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란 무엇인가? (누가복음 17:5-6)
예수 믿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만 질문만 해보면 됩니다.
첫 번째는 내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내 노력과 내 수고와 내 의지나 실력으로 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엡 2:8,9)절에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아멘.
두 번째 질문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입니다.
성경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어떻게 자신이 모든 고난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말하기를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 하였기에 승리하였다'고 말씀합니다. 눈에 보이는 데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살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다 죽었는데, 어떻게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까?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나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여호수아가 손 하나 대지 않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나요? 믿음으로써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가장 강조한 것이 무엇인지 압니까? 그것은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이 부족할 때 혹독하게 꾸짖었습니다. 그냥 지나친 적이 없습니다.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냥 지나치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 좋은 사람이 훌륭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살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라는 사도들의 요청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5절)
왜 제자 된 사도들은 주님께 "우리에게 믿음을 더 하소서“ 라는 요구를 하였을까요?
그것은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앞서 제자들에게 형제를 실족케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를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자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1절)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하는 자는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깊은 바다에 빠드려 죽는 것이 낫다 (2절)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용서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형제가 죄를 범하고 회개하고 돌아오면 삼 세번도 아닌 하루에 일곱 번도 용서해 주라 (3절-4절) 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이러한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믿음을 더 하소서”입니다.
이 말은 자신들은 믿음이 부족하여 이렇게 살 수 없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이렇게 살지 못하는 이유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지금 자신들의 믿음만을 가지고는 주님이 말씀하신 것들을 지켜 행할 수 없으니 믿음을 더 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여기 “더하소서”라는 말은 기존에 있는 것에 무엇을 더 ‘추가하다’ ‘더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지금 자신들 안에 믿음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만을 가지고는 안되니까? 자신들의 믿음만을 가지고는 그렇게 살 수 없으니까 주님께서 믿음을 더 해 달라는 것입니다. 지금 제자들은 믿음을 하나의 양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믿음을 더 하소서”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더 하소서!라고 요청하는 제자들에게
“그래 내가 큰 믿음을 주어 그렇게 살도록 해줄게”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의외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 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6절)
주님은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요구하는 제자들에게 겨자씨와 같은 믿음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완전히 동문서답입니다. 왜 주님은 왜 동문서답을 하셨을까요? 제자들이 믿음을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1. 믿음이란 생명입니다.
제자들이 지금 오해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제자들이 믿음을 하나의 양적인 개념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을 무슨 내가 소유하고 있는 지식이나 어떤 재능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믿음은 양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가장 작지만 생명이 있는 겨자씨를 들어서 믿음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물론 우리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책망을 하신 적이 있고
“네 믿음이 크도다”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의 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은 믿음의 농도, 주님에 대한 신뢰의 정도를 말하는 것이지 결코 믿음의 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제자들처럼 믿음을 하나의 양의 개념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본질은 생명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믿음을 씨앗에 비유하심으로써 믿음의 본질은 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믿음을 더하여 달라는 제자들의 요구에 겨자씨 한 알과 같은 믿음만 있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여도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주님은 믿음을 말씀하시면서 하필이면 가장 작은 것의 상징인 겨자씨를 들어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겨자씨가 비록 작을지라도 그 안에 생명이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겨자씨는 씨 중에서도 가장 작은 씨에 속합니다.
불면 날아가 버리고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씨앗입니다.
그런데 이런 겨자씨라도 땅 속에 심겨지면 무섭게 자랍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공중의 새들이 가지에 깃들어 쉬는 커다란 나무가 됩니다.
겨자씨는 작지만 그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의 특징이 뭡니까? 성장합니다. 생명의 특징이 뭡니까? 변화합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언제나 성장하고 변화합니다.
그러므로 겨자씨와 같은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양이 아니라 질입니다. 그리고 그 질은 바로 생명입니다.
믿음의 능력은 생명력에 있습니다.
겨자씨가 아무리 작아도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자라나 큰 나무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의 믿음의 양이 얼마나 크냐? 적냐를 묻지 않으십니다.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은 신앙의 경력에 대하여 묻지 않으십니다. 또한 성경에 대하여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를 묻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오늘 너의 믿음이 정말 살아 있는 믿음이냐 아니면 죽은 믿음이냐?를 물으십니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믿음이라야 성장하고, 살아 있는 믿음이라야 변화하고, 살아 있는 믿음이라야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고, 살아 있는 믿음이라야 오늘이라는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의 믿음을 점검해 보십시오.
정말 나의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인가? 아니면 형식적인 믿음인가?를 점검해 보십시오.
2. 믿음이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단어의 헬라어는 ‘피스티스(pistis)’는 ‘신실함’ 입니다.
믿음은 곧 신실함입니다. 참된 믿음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을 맡길 수 없습니다.
따라서 믿음의 성숙은 곧 어디까지 내 삶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느냐 입니다.
믿음은 신념이 아닙니다. 적극적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적극적 사고방식이란 인간의 가능성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념과 신앙은 다릅니다. 믿음은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닙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느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눅 5:5절)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 도저히 순종할 수 없지만 순종하였습니다.
(눅 1:38)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마리아는 천사로부터 아들을 낳으리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무서워 떨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하여 이루실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깨달은 다음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고 말씀을 수용했습니다.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임신이 불가능한 자에게 임신이 가능한 것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내일을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2절에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해서 보는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될 줄로 믿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3. 믿음이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믿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합니다.
믿음으로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여도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믿음에는 이와같이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도 하나님이 자신을 건져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그를 건져 주었습니다.
마가복음 5장에 열두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병을 고치려고 유명한 병원을 모두 찾아다녔습니다. 재산을 모두 날렸습니다.
그러나 차도가 없습니다.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던 그녀에게 희망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는 능력의 주님이 지나가신다는 것입니다.
여인은 군중들의 틈바구니를 헤집고 예수님께로 나갑니다.
예수님의 옷가에 손만 대도 낳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에서 능력이 나간 것을 아시고 누가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십니다.
여자가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도다."
여인의 믿음이 12년동안 고치지 못했던 혈루의 근원을 마르게 했습니다.
사도행전 14장에 루스드라에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말씀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구원 얻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즉시로 그 사람이 걷고 뛰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믿음은 이와같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합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 9:23).”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요 14:12).”
믿음의 사람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십니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수라바야에는 아브라함 알렉스 타누세프트라 목사가 담임하는 2만 5천명 성도의 베다니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알렉스 목사님이 큰 믿음을 얻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알렉스 목사가정에 뇌성마비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뇌성마비 아들이 태어나자 이슬람교도들은 목사님을 조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목사님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능력만 바라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온전하게 되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기도하길 석 달을 해도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며 넉 달이 지났을 때 아들이 온전케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목사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게 되었고, 아들과 함께 한계가 없는 믿음을 경험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 아들은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하여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셋씩이나 둔 목사가 되어, 아버지의 일을 돕고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도와서 전국에 기독교 서점을 세워 경영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만사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뒤집을 수 있는 놀라운 능력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마스터 키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믿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힘입니다.
믿음은 성도를 위대하게 만듭니다. 믿음은 성도를 부요하고 풍요롭게 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날마다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 우리의 모든 절망을 희망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의 힘으로 날마다 승리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능력 있는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런 살아 있는 믿음, 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은 말씀을 들을 때 생겨납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많이 한 사람도 말씀을 듣지 않으면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기 때문에 이상하게도 말씀을 들으면 확신이 들고 힘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종교적인 믿음, 형식화된 믿음이 아니라 산 믿음을 가질려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우리에게 겨자씨와 같은 믿음이 생겼다면 이제는 그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통해 우리의 믿음은 지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체험적인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반드시 역사가 일어납니다.
믿음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이 바로 산 믿음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정식은 바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풍랑이 밀려오고 세상이 흔들려도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산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경험하는 체험적인 믿음입니다.
이렇게 살아 있는 믿음으로 살아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믿음이란 생명입니다.
2. 믿음이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3. 믿음이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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