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4중 감사 (막 14:22-26) (추수감사주일)
<평생 감사>라는 책에 보면 청교도인들이 드렸던 7가지 감사가 나옵니다.
1. 비록 작지만 배를 주셔서 항해를 하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2. 한없이 느리지만 끝가지 항해를 할 수 있었으니 감사합니다.
3. 항해 중에 두 사람이 죽었지만 한 아기가 태어났으니 감사합니다.
4. 항해 중에 큰 돛이 부러졌지만 파선하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5. 여인들이 파도에 휩쓸렸지만 한 사람도 떠내려가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6. 원주민들의 호의가 감사합니다.
7. 그 어려운 항해 여정 속에서도 돌아가자고 하는 가족이 한명도 없었으니 감사합니다.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자, 웃어른에게 선물을 받았어요.
그럼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다"자로 끝나는 말인데... 누구 맞춰 볼 어린이...?"
그러자 맨 앞에 앉아있던 의찬이가 번쩍 손을 들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입니다".
"맞았어요. 또 없을까요?"
그랬더니 옆자리에 앉은 정배가 씩씩하게 손을 들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입니다".
"잘했어요. 또 다른 말은 없을까요?"
그러자 구석에 앉아있던 미달이가 슬며시 손을 들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뭘 이런걸 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네 번 감사를 드린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네 번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감사를 하나님께 드렸겠지만, 이 네 번의 감사는 우리가 마땅히 이렇게 감사를 하여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네 번의 감사를 복음서에 기록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좋은 일과 잘 되는 일에는 감사를 잘 하지만 예수님의 감사는 우리의 감사와는 조금 차원이 다릅니다.
1. 작은 것에 감사하신 예수님 (요 6:1-15)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자 수많은 군중들이 말씀을 듣고자 예수님 앞에 모여 들었습니다. 남자만 오천 명 정도이니 남녀노소를 모두 합치면 약 이만 명 정도가 되는 많은 무리들이 모인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전하시는 천국 복음을 듣는 것에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저녁이 돼서야 예수님의 설교는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군중들이 너무 늦은 시간까지 설교를 듣다가 보니 배가 고팠습니다. 굶주리고 있는 무리들을 예수님께서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하셨습니다. 빌립은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빌립은 현실주의자였습니다. 지금 이 사람들을 먹이려고 하면 이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돈이 필요하며,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는 떡을 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신앙생활에 현실을 도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만 매여 있는 신앙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기적의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의 하나님이십니다. 기적을 믿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응답을 믿으면 응답을 받습니다. 축복을 믿으면 축복을 받습니다.
빌립은 현실을 보고 불가능한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달랐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비록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이지만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면 이 많은 사람들이 먹고도 남습니다. 라는 믿음의 고백을 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앉게 하신 후에 기도하신 것입니다.
요 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니라” 여기에서 “축사”라고 하는 단어는 헬라어로 (ευχαριστω 유카리스테오)라는 말인데 이것은 “감사하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적은 것을 가지고도 감사하셨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많은 것, 큰 것에는 감사를 잘 하지만, 적은 것에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성도들은 적은 것에도 감사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물고기 두 마리,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도 감사한 것입니다.
안드레의 말처럼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비록 적고 보잘 것이 없는 것이지만 물고기 두 마리,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예수님이 감사를 하시니, 놀라운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감사하면 기적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없는 것을 보고 불평하신 것이 아니라 적지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보시며 감사하셨습니다.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음식, 가난한 사람의 식사인 그 초라한 양식을 놓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그 자리가 바로 기적의 출발점이였던 것입니다. 오천 명이 먹을 수 있는 많은 떡이 생겼을 때 감사하신 것이 아닙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놓고 감사하는 그 마음에 축복의 씨가 깃들여 있는 것입니다.
작은 것, 적은 것부터 감사하십시다.
그 감사로 인하여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시는 것을 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실패 가운데도 감사하신 예수님(마 11:20-26)
주님도 세상에 계실 때에 실패를 경험하신 일이 있습니다. 고라신과 벳세다에서 가장 많은 권능을 행하시고, 열심히 전도를 하였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이 두 도시에서 많은 이적을 행하며, 내가 메시아니 믿으라고 열심히 전도를 하였습니다. 저들이 예수님의 전도를 듣고, 이적을 보면서도, 회개를 하지 않고, 예수님을 배척함으로 예수님은 스스로 전도의 실패를 인정하시었습니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 보다 더 완악한 사람들을 탄식하였습니다.
노력의 열매가 없을 때, 실패하고 무너졌을 때, 짜증나고 화가 나며 좌절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 생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예수님은 전도의 실패를 하였을 때에 좌절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교만하고 지혜가 있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은혜를 주시지 않고, 오히려 낮고 천한 자와 겸손한 자와 어린아이를 택하여 구원의 은혜를 주십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지만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작은 자들이지만 믿고 받는 자들이 있기에 감사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실패 속에서도 좌절하기 보다는 감사할 조건을 찾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절망하고 좌절하면 더 이상 전도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아이들을 보면서 감사하며 나아가서 포기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결국 12제자와 70문도와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랐습니다. 실패 가운데 좌절하기 보다는 감사의 조건을 찾아 감사할 때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의 일을 이룰 줄 믿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을 지낸 넬슨 만델라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흑인인권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어 무려 27년간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그가 출옥할 때 사람들은 완전히 폐인이 되어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70세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기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5년만 갇혀 있어도 건강을 잃고 나오는데, 당신은 27년 옥살이를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건강합니까? 도대체 그 비결이 뭡니까?”
그 때 만델라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감옥에서 늘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물을 마시며 감사하고, 음식을 먹으며 감사하고, 강제 노동을 할 때도 감사했죠. 감사가 비결이라면 비결이죠.”
그 후 그는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됐습니다.
우리는 보통 행복은 환경이나 조건에 좌우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마음의 태도에 좌우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의 태도를 가지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만델라는 비록 27년을 감옥에 있었지만 항상 감사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환경에 매이지 않고 항상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 감사가 그 삶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상황을 초월한 감사는 항상 기적을 가져옵니다. 기적은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찾아옵니다.
3. 미리 감사하신 예수님(요 11:38-44)
세 번째 드리신 감사기도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드리신 기도입니다(요11:41).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비,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이틀이나 더 그 계신던 곳에 유하다가 죽은 나사로에게 가셔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고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오빠 나사로가 중병에 걸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생각이 나서, 사람을 보내서 예수님을 청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이들에게 가신 것이 아니고 이틀이 지난 후에 베다니에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다니에 가셨을 때에는 이미 나사로는 죽었고 동생 마르다와 마리아는 장래를 치른 후 원망하고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요 11: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원망하고 실망하고 좌절하면 문제를 해결 할 수가 없습니다. 점점 더 좌절의 깊은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나는 나사로의 무덤을 찾아가 돌문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신 후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요 11:41)라고 감사기도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앞에 놓고 울며 슬퍼하는 절망스럽고 비통한 상황에서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문제를 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주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부르시자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살아 나와서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나사로의 무덤에서는 냄새가 나고, 사람들은 통곡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들으실 줄 믿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살리실 줄 믿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대로 역사하셨습니다. 미리 감사하였더니 감사의 환경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큰 절망에 처했을 지라도 주님이 주시는 참된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미리 감사해야 합니다. 가장 비극적이고 슬픈 상황에서도 미리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 곧 문제해결의 지름길입니다. 우리의 삶에 극한 상황 속에서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만 바라보면 먼저 감사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4. 죽음 앞에서 감사하신 예수님(막 14:22-25)
마지막으로 드리신 감사기도는 최후의 만찬 때 드리신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자 고난 받기 전에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지상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유월절 마가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이 준비되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밤에 잡히셔서 십자가에 달릴 것을 아셨지만 어린 아이 같은 제자들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찬 자리에서 잔을 받으신 후 감사기도하시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마시게 하셨고, 또 떡을 가져 감사기도하시고 나누어 먹게 하셨습니다.
(막 14:22-23)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아무리 예정된 죽음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서른 세 살의 젊은 나이에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감사기도를 드릴 수가 있을까요?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 뒤에 부활을 확신 하셨기 때문에 죽음 앞에도 감사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드리는 감사기도는 영생에 대한 확실한 소망과 믿음이 있는 자만이 할 수 있으며, 이런 감사가 진정한 감사이고 최고의 감사입니다.
우리의 마지막은 영화로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영화롭게 가는 날이 죽음의 날입니다. 영생과 천국을 확신하는 성도는 죽음 앞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앞두고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감사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적은 것에도 감사, 실패 중에서도 감사, 미리 감사, 죽음의 건너편에 천국을 보면서도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셔서 감사의 삶속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축복이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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