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1월 23일 설교 "세상을 사는 지혜"

하나님아들 2013. 1. 5. 15:44

세상을 사는 지혜  (창 14:13-24)


얼마 전에 한국 컴퓨터 선교회에서 '대한민국 복음화 지도'라는 색다른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거기에는 우리나라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가장 적은 곳으로 제주도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8%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10명 가운데 1명도 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주도에 사는 성도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얼마나 외롭겠으며 남 모르는 고달픔이 또 얼마나 크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복음화가 잘된 지역은 서초구로 30%나 되었습니다. 10명 중에 3명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30%라고 해도 전체에 비하면 소수에 해당하는 숫자라고 봅니다.


이처럼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다수인 불신자와 더불어 공존하여 살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 우리에게 이런 지혜를 교훈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갔습니다. 그 땅은 이미 여러 부족들이 선점하여 정착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곳에서 62년을 살고 난 다음에 한  말이 참 인상적입니다. 창세기 23장 4절입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떠돌이 신세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은 다수의 가나안 사람들, 불신자들 틈에 끼어 있었지만 선민으로서 그는 성공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공했습니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본문을 통해서 세 가지로 정리를 해보려고 합니다. 믿는 자로서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협력하라. (아브라함은 부족들과 좋은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던 소돔성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 전쟁에서 소돔성 왕이  패배하자 그 성에 있는 모든 사람이 포로로 잡혀가 버렸습니다. 물론 모든 재산도 다 빼앗겼습니다. 그와 같은 비보를 도망 온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든지 조카를 이 위기에서 건져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준비하는 장면이 본문에 나옵니다.


그런데 13절에 재미있는 말씀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포로로 잡혀 간 조카를 건지기 위해서 누구하고 전략을 협의한 줄 아십니까? 바로 자기와 동맹한 마므레, 에스골, 아넬, 이 세 형제 부족들과 협의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그들과 동맹 관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맹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 부족이나 국가들이 서로의 안전과 유지를 위해서 힘을 모아 공동 보조를 취하기로 하는 정치적인 제휴 관계입니다. 한미 공동협약도 동맹입니다. 유럽에는 나토 동맹이 있습니다. 서로가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 공동 보조를 맞추려고 정치적인 제휴를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가나안에 살면서 이 세 형제 부족 족장들과 동맹을 맺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아니 믿음의 사람 답지 못하게 주변 부족들하고 동맹을 맺다니?'


우리가 아브라함을 얼마나 대단한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합니까?

그가 메소포타미아에 살고 있을 때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를 직접 찾아가셔서 말씀 하시기를,

'너는 네 친족, 네 고향을 떠나라. 그리고 내가 지시하는 가나안 땅으로 가라. 그러면 내가 세 가지 축복을 너에게 약속하겠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내용은 

먼저 '너는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이다.'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으로 인해서 이 세계에 있는 모든 족속들이 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그가 가서 살게 될 가나안 땅을 전부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께서 그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언약은 그대로 성취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철저한 보장을  받고 가나안 땅으로 왔으면 하나님만 잘 섬기고 날마다 기도 생활만 열심히 하면 되지, 왜 이웃 부족들하고 동맹을 맺고 삽니까? 무엇이 겁이 나서 그렇게 하느냐는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브라함의 믿음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너무 인간적이었다는 비판의 소지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브라함의 이 행동, 즉 이웃 부족과 동맹을 맺은 것이 신앙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세상을 사는 지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비록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민이었고, 오직 믿음으로만 살려고 노력하던 거룩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세상에 살고 있어야 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 틈 바구니에서 소수 민족으로서 외롭게 생존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가나안 불신자들과 더불어서 날마다 양을 치고 농사를 지어야 했습니다. 종종 그들과 어려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머리를 맞대고 의논도 해야 했습니다. 어떤 때는 신세를 지기도 하고 신세를 갚기도 하고, 그러면서 우정을 쌓아 나갔습니다. 서로가 기대고 살 수 있는 언덕이 된 것입니다.


그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무엇을 책임져야 하고, 무엇을 희생해야 할 것인가를 늘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이지만 그들이 곤궁에 처할 때에는 그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를 알았고, 자신이 어려움을 당할 때 어떻게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인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동맹이라는 말 한마디 속에 다 들어있는 아브라함의 처세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비록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특별한 은총을 입은 자들이지만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절대 다수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들과 어울려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협력해야 하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 됩니다. 또 그들이 필요로 할 때 언제든지 도움을 주고 그들을 위해서 희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좋다고 해서 성도들끼리만 교회 안에서 지내는 것은 절대로 잘 하는 것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유대 관계를 제대로 맺을 수가 없습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내가 교회 안에서 무엇을 책임져야 될 것인가를 항상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동시에 내가 사회에서 무엇을 책임져야 할 것인가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양면이 다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18절'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은 안 믿는 사람들을 포함합니다. 담을 헐라는 말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마음껏 다가올 수 있게 하고 우리도 그들에게 자유스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담을 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협력하는 자세입니다.


아무 힘이 없을 때, 우선 친밀감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사람부터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과 친해지면 힘이 생깁니다. 특히 ‘권위와 친해지기’를 힘써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해서 이웃 부족들과 손도 안 잡고, 인사도 안 하고, 홀로 유아독존이 되어서 살지는 않았습니다. 한 쪽으로 치우치지 마십시오. 그러면 안 됩니다. 협력해야 합니다. 문을 열어야 합니다. 담을 헐어야 합니다.


2. 힘을 키우라. (아브라함은 평소에 힘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14절을 보면 재미있는 내용이 하나 나오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이 포로로 잡혀간 자기 조카 롯을 구원하기 위해서 행동에 옮겨야 될 상황이 되었는데, 참 놀라운 것은 그가 평소에 자기 집에서 사병을 키우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318명이라는 군사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칼을 쓰는 법을 가르치고, 활을 쏘는 법을 가르치고, 전투하는 법을 가르쳐서 대비를 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318명이라면 별로 숫자가 많지 않다는 느낌이 들지만 한 가정에 이 정도의 사병을 키운다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와 같은 태도를 보면 역시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믿음하고 모순이 되는 행동 같이 보입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데 왜 사병을 키우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못 미더워서 그랬던 것일까?'라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브라함은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고 지켜 주십니다. 어려울 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와 주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기가 해야 할 책임은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의 지혜를 총동원하여 자기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자기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힘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힘이 필요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힘을 가져야 나를 지킬 수 있고 힘을 가져야 불행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힘을 가져야 내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고, 힘을 가져야 만이 주변 사람을 도우며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힘이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힘을 키우는 데는 상당한 노력과 투자와 희생이 따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이라도 자기가 노력을 하지 않으면 힘이 생기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이 투자하지 않으면 남다른 힘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믿음이 대신 해 주는 것 아닙니다.


봄날 파종기가 되어 많은 농부들이 씨를 뿌릴 때, 날마다 앉아서 기도만 한다고 합시다. 그  기도가 씨를 뿌려 줍니까? 절대 뿌려 주지 않습니다. 자기가 나가서 직접 뿌려야 됩니다.   남이 한창 추수를 하고 있을 때 공부만 한다고 해서 공부가 추수를 해 줍니까? 안 해 줍니다. 자기가 가서 직접 추수해야 됩니다. 땀 흘려야 됩니다.


여러분 힘을 키우는 것을 성령이 대신 해 주지 않습니다. 믿음이 대신 해주지 않습니다. 내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은 교회를 다니며 예수를 잘 믿는 많은 분들 가운데 미신적인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상당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미신적인 생각입니까? '기도만 하면 된다.' 반은 성경적이고 반은 미신적입니다.

'신앙생활만 잘 하면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 걱정하지마.' 반은 성경적이고 반은 미신적입니다.


이 말을 잘 이해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을 천사를 보내어 대신해 지게 해 주시는 일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는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를 원합니까? 사회에 영향을 끼치기를 원합니까?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기를 원합니까? 또 이 사회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힘을 키워야 됩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각자가 받은 달란트 대로 최선을 다해서 힘을 키우십시오.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잠언 24장 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우리가 불신자들 틈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영향을 끼치려면 힘을 키워야 합니다.


3. 다름을 보여주라 (아브라함은 자신이 무엇이 다른가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비록 그들과 같이 살기는 했지만 어떤 점에서 그들과 다른지 분명히 보여 주었습니다. 몇 가지 예가 있는데, 우선 23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소돔성에 있는 백성들과 자기 조카를 다 구출하고 많은 전리품을 끌고 왔습니다. 소돔 왕이 자기 대신 복수를 해 준 아브라함에게 너무 감사해서 아브라함이 얻은 전리품을 전부 가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브라함이 아주 의미 있는 말을 합니다. 23절입니다.

'네 말이 내가 아브라함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릇 한 실이나 신들매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겠다.'


쉽게 말하면, 소돔왕이 그 전리품을 아브라함에게 다 주고 난 후 돌아서서는 아브라함이 자신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는 뜻입니다.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사는 사람이지, 그들에게 손을 벌리면서 살 사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 한 타래라도, 신발짝 하나라도 안 가지고  갈 것이며 소돔왕의 것은 다 도로 가져가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습니까? 아브라함은 자신이 어디서 다른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염치없는 사람처럼 보이게 되면 우리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돈에 있어서 항상 흐릿한 행동을 하면 절대로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속에 감추고 있는 욕심을 은근히 드러내는 언동을 하면 절대로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분명해야  됩니다.


우리의 생명, 우리의 성공, 우리의 부귀, 우리의 형통, 우리의 남은 미래는 전적으로 누구에게 달려 있습니까?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구질구질하게 아부하거나 사람들에게 손 내밀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자세를 지켰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돈을 많이 가졌다고 해서 세상사람에게 감동을 준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돈을 많이 가질수록 망신 당하기가 더 쉽습니다. '돈을 그렇게 많이 가졌는데 왜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쓰지 않소?' 하면 망신 당하고 끝나는 것입니다.


권력을 갖고 있다고 세상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만한 권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 부패한 정치계하나 바꾸지 못하고 왜 그렇게 자기 혼자만 호의호식 합니까?' 하면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선민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당당함과 청렴함을 보여 주면, 예의 바른 자세를 보여 주면, 욕심이 없는 투명한 자세를 보여 주면 세상 사람들은 감동을 받습니다.

'분명히 우리 하고는 다르다. 분명히 다르다.' 이렇게 느낄 때 그들의 마음에서 존경심이 우러 나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런 행동으로 처신을 하기 때문에 그 가나안 땅에 있는 사람이 아브라함을 어떻게 대우했습니까?

23장 6절에 보면 '당신은 우리 중에 하나님의 방백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지도자입니다.'라고 그들이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어두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영향을 주려면 빛이 되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8,9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 앞에 아브라함처럼 물욕에서 초연한 자세를 보여 주여야 하고 하나님이 나의 축복의 근원이라는 것을 그들이 볼 수 있도록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사람들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세상이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세상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삽니다. 우리는 소수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지혜를 가집시다.


세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첫째는 협력하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힘을 키우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다름을 보여 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점에서 바로 살면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할 수 있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일에 우리 모두가 쓰임을 받을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출처 : 용화침례교회
글쓴이 : 이준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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