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 원죄와 죄와 그로부터 자유케 하는 십자가 도의 능력 >
althsu> 1) 부활은 하나님의 권으로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부활시켜 이 세상에 전하는 바는, 그리스도 안에 속한 자는 그리스도를 살리심 같이 너희도 살릴것이라는 복음이 아닐런지요.
2)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로 여김에 대한 적용여부는 무의미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하나님 앞에 죽은 자에 불과하기에... 그리스도의 대속을 아담으로 비롯된 정죄와 견주어 모든 자가 하나님 앞에 의로 여겨져야 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 1)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도 살릴것이며 죄인에서 의인으로 될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2) 그리스도 밖의 사람들은 의인이 될 수가 근본적으로 없습니다. 다만 구약과 신약의 대해서 세상 사람들이 처한 영적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말한 것 입니다. 구약 이전에는 세인들의 자범죄를 원죄의 뿌리에서 나온 것으로 여겼습니다. 자범죄와 주님에게 반항하는 모든 불순종의 행태를 원죄의 탓으로 근본적으로 돌렸다는 것 입니다.
제 2의 아담으로서 주님이 불리워진다는 입장에서 원죄가 아담을 믿든지 아니 믿든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 원천적인 죄인으로 만든 것과 같이 주님의 의는 믿든지 아니 믿든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 원천적인 의인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한 논리가 되지만 주님이 정하신 유일한 조건은 주님안에서 주님을 믿는 믿음안에서라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제2의 아담으로 불리우는 직접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이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영적환경/상태에 있었다는 것 입니다. 선을 행하고 싶어도 주님을 믿고 싶어도 그럴수 없는 마음의 탐욕과 정욕이 있었다는 것 입니다. 그것을 소수의 속사도들이 원죄로 말했고, 어거스틴이 강조하였고, 바울사도가 기록하였다는 것 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주님의 대속의 의의를 제 2의 아담의 입장에서 풀게 된다면 오직 믿는 자에게만 적용된다는 것은 그렇게 불리우기에 부족하다는 것 입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주님의 뜻에 비추어 주님의 대속의 효과는 모든 사람과 미래의 모든 사람에게까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사람들에게 실질적 유익과 혜택이 없다면 단지 그것은 마음과 뜻일뿐 실제적인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니 오직 믿는 사람에게만 십자가의 공덕과 공력이 주어진다는 것은 협소한 생각이고 주님의 사랑을 제한하는 것이 된다 이것 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을 정리하게 되면 불신자들에게도 어떠한 기본적인 혜택이 주어졌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이 되겠는가? 원죄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제거가 된 것이다가 된다는 것 입니다. 원죄로 인해서 주님을 믿을수 없고 그에 따라 회개할 수가 없고 결과적으로 선을 행할수 없었던 그들에게 주님은 그 막고 있던 돌을 굴려 버렸다 곧 치워 버렸다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무덤에서 지하동굴에서 갇혀 있던 사람들이 자기들이 원하기만 하면 나올수가 있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전해져야할 복음의 본질이자 내적인 실상이라는 것 입니다. 원죄라는 방해물을 제거했음에도 어둠의 나라에서 마귀의 지배하에 죄의 종노릇하며 살겠다고 하면 이것은 진정한 죄인이요 악한 존재들이 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나라와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서 기회를 주어야 하고 이는 심판의 온전성과 강력함을 이루기 위함이기도 하다는 것 입니다.
이런 해석에서 세인들은 원죄가 해결되었다는 것, 자범죄로 인해서 주님에게 올수가 없다는 것, 나오기를 원한다면 자기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 된다는 것,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기본조건이라는 것, 이 과정을 거쳐서 주님을 믿어 수용한 사람들이 성도가 된다는 것, 즉 성도도 원죄가 제거가 되었다는 것, 문제는 자범죄인데 그것도 주님이 십자가 상에서 용서하셨다는 것, 주님의 용서는 무한이라는 것, 단지 주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이 된다는 것, 이것은 이론적인 것이고 구원에 관한 교리적인 것이나,
삶과 관련된 실제적인 것에 대해서 말하자면 주님을 믿으므로 말미암아 주님에게 접붙임받게 되었다면 단순히 영생의 생명만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 곧 사랑과 믿음이라는 신앙에 관련된 생명도 주님을 통해서 성도는 받게 된다는 것, 그러므로 성도에게 성령님을 통한 열매와 은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는 것, 그런데 그것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문제가 주님에게 있는 것인가 인간에게 있는 것인가 하면 답은 인간이 된다는 것,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가 될 것인가? 그것은 뻔한 것으로 죄이고 회개치 않은 것이 된다는 것 입니다.
회개란 무엇 입니까? 악을 행하던 자가 그 악을 그치고 그 반대되는 선을 행하는 것 아닙니까? 경에 기록된 대로 옛사람의 불순종의 죄악에서 새사람의 순종의 의로서 나아가는 것 말 입니다.
참조> 원죄는 처음부터 없고 있다고 해도 십자가 대속으로 제거가 되었고, 다른 관점에서 원죄에 대해서 말하면 인간을 죄에 빠지도록 미혹하는 마귀를 제압했다는 것을 뜻한다는 것 다시 말해 지옥을 정복하여 다스리게 됨으로서 사람이 원하기만 하면 그 사람의 죄와 연합하여 그 사람의 영혼에서 왕노릇하는 마귀를 십자가 도의 권세와 능력으로 물리쳐서 자유롭게 해줄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는 것 입니다.
지하동굴을 막고 있던 돌은 제거가 되었습니다. 내지는 감옥의 문이 부숴졌습니다. 원죄와 짝하던 마귀라는 간수는 그대로 있습니다만 십자가 도의 권세와 능력에 의하여 그들의 능력과 권세와 힘은 박탈을 당했다는 것 입니다. 그 속의 죄인들이 나가기를 원한다면 마귀라는 간수는 옛날과 달리 막을수 없다는 것이 신약의 복음이자 십자가 대속의 본질이라는 것 입니다. 복음을 듣고서 눌러 앉아 있기를 택한다면 십자가 대속의 효과는 단지 돌을 치웠다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돌과 문을 치워 버린다는 것이 값이 없는 것은 나가지 않으면 괜한 일이 되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은 뱀의 머리를 쳐서 복종케 한 유일한 사람 입니다. 십자가 도로서 사망으로 권세잡은 자 마귀를 쳐 없앤 것이 주님이시기 때문 입니다. 아담이 불순종으로 뱀의 지배하에 놓였던 것과 달리 주님은 여호와 하나님에게 순종하므로서 그렇게 뱀의 시험과 미혹을 이겨내므로서 승리를 하셨다는 것 입니다.
아직도 뱀과 주님이 싸우고 있다고 착각하시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때부터 천국은 침노를 당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은 천국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던 마귀가 물리쳐졌기 때문이라는 것 입니다. 지옥을 마귀를 물리치는 유일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 곧 선을 행하고 악은 금하는 그것 회개를 말 합니다. 그것말고 다른 것은 없습니다.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의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회개와 순종의 삶을 산 사람은 강도와 같이 주님과 함께 낙원에 있게 된다는 것 입니다.
왜 성품과 삶의 변화가 없는가? 그것은 회개를 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인애의 삶을 살지 않아서 그것은 성품은 삶으로부터 형성이 되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성품의 변화없이는 삶의 열매의 결실이 없고, 회개가 없이는 성품과 삶의 변화는 있을수가 없다는 것 입니다. 왜 주님과 사도들이 누리는 천상에 속한 것들이 우리에게 없는가? 그것은 주님이 본으로 보여주신대로의 삶을 살지 않아서 주님과 사도들이 누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질수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 입니다.
그분들과 같은 삶을 살므로서 고귀한 성품을 형성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천상에 속한 거룩하고 신령한 것들을 누릴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법칙과 질서를 모르기 때문에 단순히 입술로만 고백하면 주어지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 입니다.
주님의 공로는 주님 그 자신의 것 입니다. 죄나 의라는 공과는 각자의 것이지 남의 것을 우리것으로 전유를 할 수가 없다는 것, 그 사람의 의와 공로를 전가받으려면 그분과 같은 삶을 살아야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할 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 천국을 유업받을 자중에 십계명을 범한자는 우상숭배자나 불의 불법을 행한자는 없다는 것을 직시하시면 되겠습니다.
althsu> 1) 부활은 하나님의 권으로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부활시켜 이 세상에 전하는 바는, 그리스도 안에 속한 자는 그리스도를 살리심 같이 너희도 살릴것이라는 복음이 아닐런지요.
2)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로 여김에 대한 적용여부는 무의미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하나님 앞에 죽은 자에 불과하기에... 그리스도의 대속을 아담으로 비롯된 정죄와 견주어 모든 자가 하나님 앞에 의로 여겨져야 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 1)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도 살릴것이며 죄인에서 의인으로 될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2) 그리스도 밖의 사람들은 의인이 될 수가 근본적으로 없습니다. 다만 구약과 신약의 대해서 세상 사람들이 처한 영적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말한 것 입니다. 구약 이전에는 세인들의 자범죄를 원죄의 뿌리에서 나온 것으로 여겼습니다. 자범죄와 주님에게 반항하는 모든 불순종의 행태를 원죄의 탓으로 근본적으로 돌렸다는 것 입니다.
제 2의 아담으로서 주님이 불리워진다는 입장에서 원죄가 아담을 믿든지 아니 믿든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 원천적인 죄인으로 만든 것과 같이 주님의 의는 믿든지 아니 믿든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 원천적인 의인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한 논리가 되지만 주님이 정하신 유일한 조건은 주님안에서 주님을 믿는 믿음안에서라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제2의 아담으로 불리우는 직접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이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영적환경/상태에 있었다는 것 입니다. 선을 행하고 싶어도 주님을 믿고 싶어도 그럴수 없는 마음의 탐욕과 정욕이 있었다는 것 입니다. 그것을 소수의 속사도들이 원죄로 말했고, 어거스틴이 강조하였고, 바울사도가 기록하였다는 것 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주님의 대속의 의의를 제 2의 아담의 입장에서 풀게 된다면 오직 믿는 자에게만 적용된다는 것은 그렇게 불리우기에 부족하다는 것 입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주님의 뜻에 비추어 주님의 대속의 효과는 모든 사람과 미래의 모든 사람에게까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사람들에게 실질적 유익과 혜택이 없다면 단지 그것은 마음과 뜻일뿐 실제적인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니 오직 믿는 사람에게만 십자가의 공덕과 공력이 주어진다는 것은 협소한 생각이고 주님의 사랑을 제한하는 것이 된다 이것 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을 정리하게 되면 불신자들에게도 어떠한 기본적인 혜택이 주어졌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이 되겠는가? 원죄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제거가 된 것이다가 된다는 것 입니다. 원죄로 인해서 주님을 믿을수 없고 그에 따라 회개할 수가 없고 결과적으로 선을 행할수 없었던 그들에게 주님은 그 막고 있던 돌을 굴려 버렸다 곧 치워 버렸다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무덤에서 지하동굴에서 갇혀 있던 사람들이 자기들이 원하기만 하면 나올수가 있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전해져야할 복음의 본질이자 내적인 실상이라는 것 입니다. 원죄라는 방해물을 제거했음에도 어둠의 나라에서 마귀의 지배하에 죄의 종노릇하며 살겠다고 하면 이것은 진정한 죄인이요 악한 존재들이 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나라와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서 기회를 주어야 하고 이는 심판의 온전성과 강력함을 이루기 위함이기도 하다는 것 입니다.
이런 해석에서 세인들은 원죄가 해결되었다는 것, 자범죄로 인해서 주님에게 올수가 없다는 것, 나오기를 원한다면 자기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 된다는 것,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기본조건이라는 것, 이 과정을 거쳐서 주님을 믿어 수용한 사람들이 성도가 된다는 것, 즉 성도도 원죄가 제거가 되었다는 것, 문제는 자범죄인데 그것도 주님이 십자가 상에서 용서하셨다는 것, 주님의 용서는 무한이라는 것, 단지 주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이 된다는 것, 이것은 이론적인 것이고 구원에 관한 교리적인 것이나,
삶과 관련된 실제적인 것에 대해서 말하자면 주님을 믿으므로 말미암아 주님에게 접붙임받게 되었다면 단순히 영생의 생명만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 곧 사랑과 믿음이라는 신앙에 관련된 생명도 주님을 통해서 성도는 받게 된다는 것, 그러므로 성도에게 성령님을 통한 열매와 은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는 것, 그런데 그것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문제가 주님에게 있는 것인가 인간에게 있는 것인가 하면 답은 인간이 된다는 것,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가 될 것인가? 그것은 뻔한 것으로 죄이고 회개치 않은 것이 된다는 것 입니다.
회개란 무엇 입니까? 악을 행하던 자가 그 악을 그치고 그 반대되는 선을 행하는 것 아닙니까? 경에 기록된 대로 옛사람의 불순종의 죄악에서 새사람의 순종의 의로서 나아가는 것 말 입니다.
참조> 원죄는 처음부터 없고 있다고 해도 십자가 대속으로 제거가 되었고, 다른 관점에서 원죄에 대해서 말하면 인간을 죄에 빠지도록 미혹하는 마귀를 제압했다는 것을 뜻한다는 것 다시 말해 지옥을 정복하여 다스리게 됨으로서 사람이 원하기만 하면 그 사람의 죄와 연합하여 그 사람의 영혼에서 왕노릇하는 마귀를 십자가 도의 권세와 능력으로 물리쳐서 자유롭게 해줄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는 것 입니다.
지하동굴을 막고 있던 돌은 제거가 되었습니다. 내지는 감옥의 문이 부숴졌습니다. 원죄와 짝하던 마귀라는 간수는 그대로 있습니다만 십자가 도의 권세와 능력에 의하여 그들의 능력과 권세와 힘은 박탈을 당했다는 것 입니다. 그 속의 죄인들이 나가기를 원한다면 마귀라는 간수는 옛날과 달리 막을수 없다는 것이 신약의 복음이자 십자가 대속의 본질이라는 것 입니다. 복음을 듣고서 눌러 앉아 있기를 택한다면 십자가 대속의 효과는 단지 돌을 치웠다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돌과 문을 치워 버린다는 것이 값이 없는 것은 나가지 않으면 괜한 일이 되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은 뱀의 머리를 쳐서 복종케 한 유일한 사람 입니다. 십자가 도로서 사망으로 권세잡은 자 마귀를 쳐 없앤 것이 주님이시기 때문 입니다. 아담이 불순종으로 뱀의 지배하에 놓였던 것과 달리 주님은 여호와 하나님에게 순종하므로서 그렇게 뱀의 시험과 미혹을 이겨내므로서 승리를 하셨다는 것 입니다.
아직도 뱀과 주님이 싸우고 있다고 착각하시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때부터 천국은 침노를 당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은 천국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던 마귀가 물리쳐졌기 때문이라는 것 입니다. 지옥을 마귀를 물리치는 유일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 곧 선을 행하고 악은 금하는 그것 회개를 말 합니다. 그것말고 다른 것은 없습니다.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의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회개와 순종의 삶을 산 사람은 강도와 같이 주님과 함께 낙원에 있게 된다는 것 입니다.
왜 성품과 삶의 변화가 없는가? 그것은 회개를 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인애의 삶을 살지 않아서 그것은 성품은 삶으로부터 형성이 되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성품의 변화없이는 삶의 열매의 결실이 없고, 회개가 없이는 성품과 삶의 변화는 있을수가 없다는 것 입니다. 왜 주님과 사도들이 누리는 천상에 속한 것들이 우리에게 없는가? 그것은 주님이 본으로 보여주신대로의 삶을 살지 않아서 주님과 사도들이 누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질수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 입니다.
그분들과 같은 삶을 살므로서 고귀한 성품을 형성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천상에 속한 거룩하고 신령한 것들을 누릴려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법칙과 질서를 모르기 때문에 단순히 입술로만 고백하면 주어지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 입니다.
주님의 공로는 주님 그 자신의 것 입니다. 죄나 의라는 공과는 각자의 것이지 남의 것을 우리것으로 전유를 할 수가 없다는 것, 그 사람의 의와 공로를 전가받으려면 그분과 같은 삶을 살아야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할 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 천국을 유업받을 자중에 십계명을 범한자는 우상숭배자나 불의 불법을 행한자는 없다는 것을 직시하시면 되겠습니다.
출처 :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글쓴이 : 혼인잔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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