반석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뜻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어떤 것도 반석이 아니라는 고백입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 나의 방패, 나의 피난처 등 동원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반석 [盤石/磐石]이란 넓고 평평한 큰 바위로써 어떠한 것을 지탱해 주는 견고하고 든든한 기반(基盤)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고, 예수의 수제자이며 초대 교회의 개척자인 ‘베드로(Petrus)’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또는 흔들림 없는 신앙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이기도 합니다.

반석이란 말을 히브리어로 ‘수리’(SURI)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반석이신 여호와-여호와 수리(Jehovah Suri)이십니다. 그는 우리 인생의 창조자 이실뿐 아니라 우리 인생길에서 우리의 반석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은 여호와 수리 신앙이란 어떻게 믿는 신앙을 말하는가를 대언하겠습니다.

 

1. 내 인생을 세울 반석이신 하나님

▶ 지금은 집을 지을 때 세멘트로 지반을 만들어 짓지만, 옛날 초가 집을 지을 때는 기둥을 세울 곳에 주초 즉 반석을 놓아 지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집을 세울 때도 반석이 필요합니다.

▶ 인도의 유명한 지도자였던 마하트마 간디에게 어느 날 영국인 기자들이 "인도에서 시급한 과제는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하자 간디는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지금 인도에 주어진 시급한 과제는 경제적 부강이나 사회복지의 건설이 아니라 국민들의 올바른 인격건설 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을 바른 신앙위에 건설하는 일입니다.

▶ 예수님의 주초 중요성 교훈 :

눅6:47-49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히되 잘 지은 연고로 능히 요동케 못하였거니와 49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주초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히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 어떤 사람은 자기 인생을 재물 위에, 어떤 사람은 지식 위에, 어떤 사람은 사람위에, 어떤 사람은 주초도 없이 세우는 것을 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없이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물론 돈은 필요한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지식이 없이는 현대 사회에서 이기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물론 지식도 필요합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자기가 의지할 반석을 한 가지씩 정해놓고 이를 얻기 위해 노력하며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추구하는 바가 과연 진정으로 의지할 반석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 작자불명의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중에서

白露 霑野草(백로 점야초)-흰 이슬은 들판의 풀을 적시고

時節 忽復易(시절 홀복이)-계절은 어느덧 다시 바뀌었네

秋蟬 鳴樹間(추선 명수간)-가을매미는 나뭇가지 사이에서 울고

玄鳥 逝安適(현조 서안적)-제비도 어디론가 돌아가누나

昔我 同門友(석아 동문우)-옛날 함께 자란 나의 벗들은

高擧 振六翮(고거 진육핵)-드높이 날아올라 날개를 떨치면서도

不念 攜手好(불념 휴수호)-손잡고 지내던 좋은 정리 생각지 않고

棄我 如遺跡(기아 여유적)-남겨진 발자취처럼 나를 버렸네

南箕 北有斗(남기 북유두)-남쪽엔 기성(箕星) 북쪽엔 두성(斗星)이 있지만

牽牛 不負軛(견우 불부액)-견우성도 멍에를 메지 않구나

良無 盤石固(양무 반석고)-반석같은 튼튼한 우정 진실로 없구나

虛名 復何益(허명 복하익)-헛된 명성 또 다시 무슨 이익 있으랴

 

성경은 완전하고 견고한 반석이신 하나님께 둘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이 욥에게 하신 말씀 :

욥38:1-7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2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3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5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6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7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 하였었느니라.

하나님만이 참 기초요, 참 반석이심을 말씀한 내용입니다.

반석은 우리가 디디고 설 인생의 견고한 기초가 됩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 반석은 하나님을 비유하는 사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무리들을 가르치실 때에 반석위에 주초를 놓고 집을 지은 자와 모래위에 집을 지은 자를 말씀하시면서 반석위에 집지은 자가 폭풍과 풍랑이 와도 요동치 않고 안전하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반석위에 집을 짓는다는 것은 반석 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을 뜻합니다.

또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반석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을 반석으로 믿는 믿음이 교회를 탄생시키고 점점 자라나며 세워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석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버린 이유는 자신들이 부유하고 형통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부유해졌을까요? 하나님이 그렇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값없이 많은 토지소산과 만물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심지도 않은 소산을 먹고 파지 않은 우물물을 마시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주신 윤택함과 풍요로움을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풍요로워지고 윤택해지자마자 교만해졌습니다. 그렇게 복주신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며 경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하셨을까요? 격노하였습니다.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는 배은망덕의 죄를 참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얼굴을 외면하고 각양 재앙들을 내리십니다. 많은 질병과 독들을 보내시고 이방민족을 보내어 그들을 세계 곳곳에 다 흩으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신32:15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신32:18 너를 낳은 반석은 네가 상관치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은 네가 잊었도다

 

▶ 하나님의 권고 예언 :

사26:4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 다윗의 여호와 수리 신앙 :

삼하22:2 가로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시18: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18:31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뇨

시62:2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시144:1 나의 반석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저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치게 하시도다

▶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 없는 교육은 악마를 생산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모든 인간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반석으로 삼지 않는 이상은 악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 여호와 수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현현되셨음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반석삼아 내 인생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고전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오늘 이 시대에 우리는 모래위에 집을 짓는 너무나 많은 건축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친히 지혜로운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짓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친히 우리의 반석이 되어 주십니다.

 

내가 인생에서 경험한 가장 큰 행복은 예수님을 만난이래로 내 인생의 집을 반석위에 짓게 된 일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을 여호와 하나님께 확실히 세우십시오.

 

2. 내 인생을 피할 바위이신 하나님

반석 혹은 바위라고 할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는지요?

반석은 무엇보다 보호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무사들은 바위 뒤에 숨게 됩니다. 적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서 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나의 잘못과 별로 상관없이 잔인한 이웃의 공격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그 누구도 나의 도움이 되어주지 못할 때 나를 변호할 분은 내 주님밖에는 없습니다.

그는 친히 이 땅에 계실 때 이런 억울한 비난과 모함을 체휼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반석은 사막지대에서 종종 유일하게 여행자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그때 반석은 피난처요, 안식처가 됩니다.

인생의 길은 생각보다 더 뜨거운 열기를 감내해야 하는 고단한 길입니다. 우리는 이 길에서 쓰러져 생의 의지를 포기해 버린 기권자를 생각보다 더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나는 나의 반석 되신 그분으로 인하여 쉼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쫒겨 다니며 목숨의 위협을 받을 때마다 이 바위 뒤에 숨었습니다.

그는 아들 압살롬의 반역의 큰 슬픔을 경험할 때에도 이 바위그늘 아래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는 작은 나라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이웃 열강의 침략을 받을 때마다 이 반석위에 서서 적들과 맞서 용감하게 싸울 수 있었습니다.

▶ 이스라엘 국토의 남부는 거의 황량한 광야입니다. 광야에는 큰 나무들이 없습니다. 거의 나무 그늘이 없으며 물 샘도 없습니다. 그래서 광야를 며칠씩 지나가는 나그네들은 불볕 더위와 목마름이 극심합니다. 그러나 사막 가운데 나무 그늘보다 시원한 그늘이 있습니다. 사막에 우뚝 솟아난 커다란 바위는 나그네들에게 있어 뜨거운 태양빛을 가려주어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줍니다. 다시 힘을 충전하는 휴식처가 됩니다. 때로는 광야에는 사막의 모래바람이 휘몰아칩니다. 이 모래 바람으로 모래 언덕이 생기기도 하고 또 있던 모래언덕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막의 지형은 쉽게 변합니다. 하지만 반석은 언제나 제자리에 있고 그 위치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모래바람이 거세어도 반석을 움직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석은 요동하지 않으며 사람들에게 안전한 휴식처와 피난처를 제공해 줍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개인도 그렇고 공동체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위기를 대처하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합니다.

그리고 이런 위기 대처법은 주로 그 개인이나 공동체가 가진 신앙관이나 세계관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내가 재수가 없어서 팔자가 안 좋아서 이런 일을 당했다고 믿는다면 그는 체념한 채로 세월 좋아지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소위 운명주의의 세계관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인간 이성이 인간의 모든 것이라고 믿는 이성주의의 세계관을 갖고 산다면 그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다하여 이 상황에서 빠져 나오려고 이성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종종 이런 사람들이 이성의 한계를 경험하게 되면 절망하거나 삶을 포기하는 일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위기를 맞아 할일은 무엇이겠습니까?

▶ 일찍 세계 제2차 대전이 발발했을 때 대 영 제국의 왕실은 당시의 존경받던 영국 성공회의 대주교 윌리암 템플에게 대 국민 방송설교를 요청하게 됩니다. 당시의 영국은 나치 독일의 기세에 대항할만한 객관적 전력을 보유하지 못했고 따라서 영국 국민들은 싸움을 하기도 전에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채로 두려워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윌리암 템플(William Temple)이 무슨 말을 할 것인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뜻 밖에 그의 설교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대 영 제국의 국민 여러분,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전능자이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볼 수 있다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내일 이 땅의 모든 교회는 종을 울려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역사의 주장자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와 무릎을 끓고 그분을 경배하며 그 동안의 우리의 죄, 민족의 죄를 회개하고 이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십시다.” 실제로 그들은 그렇게 했고 그들은 전쟁 가운데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 1905년 11월 17일은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가장 비극적인 역사의 시작이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소위 을사보호조약으로 우리의 국권이 사실상 일본에게 넘어가는 날이었습니다. 비통에 젖은 민영환은 조국이 사라진 이상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어졌다고 판단하여 몇 개의 유서를 쓰고 주머니 칼로 목숨을 끊는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살아남아 조국의 수치를 보기보다 죽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뜻있는 애국지사들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제1대 총독으로 취임했고 국민들은 깊은 절망 속에 1906년을 맞이합니다.

▶ 그런데 이와 다른 하나의 흐름을 봅니다, 1906년 봄부터 이 땅에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선교사 하디(Robert Hardie)라는 분이 봄 학기 시작을 위한 부흥회를 이화학당과 배재학당에서 열었는데 거기에 부흥이 임한 것입니다, 학생들이 놀라운 흡인력으로 말씀을 받아드리게 되었고 학생들 사이에 죄를 자복하는 회개운동이 일어납니다. 이 부흥운동은 제물포로 이어졌고, 이어서 다시 서울지역에 연동 교회, 상동교회, 정동교회, 자교교회 등에서 각 교회 부흥회로 이어집니다. 이 때 부흥회의 공통현상은 죄에 대한 강력한 회개와 자복현상이었습니다.

1906년 2월의 자교 교회 신년 사경회중 아침예배에 갑자기 한 남자가 일어나 “자신은 술꾼에다 노름꾼, 사깃꾼”이라고 자백하자 온 회중이 성령의 강력한 임재아래서 회개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 불길은 다시 북으로 가서 선천, 개성, 그리고 마침내 원산으로 옮겨갑니다.

1906년8월 5일부터 12일까지 원산에서 열린 원산 지방 사경회에서 하운셀(C.G.Hounshell), 펜윅(M.C.Fenwick) 등이 인도한 이 집회에서 강사, 선교사들이 먼저 죄를 자복하기 시작하면서 참석한 모든 성도들이 강력한 심령의 부흥을 경험합니다.

1906년 10월에는 같은 유형의 부흥이 목포에서 일어납니다. 프린스톤 출신의 남 장로교 선교사 프레스톤(John Preston)은 300여명이 모인 감리교 선교사 저딘(J. L. Gerdine)이 인도한 이 모임에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강력한 부흥을 체험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한국 교회에 통성기도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해가 저물어가면서 다시 밝아온 1907년 1월 소위 평양 대 민족 부흥이 폭발한 것입니다.

▶ 1907년 1월 2일부터 두 주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열린 겨울 남자 사경회 약 1,000명이 모인 이 모임(중간에 1,500명 나중에 2,000명으로 증가)이 바로 대 부흥의 진원지가 된 것입니다. 1월 14일 저녁집회에서 백낙준 박사는 성령의 기운이 터져 나왔다고 기록합니다. 그날 이후 성도들은 전국 도처에서 일년 내내 교회로 교회로 모여들어 새벽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 예배하고 기도하고 일어설 때 마다 그들은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새로워지는 대 영적 각성운동이 전국으로 번져가게 됩니다.

이것은 일제 치하 민족의 위기를 극복하도록 하나님이 준비해 주신 처방이 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백성들은 그어려운 고비를 하나님을 피난처 삼아 잘 넘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방황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크게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요새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권면합니다.

크게 흔들리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그가 우리의 반석-여호와 수리이십니다. 흔들리십니까? 이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수리 수리 여호와! 수리 수리 여호와! 여호와 수리-그가 우리의 반석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바로 우리 민족이 일제의 지배아래 방황하던 시절 우리의 반석이 되어 주셨고, 지금도 그는 여전히 오늘의 방황 속에서도 우리의 유일한 반석이십니다.

 

▶ 지나간 세기에 영국에 가구점 목공출신으로 나이 16살에 예수를 영접한 에드워드 모트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 열심히 일하여 드디어 가구점 하나를 경영하는 일종의 중소기업 사장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회사를 갖게 된 그날 그는 그가 일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때 마다 늘 찾았던 가구점 뒤에 있는 홀본 언덕에 올라 그에게 성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마침 그가 앉아서 기도드리던 그 곳은 넓게 펼쳐진 바위 언덕이었습니다. 그는 이 바위 언덕위에서 아름답게 펼쳐진 마을 정경을 바라보다가 그는 바위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제가 조금 성공했지만 저는 이런 성공은 언제라도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저의 인생의 흔들릴 수 없는 반석은 주님 한 분 뿐이십니다. 저의 평생에 저의 반석이신 여호와만을 의뢰하고 살겠사오니 제가 한 평생 여호와를 찬양하고 예배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그의 마음에는 하늘의 기쁨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날 집에 돌아오는 즉시 한편의 찬송시를 기록합니다. 그것이 바로 찬송가 539장입니다. “이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무섭게 바람 부는 밤 물결이 높이 설렐 때 우리 주 크신 은혜에 소망을 닻을 주리라.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의 나이 55세 되던 해 그는 가구점 경영을 청산하고 목사가 되어 일생을 복음 전하는 일에 헌신합니다. 그가 77세를 일기로 그가 섬기던 교회 강단에서 마지막 예배를 인도하던 날 그가 마지막으로 불렀던 찬송도 이 찬송이었다고 합니다. “바라던 천국 올라가 하나님 전에 뵈올 때 구주의 의를 힘입어 어엿이 앞에 서리라.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동일한 반석이 내게 주어져 있는 이 행복이여! 나의 반석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 우리 인생의 모든 방황은 우리 스스로의 죄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는 우리 스스로를 하나님에게서 분리시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방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는 다시 우리를 찾아 주셨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고 우리가 죽을 자리에서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분이 이제 우리 인생길에 반석이 되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굳건한 반석위에 우리 인생의 집을 다시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반석의 그늘에서 참된 쉼을 얻게 되었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출처 : 목회자의 요람 한서노회
글쓴이 : 다비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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