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 죄, 원죄, 자범죄 >
죄(Sin)는 하나님의 말씀/계명에 불순종하는 것을 말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성경말씀을 근거로 에덴에서의 아담의 불순종을 죄(원죄)라고 합니다. 불순종의 원인은 하나님에 대한 의심(창3:3)과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하는 욕구,(창3:5) 이 두가지로서 설명할수 있습니다.
죄(Sin)의 히브리어 하타라는 뜻은 표적에서 빗나가다, 실패하다를 의미한다. 그리스어 하마르티아(hamartia)의 본래의 뜻은 ‘과녁에서 벗어나다’ ‘규범에 위배된다’는 것으로 단순한 법률 또는 도덕에 대한 위반행위와는 구별된다.(조직신학 참조)
첨가하면 창3:6절의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에서와 같이 관능적인, 말초적인, 감각적인 것 욕망이 더해질수도 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는 것의 영적 의미는 “믿음의 신비(영혼과 천계와 주님)에 관한 것을 기억지와 감관으로서 추구하려는 욕구”를 말하고 그 결과는 영적죽음이라는 것 입니다.
자연적인 사물에 대한 감관적 기억지를 바탕으로서 하늘에 속한 것들을 설명하려는 것, 내지는 덮어 씌우는 것, 결과인 자연사물로서 원인인 천계를 말하려고 하는 것, 이런 인위적이고, 잘못된 질서의 따른 추구로 인해서 오류와 미망으로 가득한 이론과 교리를 세우게 된다는 것 입니다.
또 한가지는 원죄론의 확립자인 성 어거스틴[Augustinus, 354~430]의 이론 입니다. 그는 성욕을 죄악시하여 아담의 타락을 성욕의 따른 것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이를 문선명이 받아서 현재 잘 활용하고 있는 중 입니다. 왜 아담이 하체를 가렸겠는가? 성적인 죄 때문이다라는 것이 어거스틴의 생각이였습니다.
어거스틴은 자기의 젊었을때의 방종을 떠 올리며 성에 대해 몹시 안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인데, 여자에 대한 비하와 인간은 원래 어류와 양서류가 하는 체외수정과 같은 번식을 했어야 한다던가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 노새와 같은 것이 성기이다라고 말하였다는 것 입니다.
성에 대한 집중은 어거스틴에서 통일교의 문선명(레버런 문)으로, 20세기에는 프로이트에게까지 물론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겠지만, 저의 지식수준 하에서는 위와같이 세 인물을 말할수 있다는 것, 창3장이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유사한 면이 있고, 문자적인 그 상징들에서 성적인 것을 유추할만한 것이 있고, 원죄를 개개인에게 국한시킨다면 설명할수도 있는 면이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생각하시면 족하겠습니다.
죄에는 원죄와 본죄(자범죄)가 있다고 합니다. 본죄는 대죄와 소죄로 구분이 됩니다. 이는 가톨릭의 죄의 대한 체계를 말 합니다. 원죄(原罪, original sin)란 아담이 범한 죄로서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전적으로 죄인이 된 것을 말하고, 그 죄의 벌까지 짊어진 것을 말 합니다.
[본죄]는 자범죄를 말 합니다. 알면서도 행하는 죄를 총칭하고, 사소한 일상의 죄들을 소죄라고 하며, 무의식적으로 저지르는 것도 포함되고, 대죄는 큰것, 중요한 것, 알면서 고의적으로 하나님과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들을 말 합니다.
< 원죄(original sin) >
원죄 [原罪, original sin]의 창시자는 바울이고, 최초로 분명하게 말한이는 터틀리안이고, 그것을 확립한자는 성 어거스틴이고, 이 바통을 이어받아 자기 신학의 철옹성을 쌓은이는 칼빈이라고 합니다. 단순한 타락이 아닌 영혼과 육체의 전적타락으로서 인간 본성의 “전적 부패성“과 함께 “죄책의 전가“까지 포함하는 교리 입니다.
교부들 중 터틀리안과 이레네우스 이외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원죄에 관한 사상이 거의 없었다는 것, 원죄 교리중 중요한 요소인 [죄책의 전가]에 대한 견해의 경우 터틀리안과 이레네우스에게도 생소한 것이였다고 조직신학 상 p454(루이스 벌코프)에서 말한다는 것 입니다. 또한 현재 중요한 것은 동방교회에서는 원죄라는 교리가 없다는 것 입니다. 서방의 로마 가톨릭과 그로부터 분리된 개신교에만 가르쳐지고 있다는 것 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은 전 인류에게 죄성(罪性)과 죽음을 가져왔는데 이레니우스(Irenaeus, 주후 130~202경)는 말하기를 아담이 범죄할 때 전 인류는 아담 안에서 함께 범죄 했다고 한다는 것,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칠 때 출생 전의 레위가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십일조를 드린 것과 같이(히 7:8, 10) 아담이 범죄할 때 전 인류는 그의 허리에서 함께 범죄한 것이라고 한다.
터툴리안(Tertullian, 160~220경)은 말하기를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들의 본성이 더러워지고 그 영혼 속에 악이 깃들게 되었는데 아담으로 인해 그 후손들에게 유전되는 본성의 오염을 원죄(原罪, original sin)라 불렀다. 원죄 교리를 최초로 분명하게 말한 이가 터툴리안인데 범죄 전의 아담은 순전한 본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후손들에게 물려준 인간본성은 죄의 경향성을 띤 오염된 본성이었고 따라서 아이들까지도 죄로 오염된 채 출생한다고(시 51:5)말했다.
원죄(original sin)라는 것 자체가 없습니다. 아담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후손의 본성이 부패하고, 죄책을 짊어지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타락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인간에게서는 깨질수 없고 다만 더러워질뿐이라는 것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개할수 있는 의지와 이성은 남아 있습니다만 스스로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주의 말씀이 전해진 것이고, 그 말씀을 의지해서 악과 거짓을 물리쳐 율법을 준행하도록 한 것이나 구약의 말씀은 내성에까지 영향을 줄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닌 표징적인 측면과 교훈적인 측면이 강하였기에 또 이스라엘이나 일반인이나 내성이 닫혀진 육적상태가 일반이었기에 천계의 비의를 받을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 등등이 맞물려서 주님이 성육신하시고, 말씀의 비의를 열어 주신 것과 아울러 자신을 의지하므로서 지옥을 정복하여 의지와 이성의 자유를 회복시키도록 만들었다는 것 입니다.
의문의 죽은 것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돌비에 씌여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판에 주의 율법이 새겨지므로 악과 거짓과 대항하여 싸워 물리칠수 있게 됨에 따라 죄의 노예상태에서 의지와 이성이 자유케 되어 주님에게로 자발적으로 돌아설수가 있게 되었다 이것 입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안에서 지옥을 물리치므로 해서 성도의 의지와 이성을 자유상태로 회복시키시고, 그에게 진리와 선을 공급하여 회개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데 있다는 것 입니다. 종국적으로는 예수님이 그랬던바와같이 주님과 하나가 되는 신화(Deification)에 이르도록 인도하시고, 성화하시고, 영화하는데 있다는 것 입니다.
자기 죄는 자기가 먹는 것 입니다. 뿌린자가 따로 있고, 거두어 먹는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과응보 입니다. 뿌린대로 거두는 것 입니다. 아비가 친일파라고 해서 자식이 친일파 대접을 받을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 입니다. 감정적으로 아니다 할지라도 사실적으로는 그러한 것이 진리라는 것 입니다. 주님은 선인과 악인을 공정하게 대하시는 분 입니다. 불의하게 형벌을 집행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인간의 법률도 그러할진대 하나님에게 불의를 씌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것 입니다.
물론 뿌린자에 의하여 열리게 된 열매를 아담과 하와처럼 자유의지로 가서 먹을수는 있습니다만 아담과 같이 강제된 것이 아닌 자유상태 하에서라는 것이지 원죄의 결과로서 아무상관도 없는데 강제적으로 주입되는 그런 것일수는 없다는 것 입니다. 성도가 뿌린 씨의 열매는 사후 그 자신이 먹게 되는 것 입니다. 물론 현재에서도 먹을수가 있고, 이웃에게 나누어 줄수가 있고, 그렇게 후손에게 줄수가 있지만 본래적으로 뿌린 씨의 따른 열매는 자기가 먹는 것이다라는 것 입니다.
주님이 가서 성도들의 거처를 예비하신다고 하는데, 아무것도 없이 집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행위에 따라서 그 공력과 공덕에 따라서 집을 짓는다는 것 입니다. 바울사도의 고전15장과 고전3장에서 각각 뿌린대로 해와 달과 별과 별과 별의 영광을 얻는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 금과 은과 보석과 나무와 풀로서 주님의 반석위에 집을 세우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렘 31:29,30)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
예레미야가 아비의 죄의 따른 죄책이 후손에게 이르지 않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인류의 대표로서라고 말할지라도 그는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서도 우리보다 800년 이상을 오래 산 사람 입니다. 아담은 창4:26절에서 셋을 낳은후에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에서 추론할 수가 있는 것은 그는 지옥에 가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역사적 인물로서 볼지라도 그렇게 문자적으로 보면 지옥이 아니라 천국에 갈 확률이 높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창6장에서 노아홍수로서 인류 전체를 멸하시고, 의인인 노아만 남겨 놓았다는 것 입니다. 만약 원죄를 인정한다 할지라도 노아라는 새로운 대표로 인해서 죄의 따른 본성의 부패성과 죄책의 전가는 홍수로 종식을 고했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위의 예레미야의 성구에서 그때라는 것은 전후 문맥을 보시면 주님의 강림을 말하고 있다는 것에 따라 주님의 제2의 아담으로서 순종의 의를 세우셨기 때문에 원죄라는 것은 소멸하고 없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믿는자에게만 그 은혜가 주어진다는 것은 나머지들은 계속 원죄의 영향하에 있다는 논리가 되는데, 인간 스스로는 선을 행할 수가 없다(전적타락, 전적 부패성)고 말하는 것에 비추어 보면 주님은 인간이 절대로 할 수가 없는데 날마다 하라고, 명령하고, 준행하지 않으면 저주하고, 징벌하겠다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니 주님이 인간보다 그것을 몰라서 그런 모순된 말을 하는가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가 없다는 것 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선을 행할 수가 없다면 주님은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나 구약에 보면 매구절마다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기의 의지로 악에서 돌아설수 없는데 왜 자꾸 회개하라고 여호와 하나님은 말하는 것이 됩니까? 사실은 상식이고 기본인데....사람들이 결과로부터 원인을 보지도 않고, 결과에 집착하므로서 원인을 왜곡하여 소경이 된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 된다는 것 입니다.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악에 속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유 가운데 태어납니다. 그러나 세상이 거의 악하고 부모로부터 유전된 악한 성품을 이어받는 것이 일반이므로 악속에서 태어나는 것과 진배없는 영적 환경속에 있다고 말할 수가 있겠지만 불가항력적으로 전적 타락된 상태에서 선을 행할 능력이 없는 전적 부패성에서 인간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선지자들은 원죄를 전혀 몰랐습니다. 그들은 회개하라고 말하기만 했습니다.그렇게 말한 것은 그들이 회개할수 있는 의지와 이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는 것 입니다.(주님과 세례요한 그리고 모든 사도가 원죄에 대해서 전혀 말한적이 없습니다.바우만 빼고) 그렇지 않다면 주님의 보혈로서만 오직 가능했다면 주님은 그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이 오실때까지 여러 가지로 그들이 죄 지을수 없는 상태를 아시고, 보살펴 주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섭리를 했을 것 입니다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과 불순종과 배반에 대해 강하게 질책을 하였다는 것 입니다.
원죄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아담과 바로 후손들은 우리들보다 오래살았다는 것, 그리고 아담이하 의인들은 거의 천국에 올라 갔다는 것, 노아홍수로서 원죄로 물든 죄인들을 멸절시켜 세상을 재 창조하였다는 것, 혹 그렇게 있다고 할지라도 주님의 보혈로서 원죄는 소멸하였다는 것, 그것은 믿음을 받든지 아니 받든지 전 인류에게 미친다는 것, 왜냐하면 원죄가 아담의 불순종으로 우리가 믿든지 아니 믿든지 죄인이 된 것과 같이 예수님의 의의 순종으로서 주어진 은혜의 보혈은 제2의 아담으로서 인류의 대표자로 선 것이기에 그이후에 태어난 인류들은 원죄로부터 해방된 상태에서 믿든지 아니 믿든지 그렇게 알던지 모르던지 출생한 것이 되기 때문 입니다.
(애 3:39 )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렘 2:17)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그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 (렘 2: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출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이것은 유전악에 대한 말로서, 죄책이 실제로 그 아들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죄의 결과 본성과 영적환경이 지옥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므로서 그 아비로부터 태어나는 자식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수 없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는 것, 유전악이란 부모의 것을 자식이 이어받는 것을 말하는데, 자식이므로 비슷한 성품과 악습/성벽같은 것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 그것을 부모와 같이 지 의지로 취하게 되면 그 부모와 같은 죄인이 되고, 결과적으로 그 죄책이 주어지게 된다는 것을 말 합니다.
보리는 유전악에 대해서 아비의 것은 내면적이고, 어미의 경우는 외면적으로 심어진다고 합니다. 반대로도 같을 것 입니다. 유전악은 죄도 아니고, 죄책도 아니나 그 자식들이 그것을 자기것으로 취할 때 곧 지 의지로 부모가 하던 것을 따라 할때 그것이 자기것이 되어 죄의 벌이 주어지게 된다는 것 입니다.(아브라함의 행동을 답습하는 이삭)
주님을 미워하는 자는 그의 영적환경이 지옥이 됩니다. 속사람으로는 지옥에 속한 자가 된다는 것 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등을 돌리는자의 속사람은 지옥에 속하게 되고, 지옥에 있는 무리들과 교류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아비가 그런자라고 한다면, 자식의 영혼도 유사한 성품을 지닌 자들이 될 것이고, 그의 따라 지옥의 환경의 영향하에 놓이게 될 것 입니다. 출생할 때 그때는 자유로울지 모르지만 아비의 유전악을 이어받아 그것을 자기것으로 소화하게 되면 아비의 지옥과 유사한 사회에 그 자식들은 내적으로 놓이게 될 것이라는 것 입니다.
부모의 고질적인 악습은 자식의 겉사람에게도 영향을 주지만 기본적으로 속사람에게 강하게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은 겉으로는 관습과 도덕과 세상의 시선을 의식해서 스스로를 통제해야 하기 때문에 외성에 있지 못하고, 무의식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게 되는 인간의 현주소 때문 입니다.
원죄의 따른 인간의 전적 무능력 즉 선을 행하고, 진리를 생각하며 말하는 것을 인간은 할수 없다고 하는 전적 타락의 교리는 구약의 말씀 매 항으므로부터 전적으로 배치되는 논리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전적부패성도 문제이지만 죄책의 전가도 문제가 되겠습니다. 죄를 짓지 않은 자들이 그 죄의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이 논리는 전적으로 신성에 배치된다는 것을 말 입니다.
- 아담과 노아로 본 원죄부정 -
pm님>왜? 죄없는 사람들이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야 하는 지를 설명해 주시요!!
>> 아담은 인류시조가 아닙니다. 노아가 되어야 하지요 이미 홍수로 심판하였으니 사실상 노아가 제2의 아담이 되는 것이지요. 노아가 아담처럼 불순종하였습니까? 원죄의 아래 있다면 노아도 홍수로 심판받아 죽었어야 하는데 왜 그만 살렸겠는지요?
바울은 일반적으로 예수님을 제2의 아담으로 말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노아가 제2의 아담이 되고, 예수님은 제3의 아담으로 불려야 마땅하다는 것 입니다. 아브라함까지 계산에 넣어야 하는가? 아담과 노아는 육적인 것의 시조/대표의 표징으로서 볼수 있지만 아브라함은 믿음이라는 대표/시조의 표징으로서 볼수 있지 않겠는가?
아브라함의 의인(창15:6),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손 곧 영적자손을 기독교회로 말한다는 것, 이스라엘은 육적자손이라고 하고, 아담과 노아는 예수님으로 인한 후손들 곧 영적 후손들의 대해 육적인 방편으로서 표징/예표를 한 것이고, 아브라함은 혈통이나 육정으로서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나게(요한1:13) 만드는 영적인 대표/표징/예표로서 즉 아담과 노아와 달리 그것의 구체성과 차별성으로서 예수님의 부활로 인한 그 후손들을 예표하는 것이라는 것 입니다.
아담이나 노아는 육적인 것만으로서 대표이고, 표징이고, 예표였으나 아브라함은 육적인 것과 함께 영적인 것 즉 믿음으로서 자손이 되는 곧 주님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강림에 따라 중생하게 된 영적 자손에 대해서, 사실상 그것이 바로 주님의 자녀라는 것을 표징하고, 예표한 것이라는 것 입니다.
홍수심판을 할때 여호와께서는 아담의 원죄로 인해서 세상을 쓸어버리겠다가 아니라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창6:5) 는 이유로, 그와함께 원죄로 인한 것이 아닌 2절에서 혼혈을 한 것이 원인이다는 조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노아가 원죄의 영향하에 있었다면 “의인이요 완전한자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창6:9)가 성립이 될 수가 있는가? 단순히 육적으로 죽었다고 원죄의 영향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할수 있는가? 그렇다면 예수님만 부활하고 모든 이들이 죽고 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는 원죄를 해결할수 없었던 것이 되는가?
대죄를 지은 아담이 우리보다 9배나 더 오래 산 이유는? 매번 회개치 않으면 징계한 이유는, 원죄로 징계하지 않고,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의 대한 형벌의 취소는(요나)?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회개하라고 외친 이유는 아직 보혈도 뿌려지지 않았는데 선을 행하고 진리를 이해할만한 능력이 인간안에 없다면 그런 말을 왜 하는 것인지 이것부터 설명해야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는가 생각 한다는 것 입니다.
pm> 아담의 죄가 아담의 것이라면 아담 혼자서 책임져야할 죄가 아닌가?(신24;16, 렘31;29-30, 겔18;20) 그런데 아무런 죄가 없는 인간들이 왜? 죄인으로 출생하며~~ 아담의 죄를 유전 받는지?
>> 죄인으로서 출생하지 않고, 의인으로서 출생하지도 않고, 자유 상태에 인간은 출생하나 자라면서 유전악의 내성과 외성의 영향하에서 지 의지로 그 악을 취하므로서 악하게 되는 것 입니다. 그것이 강력하게 작용하여 그 자손을 이끌기 때문에 아직 진리나 선에 대해서 가르침 받지 못한 상황에서 어쩔수 없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 입니다. 주님의 경우는 물론 달라서 모태로부터 또는 출생후부터 마리아로부터 받은 인성과 몸안에 있는 외적인 유전악을 거부하고 자신의 신성과 말씀의 의지하여 승리하였다는 것 입니다.
죄(Sin)는 하나님의 말씀/계명에 불순종하는 것을 말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성경말씀을 근거로 에덴에서의 아담의 불순종을 죄(원죄)라고 합니다. 불순종의 원인은 하나님에 대한 의심(창3:3)과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하는 욕구,(창3:5) 이 두가지로서 설명할수 있습니다.
죄(Sin)의 히브리어 하타라는 뜻은 표적에서 빗나가다, 실패하다를 의미한다. 그리스어 하마르티아(hamartia)의 본래의 뜻은 ‘과녁에서 벗어나다’ ‘규범에 위배된다’는 것으로 단순한 법률 또는 도덕에 대한 위반행위와는 구별된다.(조직신학 참조)
첨가하면 창3:6절의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에서와 같이 관능적인, 말초적인, 감각적인 것 욕망이 더해질수도 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는 것의 영적 의미는 “믿음의 신비(영혼과 천계와 주님)에 관한 것을 기억지와 감관으로서 추구하려는 욕구”를 말하고 그 결과는 영적죽음이라는 것 입니다.
자연적인 사물에 대한 감관적 기억지를 바탕으로서 하늘에 속한 것들을 설명하려는 것, 내지는 덮어 씌우는 것, 결과인 자연사물로서 원인인 천계를 말하려고 하는 것, 이런 인위적이고, 잘못된 질서의 따른 추구로 인해서 오류와 미망으로 가득한 이론과 교리를 세우게 된다는 것 입니다.
또 한가지는 원죄론의 확립자인 성 어거스틴[Augustinus, 354~430]의 이론 입니다. 그는 성욕을 죄악시하여 아담의 타락을 성욕의 따른 것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이를 문선명이 받아서 현재 잘 활용하고 있는 중 입니다. 왜 아담이 하체를 가렸겠는가? 성적인 죄 때문이다라는 것이 어거스틴의 생각이였습니다.
어거스틴은 자기의 젊었을때의 방종을 떠 올리며 성에 대해 몹시 안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인데, 여자에 대한 비하와 인간은 원래 어류와 양서류가 하는 체외수정과 같은 번식을 했어야 한다던가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 노새와 같은 것이 성기이다라고 말하였다는 것 입니다.
성에 대한 집중은 어거스틴에서 통일교의 문선명(레버런 문)으로, 20세기에는 프로이트에게까지 물론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겠지만, 저의 지식수준 하에서는 위와같이 세 인물을 말할수 있다는 것, 창3장이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유사한 면이 있고, 문자적인 그 상징들에서 성적인 것을 유추할만한 것이 있고, 원죄를 개개인에게 국한시킨다면 설명할수도 있는 면이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생각하시면 족하겠습니다.
죄에는 원죄와 본죄(자범죄)가 있다고 합니다. 본죄는 대죄와 소죄로 구분이 됩니다. 이는 가톨릭의 죄의 대한 체계를 말 합니다. 원죄(原罪, original sin)란 아담이 범한 죄로서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전적으로 죄인이 된 것을 말하고, 그 죄의 벌까지 짊어진 것을 말 합니다.
[본죄]는 자범죄를 말 합니다. 알면서도 행하는 죄를 총칭하고, 사소한 일상의 죄들을 소죄라고 하며, 무의식적으로 저지르는 것도 포함되고, 대죄는 큰것, 중요한 것, 알면서 고의적으로 하나님과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들을 말 합니다.
< 원죄(original sin) >
원죄 [原罪, original sin]의 창시자는 바울이고, 최초로 분명하게 말한이는 터틀리안이고, 그것을 확립한자는 성 어거스틴이고, 이 바통을 이어받아 자기 신학의 철옹성을 쌓은이는 칼빈이라고 합니다. 단순한 타락이 아닌 영혼과 육체의 전적타락으로서 인간 본성의 “전적 부패성“과 함께 “죄책의 전가“까지 포함하는 교리 입니다.
교부들 중 터틀리안과 이레네우스 이외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원죄에 관한 사상이 거의 없었다는 것, 원죄 교리중 중요한 요소인 [죄책의 전가]에 대한 견해의 경우 터틀리안과 이레네우스에게도 생소한 것이였다고 조직신학 상 p454(루이스 벌코프)에서 말한다는 것 입니다. 또한 현재 중요한 것은 동방교회에서는 원죄라는 교리가 없다는 것 입니다. 서방의 로마 가톨릭과 그로부터 분리된 개신교에만 가르쳐지고 있다는 것 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은 전 인류에게 죄성(罪性)과 죽음을 가져왔는데 이레니우스(Irenaeus, 주후 130~202경)는 말하기를 아담이 범죄할 때 전 인류는 아담 안에서 함께 범죄 했다고 한다는 것,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칠 때 출생 전의 레위가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십일조를 드린 것과 같이(히 7:8, 10) 아담이 범죄할 때 전 인류는 그의 허리에서 함께 범죄한 것이라고 한다.
터툴리안(Tertullian, 160~220경)은 말하기를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들의 본성이 더러워지고 그 영혼 속에 악이 깃들게 되었는데 아담으로 인해 그 후손들에게 유전되는 본성의 오염을 원죄(原罪, original sin)라 불렀다. 원죄 교리를 최초로 분명하게 말한 이가 터툴리안인데 범죄 전의 아담은 순전한 본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후손들에게 물려준 인간본성은 죄의 경향성을 띤 오염된 본성이었고 따라서 아이들까지도 죄로 오염된 채 출생한다고(시 51:5)말했다.
원죄(original sin)라는 것 자체가 없습니다. 아담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후손의 본성이 부패하고, 죄책을 짊어지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타락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인간에게서는 깨질수 없고 다만 더러워질뿐이라는 것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개할수 있는 의지와 이성은 남아 있습니다만 스스로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주의 말씀이 전해진 것이고, 그 말씀을 의지해서 악과 거짓을 물리쳐 율법을 준행하도록 한 것이나 구약의 말씀은 내성에까지 영향을 줄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닌 표징적인 측면과 교훈적인 측면이 강하였기에 또 이스라엘이나 일반인이나 내성이 닫혀진 육적상태가 일반이었기에 천계의 비의를 받을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 등등이 맞물려서 주님이 성육신하시고, 말씀의 비의를 열어 주신 것과 아울러 자신을 의지하므로서 지옥을 정복하여 의지와 이성의 자유를 회복시키도록 만들었다는 것 입니다.
의문의 죽은 것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돌비에 씌여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판에 주의 율법이 새겨지므로 악과 거짓과 대항하여 싸워 물리칠수 있게 됨에 따라 죄의 노예상태에서 의지와 이성이 자유케 되어 주님에게로 자발적으로 돌아설수가 있게 되었다 이것 입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안에서 지옥을 물리치므로 해서 성도의 의지와 이성을 자유상태로 회복시키시고, 그에게 진리와 선을 공급하여 회개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데 있다는 것 입니다. 종국적으로는 예수님이 그랬던바와같이 주님과 하나가 되는 신화(Deification)에 이르도록 인도하시고, 성화하시고, 영화하는데 있다는 것 입니다.
자기 죄는 자기가 먹는 것 입니다. 뿌린자가 따로 있고, 거두어 먹는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과응보 입니다. 뿌린대로 거두는 것 입니다. 아비가 친일파라고 해서 자식이 친일파 대접을 받을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 입니다. 감정적으로 아니다 할지라도 사실적으로는 그러한 것이 진리라는 것 입니다. 주님은 선인과 악인을 공정하게 대하시는 분 입니다. 불의하게 형벌을 집행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인간의 법률도 그러할진대 하나님에게 불의를 씌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것 입니다.
물론 뿌린자에 의하여 열리게 된 열매를 아담과 하와처럼 자유의지로 가서 먹을수는 있습니다만 아담과 같이 강제된 것이 아닌 자유상태 하에서라는 것이지 원죄의 결과로서 아무상관도 없는데 강제적으로 주입되는 그런 것일수는 없다는 것 입니다. 성도가 뿌린 씨의 열매는 사후 그 자신이 먹게 되는 것 입니다. 물론 현재에서도 먹을수가 있고, 이웃에게 나누어 줄수가 있고, 그렇게 후손에게 줄수가 있지만 본래적으로 뿌린 씨의 따른 열매는 자기가 먹는 것이다라는 것 입니다.
주님이 가서 성도들의 거처를 예비하신다고 하는데, 아무것도 없이 집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행위에 따라서 그 공력과 공덕에 따라서 집을 짓는다는 것 입니다. 바울사도의 고전15장과 고전3장에서 각각 뿌린대로 해와 달과 별과 별과 별의 영광을 얻는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 금과 은과 보석과 나무와 풀로서 주님의 반석위에 집을 세우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렘 31:29,30)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
예레미야가 아비의 죄의 따른 죄책이 후손에게 이르지 않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인류의 대표로서라고 말할지라도 그는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서도 우리보다 800년 이상을 오래 산 사람 입니다. 아담은 창4:26절에서 셋을 낳은후에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에서 추론할 수가 있는 것은 그는 지옥에 가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역사적 인물로서 볼지라도 그렇게 문자적으로 보면 지옥이 아니라 천국에 갈 확률이 높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창6장에서 노아홍수로서 인류 전체를 멸하시고, 의인인 노아만 남겨 놓았다는 것 입니다. 만약 원죄를 인정한다 할지라도 노아라는 새로운 대표로 인해서 죄의 따른 본성의 부패성과 죄책의 전가는 홍수로 종식을 고했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위의 예레미야의 성구에서 그때라는 것은 전후 문맥을 보시면 주님의 강림을 말하고 있다는 것에 따라 주님의 제2의 아담으로서 순종의 의를 세우셨기 때문에 원죄라는 것은 소멸하고 없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믿는자에게만 그 은혜가 주어진다는 것은 나머지들은 계속 원죄의 영향하에 있다는 논리가 되는데, 인간 스스로는 선을 행할 수가 없다(전적타락, 전적 부패성)고 말하는 것에 비추어 보면 주님은 인간이 절대로 할 수가 없는데 날마다 하라고, 명령하고, 준행하지 않으면 저주하고, 징벌하겠다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니 주님이 인간보다 그것을 몰라서 그런 모순된 말을 하는가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가 없다는 것 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선을 행할 수가 없다면 주님은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나 구약에 보면 매구절마다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기의 의지로 악에서 돌아설수 없는데 왜 자꾸 회개하라고 여호와 하나님은 말하는 것이 됩니까? 사실은 상식이고 기본인데....사람들이 결과로부터 원인을 보지도 않고, 결과에 집착하므로서 원인을 왜곡하여 소경이 된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 된다는 것 입니다.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악에 속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유 가운데 태어납니다. 그러나 세상이 거의 악하고 부모로부터 유전된 악한 성품을 이어받는 것이 일반이므로 악속에서 태어나는 것과 진배없는 영적 환경속에 있다고 말할 수가 있겠지만 불가항력적으로 전적 타락된 상태에서 선을 행할 능력이 없는 전적 부패성에서 인간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선지자들은 원죄를 전혀 몰랐습니다. 그들은 회개하라고 말하기만 했습니다.그렇게 말한 것은 그들이 회개할수 있는 의지와 이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는 것 입니다.(주님과 세례요한 그리고 모든 사도가 원죄에 대해서 전혀 말한적이 없습니다.바우만 빼고) 그렇지 않다면 주님의 보혈로서만 오직 가능했다면 주님은 그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이 오실때까지 여러 가지로 그들이 죄 지을수 없는 상태를 아시고, 보살펴 주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섭리를 했을 것 입니다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과 불순종과 배반에 대해 강하게 질책을 하였다는 것 입니다.
원죄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아담과 바로 후손들은 우리들보다 오래살았다는 것, 그리고 아담이하 의인들은 거의 천국에 올라 갔다는 것, 노아홍수로서 원죄로 물든 죄인들을 멸절시켜 세상을 재 창조하였다는 것, 혹 그렇게 있다고 할지라도 주님의 보혈로서 원죄는 소멸하였다는 것, 그것은 믿음을 받든지 아니 받든지 전 인류에게 미친다는 것, 왜냐하면 원죄가 아담의 불순종으로 우리가 믿든지 아니 믿든지 죄인이 된 것과 같이 예수님의 의의 순종으로서 주어진 은혜의 보혈은 제2의 아담으로서 인류의 대표자로 선 것이기에 그이후에 태어난 인류들은 원죄로부터 해방된 상태에서 믿든지 아니 믿든지 그렇게 알던지 모르던지 출생한 것이 되기 때문 입니다.
(애 3:39 )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렘 2:17)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그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 (렘 2: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출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이것은 유전악에 대한 말로서, 죄책이 실제로 그 아들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죄의 결과 본성과 영적환경이 지옥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므로서 그 아비로부터 태어나는 자식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수 없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는 것, 유전악이란 부모의 것을 자식이 이어받는 것을 말하는데, 자식이므로 비슷한 성품과 악습/성벽같은 것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 그것을 부모와 같이 지 의지로 취하게 되면 그 부모와 같은 죄인이 되고, 결과적으로 그 죄책이 주어지게 된다는 것을 말 합니다.
보리는 유전악에 대해서 아비의 것은 내면적이고, 어미의 경우는 외면적으로 심어진다고 합니다. 반대로도 같을 것 입니다. 유전악은 죄도 아니고, 죄책도 아니나 그 자식들이 그것을 자기것으로 취할 때 곧 지 의지로 부모가 하던 것을 따라 할때 그것이 자기것이 되어 죄의 벌이 주어지게 된다는 것 입니다.(아브라함의 행동을 답습하는 이삭)
주님을 미워하는 자는 그의 영적환경이 지옥이 됩니다. 속사람으로는 지옥에 속한 자가 된다는 것 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등을 돌리는자의 속사람은 지옥에 속하게 되고, 지옥에 있는 무리들과 교류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아비가 그런자라고 한다면, 자식의 영혼도 유사한 성품을 지닌 자들이 될 것이고, 그의 따라 지옥의 환경의 영향하에 놓이게 될 것 입니다. 출생할 때 그때는 자유로울지 모르지만 아비의 유전악을 이어받아 그것을 자기것으로 소화하게 되면 아비의 지옥과 유사한 사회에 그 자식들은 내적으로 놓이게 될 것이라는 것 입니다.
부모의 고질적인 악습은 자식의 겉사람에게도 영향을 주지만 기본적으로 속사람에게 강하게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은 겉으로는 관습과 도덕과 세상의 시선을 의식해서 스스로를 통제해야 하기 때문에 외성에 있지 못하고, 무의식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게 되는 인간의 현주소 때문 입니다.
원죄의 따른 인간의 전적 무능력 즉 선을 행하고, 진리를 생각하며 말하는 것을 인간은 할수 없다고 하는 전적 타락의 교리는 구약의 말씀 매 항으므로부터 전적으로 배치되는 논리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전적부패성도 문제이지만 죄책의 전가도 문제가 되겠습니다. 죄를 짓지 않은 자들이 그 죄의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이 논리는 전적으로 신성에 배치된다는 것을 말 입니다.
- 아담과 노아로 본 원죄부정 -
pm님>왜? 죄없는 사람들이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야 하는 지를 설명해 주시요!!
>> 아담은 인류시조가 아닙니다. 노아가 되어야 하지요 이미 홍수로 심판하였으니 사실상 노아가 제2의 아담이 되는 것이지요. 노아가 아담처럼 불순종하였습니까? 원죄의 아래 있다면 노아도 홍수로 심판받아 죽었어야 하는데 왜 그만 살렸겠는지요?
바울은 일반적으로 예수님을 제2의 아담으로 말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노아가 제2의 아담이 되고, 예수님은 제3의 아담으로 불려야 마땅하다는 것 입니다. 아브라함까지 계산에 넣어야 하는가? 아담과 노아는 육적인 것의 시조/대표의 표징으로서 볼수 있지만 아브라함은 믿음이라는 대표/시조의 표징으로서 볼수 있지 않겠는가?
아브라함의 의인(창15:6),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손 곧 영적자손을 기독교회로 말한다는 것, 이스라엘은 육적자손이라고 하고, 아담과 노아는 예수님으로 인한 후손들 곧 영적 후손들의 대해 육적인 방편으로서 표징/예표를 한 것이고, 아브라함은 혈통이나 육정으로서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나게(요한1:13) 만드는 영적인 대표/표징/예표로서 즉 아담과 노아와 달리 그것의 구체성과 차별성으로서 예수님의 부활로 인한 그 후손들을 예표하는 것이라는 것 입니다.
아담이나 노아는 육적인 것만으로서 대표이고, 표징이고, 예표였으나 아브라함은 육적인 것과 함께 영적인 것 즉 믿음으로서 자손이 되는 곧 주님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강림에 따라 중생하게 된 영적 자손에 대해서, 사실상 그것이 바로 주님의 자녀라는 것을 표징하고, 예표한 것이라는 것 입니다.
홍수심판을 할때 여호와께서는 아담의 원죄로 인해서 세상을 쓸어버리겠다가 아니라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창6:5) 는 이유로, 그와함께 원죄로 인한 것이 아닌 2절에서 혼혈을 한 것이 원인이다는 조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노아가 원죄의 영향하에 있었다면 “의인이요 완전한자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창6:9)가 성립이 될 수가 있는가? 단순히 육적으로 죽었다고 원죄의 영향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할수 있는가? 그렇다면 예수님만 부활하고 모든 이들이 죽고 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는 원죄를 해결할수 없었던 것이 되는가?
대죄를 지은 아담이 우리보다 9배나 더 오래 산 이유는? 매번 회개치 않으면 징계한 이유는, 원죄로 징계하지 않고,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의 대한 형벌의 취소는(요나)?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회개하라고 외친 이유는 아직 보혈도 뿌려지지 않았는데 선을 행하고 진리를 이해할만한 능력이 인간안에 없다면 그런 말을 왜 하는 것인지 이것부터 설명해야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는가 생각 한다는 것 입니다.
pm> 아담의 죄가 아담의 것이라면 아담 혼자서 책임져야할 죄가 아닌가?(신24;16, 렘31;29-30, 겔18;20) 그런데 아무런 죄가 없는 인간들이 왜? 죄인으로 출생하며~~ 아담의 죄를 유전 받는지?
>> 죄인으로서 출생하지 않고, 의인으로서 출생하지도 않고, 자유 상태에 인간은 출생하나 자라면서 유전악의 내성과 외성의 영향하에서 지 의지로 그 악을 취하므로서 악하게 되는 것 입니다. 그것이 강력하게 작용하여 그 자손을 이끌기 때문에 아직 진리나 선에 대해서 가르침 받지 못한 상황에서 어쩔수 없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 입니다. 주님의 경우는 물론 달라서 모태로부터 또는 출생후부터 마리아로부터 받은 인성과 몸안에 있는 외적인 유전악을 거부하고 자신의 신성과 말씀의 의지하여 승리하였다는 것 입니다.
출처 :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글쓴이 : 아바타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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