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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백록담, '호명천지'를 아시나요?

하나님아들 2025. 5. 24. 00:01

경기도의 백록담, '호명천지'를 아시나요? [열차 산행 특집]

입력2025.05.22. 
 
1980년 만든 인공호수…
여전히 전기 생산하고 관광 명물로 인기
조종천과 벚꽃, 진달래와 호명산이 합심하여 낭만적인 봄날을 완성했다. 청평역에서 호명산 들머리로 이어진 길.
호명천지에 올라서자 가슴이 탁 트였다. 경기도 가평에 백두산 천지가 있다. 감히 비할 바 못되지만, 주능선에 호수가 있다. 마침 버스에서 내린 장애우들이 환호한다. 호수를 따라 걷거나 뛰고, 4인용 자전거를 대여해서 타기도 한다. 해발 500m대 산의 호수는 오래도록 좁은 방에 누워 있었을 누군가에게는 백두산 천지 같은 감동을 준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호명산 능선의 인공호수를 '호명천지'라고 부른다.

호명산 산행을 고정 관념을 깨는 것으로 시작한다. 경춘선 상천역에서 버스를 타고 고도 540m를 올린다. 산행의 시작이 능선이다. 화장실을 비롯, 자전거 대여소와 매점이 있는 호명호수는 수분으로 몸과 마음을 흠뻑 채운다. 짧은 비탈길을 오르자 길쭉한 전망대가 호수를 한눈에 보여 준다. 온 산이 앙상한데 진달래 혼자 피었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분홍을 잃지 않는 것이, 무언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간절한 사랑 고백에 닫힌 산의 마음이 열린다. 봄의 선봉장 진달래가 피었으니, 짧은 봄이 지나가는 건 금방이다.

전망대에서 본 호명호수. 호수 속의 인공 배수관을 통해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만든다. 50여 년 전의 기술로 제주도 전체의 하루 전기를 몇 초 만에 생산할 수 있는 것이 놀랍다.
호수를 두고 호명산 이정표를 따른다. 숲길에 들자, 또 다른 전망대가 방향을 바꿔 호명호수 경치를 권한다. 호수와 작별하고, 호명산 정상을 향해 능선길로 접어든다. 옛날 호랑이가 많아 그 울음소리가 마을까지 들려와서 호명산虎鳴山(632m)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지금은 경춘선 상천역과 청평역에서 접근성이 좋고, 능선에 호수가 있어 관광지를 겸한 인기 산행지가 되었다.

청평역에서 호명산 정상으로 이어진 산길 초입에는 잎갈나무와 잣나무 숲이 있다. 
청평역 앞 조종천 벚꽃길. 
호명산 이름 유래는 사실에 가깝다. 1894년부터 네 번에 걸쳐 조선을 찾았던 영국인 여행가 비숍 여사는 '조선은 호랑이가 정말 많은 나라다. 어느 마을의 한 아줌마가 물을 길으러 갔다가 변고를 당했는데, 나중에 보니 사람은 없고 핏자국과 사람 다리 한 짝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중국 속담에 조선 사람들은 1년의 반은 호랑이한테 물려죽은 사람 문상 다니고, 1년의 반은 호랑이 사냥 다닌다는 말이 있다'고 여행기에 썼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 호랑이로 인한 사람과 가축의 피해가 기록되어 있으며, 태백산 부근에만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시신들을 매장한 호식총이 200여 개가 있다.

기차봉과 정상 사이의 간벌지대.
마침 능선길에 돌을 쌓아올린 무더기가 있다. 돌탑이라기엔 많이 허물어진 흔적. 옛날이었다면 호식총일 수도 있다. 호식총虎食塚은 호랑이에게 잡아먹혀 죽은 이의 무덤이다. 남은 시신 일부를 수습해 화장한 뒤 돌무덤을 만들고, 그 위에 시루(그릇)를 얹고 시루 구멍에 쇠가락을 꽂아둔 형태다. 죽은 이가 호랑이의 노예 귀신인 창귀倀鬼가 된다고 믿었다고 한다. 창귀가 호랑이의 노예에서 벗어나려면 희생자를 찾아야 하는데 가족과 인척 순서로 찾아간다고 하여, 호환을 당한 집안과는 혼사를 맺지 않았다고 한다. 쇠가락은 물레의 부속품인데 시루 안에서 나오지 말고 영원히 맴돌라는 주술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호식총은 벌초는커녕 사람이 얼씬도 하지 않는 금역의 상징이었던 것.

150년 전, 위험했던 호랑이 산은 '청평 XX아파트 선착순 특별 공급' 현수막이 걸리고, 인공호수가 있는, 완전히 다른 산이 되었다. 생계도 중요하지만 산길에는 이런 상업적 홍보는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인데,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럴까 싶다. 꾸준히 오르내림이 이어지지만 쉽게 고도를 높인 탓에 몸과 마음이 헐떡임 없이 차분하다. 맞은편에서 오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지친 기색이다. 공짜로 고도를 높인 탓에 미안해 비켜서서 길을 내어준다.

정태춘의 '북한강에서' 들리는 듯

기차봉 또는 아갈바위라고 불리는 데크전망대.
빽빽한 숲터널 끝에 처음 만나는 경치, 기차봉(618m)이다. 아갈바위라고도 하는데 옛날 호랑이가 이곳에 올라 포효했다고 하여 유래한다. 지금은 넓은 전망데크 아래로 경춘선 기차가 지나는 경치를 실컷 내려다 볼 수 있다. 데크 가운데엔 조경석처럼 구멍을 뚫어 자연 바위를 그대로 살렸다. 뙤약볕이라 오래 머물긴 어렵다. 어려운 코스는 아니지만 3.7km는 짧지 않아 땀이 나지 않고는 정상에 닿을 수 없다.

기차봉에서 540m를 가자, 청평역 쪽으로 시야가 트인다. 나무를 베어 시야가 트였다. 민둥민둥해진 산에는 어느새 진달래가 뿌리를 내리고 분칠을 했다. 발 빠른 진달래 덕분에 간벌한 능선이 경치 명소로 탈바꿈했다. 극성스런 여름이 되면 그냥 지나치겠지만, 지금은 진달래 품에서 청평의 마을과 산을 바라본다.

호명산 정상. 청평 방면으로 트여 있어 시원한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무게감 있는 능선을 지나자, 탁 트인 정상이다. 큼직한 표지석이며, 막힘없이 열린 터가 산행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알려 준다. 벚꽃 축제가 열리는지 산 아래는 흰 벚꽃을 따라 "쿵짝 쿵짝" 스피커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멀리 한북정맥 줄기가 잊혀진 왕조의 문양마냥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희미하게 흘러가고, 파란 하늘의 토실토실한 구름 한 점은 졸음을 유발한다. 멍하니 보고 있으면 마음이 뽀송뽀송해지는 매력적인 정상이다.

진달래가 만개한 호명산 능선길.
청평역 방향으로 급격히 고도를 내린다. 비로소 드러나는 북한강. 춘천, 대성리, 청평 덕분인지 북한강만 보면 나들이 온 것마냥 설렌다. 가수 정태춘이 북한강에 있는 동원 예비군 훈련장으로 트럭을 타고 이동하며 썼다는 '북한강에서'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는 것 같은 착각. 그만큼 경치는 서정적이다. 흰제비꽃이랑 진달래가 화사한 손짓으로 마중한다. 청평읍내로 내려서자, 조종천을 따라 벚꽃이 한창이다. 날도 환하고, 꽃도 환하고, 마음도 환하다.

청평역에서 정상으로 이어진 산길에 진달래가 만개했다.
미니 인터뷰
"3분이면 제주도 1일 전기 사용량을 만들 수 있어요"

신현옥 가평문화해설가

"호명호수는 빗물이 아니에요. 북한강 물을 능선까지 끌어올린 거예요. 남는 전기가 있을 때 물을 끌어올렸다가 전기가 필요하면 물을 흘려보내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드는 방식이에요."

해발 500m대 능선에 자리한 호명호수는 1980년에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양수식 발전소다. 신현옥 해설가의 말에 따르면 1970년대에 3가구가 살던 상지마을이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전기 부족으로 정전이 잦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설했다.

지형도를 보면 호수가 있는 이곳 지형이 상당히 독특한 것을 알 수 있다. 백록담 같은 화산분지처럼 9부능선에 계곡이 완만하게 똬리를 틀고 있어, 좁은 입구만 막으면 호수를 만들 수 있는 지형이다. 북한강과 가깝고, 수도권 변전소도 가까워 양수발전소를 짓기에 천혜의 장소였던 셈이다. 689억 원이 투입되어 5년간의 공사를 거쳐 1980년 완성되었으며, 지금도 당시 원형 그대로다. 산 아래에서 땅 속을 파고, 위에서 구멍을 파서 만났는데, 오차가 6cm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기술력이었다. 일본의 기술을 들여왔으며, 이 공사로 인해 우리나라 건축 기술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3분이면 전기를 만들 수 있으며, 전기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보내는 데 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6시간이면 북한강에서 물을 끌어올려 이곳 호수를 다 채울 수 있으며, 반대로 물을 방출하면 240만kW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2010년 기준 제주 시민 전체의 하루 사용분 전기량이라 하니, 50여 년 전 기술이 지금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가평이 고향인 신현옥 문화해설가는 15년째 관광객을 맞고 있다. 이곳 호명호수를 비롯해 가평의 관광지 8곳을 순회하면서 해설하는데, 마침 오늘 호명호수를 맡게 되었다. 신 해설가는 가평의 여러 명소 중에서도 이곳 호명호수를 가장 좋아한다.

"산에 올라오니 공기가 맑고, 경치도 좋아요. 비가 오거나 흐린 날도 예뻐요. 안개가 호수 자욱이 들어찼다가 사라지는 모습은 신비로워요."

가평을 방문한 손님들이 즐거운 마음을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에 봉사 차원에서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는 그녀는 호명호수가 봄·가을이 가장 아름다운데, 호수 주위로 진달래, 개나리, 벚꽃이 피어 산책하기에 제격이라고 알려 준다.

호명호수 꿀팁
- ‌매년 11월부터 3월까지 상천역과 호수를 오가는 버스가 운영하지 않는다. 길이 얼어 버스가 올라올 수 없다.

- ‌일반 차량은 호수에서 750m 아래쪽 주차장까지만 통행 가능하다. 호수는 허가 차량 또는 군내버스만 통행 가능하다.

- ‌버스가 다니지 않는 겨울에도 걸어서 올라오는 것은 가능하다.

- ‌‌‌마을기업에서 매점과 자전거대여소를 운영(09:00~17:30)한다. 컵라면(2,000원)을 비롯해 과자와 음료 등을 판다. 2인용 자전거 30분 5,000원. 6인용 30분 2만 원, 1인용 30분 3,000원.

- 전동차로 호수 주위를 돌 수 있다. 1.5km 3,000원.

-호수 둘레에 포장도로가 이어져 있으며, 전망대가 있다. 상천역으로 내려가는 산길과 호명산 정상으로 가는 산길, 주발봉을 거쳐 가평역으로 가는 산길이 있다.

-상주하고 있는 문화해설가에게 무료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호명산 632m


산행길잡이

경춘선 상천역은 출구가 하나뿐이다. 출구를 나와서 회전 로터리 건너편에 버스 시간표를 붙여놓은 작은 버스안내판이 있다. 오전 08:40부터 16:40까지 매시 40분에 상천역을 거쳐 호명호수로 간다. 20분 소요. 막차 17:20. 성수기 주말은 10시부터 16시까지 매시 20분에도 운행한다. 주말은 시간당 두 번 운행한다. 상천역에서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가면 호명호수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

호명호수를 따라 순회하는 도로가 있다. 호명산 산길은 버스정류장에서 가장 먼 호수 건너편이다. 오른쪽 길로 가면 전망대에 올랐다가 갈 수 있다. 산길 입구에 호명산 이정표가 있어 길찾기 어렵지 않다. 정상까지는 외길에 가까운 능선길이라 길찾기 쉽다. 정상에서 대성사 방면 갈림길이 있으며, 청평역 방면으로 가야 한다. 이정표만 잘 살피면 길찾기 쉽다. 하산해 조종천을 건너 강길 따라 250m를 진행해 찻길로 나오면 청평역이 보인다.

상행 오르막을 생략할 수 있어 쉽지만, 잔잔한 오르내림이 있어 너무 만만하게 보면 어려울 수 있다. 등산 입문자를 위한 코스로 알맞지만 정상에서 청평역까지 하산길이 가팔라 주의해야 한다.

긴 산행을 원할 경우 청평역과 가평역을 잇는 17km 종주가 있다. 호명호수를 지나 주발봉을 지나 가평역까지 산길이 이어진다. 7시간 걸린다.

교통

상천역과 청평역을 잇는 열차 산행이다. 상천역에서 버스를 타고 해발 540m 호수에 도착해 산행을 시작한다.

청평역에서 호명산 산행을 시작할 경우 하산시 호명호수에서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내려갈 수 있다. 매시 10분에 버스가 출발한다. 막차만 50분 출발(17:50). 성수기 주말에는 매시 50분에 내려가는 버스가 증편된다.

맛집

청평역 부근에 맛집이 많다. 99골해수손두부 (0507-1374-1107)은 순두부(8,000원), 두부와 돼지고기·야채를 섞어 부친 두부랑땡(1만5,000원), 능이두부전골 (1만5,000원)이 인기 있다. 청평호반닭갈비막국수(0507-1323-5921)는 닭갈비(1만5,000원)와 막국수(1만 원)가 일품. 차이나리(031-584-6778)는 행안부 지정 착한가격업소이며, 탕수육, 깐풍기, 팔보채 등의 모든 요리가 1만1,900원. 짜장면 (7,000원), 짬뽕(8,000원)도 인기 있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신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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